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조선으로 들어왔고, 조선정부가 어떠한 이유에서 활을 포기하고 조총을 군의 제식무기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보았습니다. 남한산성, 대립군, 명량, 최종병기 활, 역린, 세키가하라 대전투, 카게무샤, 몽골, 알라트리스테 등에서 영상 소스를 사용하였습니다. 영상 내용 중 삽화는 일러스트레이터 김원철 님의 것을 사용하였습니다.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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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굴이-f3n2 жыл бұрын
조총 땜에 진거라고 생각해서 조총에 올인했는데 조총없이 기병+궁병 조합으로 개털리는 조선ㅋㅋㅋ 결국은 무기탓이 아니라 걍 훈련, 전략 그리고 제일 큰 지휘관의 부정부패 때문
@김동규-g9e2 жыл бұрын
그게 문제가 아니라 조선 기마병 숫자보다 여진족 기마병 숫자가 존나 많았죠 상대적으로 적었던 조선기마병들한테는 일본조총병들이 초반에는 먹혔는데 우리보다 몇배는 많은 여진족 기마병들은 확실히 수준이 달랐던거죠 그리고 조선북쪽과 여진족 주전장은 평지였습니다 험지가 많은 조선땅에서는 매복전술이 먹히지만 평지가 많은 북쪽에서는 기마병이 유리했죠
@김동규-g9e2 жыл бұрын
그리고 그당시 조선은 장창병들이 시마말랐었습니다 기마병을 저지하려면 장창병들이 필요했었는데
@그냥유저-c3n Жыл бұрын
병자호란때는 지휘관과 상부가 말아먹은게 심각했음.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한데다 이괄의 난까지 겹쳐서 국방력과 국방에 관련된 정치가 아주 혼란스러웠음. 병력도 하자가 있었을 수 있지만 나라가 아주 엉망이었음.
@sosososososo4148 Жыл бұрын
당시 만주 팔기군들은 훨씬 많은 명나라군들과도 백전백승하던 무시무시한 군대였죠
@Joel-ux6bn Жыл бұрын
그냥 당시에 팔기군을 이길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있었을까 싶음… 음 .. 테르시오?
@구름날개-z1y2 жыл бұрын
와!!해설 오지구요!! 틀린거 정정도 오지구요~ 두번보고 구독 누릅니다!! 자주 볼테니 역사의 사실에 입각해 많이 해설해 주세요!!^^bbb
@danjjakchinguTV Жыл бұрын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진호-l5u2 жыл бұрын
아주 유익하고 재미있는 영상에 감사드립니다!
@fortune886132 жыл бұрын
재미있는 시선 잘 보고 갑니다....감사합니다.
@mixedcountry7855 ай бұрын
조선의 기병대는 숙련도가 매우높았고 또강력한 무장을 하고있었기에 조선정부도 아주굳건히 믿었건만 정작 그어떤 무기로도 뚫리지 않던 기병의 갑옷을 조총이 무참히 뚫어버렸다. 3:10 인조때도 그럴려고 했다고 합니다. 살수(창검병)의 비중을 늘리고 일부기병을 길러 청의 기병에 대항하려 했으나 일단살수의 지원하는 사람수가 너무적은데다(초시를 면제해주고 봉급도 높게해주는등 우대해주었음에도) 창검은 조총보다 저렴했으나(장창 9냥 검11냥 조총14냥) 갑옷과같은 다른장비들이 너무비쌌습니다.살수의 다른장비들(투구 18냥 두정갑(철갑) 72냥) 조총병 다른장비들(투구 18냥 지갑9냥 화약5냥)전체적으로 살수가 비쌌습니다. 그리고 기병은 한기를 양성하는데 무려600냥이 넘는데 당시조선의 경제상황으로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활병은 병사를 양성하는데 너무오래걸려 비중이 점차낮아졌죠 결국 조총의 비중이 더욱늘어났었다고 합니다.
@하하우-e1b2 жыл бұрын
근데 아쉬운건 조선의 비격진척뢰나 대장군기같은 대형 화기들이 많앗는데 전방에서 조총부대와 적절히 사용햇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기마부대를 비격진척뢰 + 대장군기 그러고 장전 그 뒤 보병 및 조총 사격후 장전씩으로 싸웟다면 홍익포가 잇엇어도 해볼만 햇을텐데 그리고 그 많던 수군은 어디로 말타고 오는 길목에 해안선만 가까우면 뻥뻥쏴줌 될텐데
@japanese_42 жыл бұрын
조총병 훈련시킬 돈도 모자란데 어떻게 그런 중화기를 개발시킵니까
@jsj9422 жыл бұрын
산지가 70프로이고 육로 교통이 불편한 조선땅에서 화포를 야전에 운용하는것이 여간 힘든일이 아닙니다~
@polska93332 жыл бұрын
그게 화약소모량도 많고 무겁기까지해서 너무 비효율 적이었음 나중에가면 현자,승자총통같은 소형화포를 운용함
@그냥유저-c3n Жыл бұрын
훈련 잘된 부대들이 이괄의 난 때 갈려나갔음. 게다가 외침이 잦은 상황으로 나라도 반쯤 파탄상태였는데 정치적으로도 꽤나 막장이었으니까요.
@hsh6036 Жыл бұрын
그 화약이 굉장히 구하기 힘든 자원이였습니다. 조선 땅에서 염초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뒷간 흙, 부엌의 흙을 달달 긁어모아야 인공적으로 염초를 생산할 수 있었어요. 서유럽 역시 염초가 부족해서 인분을 일부러 삭혀서 염초 성분을 생산하는 대규모 시설을 만드는 등 화약은 중요한 전략 자원이였습니다. 그나마 자연적으로 염초가 나는 지역은 중국 인도 정도였는데 중국 명나라는 조선을 경계하여 염초 수출양을 철저히 통제했습니다. 그래서 대형화기를 보편적으로 굴리기 힘들었던겁니다. 일본은 염초는 안나도 대신 유황이 풍부했기 때문에 염초만 잘 만들면 조총병을 대규모로 굴릴 수 있었지만 우리는 염초 유황 둘다 안나는 땅이였어요.
@esy39982 жыл бұрын
쬭봐리들이야 조총 창검의 조합으로 수십년간 전쟁을 치러왔던 터라... 그 전술 운용에 있어서 정말 효율적이었을 듯...
@rainbowsea96792 жыл бұрын
조총이란게 바로 쏠 수 있는 현대의 소총이 아닌 듯 . . . 18세기 유럽전쟁영화를 보면 . . .
@DH-ln5ql2 жыл бұрын
솔직히 물소뿔 구하기도 힘들고... 한국 기후 특성상... 활 수명이... 조총은 그냥 나무 하고 철, 화약만 있으면 어찌 저찌 운영되는데 물소뿔은 수입 해야됨.
