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밤골에 살았었는데 어려서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얼마나 어렵게 고생하며 사셨는지 가슴이 아픕니다~ 살아본 사람들만 아는 거죠~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추억-r9q Жыл бұрын
눈물이 나네요 고생하셨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최윤호-h5g Жыл бұрын
봉천동 달동네에서 살았습니다 5식구가 단칸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래도 이웃간에 정이 있었던시절 온가족이 따뜻한 밥을 먹던기억과 젊은시던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user-zcvb7t Жыл бұрын
70년대 단칸방 6명 살았는데 부모님 3형제 누나
@QWERTYUIOPA9015 күн бұрын
고생했어
@pjreboot8302 Жыл бұрын
전 지금도 신림7동에 살고 있습니다. 7동은 단독, 다가구 주택지역과 달동네라고 하는 두지역으로 돼있었어요 지금 화면에 나오는 곳은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지만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과 놀던 그곳을 아직도 그리워합니다. 저때까지는 이웃사촌이라는게 뭔지 알던 시절이였는데...
중학생일때 나도 구로공단 삼립빵공장밑에 살 시절 한아이가 학교을 나오지안아 선생님이 찾아 가보라 해서 난곡을 감 버스종점에서 내려보니 거기서부터 물지게를 들고 올라가더만 그물에 흘린것이 얼어 빙판 그언덕들이 그냥빙판이었네요 진짜 관악산 골짜기 산꼭대기 끝에 산 친구임 그애 어머니는 일본인 어머니 병들고 숨을 못실정도 아파하심 그애는 가출한 상태고 난 정말 충격 먹음 정말힘든 시절 있였네요
@안재준-w9r Жыл бұрын
영상을 보고 글을 읽으니 그 당시 모습이 그려져서 가슴이 시립니다..
@coffee11137 Жыл бұрын
난곡은 수도물안나와 물을길어먹었어요 고모네가 거기살아 물길어 오던기억있어요
@시롤TV Жыл бұрын
선생님 그게 몇년도 이야기인가요?
@윤정도-c2s Жыл бұрын
70년중반~나도여기서 살아봤음 눈물나고 가슴시린 날들 지금다시보니 먹먹하네
@gyoon-dn2ln Жыл бұрын
80되신 어머니가 50인 저를 부산 영도 판잣집서 낳으셨는데 아마 여기분위기랑 비슷했던지 아님 더 어려웠을것 같음ㅠㅜ 짠~~~~~~한 영상ㅜㅠ
@Happyhan Жыл бұрын
나는 이런 아날로그 삶의 기록이 좋다. 그 시절 어떻게들 살았을 지 알 수 있는 기록이어서 좋고. 어려운 시절, 이웃끼리 서로 관심을 갖고, 챙겨주고, 의지하며 돕고 사는 모습 역시 매우 좋아 보인다. 그 속에서 배려가 묻어 나오고, 인내와 화합, 상호 봉사하는 인성도 배어 나온다. 물론 현재보다는 물질적으로 많이들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인내와 배려, 희생과 봉사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 자기 마음에 안들면 묻지마 칼부림을 하고 그 죄의 무게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가난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고, 2세들에게 가르치고 보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나나리-j9k Жыл бұрын
우리효숙이 지금은 뭘 하던 행복하게 잘~살고있기를 바란데이~!^^
@물흐르듯이-u1o Жыл бұрын
70년대를 살아본 세대 거의 못살아서. 고등 학교도 못가고 자아도 형성 안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남들보다 뒤처지니 자격지심에 주눅들어 살았었다. 내인생에 지우고 싶은 페이지. 그 청초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인생은 지나는 것인걸
@junesikhwang6949 Жыл бұрын
우와 대단하신 필력이십니다
@사명대사-n3g Жыл бұрын
난곡동 ㅡ 신림7동 아련한 기역이지만 1977년 여름 전국이 폭우 장마로 피해가지 뫁한 난곡동ㅡ참 고척동 고척대교가 넘칠뻔했지 할아버님 할머니 두분들이 홀연히 여행간 난곡동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난곡동 ㅡ 가슴에 묻는다
그냥..그냥..너무 마음이 아파요..착한 저분들 그렇지만 상처 받았을 저 분들 어딘가에서 따뜻하게 계시길 기도드립니다..
