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때 국민학교 다니며 보던 서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지금 저때 부모님보다 더 나이가 들었지만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 젊으셨던 부모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눈몰이 납니다 추억을 생각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정환-o6k8 ай бұрын
저 당시 바나나는 지금의 소고기 가격과 비숫했다. 생일이나 아플때 먹는 과일 이었음. 사과와 배는 정말 저렴했었지
@얼씨구-x3r8 ай бұрын
공감 ㅠㅠㅠ
@강철중-u4s5 ай бұрын
말씀도 아름답게 하시네요 ㅎ 건강하세요!
@이용부-m6c2 ай бұрын
너무나도 익슥한 풍경들....
@이용부-m6c2 ай бұрын
@user-xx1ru4cb1상류층만 먹던 바나나.r
@starbooks9889 ай бұрын
가슴이 아리네요. 눈을 돌릴 새도 없이 사진을 살핍니다. 여고 2학년이던 제가 이제 60이 넘었습니다. 빨간 기와지붕집이 많았던 서울... 아늑했던 골목길 풍경. 어디서나 하늘이 잘 보였던 서울이 이제는 높은 아파트로 막힌 도시가 됐군요. 저때가 행복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백승우-y2c9 ай бұрын
저랑 갑이네요 정말 공감합니다ㅠㅠ
@hazelnut37949 ай бұрын
👵
@호두구속9 ай бұрын
할매! 헛소리 말고 잠이나 주무쇼
@쏜상무9 ай бұрын
저도 경희고 78학번 ㅋ
@enigma70988 ай бұрын
서울공고 78학번. 마지막 장면 ... 지붕위의 TV안테나 ...
@상상-t3o9 ай бұрын
이제 나이 70에, 한창 20대때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려오고, 그때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특히 배경음악이 가슴을 파고 드네요~ 복원왕의 옛 사진은 최고!
@고양이는멍멍-r1g9 ай бұрын
어르신 대한민국의 발전을위해 열심히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먹고 잘살게된 이유는 어르신 같은 윗세대분들의 크나큰 희생 덕분이란걸 잘 압니다 감사합니다 그 시대 정신을 이어 받아 저희 세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seafoodfarm9 ай бұрын
어르신 덕분에 저희가 누리는 이 풍요로움 늘 감사히생각합니다. 건강하세요.
@하늘맑음-f8q9 ай бұрын
그때 열심히 일해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거라고 저도 생각해요 감사드립니다. ^^
@softengine9 ай бұрын
누군가의 청춘 시절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신기하고 감회가 새롭네요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소소-j5s9 ай бұрын
어르신 감사합니다 ❤❤더 건강하세요~!!
@진회장-j8d9 ай бұрын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raul84019 ай бұрын
단순한 유튜버가 아닌, 오늘날의 역사를 보존하는 귀한 일을 하시는 유튜버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계속 힘내주세요~!!응원합니다!
@ewftwmj9 ай бұрын
가슴 한켠에서 그 시절의 기억들이 파편처럼 아련하게 떠오른다 가난했던 개도국 국민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그 시대를 개척해오신 우리의 어버이들과 선후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제욜-b4g9 ай бұрын
아 ㅡ 눈물이 납니다. 1979년이면 저의 대학 2학년 때 이군요. 당연히 잘 아는곳이지요. 명동 코지코너. 몽쉘통통 단골집 이엇구요.. 당시 한강개발 사업 한다는 뉴스도 나올때엿구요. 교련복 시대의 학생 맞구요ㅡ 시청 분수대.. 반포 주공 아파튼 친구집 놀러 갓던 때.. 왕십리가 고향인 저는 응봉동 성수대로 너무 잘 압니다..정말 추억을 먹으며 살고 잇는 요즘 복원왕님의 영상 잘 보앗습니다~~~ 언제나 응원 드립니다..
@하늘맑음-f8q9 ай бұрын
와 79년에 대학생이셨으면 힘들게 공부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하셨겠네요. ^^
@reflections7539 ай бұрын
79년이면 군대가기전 한참 데모하던 땐데 몽쉘하고 사보이호텔 커피숍에 자주 갔었는데 몽쉘통통은 없어졌던데요. 그 골목 눈 감고도 다녔는데.. 이제 추억에만 남아 있네요.
