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 호코지 종명사건에서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군신풍락君臣豊樂 국가안강國家安康" 입니다. 뜻은 "임금과 신하가 즐겁고 풍요로우며 나라가 평안하고 튼튼하다" 라는 것이지만, 막부는 도요토미豊臣의 한자음인 풍豊과 신臣은 붙여놓고 왜 이에야스家康의 한자음인 가家와 강康은 떼놓았느냐, 이것은 이에야스를 물리치고 도요토미가 군림하겠다는 뜻이냐?"라고 억지 논리를 펴 도요토미를 공격할 형식적인 명분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명분일 뿐, 실제로는 도쿠가와 가문에게 권력을 빼앗겨 75만석으로 규모가 줄어든 도요토미 가문이 10만의 낭인 병력을 모으며 막부에 대적할 준비를 할 정도로 심각하게 느끼고 있던 위기감, 그리고 다른 다이묘들과 달리 히데요시 시절의 위광으로 우대신이라는 부총리급 관직까지 얻어 막부에 충성하지 않고 직간접적으로 정국에 불안 요소가 된 도요토미 가문에 대한 막부의 적대감이 합쳐져 극에 달한 것이 오사카 공방전의 주된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란파-y1w5 ай бұрын
전쟁터에서 적의 말을 듣는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습니다. 오사카성 방어가 워낙 튼튼히 우주방어급으로 버티기를 했으면 아마 도쿠가와가 후퇴했을꺼라고도 함
@colt70575 ай бұрын
적을 믿는 자 죽어 마땅하다 -도쿠가와이에야스-
@LFD-ls7li5 ай бұрын
휴전중인 국가에서 적국의 말을 숭상하는 무리가 국가 최다의석인 병신국가가 있다?
@빅브라더스-l4v2 ай бұрын
일본인은 정직하다....썩열이가.
@newton90475 ай бұрын
'씨네모리 업로드 알림이 온 뒤에야 주말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제겐 씨네모리가 토요명화고 주말의 명화입니다. 매주 감사합니다!!!
@말이중요해요5 ай бұрын
평화 떠벌리며 해자를 메우는 것은 바보짓... ... 지금 우리도.....
@갱국-l7h4 ай бұрын
역사는 반복된다ㅋㅋㅋㅋㅋㅋ
@펨코유저4 ай бұрын
어허 민주당욕하지마삼
@호연-r6o4 ай бұрын
@@펨코유저 노무현이 계획해 두었던 k2 흑표 전차 790대를 이명박이 200대로 줄여서 그돈 강바닥에 쳐넣었지. 누구 아가리로 들어 간지 모르곘지만.....우리들식 국방력 강화인가???ㅋㅋㅋㅋ
@송명진-q1l4 ай бұрын
아재요 그 .... 좀 안쓰면 안됨?
@캠핑조아-k5g4 ай бұрын
@@펨코유저 그러게 말입니다. 노무현 문재인은 평화를 왜치며 뒤로는 국방비 예산과 과학투자에 많은 증액및 투자를 하는데 국힘정권만 되면 북한과 대립뿐만아니라 국제정세에 고립을 자초하며 국방비와 과학투자는 증액은 커녕 줄이고 있으니 큰일이네요. 팩트니 댓글달기전에 국방비 R&D예산을 비교하시고 다시길 ^^
@릴리아-w3l5 ай бұрын
히데요리의 몰락엔 중요한 부분마다 요도도노라는 여자의 의견이 관여해버렸죠... 계집이 울면 나라가 망해버리는...
@유튜브까마귀5 ай бұрын
복불복임 반대로 유럽에선 남편이 나라 망치던 거 마누라가 남편 숙청하고 복구한 사례도 있어서
@릴리아-w3l5 ай бұрын
@@유튜브까마귀 그런 사례보다 암탉이 울어서 나라 망하는 사례가 훨씬 많죠...그리고 양보해서 그게 아니더라도 그럼 동양계집은 닫는게 맞는듯ㅇㅇ
@miro02155 ай бұрын
참고로 사나다 유키무라의 형은 이에야스의 다이묘가 되고 사나다 가문은 메이지 유신때 백작?인가 작위를 받음... 사나다 유키무라의 셋째 아들은 살아남고 딸들은 결혼을 다들 잘 했다고 합니다....명장의 핏줄이라서
@moratanco40135 ай бұрын
사나다 노부유키 ㅋㅋ
@place015 ай бұрын
사나다 유키무라의 형 사나다 노부유키는 물론 동군에 가담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시다 미츠나리하고 상당히 친했습니다. 둘이 서로 편지도 주고 받고 거의 찐친이었던 모양. 운명의 갈림길에서 어쩔 수 없이 반대편에 섰지만요. 아마 노부유키는 아버지와 동생을 목숨만 살려준 채 종신 유배시킨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감사와 원망을 동시에 갖고 있었을 듯
@phantasm38765 ай бұрын
7:00 영화 묘사대로면 주인공이 제안한 전술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대로면 진짜 난공불락의 성이라 수성전을 하는 게 맞았음
@jorde83335 ай бұрын
그런데 수성전도 답이 없는게 10만의 낭인들이 죽치고 앉아서 오사카성의 모든 돈이 다 탕진되고 있는상황이었죠.
