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할수밖에 없는 정황들 1. 갑자기 징집한 병사가 대부분인데 수준이 너무 낮아서 신립의 정예 기병만으로 전황을 뒤집기 어려웠음. 징발병을 어떻게든 써먹어야 했는데 퇴로를 두면 징발병들는 조금만 밀려도 도망치기 일쑤여서 궁여지책으로 배수진치고 싸우게함. 2. 보급에 문제가 많았음. 머릿수는 어떻게 채우는데 보급이 노답. 조선대 전쟁을 보면 항상 보급 부족에 시달림. 방어전으로 농성하면 어느정도 지연은 가능한데 갈수록 방어선 유지 자체가 힘들었음. 인적보급(실무급 군관, 화기 및 투사무기 숙련병), 물적보급(장비 및 소모품, 식량)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소모적 지연전은 오히려 자체붕괴를 일으킬수도 있었음.(당쟁 때매 줄없으면 관직진출이 좌절되니 역량 없는 관료들만 나옴) 3. 중앙 정부의 압박. 고려말 왜군이 침략해서 수도 털린 기억 때문에 어떻게든 수도 진입은 막자는게 공통의견이였음. + 방어전으로 농성하면 적을 선제격퇴하지 않는다고 졸장이라 폄하하고 항명한다 모함함.(이순신장군님 사례) 4. 적을 과소평가함. 전형적인 조선대 안일함. 항상 대비해야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만하고 실행력이 없음. 예를들면 병력증강 안건이 통과되려면 재원마련책, 인적 편제 같은걸 해놔야되는데 그냥 언제까지 병력증강해야한다 말만하고 끝. 그렇게 흐지부지되 버림. 그래서 왜란때 일본군를 고려말 왜구(해적) 정도로 생각하고 대응함. 그때 당시 데이터는 있으니까. 근데 그 데이터 조차 상세묘사가 아니라 그냥 어느정도 병력으로 어디서 용감하게 싸워서 대승했다라고 적힘.
@노니나-z7f3 жыл бұрын
123번은 전부 변명같구 딱4번이 맞네
@김기백-z9t7 ай бұрын
1. 신립이 가진.병력들은 정예병들이였고 징발병을 어떻게 든 쓸려고 했으면 야전 같은 곳이 아닌 엄페물이 맡고 익숙한 지형에서 싸워야 했음 2. 보급문제였다면 청주성에서 가까운 단월에서 막는 방법도 있었음 3. 탄금대를 고집한건 신립이였음 신립 휘하에 있던 장수들은 조령에서 막야한다고 수십번 신립에게 간청했지만 듣지 않고 기병을 활용해야한고 판금대를 고집한건 신립임 ',
@vivablues027 ай бұрын
무능 무능 0:55
@jwc50046 ай бұрын
변명, 핑계 오지게 써놨네 그냥 적을 무시한거지 전쟁 터지기 전, 후에도 그렇게 왜군 조총에 대비해야 된다고 옆에서 조언줘도 싹다 무시하다 그냥 학살수준으로 정예병 몰살시킨게 신립인데 쉴드 칠걸 쳐라 선조가 빨아주니까 뭐라도 된줄 알고 설치다가 기본중의 기본인 푹푹빠지는 곳에 기마병 닥돌?? 죽을려고 작정한거지
@해링박사3 ай бұрын
걍 문경 요새에서만 버텨도 일주일은 버틸 수 있었음
@user-uk2pk3yv9w4 жыл бұрын
3:15 김여물 장군 존경합니다! 3:18 도망왕 생존왕 이일 언행불일치... 4:14 3천~8천 기마병이 15명 정도로 줄어드는 마술
@삥뽕-o7o4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
@역사채우기3 жыл бұрын
신립은 이 전투로 그간 여진족과 싸우면서 쌓았던 명성을 잃게 됩니다
@한밤의드라이브3 жыл бұрын
명성만 잃으면 다행이죠. 목숨까지 끝났으니...
