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아리네요. 눈을 돌릴 새도 없이 사진을 살핍니다. 여고 2학년이던 제가 이제 60이 넘었습니다. 빨간 기와지붕집이 많았던 서울... 아늑했던 골목길 풍경. 어디서나 하늘이 잘 보였던 서울이 이제는 높은 아파트로 막힌 도시가 됐군요. 저때가 행복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백승우-y2c11 ай бұрын
저랑 갑이네요 정말 공감합니다ㅠㅠ
@hazelnut379411 ай бұрын
👵
@호두구속11 ай бұрын
할매! 헛소리 말고 잠이나 주무쇼
@쏜상무11 ай бұрын
저도 경희고 78학번 ㅋ
@enigma709811 ай бұрын
서울공고 78학번. 마지막 장면 ... 지붕위의 TV안테나 ...
@조지성-y7d11 ай бұрын
저때 국민학교 다니며 보던 서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지금 저때 부모님보다 더 나이가 들었지만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 젊으셨던 부모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눈몰이 납니다 추억을 생각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정환-o6k10 ай бұрын
저 당시 바나나는 지금의 소고기 가격과 비숫했다. 생일이나 아플때 먹는 과일 이었음. 사과와 배는 정말 저렴했었지
@얼씨구-x3r10 ай бұрын
공감 ㅠㅠㅠ
@강철중-u4s7 ай бұрын
말씀도 아름답게 하시네요 ㅎ 건강하세요!
@이용부-m6c5 ай бұрын
너무나도 익슥한 풍경들....
@이용부-m6c5 ай бұрын
@user-xx1ru4cb1상류층만 먹던 바나나.r
@최제욜-b4g11 ай бұрын
아 ㅡ 눈물이 납니다. 1979년이면 저의 대학 2학년 때 이군요. 당연히 잘 아는곳이지요. 명동 코지코너. 몽쉘통통 단골집 이엇구요.. 당시 한강개발 사업 한다는 뉴스도 나올때엿구요. 교련복 시대의 학생 맞구요ㅡ 시청 분수대.. 반포 주공 아파튼 친구집 놀러 갓던 때.. 왕십리가 고향인 저는 응봉동 성수대로 너무 잘 압니다..정말 추억을 먹으며 살고 잇는 요즘 복원왕님의 영상 잘 보앗습니다~~~ 언제나 응원 드립니다..
@하늘맑음-f8q11 ай бұрын
와 79년에 대학생이셨으면 힘들게 공부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하셨겠네요. ^^
@reflections75311 ай бұрын
79년이면 군대가기전 한참 데모하던 땐데 몽쉘하고 사보이호텔 커피숍에 자주 갔었는데 몽쉘통통은 없어졌던데요. 그 골목 눈 감고도 다녔는데.. 이제 추억에만 남아 있네요.
@이종숙-j9f11 ай бұрын
58개띠
@金永順11 ай бұрын
@user-jy2z57년~닭x8sv5i
@이종욱-y6y11 ай бұрын
저도 대학 2년 다니다 군대 갈때네요 ㅎ
@ewftwmj11 ай бұрын
가슴 한켠에서 그 시절의 기억들이 파편처럼 아련하게 떠오른다 가난했던 개도국 국민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그 시대를 개척해오신 우리의 어버이들과 선후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상상-t3o11 ай бұрын
이제 나이 70에, 한창 20대때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려오고, 그때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특히 배경음악이 가슴을 파고 드네요~ 복원왕의 옛 사진은 최고!
@고양이는멍멍-r1g11 ай бұрын
어르신 대한민국의 발전을위해 열심히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먹고 잘살게된 이유는 어르신 같은 윗세대분들의 크나큰 희생 덕분이란걸 잘 압니다 감사합니다 그 시대 정신을 이어 받아 저희 세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seafoodfarm11 ай бұрын
어르신 덕분에 저희가 누리는 이 풍요로움 늘 감사히생각합니다. 건강하세요.
@하늘맑음-f8q11 ай бұрын
그때 열심히 일해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거라고 저도 생각해요 감사드립니다. ^^
@softengine11 ай бұрын
누군가의 청춘 시절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신기하고 감회가 새롭네요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미리내-e7g11 ай бұрын
나이 70이 무슨 어르신이냐? 요즘70은 청년소리 듣는다 한참때다
@raul840111 ай бұрын
단순한 유튜버가 아닌, 오늘날의 역사를 보존하는 귀한 일을 하시는 유튜버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계속 힘내주세요~!!응원합니다!
