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도, 슬픔도, 분노도 인간에게 필요한 감정 아닌가요?” “중용은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말라는 말이네요?” 당연히 아니겠죠?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 편, 성선설/중화 편에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sw83314 ай бұрын
코맥 맥카시의 핏빛자오선 추천
@5분책방4 ай бұрын
빨리 올려주세요!
@kohana59554 ай бұрын
kzbin.info/www/bejne/hHWye42JfJ6Ghrcsi=BeU-7U36yx_0cEKe 이번 너진똑님 영상은 이런 느낌입니다.🥰
@권효근-k7y4 ай бұрын
형체가 없는 개념을 설명해야하니 부가설명이 참 많이 필요한 철학... 하지만 그래서 더 재밌고 인생 전반에 있어 도움되는듯
@요루소라_YORUSORA_夜空4 ай бұрын
현대 사회가 되면서 이젠 그런 것을 논하는 것에 분명히 큰 변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이제 혼자 살아가야 합니다. 아니, 원래 그게 맞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인간을 갈구하고 인연을 맺고 싶어하는 것은, 그것이 본능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인간들 중에서 그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전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자들이 살아남는데 유리했고, 그런 사람들이 현재는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리병 위로 점프할 수 있는 벼룩도 결국 유리병에 갇혀 살면 그 유리병 이상으로 올라갈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다리근육이 부족해져서 그런걸까요? 아닙니다, 그럴 필요가 없단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위로 올라가지 않더라도 벼룩 기준 사는데엔 어떠한 지장도 없고, 다른 것으로 충분히 대체가 가능해져버린 현대인은 벼룩보다도 더더욱 '인'을 갈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을 갈구하는, 인을 이루는 자세를 그 자체로 쾌락과 인생의 유일 목표로 가지려는 노력을 일부러 하지 않는 이상이 아니고서야 인은 필요 없습니다. 히키코모리같은 개인주의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야 말로 중용입니다. 인간과 가까이 가지 않아 상처받을 일이 없고 딱히 취미가 없어 심심해 죽을 일도 없는, 현대 사회의 만들어진 수많은 취미 생활들과 여가 시설, 문화 생활 인프라는 분명히 개인주의 세상을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오히려 커뮤니티, sns같은 것을 필두로 수많은 얘기가 장소에 구애받지 않은채 이루어지는 시대에선 굳이 현실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스트레스 받으면서, 단순한 스트레스에도 민감하게 영향받으며 늘 예민해진 상태로 사회생활을 할 필요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인이라는 사상, 삶의 자세가 있던 것을 잊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없는 세상은 정답이 아니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에 가까워 질거라는 생각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개인적으론 인이라는 사상도 있다, 듣기만 들었지 의미는 모를분들이 많을테니 알려준다 식의 정보성으로만 받아들여 큰 생각은 없었으나, 혹여나 이 영상을 보고 조금이라도 본인들의 삶의 자세가 잘못되진 않았을까 생각이 들 수 있는 혼자가 편한 현재의 젊은이들, 몇몇의 소외된 분들이 살아가는데 이런 것에 연연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혼자로 남은 것은 죄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관계를 늘리거나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밖에 나가야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다릅니다. 이젠 집에서 하는 일들이 더 의미있는, 가치력이 높은 일을 하는 세상입니다. 다수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자신의 삶의 규격을 맞춘다고 생각하여 당신에게 있었던 기회를 버린채 새로운 기회를 얻어보겠다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비효율적입니다. 토론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뚱인데요-c8k4 ай бұрын
정신의학, 심리학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힘 빼기"와 "자기수용"이 "중용"에 담겨져 있었네요. 남에게 아무리 좋게 대하려고해도 나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면 주변 상황과 나의 내면으로부터 자꾸만 휘둘리게되어 인간관계에서 많은 좌절을 겪게됩니다 힘 빼기와 자기수용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내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거나, 일기를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기 쓰는것만 말씀드리자면 나를 인지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고, 현재 내가 처한 환경을 통해 내가 어떤 감정이 올라왔고, 어떤 생각이 들었으며,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 일기를 써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내 생각과 감정을 평가하지 않고 오로지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해요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자면, 옳지 못한 예: "내가 그때 왜그랬지? 바보인가 아오 왜그랬냐 이 XX야", "내가 사람으로서 이딴 생각을 한다고? 미쳤어?" "왜 이렇게 감정이 부정적이야?"하며 자기비난 옳은 예: "그땐 내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 어떤 생각과 감정이 느껴져서 그랬던걸까?", "내가 그 상황에서는 이런 생각(또는 감정)이 들었구나. 예전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것 같은데 어떤 상황이 있었지?" 하며 자기인지 과정 거치기 그렇게 감정과 생각을 좇다 보면 어느순간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트라우마라던가 콤플렉스들이 자극됐던 경험들이 떠오르는것을 마주하게 됩니다.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일기에 적어보면서 생각과 감정을 인지하는게 내 행동패턴을 변화하는데에 큰 도움을 줍니다 무의식에 쌓여있던 감정들을 인지하여 임의의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때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재빨리 안정을 되찾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수용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는 "나는 좋은 사람이 될거야", "나는 행복하려고 노력할거야", "저런 상황이 다시 왔을때에는 저번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을거야" 등등 나열한 것과 같이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잘안될뿐더러 혹여 성공했다고 해도 그 이면에는 내 무의식속에 감정은 쌓이게 되어 언젠가 또 터져나오게 되어 반복됩니다. 사람은 그렇게 완벽하지 못하고, 원래 동물다운 면이 있을 수 밖에 없으며 사람은 원래 별로라는것을 인정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실수해도 괜찮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구요 꾸준하게 일기를 쓰다보면 사건들마다 내가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는것을 알게되실거고, 그걸 놓치지않고 따라가다보면 내가 어떤 생각과 감정에 의해서 행동하게 되었는지 알게되실 거에요 저는 영상에서 나온 대학에서 자기수신을 강조한 이유는 분명 나 자신을 인지하라고 했으리라 싶네요 이렇게 좋은 내용을 접하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최고에요, 감사합니다!
@peaceful_world54 ай бұрын
👍🏻🌸
@hangdon24 ай бұрын
좋은글 감사합니다
@Hi-oz4cw4 ай бұрын
😎
@박주헌-m7k4 ай бұрын
❤
@user-llllllIllllll4 ай бұрын
😊
@JG-in4nl4 ай бұрын
앎에 대한 내용이 진짜 중요한듯 하네요. 중용의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중용을 행하기 위해선, 어떤 상황과 맥락과 분위기를 읽을수 있는 앎의 영역을 통달해야만 가능한 영역이 , 중용이기 때문이지 않나 봅니다. 결국, 그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 혹은 그 경지를 착각하는 이유는, 알지 못하는 혹은 알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봅니다. 영상의 본질은 중용에 대해 것이지만, 그것의 핵심은 앎이라 봅니다. 그리고 그 앎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마음.. 그것이 제일 중요한게 아닌가 봅니다.