탄금대전투는 이미 십 년도 더 전에 노부나가와 신겐이 했던 전투...... 패전은 정해져 있었다...
@god24532 жыл бұрын
삼단조총법 사실상 르네상스 시기에도 철기병들이 조총병한테 돌진해서 승전한 역사도 많았었지요
@confusedcaveman56782 жыл бұрын
노부나가와 신겐이 아니라 신겐 아들 아님?
@盧이언2 жыл бұрын
그거 개 과장된건데 ㅋㅋㅋ 나가시노 전투인가 그거
@Handlesscup Жыл бұрын
조총은 창을 대체하는 무기고 활은 대체하는건 포라고 생각합니다
@lanz33312 жыл бұрын
음.... 화약이 국내수급 가능한 지에 대해서.... 화력조선 영상보면 화약원료들의 국내자급이 불가능해서 수입에 의존했다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교차검증 한 번 부탁드립ㄴ다.
@kisear4552 жыл бұрын
자력자급은 가능함 그대신 한번 사용하면 없는게 문제
@bundeswehr1131 Жыл бұрын
여기 주인장 양반 역사적 지식이나 무기 그리고 방어구에 대한 통찰력이 해박하시군요.
@밀크핫쵸코 Жыл бұрын
조총유과
@생생역사 Жыл бұрын
평생 한번 밖에 먹을 수 없다는 귀한 음식
@rangiroajoe73722 жыл бұрын
썩은 나라 였다!
@김승욱-m8z Жыл бұрын
왜 조총이면 매복을 안하지
@생생역사 Жыл бұрын
들고 못뛰고 연기가 계속 피워올라서 안되요
@Bf109E-13 жыл бұрын
다음편이 필요해
@생생역사3 жыл бұрын
요번달 말에는 낼게요ㅠㅠ
@Bf109E-13 жыл бұрын
@@생생역사 너무 재미있어요
@kangminlee87192 жыл бұрын
단순히 활이 조총보다 성능이 나빠서는 아님. 세계사적으로 몽고의 복합궁(고구려 활과 맥락이 같음 : 세계 정복-유럽 정벌시 그 당시 전차와도 같은 기사단 학살함.)과, 영국의 장궁병(유럽대륙의 기사단 박살 영국이 주도권 가짐)들의 활은 사거리 대략 300~350미터 정도 나옴. 영상에서 120정도 사거리 나오는 활도 그 당시는 엄청 훌륭한 활임. 일본의 장궁은 임란당시 사거리 30정도로 앎. 사거리 30정도 되는 활 보다는 조총(사거리 50으로 앎)이 훨씬 우수한 무기지만, 조선의 복합궁에는 사거리가 안됨. 다만 영상에도 나오듯 사거리가 먼 복합궁은 엄청 비싼 무기임. 아마도 조선의 궁병은 복합궁은 사용 못했을 거로 추정(사거리 30 일본 장궁보다는 사거리 길것으로 추정)됨. 복합궁은 장군급에서나 사용. 애기살(편전)은 더 파괴적인 무기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궁병은 사용 못한듯 함. 우리가 현재 쓰는 열병기의 성능이 구현되기전, 열병기의 초창기 가성비는 몰라도 냉병기의 최고인 활은 사거리나 파괴력에서 가성비를 제외하면 열병기를 압도한 것은 맞음. 내가 얘기 하고도 그닥 큰 의미 없는건 알겠는 얘기인데, 복합적인 상황이었다는걸 얘기하고 싶었음. 열병기 초창기 압도적인 파괴력의 엄청 비싼 냉병기와 싸구려 냉병기에 비해 가성비 좋고 파괴력 높은 열병기 정도.
@권학수-w2n2 жыл бұрын
그래봐야 갑옷 못뚫고 약함
@rladbsrua02 жыл бұрын
좋으면 뭐함 대량생산 일제사격 운용할 규모를 꾸리는 것 자체가 안되는데.. 거기다 활도 관리 못하면 아교나 줄이 너덜너덜해서 못씀. 영상내용처럼 숙련된 사수가 되는데 엄청난 훈련시간도 걸렸고.
@저는기어다닐거에요 Жыл бұрын
활이 열병기를 파괴력으로 압도요...?
@user-co7vk7s77711 ай бұрын
다케다 오버랩
@doki6980 Жыл бұрын
조총이 더좋으니까 일본이 이겼지 이건또 무슨소리야
@nethappy6418 Жыл бұрын
식민지 나라로 세워진 조선이 무슨 군대가 필요해요 명의 보호아래있는데
@생생역사 Жыл бұрын
전근대 동아시아의 조공시스템과 근대의 식민지 시스템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역사를 논할 기초지식마저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볼트-x7p Жыл бұрын
@@12atgh50그게 너아님?
@heypraise2 жыл бұрын
사야가(김충선), 하멜, 벨테브레 납치 등으로 서양의 총을 들여왔으나 자동격발장치의 부재나 화약 재장전 등의 단점이 많았죠
@hyeongjungkim04412 жыл бұрын
나선정벌 때 조선군이 러시아 탐험대 를 상대로 이기고 러시아 탐험대 의 머스켓총을 노획했는데 청나라 에게 상납하게되어 구식 심지식 화승총 으로 밖에 못 머무름 청나라 는 17세기 머스켓식 총을 사용하고 또 이후에 서양나라 들을 통해 들어온 개량형 소총들을 가지게 되었어요
@kisear4552 жыл бұрын
@@hyeongjungkim0441 만들어봤자 부싯돌 재료가 진짜 부족해서 양산 못함
@별빛동네2 жыл бұрын
@@hyeongjungkim0441 청나라에게 상납이 아니라.. 거의 삥뜯긴 수준이었습니다. T-T
@요나라황제야율아보기2 жыл бұрын
단점을 커버할수있을만큼 가성비가 좋은게 총임 ㅋㅋ 임란이후로 쭉 조선 주 무기가 총인 이유가 뭐겠냐
@유튜브까마귀2 жыл бұрын
조선도 나중에 신기술로 제작된 총을 입수하게 됨 문제는 본인들이 한 번 만들어 보니까 기존 성능과 별 차이 없으면서 생산 가격만 높아서 개발을 포기함 (개인적으로 국가 재정 영향이 컸다고 봄)
@user-rax1462 жыл бұрын
조선은 그래서 결국엔 조선후기에 이르러 조총, 즉 아케부스를 전세계에서 가장 잘 다루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그 쯤 되어선 다른 나라들은 스프링이 결합된 방아쇠, 장전, 격발장치 와 탄알 그리고 머신건까지 실전에 쓰고있었지만 말이다. 나라가 발전이 없었단 거다. 기술이라는게 물건 하나 만든다고 땡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지 싶다.
