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거듭나고 구원받은 성도라고 주장하면서 삶의 변화(가치관)와 어느 열매의 증거나 증명이 없으면 거듭난것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 삶의 열매로 증명이 안되면 다시 자신이 확신하는 구원을 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이것은 가볍고 쉬운 의미로 변질된 잘못된 복음에 쩌든 현대교회에 반드시 되돌아보게 해야할 대대적인 개혁운동이 되어야하며 대대적 성찰이 되어야한다.
@김첨지-t6p6 жыл бұрын
구원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은 없다. 그저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랄프김-q6e3 жыл бұрын
정답
@bandybulitv10 ай бұрын
🎶❤🌾🥬 멋지십니다 오늘도 멋진 영상 즐겁게 잘 봤습니다.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 하루되세요 ~🎉
@ceramicspeaker4 жыл бұрын
사랑합니다. 형제자매님들 우리 모두 내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고 성령안에서 거듭나고 2021년엔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다른음악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ilyongkim39936 жыл бұрын
죤 파이퍼 목사님의 의로움을 입었다는 표현은 아주쉽게 이해할수있는 절묘한 표현입니다앞으로 하나님이 주신 의로움을 설명할때 부수적으로 설명해주면 흔히 그리스도인들이 가질수있는 교만(구원받았으니 죄를 져도 괜찮다는)을 책망할수있겠네요 제단뿔에 피를 바르고 초대교회시에 성도들에게 기름을 바르던 이유가 이해가됍니다목사님의 깊은 성찰에 감사함을 드립니다
@asfl17846 жыл бұрын
구원이 잃어질수있다면 참 힘들겠다 생각합니다. 늘 감사하는 생활이 빚쟁이에게 빚갚는 생활이 될것같고 남을 사랑하기보다는 자기구원을 이루는데 더 집중이될것같네요(죄에대해서 특히) 사람과 상대하다보면 올라오는 죄에 대해서 용서함으로 감사가 되는것이 아니라 와 큰일이다..이러다 구원 잃어지겟다하며 걱정만 하는건 아닌지..제가 받은 구원은 사랑인데..예수님께서 내게 해주신 용서가 나를 변화시키고 나도 비로서 예수님처럼 닮고 싶다 그렇게 살고싶다. 더더 알고싶다 기쁘시게 하고싶다..좀더 하나님뜻을위해 살고 말씀이 즐겁고 교제가 즐겁고 찬양이 즐겁고 늘 즐겁고 이러다 나도 좀 성숙해졌는지 이제는 고난을 받는것이 내게 좋은거구나 알고됐고..모든걸 드리고싶다 이런맘이 되네요
@랄프김-q6e3 жыл бұрын
오호라...좋은경험담 감사합니다. 사람마다 달라요..구원받았다 생각해도 성화과정도 없고 스스로 양심에 가책이 드는사람도 있어요. 스스로 알거든요. 이것이 위선인지 아닌지.. 그래도 이런사람은 양심이라도 작동하는것인데.. 양심이 화인맞은사람은 구원받지도 않았는데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기쁨에 차서 매일 선을 행하고 노력은 하는데 정작 세상의 모든것을 놓아보라고하면 왜 그렇게까지? 주님은 그런걸 원하시는게 아니다. 라면서 자신이 감당할수있는 선을 스스로 만들고 그 안에서만 선을 행하죠.. 이런 사람들은 애초에 거듭남이란것을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예요. 근데 이런사람들이 더 위험하고 더 많아요.. 그래서 구원받았다고 함부로 기뻐할것이 아니라..점검 확인해봐야해요.. 주님위해 길거리 거지로 지금당장 살수있는가? 앞으로 고통만받다가 결국 죽을수도 있는데 내가 그 길을 결정할 것인가? 이것을 왜 해봐야하면 사람은 스스로 엄청 위선적이라 자기 스스로 착각의 포장을 만들고 자기사랑 하나님을 만들어버리거든요.. 그틀에서 벗어나면 그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거예요.. 그런사람들이 지금 대부분 교회에서 집사활동하고 있어요.
@Simon-qs6tn6 жыл бұрын
그런데... 말로는 구원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삶의 끝까지 하나님을 만났다고 본인스스로 지칭하지만 전혀 변하지 않았다면, 그는 구원을 잃은 것이 아니고 애초에 구원받지 않았다는 진리까지 포함하게 됩니다. 너무나도 기쁘고 신실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반대로 무서운 진리의 말씀입니다
@최자유종학6 жыл бұрын
구원받은 사람도 각자가 삶의 방향이 같을수는 없는데 많이 탕감을 받은자는 많이 감사하고 적게 탕감을 받은자는 적게 감사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행위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 본질과 말씀이 변한다고 판단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젖을먹는 사람도 있을것이니.
@곽현욱-c7t5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그러나 아직 모릅니다. 하나님의 때에 바뀌지 않을 것 같던 그 교만한 자아가 무너질지도요.
@김첨지-t6p6 жыл бұрын
행위가 부족하여 지옥에 가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행위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증명된 거짓 믿음으로 인해 지옥에 가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랄프김-q6e3 жыл бұрын
ㅎㅎ 결국 믿음은 우리를 속이나 행위는 우리를 속이지 않네요.
@현실공감5 жыл бұрын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을 수 있는것은 분명 맞습니다. 성경"전체"을 통해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절대 포기 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자녀가 하나님께로 가지 않는 다면 아버지라도 어쩔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탕자의 비유를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아버지 집안에 거할수 없습니다. 또 누가복음 16장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셨습니다. 음부에서 불꽃가운데 고통받는 부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는 구제도 하며 아브라함을 보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부자와 나사로는 전혀 다른곳에 갔습니다. 그 이유는 살았을때 부자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회개하지 않았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불못에 참예한다고 분명히 적혀있습니다. 다시말해 성경이야기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구약과 신약 모두가 구원자시며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의 구원의 기준은 구약이 다르고 신약이 다른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지 반쪽 구원자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모세의 글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서 하는 이야기는 당신을 가리킨것이라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죄를 지으면 제사에서 수시로 양을 잡아 대속한것 처럼 우리는 예수를 믿지만 수시로 죄를 지으면 회개를 하고 끝까지 새마포를 빨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요! 끝까지 구원을 이룬 사람입니다.
@jun-sungpark62625 жыл бұрын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하는 주권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원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계십니다. 이창환님께서 쓰신 댓글의 앞 부분만 봐도 오류가 있습니다. "자녀가 하나님께로 가지 않는다면"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 자녀(양자)의 권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으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자녀가 하나님께 (구원 여부와 관련해서) 가고 안 가고를 논할 수 있는 게 아니구요. 로마서 8장을 다시 꼼꼼히 읽어보세요. 그리고 읽는 김에 후반부 38-39절도 다시 읽어보세요. 어떤 경우에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있다고 바울이 가르치던가요? 그리고 비유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비유는 일반적으로 특정 요소 또는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지, 모든 진리를 온전히 대변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설사 이창환님의 비유를 이 주제에 적용시켜보더라도 "구원을 잃을 수 있다"라는 결론이 나오나요? 비유에서는 탕자가 아버지께로 결국 돌아가지 않았나요? "하지만 안 갔을 수도 있잖아"라고 말하시겠지만, 비유에서는 결국 갔습니다. 따라서 이창환님의 이야기는 입증 불가능한 가정 및 가설일 뿐이죠.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이라는 가정을 한다고 해서 그 가정이 사실이 되나요? 신약성경 곳곳에 보면 참된 구원은 영원하다고 가르칩니다. 영상에서 존 파이퍼 목사님이 인용하신 구절들을 제대로 들어보기나 하셨나요? 들어보셨다면, 그런 구절들은 어떻게 반박하실 건가요? 이것은 단지 "구원에서 탈락 가능한가?"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이면에는 "구원 받고 안 받고는 궁극적으로 누가 결정하는가?"의 질문과도 연결됩니다. 구원의 결정권이 최종적으로 사람에게 있다면 사람의 어떠한 행동이나 선택에 따라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구원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면 (시 3:8) 그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신자를 구원의 길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붙드십니다. 만약 누군가가 믿음이 좋아보였는데 나중에 배교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았다가 탈락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진정한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애초에 구원받은 적이 없었던 거죠. 근거 구절은 존 파이퍼 목사님께서도 언급하신 요한일서 2:19입니다.
