어린 시절에 자연스러웠던 탐구의 자발성을 빠른 속도로 잃어가는거 같아요. 궁금함, 호기심.
@_paperrenaissance60094 жыл бұрын
다시 그 순수성으로 돌아가고프다면 책읽기를 추천드립니다. 한 자 한 자 비트겐슈타인의 생을 읽는 것도 추천드리고, 두 남자의 철학 수다 방송을 곱씹는 것도 추천드려요!
@mindisnoting2 жыл бұрын
요리는 눈에 보이는것이 완성이 아닌 배속으로 들어와 영양분이 되어 몸이 움직일때 완성 되는것이다 그래서 이몸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요리의 궁극적 목적인것이다
@마제스틱-f3w4 жыл бұрын
점점 완성도가 높아져 갑니다^^ 멋진 영상 잘봤습니다 욕망을 절제할줄 알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삶 잘 봤습니다
@_paperrenaissance60094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권도윤님. 햇살이 춤추는 아침부터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받습니다^^ 다음 철학자도 기대해주세요. 고맙습니다!
@Time-w5y3 жыл бұрын
잘 보고 갑니다.
@_paperrenaissance60093 жыл бұрын
네, 고맙습니다.~
@valueexplorer2 жыл бұрын
미술관을 관람한 것 같습니다. 영상미 미쳤어용
@_paperrenaissance60092 жыл бұрын
고맙습니다.
@sheballom26553 жыл бұрын
사실 확실성에 관하여에 대한 영상이 없는 이유는 이전 영상들이 그것을 포함하기 때문인가요?
@anapa76664 жыл бұрын
다음 철학자가 기대됩니다!
@_paperrenaissance60094 жыл бұрын
고맙습니다!
@ingueseong91382 жыл бұрын
저도 밑에 있는 분처럼 램지와 비트겐슈타인 색채로 논쟁하는게 이해잘안되는데 설명해주실수있나요?
@dduunn66053 жыл бұрын
진짜 문제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며 살고있는 바로 지금 우리들의 서툰 태도는 아닐까요라는 말이 와닿는데 한편으로 또 다른 의문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문제가 없다면 답은 없는 것인가? 문제가 있다면 답은 있는 것인가? 답이 없다면 문제가 없는 것인가? 답이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문제도 없고 답도 없다면 탐구는 이루어질 수 있는가? 문제도 있고 답도 있기 때문에 탐구는 이루어지는가? 무문관 같은 느낌이 드네요…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언어가 주는 인간의 한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해야한다라는 말이 한편으로는 논리철학논고로서의 내용를 바탕으로 하는 말이 아닌 인간이 가지고 바라봐야 할 하나의 태도로서의 언어로 들리는 것 같네요. 르네상스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영상 잘봤습니다!
@_paperrenaissance60093 жыл бұрын
짧은 동영상 안에서 난해하고 미묘한 문제에 접근하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팟빵에서 두철수 방송을 참고하시면 작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Maybe-Ch3 жыл бұрын
풍경 스케치!
@Jay-jz6dt4 жыл бұрын
비트겐슈타인과 램지의 논쟁 부분 설명이 많이 간소화 된 것 같아 이해하기 어렵네요ㅠㅠ 색채 논쟁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leopold01062 жыл бұрын
전에 좋은 글을 읽어 그대로 옮깁니다 ------------------- 『논리철학논고』에 따르면 요소명제들은 서로 모순될 수 없고, 논리적으로 독립적입니다. 즉 한 요소명제로부터 곧바로 다른 요소명제를 추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색깔 배제 문제는 이런 『논고』의 주장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사례로 제시됩니다. 우리 상식에 비추어봤을 때 한 대상이 파란색인 동시에 빨간색일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얼룩말처럼 어떤 부분은 하얗고 어떤 부분은 검은 대상을 생각하거나, 카멜레온처럼 색깔이 바뀌는 사물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사물의 동일한 부분이 동일한 시점에서 검으면서 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례를 배제하기 위해 자그마한 점 같은 것을 생각해봅시다.) 이는 다음의 두 명제가 동시에 참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1) 점 A는 시점 t에서 초록색이다. (2) 점 A는 시점 t에서 파란색이다. 『논리철학논고』의 관점에서 봤을 때 (1)과 (2)는 모두 요소명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두 명제는 마치 서로를 '논리적으로' 배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둘 중 하나가 참이면 나머지 하나는 반드시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1)이나 (2)가 요소명제가 아님을 보이거나, 『논고』의 주장을 수정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가 비트겐슈타인으로 하여금 철학적 입장을 선회하게끔 한 요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문헌은 대략 다음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Wittgenstein, L. (1929), "Some Remarks on Logical Form", Proceedings of Aristotelian Society, Supplementary Volumes, vol. 9, 162-171. 박정일(2004), 「비트겐슈타인은 왜 『논고』를 포기했는가?」, 『논리연구』, 제7권 제2호, 71-104. 이승종(2014), 『비트겐슈타인이 살아있다면』, 문학과지성사, 2014. 그 외 자료: blog.naver.com/pried02/220581637516 blog.naver.com/pried02/220582767881 blog.naver.com/wndyd75/221492514842 이 외에도 "Color-exclusion problem"을 검색하시면 관련 논문들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 출처: m.blog.naver.com/minecraft632/222613154589 이 블로그의 댓글입니다.
@infoview44 жыл бұрын
페이퍼님은 철학적 개념을 체계적으로 파지하실 때 장소법(method of loci) 같은 기억법을 활용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