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이 지금이나 좋지 저 아주 어린시절 35년전쯤에 시골 할머니댁 가면 진짜 지옥이었습니다 너무 방안이 뜨거워서 바닥에 두꺼운 요가 있었어도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ㅎ
@candleproducer7 ай бұрын
방구둘을 잘놘거넹 ㅎ
@JinJin-ik8fc7 ай бұрын
저두요 ,,,, 잠을 자지 못했,,,,,할머니의 사랑에,,,😂
@wlgurtj7 ай бұрын
세계 어딜가나 있던 바닥귀신 전설은 한반도에서만 없다.. 나약한 귀신은 다 타서 없었다.
@Greeeeeeeed7 ай бұрын
맞아요. 숨막히는 뜨거움이었어요ㅋㅋㅋ
@0.K.J.W.07 ай бұрын
익숙해지면 좋다고 느낌 그러다보닌깐 예전 할머니 할아버지집에 놀러가면 여름이여도 보일러나 온돌을 뜨끈하게 하고 주무셧었음 물론 우린 그때 당시 놀러가면 할아버지 할머니 계시는 집이 아니라 바로 앞애 작은 집을 따로 만든곳이 있었는대 거기서 잤었죠 ㅎㅎㅎ 겨울철에는 진짜 그 큰 방에 가족들 옹기종기 모여서 잠자면 진짜 따뜻하고 좋앗던게 생각남 ㅎㅎㅎ
@old4jeans7 ай бұрын
이후 네덜란드로 돌아간 하멜 일행 일부가 조선과의 직교역을 목적으로 건조된 상선 코리아호를 타고 조선을 향해 출발했지만, 중개무역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던 에도막부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었지요.
@삐용삐용-s8p7 ай бұрын
그게 무슨 말이죠? ㅋㅋㅋㅋㅋㅋ 네덜란드인들이 10년 넘게 조선에 억류되어 있었음에도, 조선 정부는 그들을 통해 네덜란드와 무역을 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무슨 코리아호 타령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cspark6047 ай бұрын
@@삐용삐용-s8p 코리아호 타령이 아니라 조선에 표류되었던 하멜일행들중 일부가 네덜란드로 돌아간이후 코리아호란 상선을띄워서 조선으로 다시교역을 하러갈라했습니다.에도막부의 방해이든 아니면 그들 네덜란드의 사정이든 실제코리아호란 배를 조선으로 보낼시도를 했던건 사실입니다.20년도 더된 옛 kbs다큐멘터리 하멜의 이야기 검색해보세요.유튜브에 있으니깐
@어른어른7 ай бұрын
@@삐용삐용-s8p조선 정부가 갑자기 왜 나옴? 코레아호가 조선 소유 배겠냐? ㅋㅋㅋㅋ 진짜 멍청함이 하늘을 찌르네. 하멜 복귀 이후 네덜란드 동인도 주식회사에서 코레아호를 만들어서 직접교역을 추진해보려했으나 일본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정도의 이야기임. 뭐 그게 원 의도대로 조선에 도착해봐야 제대로 교역이 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당연하지만 없는 사실 지어낸 것처럼 구는 두 놈 달라붙는 건 참ㅋㅋㅋㅋ
@stephane...7 ай бұрын
@@삐용삐용-s8p야이 찌꺼기야 네덜란드에서 조선으로 보냈다고
@vierwuenscheansuniversum7 ай бұрын
엥 코리아호는 모르겠는데 조선이랑 교역 할려고 서방 국가들이 계속 시도한 건 맞음 근데 그보다 먼저 교역 중이던 일본에서 상인들 넘어갈까봐 계속 막은 거고
@구독해도아무일없습니7 ай бұрын
3:58 9:18공부하는 사람들 말하는 거 특) 말하다가 오류가 있을 거 같은 건 이렇게 잡고 말해주고 지나감 ㅋㅋㅋㅋ 아 이런말투 너무좋아
@꿀잼모아-kkuljem6 ай бұрын
공부 못하는 애들 특) 국밥 얘기 하다가 돼지국밥 하나 잘못 들어가면 그건 625때부터 먹기 시작한 건데 왜 집어 넣었나요? 하면서 아는 거 하나 나왔다고 물고 늘어짐.
@metalbox36817 ай бұрын
오늘도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boanproject7 ай бұрын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후후~
@최성근-s7w6 ай бұрын
@5:22 뚜렷한 4계절...완전 사기야...온돌 안썼으면 다 얼어죽어서, 지혜를 거의 짜내는 수준..