@AMD_-qd2mi4 ай бұрын
성균관대에서 유학동양학과를 전공하며 공자를 접하고서 유교가 저와 세상 찰떡인 학문이라 깊게 파보며 공부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공부 당시 나름대로 해석하고 정리했던 중용에 대한 의견을 몇 자 적어봅니다. 우선 중용은 중국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남긴 유언인 '윤집기중(중을 잘 잡아라/고집하라)'에서부터 나온 개념입니다. 여기서 '중'은 '가운데'를 의미하는 중이 아니라 '적중하다'는 의미의 중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한 마디로 그 상황에 가장 좋은 결과로 적중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 바로 중입니다. 그리고 용은 이러한 중의 상태를 꾸준히 유지해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은 참 오묘하고 애매모호한 개념입니다. 모든 선택에서 최적의 선택을 한다는 것 자체는 너무 쉽고 당연한 원칙인데, 실제 구체적으로 상황들마다 어떤 것이 최적의 선택인지를 우리는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이에 논어는 첫 장 첫 구절에서부터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며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것이 연장자에 대한 공경입니다. 연장자는 우리보다 사회 경험 인생 경험이 풍부하여 우리에게 중의 선택에 있어 지혜를 가진 자로서 좋은 길안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태어난 사람'을 우리는 삶의 지혜를 줄 수 있는 '선생'이라고 부릅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나간다면 단순히 나이만 많고 인생의 지혜가 없다면 선생이 아니요, 나이는 적어도 우리에게 인생의 지혜를 줄 수 있는 이는 선생이라 할 것입니다. 종합하면 중용의 실천을 위해서는 삶의 지혜를 경험치가 있는 이들(혹은 서적 등으로라도)을 통해 배워서 이를 지식으로 만들어 내 삶의 상황에 최적의 선택을 해나가는 것을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AMD_-qd2mi4 ай бұрын
또한 '최적의 선택을 한다'는 대원칙이 중심에 있으면서 세부적인 상황들에 대해 유연히 대처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은 논어 2장의 '정치함(위정)은 북극성(원칙)이 그 중심에 있고 뭇 별들(예외)이 그 주변을 맴도는 것과 같다'고 한 공자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실제로 우리 삶은 비단 정치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 원칙과 예외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살인은 하면 안된다는 원칙 아래 정당방위는 허용된다는 예외가 있듯이요. 게다가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고 최적의 상태를 찾자는 데에서는 뭐든지 극으로 가면 반드시 반대로 되어버린다는 '물극필반'의 원리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물극필반은 우리 삶 전반을 꿰뚫는 개념입니다. 너무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정도가 되면 오히려 차갑다고 느껴버리는 우리의 몸, 나이가 너무 들어 치매에 걸려 오히려 어린아이로 돌아가버리는 노인, 도파민에 너무 중독되어 오히려 이에 무감각해져버리는 우리들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이러한 물극필반의 원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우리나라 국기에도 있는 '태극'입니다. 제대로 그려진 태극문양을 잘 보면 빨간 부분이 가장 두꺼워질때 파란 부분이 시작하고, 파란 부분이 가장 두꺼워질때 빨간 부분이 시작합니다. 뭐든지 극에 달하면 반대가 되어버린다는 물극필반의 원리를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이지요. 또 태극문양은 위 물극필반의 원리에 공자의 '위정(정치함)' 개념을 섞어 표현한 것입니다. 태극문양의 빨강과 파랑은 끊임없이 서로 꼬리를 물며 색이 바뀌는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빨강과 파랑이 서로 끊임없이 바뀌는 모습에서 모든 것은 변하지만 그 안에는 물극필반이라는 변하지 않는 원칙도 있음을 표현하여, '모든 것은 변하나(뭇 별들) 그 중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북극성)이 있다'는 공자의 위정개념을 담아낸 그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이러한 세상 속의 끊임없는 변화들 속에서 그 변화하는 부분 부분을 캐치하고 앞으로의 일을 예견하고자 '주역'이 탄생하였습니다. 유교 학문은 이렇게 중용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그 개념을 확장해왔다고 이해하시면, 유교에서는 물론 우리 삶에서 이 중용이라는 개념의 위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peaceful_world54 ай бұрын
😊👍🏻
@자연스럽게-p8o4 ай бұрын
@@AMD_-qd2mi 와 정말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군요. 그런데, 조선의 선비들은 왜 그토록 성리학을 고집하였나요? 결과적으로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고, 나중엔 경술국치를 당하고 일제식민지로 전락하고 ... 조선의 선비들도 중용을 너무나도 잘 알았을 텐데 말입니다.
@AMD_-qd2mi4 ай бұрын
@@자연스럽게-p8o 기본적으로 고서는 옛날에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시절 죽간에 기록되다보니 텍스트를 최대한 적게, 압축적으로 적었어야 했습니다. 텍스트가 많으면 보관이나 적재에 굉장히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었죠. 이에 함축적, 은유적인 표현 등이 많이 들어가게 됐고 이 때문에 유교는 기본적으로 '고서를 어떻게 해석할것인가가'가 주가 되어 발전해왔습니다. 이에 해석 방식에 따라 학파가 갈리는데, 그 중 성리학은 주자가 사서오경을 해석한 내용을 기반으로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유학자들은, 특히 조선 중후기로 갈수록 주자의 해석 외에는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고집스런 행태를 보입니다. 이러다보니 기본적으로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공자의 기조와는 결을 달리하게 되어버려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제 생각은 아마도 유교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고오며 다른 학파의 다른 해석을 배척하는 식으로 정치권력을 획득하려다보니 이런 배척하는 잘못된 행태가 나타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마디로 공자의 위정의 가르침대로라면 성리학자들은 주자의 해석을 기본(북극성)으로 하되 다른 해석들(뭇 별)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자세를 유지했어야하는데, 권력욕에 이를 실천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공부할때까지만 해도 국내 유교 학파도 성리학이 아직까지 주류였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저도 개인적으로는 성리학파의 해석은 아닌 것 같다는 부분이 꽤 많고, 성리학은 공자의 말들을 왜곡한 것이 많다는 의견이라 크게 좋아하는 학파는 아닙니다. 제가 공부하여 결론 내린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이 다산 정약용의 해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논어 1장 학이편의 '교언영색 선의인'이 있습니다. 흔히 알려진 해석은 말을 교묘히 하고 얼굴빛을 잘 꾸미는 사람 중 인한 사람은 드물다는 것으로 교언영색하면서 인할 수 없어 교언영색을 부정적인 것으로 봅니다. 이는 주자의 해석이기도 하고 대부분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러나 다산은 교언영색도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능력이고, 교언영색하면서 동시에 인하기까지 한 진짜 인재는 드물어서 찾기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해 교언영색을 긍정적인 처세술 능력으로 해석합니다. 고서 해석에서는 이런 차이들이 많습니다.
