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히테 : 주관적 관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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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뚝딱 철학

5분 뚝딱 철학

Күн бұрын

Пікірлер: 172
@듀마
@듀마 4 жыл бұрын
그림인용, 음악선택 모두 훌륭하십니다..센스에 감탄하고 갑니다 그리고 중후반에 쿨하게 모르겠다고 하시는 부분까지 ㅋㅋ 정말 이 영상도 완벽한 완성도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짧게 다양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철학을 접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7080fusionArt
@7080fusionArt 4 жыл бұрын
제 과거경험에 빗대어 이야기 해보면, 살면서 여러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마주할때가 있었고 좋은 때도 있었지만 고통스러웠던 적도 많아요 그럴때마다 ‘신이라는건 존재하지 않아 세상은 그저 잠깐의 기쁨과 긴고통 뿐이야’라며 눈은 흐려지고 무엇보다 우울해 지더군요 그러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감각/생각을 한번더 제3자의 입장으로 관찰하는 법을 알게된 후에 세상을 보니 ‘그런 일이 있어서 또다른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일어날 고통도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 ‘3자의 입장’으로 감각/생각에 집중하는 훈련을 많이 했었습니다 꽤 시간이 흐르니 세상이 바뀌더군요 모든게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로 가득 메워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길가의 노인이 파는 사과하나에도 수많은 빛깔이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저는 신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저 이해할수 없는 일들을 마주할때가 있고 제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만큼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 무엇보다 저의 행복을 추구합니다ㅎㅎ제작자님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박팔노
@박팔노 4 жыл бұрын
피히테.. 불교의 유식사상과 근접한 결론을 내놓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칸트의 절대적 관념에 대한 사상과 융합하기 위해 노력했죠.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중 한명입니다. 카톨릭 신자지만 불교학 전공을 들으면서 그가 말한 것과 꽤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수니-h1t
@수니-h1t 4 жыл бұрын
어려운 걸 애써 연구하셔서 설명해주시는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피히테...이름이라도 듣게 하시고 ㅎㅎㅎ 놀라운 그림과 음악도 감상하게 하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
@JWDordtLim-z9z
@JWDordtLim-z9z Жыл бұрын
자아(이성)로 피아(대상)를 인식하는데, 자아는 피아의 범위 내에서만 인식할 수 있고 피아는 자아의 범위 내에서만 인식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자아와 피아는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 되어서 결국은 나의 자아는 나에 국한된 것이지만 동시에 우주를 존재하게하는 절대자아가 되는데, 그것은 도덕적 질서를 실현하려는 속성을 가지니 그것을 신으로 본다는 것이 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나의 자아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배후에 있는 속성이 된다는 뭔가 스토아학파의 로고스같은 범신론적인 사상이 되는 것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user-wu8lp8xk7m
@user-wu8lp8xk7m 4 жыл бұрын
와 칸트를 만나러 갈생각을 할수있고 또 만날수 있게 된 피히테도 대단하네요. 자기 내면을 깨부수기도 하고 무한히 품기도 하는 그런 저자를 실제로 만나는 일이 참 부럽네요. 지금이순간에도 누군가는 그렇게 자기를 깨부셔버린 누군가를 찾아가고, 많은 동기와 영감을 얻고 살고 있겠죠. 저도 책을 많이 읽고 십년안에 꼭 처음 만나러갈사람을 결정해야겠습니다.
@공돌공대
@공돌공대 Жыл бұрын
혼자서 서양 철학사 개론서 볼 때 도저히 이해 못한 부분들을 항상 해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영상 정주행 중입니다.
@philosjw
@philosjw 3 жыл бұрын
아주 재미있는 설명이네요... 자료들에 많은 배움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Soul-oo2jo
@Soul-oo2jo 4 жыл бұрын
우아 제가 초창기부터 짬짬히 봤는데 벌써 구독자 10만명 넘었네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전 방금 피히테를 보고 명상쪽이 떠올랐어요. 그쪽 가면요 어떤 초자아 의식으로 우리가 다가갈수 있고 우리의 병든 껍질을 벗고 근원에 다다르면 세상을 창조하는 힘을 가질수 있다. 우리가 자아를 착각하고 있고 절대 자아 의식에 들어가 나의 세상이 재창조 될수 있다 뭐 그런 개념을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내 마음에 의해 현실이 이미 창조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래서 마음을 정화하고 좋은 마음 가져야 좋은 현실이 창조된다고요. 철학과 심리학이 서로 연결된 것이겠구나란 생각을 첨으로 했네요. 이게 또 칼융하고도 연관이 있어 보이고요. 5분 뚝딱이라 핵심을 이해하고 어디를 먼저 팔지 알수 있어 참 좋은것 같아요. 이것이 빠른 구독자 증가의 이유같아요. 예도TV 정말 훌륭하죠. 그런데 머리가 딸려 용기를 못 낼때가 있는데 좀더 집중해봐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자명0룽따
@자명0룽따 4 жыл бұрын
저두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yeslkwon4120
@yeslkwon4120 2 жыл бұрын
배경음악까지 신중하게 선정해주시는 선생님의 노고를 잊지 않겠습니다:) 아침마다 영상 하나씩 보며 출근합니다. 덕분에 출근길이 매우 즐거워졌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자명0룽따
@자명0룽따 4 жыл бұрын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피히테에 "절대자아가 세계를 창조 하였다"라는 말을 이해 할 것 같습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요. ㅎㅎ 감사합니다. 항상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내가낸데-v3u
@내가낸데-v3u 4 жыл бұрын
모른다고하시지만 누구보다 많이 아시는분. 존경합니다
@asdasdasdww6001
@asdasdasdww6001 4 жыл бұрын
니같은 사람이 있을거라 예측한 것에 불과하겠지 ㅋㅋ
@jw_p4887
@jw_p4887 4 жыл бұрын
오분뚝딱의 정직함이 나만 이해못한 것 같은 자괴감을 다시 살려 놓는 계기가 되네요..ㅎㅎ 오랜만에 들리게 됩니다. 반갑고 감사하고 뭐 그렇습니다.
@러셀-w9w
@러셀-w9w 4 жыл бұрын
김필영 선생님 매번 감사합니다. 매 영상이 모두 재밌고 유익하고 사고에 도움을 줍니다 에셔 그림을 이용하신 설명이 일품입니다
@wincup
@wincup 4 жыл бұрын
WOW 정말 필요한 철학이론인데 다시 상세히 다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faustpanzer1462
@faustpanzer1462 4 жыл бұрын
너무 유익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죽으니 세상이 죽으나 자아가 없어지는 것은 똑같네요.
@참기름-o4e
@참기름-o4e 4 жыл бұрын
점점 영상 퀄리티가 올라가는 군요 감사합니다
@kielee7831
@kielee7831 4 жыл бұрын
기다려지는 맛있는 요리상입니다 ! 자연과학에서 뉴턴역학이 설명하지 못한 존재들을 양자역학이 등장하며 설명해주듯 철학도 유사한 과정을 다양한 학문으로의 분화를 통해 이해도를 높혀왔고 군더더기들은 대거 청소되지요. 칸트와 피히테의 시대 유럽은 기독교의 제도로 구속된 시대로 대부분 지식의 한계는 종교 문제로 귀착되어 온전한 무신론으로 진입하려면 굉장한 군더더기들이 필요했지요. 화석화된 지식들이 지금은 이해 불가이나 당시에는 전형이었거나 달리 말할 수 없던 사정도 있지요. 피히테가 지금 있다면 칸트의 이론에 아주 쉬운 변주곡을 달았을 거라고 상상합니다.