@jmsunny14372 жыл бұрын
조선과 서양의 차이점이 조선은 병자호란이후엔 그렇다할 전쟁이 없었어서 전쟁기술이 많이도태된게 있었고 동시대 서양은 아메리카 아프리카정복전쟁하고 유럽내부에서도 지들끼리 정복전쟁하고 정복전쟁이 일상화되던시기였음 틈만나면 정복하고 전쟁해대니 무기발전이 있을수밖에없었지
@dijaypark52572 жыл бұрын
정치인들이 나라발전을 위할 생각은 안하고 자기밥그릇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식이어서 그렇지요. 우리나라는 개개인은 우수한데 뭔가 감투만 쓰고나면 그 좋은 머리를 나쁜 쪽으로 쓴다는게 문제입니다.
@dijaypark52572 жыл бұрын
@워윅펜타킬영상 정약용 같이 뛰어난 학자이자 과학자를 모함해서 귀양보낸 것만 봐도 조선시대는 정치 때문에 사회가 발전을 못하고 500년간 정체기를 겪다가 패망한 것입니다. 뛰어난 인재는 많았으나 전부 정치적인 문제로 재능을 펴지 못했지요.
@Handlesscup2 жыл бұрын
@워윅펜타킬영상 조선은 수뇌부가 자기 밥그릇만 챙기면 되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나라였음 나라가 완전히 망할 정도의 위기가 아니면 변화를 시도조차 안함
@AF-qk8ty2 жыл бұрын
@@jmsunny1437 전쟁 무기가 전쟁때문에 발전한다고 생각하냐? 전쟁 무기의 발전은 과학과 산업 기술의 발달이 촉진하는거다. 아프리카가 100만년 전쟁을 해도 거대 무기 제조사를 가질 수 없고 한국이 100만년 북한과 대립을 해도 보잉사를 가질 수는 없다. 너의 논리 대로면 전세계에서 가장 무기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국가는 스웨덴이고 전세계에서 가장 무기가 발달한 국가는 시리아야. 지난 70년 사이에 중동 전쟁 1차 2차 3차 4차 를 했고 시리아 내전과 ISIS있다. 하지만 실제는 스웨덴은 세계적인 방산국가고 시리아는 단지 전쟁터일 뿐이야.
@세실하비2 жыл бұрын
이미 임란 이전인 조선 중기부터 기병 전력이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말의 경우 그 수가 줄어들고 있었는데, 호랑이와 같은 육식 동물의 습격으로 말이 줄어들고 있었는데다가 인구의 증가로 목장이 논경지로 전환되는 등의 이유가 주 원인었습니다.
@조성호-c5q2 жыл бұрын
활을 들고 총을 들엇스나 전력화에 실페 한 총이지요 너무 총에만 의지한 전략이니까요 저 총은 한번 쏘면 장전에 시간이 만이 걸림니다 또한 쏘아도 명중륭이 매우 낮습니다 총의 위력이 생ㄱ각보다 약하다는 것이지요 즉총성은 커서 조치만 명충륙 낮고 장정에 시간이 만이간다 적이 그것을 안다면 치명적인 약점에의해 아군의 전멸이겟지요~~~~당현 하게도 적은 그 약점을 이해 하고 있으며 조선군을 전멸 시켯구요
@조성호-c5q2 жыл бұрын
전쟁은 장난이 아님니다 죽이느냐 죽느냐 잡아 먹느냐 잡아 먹희느냐 임니다 튀어난 지휘관과 판단력은 적을 잡아 먹지만 어리석은 지휘관은 잡아 먹힘니다 아무리 무기가 조아도여 ~~총의 군대 만들고 총의 취약점을 약한 부분을 보강하지 안코 전쟁에 나아 같지요 ~~~그당시 지휘 체계와 ((지휘 체계라 함은 자신의 지인이라 하여 어리석은 자를 지휘관에 안치는 것 이지요))그리고 그 지휘관이 누구 인지 모르나 어리석은 자가 분명하다 하겟지요
@임병균 Жыл бұрын
선조는 조총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진짜문제는 훈련되지못한군대였다는게 문제 아닐까 생각 합니다
@user-eu2ydidibe38w9dkdnwoaps4 ай бұрын
맞습니다
@아차산로차으누3 жыл бұрын
게임체인져급은 아니지만 비젼은 활이 아니라 조총인건 맞으니... 조선이 조총에 집착하는건 아주당연한 일인듯..
@newjae12 жыл бұрын
조총이 물론 훈련 없이 쓸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활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징집된 병사들도 쓸수 있다는건 이후 전쟁양상도 바꿀 정도로 중요한 사실이죠. 활도 강력한 무기이지만 기본적인 숙련도가 나오려면 시간이 더 걸리고 잠깐 훈련으로는 만족할 성능이 나올순 없으니 ㅎㅎㅎ 잘봤습니다!
@지옥에서돌아온그분2 жыл бұрын
이 말이 ㄹㅇ인게 일반인들? 줄 한번 댕겼다가 팔 힘 다빠짐 ㅋㅋㅋㅋ 그것도 귓대기 끝까지 당기는게 정석인데 ㅋㅋㅋ
고려와 조선 초에 사용을 하건 단순히 활이 아니라 궁기병이야. 그래서 여진족 털었던거야. 조선은 활을 포기한게 아니라 궁기병을 포기한거야. 문제는 청의 중갑기병의 카운터가 궁기병이었다는거지. 그리고 화승총병의 카운터가 중갑기병이고 차라리 화승총병이 아니라 카라콜을 운용 했어야지. 하지만 카라콜을 운용하기에는 조선은 너무 가난했어. 청의 중갑기병이 카라콜 이기는건 진짜 ㅈㄴ 힘들지. 중갑기병은 느린대 경기병은 가벼워서 속도가 빨라 더구나 중갑기병은 창으로 찔러야해서 2m이내로 접근해야하지만 칼라콜은 권총이라 유효사거리가 아무리 개판이라도 5~10m야. 새 무기가 나오면 그에 맞는 전략과 전술을 가져야하는데 그러기엔 돈이 너무 없지. 카라콜을 하려고 해봐 일단 기병을 키워야하고 기병은 권총을 두자루를 가져야해. 그리고 다시 뛸 기병 1기당 말이 추가로 있어야하고 말위에서 장전을 못하니까 장전을 위한 장소와 인력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진지 구축이 필요하고 진지 수호를 위한 보병이 필요하고 보병은 포병 장창병 총병으로 구성되어야하고 전투가 시작되면 포병이 포를 쏘고 총병은 돌격하고 장창병은 그 앞에 서야해. 이런 완전히 편제된 부대가 있고 포가 동급이나 더 좋은 성능을 가졌다면 병사가 청의 절반밖에 안되도 이겼겠지.
