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ікірлер
@임혜성-z8v
@임혜성-z8v 3 күн бұрын
2년후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견하시듯 한 말씀 놀랍습니다 통찰력 , 지혜로움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화타-m2i
@화타-m2i 6 күн бұрын
교수님, 이 1회 강의 중간쯤에 나오는 "무명"에 '밝을 명' 자는 나오는 게 도덕경에 나오는 '밝을명' 자가 뜻하는 의미를 불교가 차용해서 번역에 이용한 느낌이 듭니다😂 엉뚱한 생각일까요?^^ 검색해 보니, 도덕경 33장에 "자지지'명'", 52장에 "견소왈'명'" 등이 나오네요. 반야심경 번역자들이 도덕경의 이런 '명'을 활용해 '무명'이란 표현을 도출해냈던 듯 추정됩니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번역'의 힘이 부각되었는데, 어떤 분은 "고대 그리스 문헌들이 아랍으로 건너갔었고 그 아랍 문헌들이 7~8차례나 다른 문화권 언어로 번역되어 퍼져나가다 나중에 스페인으로 돌아와 다시 피렌체 산맥을 넘어 유럽으로 재번역되면서 이런 번역과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르네상스가 촉발되었다"더라구요(김ㅇㅇ 교수, 헝가리어로 번역한 분). 불교 경전도 구마라집이 처음 번역할 때 '의역'을 해서 퍼져나갔다가 300여년 후에 현장 스님이 인도 유학 후 '직역'하여 구마라집의 의역을 보완해 보려 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고 7박사 자현스님이 붓다로드 강의에서 밝히시더라구요^😀^ 저는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특정종교엔 경도되지 않았지만 종교엔 젬병인데, 근래 이런저런 강의나 책을 읽다보니 ~~~ 기존 불경을 번역하거나 중국불교 경전을 만들 때, 도덕경과 장자 책에 나오는 용어를 거의 '표절'하다시피 써먹은 흔적이 두드러져 보이구요^😆^
@화타-m2i
@화타-m2i 6 күн бұрын
반야심경이 "관자재보살~"로 시작되기에, '관자재보살'이란 용어는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 유학후 돌아와 기존의 '관세음보살'을 '직역' 방식으로 바꾼 용어라서이고 당시 이세민이 황제이던 시절이라서 이세민의 '세' 자와 피휘 차원에서 따로 만든 용어라서, '반야심경'은 현장 스님이 인도 불교를 중국식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창작한 경전일 거란 추정이 들고 아니더라도 현장 스님이 나름 인도불교를 벗어나 불교의 중국화를 철저히 수행하기 위한 야심적 소명의식으로 '창작'했을 거라 추정됩니다 ^😂^ 역사적으로 반야심경이 인도 쪽에 없다면 현장 스님의 저작으로 봐도 무방하것네요? 현장 스님의 저작이라 밝혔다면, 당시로선 권위도 문제될 여지가 있었을 테구요. 그럴 바엔 저자 미상으로 남겨 신비주의 전략을 택한 듯 추정됩니다 ^😂^
@devsudong
@devsudong 7 күн бұрын
질문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그리고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선도국으로 올라간 예가 아닌지요?
@화타-m2i
@화타-m2i 8 күн бұрын
장자가 느낌으론 알았것지만, "양자 얽힘 현상" 용어가 없던 시절이라 후세에 누군가 용어를 내놓도록 배려했던 거 아닐까요? 장자의 기 개념이 양자역학 이론과 빼박 같아서요 ^^
@rokmc_officer_139
@rokmc_officer_139 8 күн бұрын
대답을 단순히 '과거의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으로 '미래의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을 답해야겠습니다!