@자연스럽게-p8o4 ай бұрын
@@AMD_-qd2mi 감사합니다. 평소 유교 성리학에 대한 의문이 많이 풀렸습니다 ~^^
@바보다-f7h4 ай бұрын
저두 어릴 때 항상 극단적이어서 나대지 말자 이러면 완전 소심이가 됐고 좀 말좀 하자고 다짐하면 애들 말하는데도 끼어들고 그래서 그때 정말 중용이 중요하단 생각을 했고 그걸 지키기도 무척 어렵다는걸 깨달았었어요.. 중용에 대한 내용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시청하겠습니당
항상 인생의 진리와 내가 사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발버둥쳐왔습니다. 하나의 답이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살다보니 답은 그때 그때 달라서 결국 ’뭐든 적당히‘가 답이 되었습니다. 되게 허무하기도 했어요. 뭔가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걸 알게되니까 열정적으로 추구하지도 못하고 마음이 갈피를 못잡았거든요. 그런데 이 영상을 보고 중용은 뭐든 적당히가 맞긴 하지만 중간을 지키는게 아니라 열심히 행해야 이룰 수 있고, 나와 다른 사람을 알려고 노력해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걸 빼앗기지 않게 남의 것도 빼앗지 않게‘ 몫을 나누는데 혈안이 되지 말고,내걸 좀 빼앗겨도 상대가 더 많이 필요하다면 내어줄 수 있고 내가 많이 부족하다면 양보를 부탁할수 있는게 중심이라는 것을요.
@titacan32374 ай бұрын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는게 중용인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p8o4 ай бұрын
초기불교를 공부해 보세요. 님의 말씀처럼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苦)입니다. ... 고성제 4성제를 공부하면 해탈할 수 밖에 없습니다.
@ahorrador6404 ай бұрын
공감되네요 저도 인생의 진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못찾음
@기태-g3k4 ай бұрын
인생의 목적을 알고 싶으시다면 자연섭리를 알아야합니다. 인생도 자연의 산물,천지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섭리는 천지이법이고.천지이법을 다른말론 신의 섭리.자연섭리.즉 이치입니다. 천지이치는 다른말로 음양의 법칙. 생성의 법칙.변화의 법칙.개벽의 법칙이라고 하구요. 현대어론 인과율 이라고도합니다. 인과율 이란 '원인이 있고 결과가 도출된다'라는 직선적 개념으로 이해되기 쉬운데 그건 반밖에 이해 못한것입니다. 인ㅡ이란 씨앗인자 입니다. 과ㅡ란 열매과자 입니다. 즉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 순환법칙으로 봐야됩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뿌리 줄기 잎이 무성히 나와 자라다.즉 외향성장하다가. 가을이 되면 잎이 낙엽되어 떨어지고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속엔 도로 처음의 씨를 맺게됩니다.즉 반대로 내향 성숙하게됩니다. 이렇게 양의 시기엔 형체가 외향 성장하다가, 음의 시기엔 형체가 무너지고 (낙엽) 내향 성숙(본래의 열매속 씨앗)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씨를 다시 맺어야 겨우내 쉬엇다, 이듬해 봄 다시 싹을 틔우고 새로이 시작될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과율의 본래 뜻입니다. 즉 음양법칙이자 개벽법칙이자 4계절의 순환법칙입니다. 씨를 뿌리는 목적은 가을에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인간 삶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농사짓는 우주1년4계절 에서 봄여름에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은 가을 우주를 맞이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이 개벽이다'책을 참조해보세요
@DDaning_tv4 ай бұрын
2:28 "항상 가운데를 잘 유지해라", "중심을 잘 잡아라" 말이 가슴에 와닿네요
@흑구무기력한4 ай бұрын
가운데는 역시 중요하죠..
@hba31444 ай бұрын
분명 설명을 잘 하셨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 가운데를 강조하니까 중용을 '기계적 중립' 수준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생기긴 하는가 봅니다. 중용은 위의 것들과 비슷하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기계적 중립'과는 다릅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어떤 건 틀리고 어떤 건 옳다' 하고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중용일 수 있고, '둘 다 옳다', '이 부분은 이게, 저 부분은 저게 맞다' 라고 하는 게 중용일 수 있고, '둘 다 틀리다' 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용일 수도 있습니다. '인'한 마음을 가지고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적당히' 행동하는 것이 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arbonative4 ай бұрын
정말 도덕적으로 살고싶은 학생입니다.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고, 잘못된것을 하려고 하면 이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현자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 그런데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능적으로 부족하지도 않은 사람이 코딱지를 먹거나 기침후 가린손에 나온 침을 다시 먹는다던가.. 신체접촉 하지 않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해도 자꾸 신체접촉을 하고 암튼 그런 이상한 친구가 있어서, 그친구의 문제가 뭐고 어떻게 어떻게 하는게 좋겠다고 친절하게 말해줬거든요 그런데 제가 말하는것들이 틀렸다고 웃으면서 제 말을 완전히 이해하길 거부하더군요. 이런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지금은 그친구 특성상 전교 찐따가 되버렸고 1학년떄 그친구를 처음으로 손절치고 거부한 사람이 저인데 제가 시작점이기도 하죠. 2학년때 다시 만났는데 모두 그친구를 혐오하고 전교 찐따인 상황이 안타깝고 불편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도 막상 그친구를 대할때 너무 불편해요. 뭘 어찌해야 합니까...
@Carbonative4 ай бұрын
그친구는 뭐가 문제죠? 왜 비상식적이고 비 위생적인 행동을 거부는하는 사람은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사는걸까요. 죽기 전까지만 패버릴까요? 그렇지만 제가 같은반 학우의 도리로써 그 친구가 모두에게 소외당하는 상황은 피하게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갱생 불가한 썩은 나무같은 존재인가요?
@hyoungj12324 ай бұрын
@@Carbonative당신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나르시스트 아스퍼거 중 하나일 경우가 매우 높습니다 당신 자체 습관을 고치기 어려운데 다른 사람 습관 성격을 고칠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비정상 아니면 어린이 생각이죠 당신 부모가 100% 완벽합니까? 아니면 맘에 안드는 부모 형제 행동을 당신이 고칠수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hyoungj12324 ай бұрын
@@Carbonative당신은 잘못 행동했을때 죽도록 맞아 봤는지 당신이 쓰는 언어가 제3자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잘 생각해보시길
@자연스럽게-p8o4 ай бұрын
@@Carbonative 그런 친구는 갱생하기 힘들어요. 그냥 왕따시키세요. 즉 관계를 갖지 마세요. 더 좋은 방법은 선생님이나 그 부모에게 말씀드려 정신과 상담을 받으시는게 좋아요. 오은영박사님같은 ...