@user_sdkdbijqlketg2 жыл бұрын
@@마에-s5y 네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각궁은 40J, 조총은 장약량에 따라서 700-2000J입니다. 인간 근력으로 만들어내는 위력을 지닌 냉기(칼,활,창)이 화약 폭발력으로 만들어내는 위력을 이용하는 화기(총,대포)에 비교될 수 조차 없죠. 조총의 총구 속도가 음속이 넘어가죠. 즉, 초음속입니다. 활은 시속 200km 정도이고.. 그냥 비교가 안되죠.
@hotwo70213 жыл бұрын
근데 사실 조총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전국시대로 다져진 일본군의 전투경력 + 오랜 평화로 인해 무뎌진 조선군 이 두가지 콤보가 전쟁 초기에 조선군이 두드려맞았던 이유가 컸을듯
@god24532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sosososososo4148 Жыл бұрын
특히 육상에서의 백병전은 거의 백전백패 했다고 봅니다. 이겼던 전투들은 수성전이나 해전입니다. 이순신도 왜군 배가 붙어서 넘어오는 백병전은 필사적으로 피했죠
@user-hx7yr1jn9g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오랫동안 전쟁하면 피폐해져서 더못싸우고 평화가오래되어도 무뎌져서 못싸우고 그냥 병신나라 아니냐 ㅋㅋ
@저는기어다닐거에요 Жыл бұрын
전쟁으로 다져진 북방군은 신립이 말아먹었습니다 데헷
@볼트-x7p Жыл бұрын
@@저는기어다닐거에요신립은 일본군 이 여진족보다약할줄 알았던겁니다 아무리 약한적이어도 방심하면 안되는게 전쟁이죠 여진족에서잘싸운 명성을 탄금대 전투에서 한순간에 잃게되는 신립
@흑산포구룡아-u1d2 жыл бұрын
한국의 궁술 실력 실록 기록에 의하면 김과 이가 백오십보 밖의 과녁에 살을 쏘는걸 내기 했는데 김이 500발 중 494발을 맞췄다 함 하지만 승리는 이 였는데 이는 만발이었다 함
@안병욱-r6q2 жыл бұрын
500발씩 쏠수 있나요? 100발 전에 팔근육 인대 다 터질건대요.
@흑산포구룡아-u1d2 жыл бұрын
@@안병욱-r6q 오래돼서 대충 기억을 더듬은건데 님덕분에 정확한 자료 찾아 봤습니다 박취문의 부북일기 이고 박취문과 이시복의 쏘기 시합에서 박취문이 189발을 연속 명중시켰고 이시복이 200발을 연속 명중 시켰네요 화살은 가장 많이 쏜 날은 300발을 쏜 날이네요 그리고 당진 국궁장에서는 대부분 60대 이상 노인들이고 하루 100발 이상 쏘는데 무슨 혈관이 터져요 당진 국궁장도 100보가 족히 넘어보이더만
@최유훈-n1r Жыл бұрын
현 국궁장 표적이 145m인걸로 압니다
@제임스-w2n2 жыл бұрын
전국시대로 오랜 내전으로 단련된 왜군 막는게 쉬운게 아니었쥬
@WHCAV-u5p2 жыл бұрын
만들수 있는거 하고 우수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당시 조선의 공업력으로는 우수한 총을 만들지 못함. 가공 기술이 너무 낙후됨 조선제 조총은 후진 총임 당시 화약은 대량생산도 안되고 장기보관도 어려움. 돈 덩어리임. 조선 나라는 전쟁을 할 수있을 정도의 화약을 비축해 본적이 없음. 이미 그 시절가면 쩐의 전쟁이 시작되는 시대임. 칼, 창, 활은 쩐하고 절대적인 영향은 없음. 화포, 기병, 함대 등은 쩐하고 절대적인 관계가 있음. 그래서 너도나도 돈벌러 갔음. 땅파먹고 있는 조선 나라가 우수한 화포를 구비한다는 것은 반경제 논리에 비논리적 판타지임. 언제까지 논리를 무시할런지. 설마 조선제 화약이 중국이나 일본화약보다 우수하다고 우길런가? 서양까지 갈 것도 없음. 총 품질도 마찬가지지만 화약도 천차만별임. 당시에는 화약 성능이 그 나라의 기술 척도임. 지나친 판타지는 몸에 해롭슴. 백년 전의 고물도 안버리고 장부에 잡아 놓은 숫자라는건 알고 가야함. 정작 전쟁나면 쓸만한게 없음.
@htriple74692 жыл бұрын
전 이댓이 현실성 있어보이네요
@GG-100982 жыл бұрын
화약 자체는 거기서 거기구 조총도 유럽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 동아시아 거기서 거기임 그리고 조선은 제작 기술력이 딸리고 그러지는 않았음
@moonshock26832 жыл бұрын
그냥 조선은 그놈의 유교 사상 때문에 상업을 천시 당연히 경공업도 낙후 그냥 가난한 나라여서 털린것
@Joel-ux6bn2 жыл бұрын
이유는 아주 간단함. 훈련기간이 짧기 때문 활을 잘 다루는 정예병 보다, 적당한 훈련을 마친 일반병의 조총 사용의 효율이 높기 때문.
항상 무기 전술은 발전한다. 지금은 북한 핵을 고민해야 한다. 전쟁나면 핵 한방으로 모든것이 끝날 수 있다.
@냥냥-m3h9i2 жыл бұрын
무기에 맞는 전술을 개발했어야 했지만.... 스페인의 테르시오처럼 말이죠
@로갓-i8w2 жыл бұрын
물소 뿔이 대개 명이나 일본쪽을 통해 수입하는데 이둘이 우리나라가 물소뿔 구입하면 전쟁 준비하냐고 수출 규제하는 갑질을 당한걸 생각하면 조총에 빠질수 밖에 없었겠죠ㅜㅜ
@j86632 жыл бұрын
아마도 처음으로 조총을 배운건 총통수였었을거라고 봅니다. 화약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병과였었기에 조총도 금방 적응을 했을테구요 승자총통에서 조총으로 갈아탄 이유는 아무래도 편리함 때문이라고 봅니다. 승자총통에 비해 화약도 적게 들구 방아쇠 덕분에 바로 쏠수있구 명중률도 좋구 말이죠 근데 그 총통수들 싸그리 다 갈아버린것이 사르후전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sunghohong60742 жыл бұрын
웃자고 얘기하는것이지만 신미양요때 미군의 총은 레밍턴. 카빈과같은 엎드려서 1분에 6내지10발사격이 가능한 총을 사용했으며 그때 조선군은 임진왜란때와 비슷한 화승총을 사용했었슴. 이걸보고 어떤 역사박사님께서 이런말을 하셨슴 신미양요때 조선군은 세계에서 제일 잘만들고 훌륭한 화승총이 있었다고
@youngsinchang1122 жыл бұрын
강력한 자주국방만이 살길이다. 힘없는 나라는 언제든 망하게 돼있다. 강력한 국방력을 만들어야 한다.