@현실공감5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누가복음 16장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자는 왜 음부로 갔는지요? 또 구약 민수기서에서 끊임없이 백성중에서 끊쳐진다는 말들이 나옵니다(9:13,15:30,19:13,19:20)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도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 백성에서 끊쳐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구약 신약 모두 구원의 기준으로 봐야 합니다. 단순히 사람이 만든 교리를 보고 쉽게 판단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구원은 칼빈이 기준이 아닙니다. 오로지 구약+신약인 성경 전체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66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을 관점으로 정독을 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신약"요한계시록 3:5절에는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생명책에 있는 이름이 지워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 출애굽기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안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와 같이 구약+신약 통틀어 보시면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쳐질수 있다는 것 곧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도 직접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여기서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확실히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 잘믿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불법 23절을 행하는자! 곧 하나님 입장에서 봤을때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자이며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하나님의 법인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 죄이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한 사람도 결국 하나님 말씀을 떠난 사람은 끝내 회개하지 않는 이상 구원받지못하다는 것입니다. 도둑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더라도 도둑질한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 주지 않는다면 그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자가 아닌것처럼 형식적인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교리에는 적합하겠지만 하나님앞에는 핑계되지 못할것입니다. 저도 끝까지 죄와 싸워 승리해야 천국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요한계시록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때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린도 전서 9:27 내가 내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jun-sungpark62625 жыл бұрын
@@현실공감 저는 궁금한 게... 이창환님 같은 분들은 왜 본인의 견해는 철저히 성경적이고 타인의 견해는 사람의 교리라고 말하면서 본인의 주장을 펼치는 건가요? 결국 "칼빈주의"를 언급하시면서 인간 "칼빈"을 따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치면 이창환님은 "아르미니우스"의 교리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시나요? 이 논쟁ㅈ은 "칼빈주의 vs 알미니안주의"의 구도로 봐야지, "칼빈주의 (타인) vs 성경중심 (본인)"의 구도로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자기 중심적인 표현입니다. 양측 진영 모두 각자가 더 성경적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어느 쪽이 왜 더 성경적인지를 논해야지, 그것을 논하는 과정에서 본인은 성경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타인은 사람을 추종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건 곤란하죠. 바람직한 토론의 자세가 아닙니다. 속으로는 그렇게 확신할지라도, 겉으로 그것을 표출하면 더 이상 의미있는 대화가 진행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창환님 같은 분들과 대화하는 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댓글란을 보시면 비슷한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런 분들 중 대부분은 제가 제시하는 성경 본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지 않더군요. 이런 패턴입니다: 1)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구절을 인용 2) 제가 그 성경구절에 대한 해석을 반박하고 추가적인 성경본문들을 역으로 제시함으로써 구원에서 탈락할 수 없다고 말함 3) 제가 제시한 근거들은 무시하고,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구절들을 쏟아내면서 대답해보라고 함 어떤 패턴인지 이해되시나요? 예전에는 이렇게 대화가 진행되더라도 그냥 양보하고 대화를 계속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습니다. 저는 이창환님의 탕자의 비유 해석과 논리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창환님의 댓글 내용을 무시하고 제 얘기만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럼 제 반박에 대한 재반박을 해주셔야죠. 두 가지만 질문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이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창환님은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그리고 요한일서 2장 19절이 "구원받은 줄 알았는데 믿음을 버리고 교회를 떠났다면 실은 애초에 구원을 받은 적이 없었음이 입증된 것이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이해되는데, 그 해석에 동의가 안 되시나요? 만약 동의가 된다면 이창환님이 종합선물 세트로 저한테 뿌린 구절들 중 대부분(예: 마태복음 7장)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jun-sungpark62625 жыл бұрын
@@현실공감 댓글을 작성한 후에 삭제하신 것 같은데, 저한테는 댓글 내용이 이메일로도 전송이 되기 때문에 이메일로 내용은 확인했습니다. 성경을 더 공부를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현재 신학생이며,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성경은 계속 공부할 겁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보면 제가 오해했던 부분들은 교정을 할 겁니다. 예전에도 그런 경험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없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너무나도 명백하게 성경이 가르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편협한 사고방식이 아니라 근거 있는 확신입니다. 다만 삭제하신 댓글에서 "성경을 교리적 측면에서 보지마시고 통으로 구속사적, 구원의 관점으로 차근차근 통독해보시면 성령께서 알게해주실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교리"가 뭔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교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교리(doctrine)는 "가르침(teaching)"입니다. 바른 교리와 잘못된 교리가 있을 수 있지만, 교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교리적 측면(doctrinal aspect)에서 보지 마시고"라는 말 자체가 비성경적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6절에서 바울은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좋은 교훈"이 영어번역(NASB)를 보면 "sound doctrine(건강한 교리)"로 번역됩니다. ESV는 "good doctrine"이라고 번역하고, NIV는 "good teaching"이라고 번역합니다. 따라서 "교리적으로 성경을 보지 말라"라는 말 자체는 가르침을 배격하라는 뜻인데,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올바른 교리를 키고 가르라고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이 "doctrine"이라는 단어는 디모데전서 뿐만 아니라 디모데후서 및 디도서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교리를 멸시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리고 참고로, 저도 구속사적, 구원론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구약과 신약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창환님과 다르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해서도 견해가 다른 거구요. 저로서는 인간의 죄성이 너무나도 심각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구원의 시작과 끝이 되지 않으시면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만약 구원이 시작되었는데 중간에 취쇠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충돌하게 됩니다. 제가 성경을 통해 알고 믿고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약속을 파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이행하십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구원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다시는 구원받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구원파적인 생각이 따로 없구만..."이라고 비난하는 분들도 종종 있는데, 저는 구원 받았기 때문에 그냥 마음 편하게 이 세상에서 놀고 죄 짓다가 천국 가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정말 하나님께서 중생(거듭남)의 은혜를 허락하셨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해지도록 이끄는 성화의 은혜도 반드시 주신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자꾸 구약, 구약 하시니 구약성경 한 구절만 인용하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렘 32:4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성취된 "새 언약"을 가리킬 때 많이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를 잘 보시면 신약 성경에서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왜 구원에서 취소되지 않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단 구원하시면 신자들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경외하는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그 새 마음을 받은 백성들은 더이상 그분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만약 떠난다면, 방금 본 구절을 바탕으로 "아~ 그 사람은 하나님을 떠났으니까 애초에 하나님께서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신 적이 없었던 거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요? 요한일서 2:19과 동일한 개념입니다. 제가 신약성경만 가지고 이 교리를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랬을 때 이창환님이 말씀하시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암튼... 더는 대화하지 말자고 하셨으니 저도 이만 마치습니다.
@현실공감5 жыл бұрын
@@jun-sungpark6262 사랑하는 형제님 예수만 아는 바보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승리하십시오 샬롬
@이희석-h4b4 жыл бұрын
누가복음 8장 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15새삶6 жыл бұрын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가 있는것은 거듭난다는것에 의미를 둬야된다는 말씀 같군요.영생을 주시는것이 뒤바뀌지 않는다는것은 거듭난 사람만이 가능하다.어느분 말씀대로 더욱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user-sl5ke1iu4m4 жыл бұрын
저는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지만 가족들조차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것같아요 때론 가족들과 다투고나면 보기싫을만큼 미울때도 종종 있는데 아직 거듭나지 못한 교인인지 염려가 되요~
@seongilyeo9844 жыл бұрын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찾아가는 은행의 예금같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이루려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과 죄사함, 몸의 부활, 창조를 완전하게 아무런 의심없이 믿어야 합니다. 신뢰만이 순종을 낳고 순종이 믿음안에서 두려움과 의심을 없애줍니다. 성도가 선한일과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악한 생각과 행동을 하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마귀의 유혹에 차츰 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시려고 마귀의 미혹을 허락하십니다.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고 내 마음이 마귀같다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마귀의 유혹에서 건져달라고 예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베드로가 바다를 걷다가 믿음이 약해 물에 빠질때 주님께 구해달라고 소리칩니다. 구해달라고 소리를 치면 주님께서 즉시 손을 펼쳐서 구해주십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물에 빠져간다면 즉시 소리쳐야 합니다. 온전히 구원해 주시는 주님과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을 증명하면서 항상 마음과 행동을 체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성도라면 손을 잡아 주십니다. 강한 믿음안에서 몸의 부활이라는 소망을 굳건하게 붙잡고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은 나의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믿음안에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십니다. 구원이 의심된다면, 또는 내 행동이 구원받기에 뭔가 부족해 보인다면 좀 부족해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놓지 않아야 합니다. 평안하십시오.
@user-sl5ke1iu4m4 жыл бұрын
@@seongilyeo984 미워하는 마음은 마귀에게 속한것이니 회개가 필요한것같아요 진정으로회개하면 주님이 도와주시겠죠 그리고 온전이 신뢰하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겠어요~ 답변 감사드리고 평안하세요~~~
@user-pb7iw7xb6n4 жыл бұрын
성화과정을거치시는겁니다 넘어질수도있지만 하나님이 계속 붙드시고 다듬어가실겁니다 믿음 굳건히 지시키길! 예수님이 정말 구주라 알고 믿어지신다면 구원받으신겁니다!
@jun-sungpark62629 жыл бұрын
2015년 9월에 저에게 신앙과 교회에 대해 장편의 메세지를 보내주신 W. Rosie님, 메세지를 늦게 확인해서 죄송합니다. W. Rosie님의 계정/채널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떠서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데, 혹시 이 댓글을 보시면 다시 저에게 메세지를 보내주시거나 페이스북에서 "십자가 복음과 진리" 페이지를 검색하셔서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2015.10.13.)
@Iamgrounded3 жыл бұрын
존바이퍼목사님이 마지막에 말씀하신것이 히브리서3:14절을 언급하시면서 구원의 확신이 마지막까지 없으면 구원받은적이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는것이 맞을까요? 제가 이해한 내용은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지만 나의 믿음이 과연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인지를 고민하고 맞다면 인간은 죄를 안 지을수 없는 존재이니 일평생을 회개와 더불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의 참여자에 걸맞는 성화된 삶을 살아가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임예찬-d2z4 жыл бұрын
임금님과 백성이 그를 찾으면 그가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님과 백성이 그를 버리면 주님께서도 임금님과 백성을 버리실 것입니다.-역대지하 15:2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브리서 10:2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ㅡ히브리서 6:7-8
@ioas03165 жыл бұрын
이사야 12:2 (KRV)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마가복음 16:16 (KRV)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갈라디아서 5:25 (KRV)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고린도후서 1:22 (KRV)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린도전서 2:16 (KRV)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빌립보서 2:5 (KRV)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요한복음 10:11 (KRV)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0:17 (KRV)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요한일서 3:16 (KRV)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빌립보서 2:2 (KRV)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베드로전서 4:1 (KRV)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구원이신 하나님, 성령은 마음에 받는 것이며 그 마음은 어떠한 마음입니까. 십자가의 죽음, 희생의 마음입니다. 여러분께 아버지의 평안과 행복, 은혜와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자신이 영생자, 희생이기 때문에 세상을 향하지 않고 하늘, 희생인 자신을 향하는 마음자체가 영원한자의 생명, 기쁨, 즐거움,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알고 믿으세요. 그래서 길이자 진리인 예수님, 생명, 성령, 자기자신을 가지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sunlight52095 жыл бұрын
요한일서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이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 구절에서 '형제'를 미워한다고 나와있는데 그럼 미워하는 사람도 그리고 미움을 당하는 사람도 분명히 영생이 있는데 영생이 있는 사람이 영생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살인하는 거고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소리인데 이건 어떻게 해석하세요?