@진회장-j8d11 ай бұрын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xiiixiii11 ай бұрын
저때 사람들은 왜이리 다들 표정이 따뜻해보이냐. 인심있게 보인다. 요즘 사람들 보면 진짜 빡빡한삶에 찌들어있는 느낌인데. 저때사람들은 그렇게 부자도 아니였는데 뭔가 정이 많이 느껴지네. 낭만의 시대다. 진짜
@pride844711 ай бұрын
혹시라도 돌아가신 어머니까 찍혔을까 유심히 보게됩니다. 저 시절은 참 가난했지만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니 제일 행복한때 이기도 합니다.
@1743_bocc10 ай бұрын
댓글이 너무 슬프고 따뜻해요 ㅠㅠ
@시영박-f6g10 ай бұрын
마음이 뭉클하네요~
@greenwood81709 ай бұрын
눈물이 핑 ㅠㅠㅠㅠ
@Use-fgtdsyuhgfd8710 ай бұрын
지금 보다 덜 풍요 했지만... 희망이 가득 했던 시절... 정말 많이 발전한 대한민국... 위대한 대한민국이 더 발전해서 젊은 세대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따지냐11 ай бұрын
가슴이 먹먹하네요 10살 무렵 어린눈에 담았었던 그리운 풍경 잘보고 갑니다 너무 고마워요
@상전벽해-m6m10 ай бұрын
정말 하루 하루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죠.뭉쿨함이 식지 않네요. 소중한 추억 다시 피어나게 만드는시간여행. 자료입니다.감사합니다.
@mississippi707211 ай бұрын
79년 8월에 제대하고 그해 11월에 부산에서 청운의 꿈을안고 서울에 첫 둥지를 틀었던 모래네 시장근처. 지금은 고향 부산에서 살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살던 그때가 아름다웠습니다.회상하면서 웃고 있습니다..
@나웅규-u9l4 ай бұрын
지금은 전부아파트예요 수색까지 ㅎㅎ 그당시는 가재,자라등이 많아서 가재울 ㅎ 저희가 시장근처에서 장사해요 ㅎ 참 외환은행 반지하 건물하고 시장응 일부 남아있어요 순대국집도 ㅎ
@정상진-v3s10 күн бұрын
남가좌동에 사셨나보군요 지금은 가좌에서 증산.수색까지 아파트. 상암동.난지도는 완전히바뀌고 덕은리까지 아파트죠
@정지연-k9l11 ай бұрын
원래 컬러사진이었는데 흑백을 입힌듯 좋은 솜씨의 복원왕님! 할아버지 사진 복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창하시고 행복하세요❤
@rkk11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항상 행복하세요 ~~
@최지명-v2k11 ай бұрын
와우 내가 영등포에서 골라골라 옷장사 하던 자리가 나왔네요 않자있는 아줌마가 나의 장모님 감회가새롭습니다 복원왕님 귀한사진 감사합니다
@rkk11 ай бұрын
와😍😍😍😍😍😍
@SamuelSmith122111 ай бұрын
헉..
@sdevi1576411 ай бұрын
우아
@junbpark11 ай бұрын
럴수럴수.
@hornbykim668111 ай бұрын
두건 쓰고 빨간 목도리 두른 분요?
@junyoungk-34811 ай бұрын
복원왕님 채널은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큰 카타르시스를 주네요. 보고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아련해지는게 눈가에 눈물이 촉촉히 맺힙니다. 좋은채널 운영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는 88년생이지만 영상을 보고 가심이 뭉글뭉글 하네요... 부모님께서 연세가 많으시고 늦둥이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신기하고 신비롭네요..ㅎㅎ -부모님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달무리-e8h10 ай бұрын
대한민국 88년 세게올림픽 주체국
@김일안-t7w11 ай бұрын
79년도에 제대를했는데 강원도 고성 최전방 수색대에서 제대 1개월 채안남기도 10.26을 맞아 제대가 2주정도 연기되었던적입니다. 월급이 가물가물하지만 병장급여가 사오천원이었지만 3개월마자 100% 상여금 나오고 전방이라 하루 90원씻 생명수당도 받아 휴가때 부모님께 손안벌리고 잘쓰고 귀대했던적이 벌써 45년도 넘은 기억입니다. 귀한사진 고맙습니다
@동제이-k5x11 ай бұрын
나는 79년 10월25일 박통 서거하기 하루전 제대했음 내 동기생은 제대특명이 26일이라서 2주 뒤 제대함 내 동기랑 같은 케이스였군요
@consciousness789911 ай бұрын
1979년 병장 월급 4000원 2000년 뱡장월급 15000원 ㅋㅋㅋㅋ
@jbs794611 ай бұрын
유튜브 채널' 장군멍군' 하시는 분 사관생도 였던 시절...