@Jun-g7q Жыл бұрын
국방은 지금도 충분하게 강합니다. 약하게 만들려는 세력들이 문제죠..
@마속산악회6 ай бұрын
조선군 무턱대고 욕하는 사람들이 놓치는게, 현실은 게임이 아닙니다. 와! 조총! 와! 플린트락! 좋아보인다고 바로바로 바꾸지 못해요. 뭔 정책을 해도 공짜인게 아니니 좋은거 알아도 결국 실행 못하고 묻힌 정책들도 많습니다. 현실은 게임이 아니라 조정에서 업그레이드 누르고 업그레이드 컴플리트! 하면 바로 모든 병력이 세지는게 아니에요... 지금도 최신 장비같은건 최전방부터 보급해주는것처럼요
@jaehwancho5222 жыл бұрын
조선은 태생적으로 강한 군사력 소유가 불가능한 나라였습니다. 특히 이 성계의 위화도 회군 두차례의 왕자의 난 등으로 이미 자신들이 군대에 관한 깊은 트라우마 가 있어 강한 국방력을 가지는게 불가능 . 이렇게 회자되고 비판하는것 각개의 전투에 대한 분석은되나 무슨 국가라는게 한번전투에서 지면 국방력이 괴멸되는게 말이된다고 봅니까.
@저는기어다닐거에요 Жыл бұрын
대체 어느 전투에서요..?
@효자손-m7q3 ай бұрын
활때문도 아니고 조총때문에 유린당한게 아니다. 당시 세력들이 무인들을 아주 천대시 했을뿐 아니라 군인의 처우가 아주 안좋았음. 군인은 ㅇ 가장 최악의 직업이 었던 샘.
@박정민-c6y2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 이전에도 조선은 조총의 존재를 알았지만 활보다 짮은 사정거리와 느린 발사 속도 때문에 무시 했다가 조총의 단점을 보완해서 나온 일본군에 쳐맞으면서 조총의 위력을 실감하고 받아 들이죠 근데 웃기는 것은 조선후기 고종때까지 불을 붙혀서 발사하는 화승총을 사용해다는 것 서양인들이 고도 성장을 이루는 동안에 조선은 임진왜란때 그대로...
@권학수-w2n2 жыл бұрын
비싸서 개조 안했다함
@리기-z1l2 жыл бұрын
뭐 틀린 말은 아닌데, 역사 잘 모르지? ㅋ
@moonshock26832 жыл бұрын
그냥 상업을 도외시한 가난한 조선의 말로
@저는기어다닐거에요 Жыл бұрын
플린트락도 불 붙여서 발사하는 총인데요..
@ESTJ974 ай бұрын
신립의기병대가 병자호란때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냥 궁금 ㅎㅋㅋㅋ
@agm1144 Жыл бұрын
'궁시로는 조총에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이 왜란초 전투를 경험한 장수들의 결론이였습니다. 잘만 싸운게 아니라 원거리 전투에서 화약무기와 성능 좋은 활로 조선군이 누려온 전술적 우위가 조총으로 거의 상쇄되어버려 악전고투를 했습니다. 다만 당시 일본군에서 조총 포수의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았고 조선군도 활만 사용한게 아니라 승자총통 계통의 개인 화기와 그외 각종 화기를 운용해 어느정도 대적이 가능했던거 뿐입니다. 조총 사거리가 50미터라는 의미는 조총 탄환이 50미터 밖에 못날아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원형의 탄환이 무회전으로 날아가는 조총 탄환의 특성으로 인해 공기 저항으로 궤적이 불안정하여 50미터 이상 날아가면 조준한 지점에서 완전 벗어난 곳으로 탄환이 날아가 명중률이 떨어졌기 때문에 50미터까지 다가가서 쏘았던 겁니다. 실제 조총의 발사 에너지는 현대 소총과 비슷한 수준이라 단순히 총알이 날아갈 수 있는 사거리는 수백미터에 달했습니다. 조선 후기 전술 지침을 보면 '적이 100보 이내로 다가오면 총을 쏘고, 적이 90보 이내로 다가오면 활을 쏜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실제 사거리는 조총이 당시 조선군이 사용하던 활보다 더 길었기에 나온 전술입니다.
@miju-wt1cr Жыл бұрын
실제 우리 활은 200미터 300미터까지 나간다고 한던데 이해가 안되네요 일본이 조총을 재빨리 수입하게 된것도 일본활의 사정거리가 30미터 남짓밖에 되지 않아 전국시대 전쟁에 이기기위해 어떻게든 조총을 수입햇던 걸로 보임
@agm1144 Жыл бұрын
@@miju-wt1cr 화승총이 전장에서 널리 쓰인 결정적인 이유는 활보다 사거리가 길어서가 아닙니다. 활은 갑옷이나 방패로 쉽게 막을 수 있었지만 화승총과 같은 화약무기는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된 철제 갑옷을 갖춘 무사에게 활은 큰 위협이 못되었지만 그런 무사도 화승총 탄환에는 속수무책이였지요. 일본도 똑같은 이유로 조총을 사용했습니다. 전국시대 일본은 중무장한 무사들이 선봉에 서서 적진으로 돌진하는 전술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런 중무장한 무사를 활로 제압할 수는 없었지만 조총은 단 한방으로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도 비슷한 이유로 건국 초기부터 화약무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조총보다 더 구식인 핸드고네류 무기만으로도 활로는 도저히 제압할 수 없었던 적을 능히 제압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핸드고네에 불과한 승자총통을 두고 천하를 평정할만한 무기라고 호들갑까지 떨었습니다. 사거리는 화승총을 채택하는 이유가 아니였습니다. 18세기 유럽, 전열보병 시대조차 머스킷 운용 전술은 적의 눈동자가 보일 정도로 바싹 다가가서 일제 사격하는 것이였습니다. 수백미터의 사거리를 보였던 롱보우나 쇠뇌를 이용하던 유럽인들이 이런 무기를 버리고 머스킷으로 완전히 갈아탔던건 머스킷이 활보다 사거리가 길어서가 아니였음을 보여줍니다.