@임진영-m3o4 ай бұрын
이런 휴먼 다큐 너무나 좋아합니다. 우리들 삶을 기록으로 꼭 좀 남겨주세요. 남는 것은 기억 저 편으로 흘러간 우리들의 시대입니다. 생각 날 때마다 꼭 꺼내보는 앨범과 같은 추억들은 영원히 기억할겁니다.
@코스모스-m5m Жыл бұрын
대구 비산동도 지지리못사는 동네였죠 .😢60년도에 판자촌도 많았었고... 저 영상보니 참~~ 옛기억이 떠올려집니다.
@tv-ig1mj Жыл бұрын
78년생 난곡초등학교 다녔습니다 난곡시장앞에서 매일 학교까지 등교하기도 쉽지 않았죠~~ 달동네 진짜 많이 놀려 다녔는데요 어린시절이 생각 나네요~~ 😊
@symiso4797 Жыл бұрын
저의 동생들은 난곡국민학교에 다녔었죠.
@빠다-m4o4 ай бұрын
저도 78년생 난곡 초등 졸업생입니다
@jobobbi3 ай бұрын
79년생이고 난곡초등학교 졸업했습니다..개미문방구의 추억의 떡볶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개미 문방구 옆에 있던 또다른 문방구의 장애우 아저씨, 갈고리 손이 어렸을때 그로테스크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걸 기억하고 계신 분이라면 필히 난곡초등학교를 80년대 겪어보신 분일듯요...
@solee1126-y3nАй бұрын
05, 09 난곡졸업생 저희 아이들입니다 😊 임광관악파크아파트살아요
@tiny2292 Жыл бұрын
나 이거 보면서 진짜 울었다...
@박현욱-u5x Жыл бұрын
15:35 왠지 모르게 가슴 시린 풍경이네요.. 우리 현실은 이렇지만 눈이라도 내리니 아름다우니.... 마치 아름다운 포장지를 씌워주듯 위로같이 그렇게 느껴지는 모습이 먹먹하네요
@lanee3062 Жыл бұрын
저랑 같으시네요.저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변해버린 내 자신을 돌아보니 눈물 찔끔ㅜ
@주바라기역 Жыл бұрын
지금은 아련한 옛 추억이 되어버린 시절이지만 가슴이 먹먹할 만큼 그립습니다 ❤
@울랄라-l6f Жыл бұрын
슬프다 가슴이 울컥한다 모두들 어디에 계신가요?
@김기범-u2d4 ай бұрын
박효태 할머니는 납골장이요...
@쭌쭈니-i2h Жыл бұрын
동생이 이곳에 살았더랬죠...아주 추억이 많은 곳이었네요 눈내리던 추운날 삼복터널에 내려 터벅터벅 내려와 집에 도착하면 입에서 하얀입김이 얼굴을 가릴정도로 났고, 주무시는 할머니 깨실까 다락방으로 허리숙여 기어가 작은 창문밖으로 보는 불빛은 어느비싼집 테라스보다 아름다웠었죠 내리는 눈보며 술잔기울이고..아득히 멀지만..또 어제같기도 한 기억이네요..그립습니다.
@최성석-i4z8 ай бұрын
24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시간이 금방 지나가네요. 깊이가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예전모습을 보니 감사하네요. 정이 있고 깊이가 있는 자료 잘 보았습니다.
@Testdrivereviews7 ай бұрын
74년생입니다. 난곡에서 7살 때 딱 1년 살았는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이였네요. 머리속에 잊혀지지 않는 곳...
난곡동 이라고 부르기전에 낙골 이라고 했음 서울 이곳저곳에서 강제철거 당한사람들에게 산을 밀어내고 그곳에 땅과텐트를보급했음 강제적으로 낙골땅으로 와야했기에 화병 을견디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매일죽어서나갔다 한동안 즐 초상이었다 학교도 뻐스도 없었지 법원 단지 들어선곳이 산과논바닥이었다 산에서내려오는 물로 여름엔 목욕을하고 산에서뛰어놀았다 외국에 거주하기에 더욱 더 그리운 신림7동 2002년경에 가보니. 철거한 상태여서 서운했음😂 그야말로 먼옛날 이야기가되어버렸다 영상을 보니 반갑고 옛날생각 나서 댓글남겨봅니다.
