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박기동선생님께서 이 노래의 배경을 말씀해 주셨지요...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난 누이에 대한 아픔의 시를 책상에 놓아둔것을 옆 음악교사가 곡을 달았는데... 결코 어떤 한 이데올로기의 신봉자가 아니셨는데도... 그 이후로 한국의 분단역사의 한가운데서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이 찢기어져가는지를 직접 들을수 있었지요. 박기동 선생님 돌아가신 날 뵙고 돌아온 후 그 다음날인가 라디오에서 부용산 노래가 흘러나와 ... 한동안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푸릇푸릇 소년같으셨던 박기동 선생님 흰 운동화에 맑은 눈빛이 지금도 소중히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장영자-i9e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댓글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어른들이 잘 살아야 후손들이 고생을 덜 할텐데 ㅡ
@구름과빛28 күн бұрын
소중한 말씀입니다 영화 한편을 보는듯합니다
@이석훈-w2r16 күн бұрын
성지스님. ~~~😊 지금 밤차타고 성지스님 만날수 있을까 하고 출발합니다. ❤ 귀에 쏙쏙 ..법문말씀처럼 최고이어라. ~ 감사합니다. 송가인 이어라 ••••~~~😊❤
작사가 작곡자 두분 모두 선생님이셨군요. 지금같은 세상에 태어나셨더라면 좋았을텐데요~ 두분 살아오신 삶 자체가 시대의 비극이네요. 명복을 빕니다
@조경훈-r1n3 жыл бұрын
초등학교 뒷산이 부용산인데 사연이 많은 산이란걸 알고서 노래를 들으니 육십년 전 옛추억들이 생각납니다 좋은노래 들려주어 감사합니다
@r-evolutionskyrock14103 жыл бұрын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이곡을 만드신 안성현 선생님의 부용산! 아픈 우리 현대사 ㅠㅠㅠㅠㅠ 이제라도 맘껏 이 노래가 불려진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윤완식-b4f3 жыл бұрын
안치환님 아프지 마시고 오래 오래 좋은 노래 들려주세요
@나유타-s6c3 жыл бұрын
애절하고 저절로 눈물나는 감동적인 노래 감사합니다 애창곡이 될것 같아요
@kyh24062 жыл бұрын
부용산! 이 좋은 노래를 특정지역, 특정한 사람들의 노래로만 보면 안됩니다. 이 가사는 순수시입니다. 아리따운 여동생을 잃고 애도한 시입니다. 시와 곡이 얼마나 아름답고 슬픕니까. 앞으로 국민가요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합시다. 참고로 제 고향은 충남입니다.
@한희옥-f3k Жыл бұрын
격하게 공감합니다 동의합니다
@조모주 Жыл бұрын
감동입니다~
@정푸른숲3 жыл бұрын
공연장 라이브로 듣는 '부용산'~ 목소리도 노래도 감동이구요~ 노래에 담긴 안타까운 이야기와 함께‥ 현대사의 아픔을 돌아보게 하는것 같아요‥
@soon-aekim963 жыл бұрын
노래가 담고 있는 사연이 애절하네요. 조그만 나라에 구구절절 한서린 역사가 쌓이고 쌓여서... ㅠㅠ
@김원석-v3i2 жыл бұрын
가슴이 먹먹해지는 노래...부용산... 제 고향 벌교에 있는 부용산입니다...