@정보-p4n3 жыл бұрын
근데 생각보다 피해 많이 입힘. 여기선 그냥 쳐 발린것처럼 나오지만
@백승엽-x4p3 жыл бұрын
@@정보-p4n 뭔피해를많이입혀요ㅋㅋㅋ 실제기록에서 일본군사상자가 150명입니다 조선군은 16000명중 3명을제외한 나머지 전사
조령에 군대를 배치하여 싸우는 것이 훨씬 이득일 수 밖에 없는게 고니시의 왜군 입장에서는 한양에 빨리 가려고 조령을 우회한다 해도 자기들 배후에 신립의 군대가 있는 것 또한 부담이 클수밖에 없음 결국 왜군이 조령으로 오면 지리적 이점으로 유리하게 싸우면 되는거고 조령을 우회하면 뒤따라가 배후를 쳐서 피해를 입히는게 가장 좋은 전략적 선택이었음
@HRmocap4 жыл бұрын
아니 왕건에서 신숭겸을 연기한 김형일님. 근데 신립장군은 신숭겸 집안 평산 신씨의 후손이랍니다~??? 조상연기와 후손연기를 한번에 하시는 김형일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주소녀-r3b4 жыл бұрын
플러스 태조왕건에서 신검역할을 한 이광기씨도 있습니다 ㅋㅋㅋ 고니시 유키나가
@깔끔정리-h4o3 жыл бұрын
그러니 명예 평산 신씨 될 만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oloplay2467 ай бұрын
이쯤이면 신형일로 바꿔야할지도 ㅋㅋㅋ
@이누-f4c4 жыл бұрын
이일 탄금대전투 직관하네
@리온-j1l4 жыл бұрын
ㅋㅋ 불사신
@백종호-m6q3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 4대 빤쓰런 장인 선조 원균 이일 박홍
@김영호-r6g4y3 жыл бұрын
@@백종호-m6q 이각 추가
@우한더닫갈비2 жыл бұрын
@@백종호-m6q 배설 추가
@케이노루2 ай бұрын
@@백종호-m6q 원균은 칠천량때 빤스런 못해서 사망 ㅋㅋ
@liberer14 жыл бұрын
조총이 소수의 사기 높고, 수년간 훈련 받고, 강력한 갑옷을 입은 고가치 병력을 손쉽게 사살 할수 있었지만, 하지만 조총부다 더무서웠던건 절대 다수의 일반병력에게 큰피해를 입힌 장창(나가에야리) 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무예보통지에 언급된 장창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진 창길이가 일본에 비해선 짧은 편이였고요. 전국시대로 인해 전쟁기술이 너무 발달해 있었음...
@AF-qk8ty2 жыл бұрын
일본군이 보병 만으로도 강력했던 사실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장창이고 조선이 개털린 이유가 궁기병을 사용한 대회전인데 이거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이 단지 탄금대의 지형적 특성에만 집중함. 실제로는 그 어떤 지형에서도 이길 수 없었음. 조선의 전술은 화약무기를 가지지 않거나 대기병 전략이 없는 부대를 상대로나 효과적이지 일본군처럼 실전 경험이 많은 부대에게는 그야말로 쥐약임.
@AF-qk8ty2 жыл бұрын
조선은 그 이후로도 장창병을 키우지 못함. 그래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서 개털림.
@영원한코로나2 жыл бұрын
@@AF-qk8ty 그냥 그걸떠나서 조선의운명은 망할운명이었음 귀족들은 세금을 안내고 놀고먹으니 돈도부족해서 무기개발도 못하는데 당연히 망할수밖에 그리고 조선이 망한 가장중요한건 일본을 작은 섬나라라고 무시해서지
@beatbuzz22 жыл бұрын
대신 조총병만 오지게 키움 ㅋㅋㅋㅋ
@황인재-p9v Жыл бұрын
@@beatbuzz2 그 조총병도 병자년때 털림 똑같이 조총육성했는데 결과가 다른 조,일 두나라 에휴 ㅋㅋㅋ
@dayschool26074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나 징비록에 기록된 류성룡의 평이나 신립이 소규모 국지전에서는 명장일지라도 대군을 이끌 능력은 없다는걸 증명한 전투라 봅니다. 중대장 혹은 대대장으로 적당한 지휘관을 사단장으로 쓴 느낌...
@hikerfrantz58292 жыл бұрын
중대장은 무슨. 소대장급이나 될지 안될지...
@bartier72112 жыл бұрын
신립은 그냥 무능 자체
@군사-p7v2 жыл бұрын
근데 다른 놈들은 더 ㅄ들이라 ㅋㅋㅋㅋ
@이장훈-q7y2 жыл бұрын
신립은 명장이다.
@강문열-w7e Жыл бұрын
그래도 그 흉악하고 날랜 여진족 상대로 국지전에서 연전연승하는것도 쉽지않지,, 다만 대규모 회전 경험이없으니 결국 익숙한대로 국지전하듯이 하다가 깨진거겠지,,,,,
@사건의지평선-y1s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아무리 봐도 싸울 줄을 모름..
@백승엽-x4p Жыл бұрын
어쩔수 없는게 조선이 평화기간이 너무길었는게 크죠 반면일본은 임진왜란직전에 대규모 전국시대로 피터진 싸움을 많이해 전투력이 하이브상태라 군사전력,보급,작전등 조선군보다 우위를점했던게 많았습니다
@정연재-i5q6 ай бұрын
너가 싸워라
@jsl28905 ай бұрын
@@백승엽-x4p 맞아요 거기다가 너무 성리학에 작은 정부 지향과 더불어 여러번의 사화로 군사력이 너무 약해졌죠
Drama name is Jing Bi Rok. I bought the DVD set at Ebay back in 2018.
