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무사시의 가르침. 1 이길 수 있는 자랑만 싸운다. 2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만 싸운다. 3 질 것 같으면 싸우지 않는다. 4 질 것 같으면 도주 한다. 5 이길 것 같아도 부상을 입을 것 같으면 피한다. 승리에 대한 그의 생각이 어떤지 잘 알려주는 대목..
@wjddngk6 ай бұрын
@user-ei9yq6xm3u ㅇㅇ 오륜서 봄
@lee-rt4lb6 ай бұрын
그건 가르침이지 본인은 저 나열한 것에 해당사항 없습니다
@wjddngk6 ай бұрын
@@lee-rt4lb 하긴 김대중도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설파했지만 실제 행동은 자신이 안될 것 같으니 직선제 반대하고 악마 김일성 김정일을 숭배하다가 죽었으니까요
@seanpark99706 ай бұрын
@@lee-rt4lb 자기가 체험한 것을 쓰는거지
@남문재영-h6w6 ай бұрын
ㅇㅇ그걸 실천할수있었기 때문에 무패인거임
@jejang45756 ай бұрын
내가 읽은 바로는 목검이 아니라 배젓는 긴 노였다고 알고 있습니다.바닷물 속에서 세월에 의해 절여져 웬만한 칼은 베어내기 힘들고 철로 된 검보다 길고도 가벼워 훨 낫다고 합니다. 게다가 늦게 나타나 해를 등지고 싸워 사사키가 해빛을 정면에서 받고 싸우는데 비해 해를 등지고 싸워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robert7070756 ай бұрын
어느 일본 역사학자가 무사시와 사사키 코지로는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다고 주장한 글을 본 적이 있음니다만........
@tazmania214 ай бұрын
네~ 맞아요~ 소설 책에 나오는 내용이라 역사적 사실이라 믿는 듯 하네요
@히로-u1l5 ай бұрын
무사시 소설은 그때까지 구전되어 오던 무사시에 대한 여러 이야기 전설들을 바탕으로 작가가 조금 창작의 살을 붙인것입니다~~마치 나관중의 삼국지처럼요~~
@tazmania214 ай бұрын
5:10 무사시의 목검은 가벼운 목검이 아니라.. 배젖는 노를 깍아 만든 바다 소금에 절여진 무거운 목검입니다. 소설에서는 코지로의 장검으로 베여지지 않는 목검으로 코지로의 두개골을 아작내는 것으로 나옵니다.😅
@needs_human_right4 ай бұрын
미야모토 무사시 바로 그 전세대 - 아버지뻘, 할아버지뻘 - 에 더 큰 족적을 남긴 검객들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즈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야규 무네요시, 이토 잇토사이(오노 타다아키의 스승), 토다 세이겐, 아이스 무네미츠 등.. 증조할아버지뻘로는 아이스 히사타다 등등..
@고담덕-h5v6 ай бұрын
오륜서 재미있게 읽었었죠...ㅎ 맞습니다 무사시는 칼싸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렸죠 ㅎ 우리는 백동수가 그나마 비슷한 인물이겠군요... 이 양반도 무예 이외에 그림도 잘 그리고 했었다고 하니...ㅎ
@짬타이거-v8f7 күн бұрын
미야모토무사시... ㅎㅎ 예전에 정말 재밌게 감동스럽게 읽었던 소설입니다. 아직도 그 내용이 기억나는군요. 요시카와 에이지님의 미야모토무사시에 이은 대망 소설도 저의 인생소설이었죠. 저도 몇가지 첨언하자면 간류섬에서 사사키고지로와 결투를 하러 갈때는 사공의 인도로 오로지 무사시 혼자 갔었고 그를 따르는 오쓰우와 제자 이치로는 간류섬이 보이는 육지에서 결투를 지켜봤죠. 그리고 지각한거 역시 심리전이었고 도착하기 전에 단검으로 노를 깍아 리치기 긴 목도로 승부를 봤죠. 싸울때 고지로가 검집을 던지자 너는 이미 졌다라고 도발했고 고지로는 역광으로 인해 시야가 방해되었는데 사정권에 들자 제비베기를 시전하자 무사시는 높이 뛰어 올랐고 2타 올려치기에 무사시의 머리띠가 날아갔고 이때 고지로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죠. 그리고 바로 그의 정수리로 떨어진 목도. 고지로는 매우 평온한 상태로 죽었다 합니다. 그리고 제자가 다굴빵쳐서 죽인건 사사키고지로가 아니고 속편 라이벌인 마츠야마몬도입니다. 기억하기론 몬도라는 닌자는 유리공주를 좋아했는데 그녀가 하필 무사시를 좋아했죠. 무사시와의 결투장에 그가 직접 나서지 않고 몬도를 외면하고 떠나는 유리공주를 쫏아가다가 제자들에게 참수당합니다. 그리고 무사시는 일생일대 그를 따라다니던 오쓰우만을 사모했죠. 그가 유곽을 전전했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그녀가 무사시를 쫏을때는 그는 도장깨기에 여념없었지만 어느정도 기반이 다져지고 쇼군의 무사사범이 되어 녹봉을 받게되자 그제서야 오쓰우를 찾았지만 그녀는 그때 비구니가 되어 속세와 인연을 끊고 무사시와의 인연은 이어지지 못합니다. 그 오쓰우라는 비련의 여주인공은 현재까지 일본여성들의 정신적 모델이 되어 있습니다.
@다리미-j8t6 ай бұрын
미야모토 무사시 소설 읽어보면 ㅈㄴ 깨는 부분이 많은데 뭔가 엄청난 검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냥 원래 피지컬 적으로 엄청나게 센 사람임. 어떤 정형된 검술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때 그때 임기응변식으로 대충 때우듯 싸우는 스타일. 이도류도 싸우다 보니 그날은 대충 칼 두개 들고 싸웠는데 원체 피지컬이 좋은 사람이라 칼 두개 드는것도 별 문제 없어서임. 사사키 코지로와의 싸움도 사사키 코지로가 긴칼을 쓰니까 배타고 가는중 배의 노를 깎아 그보다 더 긴 목검을 만들어 때려죽임. 이 사람은 검술가라기보다 전술가라고 하는게 맞을듯 싶은데 그가 했던 전술이란것도 엄청나게 야비할 정도라고 할까. 물론 대부분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에서 싸웠기에 딱히 야비하다고 비난하긴 힘듬. 암튼 뭔가 대단한 사람인데 내가 기대한 방향은 아니었던...ㅋㅋㅋ
@행성파괴용6 ай бұрын
저도 김용소설 처럼 세세한 전투묘사 그런걸 기대하고 읽었는데 실망했던 ㅋㅋㅋ 그 유명한 도장깨기도 떠돌다가 그지역에서 강하다고 소문난 곳중에 철저히 연구해보고 이길만하다 싶으면 선택해서 덤비지 않았을까 싶습니다.어느 달인에게 도전장 내밀려다가 꽃가지 자른거 그것보고 쫄아서 "레베루가 다르다" 면서 꼬리말고 나간 에피소드도 있고요
@다리미-j8t6 ай бұрын
@@행성파괴용 고수 잘 피해서 오랫동안 생존하는것도 대단하긴 대단한거죠. ㅋㅋㅋ 암튼 이 사람을 검술의 대명사처럼 취급하는건 후대의 미화가 아닌가 싶네요.ㅋㅋㅋ
@co-co12346 ай бұрын
일본은 그런것도 실력으로 인정해주는 문화라서 그럼. 꼼수도 실력이다. 이기면 그만이다.
