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ікірлер
@jyy1163
@jyy1163 3 сағат бұрын
옛날 할아버지에게 들은 도깨비는 빗자루에 피 묻으면 돗까비
@lfktrkrzkx8162
@lfktrkrzkx8162 9 сағат бұрын
일본 해석이 맞는거 같은데?
@skj4409
@skj4409 9 сағат бұрын
주적개념이 여진족에만 머물러있으니 그런거지
@OfficialMINIm
@OfficialMINIm 10 сағат бұрын
환도라는 무기는 전투용 무기보다는 호신용무기로 쓰인거죠. 원래 보병들은 실전무기로 창류 무기를 썼었고, 우리 민족은 활을 효율적으로 잘쓰고 선호했기때문에 검/도 를 실전무기로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권총으로 보면 됩니다. 실전용으론 효율성이 떨어져도 작고 휴대하기 편해서 호신용 아니면 비상용무기로 딱인거죠. 옛날에 다들 칼들고 싸웠다는건 착각입니다. 대부분 창류, 원거리 무기 등을 써서 집단체로 싸웠습니다.
@salm2000
@salm2000 11 сағат бұрын
오니도 도깨비 가운데 하나였겠죠. 일단 기와에 나온 도깨비는 대부분 뿔이 있죠. 그것도 두 개. 도깨비를 한자로 독족(獨足) 또는 독각(獨角, 獨脚)이라 했으니, 외다리 도깨비나 외뿔 도깨비도 있을 법합니다. 지역마다 도깨비가 다른 걸 봐서는 동영상에 나온 모든 사례가 도깨비라고 생각합니다.
@abcdefg-kl4be
@abcdefg-kl4be 17 сағат бұрын
K2소총만 있었어도 임진왜란 안졌음
@뽀롱뽀롱-i7h
@뽀롱뽀롱-i7h 20 сағат бұрын
도깨비----> 공유
@JacksonJoeRangee
@JacksonJoeRangee 20 сағат бұрын
적어도 현대 기준으로 중동에서 일어난 깽판에는 대부분 유대인이 끼어있긴 해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은 NPT 임의로 무시하고 핵무기 만들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촌 세워서 사실상 영토 잠식하면서 침략중이라 UN뿐만 아니라 동맹국 미국에서도 국제법 위반 문제삼는데도 자본으로 로비해서 양아치짓 다 제재 없이 넘어가고 있고 미국이 흐린눈으로 내로남불 하고있는 대표적인 문제덩어리고
@JacksonJoeRangee
@JacksonJoeRangee 20 сағат бұрын
다른나라가 똑같이 NPT 임의탈퇴하고 핵만들거나 군사력 부족한 지역에 말뚝박고 원주민 쫓아내면서 땅 먹으면 미국이 그냥 안 둘텐데ㅋㅋ 돈이 좋긴 좋다
@이름이뭐에요-d1e
@이름이뭐에요-d1e 23 сағат бұрын
요새 그 망신스러운 삼지창에 포졸복장만 안나와도 얼마나 나은지 모르겠다
@성민기억법영어회화
@성민기억법영어회화 Күн бұрын
몇십년전 용의 죽은 시체를 중국신문에 게재된 적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이런것도 다 잊혀진다오. 우리 역사엔 의상대사가 창건한 영주부석사란 곳에 아직도 영적으로 존재한다하오. 관룡스님이란(옥천사) 비구니 스님이 만난 이야기를 유튜브에 남기고 있다오.
@성민기억법영어회화
@성민기억법영어회화 Күн бұрын
보슈, 불쾌한 피해망상을 또한번 불러내지 맙시다. 오니는 파묘에 나온 왜나라 도깨비인데 우리 동화책에서도 오니모양은 별로 본적이 없소. 말이 나온김에 우리의 고유요괴 들도 알아봇시다. 인터넷 들어가 보슈 꽨나 많은 요괴들이 있다오. 실제 체험담포함................
@성민기억법영어회화
@성민기억법영어회화 Күн бұрын
그슨대, 그슨새, 어둑시니.... 실제 만난 애기는 "돌비 공포라디오"라는 유튜브물에 자서히 실려있다오. 세상엔 별것들이 실제로 존재한다오.
@기억속내일
@기억속내일 Күн бұрын
비형 자체가… 출신이 모호한 것과, 이름 부터가 생소함. 도깨비 설화는 단순 물건이나, 지역, 자연 현상이 의인화 된 것과 다른… 양상을 함께 보임. 일단 그들은 사람을 김씨라고 불렀음. 딱 외국인들이이 할만한 일임. 그리고 씨름을 좋아 했고, 벽화에도 서역인과 씨름하는 게 나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건은… 농사를 배워 갔음. 귀신이 농사 기술에 관심이 있다고? 그리고 도깨비의 소원과 관련 된 이야기는 서역의 소원을 들어 주는 지니와 닮아 있음. 당시 불교의 전파등으로, 우리도 서역은 신비로운 곳이고, 그들의 예술 영향.. 사천왕 같은 신상이 들어오며, 인물이 쉽게 신화적 요소를 가지게 된 것 같음.