@우주-JWJ4 ай бұрын
앎이라는 착각을 여러번 곱씹으며 중심을 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진똑님
@hugmepleaz4 ай бұрын
중용이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환영받는 '눈치 빠른 사람'과 '사회성 좋은 사람'의 근간이 되는 가치라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taenggu74544 ай бұрын
걍 처세와 눈치라는 뜻 존나 돌려 마ㅣ말하니 그럴듯 ㅋㅋㅋㅋ
@세상에나-w3i4 ай бұрын
@@taenggu7454 앎의 레벨이 낮네 ㅋㅋㅋ
@switch56924 ай бұрын
@@taenggu7454처세와 경세가 유교의 목적이고 그걸 설명하는 이론이니까.. 쉬운 걸 빙빙 돌려말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처세하는 지를 알려주는 게 중용인 거임
@seannykim97934 ай бұрын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수양해야한다 는 말이 참 와닿네요 사람을 정말 한 해 한해 다르고 그때마다 수정보완해 가면서 발전해 나가야하는 존재라고 요즘 부쩍 많이 생각하던 참인지라 공감이 많이 되는 영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앎을 자만하지 않고 그 앎의 레벨을 끊임없이 높이라는 말도 열심히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ㅎㅎ
@근식-d9x4 ай бұрын
내 자신의 앎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발전시키자. 그러면 내가 처한 상황의 본질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중용의 자세를 유지 할 수 있다. 내 마음, 느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용이다. 안전한 느낌이 아닌 편안한 느낌이 들게끔 하는 것이 중용이다. 상처받기 싫다고 안전이라는 변명아래 내가 처한 상황을 회피하지 말자. 그건 중용이 아니다. 인간은 안전을 추구할수록 불행해진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ㅎ
@peaceful_world54 ай бұрын
👍🏻
@shinhyenwoo4 ай бұрын
어떤 학문을 봐도 결국 사랑하고 배려하고 인간관계속에서 행복을 찾는데 인간관계를 쟁취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점점 늘어나니까 계속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는거 같네요 ㅠㅠ 항상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Raymond-Daon4 ай бұрын
"원래부터 어려웠던 것인데, 구름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구나. 그만큼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뜻이겠다."로 생각하시는 편이 더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brH-mg5kq4 ай бұрын
이번 영상은 정말 공감이 많이 되네요 ㅎㅎ 대학때는 약속이 없던 날이 없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니 사람 만나는게 시간뺏기는거같고 불편해서 최대한 인간 관계를 줄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편해지니 이렇게 사는 삶이 정답이고, 인간은 다 혼자와서 혼자가는 존재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소중한 배우자를 만나고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마음이 즐겁고 평화로워요. 물 속에 있다 물 밖으로 나온 기분이었습니다. 불안이 없는 상태의 편안함과 즐겁고 충만한 상태의 평안이 다르다는거 정말 동의합니다.
@khy-jd8wu4 ай бұрын
양극단에 치우치치 않고 중도의 속도로 왔습니다 너진똑님 항상 잘 보고 잇어용…이번 윤사 기말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을 배웠는데 이번 영상 잘보겠슴다! 감사합니다!
@ASHSTORMs2 ай бұрын
인생의 좌우명을 물어볼 때 항상 중용이라고 답했는데 전 이렇게 설명을 했던 것 같네요. 양 극단을 배제한 중간의 영역에서 상황에, 환경에 맞게 나의 생각과 태도를 유동적으로 잘 변화시키며 적응하는 것. 영상에서 언급된 인의 가치 중 사람과의 관계에 대입하면 마주하는 사람의 성격.습관.나이 등에 따라 내가 어떤 방법로 마음먹고 상호작용하여 그 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유지해나갈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되겠죠. 성격 내외향에 대입하면 사회생활 할때는 외면세계에, 개인작업이나 명상을 할 때는 내면세계에 집중할 수 있는 역량을 갖는 거구요. 여러모로 삶에 있어서 여러 유형의 상황에 관해 잘 적응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역량을 길러주는 좋은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희호-k5m4 ай бұрын
군대에서 읽었던 팩트플니스와 너진똑의 중용영상이 내삶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음… 책 추천해줬던 선임과 너진쪽에게 무한한 감사를(꾸벅)..
@Weare1-f8i4 ай бұрын
단편적인 것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깊이를 보고 듣고 느끼라는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낮아짐을 추구하는.. 심도깊은 영상이였습니다.
@g_eonu_4 ай бұрын
세상에 이렇게 좋은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내가 생각하는것' 만큼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 한 적이 있어요 곱씹어보는 것은 역시 중요하고, '나는 충분히 알고있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이겠죠 우리는 죽을 때 까지 배움을 놓아서는 안되는 것 같아요 젠장 또 중용이야!
@허륜아-i7x4 ай бұрын
정말 사랑은 어려운 일이에요. 한동안 나에게 사랑을 주는 일에 시간을 쓰며 편안함을 찾았다가 아들러 영상을 보고 내가 상처받기 두려워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위해서만 노력한 것이 아닐까 회의감과 의심이 들며 불안해졌다가 타인과 사랑을 나누기위한 노력이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게 만들어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다가 이번에 중용과 대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내 삶과 타인에게 애정을 쏟는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에 중요성을 느끼며 다시 편안해졌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공부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기위해서는 분명 혼자서 고민하고 탐구하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죠. 그리고 타인도 그들의 삶이 있기에 우리는 항상 사랑만 하며 살 수 없고요. 상황 상 자주보고 자주 연락 할 수 없더라도 함께하는 그 순간에 감사하고 사랑을 나누고 또 혼자있는 시간에 더 좋은 세상과 더 성숙해진 나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시간이 필여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좋은 지식을 접근하기 아주 쉽게 만들어 더 좋은 세상을, 사람들이 행복해질수 있게 노력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로봇이아닙니다14 ай бұрын
진짜 중요ㅇ함.
@5분책방4 ай бұрын
중요ㅇ
@lliker4 ай бұрын
너진똑 ㅇ 난감
@지돼-p7s4 ай бұрын
스껄
@Aahaha34 ай бұрын
개인적으론 이상향을 정하는 방향성 보다는 극단으로 치우지지 않는 방향성이 현실적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기에 중심은 사실 없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비슷하지만 다른 뉘앙스라 생각해요. 각 개인의 밸런스는 제3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땐, 언밸런스로 보일 확률이 높겠죠. 삶의 방향성을 다양하니까요. 누구나 어느 방향으로 치우쳐 있을텐데. 너무 극단으로 치우져서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으면 자신만의 중심이 잡힐거라 생각합니다.