@NOOBMAN.MK27 ай бұрын
썬킴 아저씨 처음 봤을때는 쫌 부담스러웠는데 보면볼수록 잼있음 ㅋㅋ
@심쿵두루7 ай бұрын
평소 너무 궁금했던 주제네요😊😊😊❤이런 역사 너무 재밌어요
@daymoon__7 ай бұрын
스토리텔러셔서 이야기를 참 맛깔나게 잘하셔ㅎㅎ
@123carth7 ай бұрын
원래는 Ebs 영어강사
@sun-n1w7 ай бұрын
@@123carth맞습니다. EBS FM Radio에서 "썬킴의 English GoGo"16년 매일 생방송 저녁 6시 퇴근길 최고의 방송이었죠.
일리있는 의견입니다. 참고로 인류는 플라스틱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물건들을 나무로 만들어야 했기에 땔감용도가 아니더라도 벌목과 산림황폐가 엄청났습니다.
@JgKim-zc8igАй бұрын
@@bk2111 그때그시절엔 인구가적어서 훼손산림보다 복구가더빨랏쇼 ~~
@영훈-s8s10 күн бұрын
@@JgKim-zc8ig한양은 아니지 않을까요??
@김현희-z7n7 ай бұрын
조선이 잘못했네 와....미쳤다 진짜 집에 얼마나 가고싶었을까 ㅠㅠ
@vierwuenscheansuniversum7 ай бұрын
당시 사람들도 불쌍하긴 한데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가뒀을 듯ㅋㅋㅋㅋ 효종이 잘못했네
@_fathersworkshop40796 ай бұрын
세종 때 오지 ㅠㅠ
@STARGATE_SGC2 ай бұрын
@@_fathersworkshop4079 조선 세종임금님때면 유럽은 중세 마녀사냥이 활개를 치던 대항해시대 이전의 시기인데요!
@woonya327 ай бұрын
주막에서 왜 사람을 모아서 가는가?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기에 집단으로 같이 움직여야 안전해서 그랬다고 "호랑이산 같이 지나실분 구합니다 탱커환영!! 님만오면 ㄱ 3/8"
@승아-v7m7 ай бұрын
얼마나 맹수가 많았으면 창문을 열었더니 호랑이가 들어온다..😮
@salm20007 ай бұрын
당시 동인도회사에 보고서 올려서, 좋은 보고서로 인정하면 연금을 줬습니다. 근무기록+보고서. 하멜 일행도 연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주 희귀한 기록이었기 때문에. (당시 세계에서 하나뿐인 기록이니까.)
@JK-ho7pb7 ай бұрын
조선초기 양반의 영향력이 지방에도 그만큼 미쳤는지 1:53 보고서 궁금하네요. 어디서 배우길 초기 양반은 지역정도에서 미칠 세력이고 후기 말쯤 가서야 전국구 양반이 된다고 책에서 봤던 것 같아서요!! 초기는 양반이 다른지역가면 양반이긴 하지만 아저씨 느낌으로 들은 것 같아요. 미덕으로 재워주는 거 이상으로 권위가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풋내기-r5j7 ай бұрын
조선초기의 양반은 최고 권력자들의 모임임 신분계급이 아님
@김민영-k8q3g7 ай бұрын
안재워주면 인심없다고 소문나서 왠만하면 재워줌
@whanlee9522Ай бұрын
제가 하나 가르쳐 드릴께요. 제 고향이 의성 인데요 우리 증조 할아바저가 이승만과 비슷한 연세 이신데 그때 여비로 돈을 쓰지않고 바늘을 쓰셨다고 합니다. 바늘 한쌈을 과거 시험보고 오셨다고 합니다. 오고 가는 기간은 한달 정도 걸렸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잘 참고 하세요
@kephas77726 ай бұрын
고구려,발해도 좌식 문화이긴 했다고 들었어요..당시 온돌은 방 전체를 데우는 방식이 아닌 긴 통로를 지나가는 식으로 거기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담소를 나누는 고분 벽화가 보이죠... 방송에서는 우리 나라 국문법을 따르는게..로마 가톨릭이라 써야겠지요...