@eonewe
@eonewe Күн бұрын
12:14 여자네요
@ventusaquilovolarecorvusmi3430
@ventusaquilovolarecorvusmi3430 Күн бұрын
질문 있습니다. 판타지 사전인데 옛날 무기소개가 더 많이 뜨네요.
@무한자유-p1q
@무한자유-p1q Күн бұрын
건국후 200년간 약해짐 칼도 창도 짧아짐
@goodwind126
@goodwind126 Күн бұрын
한국 도깨비는 지금 써먹으러고 해도 대표적인 이미지가 없으니 참 아쉬울 따름이네요. 설화 등 알려진 이야기를 종합해서 정형화된 이미지를 만들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박진우-c9p4g
@박진우-c9p4g Күн бұрын
신도를 왜자꾸 신토라고 하는지
@user-cl3sz7et5z
@user-cl3sz7et5z Күн бұрын
실제 도깨비는 나의 모습처럼 똑같습니다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Күн бұрын
또한 도깨비 뿔이 오니를 차용한거다, 도깨비 방망이도 틀렸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선생님 신화 도서관, 까마구 둥지님이 흥미로운 반론 증거를 가지고 계시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뿔이 돗아난 존재를 도깨비라고 부른다거나 도깨비 방망이를 언급한다거나 유물에선 그 유명한 백제도깨비문양 벽돌이 있죠 몸통, 배, 가슴, 팔, 다리 있고 뿔있는 존재가 있죠 혹자는 그런 유물이 도깨비가 아닌 야차라고도 하지만 야차라면 이 또한 야차가 아닌 도깨비라고 부르는 역사 사료도 있기에 속단할수 없다고 하죠 애당초 한국이 너무 한국의 오리지널만 고수하다 보니 원래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걸 모르고 그냥 왜색이라고 무작정 지우는 실수를 저지른다고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이 의견에는 동의하고요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Күн бұрын
개인적으로 이 주제에 흥미를 가져 각종 정보를 모으고 있는데 이선생님의 신화 도서관이라고 유명한 블로그 주인장이 계시는데 도깨비란 정령의 일종이 아닐까라고 하시더군요 예컨데 살라맨더, 운디네, 님프, 노움 각 4대속성의 정령이고 모습도 다르지만 정령이라고 퉁치듯 한국의 도깨비는 자연 형태, 수인, 인간, 괴물형 각양각색인데 도깨비라 퉁치죠 즉, 기이한 절령 비스무리한 존재들을 전부 싸잡아서 도깨비라고 부른다는거죠
@Orang_Fantasy
@Orang_Fantasy Күн бұрын
오 맞습니다. 저도 딱 그렇게 생각합니다!
@sg3082
@sg3082 Күн бұрын
이번에 귀순한 왜인(항왜) 중에는 검을 잘 쓰는 자도 있고 창을 잘 쓰는 자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검술이 전해 오지 않았는데, 이는 만세에 유익한 일이다. -『선조실록』 1594년 7월 ​ 훈련대장 유혁연이 말하기를, "검술은 천하 어디에도 있지만 일본 것이 최고입니다. 우리 나라는 홀로 전하고 익히는 자가 없어 신의 마음이 항상 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신의 아랫사람(김체건) 중에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을 보내 검을 배우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보내라" 하였다. ​-『승정원일기』 숙종 5년(1679) 7월 27일 칼을 쓰는 묘리는 왜인들이 최고이다. 왜의 달인인 아이스 히사타다(愛洲移香)의 검술을 카게류(陰流)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군교(軍校)인 김체건이 일찍이 사신을 따라 일본에 들어갔다가 그 방법을 배워 와서 지금까지 유전하니, 이른바 왜검이라는 검술이다. ​-『병학지남연의』 ​ 이미 칼을 빼들고 접전해 와서 갑자기 헤어날 수가 없었다. 이때 명의 이여송이 인솔하던 군사는 모두 북방의 기마병으로 화기가 없고, 짧고 무딘 칼을 가지고 있었다. 적의 보병들은 모두 3, 4척이나 되는 긴 칼(노다치로 추정)을 가졌는데 날카롭기가 비길 데 없었다. 그들과 충돌하여 싸울 적에 좌우로 후려치니 사람과 말이 모두 쓰러져 그들의 예봉을 감당할 자가 없었다. ​-유성룡 『징비록』 벽제관 전투 (명나라 기병대가 칼든 왜군 보병들의 기습에 대패함) ​ 병조가 아뢰기를 "칼을 잘 쓰는 것이 단병전에서의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과 절강성은 이것으로써 천하의 강병을 만들었습니다." ​-『인조실록』 1630년 1월 6일 ​ 백광언 등은 적(왜군)이 눈앞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육박해 들어가 도전했는데, 묘시부터 사시에 이르기까지 적병이 잠복하고 나오지 않자 오시에 이르러 아군이 해이해졌다. 