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Рет қаралды 73,409

인문학 브런치

인문학 브런치

Жыл бұрын

인문학브런치의 새로운 컨텐츠!
당신이 알아야 할 지식!
철학·역사·문화·예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조리해주는 인문학 브런치를 함께 해보아요!
첫번째 인문학 조리사는 철학자 도올선생입니다!
어떤 브런치를 요리하는지 들어보시죠!
🙏인문학 브런치 채널 유튜브 구독하기
👉 / @user-lt9ik4di5b
(링크 누르고 구독 버튼 클릭!)
주변에 공유하면 복 받을 겁니다 👍👍👍
●BTN불교TV 유튜브 구독하기
bit.ly/3k5nt10 (링크 누르고 구독 버튼 클릭!)

Пікірлер: 124
@user-jf9jd7je8k
@user-jf9jd7je8k Жыл бұрын
도올선생님의 객관적이고 진리에 입각한 사관에 감사드립니다. 온 주류사학이 중국과 일본이 주작한 역사를 국민에게 나르는 세상에 진리를 주시네요.
@JKJ0509
@JKJ0509 Жыл бұрын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부 지역, 내몽골 지역, 발해만 지역, 만주 지역, 한반도를 포괄했다. 고조선의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 범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만주 지역과 내몽골, 발해만 지역을,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 한반도의 서쪽 지역, 일본을 장악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본기] 2년(49) [후한서] [광무제 본기] 25년(49)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본기] 3년(55) 고구려 1대 태왕 추모왕(주몽)의 연호는 ‘다물’이다. 다물은 옛 땅을 되찾는것을 뜻하는 ‘다시 무르다, 되물리다’이다. 즉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쪽을 공략했다. 모본왕때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지역은 북경을 포함한 화북 지역이다. 그런데 요동태수가 화친을 청했다는 것은 후한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한 것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동태수이다. 고구려가 후한의 화북 지역을 공격했을때 고구려의 맞상대가 요동태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요동지역이라는 것을 뜻한다. 즉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 지역이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요동은 요나라때부터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모본왕때 후한의 요동을 공격해서 요서 지역까지 차지했고, 태조왕때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구려는 요동 지역을 두고 중국과 1진 1퇴를 반복하다가 광개토태왕때 요동을 완전히 장악한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이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할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간다.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이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진다. 북경 근처에 요동과 요서 지역이 있었던 것이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10년(488) [자치통감] 영명 6년(488) [남제서] 현재 한국의 강단 식민사학자들은 북위가 배를 타고 충청도 지역에 와서 전쟁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남제서]에는 북위가 기병 수십만을 이끌고 백제와 전쟁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 당시에는 군선 1척에 말 10마리를 싣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기병 수십만이 배를 타려면 배를 수만척이나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백제의 영토가 대륙에도 있었기 때문에 북위의 기병 수십만과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백제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동성왕이 장군들을 왕이나 후로 봉하는데 그 지역이 다 중국 땅이다. 이것만 봐도 전쟁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는 자명한 것이다. 그리고 동성왕이 장군들을 왕이나 후로 봉했다는 것은 백제 왕이 황제라는 것을 뜻한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이 위나라(북위) 군사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백제 장수들에게 관직을 수여하고 이를 남제에 통보한 국서가 나온다. 그 중 한 구절은 라는 것이다. 면중왕에서 도한왕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으로 백제 황제 수하에 서열에 따른 여러 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로 승진시켰다고 [남제서]는 말하고 있다. [송서] [백제전] [송서]에는 백제 개로왕 여경이 송나라에 라고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요청했다는 것은 윤색이고, 사실은 통보한 것이다. 흉노는 황제인 대칸이 중앙을 다스리고, 우현왕과 좌현왕이 좌우 강역을 다스렸는데, 대륙과 반도와 해양에 걸친 대제국 백제도 넓은 강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백제 임금 아래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어서 [양서] [백제 열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당서] [백제전]에는 라고 해서 백제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왕성은 한반도, 서왕성은 대륙에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요서와 일본은 물론 각지에 담로(후국)를 갖고 있던 황제국이었다. [통전] [백제전] 요서군과 진평군이 오늘날의 유성, 북평(북경) 사이라고 위치까지 표시해 놓음 [양서] [백제전] 여기에서 백제가 도읍을 대륙에서 반도로 옮긴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임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백제는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다물(담울=담으로 친 울타리, 즉 고구려 성을 뜻함)정신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담로가 있었던 것이다.