@시대-q6rАй бұрын
역사를 이렇게 재미지게 말씀 해주네요
@pds152193 ай бұрын
와 현란한 설명에 푹 빠져들어서 시청완료 ㄷㄷㄷ 잼났어요
@UjinIm7 ай бұрын
참으로 재밋게 얘기하셔
@taeseongcho5847 ай бұрын
이 주제도 다뤄주시면 좋겠어요. 지방으로 발령받은 수령들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다뤄주시면 않될까요?^^
옛날 어떤 할머니한테 리포터가 옛날 사람들은 정말 이리오너라 라고 했나고 물었더니 그할머니가 그때는 그렇게 묵었지 하니까 리포터가 그럼 재워주기 싫으면 어떻게 했냐니까 이리오너라 하면 없다하여라 라고 답하면 두말없이 다른집으로 간다고 하시더라. 전두환때 한 80넘긴 할머니셨으니까 아마도 19세기 분이였겠지
@뽈롱-e2f7 ай бұрын
난방시스템 겨울은 당연히 따듯한 거고 여름은 어떻게 했나요? 여름에도 밥은 먹어야 할테니 아궁이에 불은 피웠을거 아녀요?
@CSKang-fe1py7 ай бұрын
여름엔 솥 때서 밖에서 했음
@candleproducer7 ай бұрын
밖에 별도로 있었고 옛날에는 여름에도 아침에는 약간 서늘해서 밥정도 하는 불을 때는게 오히려 좋음.
@usakim41407 ай бұрын
우리나라 여름은 습해서 되려 살짝 난방하는게 좋았다고 지금도 중앙집중식은 장마철에는 일시적 난방들어옴 우리조상들이 서양에 비해 확연하게 과학적 인것도 별로없어보이긴한데 은근히 과학적인것도 많음
@g04jee7 ай бұрын
1. 밖에 불만 짚이는 아궁이가 있습니다. 날이 더워지면 거기에 솥단지 걸어놓고 밥이고 국이든 하면 됩니다. 2. 아궁이가 하나가 아닙니다. 사랑방처럼 하나가 있는 데도 있지만, 보통 두개 세개 되고, 구들 터널도 독립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아궁이가 세개면 큰 솥은 물끓이는데 쓰고 다른 작은 두개는 밥하는 곳, 국 끓이는데 쓰죠. 그럼 불을 어떻게 때는지도 결정되죠. 큰 솥은 겨울에 설겆이 세수 등의 필요한 물을 끓이면서 온돌 대부분의 열을 공급하고, 대신 여름에는 여기로 불을 안때면 됩니다. 여름에는 1번 처럼 외부 솥을 이용해도 되지만, 작은 솥에 작은 아궁이고 구들 폭도 좁아서 여기다 불을 때 밥을 하면서도 구들에 열 공급은 적음. 게다가 불을 아궁이 앞에서 때서 딱 직불로 밥만 하는 정도로 때면서 이후 숯과 재를 아궁이 밖으로 뺌. 겨울과 달리 열공급이 적음. 그래도 한여름에는 더우니까 외부 솥으로 밥짓고 국은 끓여서 먹기보단, 오이냉국 같은걸 만들어 먹었죠.
@g04jee7 ай бұрын
요리할 필요가 없는 아궁이(솥)에는 설령 그 물을 안쓴다 해도, 항상 물을 채워넣고 불을 땠습니다. 그래야 솥이 안갈라집니다. 다만 잘 안쓰면 안쓸 수록 녹이 심해서 여름에는 또 벅벅 긁어 녹 없애고 옻칠 기름칠 해서 다시 겨울을 나는 거죠.
@RedKingFox7 ай бұрын
시험을 치르고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공부를 되뇌인다 하여 과거라 하였다. - 최진우
@생강절임-k6b7 ай бұрын
11수조이고
@2214-h8s7 ай бұрын
11번의 공부를 되뇌었지만 결국 지식들은 코에 저장되더이다 -뭉진우-
@익명-n9n7 ай бұрын
얘! 유튜브 쟁이들은 코드립을 모른단다
@우치하마다라-k7y7 ай бұрын
유리게숭
@생강절임-k6b7 ай бұрын
@@우치하마다라-k7y 얘, 유링게슝이 표준어란다
@dschai02207 ай бұрын
부산서 상주까지 배 타고와서 걸어 문경새재 넘어갔습니다.
@이승헌-d1l7 ай бұрын
낙동강 타고 상주 까지 간거겠죠?
@mrwoong928217 күн бұрын
문경새재 넣어 충주에서도 배타고 한양 갔음. 동영상 보고 있는 중인데 내용 나올려나..ㅎ
@jamescunard15452 ай бұрын
엿치기는 엿을 짜르면 엿가락 가운데 구멍이 보입니다. 이 구멍의 크기를 비교 합니다. 잘 치댄 엿은 구멍의 크기는 없던지 작습니다.
