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키무티 썬킴님이 부잣집에 사신거라면 이해되는데 경기도권은 1990년대가들어와서 가스보일러가 많이 생긴걸로기억해요
@seonjouyoun765710 ай бұрын
80년대 초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대부분 연탄 보일러 였어요. 80년 후반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한다고 차츰 가스보일러로 교체해 나갔던거 같구요. 그땐 집집마다 김장철이 오면 연탄도 몇백장씩 함께 주문하곤 한 기억이 나요. 눈 오면 길 미끄럽지 말라고 길 위에 다 쓴 연탄재 뿌려두는 센스도 있었고..
@ok.kr-sun10 ай бұрын
@@드키무티 1997년 IMF때 서울 강동 암사동 5층 아파트 단지에 사러 갔는데 전 동이 다 연탄이었음. 나는 살데를 찾는거라 안샀고 같이간 친구는 가게 접으며 남은 돈으로 전세끼고 사서 훗날 대박남.
@user-hz1vs6cy3f10 ай бұрын
이거 왜 고정ㅋㅋㅋ 서울은 연탄 안 쓴데 많아요. 기름으로 온돌 돌리기도 했고 어릴 때 부모님이 주유소에 배달 전화하면 집 기름통에 넣어주고 갔던게 기억남. 또 도시가스는 아니고 개별 가스 탱크로 온돌 돌리기도 하고.
@HoonchungSong8 ай бұрын
썬김 얼굴만 나오면 무조건구독.. 열공하고 열심히 듣고 나를 채워주네요
@jaeholee38162 ай бұрын
어릴때 콩을 삶아서 커다란 대야에 넣고 아랫목에 놓고 솜이불로 덮어 놓고 이걸로 메주를 만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oceanbreezehj10 ай бұрын
썬킴 나랑 나이 같은데, 썬킴은 진짜 진짜 부잣집 아들이었구나 동파이프랑 민속장판이라니..... 당시 굉장히 부잣집이나 민속장판깔고,동파이프였음 우리집은 연탄보일러였어 그리고 내친구들 집은 거의다 아궁이였구 소키우는 집은 아궁이에 불지피면서 그 아궁이에 쇠죽끓이고 그랬음
@강다니얼10 ай бұрын
썬킴 아재는 젊은척 오지게함.연탄세대임.
@류재근-f4g10 ай бұрын
농담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진지함.😢
@김민선-w4b10 ай бұрын
ㅋ 저 서울. 강남주공아파트살았는데90년대초엔 연탄보일러였어요 집안에 있는게아니라. 복도에있었습니다. 그땐 소화전이없었거든요 중간에 가스보일러로 교체됐던 기억이 있습니다
@ttttaaaa273 ай бұрын
83인데 어릴 때 시골 살았어서 아궁이 있었고 리모델링해서 연탄보일러로 바꿨어요. 4학년 때 도시로 이사 나오니 기름인지 가스인지 모르겠지만 보일러 있더라구요? 저는 다 경험해봤네요 지금은 해외살아서 거실은 냉온풍기 있고 방은 전기히터 틀고 물주머니 끼고 자요ㅋㅋ 역시 난방은 한국이 최고죠.
@kamchankang35885 ай бұрын
빼치카는 8ㅇ년대에도 있었음. 그리고 토탄, 흙, 물로 개어서 불을 때는데 밖에서 때는 거예요. 엄청 크거든요. 소대당 1개씩임. 빼치카 벽이 달구어지므로 엄청 따듯합니다. 벽에는 빨래, 양말, 방한화를 올려 놓습니다. 라면은 바깥에 아긍이에 반합을 넣어서 끌여먹습니다. 꿀맛. 그리고 빼담이아니라 빼당입니다.
에고ㅠ 우리 편집장님 감기 걸리셨나요 😢😭🙏 (마스크 넘 이쁘지만) 얼른 낫고 민낯을 보여 주시기를요...청취율 조사 전화 꼭 받고 싶어요!!!!
@zapzisa10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청룡의검10 ай бұрын
잘봤습니다 썬킴 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이강민잡지사님 썬킴 쌤 감기조심하세요^^
@joonyoon5510 ай бұрын
70년대 군대에만 뻬치카가 있었던게 아니에요 제가 93~95년 포천 5공병여단에서 소대장 생활을 했는데 자대 가보니 중대내부반(현재 생활관)이 뻬치카 난방이었고 그래서 빼당이 있었어요. 대신 5군단 내 다른 부대에 파견 가서 막사 현대화 작업을 해서 온수 보일러와 온돌 파이프를 설치해줬지요 결국 94년 돼서야 저희 부대도 현대화 작업을 했어요.