@singclair8814
@singclair8814 Жыл бұрын
멋지십니다! 정직하고 통섭을 하시는 분같아요. 많이 배웁니다!
@설가관-l2g
@설가관-l2g 4 жыл бұрын
영상을 보다가 비트겐슈타인 형님을 애타게 찾았다. 말장난 하지마!!
@seryu0808
@seryu0808 4 жыл бұрын
나다 이놈들아 ㅋㅋㅋㅋ 방심했다 ㅋㅋㅋ
@jshim9993
@jshim9993 4 жыл бұрын
과자먹다 모니터에 뱉어버림
@들판-z6k
@들판-z6k 4 жыл бұрын
설명만 들어도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이래서 철학이 쓸모없는 개소리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나봅니다. 됐고, 그래서 뭐라는거야? 라고 말하면 주절주절 다시 떠들어야되니 관심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헛소리도 없겠죠. 그래도 생각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 생각에 대해 생각하고 하다보면 무언가 이상한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까요. 이런 점이 철학의 재미 중 하나이겠죠. 오늘도 머리를 아프게하는 영상 감사합니다.
@이준우-h9e
@이준우-h9e 4 жыл бұрын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하게 피히테의 철학이 신의 전지전능함을 더 부각시키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거 같은데요. 개인의 자아의 배후에서 절대자아가 세계 전체를 창조하고 신적 질서를 이끈다는 것이면, 절대자아는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 어떤 것이니, 신적 존재로 여겨질 수 밖에 없고, 모든 인간들의 배후, 그 본질에 신이 존재하고 있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오히려 굉장히 강한 유신론적 철학일지도.. 또 에셔의 그림과 칸트의 통각 개념을 연결시키는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독일 관념론자들을 싸그리 비판하고 간단하고 명료하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저도 시원하긴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던 꿀통에 빠진(?) 파리들은 당대 대학가의 독일 관념론자들이 아니었을지... 쇼펜하우어는 그래서 세계의 본질(물 자체(Ding an sich))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주로 끌어오지 않고 '의지'라는 개념을 내세우게 되죠. 쇼펜하우어를 나중에 꼭 다루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니체등 수많은 철학자들과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니까요. 그의 삶과 인간적인 결점 또한요...
@이준우-h9e
@이준우-h9e 4 жыл бұрын
@龍樹나가르주나 우선 고정 댓글 감사드리고, 답글 해주신 분도 감사합니다. 제가 쓴 글이 단순한 인상비판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가 없군요. 저는 일단 피히테의 저작을 읽어본 적도 없고, 오로지 이 영상만 시청하고 그것에 근거해 피히테의 절대자아의 전능성을 유신론적 가치관의 입장에 서보면 어떤 변론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글을 쓴 것입니다. 어찌보면 철학의 영역이 아닌 종교의 그것에 기대어서 설명한 걸지도 모릅니다. 주체성, 절대자아 이 모든 것 또한 신의 뜻이다! 라고 하면 모든 것이 간단명료해지죠. 다만 답글 주신 분의 말처럼 고대 신 개념(활동성이 없는 신)과 대비되는 피히테의 활동하는 주체성을 구분하고 논하기 위해서는 저의 지식이 부족할 따름입니다. 저는 단순하게 제1원인이 되는 활동성이 인간에 깃들어져있다면, 그것이 전통적인 신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신과 관련되어있는 것으로 칭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발언계산기
@발언계산기 3 жыл бұрын
뭐 조잡한 제 실력으로 이해한 바를 말하면 결국 절대자아의 통합적 근원(목적)에 관한 것 같은데, 쉽게 말하면 70억개의 자아를 잇는 수십개의 도덕적질서(사상)이 있고, 사상을 잇는 신적질서(사상의 목적, 번영=생존)이 있다는 말을 하고있다 생각드네요. 모든 절대자아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갖고 70억개의 형태를 갖는다는 생각이 드니 그 단 하나의 목적이 경이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는 인간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데 결국 DNA를 갖는 모든 것은 신적 질서에 동참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절대자아는 주관적이면서 모든 절대자아는 신적질서에게 피동적이다. 라는 의미이니 주관적 관념론이 아니라 질서와 비아의 중간에 있는 중간적 관념론이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선조의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이지"라는 말이 떠오르는 흥미로운 철학주제였어요.
@트릭스터-w6o
@트릭스터-w6o 4 жыл бұрын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에서 자아가 활동하는 정신이고 비아가 활동의 대상이 되는 거라던데 자아를 생각하던 사람이 그 둘을 통해 내 자신과 연관된 모든 것을 생각하다가 다시 본래의 생각으로 되돌아오는 건 절대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글에 담겨 있는 내 자신의 생각 -> 그러한 내 생각을 살펴 본 사람들이 갖게되는 내 자신의 생각에 대한 내 생각 -> 내가 생각한 그런 사람들의 생각 -> 그 생각을 읽는 그 사람들의 생각 -> 그러한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내 생각 -> 원래의 내 생각 활동하는 정신은 대화, 음식먹기가 있는데 비아는 그 활동의 대상인 대화상대와 음식인 것이다. 절대자아의 의미를 사람이 어려워 한다던데 그 절대자아는 의식 아닌가? 의식을 하지 않고는 자연스럽게 주제가 흘러가는 대화에서 맨처음 대화주제가 뭔지 생각할 수 없듯이.. 무의식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주관적 관념론에서 말하는 메타인지도 못하게 될테니까요
@gemmakim9894
@gemmakim9894 2 жыл бұрын
배경 음악이 선생님 말씀을 먹어버리는 것 같아요,,
@philosjw
@philosjw 3 жыл бұрын
관념론 안에서 관념의 외부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곧 절대자와 무한자의 개념입니다.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절대자(대립을 잘라냄)이며, 자신의 외부에 어떤 것도 없다는 점에서 무한자(한계 없음)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무한자나 절대자를 신학이나 형이상학에서 "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것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아가 정립한 비아이고, 관념의 세계가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의 전부라는 생각이 그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이러한 주관적 관념론의 전조는 버클리의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는 선언에서 드러나지 않았나 합니다. ^^
@withnotbrain
@withnotbrain 4 жыл бұрын
만약 자신을 포함해 세계 전체가 물자체이고, 세계 전체가 절대자아이며 인간의 자아는 절대자아에서 떨어져 나와 생긴 자아라고 본다면 절대자아가 인간의 자아 배후에서 동작하는 힘이라는것도 말이 됩니다... 절대자아에서 떨어져 나오는것을 출생이라고 할수있을것 같습니다...
@무지랭이-y4j
@무지랭이-y4j 4 жыл бұрын
와 음악 마지막으로 진짜 소름이네요 ㅋㅋㅋ
@jongminkim4702
@jongminkim4702 4 жыл бұрын
여러분 사과를 아는게 이렇게 힘이 듭니다.
@true_d4762
@true_d4762 3 жыл бұрын
이렇듯 사과 하나 이해하기도 힘든데 나라는 자신과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정인철-j3q
@정인철-j3q 3 жыл бұрын
과수원의 농부가 사과를 알까? 식품영양학자가? 화학자나 물리학자가? 시장에서 과일을 유통하는 장사치가? 유통되는 식품의 안전성을 검사하는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이? 어린이 교육용 그림책 속의 사과는 사과인가? 도대체 누가 아이에게 사과를 가르칠 자격이 있을까?