@RoRo933557 ай бұрын
와 ㅋㅋㅋㅋ 재밌네요
@thunny20207 ай бұрын
아따 잘한다!!!! 기막힌 연주를 보는줄 보는 느낌이구만
@yellowking362 ай бұрын
진사시까지는 합격해야 과거를 볼수 있었다고 하는데 과거에 떨어졌던 경우도 대단한 문장가였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당곰-n7g7 ай бұрын
이야기 너무 이해 잘되고 재밌게 설명해주시는 거 같아요!! 감사합니당 잘 보고가여
@장영철-p4hАй бұрын
속도전을 요구하는 젊은세대에최고에 강사심니다 감사 감사
@유수윤-m4o7 ай бұрын
원래 통상적으로 표류민을 발견하면 잘 대접해서 청나라를 통해 보냅니다 일본인의 경우엔 초량왜관을 거쳐 일본으로 송환하죠 이 때가 북벌하던 때라 왕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한거죠 개항 전 19세기에 미국인들이 포경선에서 일하다가 근무 환경이 너무 안 좋아서 탈출을 해 표류민처럼 오게 되었는데 그 때도 청나라로 보낸 후 미국으로 갑니다 그 때 미국인들이 조선에서 받은 대접이 괜찮았다고 평하죠
@vierwuenscheansuniversum7 ай бұрын
하필 시대가 한창 북벌 할 때였던 거네ㅋㅋㅋㅋ 효정이 잘못했다 이건ㅋㅋㅋ
@bk21112 ай бұрын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원조격 😊
@Miosej7 ай бұрын
썬킴 행님 자주 나와주십시오 개재미습니다
@rogue25867 ай бұрын
경상도 지방에서 올라가는 건 그나마 괜찮은데 강릉에서 한양 가기 위해선 경상도로 내려갔다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야 했죠. 이런 연고로 고려시대땐 강릉이 경상도와 같은 지방으로 묶이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더 최악인건 이북 출신들은 이시애의 난 이후로 과거를 보지도 못하고 지방 향리로 지낼 수밖에 없었고 내내 차별 받은 설움이 폭발하여 홍경래의 난으로 폭발한거죠. (정작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증조 할아버지 이전 부터 이북지방에서 살았음)
@RisingsunflagEqualsHakenkreuz7 ай бұрын
믿고 보는 역사이야기 썬킴님 👌👍
@삐용삐용-s8p7 ай бұрын
하켄크로이츠 = 당기 철십자 = 군기 욱일기 = 군기 현 독일연방군은 철십자 문양을 잘만 쓰고 있다. 욱일기는 1930년대 군국주의가 태동하기 훨씬 이전인 1870년에 대일본제국 육군의 '육군어국기'로 채용되었고, 1889년에 대일본제국 해군의 '군함기'로 채용되었다. 욱일기는 철십자와 마찬가지로 군의 상징일 뿐이다. 공부 좀 하고 사세요 ^-^
@Black_Perfume_Gold2 ай бұрын
재미집니다~ ^^
@buskinn88536 ай бұрын
썬킴은 언제나 재밋어 ㅎㅎ
@nikita-zq8qrАй бұрын
재밌게 잘푸시네요 잘봤습니다
@user-ft6nb9hr7b7 ай бұрын
아궁이에서 고구마 구워먹으면 최고인데.... 불앞에서 얼굴 벌겋익어가면서 언제 익나 기다릴때 정말 행복했죠
@세금은누구꺼5 ай бұрын
전세계에 이런민족이 있을까.. 참으로 소중한 문화 유산이다 옳다 틀리다를 떠나서 ..
@부처님의자비단7 ай бұрын
그때에도 일부 흑인과 백인들이 난파선은 물론이고 중국을 통해서도 물물교환차 왕래가 빈번하고 한무리씩 모아서 외인들끼리 서로가 물물 교환한 시장도 있었다고하고 국가에 외교 선물로 흑인노예를 조선에 바치기도 했다던데? 그때 시기도 효종때가 아니였던가요?
@123carth7 ай бұрын
아니었던가요
@부처님의자비단7 ай бұрын
@@123carth 아니였던가요가 맞아요.. 심봉사가 봐도 맞다고 불알을 탁칠정도입니다.