@kahraman65495 ай бұрын
한마디로 背水陣을 치고 전투를 한것인데 당시 병력이 8천이었지만 대부분 전투경험은 고사하고 훈련조차 제대로 안되고 급조된 병력이 대부분이다 보니 탈영병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벼랑끝 전술을 썼던건데 병사들간에 기량차이가 현저했고 기마병들이 주력인 시점에서 탄금대에 늪지대가 있었고 전투 당일 비가 내려서 효과적으로 일본군과 교전하기 어려웠던 악전고투의 상황이었습니다🧐
@jallandajamina2344 жыл бұрын
실제 고니시 부대에 같이있던 포르투갈 선교사? 기록에 따르면 탄금대에서 맞닥뜨린 조선군 기마부대는 반달대형으로 7번이나 돌격해왔다고하니 .. 도망 안 가고 공세를 취했다는거라도 위안을 삼아야지
@이하늘-c3g4 жыл бұрын
징비록에서 탄금대 전투의 장면을 생략해 버렸지. 제작할 돈이 없어서.
@오렌지후TV4 жыл бұрын
욕 진짜 오지게먹었죠 예고편부터 본편 시작부터 들판서 대전투 할 것처럼 해놨는데 ㅋㅋ
@ybpark3454 жыл бұрын
동래성도 생략
@흥미로운인생4 жыл бұрын
@@ybpark345 그건 그나마 전투하는거 좀 나옴
@ybpark3454 жыл бұрын
@@흥미로운인생 안나와...부산진성 전투가 나오지
@this_is_the_vibes4 жыл бұрын
ㅠㅠ
@사설탐정사명탐정이정2 жыл бұрын
난 신립장군 입장이 이해간다 그동안 조선군이패배만해왔고 군사들은 겁에질려있고 조령에서 기습공격해 승리하기보단 탄금대에서 정면승부로 승리하여 조선군전체에 사기를 올리려했는거 아닐까 저당시 조선군에게는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니
@일1-k4n2 жыл бұрын
아님. 실제 기록에서는 왜군을 얕잡아봤다고 함.
@limrud1122 жыл бұрын
목숨을 내놓고 위험속으로 돌진하여 만에 하나라도 성공 시, 적의 기세를 꺾고 흐름을 아군 쪽으로 돌리기 위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친 건 이해가 간다만.. 그건 소대나 중대 규모의 부대를 소모품으로 쓸때 얘기지 나라의 명운을 걸고나온 최정예 주력군을 가지고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니었음.. 한마디로 신립은 소대장 또는 중대장 정도가 가질 법한 안목과 통찰력으로 대전략을 다룬 것임.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참혹했고..
@nasai89 Жыл бұрын
실제기록은 5~8만임 그냥 5~8만 군사로 역대급 트롤짓함
@wolf25420 Жыл бұрын
@@nasai89선조실록, 징비록, 승정원일기 전부 다 8천이라고 기록하고 있음
@user-so1fl4zu6n Жыл бұрын
@@nasai89그건 용인전투 아님?
@굥정한사회-v2w4 жыл бұрын
소총의 장점 빠르게 누구나 배울수 있다 활 단점 숙련도 차이가 아주크고 여러번 활을 당길시 피로누적도가 아주크다
@금돼지-h9y4 жыл бұрын
화약의 힘으로 쏴서 관통력도 조총이 더 낫죠
@jjunk157486324 жыл бұрын
전쟁이 장기화되면 숙련된 병사들부터 죽어나가는 면을 고려했을 때 숙달하기 쉬운 병기는 중요한 듯
@로로로롤-n4h4 жыл бұрын
조총 장전하는게 더 피로누적이 크지않나요
@임재현-h8o4 жыл бұрын
총은 숨어서 손이나 머리만 내어놓고 쏠 수도 있지만.. 활은 무조건 상반신이 드러나게 되어있는 자세지요.. 그 차이도 클 것입니다.
@인민여동생4 жыл бұрын
@@로로로롤-n4h 그냥 손가락 깔짝깔짝 하면 장전되는데 활은 시위를 당겨야 하잖아요 ㅎㅎ 국궁 한번 당겨봤는데 표적 근처라도 가려면 30kg 정도 장력은 땡겨야 하더라고요 근데 쌀 한 포대가 15kg...ㅎㅎ
@김이리-w3r4 жыл бұрын
진짜 기대했는데 .... 연출이 너무 아쉬워서
@문준서-k6k4 жыл бұрын
@@starsandfilm 아무리 그래도 반지의제왕은.....블록버스터영화인데
@peacekeeper__78136 жыл бұрын
4:52 조준한거냐?
@심영지밥3 жыл бұрын
정조준 안해도 저정도 인마(사람과 말)가 뛰어오면 어디든 맞음
@tv-iq2fm10 ай бұрын
애초에 신립 장군은 현대로 치면 군단장이나 대규모 야전군 또는 집단군등을 이끄는 지휘관이 아니라 기갑여단장이나 기갑사단장에 어울리는 장군임. 근대 그런 인물에게 조선 중앙군 소속 기병부대들과 정예군들을 맡겼으니 저런꼴이 안날리가....