@jun-sungpark62625 жыл бұрын
답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예리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 구절에서는 "그 형제"라는 말로 인해 미워하는 자(A)와 미움을 받는 자(B)가 모두 영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A와 B 모두 특정 교회에 속해 있는 상황에서 서로 "형제"라고 간주하고 있는데, 만약 A가 B를 미워한다면 (그리고 그 미워하는 마음으로부터 돌이키지 않는다면) A에게 "참된 형제라면 갖추어야 할 형제 사랑"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영생이 없는 "거짓 형제"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혹시 억지 해석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구절만 놓고 보면 sun light님처럼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3장 9-10절의 맥락을 함께 고려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9절을 보시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져서 마귀의 자녀가 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순명료하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 "죄를 짓지 않는 자" (죄를 전혀 안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요한일서에서는 '죄의 패턴을 따라 살지 않고 점점 거룩해지는 사는 자'로 이해해야겠죠?) = "범죄하지 못하는 자"]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의 삶의 패턴대로 살게 되지 "않으며", 더 나악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 받은 자가 불신자처럼 살다가 구원이 취소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10절을 보시면 9절의 내용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구분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마귀의 자녀" = "의를 행하지 않는 자" 또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 =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라고 설명합니다. 이 구절 하나만 놓고 봐도,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애초에 "마귀의 속한 자"인 것이지,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가 그 중생이 취소된 자"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10절에서도 15절과 마찬가지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표현이 나올 때, "여기서 '형제'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A와 B는 형제 관계이므로 둘 다 영생을 누렸던 자들이지. 그러므로 A도 구원을 받았던 것이지. 그런데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다고 나오네? 그러면 A는 구원받은 상태였다가 구원을 잃은 거겠군..."이라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A가 표면적으로는 교회의 일원이였기 때문에 B와 "형제 관계"로 간주되었던 기존의 인식을 기반으로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형제"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지, A에게도 영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함축하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동일한 저자가 기록한 요한복음 6장 39절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구원을 위해) 주신 자 중에서 단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A가 구원을 받았다면 적어도 구원받은 기간에는 예수님의 손 안에 있다가, 구원을 잃게 되면 예수님의 손에서 떠나 잃어버린 바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6장 39절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사실이 아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영생"이라는 단어를 주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eternal life"가 그 생명이 "영원히 지속된다"라는 시간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유지되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영원히 지속되긴 합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영생을 잃는다면, 그 잃었던 "영생"이라는 것이 어떻게 "영원한(eternal)"한 것일 수 있나요? 잠시 누렸다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애초에 "영원한" 생명은 아니겠죠. 즉 "영생을 잃을 수 있다"라는 말은 그 자체적으로 모순입니다. 이 댓글이 "영생을 잃을 수 있나?"라는 질문과 요한일서 3:15의 해석에 대한 납득되는 답변이 되었길 바랍니다.
@곽현욱-c7t5 жыл бұрын
구원받으면 죄를 짓지 않느냐는 말과 일맥상통할것 같네요. 그렇지 않죠. 바울은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때에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선명하여 진다고 하였습니다. 아직 우리속에 육신의 법이 자리잡고 있는거죠. 그러나 죽음과 사망이 우리를 매여 놓을 수 없는것입니다.
@seongilyeo9844 жыл бұрын
답변의 내용이 충분하지 않네요. 마태복음에 씨뿌리는 비유가 있어요. 길가, 돌밭, 가시밭, 좋은밭 이 중에 좋은밭만 열매를 맺고 구원에 이릅니다. 나머지 밭은 마귀의 시험, 고난, 탐욕으로 믿음을 잃게 됩니다. 돌밭과 가시밭은 말씀을 처음에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소금 비유도 있죠. 소금이 맛을 잃으면 버려지고 밟히죠. 맛을 잃는다는 표현에서 뭔가 느껴지죠? 사도바울도 버려질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기도하라고 합니다. 요한일서도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쓴 서신입니다. 왜 그런 극단의 표현들이 나올까요? 돌밭, 길가, 가시밭의 씨들이 있어서 마귀의 유혹에 실족하지 않게 하려고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도 있고, 달란트 비유도 있고, 많은 곳에 이런 비유들이 있습니다. 듣기 좋은 말씀만 취하지 마시고, 전체 말씀을 다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평안하십시오.
@정승현-s4m7 жыл бұрын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을수 있다는 사람은 거듭남이 무언지도 모르는것이요..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것이다..오직 하나님 만이 선이시며 ..선악과 물고 행위로 선악을 구분하여 심판자가 되는것이 죄임을 깨닫길..우리 모두가 살인자요 간음한자요 쓰레기거늘..감히 무엇으로 선악을 판단하여 거룩해지려 합니까?..우리가 거룩히 구별되는것은 모든것을 다이루신 예수그리스도안에 내가 .내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있다는 믿음으로 구별 되어진 것이지 그어떤 행위로도 거룩은 없음을 깨달으시길..제말에 토 달으실 분들은..먼제 하나님을 몸과맘을 다하여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고...원수가 당신뺨을 치면 왼쪽뺨도 내어주고..다 떠나서 정말 자신이 아무도 모르고 왼손도 모르는 선행을 한적이 있는 사람은 토를 다시길..혹시 그런 선행을 하였더라도 남이 알아주지않아 조금이라도 섭섭한 맘이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카운트당하지 않는 선행임을 아시길..
@jae19716 жыл бұрын
정승현 포도나무 가지를 재하실수 있다는 비유와 어린양의 생명책에서 이름을 재하실수 있는다는 말씀을 묵상하시길 빕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죄의 길로 아예 돌아서면 구원은 없습니다. 아니면 예초에 거듭난사람이 아니었던가 둘중에 하납니다
@odin11256 жыл бұрын
@ 정승현. 진짜 예수가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죄를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죄인이고 다 연약한게 맞지만 우리의 행위로 절대 의로워 질수 없다는 건 사실이지만, 예수를 믿음으로서 새 피조물이 되고 성령이 우리안에 살게 됩니다. 즉 우리 마음으로는 죄를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 만큼 죄를 미워합니다. 하지만 우리 육신이 연약해서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때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회개(진짜로 그 죄에서 떠나고 다시는 그죄를 반복하지 않는) 하고 다시일어나서 그 죄를 다시 짓지 않겠죠. 그리고 자신이 넘어진 그죄를 온힘을 다해 증오하겠죠. 그죄로 말미암아 자신이 목숨다해 사랑하는 예수님이 떠나가니까. 예수를 진짜 믿고 거듭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며 삽니다. 즉 성령의 열매가 반듯이 나타나고 예전과 같을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 회개를 해야 구원 받은 건 알고 계신지요? 회개란 내가 주인되어 내가 하고싶은 대로 산것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용서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안에 거하셔서 그분이 주인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지요. 이런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진정으로 거듭난 자(구원받은자)라고 할수 없지요.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것이 아니요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자라야 들어가리라라는 말씀은 무사하는지요? 진짜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는 다는 말인거 모릅니까? 즉 믿음을 하나님께 인정받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입니다. 진짜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그분을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의 성품을 닮기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죄를 극도로 증오합니다. 죄가 나와 하나님사이를 갈라놓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죄를 더이상 용납할수 없죠. 이게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입나다.
@0겸둥이6 жыл бұрын
@@odin1125 깨어잇는분을 찾기 쉽지 않은데. 여기서 한분 뵙네요^^
@gt-sx8pw5 жыл бұрын
@@odin1125 동의합니다
@jinjoopark81455 жыл бұрын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확신이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였을때 천국이 오기 때문입니다, 지옥같은 인생에도 천국처럼 보이는게 거듭난 생명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면 죽으면 천국 가구나 라는 신뢰적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셨을때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깝다고 하였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옥이기도 합니다
@랄프김-q6e3 жыл бұрын
저도 그렇고 사람들이 대부분 지금 평안한 상태라 내 마음이 그럴것이다 라면서 단언하는데요.. 사실 성령 못받은 사람이 태반일거예요. 왜냐면 베드로도 주님께 죽을수있다고 말은 했거든요. 하지만 주님은 믿지 않았어요. 그 속마음을 아시기에.. 우리도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다. 거듭나지도 않았는데 주님위해 죽을수있다.. 주님위해 내 재산 다 바칠수있다.. 주님위해 내가 좋아하는것 다 놓을수있다 하지만..주님은 "아직 아니야. 아직 멀었어. 아직 너의 중심이 그걸 원하지않아. 성령을 주고싶은데 아직 아니야"이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 될 수 있는것이 사람이 평안한 상태에서는 실제로 내 재산 헌납하고 거지처럼 살아도 주님과 함께면 괜찮아 생각하다가도 직접 그 상황이 오면 당황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힘들어서 견디지 못합니다. 왜냐면 할수있을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면 그 뿌리가 약해서 바로 넘어지죠.. 시간에 장사없습니다. 며칠 굶거나 고생하면 바로 나뒹굴죠.. 그래서 고난속에서 주님을 만난사람은 그 뿌리가 견고해서 실제 고난이 와도 넘어지지않고 주님의지하며 이겨냅니다. 우리의 육신의 정욕 즉 본성은 우리가 죽이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지금과같이 전쟁도없고 기근도없고 평안할때에 금식도 해보고 금욕도 해보고 내가 좋아하는것 다 절제해보고 하면서 내가 정말 주님의 사람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왜냐면 내 자신이 너무 위선적이라 처절하게 죽어야할 쓰레기라 나 자신을 못믿는것입니다. 내가 믿으니 오케이...하면 스스로 속고있는 것입니다.
