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양 이야기 제가 어렸을 때 만화책에서 나왔죠 예전 소년잡지에 오자서 이야기 등 좋은내용 많이 나왔죠
@rlee4805 Жыл бұрын
촉루검..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까먹고 .. *감사하옵니다*
@bookwindow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 오왕 부차나 월왕 구천이나...
@화타-m2iАй бұрын
전국시대로 치닫는 시점을 진문공의 진나라가 3분되어 3진으로 나누어진 기점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무렵 전후쯤 제나라는 강씨 나라에서 전씨 나라로 바뀌었고, 천자의 나라 주나라도 동주. 서주로 양분되었다는 게 꽤 신기방기 하네요. 꼭 요즘도 선거철이 되면 정치판이 이합집산 되는 거와 닮아서 웃프네요^🤣^
@화타-m2i3 ай бұрын
주위왕 때 재상 추기, 장군 전기 등이 등장하니 '손빈 병법' 시대로 접어드네요^^
@화타-m2i2 ай бұрын
'곽산의 산신' 이야기는 '조나라판 몽금척, 용비어천가'네요^😃^
@화타-m2i2 ай бұрын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접수하기 전 답답할 정도로 우유부단한 행동(정몽주 처결 등)들을 계속하길 래 사극을 보는 오늘날의 우리로서도 답답한데 당시 정도전. 이방원 등은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싶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지백의 실패 사례에서 배운' 성 싶네요^^ 조양자도 부질없이 '개폼' 잡느라 예양을 잡았다 놨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 해서, 부하들만 피곤하게 했던 성 싶네요^😁^ 돌아보면, 다 '춘추전국시대판 백백교 신도들'이네요^😊^
@화타-m2i2 ай бұрын
제갈량이 롤모델로 삼았다는 장군 '악의'의, 아빠 악서나 할아버지 악양이나 꽤 답답한 인물들이었네요^😁^ 누가 보더라도 아들 악서 때문에 공격을 미루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인심을 얻어야~" 등 구두선이나 늘어놓는 등 정치감각은 제로였던 듯 추정됩니다. '악의'도 쌈꾼으로선 천재였을 지라도, 정치력은 별반 그렇고 그랬지 싶구요^^ "전쟁도 정치의 연장"이란 말이 맞다면, 이런 사람들이 리더가 되면 ~~~😁😂🤗
@김범석-y6j Жыл бұрын
예양의 이야기를 이제야 듣습니다.
@화타-m2i3 ай бұрын
악양의 부인이 베 짜던 천을 자른 이 고사를 후대에 맹자학파에서 벤치마킹하여 '맹모단기지교'로 써먹은 듯 추정됩니다 ^😅^ 제갈공명이 롤모델로 삼았다는 '악의'가 악양의 후손이 아닐까 싶네요^😄^
@bookwindow3 ай бұрын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고사성어나 유사한 이야기의 그 원조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화타-m2i3 ай бұрын
@@bookwindow 하늘아래 새로운 건 없다잖습니까? 저작권도 없던 시절엔 먼저 베낀 놈?이 임자였것죠?^^ 99.9999999999%가 문맹이던 인류 역사에서 벗어난 게 불과 몇십년이니까요^^ 지금도 중국은 98%가 문맹이라는 말도 있데요^^ 우린 한글을 쓰니까 2~3%?^^
@화타-m2iАй бұрын
성균관대 유학대학부터 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승려로 변신한 7박사 자현 스님은 붓다로드 강의 중 "맹모삼천지교 다 아시죠? 맹자 엄마가 세번 이사했다는 그 이야기? 그거 다 거짓말입니다. 이사를 세번 했는지 네번 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 맹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 이게 다 거짓말이에요. 맹자 아버지는 오래오래 살았어요! 맹자 아버지가 일찍 죽었다고 꾸며야 ~ 이야기가 감동적이 되는 거죠. 다 그런 거에요~" 🤣😁😆😊
@화타-m2i2 ай бұрын
악양>악서>악의로 이어진 듯 싶네요. '악의'는 후에 제갈량이 자신의 롤모델로 악의를 거명했었으니 설명이 필요없지만, 악양은 중산국 정벌 외 별다른 기사는 없나 봅니다. 악의가 중산국 태생이라니까, 영조가 손자 정조가 왕의 기상이 있었기에 아들 사도세자를 죽이고 왕권을 지켰던 거와 오버랩 되네요. 요즘은 영조를 "아들을 죽인 비정한 아비" 정도로 폄훼하지만, 영조 재위 당시엔 광기에 찬 사도세자를 살려두고선 왕권이 반정으로 무너졌을 위기였기에 '악양'의 입장과 유사했지 않았을까요? 악양의 행태도 병법 시각에서 보면 '배수진'의 일종으로 볼 수 있고, '고육지계'의 변형으로 볼 여지가 있어 보이구요. 일종의 솔선수범?이랄까요? 위문후 입장에선 악양에게 병권을 거둔 건 당시 국제정치적 고려로 보입니다. 이제 3진으로 나눠 나라를 세운 초창기에, 상대적으로 강국인 '조나라의 나오바리로 볼 수 있는 중산국'을 아들을 희생시켜 토벌한 악양을 계속 기용하면 조나라와 한나라를 당장 긴장시켜 자칫 페이스를 꼬이게 할 우려가 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환공 때의 수조? 고사 인용은, '내부단속용'이었을 뿐이고 위문후 내심은 중산국 정벌이 자칫 '외교문제'로 비화되고, 건국 초에 3진이 이전투구로 변하고, 패자를 노리는 내심을 노출시켜 모난 돌이 정맞는 자충수를 둘 필요가 없어 순고르기를 한 조치였을 거로 추정됩니다. 손자 악의가 위나라가 아닌 연나라에서 활동했고, 제나라 정벌 중 이간책으로 물러난 후 위나라가 아닌 조나라로 망명하여 말년을 보냈던 배경에도 이런 정치적 고려가 이어졌다고 추정됩니다. 악양의 선조 등에 관한 기록은 없는 걸로 보아 '아들을 희생양으로 가문을 일으킨' 특이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랄까요?
@화타-m2i3 ай бұрын
서문표의 계책과 정치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요즘 적폐청산 방식은 초딩 수준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