@symiso4797 Жыл бұрын
맞아요.
@asfidnwqlfash Жыл бұрын
이런 곳에 교회가 참 정감 가고 좋음요... 저 시골 살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부유한 집이 많지 않았었고, 그래도 좀 약간 살만해졌어도 날마다 과자를 사먹거나 이러진 못하는 형편들이었어요. 교회 가면 과자도 같이 많이 먹고, 겨울에는 연극 준비하고, 여름에는 이거 저거 막 놀이 만들어서 하고 그랬어요. 당시엔 휴대용 게임기가 나왔어도 그냥 머 피하는 형식에 점수 올라가는 정도였어서, 거의 나가서 논 밭에서 뛰놀고, 초 겨울 바람 불면, 연 사와서 연 날리고, 더 추워지면 깡통 뚫어서 열심히 돌리면서 시냇물 언곳에서 썰매 타고, 눈 많이 내리면 비탈길 찾아서 비료포대에 짚 넣어서 어두워질때까지 놀았는데 ㅎㅎ... 아직도 시골집 작은 방에서 비내릴때 그 비가 흙에 부짖혀서 내는 소리를 잊지 못해요...
@김껄룩-b9m4 ай бұрын
낭만 미뗫다 ㄷㄷ;
@군포-w8j Жыл бұрын
시흥2동 달동네 맴버 입니다... 바로 ㅇ옆 동네라....애정이 가네유 ㅠㅠ
@아차산-z8h Жыл бұрын
시흥2동 - 칼바위산 밑마을
@myongm7996 Жыл бұрын
제때 대한민국 구석 구석 이 다르지 않았지요 달 빛을 불빛 삼아 깜깜 한 밤 걷던 기억 무거워 앞 사람 발 걸음 딸라 걷던 시절 그래도 그때는 정이 있고 온 거족 이 모여 살던 그리운 사절 아 아 눈물 나네요 특히 이 머나먼 미국 땅에서 몇 십년 만에 추억 을 만나니
동대문구 이문1동에서 수십년을 살다 재개발로 쫒겨나 이사한 곳이 현재 마포 임대 아파트.. 이문동은 2019년에 철거를 시작했다. 고향은 아니지만 거의 20년을 살아온 동내이다보니 철거한지는 5년도 되진 않았지만 왜 이리 그리운지 모르겠다. 울고 웃으며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은 내동네 이문 1동. 그자리엔 수십층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고 철거민인 나는 여전히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고 있다.. 의문의 불난 집처럼 내 마음도 저 불속에 내던져졌다..
저는 2014년 한국외대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이문동에서 첫 서울 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문동에 방문했을 때는 제 고향 포항과 분위기가 비슷해서, 정겹고 따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10년가까이를 이문동 구석구석 다니며 참으로 아름다운 동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끄적여 봅니다 늘 건강하십시고 하시는 일 잘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정낙숙 Жыл бұрын
그런데
@김미례-r6w Жыл бұрын
@@vynyl20:10 20:12
@지니초이-d1g Жыл бұрын
지금은 흔적도 없는 모습에 못 살았지만 나름 서민들의 애환이 넘친곳이죠 지금도 떠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분들도 아파트가 들어서며 엄청나게 집값이 치솟아 집 떠난 분들은 살수 없지요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 살고 있을지?
@절대풍선 Жыл бұрын
눈물이 나와서 못보겠다 모두들 건강 하시고 삶이 풍족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hagley-g6i Жыл бұрын
1977년 여름 심한 호우로 낙골 사람들 신대방동 문창국민학교 교실로 피난살이 하더라구요 때마침 여름방학이라 빈교실에 모여 며칠씩 마을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제 기억에 해마다 호우때 마다 일어나는 낙골 사람들에게 연례행사처럼 비만 좀 많이 오면 어김없이 문창국민학교로 와서 며칠간 머물더군요 예전엔 저 동네를 낙골이라 불렀어요 1973년에 문창국민학교에서 저 부근으로 소풍을 갔는데 쌀농사 짓는이도 있었고, 숩굽는 이들도 있었어요
난곡은 아니지만, 2001년에 미성중학교 다니고 있었습니다. 효숙이는 꼭 의사가 됐으면 좋겠네요😢
@shanhuzhao87398 ай бұрын
나도 처음 서울 생활 06 년부터 난곡서 살앗는데 정이 제일 많이 드는 동네였죠.