@@Kwinter 전투에 숙련자 투입하지 새내기 투입하나 징용병이라도 숙련시켜 투입시키는거지 조총도 마찬가지고 저 시기 왜의 조총부대는 주력부대 아니고 극히 부분적으로 쓰였고 시중에 알려진것 처럼 3단계 전법 같은건 있지도 않은 뻥티기 소설속에나 등장하는 일본의 거짓말임
@안녕하자9 Жыл бұрын
@@Kwinter모두가 이성계는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hikerfrantz58292 жыл бұрын
조총이 비록 활보다 사거리가 짧고 재장전이 시간이 걸려도 활보다 훨씬 우월한 병기일 수 밖에 없는게, 전장터에서 쓸만한 습사수 한명 길러내는데 최소 2년 정도 시간이 소요됨. 아무리 단기간 속성으로 벼락치기 해도 6개월은 걸림. 반면에 조총은 빠르면 1~2주, 오래 걸려도 한달이면 조총수 한명이 탄생함. 병사들이 마구 죽어나가는 전쟁터에서 병력보충이라는 면에서 비교 불가. 또한 활은 활과 화살 일일히 장인들이 손으로 만들어야 해서 생산량도 적고 비용도 비쌈. 반면에 조총은 공정만 일단 갖춰지면 대량생산 가능. 역시 병기의 보충이라는 면에서 비교 불가. 상대보다 더 격렬하게 소모하면서도 더 오래 버텨야 승리하는 전쟁에 있어, 병력과 병기의 보충이라는 면에서 뒤 떨어지는 활은 도태 될 수 밖에 없었다.
@알리츄-z8z2 жыл бұрын
라고 영상에서 그대로 설명하네요^^
@jmsunny14372 жыл бұрын
추가로 활의 경우 조준 후 사격을 하는데있어 동작이 매우 컷고 은폐엄폐가 불가능했기에 적군에게 있어 노출될 위험이 매우 컸음. 즉 상대 궁사나 척후병으로부터 표적이 되기 쉽기에 생명유지도 힘들었겠지. 하지만 조총의 경우 동작이 작고 구조물에 은폐 엄폐를 한 상태에서도 조준 사격이 가능했기에 적군으로부터 몸이 노출되는게 궁사보다도 월등히 낮았음. 즉 사수의 생명유지에 있어서도 오래 버틸수 있었음.
@dubu9992 жыл бұрын
재미있는건 조선은 활보다 총의 사거리를 길게 봤음. 무과 시험장이나 활터에서 쓰이는 비전투용 유엽전의 수백미터 사거리는 실전용이 아님
@user_sdkdbijqlketg2 жыл бұрын
조총 사거리가 짧다는 거는 잘못 알려진 거입니다. 조총은 무강선 활강총이라 조준이 가능한 직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가 50m이고 그후 무회전 특징인 어디로 날아갈지 몰라서 일뿐 실제 유효사거리(죽이든 상처를 입히든 위력이 보증되는 거리는) 250m 까지였습니다. 직진 거리 넘어가면 탄착점이 어딘 지 알수 없지만 맞으면 골로가는 거는 마찬가지입니다. 활도 또한 직접 조준해서 날릴 수 있는 거리는 40-50m이고 그후는 높이 들어서 아무나 맞고 죽어라는 식으로 여러 명이서 탄막을 형성해서 날리는 거는 조총이랑 같았습니다. 조총도 적이 멀리 떨어지면 포물선 사법을 구사해서 탄막을 형성해서 아무나 맞고 죽으라는 식으로 쏘았고 40보(50m)쯤에서는 목표물을 조준해서 쏘았어요. 그리고 정규군이 아닌 군대를 상대로 할 때 활은 위력을 발휘했지만 갑옷을 제대로 갖춘 정규군 상대로는 활은 상대가 진격을 늦추는 개념이었지 갑옷을 뚫을 수가 없었고 조총은 한방에 갑옷을 뚫어서 저지할 수 있어서 원거리 무기에 진심인 조선이 조총을 선택 안하는 거는 이상한 거죠. 우리나라 활도 전쟁용 활은 거의 100파운드급이며 90J의 운동에너지를 지녔습니다. 이걸로는 갑옷을 뚫지 못하죠. 참고로 사극에 보면 등장하는 개인용 휴대활은 40파운드급으로 전쟁용으로는 쓸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갑옷을 뚫을려면 최소 400J 이상의 운동에너지를 가져야하는 걸로 압니다. 조총은 화약 장약에 따라서 700~2000J 까지 나갔습니다. 위력 측면에서 활과는 다른 차원의 무기였습니다. 개인화기로 정규군 중장갑을 뚫는 획기적인 혁명이었죠. 중세 이후 유럽에서 활이나 석궁을 안쓴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무조건 화승총(아케버스와 머스킷)과 대포였죠. 17세기 이후 서양의 전쟁은 물론 창도 있고 칼도 있었겠지만 총과 대포의 전장이었습니다. 1700년대 중반이후는 거의 총과 대포로만 싸우죠. 접근전에서는 일반 보병들은 총앞에 대검을 꽂아서 싸웠지 칼은 써지 않았습니다. 장교나 기병대들은 말을 타고 칼을 휘둘러야해서 칼을 썼지만
@김동규-g9e2 жыл бұрын
@@dubu999 그리고 활은 맞어도 100%죽지않는 병기였음 근데 조총은 맞으면 거으80%죽을수밖에 없었음 당시 의원들이 와과술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했지만 구가의서에서 백광현이가 있었다면 수지 치료해 줬을텐데 아쉬움
@정재성-c1l2 жыл бұрын
조선후기 조총은 그냥 임진왜란당시 일본의 조총을 그대로 배끼지는 않았습니다.
@진자림-f8e2 жыл бұрын
역사 전공은 커녕, 취미로도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본적 없는거 같네요. 신립에 대해서는 식민사관 그대로 씨부린다는게 정말 어이가 없고, 임진왜란에 있어서 조총은 하나의 요소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농민이 베테랑 군인을 어떻게 이깁니까. 어디 역사소설에서 들은거 가지고 씨부리지 마십쇼 ~
@마르져뜨 Жыл бұрын
그러게 하멜일행들이 갖고 있던 조총에는 무관심했냐? 하멜이 일본 나가사키에 갔을때 나가사키영주는 단번에 조총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큰돈을 지불하고 샀는데..