@9729s9 жыл бұрын
당시 신립의 병력은 1만이 넘지 않았을것임. 만약 잡병일지라도 조선 병사수가 월등하게 많았다면 신립의 부장들이 죽어라 방어전을 주장할 이유가 없었을것임. 게다가 조선의 제승방략은 동원되는 병사들이 말이 정예병이지 평소 훈련상태가 어설픈 오합지졸들이라서 탈영병 문제도 심각했을것이고 배수진을 친 이유도 이때문이라는게 의견이우세한 이유임. 신립이 북쪽에서 공을 세운걸 보면 중앙에서 약간 정치질을 하려해서 문제지 개인능력이나 장수로서 능력 자체는 출중한 인물이었을것이고 무능하게 아군을 몰살시킬 수준의 장수는 분명 아니었음. 그리고 조선이 어느정도 시간만 있었다면 10~20만의 정규군을 모집해서 싸웠을테지만 초반에 너무 순식간에 밀려버린것도 문제임. 조선이 병적에 기록된 숫자는 20만 가까운 군사대국이었음. 거기에 군적을 제외하고도 상당수 백성을 동원이 가능하기때문에 병력상으로는 조선이 열세에 몰릴이유가 원래는 없었음.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이 병력들이 모이기 전에 집결지를 빼앗기거나 지휘할 장수가 오지 않으면 이 병력은 그대로 흩어지기 일쑤라는것. 조선은 군대를 왕이 너무나도 무서워해서 병력을 집중시키지 않고 아주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유사시 이를 특정지역에 모아 병력을 운용하고 각 지역에서 병력을 모으면 그를 지휘할 장수는 중앙에서 내려보내는 통에 시간이 너무 오래걸리는 단점이 있어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등에서 효율적인 군사대응을 못함.
@farm7d9084 жыл бұрын
2:56 이러한 부분이 진짜 욕먹게하는거다. 서울에 있는 군사까지 다 데려왔는데 훗날을 도모한다는게 이해가 전혀 안된다. 신립은 분명히 일본군 요격과 공격의 지연을 위해 출격했을텐데 뭔 훗날을 의미없이 얘기한더냐...
@손노무사4 жыл бұрын
한능검 에서 배웠는데, 저때 제도가 중앙에서 모아서 보내도록하는것이어서 ..제대로 갖춰지지도않았다고합니다
@디나-y3p4 жыл бұрын
@@손노무사 저것도 선조가 그나마 모은 병력 털어서 준거 아니에요?
@오근세-k3i4 жыл бұрын
@@디나-y3p 북쪽이 주 무대인 군대를 이동시킨 것 보면 사실상 총력을 기울인 거죠..
@voyagetoyou3 жыл бұрын
@@디나-y3p 신립의 북방 최정예 기병 500 + 한성수비군 기병 8000 + 급하게 징집한 8000명이였습니다. 당연히 신립 스타일이면 뒤에 오합지졸들은 나두고 기병으로 승부보려고했죠. 전쟁 초기는 일본이 개돌하는거 기마병들의 화살로 약간의 피해를 줬고 그 뒤에 고니시가 진영을 3개로 나뉘어서 좁혀늘어가자 진흙에 갇힌 기마병들은 힘도 못쓰고 몰살 뒤에 징집병들은 도망치려고 강으로 들어가서 죄다 익사당함.. 그게 탄금대 전투임 일본군 200명정도 죽었나
@korea_history2 жыл бұрын
봐도봐도 재밌습니다..
@marcogekondo56544 жыл бұрын
Sorry,name of this series in english plz
@xktwnxl4zlx2136 ай бұрын
Drama name is Jing Bi Rok. I bought the DVD set at Ebay back in 2018.
@랑슬로Lancelotdulac4 жыл бұрын
1:49 훗날도모는 이일 ㅋㅋ
@kdk00894 жыл бұрын
전략.전술 부재의 최적화된 지휘관이 당시 보여줄수 있는 패전의 교과서적 전투~ 탄금대가 아닌 기마병을 포기하고 문경새재에서 목숨을 걸었다면~~ㅠ
@kdk00894 жыл бұрын
@@김재걸-m2g 조령이 문경새재입니다~ㅋ
@freakinchicken4 жыл бұрын
8000이 하필 민간인이라 탈영병 폭증하고 신립 뒷목잡고 쓰러짐 하필 산길이라 기병도 활용을 못함 평야에서 기병 1명은 보병 10명을 상대함
@쌈짱모델미남얼짱4 жыл бұрын
@@김재걸-m2g 정확히 말하면 배수진도 아님 물얕은곳에서 일본군이 돌아들어와서 완전도륙당함 ㅎㅎ
@삼번국도3 ай бұрын
전투는 먼저 상대가 어떤 군대인지 파악하고, 방어를 하든지, 공격을 하든지 상대에게 맞추어 전술을 짜고 그걸 숙달되도록 연습해야 승산이 있다. 근데 기마족인 여진족을 상대하던 병사들을 데리고 보병 위주이면서 조총을 주무기로 하는 적과 마주했으니 패배는 당연한 거였지.