이때 왜적이 풀 속에 엎드려 무릎으로 전진해 와 검을 휘두르며 일제히 일어나 아군 가운데로 쳐들어오니, 왼쪽에서 목 베고 오른쪽에서 찍어대고 하여 아군의 전사자가 부지기수였다. 이지시, 백광언, 고부 군수 이광인, 함열 현감 정연 등이 모두 이 전투에서 피살되어 대군의 기세가 꺾였다. -조경남 『난중잡록 임진년 상』 ​ 우리 수군 다섯이 왜나라 소년 검사 한명을 당해내지 못한다. -이순신 『난중일기』 ​ 오랑캐(후금) 군사는 돌격전을 벌여 마구 덤비는 데만 능할 뿐이고 예리한 검을 활용하는 데는 도저히 왜놈만 못하다. -조경남 『난중잡록 정묘년』 항왜(투항한 왜군)들이 칼을 잘 써서 우리 나라 살수를 보고 아이들 놀이와 같다고 하였고, 이들은 칼과 총을 주조하는 법을 안다 하는데 이들 왜인을 어찌하여 머물러 두고 이들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지 아니 하는가? ​-『선조실록』 1594년 8월 2일 비망기로 일렀다. ​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훈련도감에 이르러 배우도록 하라." ​-『선조실록』 1594년 12월 27일 정원에 전교하였다. "전세가 위급한 창졸들간에 단병으로 접전하는 데 있어서는 검술만한 것이 없다. 앞으로는 모든 군사들로 하여금 검술을 익히게 하고, 시재할 때에도 검사를 충분히 뽑도록 해야한다." ​-『선조실록』 1596년 12월 5일 그들(왜군)의 무기는 칼과 총을 제일로 친다. 칼을 찬 자는 반드시 길고 짧은 두 개의 칼을 차서 긴 것은 치거나 찌를 때 사용하고, 짧은 것은 던져서 남이 뜻하지 않은 사이에 맞히면 당장 죽지 않는 자가 없다. ​-신유한 『해유록』 왜군이 칼을 휘두르는 사이에 칼등으로 칼날을 받아쳐서 결국 다치지는 않으니, 그 교묘하게 피하는 기술과 능숙하게 부딪치는 기술은 완연히 백원의검법이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장검(長劍)과 철환(鐵丸) 입니다. 근접 무기가 신묘하여 사람마다 검객이 아닌 자가 없고, 기계의 정밀함도 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철환은 비가 내리듯이 쏟아지고 칼은 숲이 서 있는 것과 같으나, 총을 쓰는 것은 칼을 쓰는 것에 비해 자못 뒤떨어집니다. -정탁 『약포집』 1593년 8월 15일. 명나라 유생 호환에게 보낸 편지 왜나라가 만드는 칼인데 단련이 정교하며 만듦새가 가볍고 예리하니 다른 지방의 칼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검신의 빛나는 광채가 눈을 쏘아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며, 검술은 좌우로 도약 하는데다 기이한 방법으로 공격 의도를 숨기니 눈으로 헤아릴 수 없다. ​-『단도법선』 단도설(单刀说)
@sg3082
@sg3082 Күн бұрын
이번에 귀순한 왜인(항왜) 중에는 검을 잘 쓰는 자도 있고 창을 잘 쓰는 자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검술이 전해 오지 않았는데, 이는 만세에 유익한 일이다. -『선조실록』 1594년 7월 ​ 훈련대장 유혁연이 말하기를, "검술은 천하 어디에도 있지만 일본 것이 최고입니다. 우리 나라는 홀로 전하고 익히는 자가 없어 신의 마음이 항상 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신의 아랫사람(김체건) 중에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을 보내 검을 배우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보내라" 하였다. ​-『승정원일기』 숙종 5년(1679) 7월 27일 칼을 쓰는 묘리는 왜인들이 최고이다. 왜의 달인인 아이스 히사타다(愛洲移香)의 검술을 카게류(陰流)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군교(軍校)인 김체건이 일찍이 사신을 따라 일본에 들어갔다가 그 방법을 배워 와서 지금까지 유전하니, 이른바 왜검이라는 검술이다. ​-『병학지남연의』 ​ 이미 칼을 빼들고 접전해 와서 갑자기 헤어날 수가 없었다. 이때 명의 이여송이 인솔하던 군사는 모두 북방의 기마병으로 화기가 없고, 짧고 무딘 칼을 가지고 있었다. 적의 보병들은 모두 3, 4척이나 되는 긴 칼(노다치로 추정)을 가졌는데 날카롭기가 비길 데 없었다. 