@WATERSHADOW-f5v6 ай бұрын
맞아요 멋있게 강하다기보다는 처절한? 지능적으로 강한 사람 같아요 - 살아 남는 게 진짜 강한 것 같습니다.
@니르나이스아르노이디6 ай бұрын
미야모토 무사시는 중년 이후엔 수없이 많은 다이묘들 앞에서 일본도(=카타나)로 쌀낱알을 벨 정도였는데 비열하느니 야비하느니 하는 멍청한 평이 무슨 가치가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JHYEOM6 ай бұрын
오 이름은 정말 많이 들은 무사시 이야기라니 ㅎㅎ 정말 잘 보았습니다~
@ampir-79986 ай бұрын
이런 영상 좀 많이 올려주세요! 이 채널 진짜 재밌고 유익하네
@digituslabs31105 ай бұрын
줏어듣기로는 간류지마에 늦은 미야모토 무사시가 평정심을 잃은 사사키 코지로를 칼이 아닌 칼집으로 한 방에 죽였다고 알고있었는데 목검으로 승부를 본 것이었군요 너무 유익한 영상이었습니다 일본 신화, 음양사, 닌자,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 등등 영상 부탁드립니다
@짬타이거-v8f7 күн бұрын
진검이 아닌 노를 즉석으로 개조한 목검이었죠
@njhok53606 ай бұрын
무사시는 소설에 가깝고 주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나 츠카하라 보쿠덴을 일본의 제일검으로 뽑더군요. 둘 다 사람을 살상하지 않는 것을 검술의 최고 경지로 여겼다는 점, 전국시대 사람으로 1570년대(노부츠나 77년도 사망, 보쿠덴 71년도 사망) 사망했으며 일본의 일도류 검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리미-j8t6 ай бұрын
애초에 무사시는 검술가라고 보긴 좀...ㅋㅋㅋ
@JO_dysseus6 ай бұрын
전 카미이즈미 노부츠나가 가장 영향력이 크다 생각
@진이르미-u2t6 ай бұрын
무사시와 명승부를 했다던 요시오까 세이쥬로 는 70까지 살았고 무사시를 전혀 모른다 그리고 세이쥬로가 도장을 하긴 했었는데 그냥 동내 검술도장 이였고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고 무사시는 사기꾼 역사학자들도 모두 인정안한다고 하더군요
@javaxerjack6 ай бұрын
당초 무사시의 검을 계승한 류파가 없으니까요.
@윤준섭-m9o6 ай бұрын
@@javaxerjack무사시 자체는 허구적인 부분이 많으나 계승 유파는 있음 이천일류가 대표적
@Warkytocky6 ай бұрын
무사시는 걍 2차 창작물의 재미로 봐야되지 내용자체 대부분이 허구일뿐 실제로는 약했다는 말이 많음. 일례적으로 소설에서는 멸문시킨 요시오카가문도 염색업으로 대대로 잘살음. ㅇㅇ 그리고 그때 당시 칼잽이들의 가장 큰 목표가 영주의 사범대리였는데 이는 녹봉으로 정리가 됨. 즉 그때 당시의 일류검객이면 가장높은 녹봉을 받아야됨. 근데 역사적자료로서는 무사시 녹봉은 형편없었음. 후대에 내려오는 얘기도 무사시가 오륜서에 쓴 내용을 살을 붙이거나 몇 안되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유파를 홍보하려고 과대하게 뻥을치거나 한게다임. 역사적 자료가 있는 츠카하라 보쿠텐이나 야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등이 훨씬 설득력있고 최고검객을 얘기할때는 정실임.
@Ani-brary6 ай бұрын
쏙쏙 내용이 들어오네요~ 👍
@김병진-p6p6 ай бұрын
잘봤어요 너무 좋네요
@zandoongee6 ай бұрын
로버트 그린의 저서에서도 간류지마 대결을 언급하면서, 전투형 마키아벨리가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식으로 서술한걸 본기억이 있습니다. 아들이 교보문고 다녀와서 오륜서를 사왔길래, 이걸어떻게 설명해야하나 고민했던 기억에 몇자 적어 봅니다.
@javaxerjack6 ай бұрын
무사시는 사무라이라는게 어떤 것이여야 하는가를 정해준 무사도라는 픽션의 창시자죠. 그리고 무사시 활동 시기는 이미 사무라이 계층이 공무원화 되어가던 시기.
@morrischun25966 ай бұрын
알질 못하면 그냥 답글 안쓰는 게 맞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 살 던 시절이 사무라이계층이 일본열도의 역사 전면부로 완전히 나오던 시절인데 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까. 임진왜란 때 영남대로를 가로질러 신의주까지 치고올라오는 애들이 공무원처럼 보입니까?
@javaxerjack6 ай бұрын
@@morrischun2596 알질 못하면 답글 안 쓰는게 맞네요. 내가 말한 공무원화는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더이상 예전 만큼의 사무라이 수효가 없던 시절을 이야기하는겁니다. 이 시기 사무라이들의 위상은 몰락을 거듭해 하급 무사들의 경우 살아남기 위해 아예 상인들의 경호원 업무를 한다던가 노동자가 된다던가 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게 완료된게 사실상 메이지 시대입니다. 내가 말하는 공무원화는 그 중 일환으로, 그나마 지식 소양이 있는 사무라이 계층이 세금 처리나 하급 관료일을 하기 시작한걸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주 이야기 되는 길가다 기분 나쁘면 배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상당량 과장된 부분이 있는 도시 전설이란베 현대적 의견이고. 이러한 변화에 대한 입문서로 '사무라이의 넥타이(이정남 지음)'을 추천하니 꼭 읽어 보세요.