@GongO-tk3qh4 ай бұрын
지나고 보면 '중용'할 걸 했던 때들이 있었는데...힘든 일에 너무 마음쓰지 말걸, 너무 욕심내지 말걸, 너무 의기소침해지지 말걸. 그런데 다시 또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면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흔들리더라구요 평행봉 위를 떨어질듯 말듯 걷는 것처럼. 그래도 살아가다 보면 균형 있게 걷는 법을 깨닫게 되겠죠?
@맑은하늘-g9d4 ай бұрын
열심히 공부하면 중심을 알게되고, 어떻게하면 행복한지 알 수있지 않을까요?
@Anomaly_214 ай бұрын
선비처럼 걸어왔습니다
@stargazer3194 ай бұрын
터벅터벅
@dlgudwn004 ай бұрын
아직도 도착하지 않으셨군요...
@hyosshin4 ай бұрын
군자처럼 큰 길로 오십쇼
@wardplz7904 ай бұрын
노비 처럼 걸어왔습니다(호다다닥)
@user-nenmwm4 ай бұрын
에헴
@이병헌-k1v4 ай бұрын
오늘도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축복입니다 사랑합니다 희망입니다
@먀호4 ай бұрын
히키코모리가 생각하는 편안(안전)도 가끔씩은 중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악의가 가득찼거나 하는 끔찍한 상황이라면요! 하지만 그런 일은 진짜진짜진자진짜진짜 드문 일이에요! 혹시 힘드시더라도 너무 겁먹지 마시구 조금씩 적당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도전해보셨으면 좋겠어요!!
@peaceful_world54 ай бұрын
👍🏻
@팔말믹4 ай бұрын
영상 자주 올라와서 좋아요 🥹
@NJT_BOOK4 ай бұрын
@@팔말믹 헉 감사합니다!!!!
@green122344 ай бұрын
모태신앙 20대 천주교 신자인데 너진똑님 영상을 보다보니 신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예수의 삶이 이해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 섣부른 판단인가 생각도 들고, 제가 읽지 못한, 알지 못한 예수의 모습도 있을테니 계속 생각하고 나의 삶의 의미, 나의 행복의 의미, 사랑의 의미를 영상을 통해 더 깊게 해석해나가고 생각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mrzero74393 ай бұрын
너진똑님 영상보면 지친날에도 기분 좋아지고 잘 해낼수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생겨요!
@qor21294 ай бұрын
어렸을때 내가 힘들어했던 이유를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인간도 동물인데 내가 인간에 대한 기대를 너무 이상적으로 했다고 생각이 드네요. 내 부모도 사람이라는 동물일뿐 바람을 피든 엄마를 때리든 모두 주어진 상황에서 그 동물이 습성에 맞는 행동을 한것 뿐인데 나혼자 기대를 크게 하니 그만큼 실망이 커져서 내 부모에게 실망하고 나 자신한테 실망해서 어렸을때의 내가 그렇게 힘들었나 싶네요. 강아지가 짖는다고 화가 나거나 실망하지 않듯이 그정도 시선으로 바라보면 세상에 이해 못할 일들이 얼마 없더라구요.
@peaceful_world54 ай бұрын
😭👍🏻
@time695416 күн бұрын
종종 이 채널을 봅니다. 보면 볼수록 처음엔 재미 로 듣다가 점점 어려워 지내요. 신 이 계신다는 가정으로 . 왜 인생은 이렇개 어렵게 되어 있는지.. 인간의 본질 .. 무엇이 정의인지.. 참 어렵습니다
@CopanSon9392 ай бұрын
왕...맞아요 사람만나지 않고 집에 혼자 있는게 편안이아니라 불안이 적은상태였던거같아요 영상을 쭉 정주행하고 있는데 제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걸 팟 하고 영상 하나마다 느끼구 가는거같아용 어쩜 이리 말씀을 잘하시고 영상도 잘 만드시는즹.. 명절 덕분에 잘 보내는중입니당❤알차네욭
@5분책방4 ай бұрын
중용은 중요하다!! 역시 너진똑님 센스 넘치시네요
@나-j6z1z4 ай бұрын
댓글들 수준 진짜 높다… 좋은 영상과 좋은 댓글들 덕분에 삶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
@태익-p2q4 ай бұрын
사랑을 학문적으로 정의할 때 애정, 우정, 헌신이 조화를 이룬 상태라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인식 즉, 메타인지가 선행되어야하고요. 메타인지를 기르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명상과 일기쓰기입니다. 나를 효과적으로 인식하는 방법을 연습을 해야 진정한 중용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다들 중용을 채우고 싶다면 하루 짧게는 5분, 10분씩 시간을 내어 일기를 쓰거나 명상을 해보길 권해드려요. 오늘 영상도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성완-y3r4 ай бұрын
"알고있다" 에 대해서 의심해야한다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거같음 이건 단순히 철학적으로 삶을 깨우치거나 그런 요즘은 이미 사라진 가치들에만 적용되는게 아니라 요즘세상에 진리에 가까운 돈과 그걸얻어내는 능력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됨 공부같은걸 할 때 제일 의심해야하는게 "알겠다" 라고 착각하고 바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거임 그러고 이전에 나온내용을 잘 써먹고 응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면 상관없는데 다 알면서 다음스텝으로 넘어가서 문제에 막혀서 "이게 왜 안되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보통 "대충 알았다"라고 표현하고 시간이 길어지면 이 현상을 "잘못 배웠다"라고 표현함 이건 그냥 모르는 상태라 다를게 없는거임 근데 공부는 고사하고 게임같은거에서도 처음하는거 할때 이런 현상 많이 나타나는거 보면 요즘사회에 진짜 필요한 내용같음
@sevensaint-ch4 ай бұрын
공자 님의 말씀에 따르면 어떠한 것에도 혹하지 않는 불혹이라는 나이가 훨씬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동양철학에 대해 틈틈이 공부하고 있는 저로서는 요즘 시리즈가 너무 좋습니다 계속 돌려보면서 복습하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userunbubble4 ай бұрын
중용영상 좋아했는데 또 주시네요!!!!
@5분책방4 ай бұрын
너무 중요ㅇ
@쩜삼미리2 ай бұрын
맞아요. 확실히 안다는 착각이 요즘 많은 것 같습니다. 전문적인 일임에도 유튜브 영상 조금 본 정도로 안다는 느낌만 받아서 안다는 착각 속에서 남을 깔보거나 본인의 처우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앎이란게 안다와 모른다로만 나눌 수 있는게 아닌데 말이에요.