@이종숙-j9f9 ай бұрын
58개띠
@金永順8 ай бұрын
@user-jy2z57년~닭x8sv5i
@이종욱-y6y8 ай бұрын
저도 대학 2년 다니다 군대 갈때네요 ㅎ
@상전벽해-m6m7 ай бұрын
정말 하루 하루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죠.뭉쿨함이 식지 않네요. 소중한 추억 다시 피어나게 만드는시간여행. 자료입니다.감사합니다.
@따지냐9 ай бұрын
가슴이 먹먹하네요 10살 무렵 어린눈에 담았었던 그리운 풍경 잘보고 갑니다 너무 고마워요
@pride84479 ай бұрын
혹시라도 돌아가신 어머니까 찍혔을까 유심히 보게됩니다. 저 시절은 참 가난했지만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니 제일 행복한때 이기도 합니다.
@1743_bocc7 ай бұрын
댓글이 너무 슬프고 따뜻해요 ㅠㅠ
@시영박-f6g7 ай бұрын
마음이 뭉클하네요~
@greenwood81707 ай бұрын
눈물이 핑 ㅠㅠㅠㅠ
@유정-f5o9 ай бұрын
82년생인 저도 아려 오네요 지하 단칸방에서 4식구가 오손도손 살았을때 가 생각납니다 제 국민학교때 는 박남정, 김완선, 하수빈, 소방차, 서태지... 그리고 저 군생활을 버티게 해주었던 자두 까지 마이마이로 카세트 테이프 늘어질때 까지 듣고 라디오에 노래나오면 녹음버튼 눌러 녹음하고 듣고 다니던 그래서 간간히 노래 앞뒤 부분 디제이 멘트까지 녹음되고 그립습니다 그땐 없이 살아도 행복했는데 지금은 제 밥벌이 하고 굶지는 않게 살고있는데도 그때보단 덜행복하네요 밥벌이에 치어 살다보니 그런가봅니다 우리네 사람들 사는건 어디든 다 똑같나 봅니다
@은희이-s8x7 ай бұрын
헉 62년생인 저와 같은 시대문화를 누리셨군요.박남정 김완선 이하....
@Joycarcamping7 ай бұрын
저도 81년생 지금은 신도시 되어버린 양천구의 달동네 단칸방에 살았어요. 옆방 총각삼촌이 매일 놀아주고 과자도 주고 기타치고 노래도 해주던 어린시절 그립네요.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어요..라디오방송을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듣곤 했던 그 시절이 낭만이 되어버렸어요
@@handsomecar5252그러니까 실제로는 77년생이나 78년생까지 얘기인데, 미디어의 영향으로 그 시대에 살기는 했으니까 80년~82년생 애들이 형,누나들의 문화를 보고 따라 하던걸 자신들의 추억으로 이입시켜 과거를 재구성하는 현상이 강한 상황입니다. 일단 나이가 40대가 되었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었고, 많은 유튜브 등 영상으로 우후죽순 퍼지는 과거 영상들 보면서 그러더라고여. 그런데 막상 당사자들한테 테스트하듯 몇가지 물어보면 실제로 제대로 아는게 없어요 ㅎㅎ 그냥 마이마이 워크맨이 뭔지 아는 것이고, 아직 얘네들 때까지 사용은 되던 것이라. 이제 나이먹었다는 대접도 받고 싶은 공통된 심리라고 할까. 나이 40도 안된 애들이 닭살 돛고, 민망하게 별 변화도 없는 세월인데 추억을 논하고, 지금도 흔한 컵볶기 얘기하고 그러는 세상입니다. 자기 주장이 가장 중요한 성품인 것 만으로 그런 가식적인 감성 흉내가 어설픈 것을 모르고. 지금 한참 나오는 아이돌 누가 있죠? 지금 어느 아이돌이 유행일때의 세대라 하면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많아야 초등학교 1학년 정도에서 5~6살인 애들이 나중에 지금의 아이돌과 문화를 자신들의 추억이라 떠드는 것과 같다고 보면 딱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정말 그렇게 해도 그건 아니다~라고 못하겠는게 아기때부터 핸드폰, 유튜브, 게임, sns를 하니 나중에 지금의 20대, 30대와 그냥 맞먹을라고 하겠습니다 ㅎㅎㅎ
@안준영-k6k2 ай бұрын
@@handsomecar5252아 그리고, 위에서 생활 환경이나 일부 내용은 80년생이나 80초반생들도 실제 경험할 나이에요. 라디오로 녹음하고 그런 것은 실제 해당세대인 세대들에게 배워서 할 수 있고, MP3세대임에도 굳이 워크맨을 써보고 싶을 수는 있어요. 단지 그 세대는 아닌데, 그 세대에게 가장 불편해 하면서도 모순적이게 그 세대에 포함되고 싶은 공통된 심리인 것입니다. 여자라면 지금 애엄마 된 나이고. 참~ 가장 유별나고, 급변하고, 속썩이고, 말안듣고, 뚱~...하고, 개기고, 왕따시작의 세대이고, 갑자기 급변하고 요즘 애들의 시초가 된 애들이 80년생, 81년생, 82년생인데...... 그때부터 성문화 변화, 연애문화 변화, 세대갈등 모든게 시작되어 버렸네요.....