@javaxerjack6 ай бұрын
@@morrischun2596 아, 그리고 무사시의 출생년도는 1584년도에요.
@짬타이거-v8f7 күн бұрын
정확히 무사시 1권 1장 첫장면이 세키카하라 전투에서 서군 이시다 미츠나리군에 참전하고 패한후 친구 홍이다마다하치랑 벌판에 누운상태에서 시작하죠. 본격적인 에도바쿠후가 시작되기까지 오사카전투가 남았고 시기적으로도 약 10여년의 시간이 있죠. 이때 쇼군을 잃은 사무라이가 낭인이 되서 방랑무사가 되고 에도막부에서 승리한 동군의 무사들에겐 석고제가 적용되었는데 이 시기도 사무라이들은 여전히 무사로 활동하죠. 공무원화 되던 시기는 위에 분 이야기대로 료마가 활동하던 메이지유신 시대였죠.
@martinaston92336 ай бұрын
코지로의 츠바메가에시는 상대방이 첫번째 공격을 막으면 칼과 칼이 부딪쳤을 때 생기는 반동을 이용해서 두번째 공격이 들어가는데 무사시는 이를 알고 반동이 안 생기는 목검or노를 들고 가서 싸움 무사시가 이도류의 창시자라고 해서 대단한 검술을 사용 했던것 같지만 주력으로 사용 했던 이도류 검술은 큰 칼로 상대방의 공격을 막고 단도로 상대방의 급소를 콕 찌르는 방식 이였다고 함 그리고 무사시의 오륜서를 보면 검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일가견은 있었던 것 같지만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당시 1티어 수준의 검객들과는 대결한적 없다고 함
@Warkytocky6 ай бұрын
제비베기는 반동을 이용해서 두번째 공격을 하는게 아니라 그냥 상단에서 하단으로 횡베기 한 후, 재빠르게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려치는 기술임. 지금에야 너무 단순해서 이게 무슨 필살기냐고 느껴지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없었던 기술이었음 게다가 장칼이어서 간격에도 이점이 있었는듯. 무사시의 경우 반동때문에 목검을 이용했다기보다, 코지로의 칼보다 긴 노를 이용하면서 간격을 만든게 주 목표였음. 한대 세게 때리면 때려죽일수 있기때문에ㅇㅇ 근데 이것조차도 영상에서 나왔듯이 제자들 우르르 데려가서 몰매때려 죽였다는 말도 많음 그래서 불쌍한 코지로 넋을 기리고자 간류지마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설도 있고 ㅇㅇ..
@베이비샤크18호6 ай бұрын
미야무토 무사시를 존경해 100대1 겨루기를 하신 인물이 최영의(최배달) 선생님이심!! 최배달 선생님 이야기도 한번 다뤄주세요!! 무협지 보다 재미있는 방학기 선생님의 '바람의 파이터!'
@user-oc1bt2ju4z6 ай бұрын
백인조수
@handohyung6 ай бұрын
훈련된 창병하나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적어도 4명의 검사가 필요했다는 말이 있듯 실전에서 검이나 도는 창을 이기기 힘듭니다.
@짬타이거-v8f7 күн бұрын
그러나 무사시는 일본 최고의 창잡이 승려와 1합 무승부로 서로에게 예를 다하죠. 아마 무사시가 대결한 상대중 유일하게 목숨을 잃지 않았던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artarmsairsoft1586 ай бұрын
무사시는 현대 죽도 검도에서 오륜서를 남긴 것 때문에 재발굴된 사람이지 실제 그 시대 당시 최강자라고 하기에는 객관적으로 의문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쉽게 말하면 지금 기준으로 비유하자면 길거리 파이터 최강자일 뿐이지 프로 파이터는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진짜 검술의 달인이면 높은 직위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을테니까요
@moaaaang6 ай бұрын
일본의 검술이 발달한건 역사상 개연성 있는 주장이지만 용인전투를 맥락없이 그냥 검술의 차이때문에 진것처럼 주장하고 이순신 장군이 일본 검술 인정하고 거리를 두고 싸워서 이겼다느니 이런 개소리를 하는 용기에 감탄한다. 자네 전공이 뭔가? 최소한 역사는 아니지? 아니길 바란다..
@Claymore-chobo6 ай бұрын
일본 검 카타나와 조선의 검 환도의 차이는 환도의 길이가 짧아짐. 그래서 일본과 일대일로 싸우면 거리상 불리함. 근데 조선.한국은 지형이 산악지대가 많고 검술보다는 궁술을 더 선호했고 발달했음. 궁술을 매우 고급기술로 오늘날 스나이퍼 기술과도 비슷한 것임. 팔힘이 매우 쎄야했고 그렇다고 검술도 소홀리 하지는 않았지만 검의 길이가 짧아진거는 휴대성때문임. 활이 주무장이고 검은 부무장이라 허리에 차고 다닐때 걸리적거려 짧아진거라함. 신립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대부분 활을 쓰는 궁병인데. 기마병이 창을 쓰는 기병이 아니라 활쓰는 기병대라 망함. 또 고려때는 군사력이 막강했던 나라가 조선시대때부터 함부로 사단규모의 군사를 장군들이 이끌게 하지못하게 왕이 축소시켰고 지방에 소규모 군대밖에 없다보니 일본군에게 다 털린거라함. 조선시대 왕들은 반란이 두려워 지방에 귀족들이 군사력을 많이 보유하게 하지 못했던거라 그러함. 반면 일본 전국시대 거의 100년가까이 서로 죽고 죽이고 지역간 치열하게 싸웠는데 그래서 검술은 최강일수 밖에 없었음. 그래서 조선시대 의병장들이 주로 쓰던 전법이 각개격파. 게릴라전으로 왜군을 물리쳤죠. 일본이 칼들고 덤비면 멀리서 활쏘고 치고 빠지고 일본이 조총쏘면 대포로 박살내는 방식
@Dummy-106 ай бұрын
검술차이때문에진거맞음 부정하지마셈
@dkihvvbakhbdjmbc4 ай бұрын
조선 제일검도 알려줍쇼
@stevenrhee83986 ай бұрын
7,8십년대의 만화가 였던 김민씨가 당시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만화 불나비 시리즈를 그렸지요.
@조광래-w1i6 ай бұрын
만화가 김민 지금은 돌아가셨겠죠
@stevenrhee83986 ай бұрын
@@조광래-w1i 당시 아주 젊은 나이여서 아직 생존해 계실겁니다.