@michaeljung43985 ай бұрын
낭인들 합해서 10만명... 속전속결이거나 초반에 승기를 잡아야 함. 낭인들이 얼마나 충성을 할지는 미지수. 장기전으로 가서 정세가 불리해 지면 낭인들이 먼저 내부에서 와해되거나 낭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듯.
@가랑유출자료5 ай бұрын
↸🏣
@안영찬-c7t3 ай бұрын
낭인하고 도쿠가와군하고 부딫혀서 시간을 범 + 낭인과 도쿠가와군 숫자 줄임 완전 럭키비키자나?!
@미스터킴-c4p3 ай бұрын
그 10만명이 도요토미 가문의 직속병사라면 수성전이 맞다고 보지만, 아무래도 여기저기서 고용한 낭인들이다보니 지휘부도 딜레마가 상당했을듯
@유석민-o4g5 ай бұрын
오사카성전투를 배경으로한 영화가 있었군요~~ 오늘은 역사적 기록이 제각각이라,후손들을 위한 열린결말 맨트에서 빵 터졌습니다 ㅎㅎ
@cube68084 ай бұрын
쌀로 돈으로 평화를 산다는 게 얼마나 부질 없다는 건...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무장해제하고 회담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거 그건 추종이고 굴욕이지 평화가 아님. 평화를 누리고 싶으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님.
@상진박-u1k3 ай бұрын
그니까요. 일본과도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데 쩍벌이가 쪽발이가 되어 버리다니.
@수락산-b5j3 ай бұрын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평화는 친하게 지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힘이 강해야 평화가 유지된다. 그러므로 헬스클럽을 가야 함.
@byunpks3 ай бұрын
준비는 하는데 병사 개죽음 당해서 관심도 안가져주는 나라인데 지킬 맘 생기겠냐
@상진박-u1k3 ай бұрын
@@cube6808 이명박 ? 면제 항교안 담마진 면제.. 윤석렬 부동시 면제 노무현 이낙연 모두 육군 만기제대 문재인 ..특전사 만기제대 전쟁불사 외치는것들이 지 새기들은 다 짱박아놓고 남의 아들가지고 전쟁불사라네
@화가나면춤을추는고양2 ай бұрын
@@수락산-b5j그래서 자국 해군을 일장기 앞에서 경례하게 시키냐
@미제드론5 ай бұрын
6:00 이건 그냥 사카이 철포를 크기만 늘려놓은것 같은데요 ㅋㅋ 오다 토요토미 도쿠가와를 다 하셨던 분이 원래는 사나다 유키무라도 하셨었네요 10무사 중에는 아들을 동반한 검객에서 자주 나온 양반들도 보이는군요
@jorde83335 ай бұрын
에도막부의 제1공신은 요도도노 임. 오로지 모든상황에서 히데요리 죽을까봐 모든 패를 다 건네주고 이에야스가 하라는데로 질질끌려가다 아무것도 못하고 함락...
@Amy-jh1jd5 ай бұрын
저번주에 나고야성 갔다왔는데 신기하네요... 저도 거기서 죽을뻔하긴 했음 너무 더워서 ㅋㅋ
@Louis-vf1rg5 ай бұрын
와 1분만에 보게되다니 영광입니다!
@나다-u8g4u5 ай бұрын
진짜 이 정도면 요도도노가 자기 부모님 복수하려고 일부러 트롤짓 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
@BigRussianGrizzly5 ай бұрын
동의함
@관경5 ай бұрын
요도도노는, 일평생 자신이 몸 담으며 머물던 세 곳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점령되었다고 합니다에 1. 유년기 아버지 아사이 나가마사의 성(아사이 나가마사의 부인 오이치의 오빠 오다 노부나가 군이 공격 / 이유는 아사이 나가마사가 먼저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함). 원래 오이치는 딸 3명과 함께 자결하려고 했지만 기노시타 도키치로(후일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들 4 모녀를 구해냅니다. 하지만 아사이 나가마사는 성주로서 당당히 할복자결 2. 외삼촌 오다 노부나가 사후, 오이치가 시바타 가츠이에에게 재혼한 후.... 요도도노도 어머니를 따라 가츠이에의 근거지에 머물다가... 하시바 히데요시가 가츠이에를 이기면서 또 다시 머물던 성이 무너짐.... 오이치와 가츠이에 부부는 할복자결하지만, 요도도노와 두 동생들 세 자매는 히데요시에게 의지함... 원래 히데요시가 주군의 여동생 오이치를 연모했는데, 아무리 오다가 히데요시를 아껴도 신분 상의 차이 혈통 때문에 안 되었죠... 하지만 오이치의 딸 요도도노를 만난 히데요시는 그녀를 부인으로 삼지요... 3. 마지막.. 오사카 성.... 아들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 성입니다.... 운명 팔자가 참 기구하네요. 일평생 자신이 머문 성 세 곳이 다 적에게 점령당하다니...
@서제골-f9g5 ай бұрын
머리카락인줄 알고 닦았네ㅋ
@박재한뚜껑5 ай бұрын
오늘의 교훈: 전시 중 적들과 타협하자는 놈들이야 말로 진정한 적이다.