@user-jf9jd7je8k
@user-jf9jd7je8k Жыл бұрын
@@JKJ0509 정말 대단한 자료와 학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명확하여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user-lv1ht1rc7p
@user-lv1ht1rc7p Жыл бұрын
중국 고대사는 문화대혁명 시대에 다시 한족 중심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동이족의 역사를 지우고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었죠
@2eok2joemoocheonmannyeon
@2eok2joemoocheonmannyeon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 공자 그놈 자체가 나라를 위해서는 고대 역사는 입맛대로 고쳐도 된다고 한 놈이 아닙니까ㅉㅉ
@gss7249
@gss7249 Жыл бұрын
​@@2eok2joemoocheonmannyeon 공자는 동이족입니다
@2eok2joemoocheonmannyeon
@2eok2joemoocheonmannyeon Жыл бұрын
@@gss7249 동이족이면 뭐하나요 정권에 유착해 기득권화된 변절자인데
@OYT0724
@OYT0724 Жыл бұрын
@@2eok2joemoocheonmannyeon 맞는 말이긴 함. 공자 초기의 가르침과 후기 가르침은 완전 극과 극으로 다르죠.
@user-dj9zc2hd8n
@user-dj9zc2hd8n Жыл бұрын
도올선생님 고맙습니다. ❤
@user-zo5gw4dh5e
@user-zo5gw4dh5e Жыл бұрын
일등^^ 앗싸
@kdyu178
@kdyu178 Жыл бұрын
고려시대 때도 서북면, 동북면 변방 지재에는 여진족들이 귀순해서 사는 곳이 많았지요.
@881-99
@881-99 Жыл бұрын
멋져요 멋져요!!!
@dudas9633
@dudas9633 Жыл бұрын
스님들도 사람들이네요. 졸고있는 분들이 보여요ㅋㅋㅋ
@youngstreet3862
@youngstreet3862 Жыл бұрын
밤에 무ㅝㄹ했길래.....
@user-pq2ll5nc1r
@user-pq2ll5nc1r Жыл бұрын
​@@youngstreet3862 03시에. 기상 한다고 합니다ᆢ 실내서. 강의 듯을땐. 잠이 오시요. 피곤도. 하고ᆢ
@dexterp9663
@dexterp9663 Жыл бұрын
밤샘을 해도 관심이 있으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user-of3wl3nw1p
@user-of3wl3nw1p Жыл бұрын
졸고계셨던 스님들은 다아는 내용이라 재미 없어서 주무셨대요
@user-ug5dz3qv4i
@user-ug5dz3qv4i Жыл бұрын
철학자 ?
@shinhwachung59
@shinhwachung59 Жыл бұрын
학자는 올바러야
@magnopark3565
@magnopark3565 Жыл бұрын
영토가 10분의1로 찌그러진 이유! 일부 지역인들은 싫어하겠군 우리끼리만 나누려는 사람들!! 또 다른 이는 사기를 숨쉬듯이 치는 사람들!!
@gaeul7309
@gaeul7309 Жыл бұрын
신라 ㅋㅋㅋㅋ 현재도 진행형
@sungminkim6309
@sungminkim6309 Жыл бұрын
돌! ㅎㅎㅎ
@user-ew3lf6cw4w
@user-ew3lf6cw4w Жыл бұрын
중화주의 ㅋㅋ
@user-cm7kr8rx3y
@user-cm7kr8rx3y Жыл бұрын
어디가?ㅋㅋㅋㅋㅋㅋㅋ 그리스 역사 예로 들며 서양사 강의하는 사람은 무슨 주의인지?