@안토니오-d8g4 ай бұрын
오늘도 유익하게 한단게 레벨업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brit_lab4 ай бұрын
너진똑 영상 잘봐왔는데 이번 편은 특히나 더 좋네요. 예전에 제 삶의 의미와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한 적이 있는데, 사랑이라고 결론내렸던 적이 있거든요. 이게 중용과도 같은 맥락일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네요..! 아직 제 앎의 레벨은 쪼렙이지만 앞으로 레벨을 올려가볼게요...!
@슈퍼이리4 ай бұрын
중용이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 기준이고 아무것도 안한다와 공허함 사이의 적정선을 유지하는게 아닐까요. 모든 과하거나 부족하면 인간의 심리는 돌출된 행동이 나오고 이런것에 휘둘리게 대면 안되니 잘될때 겸손해지고 상황이 나쁠때 자신감을 갖고 하는 이런 한쪽에 치우쳐진 반대쪽으로 끌어 중심을 잡으라는 거 같네요.
@titacan32374 ай бұрын
네. 그런데 그걸 실행에 옮기려면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고 자신과 주변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peaceful_world54 ай бұрын
👍🏻
@문성수-k5o4 ай бұрын
와.. 갑자기 설명란이 보이길래 궁금해서 들어가봤는데 영상에 들어간 주인장의 노력이 느껴지네요. 항상 행복하세요-!
@김니체-x5k4 ай бұрын
요즘 겪은 모든 상황의 해결책으로 “중용”이 답으로써 해결될때거 많더라구요. 재밌게 보겠습니다!
@이상현-h2l9k4 ай бұрын
이 세상의 진리를 하나로 통합시키고자 하는 화자의 의도가 느껴지는 영상입니다. 화자님이 책을 내신다면 시대를 풍미할 명서가 나올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이미정-p3u4 ай бұрын
끝내준다🎉🎉🎉정말 감사합니다 ❤
@5분책방4 ай бұрын
대박!
@commonsenser4 ай бұрын
끊임 없이 배우고 수양하라 마음 편안~함 그게 중용 인간은 인간과 함께해야 편안~함
@메르세데스-w6u4 ай бұрын
유교의 중용과 불교의 중도는 비슷해보이지만 담긴 의미 차이가 큽니다. 불교의 중도도 다뤄주면 좋겠네요
@sinjeo_4 ай бұрын
최근에 책 읽으면서 느끼는게 같은 내용을 수십번 고민하면서 받아드리는거랑 그냥 받아드리는거랑 차이가 매우 심하다는걸 느끼는거 같아요 항상 도움 감사합니다 ㅎ
@NJT_BOOK2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sjl94424 ай бұрын
김주환 교수님이 쓰신 책 내면소통 / 회복탄력성 보고 이 영상을 보니 와닫는 부분이 많네요.
@아방가르드-e8l4 ай бұрын
"중" 이라는 것은 기쁘고,화나고,슬프고,즐거운 마음이 아직 드러나지 아니한 상태를 말하고 "화" 라는 것은 그 마음이 아직 드러나지 아니한 상태를 잘 절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잘 이루어 지면 하늘과 땅이 조화롭고 모든 생명이 자라난다.
@syangyunkang71464 ай бұрын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너진똑 영상으로 보고싶습니다!
@tjfqlsths9 күн бұрын
감정은 크게 구분하자면 사랑 아니면 두려움입니다. 네빌고다드의 끌어당김의 법칙을 중용에 적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집착하며 두려움이 있으면 오히려 원하는 것과 멀어집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평안한 감정상태여야 끌어당김이 잘 됩니다.
@leechanghyun4 ай бұрын
오늘도 중용 영상 정주행 100만번째 했었는데 진짜 이게 나오네.... 저번 쉬운 버전 영상 보고 예상하긴 했는데 너무 좋다.... ㅎㅎ
@zion0302snfox4 ай бұрын
정말 중요ㅇ한 영상 늘 감사합니당!
@healing-novel2 ай бұрын
잘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iyw252534 ай бұрын
영상을 보다보니 전체적으로 통념(通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기존의 사상과 해석에 꼭 반(反)할 필요는 없으나, 해석과 요약에 있어서 이미 답을 내려버리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분명 유학과 논어에 있어서 '인(仁 )'을 강조한 것은 맞사오나, 관계나 사랑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닌가요? 인간이 인간하고만의 관계가 있어야만 비로소 인간이 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이것은 너무 인본주의적 사고가 아닐까요? '인'이라는 것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나라는 존재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정의할 수 있는가? 나란 존재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라는 질문은 답을 내리는 순간 또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연속성은 배제하고 현재성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게 '관계'이고, 관계의 부차-성(副次+性)에 의해 '사랑'에 대해 논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안'에 대해서 인간의 기본 상태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편안'은 감정의 부분이 아니라 태도의 부분으로 보아야 하나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편안하다'라고 느끼는 감정은 사실 '편안'한 감정이 아니라 다른 단어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유학에서 말하는 '가운데'는 [딜레마에 대한 감정적 견해를 배제]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시에 본인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말하기도 했고요. 공자는 각 사람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차별을 두지는 않았으나, 그 역할에 대한 본분은 주장하기는 했습니다. 임금이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는 했으나, 임금이 무엇인지, 신하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주장하지 않았죠. 안회가 밥을 짓고 난 다음에 먼저 손을 댔을 때 안회의 이유를 듣고 다시 생각한 것처럼, '예'는 중요하나 그렇다고 '인'을 앞서지는 않았습니다. 즉, 본래는 제자가 스승의 밥을 먼저 드린 후 다음에 먹는 것이 '예'이므로 '예'의 관점에서 안회는 잘못되었으나, '인'의 관점에서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인'은 동등성,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 앞서서 존재와 존재와의 만남, 나와 너의 세계는 동일하다라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너와 나의 세계가 똑같다는 것은 아니며, 또한 너와 내가 같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무슨 권리가 있다면 너 또한 이런 권리가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죠. 그것은 곧 타자에 대한 이해가 되며, 세계관의 확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관계의 거부성을 인간 본질의 거부성이라고 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히키코모리에 대한 관점이 영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너무 과하게 사용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상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관념적으로는 이러한 뜻이고, 이 뜻은 사실 더 깊은 뜻이 있다'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영상 말미에서도 분명 '단순히 언어로 정의내리기에는 언어의 표현적 한계가 있다'라는 것을 말하셨으니까요. 아마 영상 만들 때도 굉장히 신경써서 문장을 완성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dri138294 ай бұрын
약간 너진똑은 근대 서구 기독교적 시각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 같음. 동양 사상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계속 서구 기독교적 시각을 그 틀로 삼고 있음.