@아사리판과객6 ай бұрын
@@stevenrhee8398 경기도 기초의원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불나비 만화 보고 싶습니다. 복간이 되었으면 하네요….. …바람속의 불나비, 영광의 불나비…등등
@열정보다냉정6 ай бұрын
ㅋ 기억나요 김민씨 그림체가 어딘가 코믹햐면서도 철학적이였지요.
@ymanyman4866 ай бұрын
돌이와 허떨이 삼촌....
@호주사는괭이교관6 ай бұрын
일본서 도장깨기의 시초라고 볼수있죠. 전쟁이나 약탈에서의 생존성 투쟁이 아닌 누구의 실력이 위냐의 승부성 투쟁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도 무신이나 검성(소드마스터)라 불릴만한 분들이 있기야 했죠. 강이식,유금필,박술희 장군이나 척준경같은 무사도 계셨고. 그런데 전쟁을 통한 생존을 위한 혈투가 아닌 목숨을 걸고 펼치는 실력승부라 좀 다른느낌의 고수들이긴 하죠.
@petersong48385 ай бұрын
용인전투에서 조선군은 대부분 농민군 아니었나요? 이이의 10만양병설이 무시되었는데, 용인에 조선군이 5만~8만이 있었을리가 없다고 봅니다.
@user-byuljeonnam6 ай бұрын
근데, 검객의 나라치고는 이렇다 할 무협지가 그닥 없다는게 신기하다는...
@jhshin94136 ай бұрын
야마다 후타로의 오보로 인법첩-마계전생, 야규인법첩. 난조 노리오의 스루가 성 어전시합 (시구루이)같은 소설은 만화로 만들어졌습니다
@b4bsekwq6 ай бұрын
글 쓰는 사람들은 모조리 썰었나 봅니다.
@나만세-b1z6 ай бұрын
일본 무협지 많습니다. 시바따 렌사부로의 네무리 쿄시로도 무협지 입니다. 대망 시리즈의 미야모토 무사시도 무협지 입니다.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소설이죠. 물론 실존인물 무사시를 가지고 구라를 친것이기도 하지만.
@나만세-b1z6 ай бұрын
그밖에 복수물도 있습니다. 제목은 잊어버렸는데, 이와미 쥬타로 라는 오사카 전투에서 전사하는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무협지도 있습니다. 아라키 마타에몽의 복수를 그린 무협지도 있죠. 일본 무혚지는 거의 복수물이 많습니다.
@6sinegohwan3366 ай бұрын
일본도 무협지 많습니다. 일본은 중국의 춘추필법처럼 한 인물의 서사시를 초인적이게 과장하여 기록하는 풍습과 수없이 펼쳐진 내전을 배경으로 수많은 소설들이 써내려가졌습니다. 심지어 여성에 궁인인데, 일본 최초의 소설가로 여겨지는 인물도 있지요. 이는 한국과 꽤나 대조적인데, 한국은 기본적으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피하고 진실만을 추구하는 기조가 오래전부터 내려와 척준경 같이 괴물 같은 업적을 내는 인물들도 간략하게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대체적으로 야망있는 군웅이 자웅을 겨루는 것이 아닌 외적의 침략에 맞선 전쟁을 주로 치륐기에 소설이나 판타지 생산에 더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무협지는 주로 중국을 배경으로 해서 나오죠.
옛날 플스2 게임중에 검호3라는 게임인데 주인공이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검술기술을 습득해서 최고가 되는 게임인데 시대상 맞지는 않지만 야규 쥬베이의 집안 이야기. 그리고 신선조 3인방 곤도 아사미. 히지카타 토시로가 조직한 무장 경찰조직인데 막부를 지키는 조폭같은 집단이 나옴. 근데 대장은 곤도 아사미이지만 모든 실권은 히지카타 토시로가 13개의 분대를 통솔지휘함. 근데 가장 최고의 실력자는 최고로 나이가 어린 오키타 소지인데 폐병으로 일찍 죽음. 근데 이게 낭만이라서 블리치나 귀멸의 칼날의 모티브가 됨. 또 미야모토 무사시도 등장하는데 가장 유명한 시나리오 사사키 코지로와 싸우는 장면도 나오는데 영화같음. 또 료마도 나오고 뭔가 뒤죽박죽이지만 검호에 다양한 검객이 시대에 맞지 않지만 몽땅 등장해서 재미있었음. 무사시가 최고의 검객으로 일컷는것은 이소룡처럼 오륜서라는 책을 써서 인거 같고 사실은 무사시보다는 야규 쥬베이가 더 강해보였고 진짜 최강자는 신선조에 나오는 오키타 소지가 최강인거 같다는 생각이 듬. 바람의 검심에도 오키타 소지가 나오지만 매우 강함. 암튼 옛날 게임이지만 검호3가 대단한 점이 어드벤쳐 게임인데 적과 마주치면 대전액션게임이 됨. 검술기술도 다양하고 상당히 많은 검술을 배우는게 특징이고 지역이동하면 그곳 인물과 스토리가 진행하면서 무사시. 쥬베이.오키타 소지랑 싸우는 결투가 됨
@mr.h__6 ай бұрын
검호3 진짜 재밌어서 한동안 완전히 빠져 살았었는데 추억이네ㅋㅋㅋ
@Destroyer-ty3zl6 ай бұрын
오키타소지는 신선조내에서 사이토하지메와 같은 실력으로 통했고 야규쥬베이는 무사시랑 활동시기가 살짝 달랐어요 야규는 막부 무술사범이였죠 쇼군직속
@yallooman6 ай бұрын
나는 지금도 하고있....ㅠㅠ 너무재미있음 영상배경음도 검호3랑비슷한듯
@mr.h__6 ай бұрын
무사시는 검술 실력도 실력이지만,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피지컬의 덕을 크게 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진짜로 뛰어난건 상황 판단 능력이랑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하는 안목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음 그래서 자신이 이길 수 있을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고,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미련 없이 도망치거나 피하는 길을 택했다나 뭐라나... 나도 주워들은 소리이니 진위여부는 모름
@쿠x용6 ай бұрын
이거 만화연재를 중재한 이유가 후에 쓰레기짓만 하고 다녀서 도저히 이야기 전개를 할 수 없었다고 함..