@user-fy8gt1sb8n
@user-fy8gt1sb8n Жыл бұрын
절대다수의 민을 이해못하는것은 밑바닥에 술붓기다
@user-iv9ny8zp2t
@user-iv9ny8zp2t Жыл бұрын
머리로 아는 자가 마음으로 알겠는가 지식이 지혜만 못하느니라 지식 왔다가 다시 흩어지는 것 진리가 아니느니라 진리를 공부하는 스님들이 지식에 매달리겠는가 지식에 너무 현혹되지 말고 감동하지 말고 듣고 흘려라
@user-gv1dx6ds4n
@user-gv1dx6ds4n Жыл бұрын
도올 선생님 안계시면 누구한테 이런 명강의 들을수가 있겠습니까 선생님 건강하세요
@user-sm1op6hf4j
@user-sm1op6hf4j 8 ай бұрын
#자 본론 #유 물론
@user-sm1op6hf4j
@user-sm1op6hf4j 8 ай бұрын
맑스 이양반 저기 동양철학 읽고 서구식으로 리메이크 업데이트 한거 아님?
@user-jn9bx3zh6k
@user-jn9bx3zh6k Жыл бұрын
노자와 순자를 합치면 시진핑이다.😤😡🥶👹🤬
@user-xc4zi1qv5o
@user-xc4zi1qv5o Жыл бұрын
청나라는 우리민족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우리역사를 우리역사가 아니라고 우리스스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협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나라와 청나라는 우리민족이 한족을 지배한 우리의 역사입니다.
@henry60201
@henry60201 Жыл бұрын
매국노,반역자, 를 들어보는이...탈을 쓴악마..
@user-sl8il6my9u
@user-sl8il6my9u Жыл бұрын
저 얼간이 죽지도 않네!
@user-qe3zd2ub6v
@user-qe3zd2ub6v Жыл бұрын
중들이 왜 돌박 강의를 듣는지 모르겠다
@quanyijiang3533
@quanyijiang3533 Жыл бұрын
중국역사 만나요 지금의 한국은 단일민족입니까 이성개 여진족이라며
@user-cj7mf7yo8r
@user-cj7mf7yo8r Жыл бұрын
도울 선생님 난 나에 대한 또 주변에 대한 스토킹 괴로움만 주지 않으면 난 당연히 좋은 걸 많이 주려고 노력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많이 노력해 주시고 좋은 방향을 위해 애써 주십시오
@user-kj8iu4qh8t
@user-kj8iu4qh8t Жыл бұрын
중국역사는 도올선생께 배워야한다
@JKJ0509
@JKJ0509 Жыл бұрын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부 지역, 내몽골 지역, 발해만 지역, 만주 지역, 한반도를 포괄했다. 고조선의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 범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만주 지역과 내몽골, 발해만 지역을,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 한반도의 서쪽 지역, 일본을 장악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본기] 2년(49) [후한서] [광무제 본기] 25년(49)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본기] 3년(55) 고구려 1대 태왕 추모왕(주몽)의 연호는 ‘다물’이다. 다물은 옛 땅을 되찾는것을 뜻하는 ‘다시 무르다, 되물리다’이다. 즉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쪽을 공략했다. 모본왕때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지역은 북경을 포함한 화북 지역이다. 그런데 요동태수가 화친을 청했다는 것은 후한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한 것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동태수이다. 고구려가 후한의 화북 지역을 공격했을때 고구려의 맞상대가 요동태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요동지역이라는 것을 뜻한다. 즉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 지역이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요동은 요나라때부터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모본왕때 후한의 요동을 공격해서 요서 지역까지 차지했고, 태조왕때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구려는 요동 지역을 두고 중국과 1진 1퇴를 반복하다가 광개토태왕때 요동을 완전히 장악한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이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할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간다.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이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진다. 북경 근처에 요동과 요서 지역이 있었던 것이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10년(488) [자치통감] 영명 6년(488) [남제서] 현재 한국의 강단 식민사학자들은 북위가 배를 타고 충청도 지역에 와서 전쟁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남제서]에는 북위가 기병 수십만을 이끌고 백제와 전쟁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 당시에는 군선 1척에 말 10마리를 싣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기병 수십만이 배를 타려면 배를 수만척이나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백제의 영토가 대륙에도 있었기 때문에 북위의 기병 수십만과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백제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동성왕이 장군들을 왕이나 후로 봉하는데 그 지역이 다 중국 땅이다. 이것만 봐도 전쟁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는 자명한 것이다. 그리고 동성왕이 장군들을 왕이나 후로 봉했다는 것은 백제 왕이 황제라는 것을 뜻한다.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이 위나라(북위) 군사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백제 장수들에게 관직을 수여하고 이를 남제에 통보한 국서가 나온다. 그 중 한 구절은 라는 것이다. 면중왕에서 도한왕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으로 백제 황제 수하에 서열에 따른 여러 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로 승진시켰다고 [남제서]는 말하고 있다. [송서] [백제전] [송서]에는 백제 개로왕 여경이 송나라에 라고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요청했다는 것은 윤색이고, 사실은 통보한 것이다. 흉노는 황제인 대칸이 중앙을 다스리고, 우현왕과 좌현왕이 좌우 강역을 다스렸는데, 대륙과 반도와 해양에 걸친 대제국 백제도 넓은 강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백제 임금 아래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어서 [양서] [백제 열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당서] [백제전]에는 라고 해서 백제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왕성은 한반도, 서왕성은 대륙에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요서와 일본은 물론 각지에 담로(후국)를 갖고 있던 황제국이었다. [통전] [백제전] 요서군과 진평군이 오늘날의 유성, 북평(북경) 사이라고 위치까지 표시해 놓음 [양서] [백제전] 여기에서 백제가 도읍을 대륙에서 반도로 옮긴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임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백제는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다물(담울=담으로 친 울타리, 즉 고구려 성을 뜻함)정신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담로가 있었던 것이다.
