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조총부대는 왜 패배했던 걸까? 조총의역사#03(정묘호란, 병자호란, 누르하치, 홍타이지, 여진족, 인조, 홍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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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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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기 조총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패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남한산성, 대립군, 명량, 최종병기 활, 역린, 세키가하라 대전투, 카게무샤, 몽골, 알라트리스테, 패트리어트, 명장 등에서 영상 소스를 사용하였습니다.
영상 내용 중 삽화는 일러스트레이터 김원철 님의 것을 사용하였습니다. blog.naver.com...

Пікірлер: 2 200
@royalfrigern5297
@royalfrigern5297 Жыл бұрын
굉장히 잘 만든 영상이네요, 결국 전쟁은 사람이 하는거죠. 좋은무기를 가지도록 유지해야 겠지만 그걸 수족처럼 쓸 수 있게 훈련하는것도 좋은 무기를 구매하는것과 같은 중요성을 가집니다.
@wangpanda117
@wangpanda117 Жыл бұрын
결론: 인조 병신
@유신담덕
@유신담덕 2 жыл бұрын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던게... 군사력을 증강해서 외적을 대비해야하는데 정작 그런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킬가 두려워 증강 및 강화를 못함
@sosososososo4148
@sosososososo4148 2 жыл бұрын
애초에 나라재정이 극도로 가난해서 상비군 5만도 유지를 못함. 고려 중기땐 야전군만 20만을 보유했던 때도 있었는데
@아컴-r3d
@아컴-r3d 2 жыл бұрын
평양성에 쌀 수확량이 100만은 먹힐양인데 조선에 부정부패 심한건지 조선사람들이 기생충 많이 먹은건지ㄷㄷ
@아컴-r3d
@아컴-r3d 2 жыл бұрын
이순신님도 2만 병력있다고 반란할꺼 아니냐고ㄷㄷ 의심하고ㄷㄷㄷ
@질럿의스승
@질럿의스승 2 жыл бұрын
@@아컴-r3d 오죽했으면 왜란때 약탈할 식량도 없어서 왜군도 식량난 시달렸죠(1차적으로 재해권 상실이지만요)
@dri13829
@dri13829 2 жыл бұрын
@@sosososososo4148 임난 직전에도 상비군은 님이 말한 고려 중기 보다 더 많이 굴리고 있었음. 거기다 이괄의 난 당시는 정유 재란이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라 아직 임난이 발생하기 전의 화약과 화포 등의 무기 재고를 다 채우지도 못한 상황이었음에도 최소 후금과 동등한 수준이었던 거임.
@samz188
@samz188 Жыл бұрын
현대전도 마찬가지로 잘 훈련된 병사들이 있어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기가 좋아도 그것을 잘 다루고 육해공군의 유기적인 협력을 잘 할수 있어야 승리할수 있다고 봅니다!
@복돌이-h2l
@복돌이-h2l 2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드려요~!!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항상 그동안임란 이후에 조총부대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쉽게 치욕의 역사를 겪은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전술적인 한계가 뚜렷했군요... 조총부대가 근대 서양의 머스켓 총 전열보병과 다르지 않은데... 그부분을 생각을 못했었네요 ㅎㅎ
@롱쿨
@롱쿨 Жыл бұрын
​@@daddykn웬
@예리밍-i1b
@예리밍-i1b Жыл бұрын
@@daddykn 방탄소년단오빠는 표절노래소년단;; BTS 오빠들이 259만팬계정으로~~ 짱짱잘생긴 비니오빠한테 메세지 먼저 보내성~게시물 올려줄테니~ (짱짱잘생긴남비니오빠가 잘생기고~ 잠재적 능력있다구~~알아차렸는지~)60달러 돈 주면 짱짱잘생긴남비니오빠 사진 올려주겠다~~는 돈에 미쳐버린~ 뒷광고논란있는~~ BTS259만명 계정ㅎㅎㅎ 방탄오빠는;; 진쨔~~~생각없는오빠들ㅎㅎ
@hanbyeongyeob
@hanbyeongyeob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성리학을 이율곡 이황이 유교로 종교화한 후 사농공상의 계급사회로 공정이 없어졌고, 상업, 공업, 무역을 천민 시하여 쇄국의 길로 들어서 한민족 최약체 왕조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조정이 능력에 따른 장수 등용을 했어야 하는데 당파에 치우쳐 등용하다보니 전략과 전술이 부재하여 연전 연패를 한겁니다. 임진왜란에서 수성전이 아닌 야전에서 승리한 황진 장군의 이치 웅치 전투와 정문부 장군의 함경도 전투는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도 전술에 따라 승리할 수 있다 예가 되었고, 함경도를 점령한 왜군이 여진족 잡으려 만주에 들어갔다가 기마병에ㅔ 개털렸습니다. 이 여진족이 조선의 장수에게 털린 장수들이었는데 조선의 장수는 패전한 겁니다
@mcs4239
@mcs4239 2 жыл бұрын
나폴레옹전쟁 시절에서도 머스켓병들도 여차해서 틈 보이면 후사르 돌격에 그냥 썰리는데 저 당시 조총수준으로 기병돌격 막기 쉬운게 아녀...
@벤자민의시간은거꾸로
@벤자민의시간은거꾸로 2 жыл бұрын
조총이 위력을 발휘 하려면 제식훈련이 완벽해야하고 군대가 숫적으로 월등해야 위력을 발휘할텐데..차라리 임진왜란처럼 칼과 활로 싸웠으면 저리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을텐데..
@eesoggun
@eesoggun Жыл бұрын
그문제가아닌제
@제니스-w8j
@제니스-w8j 2 жыл бұрын
참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설명 잘하시네요 좋아요 ~~구독. ~~^^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이괄의 난때 조총 및 백병전 전문가였던 항왜군들이 죄다 갈려나간게 안타깝다....
@겨울산-n5m
@겨울산-n5m 2 жыл бұрын
전혀 근거없죠?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이 몇년의 간격었는데요?무려 12년입니다. 이괄의 난때 병사들이 병자호란때면 이미 없을때죠. 국뽕들의 핑게일뿐입니다
@neenmee
@neenmee 2 жыл бұрын
@@겨울산-n5m 그럼 조선 평균 나이가 50세니까 이랬을것이다 이런 부연 설명도 없이 응 간격 12년이니까 국뽕~ 지금 근거 없는건 님임
@unfortunately5516
@unfortunately5516 2 жыл бұрын
이괄의 난 막은사람이 대표적인 항왜장수인 정충신이였는데...... 이괄의 군은 오히려 북방부대여서 기마를 운용했었고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겨울산-n5m "전문가"라는게 중요하죠. 그들이 은퇴하기 전까지 키울 2세대, 3세대의 훈련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수많은 실전 경험이 있는 부대에게 훈련 받는 것과 어느정도 실전경험이 있는 부대에게 훈련 받는것의 차이는 아주 큽니다. 백제가 멸망한게 660년 고구려가 멸망한게 668년 즉 8년이라는 시기가 있었으나 백제멸망전에 싸운 신라군이 당의 전술을 흡수 해 고구려 멸망전에서 어느정도의 활략을 할수 있었고 670년에 나당전쟁에서도 싸워 나갈수 있었던 것이죠.(토번과 당의 전쟁도 있지만) 경험있는 부대의 유무는 굉장히 큰 차이가 납니다. (물론 이괄의 난도 그렇지만 사르후 전투도 너무 아쉬운듯)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겨울산-n5m 그리고 대표적인 항왜인 사야가(김충선)가 병자호란때 참전했는데 장교층은 남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AlioOlio-q7c
@AlioOlio-q7c 2 жыл бұрын
실제로 광해는 훌륭한 왕이였고 명과 청사이에서 조선의 실익을 챙기는 중립정책을 쓴 유일한 왕이기도 하다..
@김민수-e8i1u
@김민수-e8i1u 2 жыл бұрын
인조 반정 이후 조선이 여진에게 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네요... 역시 조선...
@queenpro489
@queenpro489 2 жыл бұрын
후진국일본난쟁이+여진족… 뒤통수협공에 당했네요 😭
@kim-li8bz
@kim-li8bz 2 жыл бұрын
제대로된역사를 가르치시네여
@토미김-w6w
@토미김-w6w 2 жыл бұрын
친중해서 그럼 끝.
@김준일-j2b
@김준일-j2b Жыл бұрын
패전의 역사가 다시 돌아 올수 있는 중대한 지금 침팬치로 인해서 상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네요
@ajw1079
@ajw1079 2 жыл бұрын
국민을 무시한 정치는 국가의 위기를 가져온다. 과연 보수라는 잔당들이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고민해보길 바란다.
@상민-u3l
@상민-u3l 2 жыл бұрын
머리가 나쁘면 손 발이 고생한다는 말을 다시금 느끼게하네요
@부글부글차주전자-f5r
@부글부글차주전자-f5r 7 ай бұрын
솔직히 선조보다 더 최악의 군왕은 인조라고 생각됨
@apoiiiiiii938
@apoiiiiiii938 5 ай бұрын
도망치는 것도 능력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선조는 존나 잘 도망가서 안 잡히기라도 했지 인조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뭐냐
@굿텍스
@굿텍스 5 ай бұрын
선조가 붙잡히지 않고 계속도망 다녔기에 존버하며 왜군 격퇴할수있었음..분조를 하고있었다해도 선조잡혀서 죽는순간 조선도 끝이었음
@poly1794
@poly1794 4 ай бұрын
​@@굿텍스그건 맞지만 선조는 도망수준이 아니라 그냥 조선을 버릴려했음 ㅋㅋㅋㅋ
@happyha1052
@happyha1052 4 ай бұрын
ㅋㅋㅋㅋ
@larm6009
@larm6009 4 ай бұрын
선조가 무능한거 아님 당장 이순신 인사발령만 봐도 미친 안목 있는 사람인데 너무나도 큰 전쟁으로 멘탈이 못버틴거.. 인조는 걍 병신
@paulkim2686
@paulkim2686 2 жыл бұрын
유럽에서도 총에 장착하는 대검이 개발되기 전에는 창병 등이 기병돌격에서 총병들을 지켜줘야 했움. 그럼에도 나폴레옹 전쟁에서 상황에 따라 창기병등에게 학살 당함.
@jsm9252
@jsm9252 Жыл бұрын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기병이 돌격과정에서 영국군의 밀집대형 전술에 크게 궤멸당하기도 했죠
@백린탄-g1s
@백린탄-g1s 2 жыл бұрын
군대가 기동성이 딸리는 것도 크지만, 조선군대가 흔한 회전 하나 수행하기 어려운 군대라는게 팩트임... 그 임진왜란, 정묘호란 경험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ㅈ.