@user-yc2hg4pq4s5 ай бұрын
오사카 전투 내막 보면 진짜 요도도노 아줌니 암걸릴 정도로 트롤짓만 일삼음ㅋㅋㅋㅋ
@dokuganryumasamune5 ай бұрын
히데요시는 사실 퐁퐁남의 원조격이 아닐까
@四月一日君尋-i3g5 ай бұрын
히데요시가 요도도노를 아내로 삼았을때 보면 일본 제일의 미녀 였다고 함. 그런데 정치나 전쟁에 대해서는 무지했다고 함. 히데요시 사망후 자신의 아들 안위만 생각했다고 함.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지한채. (그이유는 히데요리가 태어나기전 가문을 잊기 위해 양아들을 히데요시가 받아들였는데, 히데요리가 태어나자마자 양아들이 필요 없어졌다고 할복을 명하고 그양아들의 집안도 멸문시켜버림. 그런 상황을 지켜본 요도도노 입장에서 자신의 아들도 언제 그런 최후를 맞을지 모르기에 강박관념에 시달렸다고 함.)
@하나둘-l7h5 ай бұрын
@@四月一日君尋-i3g조카에서 양자가 되어 관백 자리를 받은 도요토미 히데츠구가 친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태어났다고 숙청됐는데 친아들도 죽일까봐 걱정을 한다? 친아들에게 물려주겠다고 잘하고 있던 양자 히데츠구를 히데요시가 죽였는데요?
@홍연경-y6g5 ай бұрын
여동생들인 하츠나 고우가 남편 휘어잡고 살면서 가문도 이끌어나간거보면 저 아자이3자매가 절대 머리나쁘고,성격도 꽉 막힌 그런 사람들은 아님. 요도기미도 아가씨였던 챠챠시절때나 히데요시에 측실시절땐 쫀심은 쎄지만 성격은 쾌활하고 머리는 기민한 전형적인 귀족여자였음. 그런데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오사카성에 틀여박혀있으면서 사람이 머리는 나쁜데 고집만쎈 귀부인이 되어버림. 아마 주위에 아부만 떠는 시녀들만 있다보니 그리된듯.
@관경5 ай бұрын
@@하나둘-l7h 만에... 만에 하나... 히데요시가 다른 첩과의 사이에서도 또 다른 아들을 두고, 히데요시가 그 아들을 더 이뻐할 경우에 말이죠... 아마도 히데츠구 숙청에는 요도도노의 배갯밑 송사도 간접적이나마 영향을 끼쳤겠죠.... 그런만큼 요도도노는 또 다른 누군가가 나올까봐 두려워했을 수도 있지만... 히데요시는 더 이상 자녀를 두지 못하고 몇 년 후 곧 세상을 뜨죠
@고구려-x1h5 ай бұрын
토요토미 가문과 이에야스 가문의 일본내전은 이곳에서도 예전에 다뤘던 스페인내전과 많이 닮았습니다. 공화당 정부군은 보유한 지휘관들 능력과 병력전체의 질적인 면에서 국민당 반군 보다 뒤졌죠. 내전이 시작된 후 스페인군 장교들 상당수가 반군 측에 가담해 만성적인 지휘관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이 일본내전도 보면 더 많은 다이묘들이 이에야스 쪽에 가담했으니 숫적으로나 화력적으로나 이에야스쪽이 월등히 우세고 반면 토요토미쪽은 숫적으로나 화력적으로나 분명한 열세죠. 스페인내전의 공화당정부는 여러사상을 가진 세력이 한가지 목적을 위해 뭉쳤지만 결국 내전 내내 의견분열을 보이며 그런 분열은 내전 내내 공화당군의 군사적 역량을 발휘하는 데도 악재로 작용합니다. 반면 국민당 반군은 최고사령관 프랑코의 지휘 하에 똘똘 뭉쳤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강력한 지원 하에 무자비하게 적군을 몰아붙이며 전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고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죠. 이 일본내전도 토요토미가문 쪽은 자신들이 정통성 있는 주군이라 하지만 이 영화에도 나오듯이 양가문의 생존을 건 건곤일척의 결전을 앞둔 상황에서도 수뇌부들 사이에 의견이 통일되지 못하고 난공불락의 요새인 오사카성에 의지해 수성전으로 제법 버티진 했지만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요도도노의 쓸데없는 고집과 그로 인한 정치적 군사적 역량의 저하는 결국 토요토미 가문의 최후가 씁쓸하게 끝나는 원인중 하나가 되었죠.
@hl92465 ай бұрын
일정부분 맞는 말씀인데요 내전 초기에 지휘관의 규모면에서 공화파가 열세였다는 부분은 잘못된 통념이라고 할까요? 절반이 조금 넘는 장성급 장교들이 공화파에 잔류하기도 했고요 일례로는 대위였던 프랑코의 사촌도 반란군 합류에 거부해서 총살당하기도 하는등 나름대로 공화파에 의리를 지킨 장교의 숫자도 꽤 많았습니다 다만 장비면이나 분열의 양상에서 결국 패배한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경-b6d5 ай бұрын
에도를 중심으로 도쿠가와 막부를 따르는 동일본과 오사카를 중심으로 토요토미 가문을 따르는 서일본으로 분열이 되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 갔을까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이 승리하면서 천하 패권을 잡았지만요.