@hoon9440 Жыл бұрын
철거용역 깡패들이 몰래 불지르고 거주자들 중에 일당발이 모집해서 철거 시켜서 주민들 서로 싸우게 하거나 말못하게 만들고. . . 돈없고 힘없는 서민들의 삶은 참 고달프고 많이도 서러웠겠네요 하지만 돈없고 힘없다는게 선악중에 항상 선은 또 아니니 ㅠㅠ
@이상원-m9n Жыл бұрын
서민들은 몬 서민들입니까 빈민들이지
@Ann-bc5kg5 ай бұрын
76년생 난곡국민학교 그립다😊
@user-mr0cy1jw9 Жыл бұрын
🦋Will spring come to NAN GOK.🦋 😭😰😢ㅡDon't cry for me. NAN GOK.👨👩👧👧
@symiso4797 Жыл бұрын
😂 난곡에 사셨었나요?
@user-mr0cy1jw9 Жыл бұрын
@@symiso4797 옛날에 서울대 부근에 신림동에서 자취한적 있어요,ㅡ 달동네 사시는 분, 삶의 무게를 들어주어야 할 책무와 의무가 국가에 있기때문에, 양극화로 인한 빈곤층 해소는 국가의 책임입니다,🐸🐸🐸🐸🐸
@ootamanabu5 ай бұрын
99년에 야간에 윗길을 자동차로 지나가다가 우연히 밤의 오랜지색 불빛 보고 놀라서 차를 다시 유턴시켜 안쪽에 차를 넣고 주차한 다음 주변 돌아본게 전부입니다. 그때 추억이 있어서 다음날 토요일도 차를 가지고 다시 찾아가봤습니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주거지였군요.... 개발될때 신림7동이란걸 알았습니다.
@SH-rm7xf2 ай бұрын
70년생 신림3동 난곡초 남강중 졸업 그때 그시절에 교회에서 7동3동 크리스마스2부날 돌아다니면서 고요한밤~~ 노래부르던 기억이남 아직도 동창들 많이 살고있음 눈오는 겨울철엔 나무썰매 만들어서 언덕위에서 타고 놀던기억도 그립네요
@G63-o2g Жыл бұрын
그래도 전 부엌 화장실 샤워할수있는 욕실 있고 방3칸에 2층 전세집 살았는데 그때 달동네 사는 사람들 많았는데 ㅠ
@news7324 Жыл бұрын
아련하네요
@진찬영-q5i5 ай бұрын
55:30 민진아트 여기 효숙이네 집은 아직도 있네요. 옆 동네라 궁금해서 자전거 타고 가봤는데 빈집이더라고요. 효숙이 언니분 효숙님 송복순 아주머니 근황이 궁금하네요.
@david80512002 Жыл бұрын
저기살면서 힘겹게 사법고시합격한 선배형이 생각나네요~~
@왕인현-c8n4 ай бұрын
기다리셔요 언젠가 좋은일이 있을겁니다
@설익은곰11 ай бұрын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의 그리움이 있던 곳이 일본에서 10년 정도 살다 오고 그 추억이 그리워 무작정 찾아 갔는데 그 전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쉬웠습니다......그 당시 봉천 구세군 영문에 다니시던 모든 분들이 너무나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혹시나 그 당시 그곳에 머물렀던 분들이 제 글을 보시면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제 나이는 56세 입니다.... 김봉화 사관님이 계셨던 시절 이였습니다.