@정무박-t3f
@정무박-t3f 2 жыл бұрын
정묘호란때 제대로된 싸움도 못해봤는데 뭔소리임, 관군은 늘 하던게 없음 오히려 전쟁나면 목숨 걸고 싸우는건 의병이지
@dmz9489
@dmz9489 2 жыл бұрын
@@정무박-t3f 임진왜란 땐 한거 많음. 당장 이순신, 권율 휘하 군인들이 전부 관군임
@arsenalatleletico9874
@arsenalatleletico9874 2 жыл бұрын
@@정무박-t3f 병자호란때 그나마 청에게 이긴 군대는 전부 관군이었습니다 광교산,김화전투 전부 숫자가 청보다 적었음에도 훈련받은 조총병의 능력을 바탕으로 승리했습니다
@김화진-y6u
@김화진-y6u 2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 역사에서 너무 멍청하고 한심했든 임진왜란, 병자호란...이때 이씨 왕권을 폐위해야 할때였는데...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жыл бұрын
※영상 내용에 오류가 있어서 정정합니다. 소현세자는 인조와 남한산성에 함께 있었고 둘째 아들이자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이 강화도에 왕실 식솔들과 함께 피신해 있었습니다. 이런 오류를 잡아주신 zzang mathis님께 크게 감사드립니다. 또, 병자호란 발발일이 음력으로 1636년 12월28일이고, 양력으로 1637년 1월 3일인데 후금의 국호변경에서 9년으로 맞추다보니까 이렇게 됐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표세광-e7c
@표세광-e7c 2 жыл бұрын
참 잘 만드셨네요. 대사와 딱 딱 맞아 떨어지는 영상으로 인하여 쉽게 이해되네요. 많은것을 보고 배웁니다
@임종국-y1z
@임종국-y1z 7 ай бұрын
아내가 계곡에서 놀지만안았어도. 저놈들모조리잡을수있었는데. 내가실수했제. 술좀줄여야겠군. ,😂😂😂😂
@SovietPikachu1945
@SovietPikachu1945 2 жыл бұрын
많은 사람들이 광해가 장기집권했다면, 또는 유능한 장군들이 배신하지 않거나 처형하지 않았으면 비극을 어느정도 완화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조선이 사회개혁을 하지 않는 이상,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어요. 신라와 고려가 그토록 전쟁하면서 교훈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죠. 고구려가 요동을 잃은 이후 이후 한반도의 왕조들은 야전 기동훈련을 해보지도 못합니다. 전통적으로 수성은 잘 하고 야전을 못한다는 애기도 이 때문이죠. 야전기동훈련을 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데, 그러면 물자가 풍요롭거나 무역을 해야하는데 둘다 안되니깐 전쟁나면 대규모 병력지휘가 안됩니다. 조선은 일본과 싸우면서 왜군의 원동력이 뭔지 직접 느꼈죠. 많이들 조총에 졌다하지만 조선의 고관대작쯤 되면 왜군의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다들 알게 되죠. 전국시대 동안 축적된 전투기술과 이를 받쳐주는 무역, 또 그 무역의 원동력이 되는 지역특산물 개발 등..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가 왜 졌는가를 다음 세대에 정확히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 전해줘야 하는데, 유교국가이다 보니 기록에서 유교적 특성이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 또 그런 경향으로 전투와 전쟁에 대한 평가나 피드백이 마비하죠.. 이 시기 직후의 서양의 경우를 들면 유럽은 전투과정을 시 간단위로 기록하는데다가 각국에서 참관하러 다니기까지 합니다. 어찌됬든 조선이 망국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임진왜란과 2차례의 호란이 적나라 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물자도 없고 군제도 엉망이고 그렇다고 해서 기술개발이라도 하냐 그것도 아니고..더 어이없는건 '직업군인이 필요하다, 신무기가 필요하다' 등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그걸 위해서는 사회전반이 변화하게 되니 안하고 '우리는 도의 나라다' 식의 정신승리로 가버리죠. 어쩌면 조선이 후손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을 남긴거죠. 할 수 있는 걸 했다고 해서 대비를 했다고 하는게 아니라 때론 근간부터 변화하는 노력을 해야하고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는 것.. 중세를 거치면서 생긴 많은 변화를 수용할 용기가 있는 유럽과 그런 용기가 없는 조선으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파크냐아수투아루
@파크냐아수투아루 2 жыл бұрын
광해군이 됐으면 전쟁 안났어요
@정대-r9p
@정대-r9p 2 жыл бұрын
전체적으로 다 찬사가 나오는 통찰력.. 한가지 아쉬운점은 카더라죠. 역사적 교훈의 가장큰부분은 모든게 순리대로 흐르진 않는다는거죠. 순리대로 흐른다면 예언이란 단어도 없을거고 예측이란말도 필요없죠. 순리를 읽기란 너무 쉽거든요.순리를 읽을수 있느자또한 넘쳐나구요. 역사는 절대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죠. 그게 지금의 우리 세상을 만든거구요. 강한자가 강하고 약한자가 강한건 상상속에서만 이루어지는거고 현실은 뒤범벅이죠. 무엇이 어떤 약점이 되고 무엇이 어떤강점이 될줄은 오로지 결과만이 말해주죠.
@user-zv4yw3pm8r
@user-zv4yw3pm8r 2 жыл бұрын
삼국시대 이후 기동훈련을 안했다는 정보는 어디서 들으신건지 모르겠으나 그것과 사회개혁과는 별개로 당시 이괄의 난이 없었으면 충분히 했볼만 했습니다. 물론 개혁 없인 장기적으로 계속 뒤쳐졌겠지만 적어도 당시의 역사를 바꿀만한 큰 변수는 아니었습니다
@yadontthink
@yadontthink 2 жыл бұрын
사농공상 이라는 빙신같은 유교적 프레임을 걷어내지 않는 이상 조선은 발전 할 수가 없던 그 한계가 명확한 중세국가 그러나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정하고 그 토대위에 건국했기에 유교 프레임을 걷어낼 수 없는 구조며 애초에 조선은 진즉 한번 망하고 새 왕조가 들어섰어야 했음
@yadontthink
@yadontthink 2 жыл бұрын
결국 국가가 발전하려면 물류와 공업이 발달해야하는데 이 미친나라는 왜적 침입이 수월해진다고 도로 정비도 안하고 다리도 안놓는 덕에 적시에 군대기동도 못하고 물류도 못돌고 기술개발을 통해 소출늘릴 생각 대신 상농공상 프레임으로 공업과 상업 진출 틀어막고 무지성 농사만 짓게함 정말 보면 볼수록 첨부터 끝까지 병크에 연속 일례로 온실을 만들어 한겨울 채소 재배하니까 오양을 거스르는 짓이라고 못하게 하는 등 조선이 반도국가가 아니라 유럽에 던져졌으면 애진작에 대가리 박살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을 개허접국가임
@user-sr2tq9uy5z
@user-sr2tq9uy5z 2 жыл бұрын
인조 반정은 솔까놓고,, 반정이라기 보다는 군사쿠데타로 봐야된다. 인조가 아니라 광해군이 계속 보위를 유지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거다..
@DongB0713
@DongB0713 2 жыл бұрын
개트롤짓 다 포함해도 인조보단 나았을듯...
@김선우-w1v
@김선우-w1v 2 жыл бұрын
@@DongB0713 ㅇㅈ 인조보단 나음
@김준영-z6r
@김준영-z6r 2 жыл бұрын
그놈의 사대가 뭐길래 에휴
@오경복-b4y
@오경복-b4y 2 жыл бұрын
@zard we 광해가 이상한짓..이라...역사는 이긴자의 서술을 하지만...제대로 광해 공부 해보시와요....인조는 광해 가 ...
@user-dp8ns8qe2w
@user-dp8ns8qe2w 2 жыл бұрын
@zard we 인조는 그야말로 최악이었지. 광해군이 오랑캐랑 친하게 지낸다고 몰아내놓고 지는 오랑캐 앞에서 바닥에 대가리 박으며 절하는 ㅋㅋㅋ 최소한 선조는 도망이라도 잘다녔지
@shinshin367
@shinshin367 2 жыл бұрын
윗대가리의 무능 때문에 패배한거지 이런한 교훈은 현재도 유효
@Firebat337
@Firebat337 2 жыл бұрын
고려까지는 이민족의 침입을 어찌저찌 잘막고 대규모 군대도 동원하고 그랬었는데 조선부터는 국방 자체가 날아가버리는 지겨의 병신국가가됨
@유광희-b7s
@유광희-b7s 2 жыл бұрын
그건 인정합니다 ㅠ
@남자장기영-o7w
@남자장기영-o7w 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항상 자주적 이고, 북벌 의지가 강한 군대였는데, 도대체 조선군만 생각하면 이게 군대일까 싶을 정도로 참담합니다 제생각엔 이씨 왕조가 오로지 중 국숭배와 자신의 시조인 이성계가 반역의 역사로 시작했기에, 강한 군대를 절대 양성 안 할걸로 생각 되어 집니다. 전주 이씨의 오백년 통치로 우리 국민들의 위대한 창 의성과 용맹을 펼치지 못하고 살 아온 것이 그저 슬풀 뿐입니다
@youto8160
@youto8160 2 жыл бұрын
@@남자장기영-o7w고려는 세계무역의 중심..조선은 지금은 북조선과 다를께 없는 국가!
@dmz9489
@dmz9489 2 жыл бұрын
고려가 잘 나간 것도 초기 한정이고 중기부터는 무신정변, 원 간섭기 등으로 암울해짐. 따지고 보면 조선이 아주 쇠락한 것도 중기의 임진왜란 때 부터임.
@고니-x6g
@고니-x6g 2 жыл бұрын
@@dmz9489 홍건적때 20만 동원할 정도로 국방은 의외로 탄탄했음. 다만 무신정권때 부터 지배층이 부패한게 너무 컷던거죠,,
@onekyulo
@onekyulo 2 жыл бұрын
영상에 오류가 하나 있어서 써봅니다. 조총병에게 강한 바람은 매우 치명적인데 그 이유를 3:25에 시야를 가리고 심지에 불이 꺼졌다고 말합니다. 말이 안됩니다. 바림이 웬만치 강해도 조총의 사거리 내 시야를 흐리기 힘들고 심지의 불이 꺼지긴 더더욱 힘듭니다. (오죽하면 일본군은 심지의 불을 유지하기 위해 행군 간에는 이를 빙빙돌리며 이동했습니다. 태풍 수준이 아니라면 이런 심지는 오히려 불이 더 살아납니다. 작은 불씨 상태에선 우리도 불을 키우기 위해 입으로 바람을 부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조총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나오는 말입니다. 당시 조총은 총열 내부에 탄과 화약을 넣고 심지로 불을 붙이는데 당연하게도 내부의 화약에 직접 불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후방에 작은 접시 모양 공간이 있고 이 접시 위에 화약을 뿌립니다. 그리고 그 화약에 불을 붙입니다. 그럼 그 접시 위의 불이 통로를 통해 총열 내부의 화약을 점화 시킵니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이 접시 위에 화약은 그냥 단순히 올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강하게 불면 접시 위의 화약이 날려 점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유럽에서 개발된 플린트락 방식의 머스켓 총을 보면 이 접시 위에 덮게를 만들어 바람에 화약이 날리는 것을 방지하고 점화는 심지가 아닌 부싯돌로 하게 됩니다. 부싯돌이 내려 치면서 이 덮개를 밀고 화약을 점화 시키는 방식입니다. 요약, 바람은 시야나 심지의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화약 접시 위 화약을 날려 점화를 방해 했다.