@user-pu4fq2lf6e
@user-pu4fq2lf6e Жыл бұрын
도올은 빨리 중국으로 이민가기 바랍니다
@lemmy8284
@lemmy8284 Жыл бұрын
아...... 젠장 한국의 미래를 왜 중국역사를 통해 바라보냐고 할일 드럽게 없네
@user-ee2uw5nz4z
@user-ee2uw5nz4z Жыл бұрын
역사니까...당신의 주장을 입증하려면 증거기 필요히듯...한국의역사의 증거가 중국역사에 남아잇으니 그렇다.
@user-oo6bz8dr2l
@user-oo6bz8dr2l 9 ай бұрын
ㅅㅅㅅ
@user-gx2nk5wk3u
@user-gx2nk5wk3u 6 ай бұрын
수준하고는! 공부좀해라 반면교사도 모르니?
@user-hh6dt6nn6h
@user-hh6dt6nn6h Жыл бұрын
기회주의자 양산주의자 에라이 곡학아세 주의자 안타깝네 잘 못 배운자 지조와 주댓가 아쉽다
@user-hv6qk5jl8i
@user-hv6qk5jl8i Жыл бұрын
이양반을보면 예전에보던 엿장수같다는생각이‥ 이엿저엿‥ 막파는거같애‥
@irongmanable
@irongmanable Жыл бұрын
우리의 어머니는 쓰레기만 낳으셨구나 사실 그분은 너무 훌륭하신 분인데 아들로서 사죄드립니다
@user-dk7jl1rt4w
@user-dk7jl1rt4w Жыл бұрын
미처가는 돌은 사대주의사상에 젖어 있는 조선시대의 사상에서 빠저나지 못한 돌연변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말해야 해야지 지식연하며 사기꾼으로 전락하는구나 !
@user-wo3by7sb7v
@user-wo3by7sb7v 7 ай бұрын
니나잘해라
@changkyulee4531
@changkyulee4531 Жыл бұрын
북한에 가서 하시죠 돌 선생님
@user-vs5lb8ei2c
@user-vs5lb8ei2c Жыл бұрын
본인의 미래나ㅡ한국의 미래라니ㅡ꼭 딴나라 사람인척인가ㅡㅡ도울어ㅡ
@user-eo1bg5gt2x
@user-eo1bg5gt2x Жыл бұрын
인간부터 되고 역사타령 하시라
@ANATTA025
@ANATTA025 2 ай бұрын
니가 봤어?
@user-vp3ev1gz6d
@user-vp3ev1gz6d Жыл бұрын
돌빡에게배울거없다,석(돌)학
@user-kt5gm3zh5w
@user-kt5gm3zh5w Жыл бұрын
도올 이분 아는거 많고 유식한 분인거 같긴한데... 이분이 예측한거 맞는말 하나 없던데...
@user-sl8il6my9u
@user-sl8il6my9u Жыл бұрын
걔는 돌입니다.
