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기록에 보이는 신라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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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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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산더
@카이산더 3 күн бұрын
훌륭한 지적이시네요, 사실 중국기록이나 우리나라 기록은 이해당사자여서 국익이라는 핑계로 왜곡이나 과장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높지만 이슬람 문화권은 동양하고 전혀~이해관계과 없어서 사실과 가장 근접한 기록일 가능성이 높죠.
@심재성-m1d
@심재성-m1d Күн бұрын
너무 좋은 자료 소개해 주셨슴을 감사드립니다. 나의 본관인 청송심씨는 1200년경에 홍자 부자 어른께서 지금의 경북 청송을 관향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이전의 역사는 야사로만 전해오고 있는데, 안동의 풍산을 본향으로 하고 있는 풍산심씨 시조어른이 중원의 절강성에서 건너오셨음을 분명히 하고 있고, 여기에 문사님이 제공해주신 자료를 얹혀놓고보면 청송심씨의 창성시기 또한 상당히 위로 끌어올릴수 있는 단초가 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치우-c4k
@치우-c4k Күн бұрын
명나라 주원장이 대륙 동쪽 고려땅을 차지할때 고려에게 통보했다는 말도 있음
@goindol-eu1yo
@goindol-eu1yo 2 күн бұрын
한반도 신라는 5세기이후에 정착.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마한(황하이북, 이남, 산동지역)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중 졸본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졸본,홀본,일본)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 왕들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다시 아래 사하(사비성)와 백마강으로 진입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으며, 폭이넓고, 수심이 깊은 서안 인근을 대해라 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황하 지류에 지금도 백마강, 황산(벌), 웅진성, 사하(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하북성 서화현), 그 오른쪽 개경(북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김성태-i6b6j
@김성태-i6b6j 2 күн бұрын
정말로 올바른 역사를 제대로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예언자-d5t
@예언자-d5t 2 күн бұрын
다 좋은데 한가지가 빠졌군요! 신라가 양자강 유역에서 한반도로 왔을때 왜 큰 강이 있고 평지가 많은, 비교적 살기좋은 서쪽 지역이 아닌 두메산골 경주 쪽으로 왔을까요! 그것은 살기 좋은 곳에는 이미 다른 세력들이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살기 좋은 터는 서쪽 지역 일 것인데, 충청 이북쪽은 말씀하신대로 고구려나 동예 옥저 같은 세력이 자리 했을 것이고 남쪽은 옹관묘 세력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산강 유역에 옹관묘의 장고형 무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아실 것입니다. 이들이 왜 집단이겠지요! 우리도 민족 사관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ray73kim
@ray73kim 2 күн бұрын
한반도 남부에는 조문국이 있었어요. 기원전 2세기부터 대략 5백년을 지속한 국가로 추정됩니다. 삼국사기에 간단한 내용만이 존재해서 구체적인건 모르죠. 다만,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이고 여인왕국이었다는 겁니다. 가야로 추정되는 한반도 남부, 경주, 의성, 안동까지 모두 스키타이 문물이 발견되었고 같은 문화권으로 추정되는데, 우리 역사는 어거지로 신라와 가야로 분리해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에 제사를 관장한 여왕이 존재했고, 여왕을 보호하는 여전사들이 존재했는데 그 세력을 아마존이라고 불렸던거 같습니다. 예측이지만, 이 아마존 세력이 초원의 길을 따라 한반도로 유입되어 나라를 세운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라의 석탈해가 조문국 왕자였지만, 여왕만이 왕위를 계승하는 나라라서 자신만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떠나서 신라에 정착한게 아닐까 예측합니다. 이걸 계기로 신라가 한반도 남부로 유입되어 조문국과 대립하다가 합병한게 아닐까 싶네요. 자료가 워낙 없어서 소설로 여길수도 있지만, 정황상 끼워 맞추다보면 이런 시나리오가 나옵니다. 조문국이 왜 여인왕국이냐 하면 안동에서 여인왕국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고, 조문국 기록에 여왕이 언급되는 걸로 압니다. 그리고, 경주 왕릉에 가장 큰 무덤에 묻힌 사람이 여자라고 합니다. 이후에 신라에만 유일하게 여왕이 등장합니다.