@나인nine-h4g
@나인nine-h4g 2 жыл бұрын
정치인이 잘못된게 아니라 니네가 투표할때 엉뚱한놈들을 자꾸 찍으니까 이상한놈들이 당선되고 나라가 안되는거야 ㅋㅋ 정치인이라고 다 나쁜줄아냐? 진짜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들 얼마나 많은데...니네가 관심이 없어서 싸잡아서 비판하는거지 ㅋㅋ
@jju9903
@jju9903 3 ай бұрын
지금 대한민국군대가 물질적으로 신무기는 넘치지만 인적으로는 썪고있어서 조선조총부대 꼴 날수있다는 생각이든다
@김모씨-m4f
@김모씨-m4f 2 жыл бұрын
항상적은 내부에서 창궐한다.
@successkim7920
@successkim7920 2 жыл бұрын
김자점 전라도
@최깅
@최깅 2 жыл бұрын
백제도..고구려도 조선도..
@junegalaxy1199
@junegalaxy1199 2 жыл бұрын
@@successkim7920 임진왜란 경상도
@successkim7920
@successkim7920 2 жыл бұрын
@@junegalaxy1199 경상도에서 임진왜란 막으려다 전사하신 분들은 ㅋㅋ?
@junegalaxy1199
@junegalaxy1199 2 жыл бұрын
@@successkim7920 초장에 경계안하고 도망가신분들도... 깉은 논리로 전라도 의병분들은??ㅋㅋ
@agm1144
@agm1144 Жыл бұрын
사르후에서 조명 연합군이 패배한 핵심 이유는 지휘부의 작전 실패입니다. 후금의 수도를 포위 공격 한답시고 부대를 소규모 부대로 나누어 분산 진격 시켰습니다. 분산된 각 부대들이 상호 협력이 잘 되어야 하는데 지형에도 어둡고 지휘관 간의 알력까지 생겨서 협력이 전혀 되지 않고 따로 놀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간파한 누르하치는 분산된 연합군 부대를 기병의 빠른 기동성을 이용해 하나 하나 각개격파해버렸습니다. 강홍립의 부대는 후금군의 조선군에 대한 공격이 임박한 무렵에서야 다른 연합군 부대들이 모두 전멸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후금 부대가 몽골과 같은 기병 부대와 결정적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진족은 유목민이 아닙니다. 정주민입니다. 말의 산지가 만주에 있어서 후금군은 기병이 주력이지만 사실 적잖은 비중이 '보병'입니다. 후금군은 무예에 뛰어난 이들을 철갑옷으로 무장시켜 공격의 선봉에 두었고, 이들은 기병보다 먼저 돌격해 적군의 대기병 장애물을 제거하고 방진을 흔들어 기병이 돌격해 들어갈 길을 열어주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보병들이 길을 뚫으면 뒤 이어 기병이 돌격해 들어와 결정타를 가했습니다.
@니가알아서어쩌려고
@니가알아서어쩌려고 Жыл бұрын
이 글에 따봉 하나 없고 조용한거보면 팩트가 쎄네요
@비잠-w5q
@비잠-w5q Жыл бұрын
결과를 아는 우리는 이렇게 분석하죠 당시에 후금군이 이렇게 쌔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거고 본인들 정예병보다 좀더 쌔겠지 했겠죠 근데 병력 나눠서 보내는건 당시에 정석이에요 옛날에는 요즘 시대랑 달라서 길이 상당히 좁아요 그러면 수만이 갈수가 없어서 아마 여러갈래길로 갔을거고 그리고 앞에 이야기했듯 후금군이 이렇게 까지 쌜줄 예상 못했죠 역사에 남을 기동이에요 이건 ...
@inhukj7875
@inhukj7875 Жыл бұрын
​@@비잠-w5q그 분석에서 정보력. 부족시 추가되는 것일뿐이죠
@비잠-w5q
@비잠-w5q Жыл бұрын
@@inhukj7875 정보가 과연 부족했을까요 ? 후금과 대치하고 직접적으로 싸움도해본 조선군이나 요동쪽 군대나 야전에서 싸우면 진다는건 알았어요 조선이 파병전에 후금군과 싸우면 진다고 진단도 했으니깐요 명나라 황실만 몰랐죠 당시 유정이 싸우나마나 진다고 엄청 투덜됐다는 기록된거보면 황제가 싸우라니깐 가는데 이미 가망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했을거에요
@Handlesscup
@Handlesscup Жыл бұрын
​@@비잠-w5q뭔 헛소리에요 병력을 나눈건 길이 없는게 아니라 적을 사방에서 포위하고 공격하려고 한건데
@hohi5860
@hohi5860 2 жыл бұрын
사르후 전투때도 후금에게 조선 조총부대가 개털렸군요. 여진족이 조총부대를 잘 상대하는 노하우가 있었던듯
@박장호-h8p
@박장호-h8p 2 жыл бұрын
광해를 폐위하고 평양감사 박엽을 처형했기에 병자호란을 막지 못한듯 박엽이 있을때는 누르하치도 감히 넘보지 못했을 정도로 강병이었으나 박엽이 광해의 신임을 얻고 있는지라 반정세력이 혹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처형해버림. 박엽의 강병들은 흩어지고 일부는 후금으로 들어갔다고도 함
@griffithbalt9632
@griffithbalt9632 2 жыл бұрын
광해와 북인들은 전쟁을 아는사람들이었고 서인들은 죽어도 성리학임 이미 패배해있엇음
@libertybellliberty6096
@libertybellliberty6096 2 жыл бұрын
평안감사 박엽은 광해군과 북인세력의 권력을 이용하여 잔인하게 백성을 수탈하고 죽였으며 그로인하여 인조반정후 박엽이 처형되자 평양 백성들이 그 시신조차 갈기갈기 찢어서 맺힌 怨를 풀었다고합니다.
@박장호-h8p
@박장호-h8p 2 жыл бұрын
@@libertybellliberty6096 그기록은 국조보감이나 속잡록에 있는 내용으로 당시 인조반정세력의 견해가 들어간 기록으로 박엽을 아주 나쁘게 기록하였으나 민담이나 야사에는 가난하고 청백리적인 모습과 영웅적 기개가 충만한모습으로 나오며 실지로 박엽이 있던 시기에 여진족의 친입이 한번도 없었던것은 사실이기에 단순히 한쪽기록만 보고 판단할 인물이 아님
@김봉두-x8d
@김봉두-x8d 2 жыл бұрын
@@박장호-h8p 그건 야사일 뿐이고 김홍립군 식량 보급 끝까지 안해서 누르하치가 북서로군 털러 나간 사이 조선 강홍립군과 유정 동로군이 누르하치 본거지 허투알라 빈집 털이 들어갔으면 제압 할 상황였습니다 조선군에 식량 보급 담당 박엽이 끝까지 지원 안해서 지치고 사기 떨어진 조선군이 사르후전투때 몰살 했죠 이후 박엽은 인조때 그 책임으로 처형 됩니다
@박장호-h8p
@박장호-h8p 2 жыл бұрын
@@김봉두-x8d 김홍립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사르후전투면 광해군때 일인데 이때는 광해가 중립외교를 할때임. 명의 출병요구를 거절하고 싶었으나 임진왜란때 도움을 준게 있어서 어쪌수 없이 1만여명의 군을 보내지만 전투중 강홍립장군이 청에 항복하며 우리의 사정을 청에 전달함. 이런 상황인데 박엽이 지원하는 얘기가 왜 나옵니까? 인조반정후 사대주의자들이 친명배금해서 얻은 결과로 삼전도의 굴욕. 정묘.병자호란으로 백성들이 죽어난 결과를 모르싶니까? 그사대주의자들이 쓴 기록만 보고 그시대상을 보지 못함은 좀 편협한 시각으로 보입니다
@김진우-v8t
@김진우-v8t 2 жыл бұрын
이괄의 난도 인조가 자초한거지 역대급 왕 인조 ㅋㅋㅋㅋㅋ
@중용-t4y
@중용-t4y 2 жыл бұрын
인조, 선조, 고종 이 모자른 씁세들때문에 우리 민초들이 얼마나 고통에 시달리고 잔혹한 역사의 참상을 겪게 되었는지...
@남자장기영-o7w
@남자장기영-o7w 2 жыл бұрын
네! 정말 원통합니다. 세종과 정조대왕 께서 저들 시대 에 통치 하셨으면 우리나라가 절대 끔찍한 슬픔을 겪는 일은 없 었을텐데, 마음이 저립니다. 나라의 안녕과 보존을 위해선 무 조건 국방이 최고라 사려됩니다.
@너굴이-f3n
@너굴이-f3n 2 жыл бұрын
지금도 역사는 쓰여지고 있고 지금 한국의 지도자는???
@v이너프미네랄스
@v이너프미네랄스 2 жыл бұрын
선조는 평타는 침 인조,고종은 역대급 암군
@토미베스트
@토미베스트 2 жыл бұрын
최강은 고종임
@dehwankim2269
@dehwankim2269 2 жыл бұрын
@@남자장기영-o7w 세종에 대해서 제대로 아세요..세조가 단종을 거시기 하기전에 세종 때 신하들을 전부다 처단하고 세종 때 제도들을 전부다 폐지하여 왕족들과 백성들로 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은게 다 이유가 있죠..최대의 실수는 단종이고 아무런 죄도 없는 단종을 거시기 해버리는 바람에 지지를 많이 잃고 말았습니다만..선조도 임진왜란과 광해군을 싫어했던 것만 빼면 암군은 아닙니다..좀 이것도 저것도 아닌게 흠이죠..선조가 이순신을 처벌하려 했고 권율과 류성룡을 처벌하고 나중에 원균을 그렇게 챙기려고 했던게 다 이유가 있고 고종은 민비와 결혼한게 죄고 당시 조선의 상황은 그 누가 왕이 되어도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왕조로서의 수명은 다하고 국가를 이끌어갈 엘리트는 절대 부족했기 때문이죠..