@user-mz3ho4cm8v5 ай бұрын
정통 일본인들이 이긴거죠.관서는 부여씨들을 중심으로 혼혈들이 대다수였어요.
@고대경-b6d5 ай бұрын
@@user-mz3ho4cm8v 한반도와 가까운 관서는 도래인 혈통의 비율이 높고 관동은 낮다고 봐야할까요?
@SGT_Bong5 ай бұрын
매주 일요일 아침 정말 감사합니다!!
@lynettebishop95865 ай бұрын
항상 이 당시 전쟁 히스토리 보면 ㅋㅋ 마치 각각 다 평행세계 떠오더군요 ㅋㅋ
@이태원-u5r5 ай бұрын
주연배우가 '13인의 자객'에 등장했던 그분이네요. 캐릭터도 그렇고 액션도 아주 인상깊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젊은 시절에도 특유의 눈 부라림과 목소리는 여전하셨네ㅎㅎ
@timji1405 ай бұрын
항상 감사합니다
@이도형-x9x5 ай бұрын
호코지에서는 저 종명의 문제시 되는 부분을 희게 칠했다고 합니다 나름 관광 포인트라서
@강병록-s2c5 ай бұрын
히데요리가 이시다의 친자 라는 말이 그 당시에 공공연하게 떠들썩 했었습니다.
@ebonytears67145 ай бұрын
이시다가 아니라 오노 하루나가.
@place015 ай бұрын
@@ebonytears6714미츠나리와 하루나가 둘 다 설이 있더라구요. 심지어 이에야스설까지 😅
@阿斯啓明5 ай бұрын
오사카성 정말 거대한 성이였죠. 당시 오사카성의 규모가 지금 오사카성의 4배였고 해자도 지금은 2개지만 당시에는 3개
@Hambak-Island5 ай бұрын
아 진짜 너무 재밌네요 ㅋ 사나다 유키무라 흥미있으신분들은 2016년 영화 사나다10용사 2016년 대하드라마 사나다마루 추천드립니다~
@garage28035 ай бұрын
일요일 최고의 선택🎉
@klausfeuermann38255 ай бұрын
7:37 요도가 막히는 느낌...
@이천쌀벌레5 ай бұрын
일요일 오전엔 출발비디오 여행보단 씨네모리지
@TV-yt9cn3 ай бұрын
3:33 저 장면에서 호랑이가 나오는데 실제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에서 난생 처음보는 호랑이에 놀라 호랑이 사냥을 즐겨했다고 합니다.
@파우스트-t6i5 ай бұрын
사무라이 정신이 많이 상실되기 시작한 전투였죠 당시 오사카에 있던 히데요시 잔존 세력들은 세키가하라 전투로 몰락해 떠돌이 다이묘가 된 사무라이들이나 돈만 주면 사람 죽이는 칼잡이들을 돈을주고 오사카성을 수비하게 했는데 이런 오합지졸 마저도 여자들이 전투에 간섭해서는 이러쿵 저러쿵 탁상공론이나 하는 바람에 제대로 힘도 못써보고 허무하게 패배했던 전투..
@dokuganryumasamune5 ай бұрын
애초에 사무라이 정신이니 하는 것도 에도 시대에 성리학 보급되면서 생긴 말인데 뭔 소리지
@홍연경-y6g5 ай бұрын
사무라이 정신 즉 부시도라는건 원래부터 없던걸 에도시대때 프로파간다로 만든겁니다. 저 시대 사무라이는 지금으로치면 회사원이랑 별반 다를게 없어요. 영주와 친족관계로 묶여있는 후다이들은 그게 안되지만 후다이가신들이 아닌 사무라이들은 다른 가문에서 녹봉 더 준다 그러믄 언제든지 옮겨갔습니다. 원 소속 가문에 피해를 끼치고 나오는것만 아니면 별반 문제없 던게 사무라이에 이직이었습니다.
@dokuganryumasamune5 ай бұрын
@@홍연경-y6g 사무라이라는 계층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간전영년사재법 실시하면서 땅 갖게 된 애들이 땅 빌려주고 땅 지켜줄 애들 모으면서 생긴 건데 미디어로만 역사 배운 애들 수준이 그렇지 뭐
@신종욱-z4e5 ай бұрын
싸울아비 가 사무라이의 어원이라는 설도 있음 도래인들의 문화를 받아 들여 만들어진 무사계층이라는 설
@에엒따-s3c5 ай бұрын
@@신종욱-z4e 그냥 우리나라에서 누가 만든 이야기 입니다
@net97695 ай бұрын
이 영화에서 마사유키 역으로 등장하신 마츠타카 히로키 (1942~2017) 는 2009년 나오에 카네츠구의 일대기를 그린 천지인 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으로 나오셨습니다. 것도 머리에 혹이 난 너구리 야쿠자 두목 포스를 풍기면서 말입니다. 실제 오사카 성 전투 당시 이에야스가 제일 신경쓰였던건 히데요리의 아내로 시집간 손녀 센히메 가 다칠까 노심처사 했다고하지요
@ebonytears67145 ай бұрын
마츠카타 히로키(松方弘樹)
@place015 ай бұрын
마사유키가 아니라 유키무라 역을 하셨죠.