@yhkim57806 жыл бұрын
사실 어찌보면 구원을 잃치 않는다보다 구원을 잃을수 있다는 논리가 더 설명하기 힘들것 같습니다 잃을수 없다는 주님께서 강권적으로 허하신 구원이기에 견인과 함께 영원토록 유지해 주신다는건데 잃을수도 있다는 논리적 설명이 어려운게 어떠한 경우에 잃을수 있고 또 어떡해 해야 다시 얻을수 있는지 평생 사는동안 이걸 반복할수도 있다는것인지 잃을수 있다가 더 모호하고 이해하기가 더 어렵네요?
@0겸둥이6 жыл бұрын
성경을 잘 보시면 쉽게 아시게 될 겁니다. 한번 구원이 영원함을 절대적으로 보장 해 준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요
@곽현욱-c7t5 жыл бұрын
@@0겸둥이 불쌍합니다. 한번 구원이 영원하지 않다니 말입니다. 십자가의 구원은 완성됐는데, 아직도 님은 구원받기 위하여 애쓰십니까?
@east1rock4 жыл бұрын
@@곽현욱-c7t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을 놓고 우리가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하는 말 자체가 교만입니다 구원은 경주에 달리기와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에서 자 주 구원에 대해 경주의 달리기 와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seongilyeo9844 жыл бұрын
마태복음에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잘 읽어 보세요. 그리고, 씨뿌리는 비유도 잘 읽어 보세요. 교회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있어요. 알곡은 구원되는데 가라지는 불태워 버립니다. 신약성경에서 줄곳 경고하잖아요. 모두 알곡과 가라지에게 경고하는 것인데, 주로 가라지에 해당되는 말이지요. 논리가 어려운것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성도는 모두 알곡이라고 생각하고 설교를 하니,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을 잃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마귀가 그냥 나둘까요? 가만두지 않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 보세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요즘 말로하면 교회다니는 성도에요. 세월이 지나니 어찌되나요? 알곡과 가라지로 나뉩니다. 마귀의 작품입니다.
@yhkim57804 жыл бұрын
@@east1rock 아~ 님 말씀에 다시금 겸손해져야함을 깨닭게 됩니다~~
@오세기-v7x3 жыл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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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새삶6 жыл бұрын
바울사도가 두려워 했던것은 거듭난자의 구원에대한 두려움이 아닌 그후 삶에대한 두려움 이었던걸로 해석해야 겠군요.
@엘로이-j3s4 жыл бұрын
맞는 말입니다. 구원을 유지하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함입니다.
@jermy58493 жыл бұрын
구약 사울왕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으로 택하셨지만 나중에 그릇되어서 버림받고 패망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하나님께 죄를 짓고 회개를 안하며 계속 그렇게 하면은 나중에 심판과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도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인가요
@ceramicspeaker4 жыл бұрын
그 당시 성경시대에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엄청난 핍박을 당할때 였어요. 처형당하고 매맞고.. 감옥에 잡혀가고.. 말그대로 생명을 걸었죠..생명을 걸수 있을정도로 진심으로 믿었기때문에 구원을 받은것입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죽고자하는 자는 살것입니다..
@ceramicspeaker4 жыл бұрын
성령이 죄를 깨닫게 해주시고 그 죄와의 싸움에서 이겨나가고 예수님만이 진리인것을 알게하고 주님을 위해 모든것을 버릴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그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Mingcream4 жыл бұрын
아느흐느아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하나님...
@자유통일-r5k6 жыл бұрын
하나님께로부터 거듭태어난자는 ㅡ하나님의 혈통을 보존케하시고 영생을 위해서 지키신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ㅡ하나님께서 부르셨고 세우신것을 알았는데 잠시사탄의 겁박에 포기하려고 했습니다ㅡ 그런데ㅡ오늘 존파이퍼 목사님 의 설교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께서 주신 절대적구원의 언약에 저를 그리스도의 뜻에 함께 참여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끝까지 보호하고 자유케하여 영생하게 하시려고 새로운생명을 창조하고 온전케하시려고 하나님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동역자로 굳건한 인내로 성령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믿음으로 계획하신 큰뜻 하나님나라 창조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온전케됨을 믿습니다ㅡ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의 언약이 성취되도록 ㅡ다시 일어서겠습니다ㅡ 하나님 감사 합니다ㅡ
@최자유종학6 жыл бұрын
성령님은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십니다 ㅡ요 1:12 예수님을 영접하는자 그 이름을 믿는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ㅡ 그리고 다 이루었다의 예수님께서는 성전휘장을 찢어버리시고 부활후에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ㅡ요20:17 . .나의 아버지ᆞ곧너희 아버지요 또 나의하나님 곧 너히 하나님께로 올라간다ㅡ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으로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인간의 죄값으로 내어주시고 사람을 그분의 피값으로 사셔서ㅡ행20:28ㅡ자녀를 삼아 주셨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사람이 한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만 믿고 영접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것을 사람의 그 어떠한 것에 의하여 변한다고 말하는 그 사람의 믿음이 참된 자녀의 모습이 아닌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영원구원을 의심하는것이지요
@odin11256 жыл бұрын
@ 최 자유종학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라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셨지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것이란 그분을 자기목숨보다 사람함으로 순종하는 걸 말하지요. 순종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죠. 그걸 믿음으로 구원 받죠. 근데 그걸 진짜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여때까지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되어서 자기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삶을 산것에 대해 회개하고 그후에 예수님이 주인된 삶을 삼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삽니다. )합니다. 그리고 순종이라는 열매가 나오고 삶속에서 반듯이 변화가 일어납니다.(내적으로 변했으니. 내적으로 죄로부터 해방됐으니. 더이상 죄의 종이 아니고 의의종이 됐으니. 그래서 죄를 미워하겠지요. 자신의 자아를 미워하겠지요. 자신의 육적인 욕망을 버리겠지요 하나님을 위해. ) 진짜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게 되겠지요. 우리의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변했으니. 진짜 아직도 세상과 구별되지 않은 채, 자신의 육적인 욕망을 이기지 못한 채, 세속적인 생각을 가진 채 하루하루 살고 있다면 구원을 받지 않은것이지요. 우리가 죄에 약하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예수님께서 친히 성령을 보내주셨지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게 됩니다. 우리가 죄에 넘어질수도 있어도, 그 넘어진 죄에서 일어나서 다시는 그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게되지요. 그리고 그 자신을 넘어지게 한 죄를 미워하게 되지요. 만약에 님이 죄악에 여전히 빠져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여전히 머물러있으면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래줬다고 믿고 있다면 님은 예수님께 구원 못받은 겁니다. 구원받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내면부터 바꿔주십니다. 자신의 생각과 사상 신념(세상으로부터 들어온)들 먼저 무너뜨립니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은 바뀌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갖고 있는 생각과 사상으로 우리의 생각과 사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사랑라는 것 처럼 우리도 그분을 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진짜 예수님 믿는 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세속적인 생각을 갖고 사상를 갖고계시다면 님의 믿음(구원)을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odin11256 жыл бұрын
마태복음 7장 21 절~27절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성경에서는 분명하 말합니다.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위해 집을 짓는 거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님이 미혹되어있지 않는다면 이 성경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줄 믿습나다. 성경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해석하지 말고요. 성격은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믿으면 되요. 고린도 전서 9장 27절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성경에서는 믿음에는 반듯이 행위가 따른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성욕, 일생의 자랑 등등)을 따르면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생명책에서 결국 이름이 지워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자라면 세상을 이기는 자 입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세상을 이기지 못하면 나중에도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결국 666짐승의 표를 받게 될것 입니다.
@odin11256 жыл бұрын
예수님을 영접하는자: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 모시는 자. 즉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계명을 지카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얘기입니다. 단순하 영접기도 한다고 세례받는다고 구원 받는 거아닙니다. 진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엄청 적습니다. 우리가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적습니다. 좁은길로 가지 않으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기의 죽음이 무서워서 부인한다면 결달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배드로는 예수님 3번이나 부인했다는 반박을 한다면 님은 진짜 하나님을 안 믿던지 성경을 한번도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성경말씀을 계시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도 성경지식이 많다고 자랑할수 없습니다. 아무리 성경지식이 많아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서 보여주지 않으신다면 지혜로 그 말씀을 계시해주시지 않으신다면 결코 성경말씀의 본질을 알수 없습니다. 님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ceramicspeaker4 жыл бұрын
벌써부터 코로나때문에 교회를 무신자들이 욕한다고 예수님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십니까? 십자가를 지고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구원을 잃어버리고 안잃어버리고 중요하지 않습니다..예수님을 위해 모든것을 버릴수 있는 믿음이 있고 성령안에서 거듭나고 지금 내안에 성령이 역사하시면 이미 구원받은것입니다.