@ranoldola4 ай бұрын
멋진 영상에 멋진 의견 참 좋은 채널입니다
@베토디Ай бұрын
행동의 주체인 '내'가 현재 세상에 대해 이해해야 어떤 것이 나에게 장기적으로 편안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고, 이를 항상 실천하려고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흔 살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공자가 한 말입니다
@베리줄Ай бұрын
이 영상으로 대학 중용을 시작으로 간재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제 새로운 길을 열어준 영상입니다 감사합니다.
@hehe0owo4 ай бұрын
이번편은 ㄹㅇ 걍 예술.. 의무교육에 추가해야함 ㄹㅇ로..
@piais53644 ай бұрын
중용은 서양 동양 가릴 것 없이 중요한 철학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스마스 윤리학을 추천드립니다. 영어를 하실 수 있다면 영문과 한문을 동시에 읽으면서 좀 더 원문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읽으며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좋습니다. ^^
@TripleKkkim4 ай бұрын
그에 말에 말없이 고개만 끄턱인건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의 설명이 똑똑했기 때문이다. 정말 과학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리로 여겨지던 법칙이 조금씩 변화기도 하는데 어떻게 불변의 정확한 규정이란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dawn_tiger_s4 ай бұрын
양 극단의 끝을 살피고 중심을 찾겠다. 남들에겐 이해받을수 있을 정도면 됐고 스스로에겐 완벽하고 싶기에 어려울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모순을 양립하고 내 진리를 찾겠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에겐 중용만큼 스스로 생각하는법을 배웠으면 한다. 생각의 결과나 과정은 당연히 달라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아는 사람이 너무 없는것 같기에
@먀옹-k6i4 ай бұрын
예민하고 눈치빠른 성격이 손해본다고 생각하는 요즘이였는데요,,, 제가 그렇거덩요 점점 인간관계는 없어지고 눈치없는 사람은 잘만 살고 나보다 이룬것도 많아보이고 뭔가 지는것 같고,,질투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근데 중용을 알기위해선 눈치가 필요한것 같네요 ?! 예민하면 더더욱 알기가 쉬울것이고 제성격의 풀리지 않는 장점을 알아낸것 같아요 야호~~!
@riyoo43004 ай бұрын
당신의 중용을 위해 줏대를 추천드립니다. 항상 눈치만 보면 그것도 중용이 아니지 않을까요? 가끔은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표출하는것도 현명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쩜삼미리2 ай бұрын
눈치가 빠른 것과 눈치 챈 것들을 다 드러내는 것은 다른 영역인 것 같습니다. 내가 알게된 것들을 다 말하게 되면 내 패를 다 보여주면서 게임을 하는 것과 같더군요. 눈치 빠른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생기면 당연히 알아주겠거니 하는 기대를 통해 감정적으로 손해를 보기도하구요.
@amd1184 ай бұрын
몇번이고 듣습니다. 조선이 아닌 이 시대에 태어나서 정말 좋네요. 감사합니다 🙇
@뽀잉뽀잉-x3i4 ай бұрын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건 정말 끊임없는 반성의 결과물이겠죠. 😊 잘 보고갑니다.
@Two_darkred4 ай бұрын
중용을 지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중용은 오늘날에 꼭 필요한 덕목 중에 하나인 거 같네요
@jacob17524 ай бұрын
고등학생 때 중용에 대해서 배울때 그 순간부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입니다... 이렇게 보니 신기하네요. 중용에 대해서 되새길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졌는데 제가 나름 잘 활용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제가 공부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하는 단어를 여기서 보게되니 반갑고 웃음이 지어지네요 ㅎㅎ 다들 편안해집시다
@losico569Ай бұрын
9:10 본질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기 9:40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 적중. 같은 행동도 맥락에 따라 다르다 16:00 중용의 목적지는 사랑이고 출발은 '나는 모른다'는 깨달음 중용은 사랑의 도구 어쩌면 해상도를 높이는 일.
@클릭-c1k4 ай бұрын
모든게 부족함 없고 풍족하다고 느낄때 한없이 좋다가 어느순간 허~ 한 느낌이 찾아오고나서... 너무 기쁜것으로..너무 슬픈것으로.. 취우치기 보단 항상 평정심을 잊지않는게 중요한건가? 하는 생각이 스칠때 있었는데... 무엇을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아니하고 그냥 그대로 그렇게 바라볼수있는 마음..이런게 중요한건가? 하는 생각이듬. 이런 시선, 이런 마음 자세에 모든것에 대한 잔잔하게 애뜻함을 지니면 편안이 찾아올까? 하는생각이 문득 떠오를때가 있었는데.... 중용과 어떻게 연관지어볼수 있을까요?
@hyle61944 ай бұрын
계속 문학과 공부를 하시니 항상 발전하시네요 언제나 저번 영상보다 더 좋은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coonmong3 күн бұрын
중용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중용을 이룰려면 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정성과 성실이 있어야 중용에 이를 수 있다고. 이후로 중용을 성실히 살라는 가르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Estudy224 ай бұрын
말이 무섭다는 얘기를 이번편을 통해 잘 느꼈습니다. 단어 하나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다름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고서 이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일테니까요 다만 그러한 과정에서 겪어야 할 수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을 것이고요,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으로 데이터가 쌓이면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수많은 현세의 위기들이 작금의 문제들이 해결될 시간들을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 같아 낙관적인 생각을 내려놓게 됩니다.
@0무무4 ай бұрын
그죠.. 혼자인게 편한거같은 사람도 인터넷 커뮤니티는 못놓는걸보면 사람들은 아주 혼자인걸 버티는건 힘들듯..