@권덕중10 ай бұрын
82년 10월에 전역했는데 당시 병장 봉급이 3,800원 이었습니다.
@김영주-m5y10 ай бұрын
79년 화천 15사단 적근동대대에서 제대했는데 제 뒷 분들은 제대가 늦어졌나보군요. 10.27일(대대장님께 제대신고 하는 날) 아침 6시경 비상, 반납했던 따블백 소총 다시 지급 받고 부대 옆 소초 근무서다가 중식 후 제대신고 하라는 연락 받고 제대했습니다. 개구리복 입고 서울 오는 버스에서 승객분들이 제대 가능하냐고 묻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서울시내 영상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yi164111 ай бұрын
40년짜리 미국 교포 입니다. 79년도 대학 2학년때 그때 서울 모습 보니 참으로 좋으네요. 엇 그제 같은데.. 좋은 영상 감사 감사드립니다
@김종일-y7p11 ай бұрын
아련합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살았어요 이과정들생각하니 가슴이가득찹니다 귀한영상 감사드립니다
@소다수-x4l11 ай бұрын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감사 합니다.
@유정-f5o11 ай бұрын
82년생인 저도 아려 오네요 지하 단칸방에서 4식구가 오손도손 살았을때 가 생각납니다 제 국민학교때 는 박남정, 김완선, 하수빈, 소방차, 서태지... 그리고 저 군생활을 버티게 해주었던 자두 까지 마이마이로 카세트 테이프 늘어질때 까지 듣고 라디오에 노래나오면 녹음버튼 눌러 녹음하고 듣고 다니던 그래서 간간히 노래 앞뒤 부분 디제이 멘트까지 녹음되고 그립습니다 그땐 없이 살아도 행복했는데 지금은 제 밥벌이 하고 굶지는 않게 살고있는데도 그때보단 덜행복하네요 밥벌이에 치어 살다보니 그런가봅니다 우리네 사람들 사는건 어디든 다 똑같나 봅니다
@은희이-s8x10 ай бұрын
헉 62년생인 저와 같은 시대문화를 누리셨군요.박남정 김완선 이하....
@Joycarcamping9 ай бұрын
저도 81년생 지금은 신도시 되어버린 양천구의 달동네 단칸방에 살았어요. 옆방 총각삼촌이 매일 놀아주고 과자도 주고 기타치고 노래도 해주던 어린시절 그립네요.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어요..라디오방송을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듣곤 했던 그 시절이 낭만이 되어버렸어요
@@handsomecar5252그러니까 실제로는 77년생이나 78년생까지 얘기인데, 미디어의 영향으로 그 시대에 살기는 했으니까 80년~82년생 애들이 형,누나들의 문화를 보고 따라 하던걸 자신들의 추억으로 이입시켜 과거를 재구성하는 현상이 강한 상황입니다. 일단 나이가 40대가 되었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었고, 많은 유튜브 등 영상으로 우후죽순 퍼지는 과거 영상들 보면서 그러더라고여. 그런데 막상 당사자들한테 테스트하듯 몇가지 물어보면 실제로 제대로 아는게 없어요 ㅎㅎ 그냥 마이마이 워크맨이 뭔지 아는 것이고, 아직 얘네들 때까지 사용은 되던 것이라. 이제 나이먹었다는 대접도 받고 싶은 공통된 심리라고 할까. 나이 40도 안된 애들이 닭살 돛고, 민망하게 별 변화도 없는 세월인데 추억을 논하고, 지금도 흔한 컵볶기 얘기하고 그러는 세상입니다. 자기 주장이 가장 중요한 성품인 것 만으로 그런 가식적인 감성 흉내가 어설픈 것을 모르고. 지금 한참 나오는 아이돌 누가 있죠? 지금 어느 아이돌이 유행일때의 세대라 하면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이가 많아야 초등학교 1학년 정도에서 5~6살인 애들이 나중에 지금의 아이돌과 문화를 자신들의 추억이라 떠드는 것과 같다고 보면 딱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정말 그렇게 해도 그건 아니다~라고 못하겠는게 아기때부터 핸드폰, 유튜브, 게임, sns를 하니 나중에 지금의 20대, 30대와 그냥 맞먹을라고 하겠습니다 ㅎㅎㅎ
@안준영-k6k4 ай бұрын