@손혜경-o4w6 жыл бұрын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한 사람이 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잖아? 그렇다면 차라리 나쁜 짓을 하는 게 어때? 하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하란 말이야. 그게 자유란 것이니까." 이 거짓 교사들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면서 그들 자신은 죄와 멸망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만일 우리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이 세상의 악한 생활에서 빠져 나왔던 사람이 다시 과거의 죄된 생활로 되돌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상태는 전보다 훨씬 더 나빠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알았으면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거룩한 계명에 등을 돌릴 정도라면 차라리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던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입니다. ### (제 의견) 즉, 예수님을 믿으면서 죄를 짓는다는것은 거짓말이요. 죄와 싸우지 아니하고 천국에 갈수 있다는 것 또한 거짓말이요. 죽도록 헌신하며 순종하지 않고 천국에 갈수 있다는것도 거짓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것은 괴로운 일이 아닙니까? 라고 하시는 분이 있을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믿는것을 괴로움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것은 극진한 행복이요. 더 없는 기쁨이며 인생의 놀랍고 믿을수 없는 복입니다. 예수를 믿는자 안에 하나님 아버지가 들어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는자안에 계신 성령이 또한 신자를 지혜롭게 하사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하십니다. 또한 오직 그들만 기도한 모든것을 받을수 있습니다. 네. 기도한 모든것을 전부 받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그럼에도 한명의 자기의 제자를 위해 웁니다. 결코 방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큰 소원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또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잃어버린 영혼을 자신의 목숨보다 귀하게 여깁니다. 신자 여러분 진정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면 욕심도 필요도 주께 맡기고, 주님만으로 만족하며 하루 하루 당신의 제자를 위해 사십시오. 또 세계 열방을 위해 기도하기 멈추지 마십시오. 또한 하나님께 모든 근심을 맡기십시오. 당신의 깨끗한 소망을(욕심이 아닙니다.) 주께서 이루실것입니다.
@odin11256 жыл бұрын
님의 말에 동감합니다. 이게 제가 말하고 싶었던 바입니다. 근데 왜 사람들은 이얘기를 알아듣지 못할까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다도 많습니다. 사실상 이 교리는 구원파교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교리를 굳게 붙잡죠. 사람들은 진정한 회개(내가 주인된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이 주인된 삶사는것 즉 자신이 짓고 있는 죄들에서 완전히 떠나기로 결단하는 것)없이도 그냥 예수님 십자가 은혜만 믿으면 무조건적으로 구원 받는 다고 믿죠. 자신이 죄에 여전히 속해있음에도 자신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안다고 구원 받았다고 믿고 생각하고 살다가 결국 지옥가죠. 진짜 천국가는 사람 너무 드물어요. 좁은길로 가지 않으면 세상(나의 죄성, 육적인 욕망)을 이겨내지 않으면(성령님께서 내주하는지 안하는지 알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죠)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몇번이나 얘기하시나요? 진짜 예수안에 있는 자는 결단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말을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진짜 자신이 맘껏 죄짓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자신은 예수 믿기 때문에 결단코 정죄함이 없다고 믿는 거죠. 대다수가. 이게 바로 성경에 나오는 다른 복음이지요. 미혹이지요. 이사실을 왜 사람들이 모르는지.
@0겸둥이6 жыл бұрын
나중에 제 방송 구독자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깨어잇는 분 찾기가 어려운데 한분 더 뵙네요^^
@이재영2-p9e5 жыл бұрын
성경은 구원받은 자들이 구원을 잃는다고 무수히 많은구절에서 말합니다 따라서 성경이 아닌 소리는 사람들 입맛에 맞는 가짜복음으로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엘로이-j3s4 жыл бұрын
위 영상을 보지도 듣지도 않고 끝까지 상실론을 주장하시는군요. 구원받은 자들이 다시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성경구절이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지요? 구원상실론자들이 내놓은 증거 구절들을 보면 죄다 잘못된 해석으로부터 난 결과더군요. 오히려 구원은 영원하다는 구절이야말로 무수히 많습니다. 구원은 영원하며, 구원 받은 자들은 결코 변질되지 않으며, 중도에 타락하거나 배교하는 자들은 모양만 신자일 뿐,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라고 말 할 뿐입니다. 즉 애초에 구원 받은 자들이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님이 복음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게되면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가 과연 가짜복음일까요? 저주받을 교리일까요? 님이 말씀하신 갈라디아서 첫 부분의 말씀은 율법으로 구원 받는다 말하는 율법주의자들에게 말한 것이지~ 영원한 구원을 믿는 자들에게 말씀한게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지(엡 2:8-9), 영원한 구원이 과연 이를 부인합니까? 사람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성경구절을 인용해 저주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님의 이런 자세가 더욱 저주받을만 합니다.
@seongilyeo9844 жыл бұрын
구원예정론과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는 논리군요. 둘 다 맞습니다. 마태복음에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나옵니다. 그리고, 씨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1. 알곡과 좋은 밭입니다. 2. 가라지와 길가, 돌밭 등 안 좋은 곳에 뿌려진 씨입니다. 구원예정론은 알곡과 좋은 밭에 해당됩니다.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은 가라지와 안좋은 곳에 뿌려진 씨입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는 본인만이 압니다. 혹시, 가라지나 안좋은 곳에 뿌려진 씨라고 생각되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체크해서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구해달라고 간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잘못하다가 가라지로 살다가 죽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가는곳이 좋은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 의심되거나 내가 구원되는지 잘 모르겠으면, 즉시 회개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지금 상태가 가라지에 가깝다는 말이니까요. 평안하십시오.
@봄날에코스모스3 жыл бұрын
이게 정답이다.
@bkpascalkim8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형제님 뭐하나 여쭙겠습니다 이런 영상은 어떻게 만드는건가요? 내려받은 음성파일에 자막캡션 입혀서 이렇게 유튜브동영상으로 볼수있게 만드는거요. mp3파일을 mp4나 avi파일로 변환해서 자막파일 인코딩하려 하는데 잘안되네요.
@장순용-r2e6 жыл бұрын
갈라디아서를 쓴 바울은 이미 자신이 전도하여 거듭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거짓형제들이 몰래 가져온 다른 복음을 너무도 쉽게 따라가는 것을 경고하는 내용의 편지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육체로 마치려 하는 그들을 자유를 버리고 다시 율법의 종으로 저주 아래로 들어가려 한다고 심하게 질책한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성령으로 시작한 거듭난 성도가 어떻게 다시 율법으로 육체로 들어갈 수 있는가? 들어갈 수 있다고 갈라디아서 전체는 말하고 있다 거듭난 모든 사람들이 모두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의 달란트가 같지 않음과 같다 또한 믿음은 단계가 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 그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영이 임재하여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는 성령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도들도 어린 아이보다 못한 영아 수준에 머무른 사람이 있고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수준의 믿음이 있다 영아 수준의 믿음이라고 거짓 믿음이라 할 수 있는가? 장성한 분량의 믿음만 참 믿음이라 할 수 있는가? 이는 어린이는 사람이 아닌가? 성인만 사람인가?에 대한 대답을 통해 알 수 있다 믿음의 과정 구원의 과정이 각자 다르듯이 굴곡 없는 믿음이 있을 수도 있고 굴곡 있는 믿음도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책임을 하나님께 지을 수도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은혜의 구원을 침노하여 쟁탈하기를 원하신다
@Sonflower-f1x4 жыл бұрын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물이란 '물 세례'를 말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물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모든 사람들은 천국에 가지 못한 것인가요??
@jun-sungpark62624 жыл бұрын
좋은 질문입니다. 사실 다양한 신학자들이 다양한 견해를 주장해 왔고, 일부는 "물"을 "물 세례"로 해석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이해한다면 Diane님께서 질문하신 거서럼 물 세례가 구원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은 오히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기본적인 성경적 구원론에 위배됩니다. 대표적인 반례로 십자가 위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강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라고 말씀하셨는데, 그에게 물 세례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물"이란 "정결하게 함(cleansing)"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근거 없는 추정이 아니라 3장의 문맥과 성경 전체를 함께 고려할 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마 후에 10절에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책망하시는데,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불리는 것을 봤을 때 니고데모는 당시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율법 교사였습니다. (개역개정으로 보면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나오니까 그냥 "이스라엘의 선생 중 하나"라는 뜻으로 오해할 수가 있는데, 헬라어 성경과 영어 성경 모두 앞에 정관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the teacher of Israel"이니까 우리 말로 직역하자면 "이스라엘의 '그' 선생"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선생으로서 어떻게 이런 것들을 모를 수 있냐고 반문하시는 겁니다. 니고데모가 이스라엘의 대표적 선생인 것이랑 "물"과 "성령"과 "거듭남"에 대해 모르는 것이랑 무슨 상관일까요? 니고데모는 구약성경의 능통한 율법 교사였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토대로 본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24-27절을 보시면 이렇게 나옵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여기서 25절을 보면 "맑은 물"이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로부터 정결하게 함"과 연결이 되고, 이는 26절의 "새 영"과 "새 마음(거듭 남)"과 연결이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물 세례가 아니라 에스겔 36장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고, 이는 "성령"께서 에스겔 36장의 "맑은 물"이 하는 것처럼 그 죄인의 더러운 마음을 정결케 하셔야지만 거듭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더 잘 설명하는 자료를 원하신다면, 맥아더 성경주석이나 D.A. 카슨의 요한복음 주석(PNTC 주석 시리즈)을 참고하시면 좋고, 책이 어려우시면 유튜브에 Rock House님께서 번역하신 "존 맥아더 요한복음설교" 시리즈 중 11~14편을 보시면 도움이 많이 되실 겁니다. 이 네 편의 설교를 통해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의 의미를 잘 설명해주십니다.
@Sonflower-f1x4 жыл бұрын
@@jun-sungpark6262 와... 너무 궁금한 거였는데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주시다니.. 감사합니다 ㅠㅠ 덕분에 궁금한 점이 풀렸어요, 존 맥아더 요한복음 설교도 들어볼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때때로 궁금한 것 여기 댓글에 여쭈어 보고싶네요...ㅎㅎㅎ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아 :)
@mglhellokitty6 жыл бұрын
현세에서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영적인 삶에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참여할수 있게 하셔다는 의미로 힘써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님의 통치를 받는 충성하는 믿음의 삶을 살라는 의미이다.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전혀아닙니다.