@은주-h6k
@은주-h6k 8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화타-m2i
@화타-m2i 8 күн бұрын
교수님, 양자역학 강의를 들었더니~"양자얽힘 현상"이란 개념이 "새끼줄"과 흡사한 아이디어란 느낌이 들던데 엉뚱한 생각은 아니것지요?^^
@화타-m2i
@화타-m2i 9 күн бұрын
17강을 청강하다보오니,,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비극이 이해되는 듯 합니다 ^😊^ 그 정도 차가 있을 뿐이다 하겠구요? ~
@화이-e4w
@화이-e4w 10 күн бұрын
요즘 우리나라 정치 현실같아서 무섭습니다
@BianJinyan
@BianJinyan 11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小马小马-d3h
@小马小马-d3h 11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화타-m2i
@화타-m2i 11 күн бұрын
👏👏👏👏👏👏👏👍👍👍🙏🙏🙏
@choyuncha2171
@choyuncha2171 11 күн бұрын
진짜, 명강의 고맙습니다 ~~~
@화타-m2i
@화타-m2i 12 күн бұрын
'우물안 개구리' 우화는 어쩜 조나라(수도 한단) 무령왕이 호복기사 제도 도입이란 개혁으로 큰 중흥을 이뤘다가 '주부아사' 고사 마냥 한 순간에 굶어죽었던 역사적 사례와 연나라 왕 쾌가 과거 요순의 선양을 본떠 재상 자지에게 선양했다가 자신도 자결로 생을 불행히 마쳤고 자칫 나라가 망할 뻔했던 사례를 비꼬아 우화 형식으로 풍자한 거 아닐까 추정됩니다 ^😙^
@화타-m2i
@화타-m2i 12 күн бұрын
연대기를 잠깐 살펴봤더니, 장자는 bc 286년 사망했고, 한단이 수도였던 조나라의 무령왕은 bc 295년 사망했으며, 연나라 왕 쾌는 bc 314년 사망으로 나오네요. 즉 83세까지 장수한 걸로 알려진 장자가 60~70대일 때 당시 중원의 최대 스캔들이었을 조나라 무령왕의 주부아사 사건과 연나라 왕 쾌의 (요순을 흉내낸) 선양과 자결 그리고 제나라 선왕의 침입으로 나라가 멸망에 이를 뻔했던 역사적 사건들은 장자의 입장에서도 (우화 형식의) 얘기꺼리의 좋은 소재가 아니었을까요?^^
@화타-m2i
@화타-m2i 12 күн бұрын
교수님의 ebs 현대철학자 노자(도덕경) 강의 및 이 장자 강의 등을 몇 차례 반복해 듣다보오니, '킨들버거의 함정' 이론과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론 등이 오버랩되어 매우 흥미롭네요, 교수님! 1929년 세계대공황을 분석해 나온 '킨들버거 함정 이론'은 "신흥강자가 기존 강자의 지위를 차지하고나서 '신흥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 했을 때 (대공황 등) 재앙을 맞는다"는 취지의 국제정치경제학 분석틀이고, 1차세계대전을 전후하여 기성 초강대국이던 영국을 급속히 대체하여 신생 초강대국이 된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의 역할(기존의 영국이 해오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한 탓에 세계경제대공황을 맞았다는 취지잖아요?~ 일종의 졸부 이론이 그대로 국제관계에도 적용된다는 설명 같아 놀랍기 그지 없구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집필한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주요 동인(動因)으로 이해관계, 두려움, 명예 세 가지를 꼽았는데, 그레이엄 앨리슨 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은 《예정된 전쟁》에서 “지난 500년간 신흥 세력과 지배 세력의 충돌 사례 16개 중 12개가 전쟁으로 번졌다”며 미·중 관계를 ‘투키디데스의 함정’ 17번째 사례로 봤다고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작금의 국제정세에서 ‘투키디데스 함정’뿐만 아니라 ‘킨들버거 함정’까지 걱정한다고 하데요. 찰스 킨들버거 교수는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에서 기존 패권국 영국의 자리를 차지한 미국이 신흥 리더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 대공황이라는 재앙이 생겼다고 분석했다는 게죠^^ 투키디데스는 “강자는 할 수 있는(can) 일을 하지만, 약자는 그들이 해야만 하는(must) 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네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약소국은 원치 않아도 감내해야만 한다는 취지구요^^ 노자. 공자. 장자. 맹자 등이 나와 활동했던 시대는 ~ 주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부터 서쪽의 견융족과의 갈등은 필연적이었을 테고, 주유왕 때 견융족의 침입은 유왕이나 포사와는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한판 승부는 불가피했을 테구요. 