@2345pok6 ай бұрын
오늘도 잘보고가용
@jerroldpark78914 күн бұрын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훈련되지 못하고 급조한 농민들이라 사기가 낮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검술이란 오랜시간 갈고 닦아야 하는것인데 왜군 십수만명이 모두 검술의 달인은 아니었겠죠 따라서 조선 일본의 검술우열이 있는것도 일부분 사실이었겠으나 결정적인 패인이 아니고 조선의 준비부족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jojojongin6 ай бұрын
결국 결투를 싸움 그 자체로 보는가 병법의 차이로 보는가에서 승패가 판가름났군요
@plotinus26 ай бұрын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무사시는 동군이 아니라 서군에 참가했다고 기억합니다;; 기억이 맞다면요;;
@정문식-v8p6 ай бұрын
맞습니다.
@김명기-i4u6 ай бұрын
무사시는 평생 글을 몰랐고, 그의 제자가 무사시의 가르침을 책으로 편찬한 것이 오륜서. 무사시는 검술로 최강이라기 보다 오륜서를 통해서 검술을 검도의 경지에 올렸다해서 높이 평가하는 것.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전국시대 최강의 검성으로 추앙받음.
@Berlin38126 ай бұрын
@@김명기-i4u 요시테루는 쇼군인데..
@쭈니아빠-k6m6 ай бұрын
영상에서 언급하신 사사키 코지로가 게임 사무라이 쇼다운에서 나오는 파란색 긴머리에 긴칼을 쓰는 검객을 생각나게 하네요. 그 게임에 핫토리 한조도 나오는데 아마 역사속 실존인물들을 베이스로 만든 게임인가봐요.
맞워요 하오마루가 무사시인줄 알았는데 쥬베이더군요. 유코가 고지로인것 같고 간류섬 배경이 해당 스테이지죠. 하오마루나 겐쥬로 같은 메인급 인물은 무사시와 관련 없어보입니다. 아 하토리한조는 도쿠가와가신이고 나코루루는 미츠나리의 닌자인 오소데라는 이야기도 있죠. 그런데 이 오소데 역시 본래는 도쿠가와가 미츠나리를 암살하라고 보낸 닌자인데 미츠나리의 의지와 절개를 보고 그를 따르다가 미츠나리가 죽자 그녀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하죠
@cabshow12346 ай бұрын
팩스토리님 뇌피셜 친구 거르셔야겠는데요 ㅋㅋ
@드레곤본-j7i6 ай бұрын
여러분 특히 미야모토 무사시에 일류이천검의 유파는 한국에도 도장이 있습니다.
@jinhokim56196 ай бұрын
무사시와 사사끼 지금은 당구 큐로 거듭난건가요?
@gicho85536 ай бұрын
미야모토 무사시 소설을 읽었던 사람으로서 수정하자면 무사시가 코지로랑 싸우기위해 든 목검은 배의 노를 깎아 만든 것입니다 즉 사사키 코지로의 장도에 대항하기에는 자기가 평소에 쓰던 짧은 쌍도가 안되는 것을 알고 배를 타고 대결장소로 가며 고민하다가 임기응변으로 코지로의 칼보다 더긴 노를 보고 칼로 깎아 목검을 만들어 코지로에게 이긴 겁니다
@Xio-y7q6 ай бұрын
히라모토 요시스케 도쿄대학 연구원 (당시)이 1972년 펴냈고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이 참고하는 논문에 따르면 에도시대 (1603~1867년) 남성의 평균 신장은 157.1cm였다.... 피지컬이 음..
@EEcircuits5 ай бұрын
일본이 제국이던 2차대전 시기에도 일본군 평균 신장이 160 내외였다던데
@lootd70416 ай бұрын
어떤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야모토 무사시의 무장이 카타나와 두꺼운 목도를 들고 싸우던 장면이 인상깊었네요.
@life-style79795 ай бұрын
무사시의 도전정신 탁월하네요 👏👏👏🍀
@수집쟁이드라하카6 ай бұрын
유튜브 주제를 선정해주는 좋은 술친구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 이쯤되면 술값하고 페이값을 내셔야 할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론-o1j6 ай бұрын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대규모 백병전에 약했던건 일본 무사의 검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고려시대 권신이 군권을 잡았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장졸분리 정책을 시행했고 병농일체 사상에 따라 병사들이 제대로 군사훈련조차 받지 않은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입니다.
@금나라돌격기병대5 ай бұрын
세계 최강의 검객 1위인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및 '검호쇼군'의 칭호까지 획득한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세계최강검임 ㄷㄷ
@min-sookim8006 ай бұрын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이 강했던 것은 당연한 것 입니다. 검과 도는 엄연히 틀립니다. 검은 양날이며 베는 기술과 함께 서양식의 찌르는 기술도 써먹야 합니다. 베는 기술은 고도의 손목 스냅을 잘 주어야 합니다. 칼이 일직선이라서 각을 잘 잡아야 하죠. 하지만 날이 한쪽에만 있는 도와 다르게 날이 양쪽에 있어서 검을 양손에 쥐고 한방향으로 휘두른뒤에 일본도 방식으로 손목을 반대로 방향을 꺾어서 다시 휘두를 필요가 없지요. 곧바로 좀더 빨리 공격 가능 합니다. 날이 한쪽에만 있는 일본도는 날을 한번 휘두른 뒤에 손목을 반대방향으로 완전히 꺾어서 움직여야 해서 시간 싸움에서 밀리죠. 단! 검은 양날 일직선이라서 도 보다는 베는 기술이 아주 많이 까다롭고 능숙하게 다룰수 있기까지 많은 수련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백제시대때 백제 왕이 일본에 선물한 칠지도는 일본을 무예를 비웃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역사에 날이 한쪽에만 있는 도를 다루는 이야기가 많아도 양날로 된 검을 사용했었던 기록은 없습니다. 우리 선조님들은 일본에게 검술을 전수해주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우리나라가 이긴 전쟁 입니다. 조총에 맞서서 칼과 활이 이긴 전쟁 입니다. 안타까운 일은 우리의 전통 활중에서 애기살이라 불리우는 애살 제조법과 남아있는 유물이 없답니다.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철권통치를 경험한 조선시대때 무예를 천시하여서 애살은 소리없이 아주 먼거리를 날아가서 목표물을 맞춘다고 나라법으로 애살 제조 금지 시켰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 입니다.
@ljiIL6 ай бұрын
1.임진왜란은 조총+일본도와 활+포의 대결로보는게 옳습니다. 2.검을 휘두른 후 그대로 반대날로 공격하면 신체구조상(손바닥이 아니 손가락쪽으로 압력이 가해져서) 놓치기 쉽고 놓치지 않더라도 제대로 벨 수 없습니다. 검의 장점은 베기 연속이 편한게 아니라 찌르기 사용+손목의 움직임으로 공격루트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좋다는 점입니다. 3.애기살은 지금도 인근 국궁 활터에 가보시면 다루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나라가 발시방법(통아를 사용한 발시)을 새어나가지 않게 관리했다고는 하나, 이민족들이 흉내내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애기살을 쓰지않는 이유는 첫째 다루다 실수하면 튀어서 다치기 때문이고, 둘째는 화살의 무게가 가벼워서 활에 충격이 누적되기 때문입니다.