@ytn00b3
@ytn00b3 2 күн бұрын
오늘날의 ‘한족(漢族)’과, 원·명대의 ‘한인(漢人)’의 차이부터 살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원장은 분명 원·명대의 ‘한인’ 출신이 맞다. 문제는 이 ‘한인’이 오늘날 중국인들이 말하는 ‘한족’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족’이라는 말은 반청 혁명인사인 양계초(梁啓超, 1873~1929)가 청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만주’족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만들어낸 말일 뿐이다. 반면 원나라 말기 주원장이 살던 시대의 ‘한인’은 원말 도종의(陶宗儀)가 에서 말한 ‘한인8종(漢人八種)’의 한인을 이르는 말이다. 도종의는 “한인은 여덟 가지(漢人八種)인데, 거란(契丹)·고려(高麗)·조션(女真)·주인타이(竹因歹)·솔고타이(術裏闊歹, 조선씨)·조콘(竹溫)·주이타이(竹亦歹, 대대로씨)·발해(渤海) 등으로, 발해는 조션(女真)과 같다”면서 이들을 한데 모아 ‘한인8종’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주원장은 바로 이 ‘한인8종’의 한 부류인 ‘조션인’, 즉 여진족(女真族) 출신이다. 한편 이 시대 가장 미천한 4등급 종족이었던 양자강 이남의 ‘지나인’은 ‘거란의 남쪽 백성’이라는 뜻의 ‘낭기아드’, 한어로는 ‘남인(南人)’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은 당시의 호칭에 따르면 고려(高麗)·조션(女真)인들이야말로 진정한 ‘한인’이고, 정작 오늘날 지나인들이 말하는 ‘한족’은 ‘남인’들로, 월남-라오스-타이계와 같은 종족인 ‘다수민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제 주원장의 종족적 기원을 따져보자. 에 따르면 주원장의 선조 가문(先世家)은 패(沛)에 있었으나, 구용(句容)을 거쳐 사주(泗州)로 옮겼다. 주원장의 아버지 세진(世珍)은 다시 호주(濠州)의 종리(鐘離)로 이사했고, 이곳에서 주원장이 태어났다. 오늘날의 안휘(安徽)성 종리(鐘離)다. 다만 그가 어느 종족인지에 관해서는 적지 않았다.
@thequantumtrader_9975
@thequantumtrader_9975 2 күн бұрын
아직 구독자 수가 적긴 하지만 의미 있는 활동을 하시는군요. 영상 자주 안올려도 괜찮으니 포기하지는 말아 주세요.
@패미박멸
@패미박멸 Күн бұрын
절강 말고도 오늘날 대만 맞은 편 천주 일대에 “신라촌” “신라구” “신라산”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죠. 중국 동부 해안선 지역을 따라 확인되는 것만 신라촌이 7개 정도나 지금도 현존합니다.
@모자이크OUT
@모자이크OUT 7 сағат бұрын
바다 테두리 동쪽으오 전부 동이 신라,왕건 고려땅
@모자이크OUT
@모자이크OUT 7 сағат бұрын
인물돋보기 채널에, 거기도 신라와 왕건 고려 지도가 어설프게나마 페르시아인에 의해 위치가 그려져 있더군요..
@user-9jrtc3fi80prv
@user-9jrtc3fi80prv 3 күн бұрын
바실라에서 6일간 와구와구를 지나면 앗실라가 나온다는데 앗실라가 서라벌 신라 같습니다. 아랍어로 동쪽 앗솨르크 북쪽 앗솨마르 인데 동북쪽을 앗실라로 말한듯 합니다. 와구와구는 왜국 이겠죠.
@구글구글-e6i
@구글구글-e6i Күн бұрын
차이나는. 신라을 부르는 말이다. 고려영토는. 홍콩싱가폴 발해만. 산서성 중국 절반이 고려 신라 땅이다. 백제을. 당나라두고 싸워 신라가 이기고. 1000년역사 지킨거다
@Thebattleofsalsu
@Thebattleofsalsu Күн бұрын
국뽕 판타지 소설 봄? ㄷㄷ
@정재문-l2e
@정재문-l2e Күн бұрын
@@Thebattleofsalsu 사회부적응자냐? 한국사 추켜세우면 누구 뒤짐?