@user-cm7kr8rx3y
@user-cm7kr8rx3y Жыл бұрын
예측해 맞추는 사람을 찾으려면 점집에 가시길..
@user-fu6mr9dn4w
@user-fu6mr9dn4w Жыл бұрын
엉터리
@user-lf3lx2glcbghl
@user-lf3lx2glcbghl Жыл бұрын
그래서 국민들은 역사 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자기애와 애국심이 투철해야 엿고구려 같은 민족이라 생각하는 넓은 야량 지금에 여려 민족이 합처 서 만든 나라가 중국아녀 우리가 중국 보다 못 민족도 안인데 넓은 고구려 기상을 물러받은 민족인데 기득권층의 알량한 신념으로 이 나라 조선과 대한민국이 쪼그라드러 있었요
@JKJ0509
@JKJ0509 Жыл бұрын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부 지역, 내몽골 지역, 발해만 지역, 만주 지역, 한반도를 포괄했다. 고조선의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 범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만주 지역과 내몽골, 발해만 지역을,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 한반도의 서쪽 지역, 일본을 장악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본기] 2년(49) [후한서] [광무제 본기] 25년(49)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본기] 3년(55) 고구려 1대 태왕 추모왕(주몽)의 연호는 ‘다물’이다. 다물은 옛 땅을 되찾는것을 뜻하는 ‘다시 무르다, 되물리다’이다. 즉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쪽을 공략했다. 모본왕때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지역은 북경을 포함한 화북 지역이다. 그런데 요동태수가 화친을 청했다는 것은 후한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한 것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동태수이다. 고구려가 후한의 화북 지역을 공격했을때 고구려의 맞상대가 요동태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요동지역이라는 것을 뜻한다. 즉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 지역이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요동은 요나라때부터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모본왕때 후한의 요동을 공격해서 요서 지역까지 차지했고, 태조왕때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구려는 요동 지역을 두고 중국과 1진 1퇴를 반복하다가 광개토태왕때 요동을 완전히 장악한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이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할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간다.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이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진다. 북경 근처에 요동과 요서 지역이 있었던 것이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10년(488) [자치통감] 영명 6년(488) [남제서] 현재 한국의 강단 식민사학자들은 북위가 배를 타고 충청도 지역에 와서 전쟁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남제서]에는 북위가 기병 수십만을 이끌고 백제와 전쟁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 당시에는 군선 1척에 말 10마리를 싣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기병 수십만이 배를 타려면 배를 수만척이나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백제의 영토가 대륙에도 있었기 때문에 북위의 기병 수십만과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백제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동성왕이 장군들을 왕이나 후로 봉하는데 그 지역이 다 중국 땅이다. 이것만 봐도 전쟁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는 자명한 것이다. 그리고 동성왕이 장군들을 왕이나 후로 봉했다는 것은 백제 왕이 황제라는 것을 뜻한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이 위나라(북위) 군사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백제 장수들에게 관직을 수여하고 이를 남제에 통보한 국서가 나온다. 그 중 한 구절은 라는 것이다. 면중왕에서 도한왕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으로 백제 황제 수하에 서열에 따른 여러 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로 승진시켰다고 [남제서]는 말하고 있다. [송서] [백제전] [송서]에는 백제 개로왕 여경이 송나라에 라고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요청했다는 것은 윤색이고, 사실은 통보한 것이다. 흉노는 황제인 대칸이 중앙을 다스리고, 우현왕과 좌현왕이 좌우 강역을 다스렸는데, 대륙과 반도와 해양에 걸친 대제국 백제도 넓은 강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백제 임금 아래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어서 [양서] [백제 열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당서] [백제전]에는 라고 해서 백제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왕성은 한반도, 서왕성은 대륙에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요서와 일본은 물론 각지에 담로(후국)를 갖고 있던 황제국이었다. [통전] [백제전] 요서군과 진평군이 오늘날의 유성, 북평(북경) 사이라고 위치까지 표시해 놓음 [양서] [백제전] 여기에서 백제가 도읍을 대륙에서 반도로 옮긴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임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백제는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다물(담울=담으로 친 울타리, 즉 고구려 성을 뜻함)정신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담로가 있었던 것이다.