@shhn5409
@shhn5409 Жыл бұрын
마지막 잘 모르시겠다는 내용은 헤겔이 말한 '세계의 신적인 절대정신' 개념과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하지는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그래도 전체적으로 내용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도움이 되었고, 특히나 계속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그림설명과 음악 참으로 흥미로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서분-t1n
@김서분-t1n 4 жыл бұрын
인공지능이 인간을 절대이길수없는 이유을 알았읍니다! 인간의 생각을 생각하는 농력! 감사합니다!
@paolopax4991
@paolopax4991 4 жыл бұрын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박동훈-v8u
@박동훈-v8u 4 жыл бұрын
절대 자아는 '선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 같네요. 인간의 배후에서 동작하는 힘을 '업'이라고 하죠. 신적 질서는 '연기법'이라고 해야겠구요. 이것을 사변적으로 알 수 없으니 수행을 통해 경험하기 위해 출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양 철학이 궁극에 동양 철학과 같은 곳을 가리키는 점은 참 흥미롭습니다. 어쨌거나 진리를 향한 연구의 종착지는 같은 곳이겠지요. 교수님이 이해할 수 없다며 납득하지 않은 부분은 교수님이 직접 수행한 것이 아니고 철학자란 사람들이 근거가 희박하게 글로써 주장한 내용을 접하셨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뭐, 저도 출가의 인연은 없었답니다.
@redporkchop59
@redporkchop59 4 жыл бұрын
배경음악까지 의미가 있었군요.. 그림과 음악에서 한편으로는 프랙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wincup
@wincup 4 жыл бұрын
영상을 보고 한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버클리의 같은 제목의 이론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Chris-cp6uj
@Chris-cp6uj 4 жыл бұрын
저도 쇼팬하우어의 촌철살인에 위로를 느낍니다...또르르..
@MSG17
@MSG17 4 жыл бұрын
영상 잘 봤습니다. 머리가 아프네요 보다 보니 전 양자역학으로 연결지어 버렸네요 이세상을 결정 하고 존재한다고 말 할 수 있는건 나의 의식 하나 뿐. 결국 이 세상과 우주를 만든건 나의 의식이며 수 많은 가능성을 두고 미래를 결정 짓는 나는 신 !? 재미있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김승구-x4o
@김승구-x4o 4 жыл бұрын
오늘도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구리구리구리구리
@구리구리구리구리 4 жыл бұрын
"영화를 보고 있는 나" 그리고 이 전체를 알아차리고 있는 나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에서 나는 작은자아(에고), 전체를 알아차리고 있는 나는 큰자아(절대자아,초월적 자아,알아차림,의식) 영화에 흠뻑 빠져있는 상태는 알아차림과 멀어진 상태. 즉 의식보다 무의식에 가까워진 상태. 무의식과 가까워진 상태에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을 내릴수 없다. 꿈에서 우리가 꿈인지도 모른체, 도망다니고, 판단력도 흐려져서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나를 발견할수 있다.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라면, 우리는 판단을 내릴수 없기에, 우린 누군가를 죽일수도 있다. 보통 술 처먹고 실수를 많이한다. 그러나 의식에 가까운 상태라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자명한" 판단과 그에 맞는 행동을 할수 있다. ---내가 배운 철학자들의 한 목소리: 정신차려진 지금 이 자리, 정신이 돌아온 지금 이자리가 알아차림과 함께한 자리이며, 그대의 본래, 본연의 자리다. 정신 차리고 살자. ㅋ
@bumhyosan
@bumhyosan Жыл бұрын
인간본성 양심이 자아입니다
@rr8493
@rr8493 4 жыл бұрын
피히테는 무신론 오해를 피하기 위해, 후기철학에서 주관주의적 요소를 대거 뜯어냅니다. 후기철학의 절대자아는 인간적&주관적인 '절대자아'가 아닌 순수 논리적 '절대자아'에 가깝습니다. 근데 저에게도 너무 어려워서 이 이상은...
@feline-logic
@feline-logic 4 жыл бұрын
15:54 저는 이 부분부터 정신줄 놓는 줄 알았습니다. 음악이 꼭 최면거는거 같네요 ㅋㅋ
@mrj9926
@mrj9926 4 жыл бұрын
피히테가 정말로 자아가 비아를 창조했다거나 비아가 자아와 동일하다고 말한 것인지 하는 문제, 그런 비상식적인 의미가 아니라면 그가 말하는 관념론과 절대자아란 대체 무엇인지 하는 문제에 대해, 일말의 시사점을 주는 듯한 구절이 있어 인용해봅니다: "피히테는 자아를 부정하지 않으려면 [역설적이게도] 자유가 제한 없는 절대성 안에 머무를 수는 없음을 발견한다 자유는 본래적 제한을 발견해야만, 자신을 절대적이면서도 유한한 자유로서 이해해야만 침몰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피히테의 과감한 사상은 순수 절대성에 접근하지만, 그에 빠져 자신을 망각하지는 않는다 피히테는, 그 안에서 인간성이 침몰해버리는, 자기를 넘어서는 티탄 같은 절대적 자아를 예고하는 예언자는 아니다 그는 가장 철처하게 모순적 존재인 인간이 근거를 두고 있는 그 자유의 모순성을 사유한 사상가이다 / 피히테가 말하는 유한성이란, 자아가 자기와 똑같은 다른 존재를 자신의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해야만 한다는 사실에서, 가장 명료하게 드러난다 .. 자유의 사상은, 오히려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자유로운 인격을 볼 것을 강요한다" (w. 바이셰델, "철학의 뒤안길", 이기상 역, 292) 이 저자의 관점에 비춰본다면, 피히테는 자아가 모든걸 창조했다거나 '세계(비아)=자아'와 같은 비상식적이고 난해한 말을 하고자 한 게 아니라, 인간을 과 사이에 있는 모순적인 존재자로 볼 때라야, 인간이 무엇인지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모색되지 않겠느냐는, 근본적인 인간학적 심리철학적 화두를 던진 것처럼 여겨집니다 t. 네이글은 의식의 불가해성을 의미하는 소위 "의식의 어려운 문제"를 논하면서, "의식이란 것이 없다면, 심신문제는 아주 덜 흥미로운 것이다 [반면] 의식이란 것이 있다면, [인간 이해에 대한] 가망은 없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피히테가 제안하는바 인간이란 존재를 자아-비아를 축으로 삼아 모순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관점은, 네이글이 말하는바 이러한 의식의 불가해성을 연상케 합니다 한편으로 인간을 의식적이고 메타-지각적인 자아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저 물질덩어리 기계에 지나지 않기에 우리의 직관에 비춰보면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는 없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자유롭고 의식적인 존재로 간주한다면 그에 반하는 물질적, 현상적 비아의 존재가 또 다른 걸림돌이 되어 물리계 내에서의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를 이해할 "가망성"이 흐려집니다 이는 칸트의 구분이 야기하는 핵심 문제를 나름대로 철저히 사유해본 뒤, 그것을 해결돠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학적 단초로 삼아야 한다고 결론내린, 피히테의 다소 체념적인 진단인 듯합니다 다만 피히테는 이러한 소극적 귀결에서 낙담하지 않고 칸트의 자유개념과 그에 결부된 도덕성 개념을 궁극으로 밀고나가, 인간이란 어쨌든 제한성 속에서 자유성을 실현해야만 비로소 인간일 수 있고 합리적일 수 있는 존재라는 적극적 논제를 천명했던 듯합니다 세계와 비아를 내가 창조햇냐 신이 창조했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제한성과 비아 속에서 오히려 자유롭게 행위하는 존재(이것이 그가 말한 '사행' 개념이 아닐까 싶은데)인 것처럼 인간을 이해해야, 인간의 삶과 학문이 비로소 유의미해진다는 것ㅡ이것이 피히테가 말하고자 하였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피히테가 세우고자 