@@handsomecar5252아 그리고, 위에서 생활 환경이나 일부 내용은 80년생이나 80초반생들도 실제 경험할 나이에요. 라디오로 녹음하고 그런 것은 실제 해당세대인 세대들에게 배워서 할 수 있고, MP3세대임에도 굳이 워크맨을 써보고 싶을 수는 있어요. 단지 그 세대는 아닌데, 그 세대에게 가장 불편해 하면서도 모순적이게 그 세대에 포함되고 싶은 공통된 심리인 것입니다. 여자라면 지금 애엄마 된 나이고. 참~ 가장 유별나고, 급변하고, 속썩이고, 말안듣고, 뚱~...하고, 개기고, 왕따시작의 세대이고, 갑자기 급변하고 요즘 애들의 시초가 된 애들이 80년생, 81년생, 82년생인데...... 그때부터 성문화 변화, 연애문화 변화, 세대갈등 모든게 시작되어 버렸네요.....
@Soonpeyon-v1o11 ай бұрын
와..석촌호수..그 자리가 이렇게 변하다니 놀랍습니다.😢 79년..격동의 70년대를 살아내셨던 엄마아빠들... 넘그립네요
@user-3iox8githj11 ай бұрын
눈물나네요. 외세의 침략과 전쟁 후 폐허속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우리 민족과 현재 세계를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우리민족 한국인들 모두모두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거의 동년배에다가 우리 아부지도 쌀 도매업을 하시고 일찍 돌아가신 ㅠ 10살 때요. 강남 쪽 헌인능 소풍 댕기는 촌 동네입니다.
@munzajomba11 ай бұрын
72군요..전 73 입니다 코찔찔 흘리던 시절이지욯ㅎㅎ
@남기석-k2u9 ай бұрын
아련 하고 가슴이 저립니다 ...
@user-cw6ck6jf4y11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옛 추억들과 지내온 세월을 회상하게 하는 소중한 영상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신경을 일깨우는 잔잔하면서도 아침 안개처럼 스며드는 낙원의 배경 음률~ 철없이 살아온 지난 시간들~ 무엇을위해서 그토록 삶의 전쟁터를 누비며 헤매였던 것인지... 모든 일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였을터인즉 이시간 이후로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데 좀더 많은 노력을해가고 싶다 내일을 알수없는 나그네가~~
@박성자-x5q11 ай бұрын
20대 초반 자주 다녔던 신촌시장과 서울의 곳곳을 다시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감사히 봅니다~^^
@강무원-l5k10 ай бұрын
시골에서 1978년 서울로 상경하여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살고 있네요. 당시에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던 생각이 어렴풋이 나네요.
@yongjunkim7711 ай бұрын
서촌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딱 집앞 사진이 나오네요 참 반갑습니다.
@치노힐-i8j11 ай бұрын
너무 아름다운 동네예여^^
@이솔-n6q9 күн бұрын
58개띠...이 사진들을 보노라니 가슴이 아려옵니다 참 힘들고 고단한 세월이었지요. 짚어 보니 저 시간대엔 천호동 어디쯤 살았었네요..ㅜㅜ 어느새 이렇게 세월이 흘렀네요
@펭러뷰-x5i11 ай бұрын
79년생이라서 태어났을때 서울은 어땠나 하면서 보고 있는데 8:11 에 어릴때부터 성인 되어서까지 오래 살던 왕십리가 나오네요. 너무 반가워요. 내가 다니던 행당초, 무학여중고, 뒤에 성당도 보이고 신기해요. 지금 전화국 자리엔 다른 건물이 있는것 같고 낮은 건물만 있어서 훤하네요. 지금은 높은 아파트가 꽉 차서 답답하고 좁아보이는데. 옛날 조흥은행 자리도 저땐 단층 건물이었네요. 한 화면에서 할 말이 너무 많아요. ㅋ^^ 오랫동안 살던 왕십리 길이지만 태어났을때 왕십리는 또 달라서 새롭네요. 😊 제 눈이 맞다면 어릴때 살던 동네 골목도 보이는것 같아요. 오른쪽 위 성당 올라가는 길. 재개발 돼서 옛날부터 그리웠는데 이렇게라도 보니 넘 좋아요. 🥹
@@Vingving1234 변세화 선생님을 아는거 보니 친구가 맞겠구나. 거의 30년 전이라 누가 담임이었는지 다 잊어버렸네. 여기서 친구를 만나서 반갑고 아는척 해줘서 고마워~^^.