@aal67403 жыл бұрын
묘하게 가슴에와닿는.... 슬품이묻어나는곡이네요
@jungaehuh2 жыл бұрын
안치환 민중가수라 더욱더 응원합니다 목소리가 한이 있고. 개성이 있어 누가 감히 카피 할수 있나요 진정 당신께 뜨거운 박수와 힘을 실어 드립니다
@인생은나에게술한잔사3 жыл бұрын
오 ~~ 와우~~^^ 고맙습니다 ~~^^ 제 애창곡입니다~~^^♡♡ 지금도 가끔씩 드들강변 에 가서 목놓아 불러보고ᆢᆢ ᆢㆍ ㅎ 오늘도 좋은 선곡 감사합니다 ~~^^♡♡
@김써니-o8p3 жыл бұрын
애절합니다.~~
@임지연-i4m3 жыл бұрын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우리 민족의 정서 스미는 어릴때 엄마가 자장가로 불러주신 노래 기타선율 맘 뭉클해집니다. 부용산 고향 전남벌교 박기동선생 꽃다운 여동생(나이24세) 그리워하며 쓴 "시" 애잔하 고 아름다워서 안성현선생 곡을 붙여 만든 가슴 저민 애닮은 곡조를 국민들이 즐겨 불렀고 민주화운동 이나 운동권서 저항가요로 불러져 독재정권 감시대상 호주이민 파란만장하고 한많은 인생을 회고하는 삶의 길. 처음 안치환님 음반 정식 발표된 노래 지역의 노래가 아닌 모두 노래로 널리 알려지길 바라며 아름답고 심금을 울리는 기타연주와 노랠 들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newday47032 жыл бұрын
나도 안치환이 부른 부용산이 젤 좋아요
@솔-v6h3 жыл бұрын
언제 들어도 가슴을 후벼파는 좋은 노래입니다. 이런 현대사에 길이 남을 좋은 노래를 우리 아마추어 기타 후배들이 연습해서 즐겨 부를 수 있도록 안치환님께서 직접 타브악보를 만들어 공유해 주면 어떨까요? 부탁드립니다.
@김정현-d2c3 жыл бұрын
세세하게 설명을 잘 해주시니 더욱더 의미있게 들립니다~^^ 치환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rfed58392 жыл бұрын
귀한곡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blueskymiso3 жыл бұрын
일년전 오월문화제에서 부용산 가까이에서 듣고 부르시는 모습과 목소리에 감동을 넘어선 충격적인 이세상 목소리가 아니였어요 그때의 감동을 잊을수가 없었는데 노래의 사연을 알고들으니 또 다른 감동이 밀려옵니다
@강픔2 жыл бұрын
2절 가사를 안치환 가수께 들고 갈 수 밖에 없겠네요... 대안이 없었을 듯
@jihk03283 жыл бұрын
박기동선생님께서 역시 안목이 있으셨네요~~귀하디 귀한 노래군요~~듣고있으면 넘 애절해요~
@adamko72132 жыл бұрын
이렇게 훌륭한 가수분을 왜 아직까지 인식 못햇지,, 대단하십니다. 역사에 무지몽매한 한국인들쥐들 만 가득한데 진실을 아는 분이 많지 않은데요,ㅡ, 대단한 안치환 이름도 너무 멋있다. 멋지다 가수 안치환 그들의 아픔 그 아픔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아픔이던가 우익승냥이들에게 마구 유린당한,,
@행복하자아프지말-p2x3 жыл бұрын
노래에 사연을 알고 들으니 맘이 더 먹먹해지네요 안치환님 건강하세요❤
@유하이나3 жыл бұрын
좋은 노랫말 입니다. 항상 응원 합니다.
@고미영-s8i2 жыл бұрын
우와 눈물난다 정말 안치환님은 최고의 가수에요. 최고^^
@김지원-l2t6c2 жыл бұрын
이모든것이 친일독재때부터 살인자든ㅅ이 억압해서 순수한 국민들이 억울하게 당하고 아무죄도없이 박정희흉봤다하면 무조건 구속해서 고문하고 죽이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대한민국 국민들이 한이뎌어 친일살인자들이 나라를 썩게만든것을 지금까지 지켜주신것이라 생각됍니다 그래도 아직도 친일독재자들의 뿌리들이 거짓과 음해로 어리석은 국민들이 세뇌가되어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습니다
@끝까지간다뚜껑이3 жыл бұрын
혼자부르는 공연 때 소극장에서 무대를 중심으로 앞뒤로 둘러싸인 형님의 공연이 새록새록 기억 나는 무대와 노래, 그리고 형님의 몸추임세 입니다. 건강하세요. 형님 뚜껑이
@금수산-d5q3 жыл бұрын
정말 가슴에 와닿습니다.맹렬 연습 중입니다.혹시 만날 기회가 있으면 노래는 못하지만,저도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목진오-q8g3 жыл бұрын
08년도 ㅇㅊㅎ 혼자 부르기를 12년 음반으로 제작되여 듣게 되였습니다 부용산 부르시기전에 들려 주셨던 스토리를 또다시 기억나게 해주십니다 그 어르신 말씀처럼 부용산은 ㅇㅊㅎ 님 이십니다!
