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 생각이나..눈물이..하염없이 났네요. 100세 넘게 평생 한마을에 사셨지만..꽃상여도 못타시고..마지막 가시는길 주민들 배웅도..못받고 가셨어요. 아직 섬마을 주민들은 상여문화도 있고 주민들이 따뜻하게 내 일같이 배웅도 해주시는 모습..저 어릴적 보던 장례모습 보는것같아 너무 좋았습니다.
@근심오9 ай бұрын
눈물납니다 예날어린시절 생각납니다
@변효순-h3f Жыл бұрын
우리어렸을때 동네에서 상여나가면 동네사람들 모여 울면서 배웅했는데 지금도 상여만드는곳이 있네요 우리 고유의 장례문화가 ㅇ설지않아 사라져갈것을 생각하니 아쉽습니다
@김현대-u9u Жыл бұрын
5년전에 멀리 떠나신 어머니 생각에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어머니 떠나신 날부터 전 불효자가 됐읍니다 살아 계실때 술값 아껴서 좋은옷 만난것 여행한번 더 보내드릴걸 하는 생각에 나는 참불효자 였구나 하는 후회가 이루 말할수 없습니다 아무리 효자라도 부모님 돌아가신 순간부터는 불효자가 됩니다 돌아가신뒤에 후회를 조금 이라도 덜할려면 살아 계실때 할수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모셔야 합니다
@박희수-g2v Жыл бұрын
"고마웠소 잘 가시오" 멘트에 가슴이 찡 하네요 잘 봤습니다
@알중-c1v21 күн бұрын
48:18 눈물이 주룩
@김운기섬진강벗꽃 Жыл бұрын
꽃상여를 기획 실행해주신동네 주민들, 이장님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여름날저녁노을 Жыл бұрын
꽃 상여로 보내드리는 그 마음들이 아름답네요. 마음을 울리는 상여소리도 잘 보존해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일등공진단 Жыл бұрын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다큐에 감사합니다. 울 아버지 상여타고 가셨는데 눈물이 주체가 안되네요. 불효만 생각납니다. 아버지! 하늘에서는 일안하시고 잘 쉬고 있지요
@BURKE12 Жыл бұрын
부모님의 육신으로 잉태 되어 우리를 낳으시고. 젖으로 먹이시고. 옷으로 입히시어 기르시고 가르침을 받았기에 어찌 부모님의공덕을 잊으수 있으랴 불효부모 사후회라 했으니 돌아가신뒤에 뉘우치면 무엇할꼬. 살아생전에 효를 못해드려도 속을상하게 해드리지 않는것 또한 효라했고.부모님의얼굴에 웃음꽃 피게 해드리는 큰효가 어디또 있을까? 오늘날 이자리에 숨쉬고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 깊은감사 드리며 마을분들께 이영상을 통해 감명받음 을 감사 드림니다. 작고 하신 어르신들의 삼가. 고인분들께 조의를 표하며 유가족분들의 심신의 안정을 빕니다.
@변효순-h3f Жыл бұрын
상여만드는분중에도 인간문화재가있나요? 사라지기전에 보존을 해야할탠데요
@umeda777 Жыл бұрын
매장 자체를 요즘 안 하고 다 화장이나 수목장 하는데요~~
@ambien9321 Жыл бұрын
대댓글 =바보들
@최두규-d7d11 ай бұрын
@류진례10 ай бұрын
@@TV-gb7bo😂42ㅐㅁ
@산속의섬 Жыл бұрын
공감가네요 완도 청산도 입니다 마을 어르신 돌아가셨는데 전통적으로 초상을 치르시니 요즘 시대에 대단하십니다
@선명식-e2p Жыл бұрын
다큐 ! 프로그램 우연히 보개됏는데 마음이 챰 챰합니다 2002년도 2월에 아버님 작고 하셰는데 꽃상여 메고갈 젊은 청년이 부족해서 어렴게 모신기억이 아련한 추억입니다 저는 전남보성입니다
@기영김-i1n Жыл бұрын
가슴이 찡하네요 시골 고향생각이 나네요 어릴때 상여 떠나든 날 한없이 울든 생각이 나네요
@심마니-v7c Жыл бұрын
나도 노인이 되니 감회가 새롭내요
@심마니-v7c Жыл бұрын
이런 영상만 보면 눈물이 흐르내요
@loveh8796 Жыл бұрын
어릴적 보았던 상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동네 모든분들이 함께 따르며 외롭지 않게 가시기를 기원하며 마지막 예의를 표하며 서로 공감하던 우리 고유전통 장례문화 영상 첫부분에서부터 2015년 작별을 고한 우리아버지 생각에 영상 끝날때까지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평생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묵묵히 조용히 주어진 삶을 정직히 살다가신 아버지 너무 보고싶고 그저 생전 모싸여드린 죄송함에 더 눈물이 납니다 아빠 많이 그립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여름날저녁노을 Жыл бұрын
웬만한 시골도 꽃상여 없어진지 오랜데 청산도는 아직도 꽃상여를 하네요. 우리 엄마도 꽃상여 타고싶어 하셨는데 .... 미숙한 자식들이 두고두고 죄송하네요. 특용작물 하나 없이 그야말로 생 농사로 자식다섯 다 대학 보내신 우리엄마 시간이 약이다는 말은 부모와의 이별에는 해당이 안되는 것 같네요. 갈수록 죄송하기만. 엄마 잘 계시죠. 너무 보고싶네요. 맛있는 거 좀 많이 사드렸어야 했는데...