@노인이되어가는연습11 ай бұрын
고맙습니다
@rkk11 ай бұрын
😍
@KY-em4xm11 ай бұрын
흘러간 과거지만 그때가 그립습니다..!! 1975년 군 입대 1978년 3월에 제대 젊음과 꿈이 있던 그때를 기억나게 해주시는 영상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matthiaskim39902 ай бұрын
ㅋㅋ 같은 시기에 군 생활을 하셨군요...75군번 78 2월 전역..
@오서독스-h2p11 ай бұрын
아련한 옛 추억이 되살아 나네요😅
@apriria200011 ай бұрын
0:38 자하문길 이예자 한복은 건물은 다르지만 지금도 그자리에서 장사하시고 김옥산부인과 건물은 앞외벽만 리모델링하고 뒤에 전당포 건물은 저모습 그대로 지금도 있네요 2:14 중랑교는 지금은 대로가 만들어졌네요 3:27 독립문고가는 현제 현저고가로 변경되었네요 고가 옆으로 아파트들이 많네요 3:42 모래내 고가 근처도 발전많이 했네요 전 서울 살지않아서 영상이랑 카카오맵하고 같이보며 지도도 찾아봤습니다
@산지기-j3v10 ай бұрын
자하문터널 지금도 생각납니다 1.21 무장공비 그때 까까머리였는데 70줄에서 흑흑흑 감사합니다
@frankoh319311 ай бұрын
Thank you very much! I was 8 years old. Wow...time flies. Now that I am 52 years old and living in the US, I really miss those old days. Thanks again for the great clips!
덕분에 추억소환했네요. 저때 저도 서울 살았어요. 유학갔었습니다. 45년이나 되다니.....😢
@Zysel48611 ай бұрын
과거란. 그시절 뭐가 그리 화나고 미워서 서로 싸웠던지, 미래에 돌아보면 참 큰일이 아닌데 말이죠. 지금이라도 서로를 용서할 용기를 주길
@Error_Error.10 ай бұрын
그러면서 현재도 화나고 미워하고 싸우죠 미래에는 큰 일도 아닐건데
@일본어성경교실11 ай бұрын
❤복원왕은 우리를 추억으로 여행시켜주는 타임머신같아요. 살기는 어려웠지만 인정은 지금의 수십배...^^^ 고1때 학교갔다가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집에 일찍 귀가시킨게 생각나네요. 그립다. 언제 이리 화살같이 지나갔을꼬~~~~ 감사드립니다.
@jeonggeunkim600211 ай бұрын
저당시 조림사업도 많이 하였지만 삼부토건 등 많은 토목건설사들과 인부나 농민들을 동원하여 사방사업 이라는 도로정비와 산을깍아 길을 만들고 비가와서 움푹파인데 메꾸고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작업들도 참많이 했습니다
@rkk11 ай бұрын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순원김-v2j9 ай бұрын
장사도 잘 되고 정도넘치고 배만 부르면 행복한 그리운 그시절 그립습니다~
@모노-e7g11 ай бұрын
아~ 무학여고 행당국민학교 사진이 있네요 제재소도 보이고 육교 옆 보건병원과 예전에 살았던 우리 집 지붕까지... 명절이 되면 저 길에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서 대여 자전거 성수기였죠 그 때 동네 아이들이 죄다 몰려 나와 도로에 바글바글했었고 한 시간에 10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이라면 안전문제 때문에 어림도 없겠지만 친구들과 응봉동 언덕부터 제재소까지 다운힐 했던 짜릿함이 새록새록 하군요
@hornbykim668111 ай бұрын
우리 동네는 30분에 50원이었던것 같은데...