@김은숙-y7j3 жыл бұрын
기타소리 목소리 너무 좋습니다. 치환님이 부르시는 부용산은 정말로 최고예요~~
@claypark10103 жыл бұрын
이 곡을 들으면 ... 아파요.
@이경화-r1p3 жыл бұрын
너무좋아요. 짝 짝 들을수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럴게 볼수있어서
@장영자-i9e2 жыл бұрын
안치환님의 노래는 영혼을 달래주는 독경소리같습니다 항상 위로받고 힘을 얻고있습니다 당신은 독립 투사이십니다 존경합니다
@bakchanggeun3 жыл бұрын
'쐬주' 듣고싶어요 형님!
@김경호-k3h3 жыл бұрын
명곡이네요 감사합니다
@김미경-w7v Жыл бұрын
너무너무 강한듯 하면서도 솜구름 같은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님 의 목소리가 너무 멋져요 응원합니다
@럭키프라나2 жыл бұрын
너무 아름답네요 참 아름답습니다!
@kyh24062 жыл бұрын
이 노래는 특정지역, 특정성향의 사람들만의 노래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노래로 거듭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을 애도한 시(박기동 시)에 사랑하는 여제자의 죽음을 애도한 곡(안성현 곡)이 만난 이대도록 애잔하고 슬픈 노래! 새삼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를 쓰신 고 이가림 시인의 부용산 노래가 애련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노래 부를 차례가 되면 항상 애창하시던 그 노래...!
@고사평2 жыл бұрын
와~~~~~~우 짱
@김을성-r1z2 жыл бұрын
옛날에 좋아하던 가수님 목소리 여전히 청량감이 대단히 좋아요. 늘 건강하세요.
@daecha73 жыл бұрын
👏👏👏 잘 들었습니다.
@johnlee21112 ай бұрын
작사 미상으로 오랜동안 불리어진 노래, 여러가지의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떠돌아 다녔지만 박기동 선생님께서 살아 생전에 다행히 바로 잡아 주신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동권이나 빨치산이 애창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애절 합니다. 호주 시드니에서도 종종 뵙고 좋은 말씀을 조근조근 속삭이든 해 주셧던 박 교수님께서 서울에서 87세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쳣음이 참으로 애달프고 가슴이 여밉니다.
@쥴-p6d2 жыл бұрын
오호 통재라 2022년 또다시 이승만 독재자가 나타났으니 오늘 이 노래가 더욱 애절하게 들리는 구나 ....
10 29 참사 영혼들이여 못다핀 꽃송이들 어찌 잊을까요? 넋을 기리며 영원한 안식에 드소서~ 추모는 이제 시작입니다~!!
@은향-h3u Жыл бұрын
눈물 납니다 꽃다운 청춘들 다 어디로 갔을까요 부디부디 편안히 숨쉴수 있는 좋은곳으로 가셨음 합니다
@이정심-x5e2 жыл бұрын
멋지신안치환님 응원하고사랑합니다
@kidpicaso12 жыл бұрын
담백해서 더 슬픈....
@지리산송이9 ай бұрын
이유없이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하는 ᆢ 오빠를 대신해서 ᆢ 노고단으로 끌려가는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백옥경-g4c2 жыл бұрын
숙연해 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따뜻한콜드브루-d1x2 жыл бұрын
안치환님 20년째 팬입니더. 기타를 뒤늦게 배우는 중인데 이노래가 너무나도 와닿네오~! 악보좀 얻을수 있으면 좋겠네요~!
@gichanbooja5824 Жыл бұрын
정신이 번쩍 드는 노래입니다. 저도 안치환님이 부르는 노래가 제일 좋습니다.