@jun-sungpark62626 жыл бұрын
아닙니다. "영화(glorification)"는 존 파이퍼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구원의 궁극적인 상태로서 신자 안에 잔재하는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이며, 이 땅에서는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 구절은 미리 정하심(예정)과 부르심(구원을 위한 효력 있는 부르심)과 의롭다 하심(칭의)과 영화롭게 하심(영화)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사 이 구절의 "영화"를 다르게 이해하시더라도 성경에는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의 구원은 잃을 수 없다고 증언하는 구절들이 매우 많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당연히 구원을 받은 것처럼 보였는데 결과적으로 믿음을 버렸다면, 그것은 참된 구원이 도중에 취소된 것이 아니라 이전에 받은 것으로 생각했던 "구원"이 참된 구원이 아니라 자기 착각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일 2:19)
@랄프김-q6e3 жыл бұрын
중요한건 자기믿음인데..정말로 주님을 믿는가..이건 자기자신도 잘 모를수가 있습니다. 오직 우리 속마음은 주님만 정확히 아시니까요. 우리가 알수있는방법은 오로지 열매입니다. 성화되어가는 과정이 보여야하고 열매가 맺혀져야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구원받은것이 아니겠죠. 구원파들은 거꾸로 합니다.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확신해버리고 주님뜻과 상관없이 본인 스스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착각안에서 감사와 은혜로 좋은일들을 합니다. 어느정도까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주님이 고난속으로 인도하거나 시련과 유혹을 허락하면 바로 넘어지게되죠.. 자신의 믿음은 솔직히 가만히 생각해보면 알수있습니다. 대신 위선적인 양심 버리고 정말 자신에게 정직해져야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정말 구주로 믿는가? 그분이 날위해 죽으심이 가슴에서 슬픔으로 다가와 그 사랑이 느껴지는가? 여기까지는 스스로 착각하기 딱 쉽습니다. 사람의 양심은 거듭나기전이라면 다 치우쳐 위선적이라 그렇다라고 생각을 고정시켜버립니다. 그러면 그다음은 세상 모든것을 주님때문에 포기할수 있는가? 아주 실제적으로 모든재산을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모든것을 주님이 허락하지않는다 생각하고 다 내려놓을수 있는가? 가족이 굶어죽어도 주님뜻대로 나아갈것인가? 여기까지 스스로 질문했을때 가능하다라고 생각한다면 믿음이 거짓은 아닐것이다. 그정도면 열매를 안맺을수가 없다. 더 나아가서 주님이 목숨을 내놓으라고하면 할것인가? 그런 기도를 할수있는가? 여기까지 나아갔을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믿음은 확신해도 될것이다. 100프로 구원이기에.. 아주 많은 열매를 맺을수밖에 없다. 목숨을 건다면 못할것이없다. 사실 사형수가 주님께 빚진심령을 가졌을때 주님에 대한 사랑이 더욱 넘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컷이라고 말하진않겠다. 왜냐면 그건 최종단계 장성한어른일경우이고 하나님이 그 믿음을 보고 허락한 사람들만 가능하기때문이다. 순교한사람은 주님이 그 속중심을 보고 충분하다 생각한 사람에 한한 것이다. 두려워하지말아야한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머리카락도 다 세신바되었고 감당치못한 시련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그런마음이 없다면 적어도 그런 마음조차 먹지 않는다면 거듭나기는 힘들것이다.
@jae19716 жыл бұрын
어린양의 생명책에서 이름이 새겨지고 다시 지워질수 있다고 예수님이 그러셨어요... 생명책에 이름이 새겨졌다는것은 구원받았다는것인데 다시 악의 길로 돌아서면 구원은 사라집니다.
@jun-sungpark62626 жыл бұрын
Austin Shin 아닙니다.
@jae19716 жыл бұрын
Jun-Sung Park 왜 아닌지 ? ? 저는 행위 구원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영접할지라도 다시 영적 에굽으로 돌아가면 생명책에서 사라집니다.
@jun-sungpark62626 жыл бұрын
이미 이 영상 댓글란에서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과 많은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왜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지 성경을 토대로 변증해왔습니다. 오스틴님 같은 분들이 매번 새롭게 반박 댓글을 달 때마다 처음부터 설명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오스틴님께서 언급하셨던 생명책에 대한 내용도 다른 댓글에서 다뤘던 걸로 기억합니다. 궁금하시면 한 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jun-sungpark62626 жыл бұрын
그리고 "생명책"에 꽂히신 것 같은데, 동일하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39-40절에서 하신 말씀을 다시 읽고 그 의미를 곱씹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8장 38-39절에서 이야기한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jae19716 жыл бұрын
아는 구절입니다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 맞는 말이고 100퍼센트 동의 합니다. 하지만 제말은 나에게 선물로 주어진 구원이 정말 죽기전까지는 보장이 아니라는겁니다. 죽기전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 사람들은 당연히 천국행이지만 예수님이 길이신 그 길에서 돌아서면요.? 광야땅에서 에굽으로 돌아가려 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에굽으로 부터 구원을 얻었지만 결국에는 회개에 이르지못하고 가나한땅에 입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을 사랑했을지라도 현제 혹은 미래에 마음이 떠나갔다면 죄의길로 갔다면 구원을 이루고 있다고 확신할수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때문에 믿음은 선물로 주어지지만 그의 따른 행동과 죄와 싸우고 회개하는 모든 일은 자기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yourfamilyso45185 жыл бұрын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지않는 자들이 되려 얼마나 착하고 인격적이고 모범적인가‥그렇다고 이들이 구원받은 속한자인가? ‥만약 구원이 우리의 행위로 잃어버린바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무슨의미가 있는가‥자책하고 돌아서려는 의지는 믿지않는자들에게도 있지 않는가‥거듭난자가 육체를 입고있는동안에 얼마든지 죄의 유혹을받고 또 그죄에 넘어지기도하지않는가‥이럴때 구원을 잃어버린단말인가‥하나님의 소속에서 마귀의소속으로,천국에서 지옥으로 다시 원상복귀되느냔 말입니다 그럴순 없지않습니까‥
@장현신-b4c6 жыл бұрын
구원이라는 말을 다들 너무 쉽게 얻을 수 있는것이라고 말씀하시네요? 구원을 얻은 우리의 삶은 어떤가요? 그리스도와 같이 그의 입에서 하나님에 아름다움이 나오나요? 아니면 그가 하나님만 바라보던 눈동자와 같이 확신에 차있나요? 그는 마음으로 살인하지 않으며 강간하지도 않고 세상의 것을 탐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 우리는 어떤가요? 지극히 세상적이고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살인하며 세상을 바라보며 음탕한 생각을 하면서 구원을 논하시는건가요? 과연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통속에서 보내고 있나요? 그리스도가 가르쳐주신 말씀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몸부리 치시나요?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십자라를 지고 따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게 먼지도 모르면서 구원을 논하시나요?
@장현신-b4c6 жыл бұрын
참고로 선과 악을 구별하는게 쉽다면 당신은 거짓말쟁이 입니다. 인간의 도리를 중요시했던 사도들을 떠올려보십시요. 십자가에 죽음을 암시할때 베드로는 다들 주를 버릴지언정 난 주와 함께 죽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뒤로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인간적으로 옳은 생각을 말하였어도 그는 하나님의 뜻과 전혀 반대에 서있던 사람입니다. 선과 악을 명료하게 구분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뜻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하지 마십시요.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에 고통을 느끼지 않고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고 하지 마십시요. 우리는 영적으로 무능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무능으로 인해 하나님을 무능한 존재로 세상사람들에게 조롱받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책을 꺼내서 비교해보십시요. 우리가 주님과 얼마나 닮았는지...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과연 구원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jun-sungpark62626 жыл бұрын
그렇다면 장현신님께서 만족할 만한 거룩한 기준에 부합하는 그리스도인들만 구원에 대해 이야기해도 되고, 나머지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겁니까? 얼마나 성숙해져야 구원에 대해 논해도 되며, 그 성숙의 기준은 누가 정합니까?
@장현신-b4c6 жыл бұрын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겁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게 우선입니까? 구원이 무언지 알고 그게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게 우선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사람은 후자가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후자를 잘 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그게 무슨 유익이 있다는거죠? 우리는 너도 나도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목사들이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게 무언지 고민하거나 그 뜻을 알기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피로 그리스도가 우리안에 언약궤가 되었지만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 거듭났다고 말하는 자체가 좀 웃기지 않나요?
@jun-sungpark62626 жыл бұрын
@@장현신-b4c 그래서 누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누가 그분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있습니까? 장현신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다는 뜻인가요?
@장현신-b4c6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자 소통하는 자가 구원에 조건을 따지는게 웃기지 않나요? 각 가정에 식구들은 그 집을 자유로이 들락날락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족의 일원이기에 그들에겐 열쇠가 있으니깐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열쇠를 얻기 위해 무엇해야하는지 논한다는 자체가 모순 아닌가요? 그리고 저 역시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말은 본질부터 다시 알자는겁니다. 우리들은 더러운 병이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오면 겁부터 먹고 그를 멀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고통을 보시고 그를 긍휼이 여겼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예수님가 다른눈을 갖고 있다는건 자신의 신앙 관념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겁니다. 제가 제 의로움을 나타내고자 이글을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서로 바로 알자고 이글을 쓰는겁니다.
@Kim-hi6ho5 жыл бұрын
죽기직전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는? 간음 살인 저질렀던 다윗은?