@Empire_KOREA_18975 ай бұрын
13:12 영화 자체가 거의 픽션에 가깝다는 얘기를 듣고 저 영화에 나온 내용들을 맹신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영화를 통해서 저 시절의 일본 역사가 어땠는지는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재밌게 시청하고 갑니다. 좋은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제드론5 ай бұрын
무구 건축 고증은 괜찮은 편입니다. 내용이 산으로 가서 그렇죠.
@말이중요해요4 ай бұрын
@@Empire_KOREA_1897 큰 줄기는 사실입니다.
@Mark_Kim_himself5 ай бұрын
일본에서 만든 사나다마루 요새 관련 다큐를 봤는데 뭔가 좀 이해가 안되더군요. 천수각 타격이 가능한 화포가 있었는데 어째서 사나다마루 공략에 써먹질 않았던걸까요.
@user-mz3ho4cm8v5 ай бұрын
화포가 그만한 성능이 못되었던거죠.게다가 겨울!화약이 제힘을 못쓰죠.
@goodday-w9s2 ай бұрын
지금 이야 정밀타격이 가능하지만 저때 화포는 어디로 떨어질지 모름..마구잡이로 쏘다가 우연히 한발 들어갔다고 봐야죠
@제임수나5 ай бұрын
오늘도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deadslow48855 ай бұрын
평화라는 사탕발림에 현혹되어 적을 이롭게 하면 패망한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겁니다.
@user-tp2sx5it3iАй бұрын
대단히 코메디인게 애비는 평화를 싫어해서 남의 나라까지 쳐들어와 그 곳마저 쑥대밭으로 쳐 만든 주제에 아들은 평화를 갈구한다? 도요토미 가문의 내로남불 오집니다. 조선 사람들은 마구 죽여도 되고 자기 가문은 죽이면 안되고? 이게 무슨 경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09prime14 күн бұрын
그재앙은 비겁한 평화가 낫다고 했죠.ㅋㅋ 국민들에 대가리에 인문학이 없어서 발생한 비극이죠.
@인천야구-j2g5 ай бұрын
유키무라 배우가 이에야스 전문 배우네요😂
@M0T495 ай бұрын
이에야스 배우 목소리가 아들을 동반한 검객에 나오는 오가미 잇토 같은데요? ㅋㅋ 아니 무사시 했던 배우같은데
@황근출-z7l5 ай бұрын
국방티비 토전사 일본편 마지막에 나오는 부분인데 이걸 보니 이해가 간다... 미친 해자 저 긴걸 다 메웠다고??
@rlee48055 ай бұрын
영상 언제나 감사합니다
@람자5 ай бұрын
오늘도 즐감할께요
@아일랜드-t7v5 ай бұрын
이 영화에서 사나다 유키무라 역을 맡은 배우는 나중에 NHK 대하드라마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을 맡게됩니다 ㅋㅋ
@프맨얍5 ай бұрын
일요일 오전 필수코너
@fishonbible4 ай бұрын
최근 오사카성 여행 다녀와서 오사카전투에 대해 찾아보고 있었어요. 영상에도 말씀하셨지만 오사카전투를 다루는 영화는 정말 별로 안보이더라고요... 이야기는 흥미로운데 왜...? 암튼 영화 소개해주신거 감사합니다.
@루카치-u3m5 ай бұрын
다른 나라 영화긴 하지만.. 독일 영화 슈타우펜베르크도 찾아서 다뤄주실 수 있을까요? (작전명 발키리 말고요...)
@THOMAS-ep5pl5 ай бұрын
와.. 이런 영화가 있었군요. 사나다마루 예고편이었군요.
@Ting-z2j2 ай бұрын
헐 가마탄 모습 :15초 고구려 벽화의 인물상과 99.9%
@Montana-b2d5 ай бұрын
총사령관은 전쟁한번 안해본 히데요리 그 위에는 실제 결정권은 요도도노... 오사카성 방어력 하나만 믿고 무조건 수성전 하자고 하는것만 봐도....
@각궁이Gakgung25 ай бұрын
적의 말을 듣는 자는 멍청하다라는 말이 참😂
@관경5 ай бұрын
계집의 말을 모두 다 듣는 남자도 멍청하다고 봐야 겠습니다. 비록 어머니지만 계집은 계집이죠. 주군인 아들이 직접 부하들을 독려하는 것을 막다니 참.... 어이상실
@no894235 ай бұрын
오사카 전투 당시 도쿠가와군 45만은 영화상 과장이였죠 20만이 정설입니다.
@남산코끼리-l3e5 ай бұрын
그죠 도요토미는 10~12만 정도
@no894235 ай бұрын
@@남산코끼리-l3e 네 잘아시네요 도요토미군은 약10만
@남산코끼리-l3e5 ай бұрын
@@no89423 네 저 시절 덕후라... 아침에 이 리뷰영상보고 첨보는거라 좋아서 벌떡 일어났다가 너무 영화가 엉터리라 짜증만 나네요 😂
@dkvhd2315 ай бұрын
01:33 홍석천 폼 미쳤다
@jaehwanan75615 ай бұрын
히데노리는 정상인이었는데 엄마때문에....... 본인이 직접 전쟁터나간다는걸 위험하다고 엄마가 막았으니 말다했죠
@관경5 ай бұрын
그래서.... 원래 성군의 치세에는 궁중에 대비가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비도 인간인지라 친정 일가붙이가 있고, 그러니 자꾸 아들인 왕의 정치에 간섭하기 때문입니다. 대비들이 드그덕 드그덕 거리는 궁궐은 망조가 든 궁궐입니다. 그러니까 오죽하면 옛날 한무제는, 어린 아들이 태어나고// 그 아들이 장차 황제가 될 전망이니, 그 황제의 생모 구익 부인을 사사했겠습니까.. 아들이 황제가 되었는데 어머니가 살아 있으면 올바른 국정에 방해가 된다는 의미이죠. 모든 대비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비 자리에 오르면 이상해진 경우 많습니다.