하는 학문론wissenschftslehre의 정초가 이런 모순적인 인간상이긴 하지만, 그러한 관점이나마 취하지 않는다면 그 위로는 여타 학문들마저 쌓아올릴 수 없지 않겠느냐는 과감한 제언인 셈입니다 "절대자아"에서 "절대"라는 수식어는, 이렇듯 모순적인 자아와 그의 모순적인 자유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모든 의 필수불가결한 단초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아가 자기의식을 지니는 동시에 비아를 정립하여 자신을 제한한다는 일견 모순적인 관점을 벗어나 어느 한 방향으로만 사유를 진행시킨다면, 자아가 실현한다고 여겨지는 자유는 한낱 허상으로 전락해버리고 우리는 학문과 윤리를 결코 논할 수조차 없는 처지에 빠질 것입니다 요컨대 피히테가 자아에 대해 규정하는 절대성은 형이상학적(객관적) 성질의 절대성이 아니라 인식론적(주관적)인 성질의 절대성인 겁니다(거꾸로 셸링은 절대성을 비아 즉 자연 내지 무한자에 귀속시키고 그것을 형이상학적인 성질의 것으로 전환시켰을 겁니다 그리고 헤겔은 절대성의 이러한 이원화가 실재에 대한 전체적 파악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했기에, 그만의 논리학을 통해 정신의 인식론적 절대성과 정신 외부 실재의 형이상학적 절대성을 종합하고자 했던 듯합니다) 저는 이러한 해석이 꽤나 현대성과 동시대성을 띠고 있다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피히테가 말하는 자아와 자유의 모순성은, 현대 심리철학의 뜨거운 논쟁거리로서 네이글이 지적한 의식의 불가해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e. 레비나스나 j. 데리다 같은 현대 대륙철학자들에서 발원한 에 대한 철학적 관심은, 굳이 철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현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논의거리입니다 일례로 레비나스는, 우리가 타자에게 볼모잡히고 타자의 종이 되어야만 주체가 주체일 수 있고 윤리가 윤리일 수 있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자아의 자유성이 비아의 제한성을 선제해야만 침몰하지 않고 온전하게 성립될 수 있다는 인용문의 피히테 해석과 상통합니다(레비나스의 쌍과 피히테의 쌍의 대응) "자유의 사상은, 오히려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자유로운 인격을 볼 것을 강요"한다는 피히테의 관점과 유사하게, 레비나스는 고통에 울부짖는 "타인의 얼굴", 항상 나보다 헐벗었고 못 가졌고 나약한 그 얼굴, 규정할 수 있는 전체성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인식체계 내로 환원될 수 없는 무한성으로서의 얼굴이, 주체로 하여금 타인을 마주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주체가 비로소 윤리적 존재로 거듭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해석이 나름 합당하다면,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철학은 역설적이게도 그보다 전 시대 인물인 피히테의 철학에 비해 외려 구시대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인용문에 나온 "자기를 넘어서는 티탄같은 절대적 자아를 예고하는 예언자"는, 미적 고양이나 윤리적 수행을 통해 의지를 소멸시킨 채 이데아를 관조하는 자아를 말하는 쇼펜하우어라든가,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초월한 어린아이같은 위버멘쉬를 말하는 니체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 인간상은 일견엔 모종의 깨달음과 신선함을 주긴 하지만, 정작 현대인더러 처럼, 자기를 처럼 살으라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무얼 어떻게 살라는 건지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겁니다 정말로 문자 그대로 그렇게 사는 인간은 자신의 절대적 자유(방종) 속애 자아든 비이든 모조리 "침몰"시켜버릴 것입니다 그건 자유도 아니고 삶도 아닙니다 인간은 의식을 지니긴 하지만 육체도 갖고 있기에 의지를 소멸시킬 수 없으며 원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사회와 집단 내에서 살아야 하기에 자기나 타인을 초극하여 살 수도 없다는 것, 오히려 비아와 부대껴 살면서만이 자신의 주체성과 윤리성을 수 있다는 것, 인간을 인간적이게 은 이렇게 단초에서부터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ㅡ피히테의 철학을 이렇게 해석한다면, 저는 오히려 그의 말이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말보다 더욱 현대적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피히테는 는 형이상학적 당위가 아니라 는 인식론적 당위로서의 절대성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독일 관념론이 너무 어려워서 이전엔 책을 읽어도 그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 영상을 계기로 댓글 쓰느라 나름의 해석과 이해를 조그맣게나마 정리해볼 수 있었습니다 영상이라는 "비아"가 있으니 저의 생각도 "정립"이 되네요 ㅋㅋㅋ 앞으로 셸링 헤겔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마르크스까지가 기대됩니다 독일 관념론을 비판하고 무시하더라도, 뭐라도 이해하고 난 뒤에 무시하든 비판하든 하고싶습니다 헤겔 영상 빨리 보고 싶어요
@true_d4762
@true_d4762 3 жыл бұрын
독일 관념론을 이해하고 싶지만 때려치고 싶고...그러다가 또 이해하고 싶어서 책을 펴면 던지고 싶은 마음이..ㅋㅋㅋㅋㅋ
@mrj9926
@mrj9926 3 жыл бұрын
@@true_d4762 역시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ㅋㅋㅋ '자, 독일 관념론 함 보까' 해서 책 사서 읽다가 '아, 내년에 다시 읽자..' 그런 책이 어느덧 너덧권 ..
@afterdue
@afterdue 4 жыл бұрын
아 이 음악 뭐지? 나름 음감에 자신 있었는데..
@Cumulus-1p
@Cumulus-1p 4 жыл бұрын
역시 인간의 메타적 인지능력은 진짜 대단한 듯
@이은진-x8v2x
@이은진-x8v2x 2 жыл бұрын
이음악 한시간만 듣고 있음 미칠것 같아요^^:;
@bigsuntv262
@bigsuntv262 4 жыл бұрын
제한적인 언어와 관념을 통하여 타인의 정신세계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본디부터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insight7095
@insight7095 4 жыл бұрын
자신의 무의식도 알지 못하는데 타인을 어떻게 알 수 있을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의 과학과 철학이 생물의 인지과정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멀은것 같아요
@bigsuntv262
@bigsuntv262 4 жыл бұрын
@@insight7095 그런 것 같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올바르게 아는 것과, 타인과 오해없는 소통을 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니까요. ㅎㅎㅎ
@김재옥-d8l
@김재옥-d8l Жыл бұрын
우리의 의식은 외부세계(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보다 한 차원 더 많거나, 차원을 (3차원 공간을 1차원이나 2차원으로)압축하여 경험하기 때문에 헝클어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때문에 우리는 내적세계에서 남은 차원을 통하여 공간이든 시간이든 초월하여 경험할 수 있는 것이고요.
@예수교회-치유와화해
@예수교회-치유와화해 3 жыл бұрын
자아와 절대 자아는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 인식과 판단의 기준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 됩니다. 그 절대적 기준점이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자기를 초월한 존재로서 신을 가정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피히테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은 이상 그의 마음의 생각에 대해서 판단을 보류하는것로 족하다 생각합니다ㅣ.
