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대구를 떠난지가 사십여년이 다 되어가는지라 현재 대구가 어떤 모습인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릅니다. 그래서 네이버뷰..등을 통해 가끔 이곳저곳 구경을 하는데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봉산육거리를 뷰로 보니 `빌리브프리미어오피스텔`이란 아주 멋진 오스피스텔이 있는데 사실 이곳은 제가 아주 어릴 적에 대구형무소가 있던 무시무시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 그 형무소 뒤쪽, 동네로는 삼덕동이었죠, 그 동네에 대구에서 아주 유명한 연탄공장이 있어 어른들 손잡고 동네 골목길을 오고갈 때엔 나무판자로 만든 기둥으로 담장이 쳐진 연탄공장을 늘 지나곤 했습니다. 공장에서 뿜어나오는 연탄가루로 인해 시커멓고 우중충한 풍경을 자아내던 그 골목길...아직 기억에 남아있네요....지금은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봉산육거리가 예전엔 형무소니 연탄공장이니 하는, 지금과는도무지 어울리지 않은 시설들이 있던 장소였습니다. 상전벽해 정도는 아니지만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고 세상도 그만큼 변했다는 의미겠죠.
@humanin_33321 күн бұрын
그시절 그림이 님으 설명으로 스케치처럼 그려집니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댓글 정말 ~ 감사드립니다!!!
@홍길동-i5q7o21 күн бұрын
그 당시 삼덕동이면 부자동네에서 자라셨네요~^^
@gustav783921 күн бұрын
@@홍길동-i5q7o 삼덕동이 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는 아니었고...제가 태어난 대구형무소 뒷쪽 삼덕동은 그냥 서민들이 살던 동네였습니다~
@mijjang550620 күн бұрын
대구 이름만 들어도 아련합니다 저도 떠난지 35년 해외 거주 합니다 저 어릴적 동네도 봉산동이였고 말씀하신 곳은 아마도 소년심리원이였습다. 그자리 철거하고 한동안 고물상하시던 분이 계셨죠 대구상고 학생들 골목에서 담배피는 모습도 자주 보였구요
@박상준-t3r5o16 күн бұрын
@@mijjang5506 앗 제가 대구상고 다녔는데 전 모범생이어서(?) 그땐 비흡연자 였어요.봉산동 유신학원,고려학원,일신학원 근처에서 살았어요.저 역시 한국 떠난지 20년 됐네요.건강하세요
@mijjang550620 күн бұрын
대구국민학교 2학년때 연탄가스 먹고 학교를 못같죠 다행이 어머니 일찍 깨워서 약간 맛만 봤었죠 쌀뜨물 마시면 좋아진다고 해서 국그릇 2개양을 마셔셨습니다. 다시 돌아갈수 있다면 … 아니 꿈에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네요
@humanin_33319 күн бұрын
저는 동치미를 마셨습니다~~ 그시절 어머니 할머니 저도 보고 싶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민들레-t3t22 күн бұрын
국민학교때 조개탄 피웠던 기억이~~~ㅎㅎㅎ
@humanin_33321 күн бұрын
민들레님도 조개탄 당번 하셨나요~~ 그 시절 당번들의 일 중 하나였던 기억이 납니다 . 댓글 감사드립니다
@waegwan217 күн бұрын
흩어져 있던 연탄공장 투어도 칠성시장 옆에 하나 계명전문대 앞에 하나가 기억납니다. 계명전문대 앞은 일제시대때 화장터 였답니다. 그래서 그 땅을 놀리다가 연탄공장하다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humanin_33317 күн бұрын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구 역사의 산 증인이시네요~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려요~~
@광야에서-l9r21 күн бұрын
겨울이 되기전 부엌에 연탄 100장 들여놓는것이 김장과 함께 가장 큰 겨울준비였습니다. 지금이야 도시가스로 난방하고 가스렌지를 사용하지만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연탄으로 난방하고 음식은 석유곤로로 했었는데 학교 갔다와서 라면이라도 끓여먹을려면 물끓는데만 10분 넘게 걸리던 그시절이 그립네요. 아랫목에는 갓 지은밥을 찬합에 담아서 이불로 덮어 놓았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련한 기억이 듭니다. 안심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 대야성(지금의 합천)에서 일전을 싸우다 처절히 패배해 도망치다 후백제군이 더이상 따라오지 않는것을 보고 그때야 살았다고 안심했다고 합니다.
@humanin_33321 күн бұрын
추억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밥 한 끼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다시금 느껴지네요.
@humanin_33321 күн бұрын
아랫목에 청국장도 띄운 기역도 납니다~ 역사적인 정보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견 경청하여 참고 하겠습니다~
@건우이-l8w22 күн бұрын
연탄재버리는 것이 제담당이어서 다라이아주머니사진보니 마음이 짠합니다 중학생인저도 무거워 한번에 못올려서 바닥에 몇번 쏟았던 기억이 나네요
@humanin_33321 күн бұрын
매주 두번인가 세번인가 청소차가 왔던 기억이 납니다~ 맞습니다 연탄재 무게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선보윤-k7k22 күн бұрын
해마다 연탄가스중독사망이 뉴스나오곤했읍니다
@humanin_33321 күн бұрын
80년대 중반까지 매년 수백명의 사상자를 냈던 기록이 있었네요~~ 동치미국물 들이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답니다~ 연탄의 이면인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민들레-t3t22 күн бұрын
아버지께서 해주신 연탄 불고기~~그립습니다.
@humanin_33321 күн бұрын
연탄 불맛이 가미되어 은근한 매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님이 해주셨다니 정성을 듬뿍담아서 정말 맛있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