@russiakoreatour2 жыл бұрын
공연이 취소 되서 마음 아프네요. 안치환님 노래 들어야 하는데요
@kosanja5073 Жыл бұрын
가슴을 저미는 정말 멋진 노래이네요. 딱 안치환의 노래이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최다복-b1r Жыл бұрын
봉사 같는데 강수 어르신이 온곡 본을 가지고 계신것 보앗는되. 평화 음악제 에 들을수 있어서 감에가 깊습니다.
@안광원-t8o2 жыл бұрын
날 새며 부용산 불러봅니다.
@추억-d6k2 жыл бұрын
안치환멋짐 가수이면서애국자임다 다른가수들도용기내서판단해주세요
@1종대형-n2v Жыл бұрын
조용한 새벽 밤안개낀 산을 쳐다 보며 이 노래를 들으니 가슴이 너무 욱컥하네요 언젠가는 좋은날이 오겠지요
@천둥산이-g1p2 жыл бұрын
부용산 , 의미도 모르면서 들어 왔네요ㅠㅠㅠㅠ.
@박새롭게2 жыл бұрын
안치환님 늘 응원합니다 💕 😀 👍
@도구앞바다2 жыл бұрын
위로받는다는걸 이제사 ᆢᆢ I'm not alone!
@마리아-n4f Жыл бұрын
용산의 장미를 뽑아내야 나라가 법이 바로 서고 국민은 평화가 찾아 오겠죠? 자기에게 피를 내는 사람은 다른사람에게도 피를 내니까요.
@seven26783 жыл бұрын
1빠.
@언제나가을-g3d Жыл бұрын
어제 처음이노래 라이브로 들었는데 엄청 났음요 감사합니다
@김선희-r6b2 жыл бұрын
멋지십니다
@tikitaka7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자유인-z5o Жыл бұрын
매일들어도~❤❤❤
@이정심-x5e2 жыл бұрын
의식있는 안치환님 존경 합니다ㅡ
@백만호-h7x Жыл бұрын
아픈현대사에 눈물삼키며들었습니다.감사합니다.
@고경태-t6m2 жыл бұрын
말씀이 따숩고 조아예~~~^^
@NoFilteringSong_life2 жыл бұрын
ㅜㅜ 좋은 노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은송-p6v2 жыл бұрын
안치환♡
@송명호-d1f Жыл бұрын
안치환의 쉰 목소리는 포항의 가수 최백호를 생각케 한다. 나는 안치환 좋아한다
@김기권-o5f8 ай бұрын
ㅡㅡ고항선배의 부인이 피아니스트인데ㅡㅡ이노래를 가르켜 주어 지금도 가끔 가슴시린 노래다ㅡㅡ
@나무관세음보살-인이 Жыл бұрын
안치환 고맙
@Drip_coffee7022 жыл бұрын
어렸던 남부군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빗대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는데...."피어나지 못한 🌹" ...지리산에 가시면 장미 한송이라도 ...