@JohnW-y9t
@JohnW-y9t 2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감사합니다. 위그너의 친구 패러독스가 생각나네요 양자역학에서 고립된 계는 결정론적으로 기술됩니다. 실제로 측정을 안 하면 계의 위상이 시간에 따라 일정하게 바뀌고요 그런데 측정을 하는순간, 즉 위부장치와 그 계가 섞인순간 어떤 측정하는 행위가 곧 상호작용이므로 비결정론적으로 다음순간의 측정값이 나옵니다. 확률적이죠. 그렇다면 에초에 그 계와 측정장치를 모두 포함해서 기술했다면 그 전체 계는 한번도 비결정론적인이 없어야 할것 같습니다. 개념상 초자아가 절대적이라면 자아(측정기)와 대상(계)이 결정론적으로 기술된다가 할수 있겠네요. 하지만 계와 나를 포함한 바깥의 관측자가 있을것이고 처음에 이바깥을 관찰자는 기술에 포함안해서 바깥 관찰자의 관측시도는 확률적 결과를 내겠네요. 이렇게 무한 반복이 될겁니다
@jaehongkim1231
@jaehongkim1231 7 ай бұрын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초월적 통각은 '사과를 생각하고 있는 나=x'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지만, x를 생각하는 나를 다시 생각할 수 없다고 한것으로 압니다. 메타-메타관계는 인간이성능력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jaehongkim1231
@jaehongkim1231 7 ай бұрын
통각의 역할 중 ich denke안으로 포섭하는 cogito가 '논리적 주관(자아)'역할 즉 '조금 전 앞뜰에서 사과를 생각했던 나'와 '지금 거실에서 생각했던 나'를 따로 혼동하지 않고 동일한 나로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jaehongkim1231
@jaehongkim1231 7 ай бұрын
칸트 관념론에서 문제점을 가장 정확히 지적한 것은 쇼팬하우어이다. 그는 칸트가 물자체를 알 수없다고 한게 잘못이다. 물자체는 우리의 지각과는 상관없이(독립적으로)존재산다. 즉 물자체는 의욕하기 때문에 (생의)의지로 표상되며, 그 의욕은 물자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명쾌한 해석은 피히테, 헤겔을 사기꾼으로 만들고 니체에게 망치를 제공해주었다
@dnsqhd1217
@dnsqhd1217 4 жыл бұрын
메타 메타 그리고 그림을 보니 메타몽이 될것 같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현기증이 날것 같아요 ㅠ 하지만 칸트을 비판한 피히테의 작업은 어떻게 보면 단순합니다 인간의 경험의 기능성에대한 고민들입니다 인간은 어떤 경험을 했을때 이 경험이 물자체로부터 왔는지(순수객관) 아니면 자유로운 자아라부터 출발했는지에 관한 고민들이죠 칸트는 이 두를 모두 거부했죠 왜냐면 전자는 독단론으로 빠지고 쉽고 후자는 보편적이고 필연적 성질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종을 이 둘을 보안한 선험적 감성론(시간과 공간에대한 이론)을 고안하지요 하지만 피히테는 칸트 이런한 해결책을 거부합니다 그는 자유롭게 사고하는 주체로부터 경험을 설명하려합니다 그럼 당연히 설명해야겠죠 자유로운게 사고하는 주체(자아)는 과연 무엇일까요? 피히테는 이렇게 말합니다 " 만약 이 주체(자아)가 없다면 우리는 걸을수도 없고 손이나 발도 움질일수 없다" 그리고 이 자아는 "유아론(solipsism)에 빠진 개인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정신적인 생명이다" 그러면서 이세계 모든것은 생명이 아니것이 없으며 신이 아닌 존재가 없다라고 하지요 일종의 범신론자로 알려져있습니다 짧은 소견이지만 궁금한점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시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더욱 발전하는 뚝딱철학 되시기 바랍니다😎👍
@kiminseattle3476
@kiminseattle3476 4 жыл бұрын
모두를 만족시킬순 없겠죠? 인간과 개와 박쥐가 개체의 방식으로 각각 다르게 인지하는 거니까요. 전 무엇이거나 별 상관이 없지만 B를 선택했고 B가 될거라 생각 했읍니다.
@전금조-f6h
@전금조-f6h 4 жыл бұрын
저도 이 채널에과 맞는 썸네일을 굳이 뽑으라면 b라고 생각합니다. 5분 뚝딱 채널 특성상 경험론과 합리론, 데카르트와, 흄 이렇게 역사적 인물과 인물간의 대립, 계승 등 상호작용을 통해 주제를 전개시키는데, A썸네일에 있는 그림은 주제와 엇나가진 않으나 채널의 특색에 그렇게 딱 맞는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B 썸네일은 비교적 생소할 수도 있는 인물 이름을 선택했음에도 A보다 불친절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직 채널의 특색을 모르시는 유입 분들을 고려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체재로 A를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마 A, B로 선택지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구체적으로 B 썸네일에 A의 텍스트를 추가하자고 하셨을 사람들이 훨씬 많으셨을 겁니다.
@halfm8767
@halfm8767 4 жыл бұрын
제가 이래서 쇼펜하우어를 좋아합니다.
@bless0414
@bless0414 3 жыл бұрын
절대자아는 전체의식과 비슷한 개념이군요. 1. 개체가 있으면 개체의 합인 전체가 있다. 2. 개체의식이 있으면 그 합인 전체의식이 있다. 3. 개체의식은 가족의식, 가문의식,지역의식, 국가의식, 지구의식,세계의식,우주의식,대우주의식 곧 전체의식 등으로 발전한다.
@yjk6663
@yjk6663 3 жыл бұрын
13:55의 내용은 하원에서 자연법을 해석하여 발의를 하고 사법부(기존까지의 도덕적질서)에서 통과가되면 상원에서 통과시킬지 기각할지 해서 통과시켰다면 현실(행정부)에 적용 한다는말과 맥락이 같지않나요? 피히테의 절대자아는 '상원'에 가깝지 않을까요!?
@grebe5797
@grebe5797 4 жыл бұрын
에셔의 그림과 배경음을 들으니 cyriak의 작품들이 떠오르네요
@궁금타님
@궁금타님 4 жыл бұрын
인간의 관점에서 피히테는 인간의 내면을 잘 분석한거 같네요~성경적 관점에서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선악의 지식으로 자신이 신이되어 세상을 보니 인간이 자아를 통해 세계를 보는거 자체가 신이창조한 세상을 인간이 다시 재창조 했다고 보면 되지않을까 합니다. 인간이 재창조해놓은 세상에 진짜창조자가 오니 부딪힐수 밖에요~~ 그래서 예수가 인간에 의해 죽을수 밖에없죠~ 그런데 죽을것을 알고도 와서 죽었어요~ 그걸 사랑이라고 하네요~ 이걸 철학적으로 설명할수 있을까요? 이주제도 한번 다루어 주세요~~^^
@애숙김-s1t
@애숙김-s1t Жыл бұрын
피히테의 절대자아가 칼융의 self같은 것일까요?.
@소요
@소요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 말해놓고 보니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데요 "?" 에서 빵터졌어요. 넘 재밌다
@hyejue
@hyejue 2 жыл бұрын
관념론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왔는데요, 자막에 오류가 있어서 알려 드립니다. 34초 : '해결 에서 '헤겔'로 수정 8:32초 : '배타적' 에서 '메타적'으로 수정 13:15초 : '히테'에서 '피히테'로 수정이 필요합니다. .
@rf8dao223
@rf8dao223 4 жыл бұрын
음 제가이해한거는 물체를 인식하고 인식한걸 인식하는것 자체 모든것이 인식하는 활동이고 활동은 자아라고한다면 각 인간마다 인식활동에따른 그들만의 세계를 창조했고 그세계를 절대자아라고 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식하기 시작하고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이 세상을 만들면 그세상의 주인이 되기때문에 도덕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기름-o4e
@참기름-o4e 4 жыл бұрын
추후에 셸링이나 헤겔도 다루실 예정이신가요?