@yahoojy5 ай бұрын
군주는 그걸 극복하고 자기 신념대로 움직일줄 알아야 진정한 군주지요.. 일반인이 결혼해서도 자기 어머니한테 휘둘리면 며느리가 죽어나가고 가정이 난리나는데 하물며 국가단위에서야..그냥 군주로서 자질이 없는거임
@관경5 ай бұрын
@@yahoojy 가장 좋은 건, 아들이 왕 되기 전에 어머니가 자연사 해 주시는 거죠. 아니면 아들이 왕 된 후에는 아예 아들과 인연을 끊던가요.
@관경5 ай бұрын
@@yahoojy 조선 성종 치세가 최악이었습니다. 할머니 세조 비 정희왕후, 친어머니 인수대비, 일찍 요절한 예종비 안순왕후 까지 자그마치 대비가 2명도 아니고 3명.... 망조가 들었지요. 암탉이 홰를 치니 수탉의 나라 이조가 망조가 들지요. 구한말 민비도 그렇구요.
@user-mz3ho4cm8v5 ай бұрын
@@관경한무제...대단한 인물이죠.저의 시조분을 그 양반이 발탁해서 성까지 내렸으니.
@유정덕-u4x5 ай бұрын
아니 철사장도 배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ata20235 ай бұрын
⭕ 이번 영화도 잘 보고갑니다. 🎴 앞으로도 좋은 영화 소개. 부탁드립니다.
@Burlington-xb5ss5 ай бұрын
무사만 많았지 책사가 없었던 오사카성 측이었읍니다.
@danjjakchinguTV4 ай бұрын
'사나다 유키무라의 모략'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fekill3535 ай бұрын
원숭이라는 별명을 가질정도로 빈약한 체구의 히데요시 하지만 히데요리는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한 거구의 풍체를 지니고 있었고 그래서 당시나 지금이나 히데요리는 뻐꾸기 새끼 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는…
@미제드론5 ай бұрын
외할아버지 아사이 나가마사가 상당한 거구였다고 하고 외할머니 오이치 부인도 당시 일본에서는 장신이었던 노부나가의 여동생이니 요도기미도 여성 중에서 장신이고 외탁을 했다면 히데요리 키 190 설도 아주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다만 말씀대로 히데요시의 수많은 측실중에 요도에게서만 아들 둘이 나온점은 의심할만 하죠. 여기서 중요한건 아마도 히데요시는 누구 어느놈의 씨이건 도요토미 가문을 이을 아들이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을수도 있습니다. 일본 역사에서 의붓 아들에게 가속을 잇게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죠.
@조영민-t4y3 ай бұрын
가토는 매독으로 사망했으며 줄리아는 이에아스에 궁인으로 들어가서 신앙을 지키다 귀향가서 병사했으며 이에아스는 작은아들을 편에하는 며누리에게서 큰손자를지켜 힘을실어줌니다 진짜 역사왜곡 환타지네요. 진짜웃낀건 성을지킨다고 10명이 유격훈련 하는건 코메디네요 일본영화가 망해가는덴 이유가 있네요😊😊
@삼촌궁녀5 ай бұрын
사나다마루의 축소편이군요 ^^ 그건 그렇고 사나다 유키무라는 언제 궁예가 된거죠? ㅋ
@전차-d9f5 ай бұрын
바보 요도도노ㅡㅡ 이 영화 어디서 다볼수 있죠?
@hlsylsify12 күн бұрын
70년대 홍콩 소림 무술 영화 보는 것 같았어요. 뭔가 나사가 많이 빠진 듯한 영화. 그래도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배경음악 선택이 탁월하십니다.
@지마-c2k5 ай бұрын
2분전 못참겠다 일요일은 씨네모리
@Berserker1955 ай бұрын
실제 가토 기요마사는 히데요리와 이에야스의 만남을 주선한 다음에 3개월 뒤에 병사 했다고 합니다만, 이에야스에게 독살됐다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네요.
@남센터느림5 ай бұрын
저때 일본사회에서 군대나 나랏일하는사람들은 언제누구한테 뒤져도이상하지 않았을테니까요
@klausfeuermann38255 ай бұрын
3:03 이쯤되면...할복을 요구하던가, 항복한 자들을 모조리 죽이던가...
@redstrida5 ай бұрын
열린 결말의 역사 기록 때문에 후손들이 상상력을 많이 발휘해서 각종 창작물이 넘치나봅니다... ㅎㅎ
@truth14725 ай бұрын
거품 경제 시절에 돈이 넘쳤으니까요! 만화가 많은 것도 재벌들이 지원을 해서 번성을 한거죠.