@김종일-y7p9 ай бұрын
아련합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살았어요 이과정들생각하니 가슴이가득찹니다 귀한영상 감사드립니다
@소다수-x4l9 ай бұрын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감사 합니다.
@xiiixiii9 ай бұрын
저때 사람들은 왜이리 다들 표정이 따뜻해보이냐. 인심있게 보인다. 요즘 사람들 보면 진짜 빡빡한삶에 찌들어있는 느낌인데. 저때사람들은 그렇게 부자도 아니였는데 뭔가 정이 많이 느껴지네. 낭만의 시대다. 진짜
@junyoungk-3489 ай бұрын
복원왕님 채널은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큰 카타르시스를 주네요. 보고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아련해지는게 눈가에 눈물이 촉촉히 맺힙니다. 좋은채널 운영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rkk9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항상 행복하세요👍
@박성자-x5q9 ай бұрын
20대 초반 자주 다녔던 신촌시장과 서울의 곳곳을 다시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감사히 봅니다~^^
@정지연-k9l9 ай бұрын
원래 컬러사진이었는데 흑백을 입힌듯 좋은 솜씨의 복원왕님! 할아버지 사진 복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창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옛 추억들과 지내온 세월을 회상하게 하는 소중한 영상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신경을 일깨우는 잔잔하면서도 아침 안개처럼 스며드는 낙원의 배경 음률~ 철없이 살아온 지난 시간들~ 무엇을위해서 그토록 삶의 전쟁터를 누비며 헤매였던 것인지... 모든 일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였을터인즉 이시간 이후로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데 좀더 많은 노력을해가고 싶다 내일을 알수없는 나그네가~~
@최지명-v2k9 ай бұрын
와우 내가 영등포에서 골라골라 옷장사 하던 자리가 나왔네요 않자있는 아줌마가 나의 장모님 감회가새롭습니다 복원왕님 귀한사진 감사합니다
@rkk9 ай бұрын
와😍😍😍😍😍😍
@SamuelSmith12219 ай бұрын
헉..
@sdevi157649 ай бұрын
우아
@junbpark8 ай бұрын
럴수럴수.
@hornbykim66818 ай бұрын
두건 쓰고 빨간 목도리 두른 분요?