@happybeunggun7 ай бұрын
뭐지 선비로 시작해 온돌 그다음 하멜이라니 ㅋㅋㅋㅋ 제주도에 4월 15일에 가서 돌고래 표지판 있는 곳에 세워서 구경하다가 하멜 묘지 봤는데 여기서 영상으로 보니 참 새롭네요 ㅎㅎㅎㅎㅎㅎ 재밌는 영상 감사합니다
@YASUTSUNA7 ай бұрын
이 뭐지.. 재밋다.......
@리쩡-w1r7 ай бұрын
재미쏘욬ㅋㅋㅋ
@임영수-i1g3 ай бұрын
부산이나 의주에서 한양까지 길은 있었을 것이데, 길의 평균 넓이는 대략 얼마나 되었는지, 1m는 넘었는지 궁금합니다.
@오그리마7 ай бұрын
와 썬킴쌤 진짜 엄청 잘 아시네요 ㄷㄷ 그냥 쏙쏙 들었습니다ㅋㅋ
@crescendo_9993 ай бұрын
와, 졸라 재밌네.❤
@서용석-c8z7 ай бұрын
'적산가옥'을 일본식 건물이라는 형태로 설명하는건 좀 아닌거 같네요. 일본인 즉, 적이 소유했던 가옥(재산)을 해방과 함께 회수했는데, 이른바 '적이 소유했던 가옥'이라는 의미로 설명해야 맞는거 같습니다.
@큐텐-t5u7 ай бұрын
일본가옥맞어
@gonzalezdo17387 ай бұрын
역시 말씀을 정말 잘 하십니다!
@미숙신-f1p4 ай бұрын
썬킴 혼자서 진행하시는가 부디.. 조타😊 반갑습니다♡
@cchocopieКүн бұрын
온돌 얘기하니까 관교동 삼보주택에서 온돌로 자던시절 생각나네 간혹가다 부모님께서 불을 얼마나 땠길래 영하 10~15도 추웠슴에도 집안 바닥은 겁나 뜨거웠던 적이 간혹 기억난다 바닥 지면이 복불복이라, 바닥이 너무 뜨거우면 가장 덜 뜨거운 바닥을 찾아서 앉았슴 요즘은 APT가 많아져서 온돌 많이 안 쓰겠죠?
@1000seju2 ай бұрын
재밌다 ㅋㅋㅋㅋ
@sonkim96847 ай бұрын
진짜 너무 재밌어요
@chy71077 ай бұрын
목소리 딕션 정보력 개 미쳤다 너무 재밌음
@danjjakchinguTV7 ай бұрын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알려쥼-v8k7 ай бұрын
옛날 시골집이 아궁이에 불 땠었는데..진짜 온몸에 화상 입을 정도로 뜨거웠음.
@whathappened6429Ай бұрын
중령은 소령 중령 대령이고 죽령 추풍령 문경입니다
@정인택-i2r7 ай бұрын
5:57 좌식은 방 바닥에 앉는 생활양식이고 의자에 앉는 건 입식인데 잘못 말하셨어요
@yunguso7 ай бұрын
역시 썬킴!!! 영어선생님... 출신의, 영화 조감독... 출신의, LA대지진 경험자, 인데 역사 스토리텔러... 로 활동하는!
@XX-uy3cf3 ай бұрын
엿을 치대어 만드는게 아니라 벽에 말뚝 하나를 박아 놓고 거기에 타래를 계속 늘려가면서 흰색이 만들어 질때까지 늘이는겁니다.
@jtg33257 ай бұрын
재밌어요!!
@garoaplanta71907 ай бұрын
과거시험 이야기 들으러 왔다가 하멜표류기로 마무리 되는 삼천포라니... ㅠㅜ
@jksmancave48787 ай бұрын
90년대 대학시절 친구랑 겨울에 사극 보다가 과거시험 보러 한양가던 조선시대 선비들도 몇백 km를 짚신 신고 호랑이 피하고 산적한테 쫒기면서 산건너 물건너 다니셨는데 지금 운동화에 잘 포장된 길이면 우리도 할수 있지 않을까 해서 충동적으로 비오는 겨울밤 서울-춘천 도전했다가 피X 싸고 군대가서 행군훈련때 날아다닌 기억이...
@MrKimje7 ай бұрын
허허~ 과거시험길로 시작해 하멜 표류기로 끝나네,ㅋㅋㅋ 암튼 재미있네요. 근데, 조선에서 나가사끼 가는 배는 어찌 만들었을까요? 규모가 꽤 컷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