@Kim-hi6ho5 жыл бұрын
지금도 험악한죄 짓고살다 죽기직전 예수님께 돌아오는 경우도 많아요 죄를 짓자는게 아니라 구원은 예수보혈로 외에 어느것도 안되요
@jaehosong42554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저도 같은고민을 하였는데 이 대답이 제게는 도움이 되어 쟈스민 님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남깁니다. 예수님옆 강도의 즉시구원은 우리가 아무렇게나 막살다가 죽기전 예수믿으면 구원받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강도 마저도 빌라도가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여 죽이지 않았다면 죽는그날까지 옛사람을 버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와 같이 믿음의경주를했어야만 천국에 갈수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할것은 우리는 언제죽을지 모르고 매일매일을 믿음의 경주로서 받은구원을 감사하며 마지막날까지 지키며 살아가는 태도 이게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ㅎㅎ
@함께갑시다-n6x7 жыл бұрын
황해찬 님 님의 글에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 한 것은 성령 받기(거듭남) 전이고 오순절 날 성령받은 후 부터 구원을 논 하는것이 현명 한 판단이 돌것 같군요
@jun-sungpark62627 жыл бұрын
아닙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예수님께서 신자들에게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또다른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임하신 사건이지, 그때 비로소 성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그때부터 거듭났고 구원받았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모두 성령강림 전에는 거듭나지 않은 불신자였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데, 성령강림 이전 시점인 사도행전 1장의 다락방 예배를 보면 그들이 이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바르게 믿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성령강림 이전에 이미 참된 신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보편적 강림 이후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성령에 의해 거듭난 순간 성령께서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지만,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짧은 시기는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과도기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한 개인의 구원이나 거듭남을 논할 때 성령강림 이후의 시대와 완전히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구약 때에도 성령의 보편적인 임재가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보편적 강림 이후에 모든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누리는 영적 특성을 성령 강림 이전의 제자들이나 신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했을 때도 이미 참된 신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부인했는데 신자일 수 있나요?"라고 반문하시겠지만, 저는 그 직후의 태도를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 26:75) 이것은 참된 신자만이 보일 수 있는 "상한 심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한 이후에 회개하며 쓴 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베드로의 그런 반응은 가룟 유다가 스스로 양심에 찔려서 괴로워하며 자살을 선택한 것이랑은 근본적으로 다른 마음이라고 확신합니다. 가룟 유다도 "후회"하긴 했지만 그의 심적 괴로움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마음으로 반응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21장의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 10:33) 라고 말씀하셨잖아요"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이것은 "지속성"을 감안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구절은 한 번이라도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베드로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지옥에 갔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돌이킨 순간부터 비로소 거듭났다는 뜻이 아니라, 거듭났기 때문에 그런 죄를 짓고 나서도 결국 참된 회개를 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신자들이 다른 죄를 지은 후에 주님께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는 것처럼 말이죠. 제가 앞서 "지속성"을 언급했는데, 만약 베드로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상태에서 생을 마감했다면 당연히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원리로 요한일서 3:6에서 사도 요한은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라고 말했는데, 이 구절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면 범죄를 한 사람이면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이 과연 "나는 죄를 짓지 않는다"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 살면서 완전히 죄 없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점점 더 성화되어 가면서 죄를 덜 짓는 방향으로 변화될 수는 있지만요. 따라서 요한일서 3:6도 "지속성"의 원리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지속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범죄하는 삶을 유지한다면 그 사람 안에는 영생이 없고 그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런 원리로 베드로의 "그리스도 부인 사건"을 이해하면 "그리스도를 부인했기 때문에 구원받지 않은 상태였다"라는 결론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베드로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다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저는 적어도 마태복음 16장 이전에 이미 참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답글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이재영2-p9e5 жыл бұрын
일만달란트 구원해줬으나 백데나리온 용서안해주면 그 일만달란트 구원 취소와 어두운데로 가서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을것이니 택함받은 너희는 잃어버릴 것이요 열매를 맺는 자가 천국을 차지 할 것이다
@seokim37446 жыл бұрын
자막이 한국말을 영문으로 가려지니까..한글을 읽을 수가 없어요
@jun-sungpark62626 жыл бұрын
영어(자동생성) 자막 설정을 끄시면 됩니다.
@ceramicspeaker4 жыл бұрын
지금 우리 시대에 예수믿는다고 잡아가서 죽인다면 믿는다고 말할 자신 있으십니까? 지금도 이슬람국가에 예수님 믿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당하고 있습니다.
@east1rock4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주시는 구원을 우리가 받았다 안 받았다 따지는 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경주의 달리기의 완주와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신약에서 구원에 대해서 달리기 경주 를 이야기했습니다 참고로 youTube 낸시랭의 신학펀치 14회 추천합니다
@jun-sungpark62624 жыл бұрын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본인의 구원을 확신하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이라는 말씀이신가요?
@east1rock4 жыл бұрын
@@jun-sungpark6262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교만한 생각입니다
@jun-sungpark62624 жыл бұрын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서 8:38-39에서 그 무엇도 신자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한 내용과 요한일서 5:13에서 요한이 자기 편지의 수신자에게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east1rock4 жыл бұрын
@@jun-sungpark6262 로마서 8장 38절에서 39절 말씀은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지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는 대해서는 말이 없습니까 성경 구절 그대로 읽으십시오 그리고 또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함은 영생 있다 그랬지 우리가 영생을 다 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jun-sungpark62624 жыл бұрын
@@east1rock 네, 로마서 8장 38-39절에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직접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두 구절이 구원과 무관합니까?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기지 않으면서 동시에 구원을 못 받을 수가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8장 1절부터 39절의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면 바울이 구원 받은 자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 지를 특히 각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림을 강조하면서 가르칩니다. 그리고 특히 31-37절의 흐름을 감안해서 38-39절을 읽어도 여전히 구원과는 무관하다고 생각되시나요? 성경은 앞뒤 문맥을 고려하면서 읽지 않으면 본인이 원하는 것만 보게 되는 자의적 해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한일서와 관련해서 수신자들에게 "영생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영생을 다 받는다"와 어떻게 다른지 납득이 안 되네요. 영생을 부분적으로만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적어도 요한일서 본문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성경 그 어디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요한은 영생이 있다/없다의 대조 관계를 1장부터 5장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대조하고 있습니다 (예: 빛 vs 어둠, 사랑 있음 vs 사랑 없음 등). 이미 "구원의 확신은 교만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성경을 보시면 로마서 8장이나 요한일서 5장처럼 분명히 "구원의 확신"이 가능함을 알려주는 본문도 왜곡해서 해석하게 됩니다. 성경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도 교만이지만, 성경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백히 말씀하신 사실이 본인의 이해의 틀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암튼 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본인이 이미 확고하게 믿고 있는 교리를 쉽게 내려놓기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설득이 안 되셨다면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십시오. 여기는 낸시랭의 신학펀치와 같은 방송을 토대로 어설프거나 잘못된 교리를 전파하는 장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여러 근거 구절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로마서 1장 16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은 민족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kimjh999914 жыл бұрын
성막이 찢어진건 이제 이스라엘 민족, 돌로지어진 성소,성전 안에 하나님이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이제 민족과 지역에 국한된것과 상관없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마가복음서에서 보면 위에서 부터 성막이 찢어집니다. 하나님이 하신일이라는거죠.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겁니다. 이것에 대한 증거가 성령이 믿는 유대인들만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이방인들 에게도 성령이 임하심이 그 증거입니다. 이 일은 이미 구약 수 많은 곳에서 약속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민족적 이스라엘 백성의 죄 용서가 아니라 모든 믿는자들(유대 사마리아와 땅끝)에게 베풀어진 용서요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이 은혜를 받아 누리시고 찢겨진 성막을 묵상할 때 마다 기뻐하세요.
@kwangyuncho16855 жыл бұрын
이건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신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난제입니다. 즉 성경해석학적인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는 장로교 합동 합신 고신 백석등은 칼빈주의 신학을 기반으로 성경을 해석하기에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주장하지요. 그러나 장로교 통합이나 기장 그리고 감리교 성결교 등은 위의 입장을 취하는 신학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 난제입니다. 쉽게 말할 수 없는.
@jun-sungpark62625 жыл бұрын
어떤 사람들에게는 결론 내리기 어려운 문제일 수 있으나, 다른 사람들은 명백하게 결론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이 존재하는 사안입니다.
@moontide764 жыл бұрын
거듭난 자는 자신의 구원받은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먼지보다 못한 날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자랑하는것이지요 거듭난 자는 압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는 절대 지옥가지 못합니다 내가 아닌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구속하시는것이지요
@estherkim88627 жыл бұрын
존 파이퍼의 신학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만 구원의 대상인데 그 또한 죽는 순간까지 믿어야 하는 게 진짜겠죠. 예수 믿다가 배교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jun-sungpark62627 жыл бұрын
존 파이퍼의 신학관 중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이 영상에서 다루는 주제는 존 파이퍼 목사님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교회 역사의 주류와 일치합니다. 이 주제의 핵심은 단순히 "믿음(신앙고백)"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겉으로 봤을 때 복음을 믿었다가 나중에 배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예전에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던 시절에 그 믿음이 정말 구원을 얻는 참된 믿음이었나?"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이 참된 구원 및 영생을 소유한 적이 없다고 증언합니다. 반면에 참된 믿음을 토대로 참된 구원을 누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믿음이 지속되기 때문에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상이 말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jun-sungpark62627 жыл бұрын
긴 답글을 쓰고 있었는데 인터넷 창이 스스로 새로고침 되면서 작성하던 답글이 날라갔습니다. 답글을 다시 작성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제가 다른 댓글에서 여러 차례 인용한 요한일서 2장 19절의 의미를 곱씹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jun-sungpark62627 жыл бұрын
이렇게 불필요하게 호전적인 댓글은 허용할 수 없습니다. 말이 참 거칠군요. 본인이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자라고 생각하시거든, 주님께 혀를 통제할 수 있도록 단련시켜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본인은 정말 그리스도인 맞는지 점검해보십시오.