@제라드-b7lАй бұрын
날라오는 총알을 어떻게 피하냐?
@女忍者3 жыл бұрын
충주탄금대전투 남한강자전거길 이랑새재길 탄금대가보았던기억이난다2017.6월
@홍성호-q3j4 жыл бұрын
이래저래 해도 정통사극은 역시 케이비에스... 케이비에스 최고👍👍👍👍 이러면 정통사극 부활해 주겠지? ㅠㅠ
그렇죠 그게진리인데 무시하고 지나칠걸 나름염려해서 탼금대를 잡은거죠 근데 더깊게 생각하면 살아서 후미라도 치는게 더낳은데 신립이 생각이 짧은거죠
@임준혁-c9j Жыл бұрын
신립의 군대가 기병중심이기에 혐중한 지형인 문경새재에서 방어하기 힘들어서 드넓은 탄금대에서 적을 상대한거죠 뭐..
@피타-k7q2 ай бұрын
전투를 하고 싶어 조선에 왔지만 자꾸 학살만 되어버려서 당황한 다이묘면 개추!!!
@cms07934 жыл бұрын
조령에 병사들 조금이라도 보내서 적의 진군을 최대한 늦추지…… 추풍령으로 우회할수 있다고도 했지만, 추풍령이 평야도 아니고, 거기다가도 소수의 아군을 보내면 충분히 진격을 늦추고 적의 기세를 조금이나마 꺾을 수 있었을텐데…굳이 늪지대 펼쳐진 탄금대에서 기병대로 돌진…. 기동력을 잃은 기병은 그냥…쉬운 먹잇감이지… 오죽하면 후에 이여송이 조령을 보고 신립은 참으로 지략이 없는 사람이구나 라고 말했을까…
w olly 그러한 전술을 조령,추풍령,죽령을 끼고 했다면 충분히 적들은 경상도에 가둬둘 수 있었다고 봅니다. 뭐 만약은 없지만, 경상도에 갇힌 왜군들이 보급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호남으로빠르게 진격 루트를 바꿨을수도 있겠네요
@wolly61624 жыл бұрын
@@cms0793 그러면 자연스럽게 조선에 유리한 전게가되고 조선은 정비할시간을벌게되어 명나라는 지원군을 보내지않고 명나라가 망하지 않을수도 있었을것 같네요
@홍사람-c1h2 жыл бұрын
실제로는 조정에서 추풍령과 죽령에도 다른 장수를 보내서 막고 있었고 조령도 변기 장군이 막고 있었는데 신립이 변기장군을 철수시켰다고 함.
@wolf25420 Жыл бұрын
추풍령에서 500의 군사로 가토군대를 몇일 동안 막았음. 수가 적어서 후퇴했을 뿐이지 저 8000명의 군대로 조령과 추풍령을 막았다면 임진왜란 내내 막을수 있었을 듯
@moorejamysternly7533 Жыл бұрын
조선군이 대규모 회전에 약함을 드러낸 전투임. 무엇보다 홈에서 싸우는데, 신립이 현장지휘관출신이 아니라서 4~5월의 달천평야 습지 지형에 대해 무지했던건지.. 8천중 3천이 갑사라 해도 대부분 궁기병이고 5천은 급한대로 끌어모은 오합지졸이라 공성전도 아니고 야전에서는 쓰기 매우 어려운 상황. 적의 병력은 아군의 2배. 어차피 조령을 틀어막아도, 죽령을 통과해서 한성으로 달려오는 가토 2번대와, 추풍령을 통과해서 한성으로 달려오는 구로다 3번대도 신경써야하는 상황. 거기에 조령을 막는다고 해도 샛길이 많아서 다 못막고, 보급문제도 걸려있음. 충주성에 들어가서 공성전을 유도하려해도 고니시가 응전할지는 미지수. 고니시가 응전해도 2,3번대는 오히려 쌩까고 한성으로 달릴 가능성이 매우 높음. 그렇다면, 내가 신립이었으면 가토와 구로다군을 막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위해, 5천 보병을 그냥 임진강방어선으로 보내버리고 3천 기병으로 카이팅치듯 유격전을 폈을 것임. 어차피 한성은 뚫릴 수 밖에없음. 조선이 조금이라도 덜 불리하게 전황을 전개하려면, 병력 소모는 최소화하고 각개격파를 막고, 공성전을 유도하며, 기병부대를 운용해 유격전을 폈어야 명군이 오기 전까지는 잘 싸울수 있었을 것임. 정규군이 이렇게 그냥 꼴박해서 다죽어버리니까, 용인전투제외하고 권율이 정유재란 마지막까지 도원수로서 이끌었던 조선군은 1만이 채 안되었음.