@참기름-o4e
@참기름-o4e 4 жыл бұрын
@@5philosophy 오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stillimage8146
@stillimage8146 4 жыл бұрын
모든 벽이 거울로 된 방에 들어가면 밀폐(제한)된 공간에서 내 모습이 무한대로 펼쳐지는 광경을 보게됩니다. 그렇다고해서 나라는 존재가 무한대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여러 계층의 메타-메타-.....메타적인 생각을 한 들 나홀로 하는 생각에 불과한 것처럼 구원이 필요한 존재에게는 유일신이 필요할 테고 깨달음이 필요한 존재에게는 윤회의 고리를 끊어줄 절대 자아가 필요할 겁니다. 내가 나를 어떤 사물(혹은 누군가)에 투영해서 내 자신을 객관화하듯이 절대 자아를 찾는 것이죠.
@병하오
@병하오 3 жыл бұрын
이번 영상은 역대급이다😮
@포퍼
@포퍼 4 жыл бұрын
31초 자막에 해결->헤겔 오타인가요?
@changwilee8121
@changwilee8121 4 жыл бұрын
수고 많았습니다. 피히테의 복잡한 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느라... 덕분에 5분동안에 피히테를 알게 되었습니다. 피히테의 절대자아는 수학에서 공리처럼 생각됩니다. 즉 증명할 필요없이 무조건 사실인 명제들. 예하면 두점을 지나는 직선은 하나다. 두 직선은 평행이거나 사귀면 한점에서만 사귄다. 등 등. 이런 공리들을 기반으로 보다 현실에서 의의있는 정리들이 증명됩니다. 절대자아 : 공리 자아 : 정리 반자아 : 눈에 보이는 현실 그런데 자아 라는 단어는 한자입니까? 왜 한국어에서 굳이 이런 단어로 표현했는지가 궁금합니다.
@lightyear1079
@lightyear1079 2 жыл бұрын
쇼펜하우어 개웃ㅋㅋㅋㅋㅋㅋㅋㅋ졸라쎔ㅋㅋㅋㅋㅋ쇼펜하우어는 참지 않긔,,,
@stranger-windcloud
@stranger-windcloud 4 жыл бұрын
피히테의 궤변이 아니라고 보면 있는 그대로 주관적인 관념에 의한 생각 정도로 머무른다면 분명히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의 주관적인 관념에 의해서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세상은 전 우주적(?)관점(정해진것은 없고 예외적인것도 있는)으로 봤을때 지구에 사는 생물학적 인간들의 자아의 인식의 산물이 아닌가.. 그리고 좀 다른 이야기지만 신을 부정했다고 하는 내용을 보며 느낀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궤변을 하는 성직자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단여부를 떠나 그들의 그런 궤변이 먹힌다는건 그만큼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한 술책으로 보여집니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것 자체로도 신을 섬기기 보다는 이용하려 하는 사람들이 있을수 있고, 신을 부정하기보단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혹은 앞세워서 성역을 만들어 나가는 무리들이 점점 많아 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피히테가 이해가 갑니다. 무신론이라며 쫓겨난것도..
@iallalli5223
@iallalli5223 3 жыл бұрын
필영씨가 서술하는 피히테에 대한 서술로서만 말하는 거이네요. 피히테가 절대적 자아 또는 신적 질서라고 표현하는 바로 여러분 자기자신 나에 대하여 여러분 스스로 상상할 수 있도록 제안하려고 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미리 말한다면, 피히테의 주관적 자아로서 절대적 자아나 셀리의 객관적 자아로서 절대적 자연이나 항상 똑 같은 동일한 바로 여러분 자기자신 나 실체를 여러분 각자 스스로 증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즉 여러분이 영원히 완전한 여러분 자기자신 나를 여러분 스스로 자각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나는 생각하드래도 나이고 생각하지 않드래도 똑 같은 나입니다. 여러분 나는 온 우주에서 여러분 나 말고는 딴 나가 달리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나입니다. 여러분 나는 어려서도 젊어서도 늙어서도 똑 같은 나입니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 나의 몸에서 여러분 나의 세상에서 약간의 변화를 하드래도 역시 똑 같은 나인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 나의 마음에서 감정에서 생각에서 지각에서 감각에서 행위에서 약간의 변화를 하드래도 역시 똑 같은 나인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 자기자신 내가 없다면 온 우주 그 무엇도 여러분 자기자신 나에게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기자신 나야말로 온 우주 시간 공간 객관 주관 유무 삼라만상의 근거이고 바탕이고 자산이고 시작이고 과정이고 종착입니다. 서술에서 예로 든 화랑속의 그림이나 일상의 일상사나 아무리 축소하고 아무리 확대하고 아무리 변경하여 보드래도 역시나 언제나 똑 같은 여러분 나인 것입니다. 일체가 여러분 나속에서 여러분 나로서 드러나는 여러분 나뿐의 세상이랍니다. 사실은 여러분 자기자신 나는 나일뿐만이 아니라 여러분 나는 스스로 일체의 몸 마음 세상 안팍의 다이고 온 우주 세상 삼라만삳의 일체는 모두 다 전체도 낱낱도 부분도 조합도 오로지 여러분 스스로 나뿐이랍니다. 달리 말하자면, 여러분 자기자신 일체를 초월하였으면서도 동시에 일체를 여러분 자기자신 나로서 나투어서 드러내고 있답니다. 여러분 자기자신 나야말로 절대적 자아로서 동시에 절대적 객관인 자연이다, 라는 말입니다. 위의 일련의 표현들은 불교나 기독교의 핵심 종요로 직통하는 진리이기도 하고 동양의 고전인 노자나 장자로 통하는 말이에요. 이 글을 읽는 분들중에 금생에 이와 같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진리를 스스로 자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필영씨의 피히테에 대한 몇마디 말에서 횡설수설하였습니다. 그대가 다이고 다는 그대랍니다. 그대여, 그대 나에게 오세요. 모세에게 하나님이 아이엠 대트 아이엠, 이라고 했으니 내가 다이고 다 나이다, 라는 표현이고 석가모니의 유언에 자귀의 법귀의 자등명 법등명이라 했으니 그대 나 스스로 천상천하유아독존 자각하라는 거이고 소크라테스가 그대 자신을 알라, 한 것도 또는 파르메니데스가 실재라고 표현한 것도 그대 나 자신이야말로 영생영락하는 유일실재인 창조주 주인이기 때문이니 여러분 스스로 노자가 표현하는 왕의 신분으로 돌아오면 바로 자연이니 일체 모두 다 여러분 나뿐이라 아무리 행하드래도 똑같은 여러분 나뿐이라 자연 무위 자연 나입니다. 착각에서 깨어나기를 권유하는 바입니다. 그 몸뚱아리만이 또는 그 마음만이 나이다, 라는 그 오랜 습관적 문명적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인류적 전통적 유행적 착각에서 이제는 스스로 깨어나야 좋습니다.