@hyunikyou6066 Жыл бұрын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우리엄니 아부지 계시곳 뵈러가야겠네요
@totoy3311 ай бұрын
으미없느말은 백날 떠들어밧자 소용업다 잇을땨 잘해주지못하고 떠나갓으면 이미끈난거야 죽어서 백날 울고불고해밧자 다 겉치래식뿐이안댕 그런말은 아에 안하는게 더나아 이미 돌이킬수업으면 그냥 잊어버리는게 더나아 멀 꼭 없어지고나면 아이고 잇을대 잘해줄걸?. 애라이 그런 침도안발르고 하는말은 필요가읍다
@파랑새-s4m11 ай бұрын
@@totoy33 그래서 아무리 빨리(일찍)해도 늦는 게 '후회'라고 하지요.
@Toyama.kasumi11 ай бұрын
요새 화장을 많이 하다보니 꽃상여 문화도 사라지는거 같아 안타깝군요
@tabiakim7568 Жыл бұрын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마을 분들의 사랑이 가슴으로부터 느낌니다 😢😢😢❤❤❤❤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 입니다 🎉🎉🎉❤❤😢😢😢
@형심한-t4c Жыл бұрын
참으로 오랜만에봅니다 어릴적 할아버지 할머님으로 마직막이엇는데 아련한옛생각과 아쉽다는그리움에 슬픕니다 꽃상여타고 좋은곳가셧행복하소서~
@박수현-j4e8g Жыл бұрын
꽃가마타고 좋은 곳으로 가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김상선-w3k10 ай бұрын
우리고유의 옛.풍습.여기 이마을에서는 아직도 옛.정의 옛.모습이 살아서 숨쉬고 있었네요. 요즘엔.정말 보기힘든 광경에 옛 모습을 보면서 감동했습니다. 아령의 옛.상예소리도 구슬펴요. 우리나라풍습을 계속지켜야 합니다.ㅠㅠ
@변효순-h3f Жыл бұрын
누구도 피해갈수없는 죽음이지만 고생만하다가 가시는건 참 슬픈일입니다
@어여기아닌데 Жыл бұрын
자폐로 태어난 귀여운 우리 아들 내 죽으면 무슨일 인지도 모르고 해맑게 웃고 있을것 같은데 나중에 혼자 남으면 어떻게 살아갈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저 할머니처럼 백살까지 살아서 옆에 있어주면 좋으련만..
@하늬바람-p8i Жыл бұрын
자식 가진 부모의 심정으로 님의 근심에 가슴이 짠해지네요ㅡㅡ 이세상 떠난후는 신의 영역에 맡기시고 살아있을때 까지 부모의 역할 하시는 수밖에 없겠지요
@丁美善9 ай бұрын
미음에 걸려 어찌가시나요. ㅠㅠ 오래오래사세요
@보고싶어-x5q Жыл бұрын
나이는 삼십대 중반인데 어릴적 시골에서 많이봤네요 돌아가심 집에 등걸어놓고 장례식하고 어르신들 상여짊어지고 어린데도 노래가 구슬프더라구요 이제는 보기도힘들고 60대이상인 분들 돌아가심 없어질 문화같아요 60대 어르신들도 잘모르시지 않으실까싶다는
@해돋이관광 Жыл бұрын
한세상살다감이 너무 허무하다 이럴진대 너무미워하고 헐뜨고욕하고 욕심에 미쳐 세상망치는일 줄이고 살다가 가자고 다짐해봅니다 나부터... 이세상 와서 고생많이하셨읍니다😢 삼가 명복을빕니다
@user-dm1ye1rz5f Жыл бұрын
공주님처럼 꽃가마타고오셔서 아들 둘다먼저보내시고 꽃상여타고가신 우리 할머니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올봄 꽃흐드러지게피면 할머니 산소에 가봐야될것같습니다
저 어려서 조도 맹성리에 살았을적에 동네분들이 가시면 이렇게 꽃상여타고 가시고 동네분들과 눈물로 이별하곤 했는대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런풍경도 사라져가고 도시로 나오고 보니 그때 그모습도 어찌되었는지 궁굼해지네요 우리 친정 엄마는 서울에서 천국에 가셔서 수목원으로 화장해서 모셨는대 많이 보고싶네요 우리엄마
@김선화-r2y6e Жыл бұрын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 벌써 아버지 돌아가신지가 14전 엄마는 올해 벌써 두번째 기일날이 다가오네요 부모님 생각이 나서 울컥했습니다
남아있어도 소리꾼이랑 꽃상여만드는사람이 전국에 몇명않되요.... 후손들이 이여가줘야되는데....