@cpasky2001
@cpasky2001 6 ай бұрын
유럽처럼 총에다 착검할 생각은 왜 안했지
@생생역사
@생생역사 6 ай бұрын
그것도 전쟁을 많이 해봐야 아는 거예요ㅎㅎ 당시 전 유럽은 수백년 간 전쟁터였습니다. 그 마지막이 2차 세계대전이었던 거구요
@dontshotforinside
@dontshotforinside 4 ай бұрын
임진왜란때 댓포병도 칼은 패용했죠..항상 나게야리, 오타치 병들이 뒤에서 호위했구요, 특이하게도 조선은 올조총병으로 도배화 됨...
@M싸쁘라
@M싸쁘라 2 жыл бұрын
청에서 볼모를 마치고 돌아온 효종은 팔기군의 군체제와 청군의 강력한 훈련체계를 보고 많은것을 배워기록해 두었다가 왕이 되자 북벌을 계획하고 훈련을 시작했다. 높은언덕에 앉아 지휘했는데 산밑의 군사를 양쪽으로 나눠 중앙에 세운 깃발을 언덕워의 나팔과 북소리 가 울리는 동시에 달려나가 쟁취하는 쪽이 이기는 단순 경기 였다. 북소리가 울리고 붉은 신호기가 울리기 전에 서로 먼저 뛰어나가 자 효중은 훈련을 중단시키고 개시신호보다 먼저 뛰어나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두번째 개시 신호가 울리고 붉은기를 휘두르기도 전에 또다시 군사들이 뛰어 나가자 중단시키고 신호보다 먼저 뛰어 나가는자는 참수하겠다고 엄명을 내렸고 또다시 먼저 뛰 어 나가자 참수했다. 그리고 다시 훈련 신호를 하자 이번엔 아무도 달려나가지 않았다. 효종은 북벌계획을 철회 하였다라고 기록 되어 있음.
@user-pq2xh7by5i
@user-pq2xh7by5i 2 жыл бұрын
좋은 글이네요
@user-ri2vp7qt7f
@user-ri2vp7qt7f 2 жыл бұрын
그 때 육성으로 아무리 떠들어도 지휘관의 의도를 백퍼 전달하기 힘들었겠지. 6명만 모아 놓고 얘기해도 먼소린지 못 알아먹는 무녀리가 있으니.
@KIM-ye3cw
@KIM-ye3cw 2 жыл бұрын
@@user-ri2vp7qt7f 그런 ㅈ간들로 팔랑크스 진법사용해서 쓸고 다닌 애들은..
@user-ri2vp7qt7f
@user-ri2vp7qt7f 2 жыл бұрын
@@KIM-ye3cw 다른 종족이니까요. 한국사람 아니니까요. 조선은 반란이 두려워 항상 군세를 키우는 걸 두려워해 왕권은 어느정도 지켰지만 장작 국난에는 대처를 못했죠. 하루아침에 중둑을 칠 군대를 키우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rkfjfjdnxnzjajk
@rkfjfjdnxnzjajk 2 жыл бұрын
@@user-ri2vp7qt7f 뭘 군세를 키우는걸 무서워해 ㅋㅋㅋㅋ 그래서 임진년 이후에도 노토부락에 군대끌고가서 멸족시킴?
@을지문덕-gen
@을지문덕-gen 2 жыл бұрын
조선의 17세기는 정말 암울했네. 병자호란, 정묘호란, 경신대기근, 을병대기근..
@na-bx7mn
@na-bx7mn 2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때 다급해진 조선은 노비들도 임란에 참여하면 면천시켜주겠다고 해서 전국에서 노비중심의 의병들이 들고일어났는데 전쟁이 끝나자 면천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후 청나라가 침입해왔을때는 전혀 의병활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때도 만약 의병활동이 일어나서 남한산성에 주력해있는 청나라진영의 후방을 치고 괴롭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드네요
@waitaoyuanshi5081
@waitaoyuanshi5081 2 жыл бұрын
노비들은 말 한필 가격 인가요.
@주접이-u5g
@주접이-u5g 9 ай бұрын
이괄의 난이 한몫한듯 인조가 이괄을 잘대우해주었어야지 간신배에 속아 이괄을 역적으로 몰아서 죽이고 북방국력이 많이 약해진듯 인조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판셈
@비이소
@비이소 2 жыл бұрын
무능한인간이 높은자리에 앉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우리의 역사다 내년에 대통령 선건 잘 투표하길 ....
@watchman895
@watchman895 2 жыл бұрын
병력보다는 정치가 문제였군요. 역사적 실증과 교훈 정말 멋진 영상입니다~
@flsclvls9800
@flsclvls9800 2 жыл бұрын
조선은 병력.보급체계도 엄청나게 문제가 많았습니다 고려보다 못한수준이 였습니다
@니가알아서어쩌려고
@니가알아서어쩌려고 Жыл бұрын
​@@flsclvls9800근데 의주까지 빤쓰런 하는 것은 엄청 잘 하더라구요
@khd5031
@khd5031 Жыл бұрын
@@니가알아서어쩌려고 그거야 뭐 쉴드치는건 아닌데 왕이 붙잡히면 사실상 끝나던시절이니까요 삼국시대는 왕권이 조선만큼 강한 중앙집권국이 아니었으니 왕이 전쟁통에 죽는일도 빈번했던거지 조선같이 왕한테 권력집중된나라에서 왕이 적국에 잡히면 끝인게 맞긴함 왜란때도 한양으로 겁나 고속진격한 왜장들이 선조런한거보고 허탈해한이유도 그거임 선조가 왕다운왕이었다고 하는말은 아니지만 그시대에는 수도가 함락될거같으면 왕이 런치는게 맞긴함
@니가알아서어쩌려고
@니가알아서어쩌려고 Жыл бұрын
@@khd5031 아마 그 때문에 궁궐에 백성들이 불을 지른 것일지도..
@angelpyj
@angelpyj 2 жыл бұрын
우리 역사 중 가장 한심한 국가가 조선...부패한 조선의 역사를 다신 되풀이하면 안됨...
@holyhero1598
@holyhero1598 2 жыл бұрын
윤석열과 김건희의 대한민국은 조선의 한심함을 능가할겁니다 ㅎㅎ
@DG-rk5xs
@DG-rk5xs 2 жыл бұрын
@@holyhero1598 대깨문들 발작버튼 눌렸네 ㅋㅋㅋㅋㅋㅋㅋㅋ
@dehwankim2269
@dehwankim2269 2 жыл бұрын
아마 경제적으로 가장 나았던 국가는 백제라고함..의자왕 때도 잘살았는데 나당 연합군의 기습에 매국노 웅진 성주놈한테 당함..
@xero2250
@xero2250 2 жыл бұрын
@@holyhero1598 이재명은 합네다.
@응응-h1y
@응응-h1y 2 жыл бұрын
@@holyhero1598 음주운전자 이재명은 합니다!
@lattecream3104
@lattecream3104 2 жыл бұрын
신립의 탄금대 전투는 기마병이 어떻게 하면 조총부대에 전멸 당하는가 최악의 경우고, 병자호란 때는 조총병이 어떻게 하면 기마부대에 전멸 당하는가 최악의 경우임.
@dalbongpark2830
@dalbongpark2830 Жыл бұрын
아닙니다. 지휘관의 차이라고 봐야죠. 신립은 기마대를 진창에 밀어넣은 실패한 지휘관이고, 호란때도 전라도에서 올라온 1500명은 청의 1티어 부대를 전멸 시켰습니다. 기본적으로 조총을 기마병으로 이기긴 힘듭니다. 경상도 충청도 연합이 애초 몰살 당한 것도 개인당 3발씩 밖에 안줘서 였고, 조총의 이해도가 떨어져 멀리서 부터쏴서 못맞추고 탄을 다 소비해서 알아챈 청 기병의 돌격에 어이없게 다당한 케이스죠. 위대가리가 멍청하면 좋은 무기를 쥐어줘도 짐니다. 고대불변의 진리죠. 이때 심지어 1500명의 전라도 병사가 청의 홍타이지 매제까지 잡고 재정비할때 이를보고 지들도 할수 있다고 경상도 병사들이 전라도 보급품까지 받아가서 털어먹는 바람에 인조를 구출할 방법 자체가 없어졌죠.
@nethappy6418
@nethappy6418 Жыл бұрын
둘다 약체 조선이 지는 상황..전세계 최약체 조선
@dalbongpark2830
@dalbongpark2830 Жыл бұрын
@@nethappy6418 아닙니다. 인조가 ㅂㅅ인거죠. 호란 간격을 보면 여진족도 조선전쟁이 결코 쉽지 않았고 재네들도 올인한 상태였습니다. 쉽게 말해 전마 즉 전쟁에 쓸말을 인당 죄소 7,88마리 많게는 15마리 끌고 가야하며 작은말은 전쟁전 3개월전에. 사람이 먹는 곡식 기준으로 작은말은 2,3배 좀 급이 되는 전마는 7,8배 장군급이 타는 큰말은 13배이상 먹습니다. 그렇게 먹여서 개성까지만 가도 끌고온 말의 60프로에서 70프로는 죽고 애네도 보급품이 30프로 이하로 떨어집니다. 즉 인조가 강화도로 잘 튀었음. 그차리가 홍타이지 묫자리가 될 상황이었음. 저런걸 모르는 인조와 그 주변의 반란으로 정권잡은 바보들이 헛짓거리하다가 그 치욕을 겪은거죠. 조선군이 그렇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냥 인조가 고집 부리다가 그꼴 당한거죠. 지가 그런 컴블렉스를 가지고 있으니 후대에서도 소현세자 독살 의심 하는거고. ㅁ
@댓글러-m9s
@댓글러-m9s 4 ай бұрын
걍 우린 병신이야
@libertybellliberty6096
@libertybellliberty6096 2 ай бұрын
사르후 전투에 참가했다가 포로가 된 이중환의 책중일록에는 조선군의 패배 원인이 부실한 조선군의 무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조총과 대포 품질이 좋지 않아 한번 내지 두 번 쏘면 총렬이 파열 망가지고 활과 칼 창 갑옷 어느 하나 제기능 못하고 무겁기만 하고 무디다고 기록했는데 광해군 당시에도 조총의 품질은 형편 없었습니다. 월과조총법이라 하여 지방에서 일정한 수량의 조총을 만들어서 바치면 그만이라 총렬이 정교하지 못해 납 탄환을 장전 못하고 쓸만한 조총은 백에 한두 자루에 불과하니 조총은 그냥 쇠 막대기에 불과했습니다. 일본제 조총이 가장 우수했는데 일본도를 만드는 기술로 철판을 수백 수천번 단조하여 총렬을 아주 정교하게 만들었는데 총렬이 고르니 명중율도 좋아서 임진왜란때 정발 장군, 정운 장군. 김시민 장군, 황진 장군 이순신 장군등이 모두 조총 사격에 의한 사망이었습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서인 정권은 조선에서 만든 조총의 품질을 알고 있어서 후금과의 전운이 감돌자 일본제 조총을 구매했는데 그 수량이 기록에는 30자루에 불과했고, 병자호란 당시에도 화약의 품질이 좋지 못해 겨울 냉기를 먹어 화약이 불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강화도가 쉽게 함락된 원인도 부실한 화약과 화포 때문인데 청나라 군대가 땜목을 타고 강화도로 접근하자 포수들이 화약을 장전하고 조총과 대포를 쐈지만, 대부분 화약이 냉기를 먹어 불발하고, 화약 품질이 안좋아 발사가 되어도 전혀 살상력이 없으니 당황한 병사들이 도망쳤습니다. 제대로 기능하는 조총은 효종대가 되어서야 명중율이 향상된 조총을 만들 수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조총을 모방 제작한지 50년이 지나서야 제기능하는 조총을 만들 수 있었으니 사루후 전투에서 후금군 기병에게 조선 포수들은 추풍납엽 처럽 대학살을 당했고 제대로 된 전투조차 못했던 겁니다.