@내갈길간다-h1u9 ай бұрын
저는 88년생이지만 영상을 보고 가심이 뭉글뭉글 하네요... 부모님께서 연세가 많으시고 늦둥이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신기하고 신비롭네요..ㅎㅎ -부모님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달무리-e8h8 ай бұрын
대한민국 88년 세게올림픽 주체국
@Erickoon-v1o9 ай бұрын
와..석촌호수..그 자리가 이렇게 변하다니 놀랍습니다.😢 79년..격동의 70년대를 살아내셨던 엄마아빠들... 넘그립네요
@Use-fgtdsyuhgfd878 ай бұрын
지금 보다 덜 풍요 했지만... 희망이 가득 했던 시절... 정말 많이 발전한 대한민국... 위대한 대한민국이 더 발전해서 젊은 세대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오서독스-h2p9 ай бұрын
아련한 옛 추억이 되살아 나네요😅
@펭러뷰-x5i9 ай бұрын
79년생이라서 태어났을때 서울은 어땠나 하면서 보고 있는데 8:11 에 어릴때부터 성인 되어서까지 오래 살던 왕십리가 나오네요. 너무 반가워요. 내가 다니던 행당초, 무학여중고, 뒤에 성당도 보이고 신기해요. 지금 전화국 자리엔 다른 건물이 있는것 같고 낮은 건물만 있어서 훤하네요. 지금은 높은 아파트가 꽉 차서 답답하고 좁아보이는데. 옛날 조흥은행 자리도 저땐 단층 건물이었네요. 한 화면에서 할 말이 너무 많아요. ㅋ^^ 오랫동안 살던 왕십리 길이지만 태어났을때 왕십리는 또 달라서 새롭네요. 😊 제 눈이 맞다면 어릴때 살던 동네 골목도 보이는것 같아요. 오른쪽 위 성당 올라가는 길. 재개발 돼서 옛날부터 그리웠는데 이렇게라도 보니 넘 좋아요. 🥹
덕분에 추억소환했네요. 저때 저도 서울 살았어요. 유학갔었습니다. 45년이나 되다니.....😢
@남조민영9 ай бұрын
복원 왕님은 아시는지 사진으로 이런감동을 주시다니 감사해요~~~^^;
@frankoh31939 ай бұрын
Thank you very much! I was 8 years old. Wow...time flies. Now that I am 52 years old and living in the US, I really miss those old days. Thanks again for the great clips!
@김명자-j7c9 ай бұрын
저시절은 젊음도있었는데 변화대는세상속은 저를 이만큼늙음에시간에왔응니다 가슴아려오네요
@ssl5589 ай бұрын
70년대가 벌써 50년전이라니?!! 신이시여😱😭
@554gucci9 ай бұрын
아는 동네들이 나오니 너무 반갑고 신기합니다!!!영상 감사합니다❤
@AMG_GLC439 ай бұрын
영상 최고네요. 아련합니다.
@rkk9 ай бұрын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이콜-w8q9 ай бұрын
항상 감사합니다 ❤
@rkk9 ай бұрын
항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일안-t7w9 ай бұрын
79년도에 제대를했는데 강원도 고성 최전방 수색대에서 제대 1개월 채안남기도 10.26을 맞아 제대가 2주정도 연기되었던적입니다. 월급이 가물가물하지만 병장급여가 사오천원이었지만 3개월마자 100% 상여금 나오고 전방이라 하루 90원씻 생명수당도 받아 휴가때 부모님께 손안벌리고 잘쓰고 귀대했던적이 벌써 45년도 넘은 기억입니다. 귀한사진 고맙습니다
@동제이-k5x9 ай бұрын
나는 79년 10월25일 박통 서거하기 하루전 제대했음 내 동기생은 제대특명이 26일이라서 2주 뒤 제대함 내 동기랑 같은 케이스였군요
@consciousness78999 ай бұрын
1979년 병장 월급 4000원 2000년 뱡장월급 15000원 ㅋㅋㅋㅋ
@jbs79469 ай бұрын
유튜브 채널' 장군멍군' 하시는 분 사관생도 였던 시절...
@권덕중8 ай бұрын
82년 10월에 전역했는데 당시 병장 봉급이 3,800원 이었습니다.
@김영주-m5y8 ай бұрын
79년 화천 15사단 적근동대대에서 제대했는데 제 뒷 분들은 제대가 늦어졌나보군요. 10.27일(대대장님께 제대신고 하는 날) 아침 6시경 비상, 반납했던 따블백 소총 다시 지급 받고 부대 옆 소초 근무서다가 중식 후 제대신고 하라는 연락 받고 제대했습니다. 개구리복 입고 서울 오는 버스에서 승객분들이 제대 가능하냐고 묻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서울시내 영상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yi16419 ай бұрын
40년짜리 미국 교포 입니다. 79년도 대학 2학년때 그때 서울 모습 보니 참으로 좋으네요. 엇 그제 같은데.. 좋은 영상 감사 감사드립니다
@라이브황태3 ай бұрын
가슴이짠한 추억이 밀려오네요
@짱보고9 ай бұрын
소중한 영상 늘 감사히 봅니다!! 고맙고 항상 건강하세요!!
@일본어성경교실9 ай бұрын
❤복원왕은 우리를 추억으로 여행시켜주는 타임머신같아요. 살기는 어려웠지만 인정은 지금의 수십배...^^^ 고1때 학교갔다가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집에 일찍 귀가시킨게 생각나네요. 그립다. 언제 이리 화살같이 지나갔을꼬~~~~ 감사드립니다.