@h384175096 ай бұрын
나래이션이. 참으로 재밋습니다
@김철끈6 ай бұрын
무사시 ㅋㅋ 일본내에서도 재조명 하고있는데 소설가의 허풍이 가미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사키와의 혈전에도 꼼수가 있었고 혼자가 아닌 떼로 덤볐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나만세-b1z6 ай бұрын
사사키와 싸운 간류지마의 혈투 자체가 구라라는 설이 더 정설에 가깝게 받아들여 진답니다. 사시키 코지로란 인물의 존재 자체가 구라라는 쪽이죠. 이유는 스승이라는 가네마키 지사이가 살아온 시기가 코지로 보다 너무 앞이라, 말이 안된다는 거죠.
@김마르코-k8d6 ай бұрын
요시오카랑 싸움도 문제 많음 뭔가 허구랑 진실 사이의 인물 같음 검술보다는 피지컬적인 우위를 앞세워서 강자 행세를 한 거지 검술가로서 강한지는...
@hyunmin-l9j1v6 ай бұрын
검술의 실력 유무를 떠나.. 그냥 수단 방법 안가리는 이기는 싸움을 할줄아는 전략가인거는 분명 맞음
@Berlin38126 ай бұрын
무사시VS척준경 과연 누가 이길까..
@6sinegohwan3366 ай бұрын
내 생각에는 척준경이 이길 것 같음. 무사시는 1대1 결투를 주로, 척준경은 일대다 전투를 주로 치룸. 즉, 체력과 상황에 따른 유연성이 더 뛰어나다 생각됨. 척준경이 보여준 행보와 업적을 보면 그 수준은 초한지의 항우 급이거나 그 이상임.
@Dummy-106 ай бұрын
@@6sinegohwan336척준경은 과장된게 많음
@6sinegohwan3366 ай бұрын
@@Dummy-10 과장이라기엔 고려 측 기록이 상당히 밋밋하게 되어있음. 한국은 중국 일본과 다르게 누군가의 업적을 그리 과시하는 경향이 없음. 누가~했다, 딱 이정도로 남아있는게 대부분. 그리고 말년에 궁궐 쳐들어가서 불지르고 이자겸이랑 손을 잡는등, 왕실 측에서 봤을 때는 사실상 역적이었기에 축소되었으면 축소됬지, 과장을 하진 않았을 듯. 그리고 금나라 측에도 척준경에 의한 피해가 기록으로 묘사된 만큼 척준경은 대단한 인물이 맞는 건 확실함.
@반박시니말이다틀-v4y6 ай бұрын
@@Dummy-10무사시시 더 과장됌 준경이형은 기록이라도 많은데 무사시는 전해내려오는 말이 많을뿐 과장됐다치면 무사시가 더 과장됌
@미제드론6 ай бұрын
@@Dummy-10 정사 기록은 의외로 과장이 별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sung.12124 күн бұрын
멋지네요 무사시 나중에 결혼해서 아들 생기면 무사시라고 이름 지어야겟네요
@내친구밥탱6 ай бұрын
근데 일본제일검 미야모토 무사시랑 조선 제일검 프제짱이랑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
@aloha15924 ай бұрын
칼싸움 한게 아니라, 총과 칼의 대결이었죠. 단, 전술은 제외하고..
@열음-n5q6 ай бұрын
소설로 읽어 본 무사시 일본인들 특유의 영웅 만들기로 먾이 과장된 검객이라는 느낌이었다
@낳괴자-z7w6 ай бұрын
사무라이는 양아치라는게 학계 정설
@봉경희-l4c6 ай бұрын
게임은 언떤 것을 하시나요? 영상 감사합니다.
@우웨하라6 ай бұрын
사무라이 쇼다운 같네요 아마
@이재규-t7i6 ай бұрын
ㅋㅋㅋ 어느 일본 역사서에 나온 내용인가요? 헬름협곡에 헬름은 맨손으로 오크를 찢어죽이고 살을 발라 먹음
@bullred86615 ай бұрын
한반도 역사상 가장 쌘 사람은 소드마스터 척준경인데 한번 붙어서 누가 이길지 보고 싶네요
@wjddngk5 ай бұрын
@@bullred8661 위대한선에서 정리됨
@6sinegohwan3366 ай бұрын
미야모토 무사시ㅋㅋ.. 사무라이 뽕에 잠식된 양키 친구들이 열광하는 인물이죠
@행성파괴용6 ай бұрын
와패니즘 ㅋㅋ
@AK--ev6gx6 ай бұрын
무사시 너무 고평가 팩트는 차갑다.. 한번도 무력으로 벼슬에 올라 당대 최고 검객들인 사람들과 싸워본적없고 최고 검객들이 모이는 에도에서 경쟁도 못해본 인간이다 사사키 코지로와의 싸움도 제자들이 다굴놨다는설 결투에서 무사시가 이겼는데 섬이름이 계속 간도로 불리운점도 미심쩍다.. 당대 최고 검객인 야규무네노리 오노 타다아키를 만난적도 없고 그중 실전으로 따지면 당대 최고로 성공한 검객 무네노리 뿐만아니라 자기 쇼군한테도 실전성으로 우사주고 에도 결투에서 진짜 대가리깨버리고 수많은 전쟁을 치룬 찐개또라이 오노 타다아키 만났으면 진작에 대가리 터져서 뒤졌을 양반인데 너무 빨아줌 ㅋㅋ이게다 무사시제자들이 지네마음대로 설 같다가 붙여서 장사할라고 신격화해서 그런듯 싶다 그리고 무사시의 전매특허인 양검술 싸울때 (니텐이치류)잘안썻음 ㅋㅋ하지만 작가로써 예술가로써는 인정..
@wolfwind17416 ай бұрын
무사시는 거품이라고 봅니다 과거 전국시대 사무라이들은 창술을 기준으로 무예를 평가했고 검술은 취미활동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츠카하라 보쿠덴 같은 검성들도 사무라이로써 별 평가를 못받아 미관말직이나 떠돌이 낭인 생활을 했죠 무사시도 오랜 세월 써주는 다이묘가 없다 만년에 가서야 작은 녹봉직을 겨우 받습니다
@德川家康-p7o5 ай бұрын
0:10 핫토리한조는 이가출신이며 닌자라 하기엔 신분이 사무라이
@정철승-m3b6 ай бұрын
임진왜란의 가장 큰 패인은 무기아니였나요?? 총.