그들과 충돌하여 싸울 적에 좌우로 후려치니 사람과 말이 모두 쓰러져 그들의 예봉을 감당할 자가 없었다. ​-유성룡 『징비록』 벽제관 전투 (명나라 기병대가 칼든 왜군 보병들의 기습에 대패함) ​ 병조가 아뢰기를 "칼을 잘 쓰는 것이 단병전에서의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과 절강성은 이것으로써 천하의 강병을 만들었습니다." ​-『인조실록』 1630년 1월 6일 ​ 백광언 등은 적(왜군)이 눈앞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육박해 들어가 도전했는데, 묘시부터 사시에 이르기까지 적병이 잠복하고 나오지 않자 오시에 이르러 아군이 해이해졌다. 이때 왜적이 풀 속에 엎드려 무릎으로 전진해 와 검을 휘두르며 일제히 일어나 아군 가운데로 쳐들어오니, 왼쪽에서 목 베고 오른쪽에서 찍어대고 하여 아군의 전사자가 부지기수였다. 이지시, 백광언, 고부 군수 이광인, 함열 현감 정연 등이 모두 이 전투에서 피살되어 대군의 기세가 꺾였다. -조경남 『난중잡록 임진년 상』 ​ 우리 수군 다섯이 왜나라 소년 검사 한명을 당해내지 못한다. -이순신 『난중일기』 ​ 오랑캐(후금) 군사는 돌격전을 벌여 마구 덤비는 데만 능할 뿐이고 예리한 검을 활용하는 데는 도저히 왜놈만 못하다. -조경남 『난중잡록 정묘년』 항왜(투항한 왜군)들이 칼을 잘 써서 우리 나라 살수를 보고 아이들 놀이와 같다고 하였고, 이들은 칼과 총을 주조하는 법을 안다 하는데 이들 왜인을 어찌하여 머물러 두고 이들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지 아니 하는가? ​-『선조실록』 1594년 8월 2일 비망기로 일렀다. ​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훈련도감에 이르러 배우도록 하라." ​-『선조실록』 1594년 12월 27일 정원에 전교하였다. "전세가 위급한 창졸들간에 단병으로 접전하는 데 있어서는 검술만한 것이 없다. 앞으로는 모든 군사들로 하여금 검술을 익히게 하고, 시재할 때에도 검사를 충분히 뽑도록 해야한다." ​-『선조실록』 1596년 12월 5일 그들(왜군)의 무기는 칼과 총을 제일로 친다. 칼을 찬 자는 반드시 길고 짧은 두 개의 칼을 차서 긴 것은 치거나 찌를 때 사용하고, 짧은 것은 던져서 남이 뜻하지 않은 사이에 맞히면 당장 죽지 않는 자가 없다. ​-신유한 『해유록』 왜군이 칼을 휘두르는 사이에 칼등으로 칼날을 받아쳐서 결국 다치지는 않으니, 그 교묘하게 피하는 기술과 능숙하게 부딪치는 기술은 완연히 백원의검법이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장검(長劍)과 철환(鐵丸) 입니다. 근접 무기가 신묘하여 사람마다 검객이 아닌 자가 없고, 기계의 정밀함도 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철환은 비가 내리듯이 쏟아지고 칼은 숲이 서 있는 것과 같으나, 총을 쓰는 것은 칼을 쓰는 것에 비해 자못 뒤떨어집니다. -정탁 『약포집』 1593년 8월 15일. 명나라 유생 호환에게 보낸 편지 왜나라가 만드는 칼인데 단련이 정교하며 만듦새가 가볍고 예리하니 다른 지방의 칼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검신의 빛나는 광채가 눈을 쏘아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며, 검술은 좌우로 도약 하는데다 기이한 방법으로 공격 의도를 숨기니 눈으로 헤아릴 수 없다. ​-『단도법선』 단도설(单刀说)
@남기권-t7q
@남기권-t7q Күн бұрын
인류사에서 신앙은 갖가지 사물에 혼이 깃들어 있다는 만신론에서 시작해, 부족의 수호신을 특정 동ㆍ식물로 삼았다가(이는 나중에 근대에 와서 국화나 국목 등의 형태로 부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를 인격신이 대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다신교적 신앙이 점차로 세를 잃기 시작한 동기 문화 전성기부터는 신의 서열이 정해지고, 끝끝내 지금의 오리엔트 지역인 레반트 일대에서 유일신 신앙이 필요에 의해 자리를 잡고 수백 년을 터를 다진 끝에 꽃 피운 게 아닌가 해요. 우리나라의 뿌리도 이 도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본디는 뭇 것에 붙은 영혼의 잔향 같은 만신론의 말예가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비형랑 설화》의 형태로 탈바꿈한 뒤, 야금술의 기술이 연철이 아니라 강철을 수월하게 생산할 수 있게 된 때로부터 비로소 도깨비라는 이름과 함께 망치로 두들기면 만들어내지 못하는 게 없다는 기술공들에 대한 찬사가 만들어져 덮어 씌워진 게 아닌가 싶어요. 