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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난 임봉재는 학창시절부터 미술에 두각을 드러냈다. 195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였으나 학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대전에서 교편을 잡고 대전공업학교, 대전고등학교, 충남고등학교, 충남여자고등학교 등을 거치며 정년까지 후학을 양성했다. 충남미술협회 활동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꾸준히 출품 및 입선하여 작가로서의 기량을 다져왔고, 충청남도 문화상(1973), 한국미술협회 창립20주년 기념전 금상(1982), 황희문화예술상 대상(2002) 등을 수상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작가로 그 입지를 공고히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는 대전시립미술관의 초대관장을 맡아 미술관의 건립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헌신하며 대전미술의 정체성 규명과 발전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힘썼다. 활동 초기의 수채 풍경화를 제외하면 임봉재의 작품은 대부분 인물 중심으로, 선묘가 두드러지는 평면적인 조형어법과 차분하고 무거운 색채가 화면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기반으로 삶과 예술에 대한 고뇌와 애착을 드러냈다.도 옥천에서 태어난 임봉재는 학창시절부터 미술에 두각을 드러냈다.
195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였으나 학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대전에서 교편을 잡고 대전공업학교, 대전고등학교, 충남고등학교, 충남여자고등학교 등을 거치며 정년까지 후학을 양성했다. 충남미술협회 활동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꾸준히 출품 및 입선하여 작가로서의 기량을 다져왔고, 충청남도 문화상(1973), 한국미술협회 창립20주년 기념전 금상(1982), 황희문화예술상 대상(2002) 등을 수상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작가로 그 입지를 공고히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는 대전시립미술관의 초대관장을 맡아 미술관의 건립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헌신하며 대전미술의 정체성 규명과 발전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힘썼다. 활동 초기의 수채 풍경화를 제외하면 임봉재의 작품은 대부분 인물 중심으로, 선묘가 두드러지는 평면적인 조형어법과 차분하고 무거운 색채가 화면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기반으로 삶과 예술에 대한 고뇌와 애착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