@이상현-c3x1h6 ай бұрын
총조선도 있어다고봄!!!??😅😅😅
@낭낭낭낭하게6 ай бұрын
우리나라는 검보다 활을 주력으로 삼아서, 검은 활을 들고 다니기 편하게 짧았음. 무기 싸움에서는 리치가 중요한데, 리치가 상대가 안되니 근접에선 이길 수 없음..
@고대경-b6d6 ай бұрын
일본의 사무라이 라는 것이 미화 된 점이 많죠. 의리가 있지 않아서 자신이 섬기는 주군을 밥 먹듯이 배신하는 경우도 있고 죄 없는 양민을 새로 장만한 칼의 성능을 시험하고 싶다는 이유로 죽이는 경우도 있고 부녀자를 강간하는 일도 있었죠.
@hahhwa17206 ай бұрын
그렇게 사무라이는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고대경-b6d6 ай бұрын
@@hahhwa1720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무라이는 퇴계 이황의 성리학, 주리론을 받아들여죠.
@yuno_hera6 ай бұрын
최근에 FGO 시모사노쿠니 편을 플레이하였는데 원전이 이러했으니 전개가 더 납득이 가고 예측할만했다 생각되는군요..
@피캉3세6 ай бұрын
팩스토리님 그거 알아봤는데 유튜브에 음악을 올려도 저작권 허용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나루토 같은 오래된 애니 음악은 너무 오래되어서 저작권 허용이 가능할거 같습니다
@TV-db8hf6 ай бұрын
핫토리 한조 이야기 해주서요 야규 쥬베이 아닌가요
@Healcanglife6 ай бұрын
조선에도 검신이 있죠 김체건 그의 아들 김광택. 김광택의 제자 백동수..
@Ace-ms6ol6 ай бұрын
상대했던 자들의 레벨을 안다면 신으로 뫼실 수 있을까요? 왜검술엔 막을때 상대 목 겨냥하며 막습니다. 막음과 동시에 찌르지요! 우리나라처럼 챙!챙!챙! 이런거 없습니다.
@моталадеутгетји6 ай бұрын
@@Ace-ms6ol 조선에서도 왜검술의 우수함을 인정하여 열심히 받아들였는데 김체건이 조선에서 왜검술의 일인자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님 말처럼 일본의 검성들이랑 비교했을 때 어떨련지는 모르겠지만요
@강감찬고려거란전쟁6 ай бұрын
@@моталадеутгетји 임진왜란때 이순신 권율같은 인물의 검술은 상상했습니다.
@대머리소년의성공신화6 ай бұрын
금쪽이 4명 델꼬 외계인들이랑 일기토 승리한 무신 고길동 (서울 고급자가 거주)
@LYEH-gf7tj6 ай бұрын
선조가 죽일 놈이여 .
@태양의밭관리자사딸라6 ай бұрын
오륜서는 한반도 역사를 바꾸는데도 간접적으로 기여한 게, 미 전 대통령 테오 루즈벨트가 오륜서에 뻑이 가서 책을 주변에 나눠줄 정도였고 이게 결국 일본을 밀어주는 계기도 된 것.
@parkjaejung85776 ай бұрын
남탓 할 필요 없고 우리 자신이 세울것이 없었던것에 탓을 해야됨
@유존혁6 ай бұрын
@@parkjaejung8577 웃기고 있네 ㅋㅋㅋ 그래서 내세울 것만 있으면 장땡이야? 실속은 뭣도 없는데
@도지-q5o6 ай бұрын
우린 밀어줘도 못받아 먹었지
@요루소라_YORUSORA_夜空6 ай бұрын
@@유존혁 실속이 왜없노 게이야...
@moaaaang6 ай бұрын
@@도지-q5o 왜? 안밀어줘도 이만큼 일어섰는데
@포도송이-l1f6 ай бұрын
검술보단 총때문이 아니였을까😢
@205Brigade6 ай бұрын
미야모토 무사시... 최배달, 이소룡과 함께 제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죠 😊 그런데, 무사시가 주인공이다보니 그렇겠지만, 일본 검술에 대한 이야기가 좀 과장되는 면이 있네요. 일본이 오랜기간 전국시대였고, 무사가 우대 받는 나라였기에 검술이 발전한 것은 당연하고, 조선 검술보다 뛰어났던 것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 무사들간의 결투가 아닌, 실제 전쟁에서의 전투에서 일본군의 주력무기는 칼이 아니고 창이었어요. 물론 칼도 사용했는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도 그런 것이 아니고 길이가 창과 다름없는 긴 장도를 사용했음. 이것은 일본에서 제작된 사극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잘 재현되고 있죠. 임진왜란 때는 여기에 조총까지 더해졌죠. 따라서 현재 검도에서 사용하는 길이의 일본도를 가지고, 왜군이 조선군을 종횡무진으로 무찌르고 죽였다는 상상을 하면 오류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 물론, 근접 백병전에서 조선군이 상대적으로 밀린 것은 팩트겠죠. 애초에 조선이 무를 소홀히 하고 문을 중시한 나라였던데다가, 조선군의 전투개념이 근접전을 지양하고 원거리에서 격멸하는 방식이라 칼보다는 활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고 실제로 북쪽의 여진족과 백병전에 특화된 왜구들을 토벌하는데 성과를 냈기 때문에 근접전에 대한 준비 자체가 부족했고, 근접전에서도 방패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짧은 칼을 사용했음. 그리고 모든 이유를 떠나서 훈련이 부족했겠죠. 신립 장군은 당대에 존경받는 맹장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지장은 아니었죠. 그는 군시절의 대부분을 북쪽 오랑캐와의 전투로 보냈고, 이 때 평야지대에서 기마궁병을 활용한 기동전술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 전술에 대한 과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정규군인 왜군의 수준을 이전의 왜구 수준으로 깔보았음과 동시에, 집단운용된 조총의 위력에 대해서도 무시하였죠. 한마디로 적의 전술, 훈련수준, 무기의 위력에 대해 무지했던 장수. 😢 결국 당시 귀하고 귀했던 기병을 다 긁어모아서 탄금대라는 평지에 배수의 진을 치고 적을 기다리는 자살행위와 같은 전술을 사용했다가 몰살 당하는 결과를 가져왔어요. 용산전투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의 멍청한 조선군 지휘관들이 이끄는 8만 대군이 적을 깔보고 방심하고 있다가, 기습할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병력으로, 기습에 적합한 날씨(안개)를 이용하여, 기습적인 시간대(아침식사 준비시간)에 기병과 조총으로 종심 돌격하여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케하여 알아서 무너지게한 왜군 장수의 지략과 용맹이 빛난 대표적인 패전이죠. 10마리의 사자 무리에 쫓기는 수 천, 수 만마리의 누 떼가 밟혀 죽고, 떨어져 죽고, 물려 죽고 뭐 그런 ... 😢
@hissum57506 ай бұрын
배움이 깊으신분 같네요 ㄷㄷ
@user-kq4jv9ef1g5 ай бұрын
와 이순신은 그럼 얼마나 대단했단 말임;; ㄷㄷㄷ
@jhyhad6 ай бұрын
검술이 강해서 최강이 아니라 PR을 잘 해서 최강이 된 미야모토 무사시
@진주-j4v9s6 ай бұрын
Vs 척준경 누가이길까
@awesome-mz2lj6 ай бұрын
오늘의 교훈,,,,,,,,,,,,,,, 할 건 다하고 살자......