@모노-e7g10 ай бұрын
@@hornbykim6681아! 50원이 맞는거 같아 요 ^^;;
@나무주엽6 ай бұрын
우리집은 천주교위라 짤렸네요~
@곁에머물러줄래-i4mАй бұрын
77년도에 무학여중3학년이었는데 학교정문앞 문방구에서 먹던 떡뽁기맛 지금은 찾을수 없네요 ~
@큰아빠220 күн бұрын
제재소 아래쪽에 겨울이면 스케이트 타곤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난앓아요-z6r11 ай бұрын
우와 어렸을때 동네모습 감동입니다.
@임진영-m3o11 ай бұрын
아주 좋은 추억의 영상 고맙습니다. 늘 고맙게 시청하고 있어요. 마치 옛날 라디오 듣는 마냥. 75 년에 사당 국민학교 입학했어요. 봉천동 넘어가기 전. 삐라 줏으러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88 번 남성 시장 바로 옆 남성 버스 종점. 그 근처 만화방에서 오전, 오후 각각 10 원 씩 내면서 하루 종일 살았어요. 떡볶이 긴 줄 3 개 10 원으로 때우면서. 동생이 남성 국민학교 오전반 다녔어요. 남성 극장에 엄마하고 친구 식구들하고 몇 번 놀러 갔었습니다. 북괴의 도끼 만행 사건을 알리려 사진을 붙여 놨는데 너무 잔인했습니다. 한강에 수영하러 다닐 때 반포 아파트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습니다. 전혀 다른 꿈의 세상을 바라보며 이 곳엔 누가 살까 매우 궁금했었습니다. 흑백 영화같이 주마등 처럼 지나갑니다.
영상을 보고 있으려니 괜시리 눈물이 나오네요. 이때로 되돌아만 갈수 있다면~~~ 귀한 영상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rkk11 ай бұрын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jun1004you9 ай бұрын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vivienne809711 ай бұрын
대한 민국 진짜 대단하다. 눈물이 난다. 비록 1979년 이었는데도 시장에는 사람들이 활기를 띄고 상업 활동을 하고 도로들도 깨끗하다. 발전못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현재도 1979년도의 대한 민국 반도 못따라가는 모습을 볼수 있다. 우리는 떡잎부터 달랐던 것이다. 열심히 살아준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 세대들에게도 감사합니다
@speciastock11 ай бұрын
@@WAL007便 한국에서 빼내간 금은동과 노동력에 비하면 원조는 껌값이고 미국이 더 많이 원조했지 그리고 일본이 자연재해 나면 한국에 와서 살아라 생색없이 잘해줄께
@hs753011 ай бұрын
@@WAL007便원자폭탄 투하 축하
@hs753011 ай бұрын
@@WAL007便방사능이나 원샷혀 얼른 가서 지진 복구나 하고
@hs753011 ай бұрын
@@WAL007便반대로 말하네 ㅋㅋ
@hs753011 ай бұрын
@@i..錯乱坊싫으니까 가슈. 여기 분위기 깨지 말구.