@user-ji9xn8hx2s
@user-ji9xn8hx2s Жыл бұрын
ㅎㅎ 댓글 수준들 하고는 참...도올같은 학자가 100명만 더 있어도 우리나라는 선진국이지
@user-pu4fq2lf6e
@user-pu4fq2lf6e Жыл бұрын
중국인
@user-sl8il6my9u
@user-sl8il6my9u Жыл бұрын
용옥이는 지식이 무지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돌이다.
@user-uu5ee5gg6z
@user-uu5ee5gg6z 3 ай бұрын
코메디
@user-kh3eo7ls9s
@user-kh3eo7ls9s Жыл бұрын
말은 많이 하는데 깊이가 없는 의미없는 소리만 주절주절
@user-ug1yl1pd6m
@user-ug1yl1pd6m Жыл бұрын
도울이나 이재명이나 둘다 눈초리나 관상이 야비하게 생겼다. 둘이 형제 이신가요?
@user-cu4to7wb5h
@user-cu4to7wb5h Жыл бұрын
ㅎㅎㅎ 속빈강정 입만살아서 그러니 이재명이 하늘에서 낸 사람으로 보이겠지
@user-ph7ow2lb2h
@user-ph7ow2lb2h Жыл бұрын
똥강아지 맨날 중국,중국, 중국가서 살아라
@jungkyume
@jungkyume Жыл бұрын
여진이 중국 쳐들어가게 그냥 놔두면 그 이후 우리는 잘도 평화롭게 살았을거라 생각했겠습니다 ^^ 중국과 편 먹고 여진친건 당연지사임. 제대로 못 한게 문제.
@user-pe8su3jq6g
@user-pe8su3jq6g Жыл бұрын
한국사는안하냐
@sunlee1295
@sunlee1295 Жыл бұрын
중국이나 바라보는 쓰레기는 그만 가라
@user-lh8cz6bw4n
@user-lh8cz6bw4n Жыл бұрын
ㅎㅎㅎ 세계사는 중국말고는(만주.몽골) 역사는 없다 .. 중국을 알아야 전쟁. 평화시기등 수없이 전쟁과 권모술수가 난무 했기에 현대사의 기본 롤모델이다.
@user-pu4fq2lf6e
@user-pu4fq2lf6e Жыл бұрын
좋아요
@user-jy9hw9xl8x
@user-jy9hw9xl8x Жыл бұрын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물 저수 사업을 극단적으로 비난한 김용옥. 요즘 광주는 먹을 물도 부족한 실정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user-xu4dz5yq5e
@user-xu4dz5yq5e Жыл бұрын
에이그... 정말 싫으신분! 관종😅
@kalcescasleysecundo
@kalcescasleysecundo Жыл бұрын
중국말도 좀 하신다던데 대륙에서 시진핑씨와 담소라도 나누면서 여생을 지내면 되겠구만 굳이 이 좁은 땅에서.
@user-ex8pj7mh8j
@user-ex8pj7mh8j Жыл бұрын
문재인 칭찬하던 사람이 되려 욕하는게 제일 웃겻지요😊😊😊😊😊
@holicsoo4431
@holicsoo4431 Жыл бұрын
펌글 1925년 한참 대륙을 석권하던 시절 왜는 동시에 일본열도에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이때 대규모로 대륙 동부지역 사람들이 유구제국을 그 훨씬 이전 시대에 제압한 것은 일본열도로 들어가기 위함이었고 일본열도 자체가 유구국의 영역에 속하는 땅이었기에 왜제국은 유구국을 합병한 것이다. 이때 당시 유구왕국은 환태평양문화권과 조선의 유교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였다. 페리제독이 왜에 개항을 요구할 때 먼저 유구국을 거쳤다고 나온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구국은 독립 국가였다고 페리제독은 증언하고 있다. 왜가 지금의 남경에서 가장먼저 한일이 유구국 침공이었다. 그 점령은 곧 일본열도로의 진군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구제도를 이용해 일본열도로 들어가게 되는 통로가 열리고 이때 일본열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토착민들을 포섭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본열도의 사무라이 집단과의 전쟁을 묘사한 사건이 ‘라스트 사무라이’의 영화 내용이다. 대륙의 근대화된 왜 제국군과, 아직 활 쏘고 칼 휘두르는 전쟁문화를 가진 일본열도 토착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서 결코 근대화된 왜 제국군은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군대가 아니다. 이 왜 제국군들은 복건성 일대에서 발흥하여 대만에서도 호응을 하여 이것이 왜 제국의 근간이 되었고, 이때 산동성의 왜 세력은 없어지게 되었다. 