@taock2024 Жыл бұрын
복지가 꼭 필요한 이유 ,더불어 같이 사는사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가슴아픈 영상이네요. 빈익빈 부익부가 더 극명하게 양극화되는 사회에서는 서민들은 더 고통받죠 ..그래서 더욱 정치인들을 잘 뽑아야 하는 현실입니다
@rtfm87085 ай бұрын
15:00 저도 저시기에 나름 산동네에 살았었는데 저땐 저렇게 교회에서 새벽송도 많이 돌고 했는데... 요새는 항의가 많아서 그런지 아예 없는거 같네요 지금이 여러모로 살기에 더 좋기는 한데 뭔가 훨씬 삭막해진 느낌도 듭니다
@라운지-k4n8 ай бұрын
난곡동.. 제일 가난했었지만 비교할 부유함이 없었고 어렸기에 내 인생 가장 행복했었던.. 그 뒤로 어중띠 먹고 살만한 동네들.. 거치면서 상처받고 때묻고 같이 동조하고 ㅜㅜ 80년생 난화 친구들 보고싶다
@여담-y4u Жыл бұрын
눈물이 난다
@골골골-c9d6 ай бұрын
그 떄 그 시절에는 동네사람들끼리 가족처럼 잘지냈지요.... 그립네요 그 때 그 시절이...
@우주태양별달희망 Жыл бұрын
어릴적 생각이 나네요 요즘은 좋은 시절이지만 전철을 타고 학교 다니구
@hyunwoo_yi Жыл бұрын
22년전 영상 지금도 봉천동 신림동 달 동네 같은데 있는거 같던데
@xiahoudun7489 Жыл бұрын
2004년 난곡에 바이크를 타고 올라가던 세월이 벌써 20여년전이네요.. 세월이 무상하네요
@명훈-l1b Жыл бұрын
난곡지구.............. 진짜 신림동 봉천동 이 산악지대라 달동네가 많았지 서울인데 서울아닌 그런곳....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월세가 싸니까 계속 올라가던 그런곳...
@수정-j4h Жыл бұрын
효숙이는 어디서 살까요 효숙엄마 잘 계시는지요 한번 만나고 싶네요
@TV-hd9ik10 ай бұрын
화질개선 리마스터링 됐으면 좋겠당,ㅜ
@잿빛날개-h6j Жыл бұрын
우리네 인생인것을....
@617shnam4 ай бұрын
너무 슬프다 . 누군들 가나하고싶어가난한가 ? 근데 이것이 이십여년전일이군 . 다들 어디서 살고계실까 ! 효숙엄마! 그리고 효숙아 지금 어디있니 ? 눈이내리고 캐롤이 들리고 눈물난다 .....
@김기범-u2d3 ай бұрын
일을해라.
@별의전설星伝説 Жыл бұрын
청춘을 돌려다오😢
@김경이-n5s Жыл бұрын
저어릴때산동네살던생각이나네요
@etn33416 ай бұрын
효숙이 언니 미인이시네
@Jayunholy Жыл бұрын
세이브마트 옆에 사는데 이 영상이 뜨네요 ㅋㅋ
@샤월-k5e2 ай бұрын
서울 중구 신당동은 건물들과 동네 배경은 지방광역시 서민동네고 시세는 지방광역시 부촌동네던데
@hanbum11 Жыл бұрын
저 임대아파트가 현재 신림 푸르지오로 재건축되어 현재 12억정도 합니다 지금 화면에 나온 할머니들 다 10억대 자산가 되셔서 세입자 받고 본인은 고향으로 가셨습니다
@shk6270 Жыл бұрын
저기 나오신분중에 집주인 몇안됨
@JG77999 Жыл бұрын
저기사람들 거의 세입자 돈없는 사람들일 텐데 ? 가짜뉴스아냐 ?
@shk6270 Жыл бұрын
@@JG77999 효숙이엄마? 같은 집주인은 12억대 집주인이되었겠지만 모 생활비 외 넉넉하고일정하게 들어오는 수입이 없는한 재산세 내면서 살기가 그리 쉽진않을듯요..
@didasa5039 Жыл бұрын
자가 본인집이면 대출받고 구입할수있고 세살면 이사비용받고 재개발비용받고 이사가는거지 ㅋㅋ 달동네 살았고 재개발되면 저 아파트 다 사는게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