@라일락-g7x Жыл бұрын
어릴적 동네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꽃상여나갈때 누가볼까봐 숨어서 울던생각이나네요 자기식구도아닌데 운다고 흉볼까싶어서요 마을분들도 울식구같았거든요.~꽃상여를보니 그때가생각나 또눈물이~😢
@simple8183 Жыл бұрын
😊저도 시골이라 동네어르신들 돌아가시면 눈물이 났지요 ㅠ
@라일락-g7x Жыл бұрын
@@simple8183 그러게요 어려운시절이었지만 정많던 그때가 참 그립습니다.^^
@강수아-x1r11 ай бұрын
섬에서 육남매 키우시고 고생 하셨읍니다 손자 손녀가 우는 것 보니 어찌 사셨는지 알겠습니다 꽃상여 타고 편히 쉬십시요
@ULOS95 Жыл бұрын
꽃상여든, 리무진이든 개소리 말고 살아있을때 잘해드려라...
@우묘숙 Жыл бұрын
할머니생각이나네요그리고아버지엄마너무그립읍니다보고십다보고십다보고십다!!!
@하늬바람-p8i Жыл бұрын
상엿소리꾼들도 예전엔 지금 이름난 판소리꾼들 못지않은 수준에 소리를 했었는데ㅡㅡ지금은 다 사라지고 예술무대에서나 볼수있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많이 아쉽지요ㅡㅡ어려선 자주 볼수있었는데ㅡㅡ꽃상여도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ㅡㅡ상였소리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네요 부모님 생각도 나고
@이희경-t4e Жыл бұрын
친정엄마생각나내요~87년도에꼿상여그리운엄마많이보고싶내요
@moneynam7442 Жыл бұрын
참... 전통이 남아 있으니 참 좋네요...
@양년치킨 Жыл бұрын
내가 살면서 한번도 못해본게 저 상여메는거.....요즘은 상여 안쓰잖아.
@thunderyoungman Жыл бұрын
제 고향마을 상포계가 있었는디 동네어르신들 나이들고 돌아가시고 자식들 도시로 나가고 나니 상여꾼이 없어서 꽃상여 사라졌네요.
@jameskim8806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 꽃상여 진짜 무서웠는데 오랫을때.... 근데 지금 옛날 생각나네요~
@micaam9729 Жыл бұрын
나이가 칠순인데도 아직도 마음은 엄마 아빠로 그리움에 언듯솟는 눈물속에 생생히 고여 오는서러움 언젠들 다시뵈어 이불효를씻을까.....
@공도연구소Ай бұрын
상여는 대차 소차로 나뉜답니다 태어나 결혼 할때 죽어서 두번 탄답니다 전라도 상여가 제대로 된 원조 랍니다 물론 팔도마다 다르지만요 저희 아버지 저 포함 상여소리 맥을 이여가고 있답니다 풍수지리사 장례지도사 상장풍 조선의 마지막 풍수사 김공도
@유남엽 Жыл бұрын
친정아버지도 상여로 나갔어요 아버지 생각나네요
@vvw4527 Жыл бұрын
하 눈물이 납니다
@박미령-v3f Жыл бұрын
상부상조하는 우리네 문화가 아직 살아 있다는게 감사하네요
@김효성-l2f11 ай бұрын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 외할머니 돌아가실때 섬에서 육지로 떠나는 저꽃상여를 봤었는데 회한과슬픔이 과거로 귀착되는구나 고달팠던 삶멀리하고 우리외할머니 하늘에 잘계시리라 보고싶어요 ᆢ할머니!
@이장명-z3x Жыл бұрын
내 나이 스무다섯살때 상여 앞소리를 했다 .
@金永順 Жыл бұрын
어릴적에 나이드신분이 전통옷 입고 상여위에서 하시던데~~
@youngsoonlim111 ай бұрын
울 아버지도 꽃상여 타고 가셨는데 오랜세월이 흘렸어도 생각이 또렷이 남니다
@미로-w2s10 ай бұрын
저손녀는 참 착하구나 복받을기다
@vvw4527 Жыл бұрын
할머니 허리가 굽으셨네요
@金永順 Жыл бұрын
허리굽으신 어른~이시대의마지막 어른이십니다~~
@공정거래-p7c Жыл бұрын
슬프다.
@정경자-z5z11 ай бұрын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ᆢ좋은곳으로 가십시요
@단비-p2s10 ай бұрын
꽃가마 타시고 천국으로 가시네요 참.보기좋아요 이련 문화가 언제 사라졌는지 아쉅기만해요
@terrienstrompes Жыл бұрын
40:18 '님'자는 남을 존칭하는 단어죠. 어머니 아버지는 직계존속이고 남이 아닙니다. 예외, 형님. 아버님이 아니라 아버지이요.
@金永順 Жыл бұрын
고인이 되신분은 님자 붙여도 되지않나요?부친,모친또는~~
@도글이-d9z Жыл бұрын
삶과 죽음은 말 그대로 공수래공수거 일텐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며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