@buhaegong6928
@buhaegong6928 17 сағат бұрын
​@@Thebattleofsalsu공부좀 해라
@usseusseussewa
@usseusseussewa 14 сағат бұрын
​@@정재문-l2e 뽕2
@usseusseussewa
@usseusseussewa 14 сағат бұрын
​@buhaegong6928 뽕들 좀 그만 빼
@동이강-t5k
@동이강-t5k 11 сағат бұрын
고리는(고구려=맥고리+몽고리=몽골)백제+신라 이들은 뿌리 근본이 같은 한민족!! 이라했다! 즉! 우리의 직계 선조다~ (예맥.숙신.부여.선비.말갈.여진)말과.풍습.의복.예절.그 근본과 조상이 같은! 우리민족! 우리역사! 직계! 선조가! 이룬 거대한 동방 문명의 고대사!!진실!!☆☆
@정재문-l2e
@정재문-l2e 3 күн бұрын
각종 문헌 자료들을 보여주는데도 교차검증 1도 없이 무작정 환빠라고 우기니 역사가 복원될 리가 있나. 절강성 지역이 신라 영역이 맞다면 그 절강성 지역은 언제 상실하였을까요?
@정도령-h8z
@정도령-h8z Күн бұрын
지나의 동쪽에 있어 동이라 표현한 것은 옳은 표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지나 전체에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 있는데, 굳이 동쪽이란 사족을 붙일 이유는 없습니다. 이(夷)라는 말 자체가 중원의 서토인들이 부른 것이니까요. 그들은 그냥 우리 역사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buhaegong6928
@buhaegong6928 17 сағат бұрын
이란 지도에 신라 2개 있음. 중국이랑 우리나라
@화기만당-b9u
@화기만당-b9u 7 сағат бұрын
신라와 바신라
@내공냠냠-p3d
@내공냠냠-p3d 6 сағат бұрын
신라 청해진-고려 벽란도로 이어지는 해양제국의 전통이 조선 때 단절된 것이 안타까움.
@user-9jrtc3fi80prv
@user-9jrtc3fi80prv 3 күн бұрын
고려가요 청산별곡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는 [아랍어 얄라] 어서 빨리 hurry up lets go에서 왔다고 봅니다. 청산별곡의 내용도 복잡한 곳을 떠나 자연인처럼 쉬고 싶다인데 빨리 가자는게 문맥상 맞죠. 얄라의 변주 또한 아리랑에 아리 처럼 아리아리 아리랑 아라리요 와 같습니다. 아랍어 [얄라]가 맞다고 봅니다. 영어랩처럼 고려에 들어왔겠죠. 무역에서 흥정하면서요.
@아토믹-q7h
@아토믹-q7h 2 күн бұрын
무역하러온 아랍인이 코란암송 하는 모습을 보고 차용 했겠죠..
@레이즈업유어라이프
@레이즈업유어라이프 4 сағат бұрын
고대역사 다시 조사해야해. 참 중국이 과장된 역사가 많아서 ---
@keyspace209
@keyspace209 Күн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user-9jrtc3fi80prv
@user-9jrtc3fi80prv 3 күн бұрын
쿠시나메에 나오는 바실라는 대륙의 신라방 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랍어는 반대로 쓰는 특징입니다. 그래서 신라방-방신라-바실라 라고 기록된거라고 생각합니다. 충무로를 st.choongmu 이러듯이요. 나오는 타이후르왕 파라랑 공주 가람 왕자는 한국식 이름의 음차같습니다. 태훈. 파라랑. 가람은 강의 옛말. 이렇게요. 방 은 신라에서 입방설도라고 하여 조선8도 처럼 행정구역 단위라고 생각합니다. 신기한건 나중에 타이후르 왕과 가람 왕자가 중원의 수도까지 가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건데 나당전쟁에서 김유신을 빼고 말이 안됩니다. 신라방 만의 개별적인 역사가 아닌가 합니다.