@snoringasmr
@snoringasmr 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행님
@황재현-v9z
@황재현-v9z 4 жыл бұрын
8:28 배타적 생각 오타 있네요
@ahnistyle
@ahnistyle 4 жыл бұрын
아시겠지만 분석심리학에서는 자기원형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저는 절대자아가 그것과 대동소이한 개념일거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다만 자아를 절대적인 것이라고 지칭한것 같은 네이밍은 단어자체가 모순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아를 가진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인데 말이죠. 아마도 그런면에서 피히테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기보단 기존의 것들을 채집하는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에서 모순이라 지적된 부분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전제나 노자의 도(道) 철학을 도입하면 풀리는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LeeHanism
@LeeHanism 4 жыл бұрын
재미있네요.ㅎㅎ 그런데 칸트가 말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걸 바라본다에서 그걸 다시 바라보고 또 나와서 다시 바라볼수 있는 슈퍼 두뇌가 존재할까요?? 그건 틀린듯 합니다. 기껏해야 생각하는걸 바라보는게 뇌의 한계이죠. (저말고 반박한 논의가 많았을테지만..) 19세기 관념론과 동양의 참나, 일체유심조랑 거의 유사하다는게 참 흥미롭습니다. 쇼펜하우어가 관념론을 말만어렵게 한다고 비판했지만 학문적 진리에는 상당히 근접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말만 어렵고 이상하게 쓰는걸로 따지면 프랑스철학자들이 더 심한것 같더라구요.
@행운을가지세요
@행운을가지세요 4 жыл бұрын
신이 만든 절대적 자아에 인간의 정신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기보다 세계가 인간의 정신을 이해시킨다는게 아닐까요 내가 생각하는 것 같지만 생각되어지는 그런게 아닐까요. 그래서 세계가 통한다는 그런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성백지
@성백지 3 жыл бұрын
절대자아는 불교의 유식론이나 일체유심조, 절대자아의 배후에 있는 힘은 신 그러나 단지 힘으로서만 작용하는 것이 라니라 인격으로 작용하는 신 즉 기독교, 이 둘을 어떻게 통합할수 있느냐?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JohnW-y9t
@JohnW-y9t 2 жыл бұрын
MCE 마크가 확대된 그럼에도 있는것 아닌가요?
@dgk7167
@dgk7167 4 жыл бұрын
뒤에 있는 모니터를 보니 코딩을 하시는 것 같은데 맞나요~!?
@JS-gm4qx
@JS-gm4qx 4 жыл бұрын
쇼펜하우어도 꼭한번 다뤄주세요!!
@gomminsu
@gomminsu 4 жыл бұрын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이승현-g8i7r
@이승현-g8i7r 4 жыл бұрын
색맹이라고 꼭 흑백으로만 보는 건 아닙니다! 물론 전색맹의 경우 흑백세상이지만 그 외의 경우는 단지 정상인과는 다른 색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이승현-g8i7r
@이승현-g8i7r 4 жыл бұрын
제가 알기론 개와 고양이는 적록색맹입니다
@정인철-j3q
@정인철-j3q 3 жыл бұрын
누군가 개나 고양이가 된 경험이 있다는거임? 아무 근거없는 추측아님?
@히히-z5w4m
@히히-z5w4m 2 жыл бұрын
@@정인철-j3q 시각세포의 원추세포 수가 적기 때문에 개와 고양이가 적록색맹인 것입니다.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결과입니다
@nojam_2699
@nojam_2699 4 жыл бұрын
영상을 보니 제목정하기 무지 어려웠을 듯 합니다. 내용은 생각의 꼬리물기, 인식의 차이인데 제목은 헝클어진 위계질서라.. 제목을 보고 영상을보니 처음에 이해가 어려웠네요... ^^
@예수교회-치유와화해
@예수교회-치유와화해 3 жыл бұрын
피히태 ; 인간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이해는 인간 자아가 인식 대상 세계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 방식에 의한 관념이다.
@존만이-r9v
@존만이-r9v 2 жыл бұрын
세상은 넓고 재밋고 신기한게 많군요 찾으면
@peacelee8944
@peacelee8944 4 жыл бұрын
물자체를 잘 못 정의해서 오류가 발생한 케이스입니다. 칸트가 이야기한 물자체 개념은, 그 사물이 하나로서 존재한다고 가정한것일테고, 실제 사과라는 물자체가 존재하지 않는이유는, 사과는 많은 원자의 우연한 조합으로 뭉쳐진 덩어리일 뿐이니까요. 칸트가 살았던 시대에 원자 전자 등의 미시영역에 대해 잘 알았다면 칸트 정도의 철학자는 이런 사유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사과 자체가 하나의 완전한 1요소 물질이 아니고, 원자들의 집합체라는 점, 그리고 그 원자의 잡합체를, 눈 이라는 창구를 통해서 바라볼때 맺히는 상의 형태를 암묵적으로 사과, 라고 정하기로 합의하였기에 사과 자체는 물자체일수가 없지요. 더 재미난 점은, 이 사과 라는 원자 덩어리를 판별하는 눈 이라는 창구 역시 원자의 덩어리라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Mangwol-i2v
@Mangwol-i2v 4 жыл бұрын
원자로 물자체를 설명하는게 맞는 시도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원자덩어리의 물체도 역시 우리에게 감각되는 대상일뿐 물자체가 아닌 우리 머릿속의 이미지입니다. 감각되지않는것은 존재하지않는다 등의 버클리식 관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자체는 감성을 통해 우리에게 수용되는데 이말인 즉슨 우리는 물자체를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원자로 물자체를 설명하는것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원자로 물자체를 설명하는것처럼 보이지만 원자로 설명하는 것은 우리의 간주관적 감성에 포착된 현상에서의 대상의 설명이지 애초에 이걸넘어서서 설명하는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사과라는것을 설명하더라도 우리에게 인식된 사과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이것이 원자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물자체를 포착해서 실험관찰하는것이 아닙니다. 추가로 물체를 공통적으로 이루는 것을 발견한다고하더라도 그것이 물자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가능한 발견인지는 인간인식의 한계 밖입니다 현상에서의 설명이니까요. 부족한 생각이라 죄송하지만 제 모자란 생각은 이러합니다...
@peacelee8944
@peacelee8944 4 жыл бұрын
@@Mangwol-i2v 의견 좋아요~ 님 글과 제 글의 맥락이 비슷해보이네요~
@peacelee8944
@peacelee8944 4 жыл бұрын
@브레이니악 앞에분께는 기분 나쁘지 않길 바래서, 돌려 말씀드렸는데.. 한분 더 나오시니 신기하네요 ㅜ 맥락을 못읽으셨으니, 다시~ 물자체라는 개념 자체가 잘못되었다는것이고, 차라리 원자가 더 물자체에 가까운것 아니냐고 재미로 예시를 든것이죠. 이 글의 맥락이 어려운가요?
@peacelee8944
@peacelee8944 4 жыл бұрын
@브레이니악 님 생각이 옳습니다.
@peacelee8944
@peacelee8944 4 жыл бұрын
@브레이니악 기분좋은 인생 만드는게 중요합니다. 잘 살자고 각자의 지혜를 공유하는거지, 아는만큼 보이는거니까 각자 아는만큼 보고 자기말이 맞다고하는거에요~ 님도 이글 보는 분들도 행복한 저녁^^
@heesooyyang
@heesooyyang 4 жыл бұрын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falconer8058
@falconer8058 4 жыл бұрын
시각 청각 모두 완벽 !!
@user-Donky
@user-Donky 4 жыл бұрын
오분뚝딱 철학이라 하드만 이 영상 17분이네요. 그만큼 머리를 굴려봐야 이해될 수 있다? 정도로 생각할게요.
@ルーシー1
@ルーシー1 3 ай бұрын
물자체사과가 이쁘네요 ㅋㅋㅋㅋ
@자연수-w4j
@자연수-w4j 4 жыл бұрын
궁극적으로 '인연'의 힘을 말하는 것 같네요. 불교와 어찌 그리 흡사한지...