즉, 《비형랑 설화》도 이미 신라의 사회가 선진 기술로 분류된 여러 기술을 다시금 활발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 6세기 무렵에 와서야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처용은 역병의 신이라는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는 일종의 박수 역할을 그 자신의 설화에서 보이는데, 집에 든 역신을 뉘우치게 하여 쫓아냄은 물론, 벽사로서 그 붉은 낯빛에 부리부리한 인상을 보면 들어가지 않겠다는 약조까지 받아내기에 이릅니다. 이는 마침 신라가 어지러워지는 시점에 일어난 일이므로, 처용으로 대표되는 외부의 무장 세력이 신라를 침공해 들어온 작자들을 물리쳤다고 봐야 하겠지요. 전 이야기를 이리저리 만들어보길 즐기는 자라, 이게 혹시 만들어지기는 헌강왕 때의 상황과 맞물려서 그럴듯하게 짜맞추었으나, 실은 우징과 경응 부자의 집권 즈음에 있었던 장보고의 위세가 염장 세력에 의해 꺾이고도 오래도록 살아 남았기에 이런 설화를 만들어 유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헌강왕 시기의 기록엔 이렇다 할 전쟁 기록이 없는 편이니까요.
@남기권-t7q
@남기권-t7q Күн бұрын
도깨비 감투는 다른 곳에서 만들어져, 신묘한 기술과 한 세트로 도매급 처리를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감투라는 것은,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완장과도 같은 것인데요. 이를 알 수 있는 게 고위직에 올라간 사람을 보고 감투 썼다고 하는 말이죠. 즉, 공을 세워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하더니 사람이 본색을 드러내어 악행을 일삼다가 꼬리가 길어 치죄를 당했다는 흐름입니다. 택지가 호수가 되었더라 하는 급의 전설과 민담 사이의 이야기가 계속 성문법 이전의 법전 구실을 했던 금기로써 전해져 내려온 것이 다른 이야기와 붙어 도깨비 이야기로 둔갑한 것이죠.
@sg3082
@sg3082 Күн бұрын
이번에 귀순한 왜인(항왜) 중에는 검을 잘 쓰는 자도 있고 창을 잘 쓰는 자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검술이 전해 오지 않았는데, 이는 만세에 유익한 일이다. -『선조실록』 1594년 7월 ​ 훈련대장 유혁연이 말하기를, "검술은 천하 어디에도 있지만 일본 것이 최고입니다. 우리 나라는 홀로 전하고 익히는 자가 없어 신의 마음이 항상 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신의 아랫사람(김체건) 중에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을 보내 검을 배우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보내라" 하였다. ​-『승정원일기』 숙종 5년(1679) 7월 27일 칼을 쓰는 묘리는 왜인들이 최고이다. 왜의 달인인 아이스 히사타다(愛洲移香)의 검술을 카게류(陰流)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군교(軍校)인 김체건이 일찍이 사신을 따라 일본에 들어갔다가 그 방법을 배워 와서 지금까지 유전하니, 이른바 왜검이라는 검술이다. ​-『병학지남연의』 ​ 이미 칼을 빼들고 접전해 와서 갑자기 헤어날 수가 없었다. 이때 명의 이여송이 인솔하던 군사는 모두 북방의 기마병으로 화기가 없고, 짧고 무딘 칼을 가지고 있었다. 적의 보병들은 모두 3, 4척이나 되는 긴 칼(노다치로 추정)을 가졌는데 날카롭기가 비길 데 없었다. 그들과 충돌하여 싸울 적에 좌우로 후려치니 사람과 말이 모두 쓰러져 그들의 예봉을 감당할 자가 없었다. ​-유성룡 『징비록』 벽제관 전투 (명나라 기병대가 칼든 왜군 보병들의 기습에 대패함) ​ 병조가 아뢰기를 "칼을 잘 쓰는 것이 단병전에서의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과 절강성은 이것으로써 천하의 강병을 만들었습니다." ​-『인조실록』 1630년 1월 6일 ​ 백광언 등은 적(왜군)이 눈앞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육박해 들어가 도전했는데, 묘시부터 사시에 이르기까지 적병이 잠복하고 나오지 않자 오시에 이르러 아군이 해이해졌다. 이때 왜적이 풀 속에 엎드려 무릎으로 전진해 와 검을 휘두르며 일제히 일어나 아군 가운데로 쳐들어오니, 왼쪽에서 목 베고 오른쪽에서 찍어대고 하여 아군의 전사자가 부지기수였다. 