@김옥희-k5d29 күн бұрын
옜추억을 고스란 희 담았네요 네가 살던 동네도 보고 그시절이 그림네요 ᆢ감사 합니다
@rkk29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뭥미-k4x11 ай бұрын
70년대 이문동에서 살았는데 지금 동부간선도로자리 중랑교 뚝방 아래 공터에서 친구들하고 놀고 새서울 극장에서 영화보던 때가 생각나네요
부산사람이라 모든 화면이 낯설지만 가슴이 찡합니다.....1979년이면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snoopyboss9410 ай бұрын
7:11 교련복알아요.. 제가 73년생인데..제 아래로 77년생 까지 교련과목이 있었다가 없어졌다고 하네요. 우리 때는 교련복을 입긴했지만 평상시에는 별로 많이 안입었어요.. 입으신분들은 큰형님 뻘 되시겠네요.. 8:13 행당초교, 무학여고 방면 사진 반갑네요.. 행당초등학교 출신인데..아직 육교는 남아있습니다..ㅎ
@jung-ok53911 ай бұрын
내가 78년도에 프랑스로 시집왔으니까 옛날이군요 그때의 추억이 가슴에 저려오는오는군요 세련되지 못했던 우리나라 그당시만해도 프랑스를 우러러보던시대 지금은 세계에서도 만만치 않은 나라가 됐군요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참 똑똑한 민족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아나토미-u9l11 ай бұрын
프랑스 뿐이겠습니까 불과 30~40년전만해도 일본산 제품 하나 구할려고 난리였던 우리였는데 이젠 쳐다도 안보는거보면 감회가 새롭네요
@jbs794611 ай бұрын
80년대 일본에서도 프랑스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프랑스 여행 이후 환상이 깨졌다는 얘기가 있죠.... ㅋㅋ
@genie646211 ай бұрын
프랑스 여행아니더라두 유럽유학다녀온 지인들 얘기만 들어두 유럽의 환상이 와장창하지유😂
@jung-ok53911 ай бұрын
저는 프랑스에서 몇십년을 살아왔지만 유럽에서도 프랑스에서 살게된걸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다른 나라에 가서는 못살것 같다는 생각이드는군요 나라자체도 아름답고 특히 의료 시스템이 주위의유럽나라보다 잘돼있고...등등등 😊
@jbs794611 ай бұрын
@@jung-ok539 그래요?? 서유럽 북유럽 의료 시스템 생각외로 문제 많다고 하던데.... 진료 한번 받으려면 몇 주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우리나라가 의료 시스템 잘 되 있다고 하더군요...
@554gucci11 ай бұрын
아는 동네들이 나오니 너무 반갑고 신기합니다!!!영상 감사합니다❤
@소다수-x4l11 ай бұрын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었네요.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살포시. 구독. 누르고 갑니다. 건강 하세요😂😂😂😂
@rkk11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이재철-m8eАй бұрын
제가 23세 되던 해 이네요.참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잘 살고있어요 우리 부모님들 조부님 웃어른신들 고생 덕에 우리가 오늘날 배 곯지않고 잘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무학여고 사진이 나오네요 눈물납니다. 저는 눈물납니다. 저는 무학중학교3년 때 운동장 사이드에 있는 철봉옆의 나무에서 친구들과 사지을 찍었던 그 나무가 담너머로 보이네요 눈물이 납니다. 담벼락이며 분식집이며 ... 어느새 60이 된 초로의 여인이 되었으니 하루가 천년같고 ...천녀이 하루같은... 만감이 교차합니다.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사진의 힘... 눈물납니다. 감사합니다
@rkk4 ай бұрын
😍
@희김-x7h11 ай бұрын
음악이 밤하늘을 타고 먼저떠난 친구들생각에 먹먹해지네 그곳은 아프지않기를.
@영은정보23 күн бұрын
예전 기억이 조금 나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다시금 옛날이 또 그립네요....
@vtcoc339811 ай бұрын
처음에 나오는 화면의 지역이 45년전 17살때 다니던 학교와 살던 동네가 다 나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나의 살던 고향마을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강동 신수동 구수동 현석동 대흥동 저 멀리 마포동과 도화동(가든호텔)도 보이고 서강대학교쪽 염리동도 보입니다. 가장 오른쪽에는 최불암님의 집도 보이고 가운데 숲은 선교사집으로 볼리던 곳인데 아이가 들어가면 눈에 고추가루 뿌려 잡아 간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에 감히 들어가보지는 못했었죠.아래 흰색 연립주택집이 있는 곳은 현재 광흥창역 부근이네요. 30년가까이 산곳이라 골목골목 어느곳 제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중간에 헐렁한 교련복입은 모습을 보니 저와 같은 1학년의 모습입니다. 2학년 되면 교련복이 몸에 딱 달라 붙었습니다. 마지막에 책소개가 있는데, 이 책은 반드시 사 보겠습니다.
@수진김-b8q10 ай бұрын
교련복 추억이 아련합니다 헤화동에 있던 경신고등학교 82년도에 졸업했습니다 정문은 혜화동 로타리로 후문으로 가면 삼선교 ㅎㅎ기억을 일깨워준 사진들 감사합니다
@새미얀4 ай бұрын
경신고 82년도 입학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shlove653311 ай бұрын
와 ! 모래내 고가차도 나오네요 ㅋ 모래내 살았었답니다 ㅋ 신촌시장은 지금 현대백화점 근처 였던거 같기도... 암튼 옛 영상을 보면 참 서글퍼 지네요 그때 그사람들은 다 어디로갔을까 ? ㅠㅠ
@김태식-k5k6 ай бұрын
80년도 중동국민학교 입학, 옛 마포구청 자리에서 사천교 방향 사진에서 산위 마주앙 간판이 린나이로 바뀌어 4~5년 그대로 기억되며, 바로 아래 낙원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 사천교 건너 회생병원 (화재도 있어죠) 모래내 시장 입구 국민은행, 은좌극장(철인28호, 똘이장군) 경인선 가좌역, 땡땡거리가 기억이 나네요.