@jhyun1016
@jhyun1016 2 жыл бұрын
진짜 재밌게 봄.. 원래 부터 역사를 좋아했지만 키워드를 가지고 이렇게 풀어나갈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이 되네요
@라임-q1q4q
@라임-q1q4q 2 жыл бұрын
영화보다 이 영상이 더 재미있고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역시 역사는 맥락이 중요하네요. 좋은 영상 만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samssoh448
@samssoh448 2 жыл бұрын
남한산성 역사 맥락 모르고 보면 노잼이지 알고 보면 더 재미있고
@체리슈-c6r
@체리슈-c6r 2 жыл бұрын
이괄이 변방에서 국방을 잘 지키고 있었는 데 조정의 간신들이 이괄을 모함하여 난이 일어나겠끔 몰아갔던거 원인...
@후라이콩콩
@후라이콩콩 2 жыл бұрын
조총이 단점이 뚜렷of뚜렷해서 아무리 최신형무기라도 질가능성이 너무컷드아..ㅠㅠ
@kingmaker0101
@kingmaker0101 Жыл бұрын
병자호란은 심지어 조선이 먼저 선전포고 했음....조댕이 사대부들 땜에...
@주호풍펄쩍맨
@주호풍펄쩍맨 Жыл бұрын
진짜 잘 만든 영화 남한산성.. 조총병 자체가 훈련을 적게 시켜도 빨리 전장에 투입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건데, 훈련이 안 된 병사는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는게 문제였다는게 결국..
@goldingot3796
@goldingot3796 2 жыл бұрын
아 어쩐지 영화나 게임속 장면 영상들이나 그리 멀지 않는 실거리에서 쏴도 맞추지 못했던 이유가 저런 이유들이 있엇구나... 사람 실력에 문제가 아님 총에 문제가 있엇네...ㅋㅋㅋ 저렇게 엄청 명중률 좋지 않는 총기에 더해서 장전까지 비효율적인 그야말로 꾸진 무기... 조총같은것을 화기로 사용할빠에 활을 쓰는게 더 오히려 좋다고 생각될 정도임 전방에 궁병들 새워두고 몰려오는 적들을 상대로 일제 사격후에 빠르게 아군 진영 뒤쪽으로 빠지고 근접 보병들을 전진 배치 시켜서 방어에 집중 시키고 아군 진영이 열세이면 기마병들을 보내어 전선을 유지시키고 아군 진영 측면을 노리고 오는 적 기병들을 상대로 측면 방어 전선을 1전열 창병 2열 장창병들을 배치하고 이렇게만해도 평지 전투에서는 방어는 어느정도 가능함 상대 적이 페르시아급이나 삼국지급 물량 병력 아닌이상은 쉽게 방어와 전진 공격을 할수있는데 성에서 싸우면 성벽 전열을 궁병들을 배치해두고 궁병들 바로 뒤에 근접 보병들을 배치해두면서 방어해야됨 성문쪽이 뚫리는것을 대비해 장창병을 배치해두고 성문 좌우로 하여금 성벽 끝쪽으로 기마병들을 배치해두고 성문이 뚫렸을시 기마병들이 돌격해서 방어를 유지시키는 전략...
@crunchsb6086
@crunchsb6086 6 ай бұрын
아저씨 말대로 움직이는 병력이면 완전 정예중에 정예죠 훈련소 가보세요 열맞춰서 가는것도 어려운데….
@goldingot3796
@goldingot3796 6 ай бұрын
@@crunchsb6086 얘야 좀 더 커서 군대 부터 갔다 오렴 군대에도 작전 지휘관들은 다 있단다 군인이 군인 답게 행동 하지 못하면 그게 군인이라 할 수 있겠나 너가 말하는 것은 훈련소에서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인 제식 훈련 이란다 이것도 못하면 어쩌니...
@Randy_Rhoads
@Randy_Rhoads Жыл бұрын
총의 진짜 위력은 관통력이라는 총자체의 위력도 있지만, 사실 단기간에 써먹을만한 병력을 많이 뽑아낼수 있다는 점이 진짜 강점이지요. 활이나 검 창 같은 전통무기에 비해서 배우기 쉽고, 다루기만 한다면 적에게 치명상을 줄수 있는 무기기 때문.....
@이름바꾸지마라-t7t
@이름바꾸지마라-t7t 11 ай бұрын
이건 뭔 개소리야? 조총이 AR15인줄 아냐?
@keke-bv2tz
@keke-bv2tz 11 ай бұрын
그쵸 총이생겨서 모든 국민을 동원하는 총력전 형태가 될수있었죠! 아무리 전쟁터를 수십년 누빈 기사조차도 1개월배운 농민의 총에 쓰러질수있으니까요 ㅎㅎ 빠른습득 비교적싼가격등
@느그쵸
@느그쵸 11 ай бұрын
총이 활보다 숙련되기 쉬운건 사실이나 단기간에 병력을 뽑아낼수있는건 아니였지.
@Randy_Rhoads
@Randy_Rhoads 11 ай бұрын
@@느그쵸 총이 전통무기에 비해서 대량으로 병력을 뽑을수 있는건 사실입니다. 전통무기는 몇년을 수련시켜도 전장에서 칼창활로 부딪힐때 제대로 싸우게 만들기 어렵습니다. 총기류는 발사과정만 숙달시키면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여포 관우도 맞추기만 하면 반드시 죽일수 있기 때문에 대규모 총력전이 가능해 진겁니다. 총보급 초기에 조선의 상황은 그렇게 대규모의 총기를 만들수 없는 국가적 한계때문에 그렇게 인식이 되는거지 세계적으로는 총의 등장으로 드디어 국민이 총동원되는 전쟁의 양상이 만들어집니다.
@느그쵸
@느그쵸 11 ай бұрын
@@Randy_Rhoads 아닌데? 총의 가장 큰문제는 보급의문제였고 총동원이 가능해진건 철도체계가 완성되고 난 다음에나 가능해진건데? 뭘 모르는듯? 총이 활보다 다루기쉬운건 맞지만 그게 단기간에 양산된다는식으로 애기하면 안되지. 그리고 총의 등장이 아닌 기차의 등장으로 국민총동원이 가능한거 언더스텐드?
@kryptoman_gaksital
@kryptoman_gaksital 2 жыл бұрын
기마병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게 있어야 하는데 저 당시 조선군은 그런게 없었다는게 딱 보이더군요. 조총이 무슨 만능 무기도 아닌데. 일본군이 조선 침략했을때도 저렇게 조총병만 엄청 양성해서 싸운건 아니잖아요. 그럼 그걸 제대로 카피하기라도 했으면 중간 이상은 갔을겁니다. ㅎㅎ
@MaGnUsYeMan
@MaGnUsYeMan 2 жыл бұрын
임란 당시 일본군이랑 병란 당시 청군이랑 맞붙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지네요..
@nogada8
@nogada8 2 жыл бұрын
임란당시 함경도에서 여진부족과 일본군과 붙은적 있습니다 일본군이 탈탈털려서 강원도 부근까지 도망간적이 있죠
@holyhero1598
@holyhero1598 2 жыл бұрын
왜군 최강이라는 가토 기요마사도 청군도 아니고 일개 여진부족과 붙어서 탈탈 털렸습니다
@MaGnUsYeMan
@MaGnUsYeMan 2 жыл бұрын
영상에 조총부대가 훈련이 잘 되어있으면 기병부대를 쉽게 제압했을거다 라는 언급이 많이 나와가지고 궁금했었는데.. 이 정도면 크흠...
@jaewonlee9019
@jaewonlee9019 2 жыл бұрын
여기서 알수있네요 이괄의 난이없었어도 탈탈
@v이너프미네랄스
@v이너프미네랄스 2 жыл бұрын
@@jaewonlee9019 그건 모름 북방 유목민 털던 북방 조선,명군이 일본한테 영혼까지 털린거 보면
@황지훈-s9p
@황지훈-s9p 2 жыл бұрын
저때 당시 조총뿐아니라 서양 머스킷도 성에 들어가거나 진지구성없이 야전에서 붙으면 기병한테 그냥 학살아님?? 한발 장전하는데 빨라도 20초라하면 그시간이면 말이 200미터앞에서 달려올듯
@interstellar125
@interstellar125 2 жыл бұрын
전열보병이니까 다수의 열로 차례로 화망을 구성하지 않을까요. 장전시간 동안 딜이 비는 건 저 때도 알테니까요.
@v이너프미네랄스
@v이너프미네랄스 2 жыл бұрын
그래서 사각 방진으로 기병대비했지
@mool_tissue
@mool_tissue 2 жыл бұрын
잘 훈련된 테르시오 연대 2-3개만 있었으면 야전에서 청군은 학살당했을겁니다.
@ckse5676
@ckse5676 2 жыл бұрын
자랑스러운 역사도 중요하지만 이런 치욕적인 역사도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함.. 저당시 인조는 암군이었고 사대부들은 현실을 무시하고 입만 살아가지고 후금을 오랑캐라고 상종하면 안된다고 떠들줄이나 알았지 막상 쳐들어 오니까 백성들 다버리고 도망가기 바쁘고 지배층이라고 특권이나 누릴 줄 알았지 책임이란것은 1도 생각질 않았네요 . 개인적으로 조선후기는 우리나라 역사상 정말 최악이라고 봅니다.