이지시, 백광언, 고부 군수 이광인, 함열 현감 정연 등이 모두 이 전투에서 피살되어 대군의 기세가 꺾였다. -조경남 『난중잡록 임진년 상』 ​ 우리 수군 다섯이 왜나라 소년 검사 한명을 당해내지 못한다. -이순신 『난중일기』 ​ 오랑캐(후금) 군사는 돌격전을 벌여 마구 덤비는 데만 능할 뿐이고 예리한 검을 활용하는 데는 도저히 왜놈만 못하다. -조경남 『난중잡록 정묘년』 항왜(투항한 왜군)들이 칼을 잘 써서 우리 나라 살수를 보고 아이들 놀이와 같다고 하였고, 이들은 칼과 총을 주조하는 법을 안다 하는데 이들 왜인을 어찌하여 머물러 두고 이들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지 아니 하는가? ​-『선조실록』 1594년 8월 2일 비망기로 일렀다. ​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훈련도감에 이르러 배우도록 하라." ​-『선조실록』 1594년 12월 27일 정원에 전교하였다. "전세가 위급한 창졸들간에 단병으로 접전하는 데 있어서는 검술만한 것이 없다. 앞으로는 모든 군사들로 하여금 검술을 익히게 하고, 시재할 때에도 검사를 충분히 뽑도록 해야한다." ​-『선조실록』 1596년 12월 5일 그들(왜군)의 무기는 칼과 총을 제일로 친다. 칼을 찬 자는 반드시 길고 짧은 두 개의 칼을 차서 긴 것은 치거나 찌를 때 사용하고, 짧은 것은 던져서 남이 뜻하지 않은 사이에 맞히면 당장 죽지 않는 자가 없다. ​-신유한 『해유록』 왜군이 칼을 휘두르는 사이에 칼등으로 칼날을 받아쳐서 결국 다치지는 않으니, 그 교묘하게 피하는 기술과 능숙하게 부딪치는 기술은 완연히 백원의검법이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장검(長劍)과 철환(鐵丸) 입니다. 근접 무기가 신묘하여 사람마다 검객이 아닌 자가 없고, 기계의 정밀함도 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철환은 비가 내리듯이 쏟아지고 칼은 숲이 서 있는 것과 같으나, 총을 쓰는 것은 칼을 쓰는 것에 비해 자못 뒤떨어집니다. -정탁 『약포집』 1593년 8월 15일. 명나라 유생 호환에게 보낸 편지 왜나라가 만드는 칼인데 단련이 정교하며 만듦새가 가볍고 예리하니 다른 지방의 칼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검신의 빛나는 광채가 눈을 쏘아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며, 검술은 좌우로 도약 하는데다 기이한 방법으로 공격 의도를 숨기니 눈으로 헤아릴 수 없다. ​-『단도법선』 단도설(单刀说)
@alala4290
@alala4290 Күн бұрын
11:30 무작정 화이트워싱이라기에는 분명히 미케네 문명 시절부터 그리스인들은 주변 크레타인 등의 민족들과 구분되는 인도유럽계 도래민족이었고 따라서 인도유럽계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금발벽안 특질이 빈도는 낮을지언정 나타나긴 했습니다. 미케네 인들과 고대 그리스인들 간에는 이미 유전자 분석을 통한 혈통 상의 연속성이 어느 정도 밝혀진 걸로 압니다. 선형문자 B와 후대 그리스어의 비교를 통해서 문화적, 민족적 연속성 또한 증명이 되는 부분이고요. 현대 유럽에서도 금발벽안 특질이 선천적으로 성인이 돼서까지 유지되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유럽인을 상징하는 특질로 금발벽안이 여전히 유효한 걸 감안하면 화이트 워싱보다는 차라리 고대 그리스인과 혈통적(부분적으로) 문화적 후손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터키, 특히 서부 해안가 지방은 지금도 혈통적으로 그리스계 비율이 높아서 금발벽안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이후 헬레니즘 왕국들과 로마 제국 시기에 지속적인 혼혈로 유럽계 핏줄이 짙어진 시리아인들도 중동에서는 상대적으로 유럽인의 가까운 외향을 띈 걸 감안하면 그리스인들의 외향 역시 금발벽안 형질이 완전 대세까지는 아니어도 충분히 특징으로 삼을만한 빈도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네요. 애초에 금발벽안 빈도로 화이트 워싱은 운운하면 유럽의 절반 이상이, 특히 남유럽은 백인이 아니고 이거 다 화이트 워싱 된 거라는 해괴망측한 결과만 나옵니다. 항상 흥미롭게 챙겨보는 채널 중 하난데, 무분별한 PC주의 반영이 채널의 오점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입장 바꿔서 이야기 하면 동남아인들의 예시를 들면서 한국인을 하얀 피부로 묘사하는 건 화이트 워싱이다라고 외치는 거랑 비슷한 상황이지 않나 싶네요.