@jeonggeunkim60029 ай бұрын
저당시 조림사업도 많이 하였지만 삼부토건 등 많은 토목건설사들과 인부나 농민들을 동원하여 사방사업 이라는 도로정비와 산을깍아 길을 만들고 비가와서 움푹파인데 메꾸고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작업들도 참많이 했습니다
@rkk9 ай бұрын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byheejung9 ай бұрын
요즘 사진 같이 너무 선명하여 깜짝 놀랐어요 .. ✨ 신기하고도 멋진 복원왕 선생님의 세계 👏🏻
@rkk9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김민-e7g9 ай бұрын
아~ 무학여고 행당국민학교 사진이 있네요 제재소도 보이고 육교 옆 보건병원과 예전에 살았던 우리 집 지붕까지... 명절이 되면 저 길에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서 대여 자전거 성수기였죠 그 때 동네 아이들이 죄다 몰려 나와 도로에 바글바글했었고 한 시간에 10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이라면 안전문제 때문에 어림도 없겠지만 친구들과 응봉동 언덕부터 제재소까지 다운힐 했던 짜릿함이 새록새록 하군요
@hornbykim66818 ай бұрын
우리 동네는 30분에 50원이었던것 같은데...
@김민-e7g8 ай бұрын
@@hornbykim6681아! 50원이 맞는거 같아 요 ^^;;
@나무주엽4 ай бұрын
우리집은 천주교위라 짤렸네요~
@ddlion06166 ай бұрын
1970년생인데 1971년부터 난곡에서 지금도 살고 있어요. 난곡구판장 나와서 깜짝놀라고, 반가웠습니다. 복원왕😊은 추억왕
@철규최-t7xАй бұрын
아이구나이오십이넘었는데난곡산다니부지런히하셔서탈출하시기바랍니다❤❤❤
@태극거나9 ай бұрын
소중한 자료...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rkk9 ай бұрын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정아-s9u9 ай бұрын
이렇게 귀한 자료들을 어디서 구하시는건지... 볼때마다 대단하십니다. 항상 즐겨보고 있습니다!!👍👍👍
@지리산TV9 ай бұрын
참으로 멋진 추억의 영상입니다.
@cultpower19 ай бұрын
7:50 정도에 나오는 반포주공1단지..보통은 구반포로 불렀었죠. 사진 방향에서 볼때 보이는 학교건물은 반포중학교가 아니고 당시 반포국민학교..지금은 반포초등학교입니다. 반포중학교는 사진방향에선 반포국민학교 바로 뒤편에 붙어있어서 사진 잘보시면 중학교 건물위만 살짝 보이고있네요. 근데..뭐 어차피 두 학교가 딱 붙어있었기때문에 자막이 아주 틀린건 아닙니다. 그래도 정확한 정보를 위해서 댓글 남깁니다..^^ 제가 반포국민학교 반포중학교 출신이라서요..ㅋ 1979년이면 이 사진이 찍힐때 보이고 있는 저 반포국민학교 어느 교실엔가 앉아서 수업받고 있었겠네요.. 소중한 추억을 보여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 때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복원왕님.
@lee435918 ай бұрын
저도 반포국민학교 반포중학교 경문고등학교 출신임다
@unamas20049 ай бұрын
소중한 자료들 감사히 보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user-yi9kn2cx4h9 ай бұрын
어릴적이네요 현재보다 제일 행복했던 시절
@강무원-l5k8 ай бұрын
시골에서 1978년 서울로 상경하여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살고 있네요. 당시에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던 생각이 어렴풋이 나네요.