@손예림-t1b7 жыл бұрын
궁금한게 그러면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니까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면 죄를 지어도 취소되지 않는다는 건가요?
@andrewkoo82727 жыл бұрын
예림 손 성령으로 거듭나면 옛 자아가 죽습니다 죄의 종이 아닌 순종의 종이됩니다. 죄를 아주 안짓는것은 육신의 장막을 벗어야하지만 아직 육신을 입은 상태에도 죄와 피흘리기 까지 싸웁니다.
@듣기읽기9 жыл бұрын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댓글 남깁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jacksungjung.wordpress.com/2015/11/13/기묘한-신학이해가-안됩니다-존-파이퍼-목사님-ㅠㅠ/
@jun-sungpark62629 жыл бұрын
+myomyo kiki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존 파이퍼 목사님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링크 걸어두신 곳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부분들에 대해 답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jun-sungpark62629 жыл бұрын
+myomyo kiki Q: 떨어져 나가는 사람 아무도 없이, 의롭다 하심을 입고, 모든 의롭다하심을 입은 자들은, 떨어져 나가는 사람 아무도 없이 영화롭게 된다고 말합니다.(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인물들, 구약의 솔로몬과 신약의 가룟 유다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저는 솔로몬은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고, 가룟 유다는 구원받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열왕기상 11장에 의하면 솔로몬은 말년에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만 놓고 보면 솔로몬은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가지 이유로 솔로몬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솔로몬이 기록한 전도서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참고한 맥아더 성경주석의 전도서 서론 내용을 보면, 전도서가 기록된 시기가 솔로몬의 말년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서 전도서의 내용을 읽어보면 솔로몬 말년에 마음의 중심이 어떠했는지 추론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가 매우 회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영적으로 매우 교훈적인 책입니다. 모든 부귀영화를 누려본 왕으로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서의 마지막 장의 마지막 두 구절을 보면 전도서의 결론을 알 수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13-14) 만약 전도서가 정말 솔로몬의 말년에 쓰여진 책이 맞다면, 이 글을 통해 솔로몬이 진정으로 회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솔로몬은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기록한 구약성경 저자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기록하기 위해 구원하지 않으실 자에게 그 영광스러운 특권을 허락하셨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신다면 더이상 드릴 말씀은 없지만... 상식적으로, 그리고 직관적으로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는 다릅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 2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나서 후회하긴 했지만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후회랑 회개랑은 다른 것입니다. 회개란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의 양심의 고발의 괴로움을 못 견디고 결국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예수님을 따랐을 때 구원받았다가 결국 배신했기 때문에 구원이 취소된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는 애초에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정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긴 했지만, 참된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른 것은 아닙니다. 거짓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21-23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한다고, 예수를 믿는다고 스스로 확신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참된 믿음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거짓 믿음, 거짓 구원, 거짓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그런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염소로 분류될 것입니다. (마 25:31-33) 가룟 유다가 그런 부류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구원받았다가 나중에 구원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구원받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신당하기 훨씬 전부터 가룟 유다를 염두에 두고 누군가가 인자를 팔아 넘길 거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jun-sungpark62629 жыл бұрын
+myomyo kiki 너무 늦어서 나머지는 내일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듣기읽기9 жыл бұрын
+Jun-Sung Park (Bangjamang) 1.솔로몬이 전도서 저자임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공공연히 인정하는 분명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근거로 하기 부적합합니다.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2.게다가 글만 보고 어떻게 진정으로 회개했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가룟 유다의 자살이 오히려 진정한 회개로 볼수도 있지 않을까요?(말도 안됩니다만 비슷한 방식으로 말하자면 말이지요.) 3. "하나님께서 과연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기록하기 위해 구원하지 않으실 자에게 그 영광스러운 특권을 허락하셨을까요?"라는 발언을 가룟 유다에게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예수의 직계 제자, 12제자라는 그 영광스러운 특권을 구원하지 않으실 가룟 유다에게 허락하셨을까요? 여튼 영어원문과 자막이 예쁘게 달린 영상이라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게도 쉽지 않은 문제라서 댓글 남겼습니다. 성실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jun-sungpark62629 жыл бұрын
+myomyo kiki 우선 저는 온라인 상으로 토론을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링크 걸어두신 글에서 궁금해하시는 부분들에 대해 제 입장을 최선을 다해 말씀드리겠습니다만, 동의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반론을 펼치시는 부분들에 대해 다 답변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번 반론에 대해서만 간단히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많은 반론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저자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논란이 있다고 해서 추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전도서 1장 1절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라고 나옵니다. 물론 성경에서 "아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아들이 아니라 "후손"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맥상 일반적으로 쓰이는 "아들"로 볼 수 없을 때 떠올리는 것이지, "아들"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이것은 먼 후손일 수도 있기 때문이 실제 아들인지는 알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다윗의 아들"이 솔로몬을 지칭할 가능성이 희박할 때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솔로몬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게다가 "지혜"라는 말이 전도서에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혜"를 허락하신 "지혜"의 왕 솔로몬이 이 글의 저자라고 이해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장 7절 같은 부분도 솔로몬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고 생각할 수 있구요. 그리고 제가 이전 댓글에 맥아더 성경주석을 인용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존 맥아더 목사님의 성경해석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항상 동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분의 해석을 신뢰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맥아더 성경주석처럼 한 개인이 쓴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신학자들이 함께 저술한 ESV 스터디바이블의 전도서에 대한 서론을 찾아봤는데, 저자가 솔로몬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의 양쪽 입장을 간략하게 언급하면서도 결국엔 솔로몬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로마서처럼 서두에 확실히 저자의 이름이 밝혀져 있는 것에 비하면 전도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분명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리고 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다고 해서 이 이슈에 대해 불가지론의 입장을 반드시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 이 부분은 이전 댓글에서 말씀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글을 읽거나 어떤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 내용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결론이 중요합니다. 만약 전도서가 솔로몬이 말년에 쓴 글이 맞다면, 전도서의 마지막 부분인 12장 9-14절을 읽어봤을 때 절망이나 배교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여호와를 바라봤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솔로몬이 전도서를 말년에 기록했는데 정작 본인은 회개하여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았다면, 전도서의 내용은 위선자의 글에 불과합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도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후회랑 회개랑 다르다는 점을 말입니다. 위에 제가 간단하게 설명한 차이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어떤 남편이 다른 여자와 간음을 하고 양심이 찔려 후회를 느끼는데, 그 쾌락이 너무 좋아서 얼마 후에 또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후회하고, 또 저지르고 후회한다면, 그 사람이 느끼는 "후회"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회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란 그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입니다. 즉 변화의 모습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엄청난 "후회"를 느꼈지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자신이 배신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스스로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을 생각해보십시오. 물론 유다처럼 예수님을 직접 팔아넘기진 않았지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고, 주님께서는 그것을 자기 자신에 대한 박해라고 여기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행 9:4) 그런데 자신의 신학관과 신념이 산산조각이 났고 엄청난 마음에 찔림을 경험한 바울은 그 이후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평생 동안 헌신했습니다. 회개란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회개는 자신의 자책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믿음으로 직결됩니다. 가룟 유다는 후회하기만 했지, 끝끝내 그리스도를 바라보지는 않았습니다. 3. 어떤 논리로 말씀하신 건지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의 배신은 이미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여러 차례 예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 그분을 배신하도록 주권적으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물이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간단한 질문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답글을 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반론들에 대해 하나하나 답변해드리지 못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user-ok1hh3ws3f5 жыл бұрын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생각이 드는것 자체가 구원받지 않은 증거입니다.
@jun-sungpark62625 жыл бұрын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존 웨슬리 같은 사람도 알미니안 교리를 토대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가르쳤지만, 그를 구원받지 않는 거짓 교사로 바라보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도 다른 인터뷰에서 알미니안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그 자체로 구원받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하신 바 있습니다. 즉 알미니안 교리가 잘못되긴 했으나, 그것이 구원 여부를 가를 만큼 critical하지는 않다고 보는 거죠. 그들도 결국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기본 진리에는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곽현욱-c7t5 жыл бұрын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감리교는 이단이 되어야죠. 그것보다 우리중에 나는 구원받았다 확신하는 그 사람이 더 위험합니다.
@sophiej20714 жыл бұрын
ᄋᄎᄒ ㅔ
@sarahtvcalgary36944 жыл бұрын
왜 바울이 여인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했는지.. 이해가 갈 때가 많습니다. 여기 댓글 중 여인으로 보이는 아이디가 전부 행위구원파 군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을때 무엇을 이룬 겁니까? 온세상의 구원을 여신 겁니다. 즉..구원은 그분이 이루신 겁니다. 우리는 1도 더하거나 뺄 수 없고 예수님이 이루신 의의 옷을 믿음으로 입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누더기일 뿐입니다 그 약속의 보증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심판날까지 봉인하십니다. 구원파의 교리가 아니라 바울의 교리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미 끝난 문제가 아니라 취소나 번복이 될 수 있는 문제라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나요? 끝까지 방심말고 두려워 해야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아직 하면 안되지요. 아직 입양 확정이 안된거죠.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KJV흠정역] 에베소서 2: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와 외국인이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 2:20 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잇돌이 되시나니 이미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자라고 말씀하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KJV흠정역] 요한복음 6:39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그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니라. 한명도 잃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KJV흠정역] 로마서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종교에서 벗어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지유를 누리고 맘껏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