@family_백
@family_백 Күн бұрын
죽은 사람의 몸을 방패로 쓰던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hllws6043
@hllws6043 Күн бұрын
댓글에 일뽕들 겁나 많네 ㅋㅋㅋ
@dngusrn21
@dngusrn21 2 күн бұрын
추가적으로 신화속 불화의 여신 에리스 가 남긴거에 왜그리 목숨 걸만 하면 하필 가이아와 동급인 닉스가 스스로 낳은 타나토스 / 모로스 /모이라이 /네메시스 /휘프노스 / 에리스 같이 제우스 시대 신들에게 고모뻘 이라서 불화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걸 알수있다. 제우스도 하필 닉스의 이름으로 저주 내리겠다는 말만 꺼내면 도망쳐야할 정도로 닉스의 자식들도 만만치 않다
@라이트닝-d2x
@라이트닝-d2x 2 күн бұрын
일리어드 번역잘된건 정말 재밌음. 헥토르가 허무하게 죽는 장면은 아직도 충격임
@xeno-99
@xeno-99 2 күн бұрын
ㅋㅋㅋㅋㅋ 솔직한 말로 어디 외딴 태평양 한 가운데 있지 않는한 주변과는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죠 비슷한 시기 병장기를 보면 다들 큰틀에선 비슷하죠 특히 도검은 더더욱 사람이 허리에 차고 다니기 편하고 다루기도 편한 도검은 거기서 거기니 ㅋㅋㅋㅋ 게다가 치고 박고 싸우거나 평화적으로 교류하거나 어찌되든 서로 교류하다 보면 비슷해지고요
@xeno-99
@xeno-99 2 күн бұрын
상식적으로도 인접 세력이 다른체계의 무기를 쓴다는게 말이 안되긴 하죠 종족이 달라서 팔이 4개 달린 것도 아니고 가깝게 붙어 있어서 자주 치고박고 싸우는데 발전을 하다 보면 서로 효율적인 형태로 변하고 그럼 큰 틀에선 그게 그거니 ㅋㅋㅋㅋㅋ
@namja2yagi
@namja2yagi 2 күн бұрын
내가보기엔 서양용 드래곤이 아주 예전엔 드물게 있었을것 같다. 그 드래곤은 익룡일거라 생가되어지고... 그게 전파되고 전파 되어서 동양용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cheetosb1641
@cheetosb1641 2 күн бұрын
징기스칸 마렵네
@초록색친구
@초록색친구 2 күн бұрын
로마군이 진짜 무서운게 대형방패까지 갖춘 보병이 부대 단위로 속보가 가능할 정도의 기동력임 팔랑크스랑 붙은 전투보면 속보로 예비대가 휘젓는데 대처를 못함
@조병철-m3s
@조병철-m3s 2 күн бұрын
헤라클래스가 단시간에 점령했다고하던데
@송희네족발큰아들
@송희네족발큰아들 2 күн бұрын
도끼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연구한 조상님
@흑룡-x6v
@흑룡-x6v 2 күн бұрын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이란 책에서는 도깨비는 죽은 사람의 영혼인 귀신과는 달리 자연물의 정령이라고 하던데요
@Orang_Fantasy
@Orang_Fantasy 2 күн бұрын
맞습니다. 그 내용이 영상에도 나옵니다.
@흑룡-x6v
@흑룡-x6v 2 күн бұрын
@@Orang_Fantasy 그 책 읽어보셨나요?
@Orang_Fantasy
@Orang_Fantasy 2 күн бұрын
@@흑룡-x6v 도현신 작가님 거 아닌가요? 그 분 책은 웬만한 건 다 읽어 봤습니다^^
@흑룡-x6v
@흑룡-x6v 2 күн бұрын
@@Orang_Fantasy 중학생 때 《어메이징 한국사》와 《어메이징 세계사》로 접하고 판타지 백과사전 시리즈(한국편 구판 제외)도 읽어봤습니다
@ryankim8968
@ryankim8968 3 күн бұрын
눈물을 마시는새의 도깨비 종족 등장인물인 비형 스라블의 작명은 비형랑에서 따왔나보군요 ㅋ 재밌는이야기 감사합니다
@Slayer-x4j
@Slayer-x4j 3 күн бұрын
반도 일본어설과 엮어볼시 만주의 고대한국어족인 부여계가 삼한지역까지 남하해서 정복해서 지배층으로 자리잡을때 기존토착민이 보기에 철기 다루는 모습이 도깨비처럼 보여줬을지도.........