@패미박멸
@패미박멸 3 күн бұрын
무슨 자료에 근거해서 그런 얘기를 하시나요. 신라방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이 입당구법순례행기인데 신라의 공식적인 행정구역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데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까합니다. 페르시아어에서 “바” 는 우리말로 “더 좋은” “더 아름다운” 이라는 뜻입니다. 신라방과 아무 관련없는 페르시아어이고 시대에 따라 쓰이는 어법이 달라질 수 있으나 근본적 의미는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하아푸움
@하아푸움 2 күн бұрын
신라의 라가 비단라인데 경상도지역에서 비단이 나긴하냐??
@5959-e1y
@5959-e1y Күн бұрын
@@패미박멸 신라의 주 생산물이 쌀, 물소, 물소뿔로 만드는 각궁, 낙타, 원숭이임. 한반도에 물소, 원숭이 낙타가 있나요? 경상도에서 농사지어서 당나라 수십만 원군을 3년 먹여살릴수 있나요? ps. 수나라 당나라는 스스로 조선의 후예라 칭했습니다. 현재 지나족과는 다릅니다.
@bamas26
@bamas26 Күн бұрын
ㅋㅋㅋ
@bamas26
@bamas26 Күн бұрын
병자들이 많네요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күн бұрын
낙수와 낙양이 하남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중중초본) 중부지역의 상실 ( 원의 과거사가 중부에 도착 ) 회수의 도착 (중중초본) 황하가 大河에 도착 (중초본) 장강이 大江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 남방지역의 상실 (원사와 명초기 20년사가 고려의 남방에 도착) 출발지의 삭제는 중중초본
@togetherbrown4969
@togetherbrown4969 2 күн бұрын
학교에서 일본이 만들어준 역사를 배우고 있으니 나 참 이제까지 속아온거 개빡침
@BkYu-qg7wb
@BkYu-qg7wb 20 сағат бұрын
잘못 알고 계세요.. 일본이 만들어준 역사를 배우고 있었다면 상식적으로,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교과서에 해놨을까요? 현재 한국 역사는 북한, 중국발 거짓 역사를 주입당한지 오래입니다.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күн бұрын
요서,요주,태원,大同이 산서에 도착. 요서와 요동이, 산서와 산동에 도착하였음에도 (대명여지도 초중본,중초본) 출발지는 중초본에서 삭제. 산해위 주변으로 한번더 이동.
@제이-f9z
@제이-f9z 3 күн бұрын
역시 문사님!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Күн бұрын
최곱니다!!! 역사의 진실을 탐구하는 문사님!!! ❤ 👍
@silvertuscani
@silvertuscani 9 сағат бұрын
추정도 탐구인가요?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8 сағат бұрын
@silvertuscani 추정은 강당사학, 여기는 기록에 의한 여러 사료의 교차검증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күн бұрын
등주,래주,빈주,제주가 산동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күн бұрын
북평(大都)의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중초본) 북방지역의 상실. 上都의 도착 (초중본) (흉노,거란,금,여진,원나라의 과거사가 북방에 도착하는 토대가 됨)
@金尺compas헌원
@金尺compas헌원 2 күн бұрын
통일신라는 당나라 멸망 시키면서 중원을 통일 하고 한반도를 수도로 불상만 봐도 갓을 쓴 불상이 우리나라에만 있음. 갓을 쓰지 않은 불상은 어린 부처이고 득도를 하면 한반도에서 갓을 쓰면서 신이 사는 나라가 된거임.
@김동석-w3y3e
@김동석-w3y3e Күн бұрын
가 아니라 로 발음해야 한다.