@뚜둥이-i9j10 ай бұрын
너무재밌어요 중갸중간 재밌게받아치시는 스킬~ 매일듣네요~~
@MAY-ny4cy10 ай бұрын
잡지사 최고❤❤❤
@kingeast8010 ай бұрын
요즘에 미국에는 코로나 시대(?) 이후로 우리나라에서처럼 집 안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가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와 더불어 온돌에 대한 부분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도 하구요~^^ K-보일러회사 관계자 분들~^^ 이때 미국에 진출할 좋은 기회입니다!^^ 이강민 편집장님 건강 유의하시고, 힘내세요~^^
@tlopsol10 ай бұрын
뜨끈한 이불 속 귤까먹기는 못 참지!
@황재민-c3f10 ай бұрын
맞아!
@유수민-z8b10 ай бұрын
ㅇㅈ
@motah72526 ай бұрын
빼당은 상병중고참 혼자 했습니다. 점호열외라서. 저녁에 한번 탄 넣으면 밤새 손볼일 없죠.
@zapzisa10 ай бұрын
00:20 썬킴의 청취율조사전화 특강 ☎️ 02:16 동북공정 파훼법 04:05 모두를 위한 K-난방의 원리 06:53 코펜하겐도 사랑한 온돌 🇩🇰 10:33 고구려 온돌과 자세의 심리학 13:22 선교사들이 바라본 온돌 15:22 거리두기의 원조 아자방 온돌 (亞) 16:49 보일러 아버지의 온돌 사랑 19:29 마포 아파트의 전설ㅋㅋㅋ 🐀 22:22 라디에이이터와 퍼니스(furnace) 24:37 러시아의 페치카 26:22 오늘의 결론(?)
@annepark1234510 ай бұрын
ㅋㅋㅋㅋ청취율조사전화 특강!😂👍👍
@ssunny312710 ай бұрын
자세의 심리학~ 재밌네요^^
@나가진것감사10 ай бұрын
아버지가 아랫목에 주무시면 안돼요!! 발을 아랫목으로 두고 머리를 윗목으로 나란히~~ 아버지 퇴근전엔 뚜껑있는 스덴 식기에 밥담아서 아랫목에 묻어놓고 아침엔 늦잠을 못자요 구들이 식기시작해서
@Mirandanz9 ай бұрын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넘 유익한 채널이네요~ 구독하고 갑니다! 썬킴쌤 ebs 에서 강의하실 때부터 팬이에요 ㅎ ㅎ
@hsg993410 ай бұрын
여기에도 전화오면 잡지사 보고 듣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데 아쉽네요 (LA 인근 거주..) :p
@jungmunkim601110 ай бұрын
어릴적 저희집도 아파트였는데 연탄보일러였어요. 근데 방만 난방이 되고 거실은 난방이 안되서 거실엔 따로 연탄난로 피웠고요^^
@heavens4u7188 ай бұрын
91군번인데 제대할때 까지도 빼치카 사용했어요
@매니아썬3 ай бұрын
❤❤❤❤
@지식보단지혜를6 ай бұрын
선킴님 저보다 어리신기봐요. 아님 서울 강남에서 사셨는지. 전 서울 수유리에서 태어나서 10살부터 상계동 살았는데 고등학교까지 연탄보일러 였어요. 참고로 전 52세입니다
@Domestic_egg10 ай бұрын
썬킴 없으면 내 이어폰이 할 일이 없다.
@YS리치보이2 ай бұрын
90년 중반에도 빼찌카가 있었어요
@월암-x7i9 ай бұрын
온돌은 약 만년전 홍산문명 발굴지에서도 나왔다고 합니다.. 옥저 훨씬 이전...
@troymin422610 ай бұрын
썬킴이랑 동갑인데 유치원 들어가기 전, 집이 아파트촌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단독주택에 살 때는 당연히 연탄을 썼고 아궁이도 있었다.[73-74년 미아리, 74-76년 석관동] 62년생인 외삼촌이 군대에서 빼치카에 라면 끓여먹던 얘기를 해줬으니 80년대에도 군대는 빼치카로 난방을 했다.