@육군대장-p9h27 күн бұрын
신립 장군의 기마병으로만 싸울순 없었음 나머지 모인 병사들이 다 오합지졸 인데 전투중 도망 갈수도 있고 그래서 퇴각로 없이 싸우려고 탄금대를 선택 하신거임 어찌 되었든 그 당시 목숨 걸고 싸운 선조들이니 그들의 희생에 감사 해야 한다
@감생이-t1k2 ай бұрын
올인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hbsci0204 Жыл бұрын
한신도 조나라를 칠 때 배수진을 쳐서 이겼다. 하지만 전략이 있었다. 1. 죄다 신병이라 전투 개시 후에 도망병을 우려했다. 그리되면 한순간에 진영이 무너져 버릴 걸 알았다. 2. 진여가 자신보다 대군이고 정예병이라 얕잡아 보고 전군을 몰아 돌격할 것이라 판단했고 적중했다. 3. 기습 공격조. 전쟁 발발후에 빈 도성을 공격하고 성루에 한나라 깃발을 꽂으라고 명령한다. 이를 본 조군은 스스로 무너졌으며, 진여는 도망치다 길을 막는 자신의 부하들을 칼로 베고 길을 튼다. 그 과정에서 분노한 병사들에게 살해당한다. 신립은 대체 무슨 전략과 전술이 있냐? 기병 몇 십기로 조총으로 무장한 대군을 향해 돌격한 거? 그 다음 부하들 죄다 전멸시키고 자살한 거? 개병신임. 조선 최고의 장수? 그냥 개병신임.
@andnoah Жыл бұрын
후에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 까지 진출했다가 여진족에게 박살난거 보면... 기병전술이 꼭 패착수만은 아니었었던듯...
@vivablues027 ай бұрын
여진은 치고 빠지기 잘힌잖소
@warrior-z3k4 жыл бұрын
만약 문경으로 들어갔으면 고니시를 막아낼수 있었을지 몰라도 포항으로 돌아가는 가토는 서울까지 그냥 보내줄수밖에 없었던걸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폭망하기는 했지만 충주를 선택한것 자체로는 합리적일수도 있음.
@jqgj66924 жыл бұрын
그것도 그런대 그렇다고 천혜의요새를 왜 그냥 버리고옴 거기는 소수의 병력으로 대군을 막을수있다던대 그럼 병력 나눠서 분산시키면 안댐?
@이케르-y4o4 жыл бұрын
문제는 가토가 죽령에서 조선군한테 차단 당해서 조령으로 넘어왔다는거지
@승모홍-z2r2 жыл бұрын
신립 귀신때문에 진지옮겼다는 설이 있든데요
@촉법소년단2 ай бұрын
도대체 신립은 왜 문경새재를 버렸을까? 문경새재에서 며칠싸워보고 탄금대로 넘어갔어도 될텐데?
@starbistar_official10 ай бұрын
아니 신검이 왜 여기있지
@부유한국민4 жыл бұрын
신검이랑 신숭겸의 싸움
@김정훈-k4y2j4 жыл бұрын
잠깐?????
@버찌-o2b4 жыл бұрын
아씹 ㅋㅋㅋㅋㅋㅋㅋ 왕건후유증
@Kimkijoo015 күн бұрын
데프
@김성환-v8r6n2 жыл бұрын
이미............전국시대를 경험하면서 확립된 일본군의 조총병편성으로 기마병 상대하는 전술.....거기에 너무 유리한 평야에서.......대회전........ 손자병법에도 있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지지 않는다였는데......
@쥰튜브-y8b3 ай бұрын
애초에 병력수에서 밀렸고, 그것도 3면에서 적이 진격함. 조령 방어? 저때 조령엔 성같은게 없었음. 그냥 산속에서 싸움. 만약 고니시가 조령으로 진격안하고 구로다와 가토에의해 뒤돌아서 오는 적에게 포위당하면 그냥 굶어 죽는거임. 그나마 궁기병이 싸울수 있는곳을 찾은거고, 운이 없게 비가 내림. 지금도 일기예보가 틀리는데 당시는 어떻게 알수가 없음.
@jongsikjeong38Ай бұрын
적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기겠나
@000cho34 жыл бұрын
이전투 전사한 두장군 아들 및 손자들이 인조반정을 메이드함
@thoonk99913 жыл бұрын
삼도수군통제사 신유장군님도 계시죠.. 유일하게 러시아랑 맞짱떠서 대승 거두고 오심ㅇㅇ
@Kimkijoo015 күн бұрын
인장
@보검-j7y7 ай бұрын
무능한 상관이 적보다 더 무섭다.