@hamlove11 Жыл бұрын
대학 1학년때 87학번 선배가 막걸리에 취해서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정교인-u4x Жыл бұрын
안치환, 노래 자체가 좋다
@제갈순신 Жыл бұрын
자주적인 평화통일 만세 🙌 🇰🇷🤝🇰🇵🙏 우리는 하나다 우리의 조국 영광 있으라 🙆❤ 수십년 전 고인이 되신 나의 외삼촌 께서 가끔씩 불렀는지 모르겠다 들은적이 없지만 지리산 에서 사변 당시에 생활을 하셨기에 ㆍ🤔
@dn97442 жыл бұрын
죽은 할매 영혼 널 뛰는 날....소생한 영혼 무얼 해야 하나...생각이라는 걸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지훈김-q2d3 жыл бұрын
좋다 다 좋은데 1절 가사가 틀리네~~ 병든 장미는~~이다
@이윤직-u7t11 ай бұрын
형건강하세요
@타오라-f3d27 күн бұрын
부용산 오리 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 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데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 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서정시이자 노랫말이 된 은 전남 벌교의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시대의 아픔과 절절한 슬픈 사연이 담겨 있는 곡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내 친구의 아버님이자 시인인 박기동(朴璣東 1917~2004)은 시집간 어린 여동생을 부용산에 묻고 내려오며 사무치는 그리움과 애틋함을 시 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 시에 곡을 부쳐 노래가 된 것은 ‘엄마야 누나야’를 작곡한 음악가 안성현(安聖絃 1920~2006)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기동과 안성현은 당시 목포 항도여중(현 목포여고)에서 국어선생과 음악선생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인해 부용산의 시에 작곡이 더해져 슬프고도 애달픈 노래 이 탄생한다. 격동의 시기, 남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지던 이 노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다. 1948년 '여순사건'으로 산으로 쫓겨간 빨치산들은 애잔한 곡조와 노랫말에 동화되어 노래 을 즐겨 불렀고, 은 '빨치산의 노래'가 되어버렸다. 시인 박기동은 여수 출신으로 아버지는 한의사였고 일본의 중학교로 유학을 갔으며, 관서대학 영문과를 다녔다. 해방 전에 귀국하여 벌교초등학교, 벌교중학을 거쳐 1947년 순천사범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48년 목포 항도여중 재직 시기에 ‘남조선 교육자협의회’에 가입하게 되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어 혹심한 고초를 겪게 되면서 교사직도 정직 처분이 된다. 작곡가 안성현은 나주 출신으로 동경음악학교를 나왔다. 안성현은 무용가 최승희와 북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6.25 전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월북자 신세가 되었다. 이후 좌경시인으로 낙인되어 교직을 잃은 박기동은 일본 문학 번역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생활을했다. 힘든 시기를 보내던 박기동은 부인이 세상을 떠난후 이민을 결정하고 호주라는 이국에서 홀로 생활하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76세였다. 그곳에서 못다 한 창작 생활을 하며 지내던 중 한국일보 논설고문 김성우의 요청으로 부용산 2절을 쓰게 된다. 그리고1999~2000년 광주 KBS TV 특집 다큐멘타리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2000년 가을, 박기동은 부용산 시비(詩碑)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호주에서 잠시 귀국하게 된다. 그리고 가수 안치환을 찾아가 2절로 완성된 부용산을 전달하고 직접 노래를 불러 달라 부탁했다. 이제 구전가요였던 부용산은 안치환과 이동원·한영애 등 많은 가수에 의해 불러지고 있으며, 벌교의 부용산에는 시비와 부용정이, 항도여중에는 노래비가 그리고 매년 도 열리고 있다. 고교 시절 친구 집에 가면, 늘 작은 상을 앞에 두고는 일본어책을 번역해 원고지에 옮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기억하는 박기동님은 평소 요가와 자연식으로 자기관리에 철저하신 모습이었고, 성품이 매우 강직하고 올곧은 분이셨다. 내가 마지막으로 박기동님을 뵌 것은 그분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다. 연락을 받고 친구와 찾아간 일산의 요양병원에서 뵌 것이 그분과의 마지막이 되었다. 이제 시인도 친구도 없다, 그저 아픈 노래만 남았을 뿐.
@유농부-v7s11 ай бұрын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dohyunkim1632 жыл бұрын
오늘 노통 추도식을 보는 내내 왜그리 안치환님이 생각 나던지... 미친 듯 검색해서 이 노래를 듣습니다. 왜 노짱 얼굴에 당신의 얼굴이 자꾸만 오버랩 되는 걸까요?
@저녁노을-l6q Жыл бұрын
안치환님 목소리에 방부제를 치셨나요? 너무 슬 ㅍ... 우린 언제 슬픔없는 나라에 살 수 있을까요?
@dohyunkim1632 жыл бұрын
부탁 드립니다 . 오늘 다시 한번만 부용산을 재 업로드 해 주시면 안될까요?
@배용환-u8x2 жыл бұрын
슬픈 역사를 안고 갑니다
@pillseung1804Ай бұрын
I am suprised that there are so many describers watching north korean's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