연탄가스 중독은 보일러관 없이 연탄의 열기가 직접 아궁이로 들어가다보니 바닥에 금간곳이 있으면 가스가 올라와서 중독이 된듯.
@한차희-z1l10 ай бұрын
난 아궁이 세대입니다 그것도 나무 때는 아궁이요 ㅋㅋ
@종로너구리-r4c10 ай бұрын
윗목에 할머니들 허리ㅡ찌짐 너무 뜨거워 장판도 탐 여름엔 어찌했을까 요리는 가스로 하고 소여물만 솥으로 했는데 여름엔 어찌 했나 기억이😢😢😢
@김미화-x1z5 ай бұрын
여보세요 썬킴입니다. 뭐라고요 썬킴입니다 . 썬킴입니다 ㅋㅋㅋ
@e문희10 ай бұрын
ㅎㅎㅎ 예전에 7사단 에서 빼치카 때문에 따뜻하게 겨울을 보냈는데
@박철웅-m9x5 ай бұрын
88년도에도 군대에 페치카 있어어요
@g2v47310 ай бұрын
혹시 마산 마포아파트 살았는데 같은 브랜드인가요? 아궁이가 있었던거 같고 방이 너무 지글지글 끓어서 장판이 군데군데 탔어요
@스위밍S4 күн бұрын
군대 뻬치카는 60~70년대가 아니고 90년대 후반까지 있었습니다. 제가 강원도 전방에서 군생활 한 91군번이었는데 당시 빼치카에서 라면 끓여 먹던 기억이 납니다. 제대 몇년 후 막사 개선공사로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 후방이면 2000년까지 사용하지 않았을지,,,,
@absikemen228210 ай бұрын
@18:01 너무 많이 아셔서 조금 혼동하신 거 같네요. 그 당시에는 오쿠라 호텔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동경의 제국호텔이 1922년 완공이 되는데 그 설계를 맡아 1916년 동경을 방문했을 때 오쿠라 씨의 사저 정원에 옮겨진 자선당 (조선관으로 개명)에서 온돌을 체험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자선당은 기단과 주춧돌만 남고 소실되었고, 1962년에 그 주변에 오쿠라 호텔이 지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1995년에 반환되었던 기단과 주춧돌은 1999년에 복원된 자선당에는 쓰이지는 못하고 별도로 경복궁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suekim31595 күн бұрын
30 년 만에 한국을 가서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으려고 나무의자에 앉았는데, 뜨끈뜨끈! 깜짝 놀랬어요! 우리 집에 가지고 오고 싶었어요. 미국 살아요.
@aialohbigeenohsee10 ай бұрын
저 87년생인데 아궁이에 연탄 연료 사용했어요 ㅋㅋㅋㅋ 서울 방학동 출신 입니다 ㅋㅋㅋ 9살때까지 살았어요 ㅋㅋ
@kndol10 ай бұрын
청취율조사는 수도권만 한다면서요?
@아스피린-f1o4 күн бұрын
칠불사??? 음??? 명.. 이... 매화나무??
@영소용3 ай бұрын
95 군번도 홍천에서 빼치카 였습니다
@cryingbug13410 ай бұрын
아랫목과 웃목 사이에 골디락스존에 있다. 한국인의 생명력은 이곳에서 생래하였닼ㅋㅋ
@짱-n2s10 ай бұрын
아닌게 아니라. 02전화 무지 옵니다. 청취률전화가 아니고. 총선전 여론조사전화..ㅠㅠ
@1실개천10 ай бұрын
빼찌카 심지어 88년에도 강원도 양구 모모부대에서는 사용했었답니다 건조해서 감기걸리는 사병들 많았었구요
@joonyoon5510 ай бұрын
88년은요 무슨…제가 93~95년 5공병여단 소대장이었는데 그때 저희 부대가 뻬치카를 썼고, 포천, 연천, 철원 등 5군단 지역 돌아다니면서 막사 현대화 공사했습니다
@1실개천10 ай бұрын
@@joonyoon55 역시 뻬치카의 생명력이 대단했어요 그러나 좋은 선택이라기 보다는 가성비 겄지요 겨울에는 온돌이 최고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건조해서 감기천국이죠 95년까지도 우리 군대가 많이 추웠어요
@joonyoon5510 ай бұрын
@@1실개천말이 좋아 생명력이지 그때까지 국방비에서 장병들 기본적인 복지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전역 후 얼마 안돼 율곡비리 사건이 터졌는데 율곡사업이란게 노태우 때부터 추진했던 군 전력증강 사업인데 비리가 아주 컸죠. 그것만 아꼈어도...