@Ggonya_5 ай бұрын
저런 창작물이 발생되니, 상업적으로도 돈도벌고 세계적으로도 자신들의 역사를 알려서 1석2조이죠 우리나라도 좀 저렇게했으면 얼마나좋았을까
@미스랜더4 ай бұрын
종명사건은 '국가안강(國家安康) 군신풍락(君臣豊樂)'이라는 문구를 '덕천가강'의 가와 강을 쪼개서 저주하고 '풍신수길'의 풍신이 즐겁다고 기원한다는 명분으로 왜곡(?)한 사건입니다. -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 화살로 쏘아죽인다는 해석은 어디서 나온거죠?
@joonkim30995 ай бұрын
일본 사극 장르를 볼 때 마다 병사들의 갑주나 무기가 삐까번쩍한 걸 보면 참 부럽습니다 포졸복에 장난감 같이 생긴 당파 들고 전쟁터에 나가는 울나라 사극 보면 한 숨이 나오곤 했는데 울나라도 소품에 좀 각 잡고 투자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truth14725 ай бұрын
당파는 다행이죠. 칼을 들고 다닙니다. 심지어는 마상에서도 칼질을 해요.
@dhjeon11635 ай бұрын
일본은 보신전쟁다루는 드라마 첫장면이 미국 남북전쟁으로 시작하더라구요 거기전쟁끝나고 수출한 무기가 보신전쟁때 일본으로 수출되서 그거들고 싸웠다고 애초에 투자하는 스케일이 틀려요 ㅎ
@홍크-n9o5 ай бұрын
실용성이고 나발이고 결국에 서양 풀메이트 아머랑 동급으로 간지나는게 일본 요루이
@미제드론5 ай бұрын
@@홍크-n9o 풀 플레이트 아머랑 오요로이가 동급 간지라니 지능형 반일인가
@nowaymf5 ай бұрын
20세기 사무라이 영화에 일본정부가 많이 투자해놔서 지금도 그때 당시 만든 옷과 갑주를 재사용 하고 있죠
@michaeljung43985 ай бұрын
휴전 협정을 할때 해자, 자기의 방어벽을 없에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음. 김정은이 핵폐기를 안하는 이유가 핵이 최고의 방어 수단이기 때문.
@레오나르도빈치5 ай бұрын
이에야스가 어떻게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은만큼 암살당했다는게 더 신빙성이 있죠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는 어떻게 죽었는지가 확실하니까요
@chameleon49865 ай бұрын
역시 적의 말을 믿는 건 멍청한 짓입니다...ㅎㅎ 일본 역사물은 은근히 what if(만약에?)를 자극하는 것이 많군요 씨네모리님!!
@roaringlion90835 ай бұрын
180넘는 장신에 120킬로가 넘는 거구였던 히데요리를 회담에서 만나보고 깜짝놀란 이에야스가 히데요리의 죽음을 결정했다는 말이 있음
@user-tp2sx5it3iАй бұрын
임진왜란을 일으킨 죄에 대한 아주 정당한 업보였다. 도요토미 가문은 언젠가는 반드시 멸망시켜야만 했다. 정발 윤흥신 송상현 이 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은 어떻게 속죄할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이 이 영화라 생각한다.
@plmdh361965 ай бұрын
노홍철씨가 나오네요?ㅎㅎ
@GO-zh8if5 ай бұрын
저 사나다 사마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쇼군1980 에서 나오는 오미도노네 ~😁
@truth14725 ай бұрын
일본 역사 기록은 번마다 다르답니다. 임진왜란 기록이 일본과 우리의 기록이 다르듯이 다릅니다. 상호 검증이 필요합니다.
@kunufelix5 ай бұрын
천수각이 멋있긴 한데 전쟁터에서는 그닥인 이유가 나오네. 공간이 비좁고 목재 바닥이라 수비측 대포를 설치 못하는데 공격은 얻어걸리라는 심정으로 대포 갈겨도 두드려 맞고..세이난전쟁 때 천수각 없는 구마모토 성을 신식무기 가지고도 사이고 다카모리가 함락에 실패했는데.
@excellent90205 ай бұрын
젠장 기다리고 있었다구!
@Warpick-g1k5 ай бұрын
근대 저 시기에 일본에는 도쿠가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나보네요. 메이지 유신에서 이어져 온 걸까요?
@海坊主-t7t5 ай бұрын
훗날 메이지 유신주역들이 도쿠가와 가문을 몰락시키고 정권을 잡은채 지금까지 집권주류 세력이니까요.(유신이후 총리 대부분이 죠슈,사쓰마가문)그들입장에서 도쿠가와를 묘사한겁니다
@남산코끼리-l3e5 ай бұрын
이에야스가 인질생활을 오래해서 속을 알 수 없고 음험함니다. 에도 막부 동안 교묘하게 다이묘들의 힘을 빼거나 숙청하는게 많았지요. 반대로 밝고 활기찬 히데요시는 인기가 많다네요.
@Warpick-g1k5 ай бұрын
@@남산코끼리-l3e 기꺼이 주신 정보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만 역시 한국사에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보다 이득이 되었던건 이에야스여서 마음이 편하진 않네요.