교수님께서도 몇 차례 언급하신 바와 같이 주나라 재상을 겸하고있는 신생강국 정나라와 기존 종주국 주나라와의 갈등도 필연적이었다고 봅니다. 다만 제반 스크레치가 도화선 역할을 한 셈이었겠지만요. 춘추시대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론의 꽃은 제환공, 진헌공, 진목공 시기의 국제정세로 추정됩니다. BC 659년 제환공이 막내 여동생인 애강을 bc 660년 일어난 노나라의 노민공 시해 사건에 연루된 책임을 물어 제나라로 압송하여 '참수형'에 처하고 '효수'했다가 bc 658년 5월에서야 노희공의 간청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안장시키도록 했다는 역사 기록이 있고, 제환공이 '수조'를 시켜 애강이 목을 매서 자결토록 했다는 열국지 기사도 있어 상반되기에 판단이 헷갈렸었는데 '참수형에 처하고 효수했다'는 설이 102% 신빙성이 있어 보이구요^😭^ BC 659년엔 위나라. 형나라가 망했다가 다시 제환공이 세워줬다는 제환공의 '공치사'로 기록된 바 있지만, 실은 그 모든 사건의 발단 배후에 제환공의 큰누나인 선강과 둘째 누나인 문강 그리고 막내여동생인 애강 등 세 누이의 바람끼와 허영심이 '치맛바람'이 되어 중원의 여러나라 군위 다툼의 원인이 된 면도 적지 않았고, 거기에 제환공의 선군이자 큰형인 제양공 제아의 과실도 컸고, 문제아였던 선강의 아들 삭(위혜공)을 제나라가 키워준 탓에 중원의 질서가 '개판 5분전'이 된 측면도 없지 않아 제환공으로서도 '대의멸친' 뭐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줘서 패자로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과시할 필요성도 있어 보였고, '앞으로 G랄하면 이렇게 D진다'는 걸 여타 제후들에게 특히 '진헌공'에게 미리 시범케이스로 보여주는 광고효과도 노린 듯 추정되고, 향후 ( 제환공의 사후에도) 제나라 패권의 공고화를 노린 대계로 진헌공을 제후동맹군을 꾸려 미리 토벌하여 제거하거나 제어하려고 '규구의 회맹'이란 큰 그림을 그렸었던 듯 추정됩니다^😢^ 제환공이 '애강'을 압송하여 참수형에 처하고 시신을 노나라에 보내 '효수'까지 시킨 '대의멸친' 전략은 앞서 있었던 위나라 석작에게 배운 셈이지만 석작이 아들 석후까지 죽이면서 군후로 세운 '위선공'이 그 본인의 개차반 인성은 물론 백성보다 학을 앞세운 '위의공' 등등을 돌아볼 때 대부 석작의 '대의멸친'은 포장은 그럴 듯 하나 '객기의 끝판왕'이 아니었나 싶구요. 하긴 석작에게 그런 훗날까지 내다봐야할 책임까진 지울 수도 없고 다 "정치인의 삶은 운명"이란 권양숙 여사님의 표현이 맞지 않나 싶네요^😢^ 저는 진헌공이 bc 656년 태자 신생을 폐하고 여희를 총애하여 혜제를 태자로 세우는 등 말년에 노망을 한 듯 똥뽈을 차 제끼는 처사에 대해 일반론적으론 '여희교계'로 폄훼하고 있으나(열국지, 장자, 한비자 등 다 공히), 저는 당시 중원의 국제정치 역학관계로 분석해볼 때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론상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 다 일어난 게지 여희교계나 광대 시 등 몇몇 간신들의 간계 탓도 아니고~ 진헌공이 제환공의 패권에 강력 도전하면서 충돌한, 즉 작금의 미중패권경쟁과 닮았었다고 추정됩니다 ^🤣^ '진목공'이 진헌공에겐 개인적으론 사위이었지만 당시 그런 건 별 고려사항이 아니었기에 무섭게 치고올라오던 '진목공'의 세를 진헌공이 신경쓰지 않을 수 없어 '가도벌괵 작전'(bc 655년)으로 진목공이 괵과 우나라를 먹어치우기 전에 먼저 진헌공이 낼름 먹어치운 게지 우공이 멍청해서도 아니고 벽옥들과 말 4필을 탐해서도 아니고 대부 궁지기의 충언을 무시했었기 때문만도 아니라고 추정됩니다^😂^ 진헌공은 괵. 우 나라 땅을 얻었지만, 진목공은 그 덕분에 백리해를 얻었고 1+1으로 건숙을 얻었으니 진목공이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랄까요?^😂^ BC 659년 전후 10여년 사이에 중원의 패권경쟁 구도가 치열했었고, 역사서엔 드러나지 않는 실체를 파악하는 공부의 재미를 느끼려면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론으로 행간을 들여다볼 필요가 커보이더라구요^😁^ 외람되지만, 교수님의 명강의들을 들으면서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론 등 국제정치학 이론들을 보조 분석틀로 삼아 청독하다보니 동서고금이 너무 흡사해 깜짝깜짝 놀라고 있답니다^^ 오늘 강의에도 크게 감사드립니다 🙇‍♀️😊
@화타-m2i
@화타-m2i 15 күн бұрын
"배운 사람이 그러먼 쓴다냐?" 많이 듣던 얘기네요😅😂
@화타-m2i
@화타-m2i 16 күн бұры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