@usseusseussewa
@usseusseussewa 14 сағат бұрын
신라 고려관련 지명들이 여기 신라인이 모여 살았었음 그래서 신라*이라고 부름 이라고 기록들이 나오는데 뭔 신라땅이라는 소리를 아직도 하는 건지
@Johann-e5o
@Johann-e5o 20 сағат бұрын
장보고의 왕성한 해상무역 활동으로 생긴 많은 상단들의 거점을 오해해서 비롯된 기록? 실제 신라땅을 밟은 이들도 있지만! 🐫
@Madman_or_Greatman
@Madman_or_Greatman 2 күн бұрын
칸수는 깐수 아닌가요? 깐수의 우리 발음이 감숙이고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 күн бұрын
3개의 바다가 삭제됨. 皇都의 영지에 다달았음을 삭제. (대명여지도 초중본)
@병수권-i9h
@병수권-i9h 6 сағат бұрын
나는 신라라는 단어만 나와도 스트레스받음 예네들은 역사에 안낀데가없음
@usseusseussewa
@usseusseussewa 14 сағат бұрын
에휴 문사님 초기엔 상당히 그럴듯한 해석이 많아서 재밌었는데 요즘은 비약이 너무 심함
@silvertuscani
@silvertuscani 9 сағат бұрын
추정된다의 연속
@colt7057
@colt7057 4 сағат бұрын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있지 먼 훗날 중국인들이 열광하겄네 반도는 중국땅이었다
@suengalee
@suengalee 2 күн бұрын
책보고 유트브 영상 추천드려요 동영상 한두개만 보셔도 많은게이해가 가실거에요❤
@only2sea
@only2sea Күн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동네에 파리 바게트 있으니 우리 동네가 사실은 프랑스 수도였다는 논리의 유튜브 채널
@bamas26
@bamas26 Күн бұрын
테헤란로는 우리가 이란 속국이란 뜻?
@iankim7460
@iankim7460 16 сағат бұрын
페르시아(이란)은 아랍이 아님. 민족과 언어가 다름. 한족과 한국인이 다르듯이.... 대륙에는 백제와 신라가 지배하고 있었음. 주산군도는 백제의 해상 전초기지 임. 등소평이 동남아시아 화교들에게 본토 투자를 요구했을때, 화교(백제 & 신라의 후손들)들이 주산군도에 백제사 신사를 지어 달라 요구 했다함.
@silvertuscani
@silvertuscani 9 сағат бұрын
민족과 언어가 다름 --> 종족과 언어가 다름. 민족 =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의 집단, 한 배를 탄 사람들 (공동운명체). 민족이 다르면 언어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면 민족이 아님. 언어는 민족을 구분하는 제 1 순위 기준!
@sukjukim7103
@sukjukim7103 2 күн бұрын
고려서경이 지금의 요양시라는 복기대, 이덕일, 이매림 박사의 주장은 옳습니다. 그러나 고려서경이 장수왕평양성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게다가 낙랑군이 하북성 진황도시에 위치했다는 주장도 옳지 않습니다. 동북아고대사정립 2가 출판되었습니다.
@MiReukGungYe
@MiReukGungYe 2 күн бұрын
중국 그렇게 혐오하면서 대륙에 있어야만 강한나라였다는 프레임에 갇혀 우리가 대륙에 있었다고 거의 반쯤 정신 나가있는 애들 요즘 많네ㅋㅋㅋ 신라, 고려는 반도에 있었지만 당당하고 강한 나라였다. 역사 왜곡좀 그만해라.
@범희이-b1k
@범희이-b1k 2 күн бұрын
근데 사료같은거 보면 한반도+@ 인게 거의 확실함. 중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이상 유물발굴을 못해서 그렇지 ㅋㅋ. 송나라가 거란을 치기 위해서 고려에게 길을 비켜 달라고 하는데 지금 지도로는 해석이 불가능함.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음
@신광수-n7y
@신광수-n7y 2 күн бұрын
네네 가셔
@정재문-l2e
@정재문-l2e 2 күн бұрын
@@MiReukGungYe 누가 누구보고 왜곡을 한대? 사회부적응자도 아니고 뭐가그리 불만이 많냐?
@이수용-d5w
@이수용-d5w 2 күн бұрын
식민사관이 만들어 놓은 교과서 속에서만 역사를 배웠으니 이런 생각을 갖지요. 일제가 심어놓은 노예근성이 무섭긴 합니다.
@신상규-n3s
@신상규-n3s 2 күн бұрын
해석하기나름 길이아니라 힘​@@범희이-b1k
@고구려29대왕대조영
@고구려29대왕대조영 2 күн бұрын
백제가 점령한 중국영토 및 일부섬은 백제의 영토이나 백제가 멸망하니 불안전한 통일한 신라가 승계했다.😢
@이강철-f4x
@이강철-f4x 2 күн бұрын
그레서 왕건 고려시대 이성개 성리학 유교 조선 시대에 차이점 문화 다양성 상업 개방적인 고려 신라
고구려 거란 관계의 엄청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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