@minjaeju004 ай бұрын
결국 인생은 늘 풀악셀이 밟혀 있는 자동차라는 생각이 듭니다. 필연적으로 나아가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핸들의 방향을 조종하는 것 뿐이죠. 운전하기에 따라서 가드레일에 박아버릴 수도, 중앙선을 넘어가 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회전 로타리에서 끊임없이 제자리를 빙빙 돌 수도 있고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이상향은 있지만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앎이라는 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결국 특정한 지점이나 목표가 아닌 일종의 방향성인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만 인간의 삶은 완벽할 수 없고, 정확히 차선에 맞춰 죽는 순간까지 깔끔한 직진을 할 수는 없는 일이겠죠. 유학이 주는 중용에 대한 가르침은, 결국 우리가 끝없이 나아가는 인생 속에서, 가드레일이나 중앙선에 박지 않고 좌우로 왔다 갔다, 외줄타기를 하지만 시선만큼은 전방에 고정되어 있는, 비라보는 곳이 명확한 인생을 살라고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느꼈습니다. 저는 요즘 굉장히 혼자인 인생을 살고 있지만 왜인지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혼자 카페에 가서 반나절 글을 쓰기도 하고, 냅다 혼자서 미술관에 가버리거나 지금같이 꼭두새벽에 산책을 나가 버리기도 하고요. 어쩌면 이런 제 삶도 편안보다는 안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또 영상을 끝까지 보며 생각해 보니, 아무렴 어떻겠냐- 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되돌아 봐도, 제 마음 속엔 외로움같은 게 자리 잡을 공간이 없었거든요. 결국 남의 가르침도 절대적이지 않기에, 이를 자신의 인생에 어떻게 적용시키고 어떤 깨달음을 얻어 갈지는 오롯이 개개인의 몫인 것 같네요. 좋은 영상 늘 잘 보고 있습니다😊😊
@gasterxv89514 ай бұрын
너진똑님이 스스로를 비판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겸손하고 멋지네요
@액윽보수4 ай бұрын
인생 살다보니 과유불급의 지혜를 저절로 깨닫게 되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움 순간순간 생각하고 실천해야함
@혁-x4u4 ай бұрын
"헐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하면서 들어옴 이 주제 대박 기대된다 >
@혁-x4u3 ай бұрын
8:50
@Novice-jq4uu4 ай бұрын
사랑은 무었일까? 예전엔 부모가 아이를 가지는 마음이라 생각했고 한때는 연인간의 감정이 사랑이라 생각했으며 언제는 배품과 나눔이 사랑이라 생각했고 지금은 아니 불과 몇분 전까지는 남을 자기자신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철학의 망치로 금이가기 시작했다
@아이우에오-p6r9 күн бұрын
아 이건 공감할 수 없네요 인간이면 무조건 인간과의 사랑을 바란다..?? 그것에 대한 근거도 없고 그냥 인간이면 무조건 그렇다는 건 좀 아닌 것 같네요 집에 있는 편안함이 안전도 있지만 인간 자체가 싫어서 그냥 보이기만해도 살인충동이 들며 실제로 사람을 죽일때 행복과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너진똑님이 말하는 인간만 존재한다면 애초에 세상은 이렇게 될리가 없으니까요
@moonbaragi4 ай бұрын
크으으 참고문헌 볼 때마다 그저 갓
@뇽이-r4t3 ай бұрын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라고 생각하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무언가를 판단할때에 옳고 그름으로 나타내기보단 그 정도를 파악하는게 핵심이겠죠 물론 이 글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eggjjimjjim24 күн бұрын
중용의 요즘말은 알잘딱깔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bravets7477 күн бұрын
너진똑님 영상 잘봤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너진똑...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중용을 직접 읽어보고 싶은데 어느 출판사의 중용관련 서적을 읽어보는게 좋을까요?
@오승윤-c2x2 ай бұрын
너진똑님, 중용과 인간관계 편을 매일 돌려보고 있습니다 이 영상과 그외 다른 영상들을 보면서 제게 사회불안이 있단 걸 알게 됐어요 이것에 대한 영상이 보고싶습니다 만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윤혜민-x4f4 ай бұрын
너진똑님 도스토옙스키 작가가 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란 책을 한 번 다뤄주실 수 있나요? 너진똑님 버전으로 꼭 보고 싶어요!
@chick_bean4 ай бұрын
지나가던 쪼렙이 이 영상을 매우 죠와함미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그냥애니프사2 ай бұрын
너진똑 영상 간간히 챙겨보는데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중용이었음 ㄹㅇ
@dri138294 ай бұрын
중용은 편안함이 아닙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고 그 선택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상태임. 그렇기에 상황 마다 최선의 선택이 최고의 상태를 가져다 주지는 않기에 항상 편안한 상태를 유지 할 수는 없음.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 하더라도 그게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고 그걸 행했다면 그 사람은 중용을 실천한 거임.
@HeroesBulletin2 ай бұрын
그게 결국 장기적으로 편안한 상태로 나아가는 길이겠지요
@Happiness_JJ2 ай бұрын
06:40
@eatersun73482 ай бұрын
안다는 착각
@Dkfkfkck3 ай бұрын
너진똑님 덕분에 제가 얼마나 무지한지 세삼 느끼고 갑니다.
@skyl8524 ай бұрын
유튜브에서 보고 이해했다고 넘기지 말고 삶에서 사랑하려고 실천해보세요. 이론적으로 배운걸 경험적으로 체득할 때 온전한 내것이 됩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너무도 넓고 깊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 같아요.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면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것 같아요. 그 가운데 나도 남도 존귀하다는 것을, 또 다른 어떤 상황에서는 나도 남도 믿을만한 존재가 아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많은 경험들이 축적될 때 자아 혹은 타인에 메이지 않는, 사랑 그 자체를 경험하는 때가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미숙해도 괜찮으니 외로워 보이는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를 해봐도 좋고, 어린 아이들에게 작은 칭찬을 해봐도 좋고, 어떤 방식이든 사랑을 실천해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Dialiu254 ай бұрын
이번 시험 범위라서 중용 공부했었는데, 이렇게 영상으로 나오니 반가운 느낌
@이원기-x9n4 ай бұрын
(유교) 중용은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 편안한 느낌 맥락에 따라 마음의 중심이 달라진다 편안하려면 사랑을해라 나 자신을 사랑하고 너도 사랑하라 사랑을 하기 위해 나의 앎을 의심하고 앎의 레벨을 높여야 한다 제대로 된 사랑으로 마음의 중심을 지키고 편안함을 느끼자
@최병권-u6w4 ай бұрын
앎의 레벨이라... 그렇다면 너진똑의 다음편을 본다면 저의 레벨도 올라가겠네요!!!
@프리스트단테2 ай бұрын
중용은 모든것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것에 감사하며 모든것에 행복해하는 마음의 상태니라. 이러한 상태에 이르면 진정한 중용의 상태가 되는데, 어떠한 악이나 불행이나 불쾌에도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 유익이 되며 그것 또한 나를 깨닫게 해주는 고마운 컨텐츠라는 사실을 깨닫고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행복감을 유지하는 상태가 진정한 중용이니라.
@밤가이-d7f4 ай бұрын
뭔가 "알잘딱"을 길~~게 풀어서 말씀하시는 느낌이네요.. (개독교와 나치독일의 민족주의까지 섞어서 ㅎㅎ) 머리로는 대충 이해가 가는데... 왜 자꾸 제 마음속에선 합리화라는 단어가 가시질않을까요??ㅎㅎ
@대생_daeseng4 ай бұрын
11:24 cctv 어디에 다셨습니까 ;;
@Zeliton1Ай бұрын
ㅋㅋㅋ
@hyj81594 ай бұрын
최근에 본 유튜브 영상중 가장 가치있는 생각을 준 영상같아요 잘 보고갑니다
@jinolee58993 күн бұрын
때에 따라 중립은 중용이 될 수도 있지만, 중용은 중립이 아닙니다. 내가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쳐졌다고 느낄 때, 스스로 중용을 지키고 있는가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