@생생역사 Жыл бұрын
하멜 일행이 왔을때는 이미 조선에 조총이 보편화된 시대였습니다. 또 하멜 이전에 벨테브레가 왔을때 이미 조총과 대포의 개량이 이루어진 상태였습니다. 제 기억에 하멜 일행 중 기술자는 없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계속 조선 팔도 뺑뺑이 돌린거죠
@searchofgod Жыл бұрын
냉병기, 열병기의 차이중에는 사수의 '체력'도 있죠 냉병기는 사수가 격발에 체력을 운동에너지로 소모해야 하는데, 분당 몇발을 쏘느냐가 전투에서 승패를 갈랐죠. 따라서 지속가능한 사격발수는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요소였는데 , 아무리 숙련된 사수도 활을 몇시간씩 계속해서 정확하게 쏘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열병기는 운동에너지가 화약이므로 조건만 맞으면 무한대가 가능했죠. 따라서 효율성만보면 열병기가 훨씬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이윤성-u6u Жыл бұрын
갑오개혁이 1885년???? 1894년에서 1895년 까지!!!!!!!!!!!!!
@생생역사 Жыл бұрын
알겠어요, 고마워요
@bluejayway54582 жыл бұрын
9:05 질산칼륨은 똥오줌 겨우 퍼서 만든거라 극도로 부족했던걸로 압니당
@shanestory38792 жыл бұрын
와, 진짜 흥미롭네요. 조총...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잘 봤습니다.
@김동규-g9e2 жыл бұрын
조선의 약점은 서방들처럼 포수 기병 장창부대 섞은 부대가 아니라는것이였지요 유럽도 보면 조총보다 화승총이 있었지만 화승총 만으로는 기병을 상대할수 없었죠 프로이센 장군 프리드리히가 만들어낸 전술이 정말최고었었죠 어느한쪽에 취우치지 않은 부대였죠
@jaek0201 Жыл бұрын
그 나폴레옹이 보병 기병 포병을 조합한 제병합동술의 달인이였죠.
@hsh6036 Жыл бұрын
조선도 조총병 창병 검병 조합을 짰습니다. 제병협동전술은 조선도 사용했습니다.
@저는기어다닐거에요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서양마냥 막 몇미터짜리 장창 굴리고 그럴만한 곳이 아니여요..
@냉정한부동산 Жыл бұрын
조선의 무능함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게틀링건 사용하고 있을 때 활, 삼지창, 화승총을 사용했고 외국함대는 강철로 만든 함대였지만 조선은 그때까지도 판옥선에 돌대포... 답이없었다.
@저는기어다닐거에요 Жыл бұрын
아 그놈의 삼지창 제발 사극으로 역사를 배우지 마세요
@user-sd8fe8ij7l10 ай бұрын
@@저는기어다닐거에요그만큼 약한거지
@rnfockcpen74702 жыл бұрын
뭔 조총병이 중심이야 장창병이 중심이고 조총병은 부가적인 옵션이였는데 아직도 조총에 대한 헛소리를 하네
@금나라돌격기병대 Жыл бұрын
확실히 조선시대 초기때까지 조선의 주력 군대는 긴 창을 들고 돌격하는 돌격기병대였는데 임진왜란 이후부터는 주력 군대가 총병으로 바뀐듯.
@tasha55852 жыл бұрын
더 값싸고 훈련시키기 쉬우니까 오죽하면 조선시대에 총을 쥐어주면 어린아이도 항우를 능히 이길 수 있다는 말이 나왔겠나?
@잣가라 Жыл бұрын
그냥 조선은 ㅈㄴ 약했는데 외교를 잘해서 그나마 오래 살아 남았지 중국하테 간이고 쓸개고 다 주면서
@저는기어다닐거에요 Жыл бұрын
대체 뭔... 설마 중국이랑 무역했다고 그러는거?
@볼트-x7p Жыл бұрын
중국이라고 하기엔 명나라는 우리한테 민폐준게 없어서 드라마 보고 명나라한테 조공 바치고 그러는줄 알고있나본데 명나라는 우리한테 조공을 요구한적도 없고 오히려 우리에게 선물을줬음 다만 형제의 나라니 조선이 아우의 나라가 되라고 요구하긴했지 근데 그건 자존심만 굽히면 끝나는일 ㅋㅋㄴ원나라처럼 고려한테 공녀를 요구했나 환관을 요구했나 다른중국은 암덩어리여도 명나라는 우리한텐 진짜 고마운 나라임 미국보다 더 고마운 나라지 아무댓가 없이 도와줬는데 물론 요동까지 치고올라올까봐 군대를 보낸것도 많지만 5만이나 보낸거면 진짜 성의껏 보낸거임
@skymars2069 Жыл бұрын
어휴 활인건 조총이건 전문적인 군인이 아닌 훈련이 없는 조선군에겐 그무엇도 소용이 없었는데 무슨 주장을 하고 싶은건지? 궁병 전체가 조총수 몇명에게 쓸리고 반대로 조선이 조총을 가져도 몇천이 기병300에게 쓸리는데? 당시에 K9자주포를 조선이 가지고 있어바야 적 AK소총수 한테도 쓸림
@mangwonfish2 жыл бұрын
조총의 장점은 포수가 사망했을때 그 병력을 즉시 채울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 즉, 사격술은 열흘이면 끝나고 전술교육 좀 시켜서 전장에 보내면 될 정도 인데 활은 그렇지 않음 어릴때 부터 활에 재미를 가진 사람이 활로 사냥 등 생계를 유지하다가 전쟁시에 차출 되는 것임 당연히 활의 유지보수는 알아서 할수 있을 정도니까 십수년은 활과 함께해야 그나마 전술적인 유효사가 가능함...1급 궁수가 사망하면 이후에 채울수가 없었음 이게 조선이 계속 밀렸던 이유임...왜군도 부산에 상륙하고 나서 활이 너무 살벌하게 날아와서 첫공성에 실패하고 활에 대한 방비책을 만들고 공성했다고 기록했었지만 문제는 1급 궁수가 초반에 전부 소모 됐다는것....
@추이-n5d2 жыл бұрын
신립 진짜…하…이래서 사람이 과거의 영광을 경계해야 하나봄…
@그냥유저-c3n Жыл бұрын
신립도 신립인데 나라단위로 헛다리 상당히 짚은 게 컷죠. 일본을 제대로 간파한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나마 제대로 짚은 게 이순신, 류성룡, 소수의 남인들이었음.
@추이-n5d Жыл бұрын
@춘 식 전술교리는 무슨...진흙탕에 기병 끌고 들어가는 교리도 있나...
@저는기어다닐거에요 Жыл бұрын
@@추이-n5d지형을 알아야 뭘 하던가 하는데 북방에서만 놀다가 처음 와봤으니..
@ggacatgun Жыл бұрын
일본처럼 창병 + 조총병 조합과 전술 운영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훈련이 필요했는데 제대로 안되었기 때문에 당함. 화약통 터지고 화약 분배도 제대로 안되고 문제가 꽤 있었음...