@youngchanseo71584 жыл бұрын
당시에 왜군들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도중에 좋은 매복 지형이 있었음에도 막지 않은 것과 자신들이 좋아하는 지형인 개활지에서 덤빌 줄은 몰랐다고 하네요. 그리고 왜놈들 나중에 결정적 패배요인중 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에 조선 상황이 알거지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현지조달이 어려웠답니다.
@arksurf4134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진짜 거지국가였어요 뭐 빼을께없을정도 일제시대도 마찬가지예요 뭐가 있어야지 가지고가지
@youngchanseo71584 жыл бұрын
@@arksurf413 아 일제시대엔 우리나라 문화제 대부분을 수탈해갔습니다. 그리고 남북 가릴것 없이 없는 자원 다 캐가구요. 우리나라에 있는 금광 은광 다 털어간게 일본이예요. 결정적으로 우리나라에 사료가 별로 없는게 일본이 우리나라 역사서 사고를 전부 불태워서 그렇답니다. 임진왜란과 다르게 일제시대엔 엄청 빼갔어요.
@arksurf4134 жыл бұрын
@@youngchanseo7158 일제시대때 불국사나 석굴암 남대문 다 들고가지 ㅋㅋ 그냥 끝을 보지
@jqgj66924 жыл бұрын
그래도 곡창지대인 전주성 잘 지켜서 나라 지킬수있던거임
@Werner4voss2 жыл бұрын
ㄴㄴ 당시 기록보면 창고마다 쌀챙겨서 기모찌했다는 기록 많음
@정종호-x5d6 ай бұрын
한국사에서 조선은 계륵이야 계륵
@Ssh-j7y4 жыл бұрын
기마병이 3000이라면서 앞에 30 밖에 없누
@U2HS1D3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
@frontman44092 жыл бұрын
평산신씨 대종회에서는 신립장군 미화하지도 않는데 왜 원주원씨는 명장 원연장군을 놔두고...
@mri004934 жыл бұрын
장교들이 입는 갑옷 저렴하게 최대한 퀄리티 살렸는데 저런 갑옷은 얼마식 할까?
@KBH04074 жыл бұрын
1벌에 250~350만원 정도 해요
@mri004934 жыл бұрын
@@KBH0407 겁나 비싸네요 하긴 검이 백만원인데 갑옷이 그 가격이면 생각 보다는 싸네요
@KBH04074 жыл бұрын
@@mri00493 투구 금형 뜨고 갑찰 다 일일이 손으로 엮어야하기 때문에 찰갑은 인건비 비중이 높은 걸로 알고 있고 두정갑은 150~200정도 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링-c8i4 жыл бұрын
사기꾼들이구만 해동검도 가면 카타나 10만원이다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100만 단위면 저 거래처 싹다 감옥보내라
@mri004934 жыл бұрын
@@이링-c8i 그거 가검이고.. 나는 대한 검도에서 20만원 주고 사서 안다 뭔 가검을 가지고...
@minwookang13866 жыл бұрын
사실 뒤에서 궁수부대가 조총 부대 장거리에서 잘만 잡아 줬으면 승산있는 전투였는데 너무 기마대만 돌격해대니.....
@confusedcaveman56786 жыл бұрын
ㅋㅋㅋ 일본군이 일단 수적으로 압도 했을 뿐더러 전쟁 경험도 몇백년전부터 내전으로 엄청나서 조총 부대도 강했지만 창(야리) 아시가루 부대가 정말 강했습니다. 일본의 주력은 창이여서 저런 기병 돌격에 잘 대처 했습니다.
@chunhwanempire51244 жыл бұрын
@@confusedcaveman5678 소탄과 연무탄을 써서 혼란을 줬어야죠
@youngchanseo71584 жыл бұрын
@@chunhwanempire5124 그럴 정신이었으면 이미 전장을 탄금대가 아닌 문경세제를 택했을 겁니다. 신립이 나갔을 당시에도 왜놈들의 무기나 전력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였어요.
@chunhwanempire51244 жыл бұрын
@@youngchanseo7158 주몽과 금와는 연에다 소탄 달고 활로 쏴서 화공으로 야습했는데 전면전으론 승산없으니까 기습 매복으로 했어야지 철기군도 아니고 그냥 포졸 갑옷인데 저리 돌격하면 다 뚫리죠
@youngchanseo71584 жыл бұрын
@@chunhwanempire5124 아 저 군복에 대해선 제가 다녔던 대학교 교수께서 이야기 하시길 저 나졸복장(포졸은 포도청 소속)은 그냥 고증이 안 된것이라고 하네요. 한숨쉬면서 말씀하시는데 조선시대 저 당시에 군사들이 뭘 입었는지도 역사적으로 안 남았답니다.
@plutoplanet94 жыл бұрын
신랍장군이 평산신씨 아닌가? 시조가 신숭겸이고..
@류효동-q4u4 жыл бұрын
네 맞아요. 그리고 나선정벌의 신유도 평산신씨예요. 여담으로 신유도 이순신처럼 삼도수군통제사였어요.