@매니아썬10 ай бұрын
❤❤❤
@youngjinkim28516 ай бұрын
빼치카88년2월제대하며 먹은 뽀글이 기억남니다.
@D0UB7E_JAM10 ай бұрын
어렸을때 연탄떼고할때 엉덩이 진짜 뜨거운적있음 ㅋ 윗목은 어찌나 차던지 ㅋ
@김영주-c6m9 ай бұрын
학교안에 있었는데 그밑에 물이 흥건하기도...
@chamchican17 ай бұрын
썬킴님 거짓말장이 , 그시절이면 연탄 아궁이고 시골이먼 나무 아궁이 시절인데 ㅎ
@서현맘-g5b10 ай бұрын
곤로
@김현상-l4b10 ай бұрын
빼치카 88년도 군생활할때도 있었어요.
@이동진-y9v9 ай бұрын
온돌은 연료 효율이 쓰래기라... 전국 산림이 아작이남. 뜨끈하니 좋아 무분별하게 퍼져 모든 산이 민둥산이됨. 아마 계속 그대로였으면 근대화되면서 사장되었을 것이지만... 최고의 파트너를 만났으니 바로 보일러를 만나게 되면서 현대식 온돌이 살아남음...
@안성호-r5l9 ай бұрын
96군번인데 이등병때 빼치카있었음 ㅎㅎ
@misookkim54485 ай бұрын
온돌 아랫목에 밥 묻어놓고 아부지 기다렸던 시절
@김찬-e9o10 ай бұрын
페치카는 90년대 까지 있었는데....
@감튀-p9p3 күн бұрын
여기서 칠불사가 나올줄은
@상훈박-j1w10 ай бұрын
뺑당입니다~~
@hannivalsgame-log8 ай бұрын
여름에 밥하면 방이 데워질텐데 이걸 어떻게 해결하죠?
@taejukim10 ай бұрын
갑자기 궁금해진게 있는데 온돌이 밥만드는 열기로 방을 데우는거잖아요 그럼 여름에 밥을 만들때 온돌때문에 집이 더워지나요?
@sun-n1w10 ай бұрын
마당 한쪽에 벽돌과 돌로 쌓아서 흙이나 세멘트로 아궁이(부두막)을 만들어 밥,국등 음식을 만들었답니다.
@@inkstone77 그 중국식이 고구려식인데요... 중국 북방은 과거 고구려 영토였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lissblue12110 ай бұрын
@@inkstone77 방전체를 데웁니다. 구들을 설치안하면 머 겨울엔 온가족이 가마위 위에서 자나요 ? 제가 중국북방에도 잇다고 햇지 중국식이라곤안햇습니다. ㅎㅎㅎ 직접 보셧나요? 전직접 온돌 전체를 설치 뜯어까지 밧습니다 조선식과 한족식 다른게 잇다면 조선식은 아궁이 작고 그위에 작은 가마 2~3개 잇고 구위에 강단이라고 불르는 나무를 놓으며 주방과 방을 함께 쓴다것과 한족들은 대부분 큰가마 하나 작은가마 하나를 놓으며 강단이 없고 주방과 방이 분리되여 잇다는것입니다 물론 반찬을 할때 냄새나 연기를 방지하는데 한족식이 낫고 아기자기 하고 공간을 활용하는것은 조선식이 낫겟죠 ? 한족들은 아직도 집에선 신을 신고 다니고 구들 높아 올라갈때만 신을 벗는것과 조선식은 집에 들어가는 순간 신을 벗어야기에 온돌은 방에 설치하는게 용이하겟죠 ? 보고 잘알고 말씀하세요 3류티비나 얻어들은 지식으로 나대지 마시구요 ...
@lissblue12110 ай бұрын
@@humanplusscience4449 기원전 108고조선(위만조선)이 한무제한테 멸망한다음 고구려가 잇습니다 .역사 잘참고하세요
@심덕진-p8u4 ай бұрын
85년에도 전방에는 빼치카로 난방했다 석탄과 진흙으로 섞었서 빼당 2명이 돌아가면서 관리했고 빼치카 주위에는 고참 순으로 취침하고 빼치카 열로 라면도 끓여 먹었지 쫄다구는 그 라면 냄새에 잠못드는 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