@joedenis7144
@joedenis7144 2 жыл бұрын
솔직히 이괄의 난은 왕과 대신들이 타초경사의 우를 범한게 컸어요 이괄을 반역도로 몰아간거나 다름 없거든요 이괄로서도 반역 밖에는 선택지가 없었고요 조선이라는 나라가 무관인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세워진 나라다 보니 너무 이괄을 의심의 눈초리로 봄요 그리고 조총병만 이야기 하시는데 조총병을 보호할 장창병의 유무가 컸다고 봅니다 테르시오는 장창병과 조총병의 조합이야 말로 강력하니까요
@_stree2590
@_stree2590 2 жыл бұрын
광해군과 인조가 정치에 실패했기 때문에 쓰라린 전훈들을 통해 애써 육성한 군대가 내란만 일으킨 뒤 무너지고 강력한 외세를 막지 못한 것. 지금 북한+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겠음.
@after718
@after718 2 жыл бұрын
해자를 파서 기동력을 상쇄시켰어야 하는데 그걸 떠나 적의 병력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떨어졌던 듯
@니얼굴-g7n
@니얼굴-g7n 2 жыл бұрын
영상이 아주 알차고 재밌고 유익하고 역사를 유기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훌륭합니다. 좋은 영상 무료로 보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제우스역체탑
@제우스역체탑 Жыл бұрын
변명은 필요없고 16세기 당시만 해도 청나라 팔기군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 중 하나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이 감당하긴 어려웠다고 생각하네요.
@리디야산드라
@리디야산드라 7 ай бұрын
우린 매번. 전쟁에서 져왔다. 그렇게 당하고 지고 또 지고 또 지고 다들 아시져 왜 지는지. 명나라 멸망뒤 진린 가문 후손이 해남으로 피신하고 덕수 이씨 후손과 지금과 우애를 쌓는다는데. 여기서 만주족이 땜에.. 안그랬다면. 두 가문이 지금 현대에서 만나지 못했죠. 뭐 그렇다는거에요.
@박준협-i2c
@박준협-i2c 2 жыл бұрын
이런 내용을 역사책으로 배운 적이 없고 그저 청나라 신경 긁어대다 홍타이지가 개빡돌아 조선 조지고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결국 항복했다고만 나온 것에 대해 의구심만 자아냈는데 이런 내용의 영상을 올려주셔 감사드립니다.
@박권진-m3o
@박권진-m3o 2 жыл бұрын
전쟁의 진지함보다는 정치적 우위에 관심을 쏟은 결과 같네요... 인도적 측면의 고려가 많이 부족한 선택과 그 과정들이 낳은 시간들
@jjuhyung
@jjuhyung 2 жыл бұрын
아무리 병력과 화력이 좋아도 지휘관이 원흉(원균)이라면 아무리 은하최강의 병력이라도 그대로 녹아버림 당시 능양군 지휘의 조선군 장군들은 거의 최악의 졸장들이라…
@sungminkim6309
@sungminkim6309 2 жыл бұрын
무슨 소리요? 비록 칠천량 해전에서는 패배했지만, 그래도 원균은 육전에서는 호랑이었어요!
@화담-o7u
@화담-o7u 2 жыл бұрын
@@sungminkim6309 어찌 아나요 백생들 목베서 보내고 왜구라 했을 수도 있죠
@dehwankim2269
@dehwankim2269 2 жыл бұрын
@@화담-o7u 숨겨진 역사를 제대로 아세요..원균은 이순신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었던 권율과 류성룡의 계략에 희생이 된거요..부하들 보는 앞에서 권율에게 곤장을 맞는 모욕을 당하자 그토록 피할려던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전투를 치른거고 당시에 선조는 류성룡과 권율 말만 믿었다가 자기 때문에 원균이 희생 당한걸 알고 나중에 류성룡과 권율을 처벌하고 원균을 그토록 챙길려고 한겁니다..당시 부산포에 왜군이 무려 20만 가까이 되었는데 수군 2만으로 어떻게 이깁니까?
@화담-o7u
@화담-o7u 2 жыл бұрын
@@dehwankim2269 그러게요 그렇게 바위로 계란치기인 공격을 왜 원균은 가능하다고 우겼고 이순신이 겁쟁이라 못한다 우겼을까요. 본인이 직접해보라고 판 깔아주니 못한다고 난리쳤고요. 숨겨졌다기에는 너무 기록이 많네요;;;;
@dehwankim2269
@dehwankim2269 2 жыл бұрын
@@화담-o7u 이순신때 부산포에 왜군 병력은 2만이었고 원균이 부임했을 때는 20만이었으며 지상전에 참전했던 해군 제독까지 있었습니다.. 근데 당시 선조는 그 사실까지는 전혀 몰랐다가 원균이 전사한 다음에 알게된거죠..선비놈들 기록은 90%가 구라죠 ㅋㅋ
@jaechulkim2041
@jaechulkim2041 2 жыл бұрын
경제도 전쟁도 모두 정신력이 중요함. 이런점에서 박정희가 하면 된다는 의식개조와 긍정적인 마인드와 희망과 목표의식의 모티배이션을 불러일으킨 점에서는 평가 받아야함.
@azx2931
@azx2931 2 жыл бұрын
조선한테 조총은 있으나마나하다 토끼가 이끄는 사자무리보다 사자가 이끄는 토끼무리가 더 강력하다는 말이 있듯이 무기보다 지휘관이 더 중요하다
@lucasromi83
@lucasromi83 2 жыл бұрын
조선의 조총병은 강했음. 나선정벌때 조선조총병은 러시아군을 상대로 연전연승 했음. 이괄의 난으로 정예병력 갉아먹고 정치를 위해 지방 근왕병의 전력을 견제해서 개발린것이고 병자호란 때에도 남한산성에서 잘 싸웠음. 당신의 사고방식이야말로 폐쇄적이고 낡아빠진 조선 말기의 성리학적 사고의 전형임 객관적 현실보단 감정과 자기권위, 도덕적 선악감정을 가지고 판단해버리니깐.
@azx2931
@azx2931 2 жыл бұрын
@@lucasromi83 넌 국뽕의 전형적인 망상이네
@kis012876
@kis012876 2 жыл бұрын
@Joseph Stalin 사자가 토끼를잡아먹고 강한 사자가 우두머리가 되겟지
@KimKim-mi8xj
@KimKim-mi8xj 2 жыл бұрын
@@lucasromi83 조선군이 강해서 그렇게 호되게 당했냐?ㅋㅋㅋㅋ 전략 전술의 실패지
@ICAOhell
@ICAOhell 2 жыл бұрын
저시절 총은 비와도 몽둥이 되지만 바람 잘못 불어도 몽둥이되죠. ㅠㅡㅠ 지금 돌격소총은 진짜 쉽게 쏘는거죠.
@jaehokang1891
@jaehokang1891 Жыл бұрын
가슴에 와 닿는 마지막 멘트시네요
@닉네임머게
@닉네임머게 Жыл бұрын
그냥 조선은 농경국가인데 산업화가 어느정도 진행된 1960 70 년대에도 한반도는 전국토의 70프로가 산지였다고 하는데 저때는 80프로 이상일듯 즉 돈이 없음 돈이 조선은 항상 재정부족으로 시달렸음 국가 시스템은 전보다 커졌는데 농경국가인데 농경지는 너무 부족해서 돈이 없었음 돈이 없으면 군대는 힘이 없음 사실 지방군들은 대부분 군대 소속의 토지 가는데 쓰이고 노동력으로 쓰였지 군사훈련은 제대로 하지도 않음 군사훈련을 해도 돈이 없으니 훈련도 안되고 횟수도 부족하고 오히려 기록들 보면 조선은 전쟁 발발시 처참하게 발리고 전쟁중에 훈련과 경험이 되서 강군이 됨 전쟁 중에 군대가 강해짐 그러다 전쟁 끝나고 다시 다 농민이 되는거임
@R_bba_no_
@R_bba_no_ Жыл бұрын
조선이 잘못했지 청나라 욕할게 아니다. 인조반정때 공을 쌓은 이괄부자가 추가로 공을 요구하자 거절하니 후금으로 넘어가 조선 인조가 광해군을 폐위시켰고 ,친명배금이라 꼰지르니…후금은 광해군 폐위 명목으로 정묘호란때 쳐들어와 형제국으로서 기회를 줬는데도 오랑캐라 하며 그마저 약조를 어기니 병자호란때 삼배는 업보다..
@BrightWarmWater
@BrightWarmWater 2 жыл бұрын
이괄의 난에 대한 트라우마로, 즉 왕위 정당성에 대한 시비로 인해 결과적으로 국운이 기운 걸 보면 예송논쟁도 이해가 감. 현대의 시선으로만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당대는 엄연히 왕조국가였으니. 애초에 그런 시비를 안 만들 만큼 내치가 잘 됐으면 더 좋았겠지만.
@ignisilluminati
@ignisilluminati 2 жыл бұрын
그건 군주제 국가의 한계라고 봄 그래서 공화국이 좋은거지
@로갓-i8w
@로갓-i8w 2 жыл бұрын
예송논쟁은 생각보다 훨신 건전한 형태의 정치알력 다툼입니다. 자신들의 사상을 가지고 한 정치 논쟁이였으며 이로인해 숙청작업 조차 없어 무의미한 희생자도 없이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이후 대동법을 비롯한 사회, 경제체제의 개혁에 밑바탕이 된 사건입니다. 이후 환국을 통해 개판난 조선을 생각해보면 "합리성"을 가진 싸움이었습니다. 총칼을 들고 내말이 맞다 니말이 맞다 하며 무논리 초딩 싸움하면서 내전을 치르고 피의 대숙청을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 낫죠.
@javaxerjack
@javaxerjack 2 жыл бұрын
여기서 왜 창검병이 없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왜병의 경우 조총이 있지만 반대로 기병이 거의 없었죠. 하나의 적과만 너무 오래 싸운 결과가 아닌가 싶네요.
@MBSHIM-td7ch
@MBSHIM-td7ch 2 жыл бұрын
더욱이 왜병은 수십년에서 백년이상 전쟁으로 단련되고 사무라이들 전투력도 장난 아니었는데,거기에 조총까지있었으니 더 기세가어마했죠 조선은 그에비해 전쟁준비 안되있던 상태에서 왜란으로 엄청 국력이 상했고 보급도 원활하지도 않았으며, 조총이라는 신무기도 만들었지만 전체적인 군사력이 상해버린 상태에서 싸우자니 꽤나 문제였던듯 합니다.