@저는기어다닐거에요 Жыл бұрын
@@12atgh50조공 문제가 아니라 걍 나무가 없어선데요
@Hg-i6w2 жыл бұрын
탁상공론이지 칼의 나라 일본이 단순히 조총만으로 밀고 올라갔을까?
@이홍찬-h2v2 жыл бұрын
갑오개혁의 연도가 틀렸슴당
@아차산로차으누3 жыл бұрын
그니까 지금시점으로 비교하자면... 탱크..장갑차... 이런 기갑부대보다는 드론.무인기.로봇등의 무기가 그당시 조총이라고 볼수있겠네... 그때는 게임체인져는 아니지만 나중엔 게임체인져가 예약된 신기술.신무기 임
@생생역사3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ㅎㅎ 나름 좋은 무기였죠ㅎㅎ
@생생역사3 жыл бұрын
지금 생각해보니까 비대칭 전력 정도가 될거 같습니다. 아, 영상만들 때는 왜 이 단어가 생각이 안났을까ㅠㅠ
@아차산로차으누3 жыл бұрын
@@생생역사 영상 콸러티 좋은데요.,?! 그렇게 자책할것 까지는...
@생생역사3 жыл бұрын
갑자기 든 감상입니다ㅎㅎ 다음편은 더 잘만들겠습니다ㅋㅋ
@김모씨-m4f2 жыл бұрын
그렇게 당했으면서 300년후엔 나라까지 뺏긴..조선
@GuNdAmWiThYoU2 жыл бұрын
자업자득
@맥가이버-l9z4 ай бұрын
내용 처음보고. 구독 ㆍ알림 쥬아요ㅡ 하고갑니다 ᆢ내용이 참신함
@알루미늄-d6h Жыл бұрын
근데생각해보면 신립욕할것도 아닌듯 열병기시대초기에 기병돌격했다가 처발리는게 한둘도아니고
@JoJo-lx5xt3 ай бұрын
농경국가에서 양성에만 몇년걸리는 활이랑 조총은 비교불가인듯 원나라처럼 평생 말타는게 직업인것도 아니고 평상시엔 농사짓는데
@오함마의현인-m1n10 ай бұрын
총은 훈련소 병아리들마저 쉽게배워서 쏠수있는 무기고, 활은 기초입문과정만 몇달임. 전쟁때 미리훈련된 병사는 거의없음 개판이지. 난이 터져도 빨리 훈련시켜 실전에 바로 투입하는게 가장 무서운 무기임
@7mystiqueАй бұрын
조총병의 진가는 화망을 이용한 일제사격과 집중사격인데, 사르후전투 광교산 전투때 빛을 발했고 선조의 선택은 결과론적으로 옳게 되었죠
@황천의볶음밥2 жыл бұрын
테르시오가 없는 조총병들은 바람 앞에 촛불일뿐. 결국 사르후전투에서 그 목이 달아나는 운명을 맞이하죠.
@nerv12122 жыл бұрын
김해김씨가 "우륵김"과 "가야김" 이 두가지. 우륵김의 시조는 사야가. 가야김의 시조가 김수로왕.....
@user-mw2vf4ce4s20 күн бұрын
명장 신립장군이 탄금대에 진을 친 이유는 조령에 배치한 방어군이 도망자 속출로 진이 무너지니 어쩔수없이 배수진을 친거다
@hirohiro63112 жыл бұрын
근데 조총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의외로 활보다 비효율적이란 말이 있던데??
@채영-p3h9 ай бұрын
나였다면 조총에 대응해 석궁을 빠르게 보급시켰을듯...사정거리 장전속도 숙련화 속도 모두 조총보다 석궁보다 나은듯함
@푸른심장맨시티 Жыл бұрын
현대 정주영회장은 조선의 쇄국정치를 부끄러워했었는데 발전을 안하고 탐관오리들 득실대던 조선
@부엉이형-r8t2 жыл бұрын
일본처럼 대나무나 흙으로 엄폐물을 만들고 장창병을 운용했다면 병자호란때 패배는 안했겠지
@프론트스쾃벤치프레스16 күн бұрын
임진왜란 끝나고도 기병들 남아있었음 기병 5000 인원으로 여진족 마을 불태운 기록있음
@kttped3224 күн бұрын
조총을 다루려면 엄격한 군율 충실한 보급이 따라야하는데. 조선은 아무것도 없지유 ㅋㅋ
@바우-k1f2 жыл бұрын
뭐? 북방에 500의 기병으로 여진족 1만?을 격파해??? 아주 그냥 ... 환타지 소설을 썼네.. 역사를 말하는 방송이 아니라 반지의 제왕을 그리ㅜ만.... ㅉㅉㅉㅉㅉ
@생생역사2 жыл бұрын
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2901
@닥치통조림 Жыл бұрын
왜케꼬이셨나요??
@scipio2641 Жыл бұрын
화악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kzbin.info/www/bejne/epPPcnaplMekhpI
@user-BigshortGO2 жыл бұрын
그때나 지금이나 뭔가 일이 터지고서야 해결하려는 습성이 있는듯... 씁쓸하다...
@hmjeon86097 ай бұрын
조선에서 먼든 조총은 얼마나 남아있나요.. 일제와 비교해 정밀도는
@겟노우형2 жыл бұрын
조총은 몆백 . 몆천은 모디야 . 그위력을 발휘한다꼬.. 알간...?
@airsun61984 ай бұрын
신립이 어리석었네요.. 그의 전술로 인해 1만이 전사했으니..
@겟노우형2 жыл бұрын
단기.. 백병전에선.. 아무쓸데가 없다가...
@user-uz3mw6ov8t Жыл бұрын
항상 느끼는거지만 조선은 너무 시대에 흐름을 못따라간다
@user-eu2ydidibe38w9dkdnwoaps4 ай бұрын
그럴리가 휴대하기 얼마나 핵편한 조총인데 활보다
@하산-j9q Жыл бұрын
근데 조선 병싢들은 일본에 졋다
@볼트-x7p Жыл бұрын
조선만당했냐 ㅋㅋㅋㅋ 2차침공땐 조선뿐만 아니라 러일전쟁도 이긴게일본인데 ㅋㅋㅋ조선이 어케막누 ㅋㅋㅋㅋ
평야는 조총쏘기에 아주적합한곳 .. 그리고 신립의 조총을 너무과소평가했지 그리고 우리가 병자호란때 조총병이 기마병한테 반대로 졋던이유 당시도요토미는 조총 재장전의단점을보완하기위해 조총수를 여러줄을세워 조총을바로쏘고 빠지는전략을 썻으나 우리는 그러지못했지 그래서 우리는 병자호란때 조총병이 무참히 깨지지 근데 당시 조선은 화포가 더 쌨지 솔직히 화포는 하루만해도 다 배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