@남산코끼리-l3e5 ай бұрын
@@Warpick-g1k 원래 잘나가면 안티도 생기는법 아니겠습니까. 전국시대부터 메이지유신~태평양전쟁까지 이어지는 일본사는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Warpick-g1k5 ай бұрын
@@남산코끼리-l3e 공감합니다. 드라마틱하죠. 무시받던 섬나라에서 단숨에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욕망에 굴복하여 제국주의의 길을 걷고 처절한 몰락으로 종지부를 찍는 일본의 근대사는 배울점도 많고 아주 흥미롭습니다.
히데요리가 비록 어린 편인 19지만 어디까지나 천하를 제패했던 도요토미 가문의 적자, 도요토미 가의 영향력은 여전히 일본에서 강력했고 그 수장인 히데요리는 이에야스에게 눈엣가시였죠
@이지은-v2r2z5 ай бұрын
고니시 유키나가 소서행장은 조선에서 죽는게 더나았을듯.. 살아서 겨우 도망쳤더니 줄잘못서서 허무하게 죽었으니....
@gerughigiulio91903 ай бұрын
어쩌다보니 서군에 참전하게 된 시마즈 요시히로 입장에서는 서군의 작전 회의장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면상을 볼때마다 열불이 솟아오를 듯... 이시다 미츠나리가 시마즈 요시히로 보고 어째서 꼴랑 1500명 데리고 참전했냐고 비웃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그 자리에 있는 누구 때문이니...
@redprisoner5 ай бұрын
5:11 대충보면 이에야스 치켜세우는 글씨 아닌가 이에야스를 우복야에 원래 제일의 신하에 끝에는 공으로 칭해서 종에 새겨놓은 걸 보면?
@박재한뚜껑5 ай бұрын
사나다의 돌격은 그 이에야스조차 최후를 직감하고 할복을 시도할 정도로 맹렬했죠 사나다는 역사를 바꿀뻔했죠
@ISAMIT-184 ай бұрын
이에야스는 그짓만 3번째임. 독립때1번 다케다에 1번 여기서 1번 ㅋㅋ
@에라이-t9r5 ай бұрын
적의 말을 믿는 자는 죽어 마땅하다.-덕천가강
@user-mz3ho4cm8v5 ай бұрын
직접 칼로 사형수를 참수하며...천하는 이렇게 지키는거다...라고 2대 쇼군에게 말하죠.
@방랑가객5 ай бұрын
요도 할망은 어떻게 망하는 길로만 가는 지.
@DS-nl5pp5 ай бұрын
영화라서 픽션 요소도 있네요. 가토 암살 실제 역사가 아닌 거 같네요
@한성수-b2i3 ай бұрын
유키무라는 오사카성 전투 이후에 홀연히 떠나 혼자 살다가 병들어 죽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관경5 ай бұрын
원래 성군의 치세에는 궁중에 대비가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비도 인간인지라 친정 일가붙이가 있고, 그러니 자꾸 아들인 왕의 정치에 간섭하기 때문입니다. 대비들이 드그덕 드그덕 거리는 궁궐은 망조가 든 궁궐입니다. 그러니까 오죽하면 옛날 한무제는, 어린 아들이 태어나고// 그 아들이 장차 황제가 될 전망이니, 그 황제의 생모 구익 부인을 사사했겠습니까.. 아들이 황제가 되었는데 어머니가 살아 있으면 올바른 국정에 방해가 된다는 의미이죠. 모든 대비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비 자리에 오르면 이상해진 경우 많습니다.
사나다 가문이랑 우에스기 가문이 임진왜란 참전했다면 어케 됬을라나 그당시 도쿠가와 견제할려고 본토에 남겨놓았지만...
@truth14725 ай бұрын
결과는 같아요.
@cnhlr62175 ай бұрын
큰 의미는 없을 겁니다. 명이 참전하고, 전라도가 아닌 수도를 먼저 점령한다던 일본의 대전략이 그대로인 이상 1~2만의 차이는 크게 없을 겁니다.
@미제드론5 ай бұрын
동북 끄트머리 영주 다테 마사무네도 얼마 못데리고 왔죠 아마 본인도 죽을 맛이엇을 겁니다. 그래서 슬슬 눈치보면서 금방 돌아와 버리죠.
@dokuganryumasamune5 ай бұрын
우에스기 가문도 참전하긴 했는데 파밍만 실컷 하고 돌아옴
@place015 ай бұрын
임진년 때 안 건너온 다이묘들은 자기 영지에서 꿀 빨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전부 다 히젠 나고야에 와서 스탠바이 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조선 바라보면서 '건너가' 사인 떨어지면 갈 준비하고 있었다는 거죠. 사나다든 모가미든 다요. 심지어 토쿠가와 이에야스나 마에다 토시이에도 나고야 재진 중이었습니다. 솔직히 히데요시 생각에 모조리 내보내서 이길 것 같았으면 보냈겠죠. 그냥 당시 일본 상황과 수송력 한계상 못 보낼만 해서 못 보낸 것 같아요
@신종욱-z4e5 ай бұрын
문장 육문전의 사나이 사나다 유키무라 여섯개의 동전은 저승갈 노잣돈
@스파르탄뚝배기5 ай бұрын
여담으로 여기서 유키무라로 분한 배우분,이후 nhk드라마 천지인에선 이에야스로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