0:38 자하문길 이예자 한복은 건물은 다르지만 지금도 그자리에서 장사하시고 김옥산부인과 건물은 앞외벽만 리모델링하고 뒤에 전당포 건물은 저모습 그대로 지금도 있네요 2:14 중랑교는 지금은 대로가 만들어졌네요 3:27 독립문고가는 현제 현저고가로 변경되었네요 고가 옆으로 아파트들이 많네요 3:42 모래내 고가 근처도 발전많이 했네요 전 서울 살지않아서 영상이랑 카카오맵하고 같이보며 지도도 찾아봤습니다
@산지기-j3v7 ай бұрын
자하문터널 지금도 생각납니다 1.21 무장공비 그때 까까머리였는데 70줄에서 흑흑흑 감사합니다
@정진웅-b4i7 ай бұрын
영상사진 잘보고갑니다 엣날 생각이새록새록나는군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소다수-x4l9 ай бұрын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었네요.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살포시. 구독. 누르고 갑니다. 건강 하세요😂😂😂😂
아주 좋은 추억의 영상 고맙습니다. 늘 고맙게 시청하고 있어요. 마치 옛날 라디오 듣는 마냥. 75 년에 사당 국민학교 입학했어요. 봉천동 넘어가기 전. 삐라 줏으러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88 번 남성 시장 바로 옆 남성 버스 종점. 그 근처 만화방에서 오전, 오후 각각 10 원 씩 내면서 하루 종일 살았어요. 떡볶이 긴 줄 3 개 10 원으로 때우면서. 동생이 남성 국민학교 오전반 다녔어요. 남성 극장에 엄마하고 친구 식구들하고 몇 번 놀러 갔었습니다. 북괴의 도끼 만행 사건을 알리려 사진을 붙여 놨는데 너무 잔인했습니다. 한강에 수영하러 다닐 때 반포 아파트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습니다. 전혀 다른 꿈의 세상을 바라보며 이 곳엔 누가 살까 매우 궁금했었습니다. 흑백 영화같이 주마등 처럼 지나갑니다.
7:11 교련복알아요.. 제가 73년생인데..제 아래로 77년생 까지 교련과목이 있었다가 없어졌다고 하네요. 우리 때는 교련복을 입긴했지만 평상시에는 별로 많이 안입었어요.. 입으신분들은 큰형님 뻘 되시겠네요.. 8:13 행당초교, 무학여고 방면 사진 반갑네요.. 행당초등학교 출신인데..아직 육교는 남아있습니다..ㅎ
@jung-ok5399 ай бұрын
내가 78년도에 프랑스로 시집왔으니까 옛날이군요 그때의 추억이 가슴에 저려오는오는군요 세련되지 못했던 우리나라 그당시만해도 프랑스를 우러러보던시대 지금은 세계에서도 만만치 않은 나라가 됐군요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참 똑똑한 민족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아나토미-u9l9 ай бұрын
프랑스 뿐이겠습니까 불과 30~40년전만해도 일본산 제품 하나 구할려고 난리였던 우리였는데 이젠 쳐다도 안보는거보면 감회가 새롭네요
@jbs79469 ай бұрын
80년대 일본에서도 프랑스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프랑스 여행 이후 환상이 깨졌다는 얘기가 있죠.... ㅋㅋ
@genie64629 ай бұрын
프랑스 여행아니더라두 유럽유학다녀온 지인들 얘기만 들어두 유럽의 환상이 와장창하지유😂
@jung-ok5399 ай бұрын
저는 프랑스에서 몇십년을 살아왔지만 유럽에서도 프랑스에서 살게된걸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다른 나라에 가서는 못살것 같다는 생각이드는군요 나라자체도 아름답고 특히 의료 시스템이 주위의유럽나라보다 잘돼있고...등등등 😊
@jbs79469 ай бұрын
@@jung-ok539 그래요?? 서유럽 북유럽 의료 시스템 생각외로 문제 많다고 하던데.... 진료 한번 받으려면 몇 주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우리나라가 의료 시스템 잘 되 있다고 하더군요...