산동성의 왜는 임진왜란 이후 토요토미 가문이 덕천가문에 의해 붕괴되어 왜의 중심지는 남경 덕천가문의 중심지로 옮겨지고 산동성의 왜 세력은 거의 없어지고 조선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덕천가강이 왜 이렇게 했을까? 덕천가강은 조선의 충실한 신하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도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중심지였던 남경을 에도라고 발음하는 것도 현대 일본어이고 당시 강도 江都라 불린 지역이 이 남경이었다. 1912년 지금의 북경에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중화민국의 남쪽수도를 남경이라고 지칭할 때 일본열도로 아주 일본이 옮겨졌다. 에도막부의 에도는 오도吳都에서 나왔으며 고또江都와 에도吳都를 같이 썼다. 오나라수도가 에도이며 왜는 오나라를 기반으로 한 나라였고 이들이 역사상의 왜이며 왜였고 왜 지역을 침공한 동아시아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해적들이 왜구들이었으며 이들을 제압하고 다스리라는 뜻으로 막부에게 평남대장군이라는 직함을 조선에서는 보냈던 것이며, 이 직함 하나로 강호 지역을 평정하게 되니 우리가 중국 무협지에서 강호를 평정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본장군이 그 지역 무사들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조선조정에 충성한 것을 후에 무협지 작가들이 중국의 옷을 입혀서 써낸 소설이다. 강호를 떠돌았다고 하는 무협지의 이야기는 미야모토 무사시 등의 일본무사들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강호의 무사들은 왜 무사들이었고 이것을 일본열도로 옮긴 왜 세력들은 일본열도를 배경으로 새롭게 각색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들이 남색을 즐겼다는 기록이 결국 대륙에서 있었던 남색열풍에 편승한 성 풍조였고 이 왜의 성 풍조는 후에 일본열도로 옮겨져 역사가 된 것이다. 당시 대륙 동남부 사람들은 혼도시를 하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왜 사무라이 머리는 대륙남부 사람들의 풍속이었다. 원래 왜구들은 머리를 산발한 해적들이었다. 그러나 대륙 왜 사람들은 조선의 풍속을 따라서 상투를 틀었고 그것을 투구를 쓰는데 편리하게 변발 비슷한 앞머리를 깎아 낸 것이다. 왜가 대륙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머리를 했던 것이다. 왜 무사의 그 상투 머리는 대륙의 풍속이었고 상투는 조선의 풍속, 그리고 앞머리를 깎아 버리는 것은 대륙조선 북쪽 올랑해의 풍속이었다. 이들이 이런 상투를 잘라버린 것은 조선을 버리고 서구열강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선언이었으며 메이지 유신 때 상투를 제거하였다. 중국에 새로운 혁명정부가(1911년 신해혁명) 들어서자 메이지정권은 대륙의 일부지역과 대만을 남겨둔 채 일본열도에서 본격적으로 일본시대를 열게 된다. 이 영향으로 대만은 친일국가가 된다. 대만의 1.21사태는 이런 친일토착민들이 대륙의 중국정권에 대해 반기를 든 사건이며 이때 대륙국민당군대는 학살을 하여 전에 왜인이었던 사람을 제압한다.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대만사람들이 비록 대륙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전에는 왜식 이름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대만은 친일국가이다. 대만은 유구왕국의 일부였으며 장개석이 대륙에서 쫓겨 오기 전까지는 왜 땅이었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국 주도 하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이등휘 총통이 퇴임 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했던 것이다.
@ilhwan3137
@ilhwan3137 9 ай бұрын
흥미로운 글이네요
@user-nj5op4sr1b
@user-nj5op4sr1b Жыл бұрын
이상한 역사 의식을 가진 자네. 정리도 않되고 기분 내키는대로 떠들고
@user-pu4fq2lf6e
@user-pu4fq2lf6e Жыл бұрын
이것이 도올의 치명적 약점이죠 자신이 엄청 똑똑하단 생각에 과시(특히 한자)하느라 강의내용이 자꾸 옆으로 샌다는걸 본인만 몰라요
@user-gc1hy1od1c
@user-gc1hy1od1c Жыл бұрын
도올보라 제목이 제목으로서 제목감이되겠느냐 네이놈 반면교사좋구나 니대리부터 반면교사하라 사학자이름걸맞게처신하라
@user-bs2oy4ou7b
@user-bs2oy4ou7b Жыл бұрын
절대자 네이놈!
