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정착한 중국 남부 복건성(푸젠성) 출신 진평순이라는 화교가 현지 가난한 중국인 상대로 남는 식재료로 만들어 판게 짬뽕의 시초. 다만, 나가사키 지역의 이 짬뽕은 흰국물에 해산물 베이스로 매운맛이 전혀 없음. 이것이 일제강점기 중국 북부 산동성(산둥성) 출신 한국에 정착한 화교들에게 전달되서 당시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인들 상대로 장사하면서 우동 같이 일본인들이 익숙한 음식이름을 차용해서 팔았음. 당시 중식당을 청요릿집이라 불렀고 식민지 조선인들은 비싸서 가지도 못하던 곳이었음. 이후 해방후 일본인들이 자국으로 귀국하고 사라지자 기존의 청요릿집은 고급 요리부 보다 저렴한 식사류 메뉴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음. 인천을 필두로 부산, 군산, 목포 등 주요 항구들에서 부두 하역 노동자들 상대로 끼니를 때우는, 빨리 먹고 일할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짜장면이 한국식으로 어레인지됨. 중국식 짜장면, 짜장미엔은 이름은 같으나 첨면장(면에 첨가하는 장)이라는 집된장과 비슷한 짜디 짠 장을 면에 얹어 비벼 먹는 일종의 된장비빔국수였음. 단짠잔짠하고 소스가 촉촉해서 면에 잘 붙는 한국식 짜장면과 다르게 중국 짜장미엔은 단맛이 없고, 장에 물기가 적어 잘 비벼지지도 않고 비벼 놔도 소스가 면에 잘 안묻고 뻑뻑한 느낌. 이렇게 산동성 출신 한국 정착 화교들이 한국식 짜장면을 만들어 팔면서 우동 역시 같이 팔았음. 즉, 원래 중국집에는 빨간 국물윽 짬뽕이 없었던거임. 이후 한국인 입맛에 더 맞추고자 얼큰하게 고춧가루를 추가해서 중국의 초마면 느낌 나게 변한게 지금의 빨간 국물 짬뽕. 일본 라면제조업체의 제조 설비와 제조 노하우를 얻은 삼양식품이 닭육수 기반의 인스턴트 라면을 1963년 출시하는데 이후 1980년대 한국인이 선호하는 소고기 육수에 고춧가루 넣은 얼큰한 라면이 대세가 되죠. 그게 바로 농심 신라면의 시작. 이후 농심이 삼양식품을 제치고 라면업계 1위가 된 것과 비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