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씀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 다.지금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큰 성 바벨론 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 습니다.시간낭비 입니다. 목사님..큰 성 바벨론은
@나이비록어려도2 жыл бұрын
그러므루 학원 문화는 끊고 버려야 ㅡ 공부는 학교에서 학교 교실과 돈이준 권위가 아닌 교사에게 배워야 하는 이유 인 것이지요 교사 에대한 선생 님에 대한 난시가 생길 까 아이들에게 어릴 적의 다른 선생 님 과 의 관 계를버리고 학 교 선생님 이라는 하나의 채널과 그교훈으로 아이들의길을 견지한 저같은 엄마는 바보가 되고 그렇게바낸 학 교는 그런데 ㅡ 그렇게보낸 교회가 그런 데 !!!!ㅎㅎㅎ 또한 공식이나 공적인 일을아는 분들에대해 ㅡ마땅히 일하시는 모든 어른들과 공복을 존 경하고 친 밀히 여기는 그런 예의와 마음을(마5ㅡ7) ㅇ ㅇ이런 모본의교육은 ㅇㅇ ㅎㅎ씨가 마르고 멸종 의 ㅡ ㅎㅎ 뿐만 아니라
@나이비록어려도2 жыл бұрын
ㅎㅎ이렇게산 사람들은 대ㅣ쓰레기 취급에 죽게되는 ㅇ ㅇ ㅇㅎㅎ
@kyungkang46824 жыл бұрын
성경에 근거없는 해석법
@kyungkang46824 жыл бұрын
세상에 엉터리로 해석하고 있군요. 소경이 소경을 인도 할 수 없다더니...
@최정현-t8c5 жыл бұрын
성경이 말하는 예언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7머리는 일곱 왕으로 5은 이미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망한 5중에서 하나가 8째로 등장합니다. 이 8째 왕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 이 짐승이 세 때 반의 권세를 가진 짐승입니다.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입니다. 큰 바벨론은 이 짐승에 의하여 멸망합니다. 그러니 7대접은 짐승과 큰 바벨론의 대결의 역사를 말합니다 . 곧 세 때 반의 역사입니다. 짐승은 6째 나팔이 불고 7째 나팔을 불기 전에 등장합니다. 그러니 짐승의 때 세 때 반은 6째 나팔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6째 나팔에서는 유브라데강의 네 천사가 등장합니다. 그러면 네 천사가 짐승의 세력일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 때 반은 단 7장에서 넷째 짐승 곧 로마의 권세입니다. 그것도 로마가 분열된 후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로마를 유브라데강으로 묘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세 때 반의 권세는 단 11:30-31에서 북방 왕이 언약의 배반자를 중히 여기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성소를 더럽히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 세 때 반은 북방왕의 권세이니 곧 북방왕은 짐승입니다. 따라서 이 북방왕에 대한 남방왕이 유브라데강의 네 천사가 되는 것으로 네 천사는 단 11:2의 바사에서 또 일어날 네 왕입니다. 그러니 큰 바벨론은 유브라데강의 이름과 연관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특히 마지막 때 짐승에게 멸망하는 큰 바벨론은 단 11:2의 바사에서 또 일어날 넷째 왕입니다. 곧 단 11:40에서 마지막 때 북방왕에 의하여 멸망하는 남방왕의 모습이 짐승에 의하여 멸망하는 큰 바벨론의 모습입니다. 7머리는 단 7장의 네 짐승의 머리를 합한 것으로 7왕은 네 짐승의 7머리의 나라입니다. 이 중에서 요한 당시의 나라가 6째이니 로마입니다. 그리고 8째는 로마 이전에 망했던 5나라 중에서 등장하는 나라로 그 나라는 표범입니다. 표범은 단 7장에서 헬라입니다. 그러니 8째 왕은 로마가 분열된 후에 헬라에서 등장하는 나라로 헬라 땅의 로마에서 거짓 선지자가 짐승의 우상을 만듦니다. 역사에 의하면 이 거짓 선지자는 그리스도교를 변형시켜 국교화한 로마교요 로마교가 만든 짐승 곧 로마의 우상은 교황입니다. 그리고 큰 바벨론은 헬라 땅의 로마를 멸하고 (5째 대접이 짐승의 보좌에 쏟아짐) 제 1차 대전에서 로마 곧 유럽에 의하여 멸망한 오스만 터어키입니다. 곧 큰 바벨론은 큰 성으로 이스탄불의 모습 그대로 무역과 부와 사치의 극치를 이룬 이스탄불입니다. 그곳은 곧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 곧 교황을 세운 로마교의 본산이기도 입니다. 그리고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종주국의 수도였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이스탄불은 심판된 모습입니다.
@ksgams5 жыл бұрын
저는 신학대학원까지 마치고 현재 사역 중인 사람입니다. 정말정말 죄송한 말인데요... 원색적으로 말씀드리고 싶네요. 계시록으로 이런 주장 하는건 정말 무식한겁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언의 의미'라는 표현을 그렇게 함부로 사용하는게 가장 안타깝네요. 묵시나 예언을 확증지어 설명하고 이해하는건 더욱이 비판하는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송태근 목사님의 설명이 모든것을 충족하는 설명이 될 수는 없으나 분명 신학적인 테두리 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물며 예수님 말씀을 놓고도 누구는 구속사적인 성서학적으로 보고 누구는 선교학적으로나 실천신학적으로 교육학적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고 적용합니다. 그러한 다각적 해석은 틀린것이 아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토대가 됩니다. 본인의 생각이나 배운 범위를 넘어 검증하시고 확인하시고 공부하시고 넓어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