조령에서 막으려 했으면 대부분 도망가고 오히려 더 망했을 거임 물론 이순신 장군이었다면 성공했겠지만.... 축구 선수로 비유하자면 신립 장군은 드로그바 즐라탄 루니 손흥민 급 반면 이순신 장군은 마라도나 펠레 메시 호나우두(브라질) 급
@말이중요해요3 жыл бұрын
현재 탄금대는 야산이다. 실제 주 젼장은 탄금대 약간 남쪽 . 달천대교 건너기 전..달천 평야다. 황샨벌 싸움...달천벌 싸움... 현재도 국도 양옆으로 논이다.
@홍사람-c1h2 жыл бұрын
달천평야에서 한번 깨지고 충주성도 그냥 빼앗기고 탄금대 쪽으로 후퇴함..
@킹세종-u3f5 ай бұрын
신립은 근데 여진족과의 전쟁에서는 엄청난 활약을 한 영웅임..
@01dmxufkfj4 жыл бұрын
근데 칼 패용법이 잘못됐네요 기마군은 칼 손잡이가 뒤로 가게 장착했을 것 같은데요 그래야 달릴 때 말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을 테니...
@오근세-k3i4 жыл бұрын
환도 패용이.. ㅠ
@Sibasinu4 жыл бұрын
저때 신립의 기마부대는 북방에서 여진족들이랑 싸운 전투경험이 풍부해서 조선의 최정예라던데 동대 중세 유럽의 기마부대도 신립의 기마부대에 비비지 못할 만큼 강했다던데 왜군에 패배했네...
@별마을4 жыл бұрын
이신학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투였으니까요
@dalbongpark28304 жыл бұрын
탄금대가 진창이었는데, 기마부대로 거기서 승부본게 하수였던거죠. 저건 명백한 지휘관 실수이자 무능이죠. 오스트리아 프랑스 프로이센 전쟁들만 봐도 비록 조총으로 기병에 타격 줄 수 있어도 우회 기동해서 적들을 쓸어 버리는 전술이 먹혔죠.
@ceokj214 жыл бұрын
조총
@yoon65314 жыл бұрын
왜군들도 전국시대 전투 경험이 풍부해서 무시 못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칼을 잘 사용하니
@애긔-g2j4 жыл бұрын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저때 바닥이 질퍽질퍽해서 기병들이 기동력을 잃어서 조총병들의 과녁수준이었다하네요
@tv-ru6ym3 ай бұрын
신립:조총??쏜다고 다맞는답니까??
@도로시-w2s4 жыл бұрын
다른 이유가 있을지언정 그나마 조선이 가진 기동병력을 유격전이 아닌 한큐에 날려먹었다는점은 욕먹을만하다.
@담덕-z7i4 жыл бұрын
조령을 버리고 탄금대에서 싸운게 결정적 실수
@깔끔정리-h4o4 жыл бұрын
조령에서 버틸걸 왜군이라고 몰랐을리 없고, 오히려 조령을 비우고 신립이 이동한것을 처음엔 믿지 못하고 계속 의심할 정도였음. 더욱이, 조령에서 버티는 전술로서도 어차피 조선군의 당시 사기라든지 형세 자체가 이미 수세적이었고, 그럴바엔 차라리 신립으로선 본인이 가장 자신있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전술인 기마병을 이용한 전투에 일단의 도박을 걸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 왜군의 파죽지세 북상의 예기를 꺽는게 일단 급선무였던 시기에, 신립이라고 해도 그외에 선택할 수 있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고 봄.
@Taekyu_Daddy4 жыл бұрын
@@깔끔정리-h4o 당시 조선이 집결시킨 유일한 야전군을 상대로 무모한 대회전..좀 더 신중하게 전투를 해서 지연작전을 펼쳤더라면 어땟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순신과 김시민 권율 그밖에 의병과 명군이 나타날때까지 전력을 유지하며 버텨줬더라면..
@ekdms41853 жыл бұрын
병사들 포졸복입고 삼지창만 들고 뛰는것 좀 제발..
@mk0620Ай бұрын
무능에 대명사 선조 원균 그리고 신립 이 3대장이 있었다 한다.
@동글이-l6b Жыл бұрын
저당시 일본놈들 장창이 4~5m였는데.. 우리나라 창이 2m 였으니.. 어찌 이기겠음.. 100년간 전쟁만 해온 놈들이라 짬바에서 밀릴 수바께 없어서 전쟁초기에는 말도안되는 교환비를 기록하지만 ㅠ 후에 7년간의 짬바로 조선군들도 일본군과 비교적 비슷한 교환비를 보여줍니다.
@nasai89 Жыл бұрын
먼 교환비 ㅋㅋㅋ 그냥 개썰린전쟁인데 애초에 일본전력 25프로도 안쳐들어오고 전국시대에 이름날린 다이묘들 안옴 그냥 듣보 들만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