@jyj371
@jyj371 2 жыл бұрын
일본이 더 힘든 상대였습니다. 임진왜란때의 조선은 준비는 열악했지만, 곳곳에서 어느정도의 방비가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임란시기 일본군은 홍타이지의 청제국군보다 강했습니다. 전력에서 홍타이지의 청제국군은 규모나 전력에서 밀립니다. 거기다 일본군은 근접전용 창검병부터시작해서 4미터의 장창부대와 대포부대까지 갖춰진 정예부대입니다. 명나라지원군은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용병대와 명제국 정예부대가 직접 왔습니다. 청나라의 기마전술이 통했던 것도 조총 제식체계가 덜잡혔던 시기라서 그렇지. 이괄의 난이나 인조반정만 없었다면 3만의 조총과 총검 및 기병대로 후금병들을 떡바릅니다. 조선대포가 사거리와 정밀도가 좋기때문인데, 서구군대들이 괜히 선기병전술을 안쓰는 이유는 대포전술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은 100문의 대포만으로 8만의 적군을 분열시켜서 상황에 맞는 보병전술과 기병으로 적을 쓸어버렸죠. 조선도 이런 전술의 전환시기에 인조와 사대부들의 반란이 일어나서 조선은 폭망합니다. 맨날 충성과 의리가 어쩌구하는 사대부들만큼 배신의 연속인 역사를 가졌죠. 만약 광해군이 이시기만 잘넘겨다면 조선은 망해가는 명과 대립하는 청사이에서 조총부대와 대포 및 보조부대의 육성으로 사대부들의 성리학이 아닌 실학의 전환이 더 빨라졌을것이고 서구처럼 대양항해를 시작했을겁니다. 서구보다 늦었기는 했지만 대양함대만 있다면 명이든 청이든 가지고 노는 것은 시간문제죠. 이는 서구열강들이 전세계를 상대로 이미 증명한 결과입니다. 뭐 시기가 안좋았습니다. 전환시기를 놓쳤고 결국 사대부들은 살아남아서 일제강점기로 이끌게되죠.
@javaxerjack
@javaxerjack 2 жыл бұрын
@@jyj371 근데 난이도 문제는 양쪽 다 그냥 그냥이 아니었나 싶네요.(쉬웠단 이야기가 아니라 난감 그 자체) 양쪽다 조선 병제의 약점을 너무나 잘 파고들어서 말이죠.
@overman7
@overman7 2 жыл бұрын
그냥 조선은 좁밥이였음
@MBSHIM-td7ch
@MBSHIM-td7ch 2 жыл бұрын
@@overman7 ㅇㅈ...;; 그나마 조선초가 최전성기 겸 중기의 성웅 이순신장군이 잘했긴했으나 그때조차 10만내외에 그게모자라서 전국적으로 쌩난리 ㄱ= (최대 20만이었다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추정에 훈련받은 군대도 아니었음... 암만 전쟁과 국방이 숫자로 하는것이 아니지만 최소한의 병력이 없어서 그난리를 쳤으니 개판1초전이지)
@j6f8j
@j6f8j 2 жыл бұрын
난 조금 생각이 다른게 광해군이 그렇다고 정치를 잘한것도 아니고 이괄의 난이 아니더라고 1627년까지 삽질만 했던지라 싸우긴 힘들었을꺼라 생각함. 명나라가 청이랑 전쟁에서 건재했으면 몰라도 결국 명이 망했으면 적대국가로 청이랑 계속 대치해야하는데 조선이 뭐 과거 고구려같은 전투민족도아니고 그냥 농업국가인 상황에서는 힘들지 않았을까 싶음.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жыл бұрын
우리민족에게 정말 가혹한 시대였습니다. 우리가 잘될 가능성은 정말 낮은 시기였죠. 지금까지 이땅에서 버티고 살아준 조상님들께 감사할따름입니다. 다만 저는 약간에 드라마틱한 요소를 넣어보고 싶었습니다ㅎㅎ
@혀로30분
@혀로30분 Жыл бұрын
왕밑에 관리들의 문제 ᆢ 역사의 흐름은 항상 세치혓바닥의 왕을 좌지우지하는 혓바닥과 귀가 얇은 왕의 문제 ᆢ 무기가 신진화되었다면 좀 나아졌겠지 ᆢ 저때나 지금이나 왕밑에 관료 ᆢ지금의 국회의원 같은 것들을 전투의 전쟁의 선방으로 세웠어야 그 나라의 평화가 온다는 것에 동참한다 ᆢ
@justinfire6630
@justinfire6630 7 ай бұрын
한국은 예로부터 정치가 혼란..서로 갈라서 싸우기 바쁘고 그로 인해 나라의 혼란으로 외세의 침략을 수없이 당해온 빌미를 제공했었죠. 특히 민족적 특성으로 욕심이 많아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프다는 게 우스겟소리가 아닌 유전적 성격이었죠. 남이 잘되는 거 절대 못보고, 욕심으로 그렇게 남을 제끼고 보다 더 잘 살거나 얻으려 했던 역사가 끊이지 않은 국가 내부적 혼란을 일으켰죠. 지금의 정치 상황이 정말 쓰레기인게...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었죠. 어떻게 보면 내부적으로 싸우고 혼란이 없었던 시기가 아마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재밌게도 한국인은 외지에 나가 혼자 있으면 강한데, 같이 있으면 서로 싸우고 난리가 나는 민족이었죠. 이에 반헤 우리가 그렇게 욕하는 중국인들은 하나하나는 오합지졸인데, 모이면 자기네 끼리 뭉쳐서 아주 굳건한 힘을 발휘하죠. 세계 각국의 차이나타운이 그 국가의 엄청난 세력으로 커나아가는데는 이러한 민족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시간으 흐로고 민주주의 및 첨단의 시대로 왔어도 이러한 한국의 민족적 특성은 아직도 현실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고 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임시정부가 대단한 것처럼, 항일무장 투쟁이 꽤 의미가 있었던 것처럼 사학자들이 왜곡하고 미화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항상 내분으로 서로 싸우고 결집도 안되었으며 무장투쟁의 군대 및 전과도 정말 현실적으로는 초라한 수준이었다는 것을...절대 역사가들은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아직도 우리는 왜곡된 역사를 바라보며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내분과 균열로 결집이 안되는 이 민족이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급속도로 단결하는 정말 원래의 모습과는 다른 신기한 장점도 갖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 정말 중요한 것은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이 나라에는 역사로 증명이 되었었죠. 정말 나라가 망할 정도로 어려울 때, 혹은 완전 기울었을 때,......정말 영웅적 인물이 나타나 나라를 강제로 멱살잡아 일으키고 캐리하는 기적이 계속 일어났고 그래서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해 올 수 있었던 정말 버라이어티한 나라이자 민족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서로 분열되고 싸우는 모습은 계속되고 있고 안타깝지만 이는 아마도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듯 합니다.
@달란트-l3v
@달란트-l3v 2 жыл бұрын
국가는 국방력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국방력이 없이는 어떤것도 지킬수 없다
@vivalavida497
@vivalavida497 7 күн бұрын
국방력도.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지. 북한 봐바. 최빈국이. 남한 상대로. 할수 있는건 고작 미사일...
@진라인하르트
@진라인하르트 Жыл бұрын
항상 역사를 공부할때 사건의 나열만을 공부하고 그 원인을 가르쳐주는게 별로 없는게 답답했었는데 이영상은 잘 가르쳐주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타우포스
@타우포스 2 жыл бұрын
조총부대 도륙나는 장면이 제일 안타깝네요! 군기가 중요하군요!
@dehwankim2269
@dehwankim2269 2 жыл бұрын
그때 당시 최악의 임금 인조와 사대부들 때문에 병사들도 전의를 상실하고 싸울 의지가 전혀 없어서 청나라 군사를 본 순간 전부다 도망치기 바빴다네요..
@소박한형제들
@소박한형제들 2 жыл бұрын
말발굽소리 들으면 얼어있을꺼 같은데
@절묘한타이밍-1111
@절묘한타이밍-1111 2 жыл бұрын
유교탈레반 동서남북 나만 잘살면돼가 기본 신념인 이런나라에겐 늘 치욕의 역사가 반복될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진리!!!
@황경수-k2s
@황경수-k2s 2 жыл бұрын
국방비는 절대 지켜야합니다. 돈없는것보다 더 서러운게 나라없는 설움이라...우리는 아버지 할아버지때에 격은 나라니 더더욱 국방력에 힘씁시다.
@하성김-t3f
@하성김-t3f Жыл бұрын
너무 너무 너무 유익하고 좋은 영상이었어요. 최고입니다.
@민준현-o1o
@민준현-o1o 2 жыл бұрын
07:00 영화 밀정에서 일본형사로 나오고 오징어게임에서 덕수로 나왔던 허성태 배우님 아닌가요???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жыл бұрын
예 맞아요ㅎㅎ 남한산성 비운의 명작이죠ㅎ
@고봉구-e3v
@고봉구-e3v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기득권이 해쳐먹고 국민이 나라를 살리는 나라임 몇백년을 반복하고도 기득권을 억제하지못하는 우리 국민의현실..
@이순간-w8u
@이순간-w8u 2 жыл бұрын
인조는 뭐하러 반정을 일으켜 저 치욕을 당했을까 역사의 아이러니다
@슈타인할트
@슈타인할트 Жыл бұрын
순수 권력욕 근데 무능력했지
@미숫가루찌개
@미숫가루찌개 2 жыл бұрын
여기서 ㄹㅇ 이괄의 난이 존나 큰 피해긴 하지.. 최정예군사, 지휘관들 대부분이 이괄이랑 한패였고..
@겨울산-n5m
@겨울산-n5m 2 жыл бұрын
총으로 기병을막는건 그보다 200년뒤에나 가능했음. 미국독립전쟁에서도 힘들었는데 무슨 병자호란에서 조총으로 기병돌격을 막나.ㅉ.그것도 허구. 조총 창병 등이 완편되지 못한. 조선군편제의 문제였던거임다.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жыл бұрын
www.google.com/url?sa=t&source=web&rct=j&url=namu.wiki/w/%25EA%25B9%2580%25ED%2599%2594%2520%25EC%25A0%2584%25ED%2588%25AC&ved=2ahUKEwir1-Pc_tP0AhVPslYBHYuXDC8QFnoECD4QAQ&usg=AOvVaw21PbkcgDryBUQYlTPJgc8M 김화전투 참고
@dajoyo
@dajoyo 2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시사하는 바가 많네요..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жыл бұрын
마치 요즘 이야기인듯도 합니다ㅎ
@likephoenix659
@likephoenix659 2 жыл бұрын
1. 이괄의 난을 단순히 논공행상의 불만으로 표현한 거 자체가 오류임. 이괄이 논공행상에서 제 1공을 받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건 맞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유능하다는 이유로 최전선에 간것도 맞음. 그러나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이미 인조가 아무런 죄가 없는 이괄을 체포해서 죽이기 일보 직전이었음. 이괄의 난 자체는 정당방위에 가까운 형태임. 2. 화승총이 최신무기? 광해군 시절에 이미 기마병을 상대로는 화승총은 크게 효력이 떨어진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포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음. 그냥 준비를 덜한 거임. 또한 조선 자체가 화약 생산 자체가 힘든 국가이기 때문에 더더욱 조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 그냥 준비 안한거임. 3. 중앙군을 제외한 지방군의 훈련도 차이? 그냥 장수가 무능한 것이 대부분의 병권을 인조반정파에서 가지고 있으니 진짜 실력이 아닌 인맥으로 되어 있는 군대가 잘 돌아 갈리가 없음.