@NightFog-n7t8 ай бұрын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과거로 잠시 여행을 다녀 왔네요
@user-aprilNmay9 ай бұрын
저때에는 제가 중2였는데,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납니다. 그리고 5년후부터 줄곧 서울에서 살고 있지요. 저 당시에는 힘든 시기였지만, 돌아갈 수 있다면 부모님께 효도하고 더 열심히 살아볼 것 같습니다. 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준영-k6k2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이 영상에 제가 어릴때 살던 동네와 지역들이 많이 나왔고, 제가 살던 동네와 집, 추억의 장소들이 모두 나와서 너무 놀랐고 감동이었습니다. 쇼츠 보고 찾았는데, 놀랍습니다. 사진들 중에 장수로(현재 한천로) 중랑교에서 휘경여중고 가는 방향에서 오른쪽 주택가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지금의 휘경동인데 사진상 잘 보이지 않는 주택가에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원로 영화배우님이 사셨고여, 그 아드님도 지금은 활동하지 않으시지만 유명한 배우님이십니다. 그밖에 사진을 보며 따로 알려드릴 내용들이 딱 들어맞게 몇가지 있는데, 문제가 될 수 있고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은 것도 아니기에 함구합니다. 영상 속의 사진들을 제보해주신 분이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그분들에게도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자료들이 남아 있을줄 기대도 못했네요. 이런 자료를 이제라도 남기고자 영상이나 사진들 찍으러 다니는 취미가 있는데, 현재의 세상에서는 오해도 많이 받고, 불쾌한 일들이 많이 생기게 되더라고여. 빼도박도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상황도 생기고 그래서 포기하게 되었고, 그덕에 남기지 못하고 재개발된 동네들이 많아서 나름 한으로 남게 된 사정이 있습니다. 망할놈의 세상..... 유튜브를 가장 순수하고 의미있게 활용하는 영상들이네요. 감사합니다.
@rkk2 ай бұрын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toreerang9 ай бұрын
제가 학교 들어갈 무렵이네요... 가진 게 넉넉한 사람도, 부족한 사람도 그냥 그런대로 나름대로 잘 어울리던 시절이고... 모두 힘들었지만 노력하면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던 시절이었지요.. 배경음악과 함께 영상을 보자니 남는 건 아련한 그리움 뿐입니다.... ^^
@vtcoc33989 ай бұрын
처음에 나오는 화면의 지역이 45년전 17살때 다니던 학교와 살던 동네가 다 나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나의 살던 고향마을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강동 신수동 구수동 현석동 대흥동 저 멀리 마포동과 도화동(가든호텔)도 보이고 서강대학교쪽 염리동도 보입니다. 가장 오른쪽에는 최불암님의 집도 보이고 가운데 숲은 선교사집으로 볼리던 곳인데 아이가 들어가면 눈에 고추가루 뿌려 잡아 간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에 감히 들어가보지는 못했었죠.아래 흰색 연립주택집이 있는 곳은 현재 광흥창역 부근이네요. 30년가까이 산곳이라 골목골목 어느곳 제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중간에 헐렁한 교련복입은 모습을 보니 저와 같은 1학년의 모습입니다. 2학년 되면 교련복이 몸에 딱 달라 붙었습니다. 마지막에 책소개가 있는데, 이 책은 반드시 사 보겠습니다.
@민들네-c1q9 ай бұрын
참 옛날 생각나네요 이동네들 이문동 살다가 마천동 으로 이사가는데 옛날이 생각나네요
@jmmusic12542 ай бұрын
1978년생이고 어릴때부터 쭉 연희동 살고 있는데요. 가슴이 아려오고 한번은 가고 싶네요.
@vivienne80979 ай бұрын
대한 민국 진짜 대단하다. 눈물이 난다. 비록 1979년 이었는데도 시장에는 사람들이 활기를 띄고 상업 활동을 하고 도로들도 깨끗하다. 발전못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현재도 1979년도의 대한 민국 반도 못따라가는 모습을 볼수 있다. 우리는 떡잎부터 달랐던 것이다. 열심히 살아준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 세대들에게도 감사합니다
@speciastock9 ай бұрын
@@ookuhydg 한국에서 빼내간 금은동과 노동력에 비하면 원조는 껌값이고 미국이 더 많이 원조했지 그리고 일본이 자연재해 나면 한국에 와서 살아라 생색없이 잘해줄께
@hs75309 ай бұрын
@@ookuhydg원자폭탄 투하 축하
@hs75309 ай бұрын
@@ookuhydg방사능이나 원샷혀 얼른 가서 지진 복구나 하고
@hs75309 ай бұрын
@@ookuhydg반대로 말하네 ㅋㅋ
@hs75309 ай бұрын
@@sakuranbo..싫으니까 가슈. 여기 분위기 깨지 말구.
@timothykim48589 ай бұрын
어메이징 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뭥미-k4x9 ай бұрын
70년대 이문동에서 살았는데 지금 동부간선도로자리 중랑교 뚝방 아래 공터에서 친구들하고 놀고 새서울 극장에서 영화보던 때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