@user-ijinsa
@user-ijinsa 2 жыл бұрын
근대철학 이전에는 존재론 존재와 개체가 중요했습니다.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부터 생각 즉 인식론에 집중했습니다. 인식의 도구로 합리론은 존재개체의 선천관념과 이성을 이용했고, 경험론은 공통적인 감각과 경험을 이용했음. 칸트는 감각적 경험을 선천적 오성, 이성을 통해 인식한다고 종합했음. 그리고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인식하는 입장에서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주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 결국 물자체(=진짜 객체)를 알수없다는 불가지론 주장. 합리론 / 이것은 사과라는 개체이다/ 저것은 코끼리라는 생물체이다 경험론/ 사과는 이렇게 생겼다/ 코끼리는 저렇게 생겼다 칸트관념론/이런것이 사과라고 생각한다/ 저런 것이 코끼리라고 생각한다. 즉 불변하는 코끼리 개체에서 (코끼리 자체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언제든 내 생각은 변할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것. 이것을 코페르니쿠스(지구불변의 천동설 을 지구가 항상 이동하는 지동설로 바꾼 사람)적 인식방법의 전환이라고 자화자찬. 독일관념론의 시작이 된다. 개체의 생각은 변하므로 결국 칸트의 초월적 통각, 피히테의 절대자아, 헤겔의 절대정신을 만들어낸다. ㅡ 존재론이 존재개체를 중요시하는것과 달리, 인식론은 대상(결국 세계 전체= 자연과 우주 속의 모든것)을 인식하는 방법을 중요시. 근대이후 존재론을 멀리 하고 인식론에 치중하면서 독일관념론은 칸트의 초월적 통각, 피히테의 절대자아, 헤겔의 절대정신을 만들어냈다. 헤겔의 절대정신 자리에 물질을 집어넣어 유물론적 변증법, 즉 유물사관을 만들어낸 것이 맑스-엥겔스이다.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은 결국 대상과 세계를 전체, 즉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로 간주하게 된 시발점이 됐다. 개체가 큰 의미가 없어지면서 최종적으로 무신론으로 이어진다. 인식론 철학자들은 모두 무신론자가 된다.
@장애옹-s3w
@장애옹-s3w 3 жыл бұрын
본인이 리더돼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전체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말 아닌가요? 피히테에 관념속에서 나온 생각이니까;; 이를테면 스타크래프트에서 테란이나 프로토스 저그를 조종하는 프로게이머처럼 ;;; 나참;; 단언하긴 섣부르지만 나도 해봤던 생각인데 이 아재도 이 생각을 했었었네
@UCJqIUBcL-2ZeJ2FsrUwT9Ag
@UCJqIUBcL-2ZeJ2FsrUwT9Ag 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apollo0006
@apollo0006 4 жыл бұрын
그럼 피라미드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0 그럼 초파리는 사과를 어떻게 볼까 ?^0 그럼 개미는 사과를 어떻게 볼까 ?^0 그럼 탄저균에겐 사과가 어떻게 보일까 ?^0 그럼 태양을 보고 눈을 감으면 심상에서 태양은 어떻게 변하는가 ?^0 그래서 사과먹어도 아무 문제 없게 해놨다니깐...^0 그래서 백설이가 입술을 먹고 깨어난 거 아냐 ?^0 항행의 자유도 있다는...^0
@m1chong78
@m1chong78 4 жыл бұрын
모든 자아는 각 위치에서 절대자아이다
@ataraxia1607
@ataraxia1607 3 жыл бұрын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야콥뵈메의 신의관한 철학이 담겨 있는듯 합니다.
@엄건영-z7n
@엄건영-z7n 4 жыл бұрын
나중에 막시즘도 해주세요
@구름뜬
@구름뜬 4 жыл бұрын
모든이가 사과를 사과로 인식한다 내가 사과로 인식한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먹는거다 맛있겠다 경험치의 차이만 있을뿐 사과는 인간이 존재함으로서 먹는 사과로 존재의 의미가 세상에 드러난것 뿐이다 생각함. 고로 인간이 없다면 사과는 없다.
@gojust9818
@gojust9818 3 жыл бұрын
혹시 노래 알랴주실 수 있나요? 감사합니다
@gojust9818
@gojust9818 3 жыл бұрын
16:06
@gojust9818
@gojust9818 3 жыл бұрын
@@5philosophy 와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찾아도 못 찾았었는데 ㅋㅋ
@유명한무명씨
@유명한무명씨 4 жыл бұрын
제가 보기에도 피히테의 이론은 결론적으로 유신론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다만 신 그 자체의 본질에 이르지는 못하고 현상으로 신을 증명하는 수준에 그치는 한계성이 있다고 봅니다. 즉 실체적인 진실에 부합하는 진리적 진실이 아닌, 일종의 가설적 세계관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죠. 그래도 신에 대한 접근에서 유의미한 일면은 분명 가지고 있는 가치있는 발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배후 자아가 신 그 자체의 자아로 동일해진다기 보다 최대 신의 수단으로 이 세계를 구성하는 방법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사상의 한정된 범위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제가 보기엔 이것은 논리로 논리를 파고들어가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논리적 탐구에 해당합니다. 서양 철학의 맹점이 논리적 가설을 현실 부합보다는 추상화된 현실을 존재하는 것으로 이미 설정한 상태에서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는데 칸트 역시 그런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피히테의 이론에서 한가지 집중할만한 것은, 만일 이것이 자아의 근본 원리에 부합하는 이론이라면 , 신과 정신계의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를 규명하게 된다는 것이며 서양철학에서의 초인을 향한 마인드의 구성에 상당한 재료를 제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도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하는데(남들의 생각이 어떻다 보다는) 근본적으로 물리는 가상적 논리가 아닌 실체로서 실존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근본 사실 명제로서 타협 불가능한 전제라고 저는 전제합니다. 즉 물리계 자체는 정신계적인 생각 그 자체로 물질계가 존재할 수 없고 정신계의 생각과 논리들 중 현실로서 반영되어 실존하게 되는 것 즉 물리계는 정신계의 결과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계에서는 물리계적인 개념과 관념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정신과 생각은 같은 것이 아니고 의지 역시 구분된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여기서 저는 실존론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뭐 길게 쓰기 보다는 간단한 마무리를 하겠는데요, 지금 이 댓글에서는 두 가지만 밝히겠습니다. 1. 실존하는 것은 정신과, 물리이다. 2. 물리계 최대의 난제는 어떻게 물리계 안에서 정신이 스스로 창출되도록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신계는 정신으로서 시작되었으나 그 역시 정신 원소에 의해 구성되는 점이 있다. 그러나 물리계는 정신계의 원리에 의해 도출된 세계인데 동물과 같은 AI(말하자면)가 아닌 근본적인 오리지널 정신이 자동으로 사람에게 유전되어 신 개체에 생성되고 그것이 대소동이한 과정으로 발달하여 원래의 정신 영역에서(미비하지만) 결국 기능하게 된다는 것이 신비라 하겠는데 과연 이 메카니즘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 번외로 물리계의 현실에서는 AI와 원래의 정신(권능이 없는)으로 생명체가 돌아가는 것이고, 원 정신이며 권능이 있는 신과 그에 의해 창조된 7대 분야의 수많은 정신들이(권능 소유) 이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올바른 세계관의 실체적 진실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구성을 알고 실체적 진실의 바른 바탕위에서 진행하는 철학적 사고와, 세계관 자체를 규명하기부터 해야 하는 철학적 사고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제 댓글에 신경쓸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지면에 세상의 진실을 일부 남겨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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