@Happyhappy_Bird6 ай бұрын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편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수학정석6 ай бұрын
목검 쓴 이유가 , 무사시가 해를 등지고 싸웠다함. 일본도는 해가 반사되니까 , 해를 등져도 빛을보고 위치를 파악할수있는데 , 목검은 그게 안됨. 코지로 시야를 해로 압박하고 싸움
@무진본6 ай бұрын
조총이 아니라 우리가 칼에 진게 사실인가요?
@인도양의제왕나갈플6 ай бұрын
책한권 잘 써서 떡상한 허풍쟁이. 김두한과 비슷함. 뭐 황비홍, 곽원갑 한중일이 다 비슷하지
@핰핰핰-q2d6 ай бұрын
두한 형님은 건드는거 아닙니다. 전국을 돌아 다니며 맞따이 하신 분입니다.
@인도양의제왕나갈플6 ай бұрын
@@핰핰핰-q2d 그렇게 허풍만 치던놈. 자기손으로 묻어죽였다던 아베조차 일본으로 돌아가 잘살다 늙어죽었음요ㅋㅋ
노사센호라 말씀하시는 거면 그런 역사적 사실 없습니다. 유럽에서 일본 갈 때먄 이미 총대포 시대에요.
@user-kq4jv9ef1g5 ай бұрын
한명한테 죄다 발렸죠 그것도 일본 전역을 통일한 유파가 말이죠....
@쌍쌍바100원6 ай бұрын
"그날 컨디션이 승부를 좌우한다." "역사는 살아남는 자의 기록이다." 무사시와 코지로의 일전에서 무사시는 일부로 늦게 나타났는데 코지로는 기다리다 밤을 새웠고, 무사시는 꿀잠자고 옴. 그리고 무사시와 코지로의 싸움에서 무사시는 바다를 등지고 싸웠고, 코지로는 해가 뜨는 바다를 보며 싸웠다. 강렬한 태양빛을 보며 시야가 차단되고 기다리다 피로가 쌓인 코지로는 무사시의 목검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비겁하다" 혹은, "전략적이다" 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전국의 도장깨기를 하며 많은 데이터와 노하우를 잘 쌓은 무사시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일대기라 말할 수 있다.
@박용제-x6eАй бұрын
미야모토 무사시는 뼛속까지 전략가 인 주제에 노력도 상당했지요. 오주하면 1000일의 수련을 "단" 10000이르이 수련을 "련" 이라고 했을까;;
@9318yong6 ай бұрын
임진왜란에서 신립이 진 이유는 조총을 상대로 배수진을 써서 그런걸로 알고있는데 저 예시는 일본의 검술의 강함을 보여주는 예시로 알맞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이누이누-h9o6 ай бұрын
그래서 척준경이랑 다이다이뜨면 누가 이김?
@tedkim30666 ай бұрын
황진, 한명련, 정기룡 장군은 근접전서 왜군을 애들다루듯했다
@hiratemiki60676 ай бұрын
황진 장군이 일당백이라고 했음
@wannabe28916 ай бұрын
장군인데 당연히 군은 애들 다루듯 다뤄야지
@kokekuka246 ай бұрын
그새끼들도 일본군 잡병들이나 썰었지 무사시같은 네임드 만나면 쪽도 못쓰고 오줌 질질 짤듯
@felixahn37216 ай бұрын
키 150см 고블린 정도야 쉽지
@KoreaTomHardy6 ай бұрын
어느무사든 존경합니다
@tv-gt3dc6 ай бұрын
미야모토 무사시의 검객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준 유명한 분인 것 같습니다.
@세상소식-f1h6 ай бұрын
미야모토 무사시 실존인물 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더군요~~🤔.
@Save-_-MY-_-SELF5 ай бұрын
척준경 리처드 여포 무사시... 누가제일 셀까...
@ginocha016 ай бұрын
코지로를 공격한 무사시의 목검은 그냥 목검이 아니었습니다. 그 목검은 배를 젖는 ‘노’를 칼로 깎아서 만든 ‘노목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코지로의 검보다 긴 ’노목검‘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언급을 해 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kenurflim70956 ай бұрын
마지막 전투에서 코지로와의 일화에서... 일본인이 의리를 말하다니.. 이 자체가 이 일화가 거짓이란 것을 알 수 있음. 참고로 저는 오륜서를 20살에 벌써 다 읽고 이야기 하는 것임. 그의 이야기에서 제일 존중하는 것은 ... "신불을 존중하고 믿되, 의지하지는 않는다"!!!
@torimati-ko6mt6 ай бұрын
코지로는 포세이돈도 이겼는데요?
@6sinegohwan3366 ай бұрын
영상을 보고 문득 궁금증이 들어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접해봤는데, 조사 결과 미야모토 무사시는 실제로는 검술이 뛰어난게 아니라고 합니다. 허구와 과장이 많고 그로 인해 논란도 많다네요. 현대로 따지만 검도 5단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 오랫동안 검도를 배운 현대인 실력자와 대련하면 질 가능성이 매우 크답니다. 다만 그는 그 결투 한번에 목숨을 거는 기개와 임기응변 덕에 성공한 것이지요.
@sanghyeoppark48806 ай бұрын
컨셉 ㅆㅅㅌㅊ 구독박고갑니다
@1fire2024 ай бұрын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권좌에 오를때까지 전국시대라는 100여년간 내전으로 끝판왕 실전 훈련을 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조선에 상륙 했으니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은 그냥 초딩 처럼 보였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