@singsing5229
@singsing5229 3 күн бұрын
그래서 왜 조선칼 보다 좋은지 비교분석해줘야지
@Orang_Fantasy
@Orang_Fantasy 2 күн бұрын
제 채널에 가시면 일본의 칼부터 한국의 칼까지 아주 길고 자세하게 시리즈로 영상 올려놨습니다! 보시면 도움이 될 거에요!
@체크메이트-u5j
@체크메이트-u5j 3 күн бұрын
발굴하면서 확인된게 4번째 트로이까지 발견되었고 1번채 트로이 위에 2번째 트로이가 세워진것처럼 성곽과 도시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나네요 여러번 망했다가 다시 재건되기를 반복하다 이후 완전히 멸망해버리고 역사에서도 잊혀진 도시가 아닐까 싶네요 애당초 그리스 로마 신화가 신들의 불륜과 겁탈 등이 가득한 상태였기에 헬레네가 유부녀이든 파리스가 유부남이건 크게 걸리는건 없었을 겁니다 신들이 그 꼬라지인데 인간이 뭘 겁내겠습니까? 작가가 신화를 빗대어 글을 쓴것은 신의 한수라고 보여지네요 일번 역사서로 남겼다면 대가리 빠개졌을수도...
@luka7058
@luka7058 3 күн бұрын
'용면와'가 치우천왕이나 도깨비로 오인된...
@somebodyhelpmeno
@somebodyhelpmeno 3 күн бұрын
근대 한국도깨비는 형체가 정형화 되있지않는데 어떻게 한국도깨비를 사용하라는건가요
@Orang_Fantasy
@Orang_Fantasy 3 күн бұрын
이전 영상들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형태가 다양하다 뿐이지 형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많은 설화를 가지고 있는 중년 남성의 형태를 차용해도 되고, 도깨비 설화에 등장하는 모든 도깨비의 형태를 차용해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그려도 될 거라 봅니다.
@agnomy2543
@agnomy2543 3 күн бұрын
사극이 고증을 못한거지 조선의 주무기는 활과 창 입니다. 장창이 원래 조선 무기임 낭선 단창등 활과 창은 전장에서 많이 쓰이던 무기임
@xeno-99
@xeno-99 3 күн бұрын
괜히 중국에서 공자 맹자가 등장해서 유교를 부르짖은게 아님 ㅋㅋㅋ
@흑룡-x6v
@흑룡-x6v 3 күн бұрын
초등학교때 능텅감투라고 도깨비감투와 비슷한 보물이 나오던데요(거기서는 도깨비가 아닌 귀신들이 씌워준걸로 나오지만요) 교과서에실린 이야기에 아내가 그걸 태워버리자 그 가루를 몸에 발라서 남의 집 제사상을 먹어치우다가 가루가 떨어져 걸리는 바람에 두들겨맞았다는 이야기도 나오던데요
@mdb2921
@mdb2921 3 күн бұрын
쓰레기 중국유교따위 떠받들고 살았던 병신 선비새끼들이 나라 말아먹었지.
@-fz2oi
@-fz2oi 3 күн бұрын
영화가 허구지.
@김주성-y7u
@김주성-y7u 3 күн бұрын
저는 애니미즘이 오히려 도깨비의 기원 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록에는 비형랑이 최초이지만, 그건 아랑신화 같이 기인설화에 대한 최초 기록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처용 같이 귀신을 부린거지 도깨비 라는 일정 형태의 정령을 다스렸다는 기록은 없잖아요? 오히려 본인 자체가 사람인데 정령같은 존재가 되겠습니까? 귀태신화의 한 종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제 생각은, 에니미즘에서 출발해서 널리 정령신화로 추존받다가, 기존에 기득권 층이 다른 종류의 상위 종교를 가지면서, 점점 사회에서 도태되기 시작하면서, 피지배층 만의 일종에 믿음의 상징이 되어가고, 피지배층인 일상 생활 속에 볼수 있는 다양한 형태 속에서 그 생김새나 형태가 갖추어 지고 그것을 통해 이미지화 하여 도깨비라는 정체성이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실제 도깨비와 관련 있다는 물건이나 사람 보면, 다 귀족이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 과는 거리가 먼 일상용품, 동네 아저씨, 비권위적, 어리석음, 순수함, 대장장이 등 당대 일반 백성들의 주변에서 볼수 있는 형태가 아이콘이 되어 믿어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기는 믿는데, 형태가 없으면 어떻게 믿겠어요? 그러니 일상생활 용품이나 주변사람들 보고 거기서 이미지를 가져온 것이, 그 성격도 그렇게 인식하게 된것 아닐가 생각됩니다.
@hpyoon67
@hpyoon67 3 күн бұрын
나와바리를 놓고 싸우는 동네 조폭 규모의 싸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