@user-pu4fq2lf6e
@user-pu4fq2lf6e Жыл бұрын
옳습니다
@UTRH
@UTRH Жыл бұрын
설명을 정말 답답하게 하시는군요..
@misookjoo4402
@misookjoo4402 Жыл бұрын
아저씨 고만올려요 재탕 돈엄청밝히네 낚시질고만좀해오 딸내미도고마키우고 실력이안되드만 미국에서살게나둬오
@churlkoh8053
@churlkoh8053 Жыл бұрын
스님이 조선시대 유학자한테 강의를 듣냐?...유교가 조선에 끼친 해악을 아시오?..스님들 정신차리세요. 당신들이 훨씬 고급 사상입니다.
@user-nq4su1kb4l
@user-nq4su1kb4l Жыл бұрын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당신은 중국 사람입니까? 왜 한글을 안쓰고 한자를 쓰는지~ 사상이 의심 스럽습니다.
@user-cm7kr8rx3y
@user-cm7kr8rx3y Жыл бұрын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말. 왜구들이 기틀 잡고 한구들이 풀어먹는 엉터리 중화 사상에 미쳐있는 댁이 안쓰럽기만 하다. 대왜항쟁기 왜인들로부터 소위 한자라 불리기 시작한 '진서(眞書)' 혹 '서글(書契)' 은 중국 문자가 아니라 고고대 도부 문자에서 고대 갑골문, 수많은 자형을 거쳐오며 아시아 각 겨레들이 자기 실정에 맞게 고쳐가며 공유, 발전시켜온 공용 문자 개념이외다. 서양으로 치면 라틴어 같은 문자인 거지. 이 문자를 버리는 순간 한국인은 동양 역사와 영원히 단절돼 안녕인 게요. 한글은 일상 언어에 쓰는 말글이고 진서는 문서에 쓰는 뜻글이니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 가 아니라 용도가 다른 것 뿐이지. 모르면 제발 조용히 하고 살아요.
@user-kc4pw5de1e
@user-kc4pw5de1e Жыл бұрын
빡빡이 도올 김용옥이 문재인이 같은 사람이 두번 다시 나오면 안된다고 개거품을 물고 떠들던 생각 난다 왜 그랬을까? 빡빡이는 누굴 지지 할까?
@du7091
@du7091 Жыл бұрын
이ㄷㄹㅇ. 아직 살아있나?
@user-vn2rv3wz2v
@user-vn2rv3wz2v 21 күн бұрын
땡초들 아침 해장들은 했나
@user-gp9yh9xu9g
@user-gp9yh9xu9g Жыл бұрын
시세야주디 워 해라 짜샤
@jkyun5415
@jkyun5415 Жыл бұрын
그놈에 공자 맹자 그만해라 진짜 지겹다
@user-rp2wt6bz7k
@user-rp2wt6bz7k Жыл бұрын
쉬운것을 어렸게 설명하네 바보
@user-wq2zp4ih4n
@user-wq2zp4ih4n Жыл бұрын
그러나 내가 보기엔 당신은 지식에 비해 정신이 온전치 않소 중국이나 북한으로 하루빨리 귀가하길 바라오....
КАРМАНЧИК 2 СЕЗОН 6 СЕРИЯ
21:57
Inter Production
Рет қаралды 487 М.
I Built a Shelter House For myself and Сat🐱📦🏠
00:35
TooTool
Рет қаралды 21 МЛН
[도올김용옥] 노자 01 노자가 누구냐?
37:23
도올TV
Рет қаралды 249 М.
[#당알지] 구약성서의 예언은 사후에 쓰여진 기록물이다?
26:25
도올 김용옥의 논어특강 1부
55:22
광주MBC
Рет қаралды 402 М.
КАРМАНЧИК 2 СЕЗОН 6 СЕРИЯ
21:57
Inter Production
Рет қаралды 487 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