@aa-rk1sq
@aa-rk1sq 2 жыл бұрын
광해군은 유배지에서 나라상황을 보며 무슨생각을 했을까..
@누굴까-m9b
@누굴까-m9b 2 жыл бұрын
웹툰 칼부림에 나옴
@wonkim5793
@wonkim5793 2 жыл бұрын
화병돋았을듯.. 이나라는 당파라는 정치체계가 안맞음 개개인으로 만들어야함
@Antitititi316
@Antitititi316 2 жыл бұрын
광해군은 암군입니다만...
@Antitititi316
@Antitititi316 2 жыл бұрын
@ 예...? 점점 암군이라는게 정설이 되어가는 추세인데요?
@Antitititi316
@Antitititi316 2 жыл бұрын
@ 임진왜란 직후의 정치적 혼란, 국토 황폐화와 인구 유실로 인한 백성들의 전방위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무려 궁궐 5개를 건설하고, 심지어 그중 가장 큰 인경궁에는 거의 모든 전각에 청기와를 올려 커지는 북방민족의 위협에 대비할 화약..의 원료인 연초를 남용했습니다. 무분별한 행정으로 대북파를 자신의 정치깡패로 이용하고(심지어 이들 중 강경파가 득세하여 내치는 더더욱 안드로메다로..), 신하들이 계속해서 건의한 대동법 확대 시행을 '반대'하고 오히려 폐지하려 했고, 매관매직을 성행시키고, 왕실 재산 축적에 빠졌습니다. 광해군 시대의 군사력 증강이요? 광해군 시대의 군사력은 임진왜란 때 베테랑들이 남아있는 시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병력들을 제대로 이용해 종합 국방 시스템을 완성하기는커녕, 군사의 수를 줄이고 자금을 빼돌려 궁궐 공사에 썼습니다. 애초에 광해군이 농업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세종처럼 농업 시스템을 정비해야 군사력이 확보되는 법인데, 그게 안되니 군대가 정비되겠습니까? 인조반정을 주도한 이들 중 인진왜란 시절 베테랑들이 껴 있는 건 괜한 일이 아닙니다. 뭐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탄핵 사유입니다. 세자 시절의 광해군은 훌륭하게 지도자적인 면모를 보였고, 왕일 땐 인조 치세보다야 나은 외교정책을 폈지만.... 글쌔요. 그것 빼곤 암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하나로 정리가 가능합니다: 광해 15년. 3월 13일 계모 9번째기사. 도성의 남녀들이 왕이 가는 것을 보고 모두 담장과 지붕에 올라가 바라보았고, 어떤 사람은 욕하기를 "돈애비야, 돈애비야, 거두어 들인 금은은 어느 곳에 두고 이 길을 가는가." 하니 왕이 머리를 숙이고 눈물만 흘렸다.
@ooooeee33
@ooooeee33 Жыл бұрын
무기만 좋아도된다는 동도서기론같은 븅신이론이 없음 결국 마인드가 중요함
@death83520
@death83520 2 жыл бұрын
8:03 왕실 식솔 강화도 피신? 다 잡았다고 역사저널그날에서 언급.. 그래서 인조가 항복하는 결정적원인 이라고.. 누구말인 맞나요?
@정형진-g4e
@정형진-g4e 2 жыл бұрын
병자호란 당시 청이 섬 지형의 강화도를 공략할수 있었던 부분도 설명해 주었으면 좋았을듯 싶습니다
@홍연경-y6g
@홍연경-y6g Жыл бұрын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는 그때보다 300여년전 여몽전쟁때 강화도랑은 말만 같은 섬이지.완전 다른 지형이 된 점이 가장 큽니다.고려말부터 지속된 간척으로 강화도 해안가는 여몽전쟁때 "깎이지른 절벽을 끼고있는 요새 그 자체에 섬"이 더 이상 아니였습니다.그냥 뱃사장도 있고 평지가 많은 공략 난이도가 확 내려간 섬이 된거죠.또 강화도와 김포 모두 간척에 영향으로 김포만에 바다간격이 좁아져서 청군은 뗏목으로도 건너갈수있었지만 반면 조선군은 판옥선이 김포만에 진입조차 할수없었습니다.거기에 당시 강화도를 지키고 있던 김경신과 장신이 둘다 원균급 졸장이었고요.또 여몽전쟁때 몽고군이랑은 다르게 여진족은 그다지 물에 터부가 없었기에 수전에 약한 사람들이 아니였습니다.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 여몽전쟁때는 40년을 버틴 강화도가 병자호란때는 이틀만에 함락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각자도생-g5g
@각자도생-g5g Жыл бұрын
1. 후금군은 한반도 지형과 조류를 잘 알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참전한 화포 전문 수군이 다수 있었고 이들은 가도의 모문룡의 부하로 있다가 원숭환 부대로 편입 이후 원숭환이 죽고 청군으로 넘어갔다. 임진란 이후 상당한 시간차가 있는데 수군은 육군과 다르게 나이가 먹어도 물때 조류 지형은 지식으로 남고 소수만 있어도 유용하다. 2. 조선인 조력자가 다수 있었다. 이괄난 이후 후금으로 넘어간 조선군 포함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오랜세월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당시는 현대보다는 희미한 민족의식 을 가질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 이 있다.( 임진왜란 때 보더라도 10만 가까운 사람이 일본으로 갔으나 나중 강화 협상후 조선으로 되돌아 올려는 사람이 상당히 적었다는것은 민족 이런것 보다 그시대 민중의 삶은 어디서 살든 밥 안 굶을수 있는데면 족할때라...) 3. 홍이포가 있었다. 후금은 강화도가 거센조류와 암초가 많다는 지형적 특성도 알고 있어서 건너는데 땟목을 현지에서 제작해서 이용했고 도하작전 하기 전에 벌써 사정거리가 긴 홍이포를 깔아서 조선의 판옥선의 접근을 막았다. 물론 후금이 도하를 할때 물때가 맞지 않아 판옥선이 접근을 못하고 있었는데 후금은 조선의 수군이 강력하다는것을 알고 물때를 유리하게 그런데도 접근하면 홍이포로 조진다. 라는 이중대비를 했다. 4. 능력있는 장수들이 많았고 실전경험이 풍부한 병사가 많았다. 그당시 후금은 창업한지 얼마 안되었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틈 바구니에서 나라를 세우다보니 능력본위 무한경쟁체제에서 살아남은 애들이 대가리로 있으니 상당히 효율적이고 지능적이 였다. 이건 인정해줘야지. 목표가 정확했고 작전은 치밀하고 빨랐으며 이런모든것들이 퍼즐 맞듲이 꼭 맞아 떨어졌다. 삼전도 까지.
@hsh6036
@hsh6036 Жыл бұрын
여진은 몇백년 전부터 여진구(寇)라고 불리는 해적이 창궐했을 정도로 배 잘타는 사람들입니다.
@이무자기
@이무자기 2 жыл бұрын
이괄의 선봉대는 항왜(임란 때 귀화한 왜군)들의 일본도 부대였죠. 수십명의 항왜가 정부군을 붕괴시켰다죠. 인조 땐 애초 군대다운 정부군 없었습니다.
@홍사람-c1h
@홍사람-c1h 2 жыл бұрын
당시 이괄진영에 항왜병 120명이란 기록있음.
@버프코트
@버프코트 2 жыл бұрын
항왜 + 잘 훈련된 기병대와 포수들 + 함경,평안같이 북쪽지방 특유의 마초스러운 부하들이 합쳐지면 두려울게 없죠.
@미제드론
@미제드론 2 жыл бұрын
정충신 장만도 있었는데 너무 억까임
@형님-y1h
@형님-y1h Жыл бұрын
항왜들이 갈렸죠.이괄쪽 항왜 300기 정도 역사학자들이 봅니다. 그리고 사야가 또한 이괄의난 제압하러 올라갑니다. 그휘하 200기가 있었습니다
@절식남-g1w
@절식남-g1w 2 жыл бұрын
조총을 쏘고 다시 장전하는 시간에 적의 기마병은 코 앞까지 와버리니 그게 문제였을지도 게다가 이괄의 난 때 조선의 기마부대를 잃어버리죠 그리고 조총부대를 엄호해줄 부대도 없었다고 알고 있고 기마부대는 기마부대로 싸워야 상대할 수 있죠
@ss7771999
@ss7771999 2 жыл бұрын
그래서 그걸 보안한게.1열이 쏘고.앉아싀 장전.2열에서 발포.2열 앉고.장전.3열 발포.이런식으로 보안됨.맞는 놈입장에서는 계속 맞는것임. 그뒤에 방패등보병.창병이 버티고 있음
@분위기깨는찐따
@분위기깨는찐따 Жыл бұрын
조선이 이상한나라였던거이 임진왜란때 포르투갈한테 전술받은 일본군 조총은 연발사격이 가능하고 재장전도 오래안걸리는데 조선군이 만든총은 한두발쏘고 재장전 오래걸리는 총을 만들어서 진거임
@죠엘
@죠엘 2 жыл бұрын
남한 산성의 조총부대, 왜 패배했는가? 총알이 다 떨어져서.....
@물개튜브-d9y
@물개튜브-d9y Жыл бұрын
지금도 똑같지 북한이 아군이라며 지원금 퍼주다가 ㅋㅋㅋㅋ뒤통수맞고 암튼 ㅋㅋㅋ진짜
@자영업박사장
@자영업박사장 2 жыл бұрын
설명이 자세하고 이해가 쏙쏙 되네요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жыл бұрын
웰컴투 생생월드입니다ㅎㅎ
@pyo8863
@pyo8863 2 жыл бұрын
하이퀄리티 역사채널 재미있게 풀어내는 능력 추천입니다~
@shanestory3879
@shanestory3879 2 жыл бұрын
정말 재미있네요. 하지만 제 생각에 병자호란의 진짜 문제는 인조였습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으면 좀 능력있는 모습을 보이든지... 아휴, 이건 어떻게... 자신을 왕위로 앉힌 1등 공신 이괄을 어떻게 그렇게 내칠 수 있었던 걸까요? 이괄 탓을 할게 아니라 인조 그 자 탓을 해야합니다. 아무튼 조총,,, 정말 잘 봤고요. 구독 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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