@NamGungEun10 ай бұрын
4k) 1979 서울 생활모습 희귀사진 과거로 보내드림 & 지금과는 너무 다른 그시절 모습 Life in Seoul in 1979 Rare video sent to the past
@아마겟돈-v3k11 ай бұрын
04:08 아현동에서 여의도 방면으로 향하는 공덕동 로터리 모습이군요.. 소방마루가 보이는 곳이 소방서 였고, 그 옆에 보이는 밝은색 큰 건물은 가든호텔(현 홀리데이 인 서울 호텔) 이네요. 저 큰 길은 귀빈로라고 하여 외국의 정상이나 높은 분들 지나가면 그 근처 학교 학생들 누가 지나가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업하다말고 강제로 동원돼 끌려나와 태극기 흔들고 그랬습니다. 지금은 수십억을 호가하는 아파트와 주상복합으로 가득차 상전벽해를 이룬 비싼땅입니다만, 저 때는 참 못살던 달동네 였습니다. 지금 사시는 분들은 알까모르겠네요. 저 공덕동 오거리 주변으로 땅속에는 그때 말로 개천이 여기저기,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그걸 덮고 위로 건물들이 올라간 거지요. 즉 복개천위의 건물들이라는 거지요. 04:28 반대 방향 공덕동로터리에서 아현동 방면 모습이네요. 오른쪽 약간 위쪽에 학교처럼 보이는 곳이 지금은 완전히 폐교가 된 "경서중학교" 라는 곳입니다. 참 희안하게도 바람잘날이 없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던 학교 였지요. 체육시간엔 운동하면 누가 꼭 다치고, 수학여행을 떠나면 떠나자마자 학교 정문앞에서 교통사고가 나고, 젓가락 사건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유괴사건에, 연쇄살인마 유ㅇㅇ 이 졸업한 학교지요. 지금은 아예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 학교 입니다. 더 신기한건 저 바람잘날 없이 문제가 많던 학교 자리에 여전히 분쟁과 시비가 끊이지 않는 "서울서부지방법원과 서부지방검찰청" 이 들어선 거지요.그 길 건너편이 현재에도 마포경찰서 입니다. 어렸을 적 매일 오가던 동네에 기억도 잘 안났었지만 막상 사진을 보니 익숙한 가게와 건물들 추억이 아주 많이 깃든 장소 입니다.
@rkk11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kgw396711 ай бұрын
79년 마포고등학교 3학년때
@라이브황태6 ай бұрын
가슴이짠한 추억이 밀려오네요
@chosdg6 ай бұрын
제가 이제막 만 65세가 되었습니다 중량교 뚝방출방 출신으로 거기서 국민학교를 다녔고 , 중학교를 신설동으로 다니다가 철거되어 지금의 신정동으로 강제 이주했습니다 제 어릴적보다 한 오육년후 동영상이지만 너무 새롭습니다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철도길 따라 신내동 국민학교 다니던 이린시절
@Khftg11 ай бұрын
와.. 디카로 막 찍은듯 한 선명함 잘 감상하고 갑니다
@팔마그마8 ай бұрын
번쩍이는 빌딩들이 즐비한 지금이지만 저때 저시절로 돌아가고싶습니다. 79년... 나 국민학교 졸업하던시기. 길거리를 달리는 포니와 브리사.. 짐 전용자전거가 너무 반갑 네요. 아마 이때쯤 삼륜차도 있었을텐데 혹시나 보이진 않네요. 모자라는 단백질을 풀숲을 날아다니던 메뚜기로 보충하던 그때.. 너무나 그리운 사진들을 보니 그때의 감성이 되살아나는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감사-m6z11 ай бұрын
정말 감사드립니다. 신촌 보니 반갑네요.1974년도에 걸어다니던 곳인데. 서울역 후암동 학교에서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