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종이 다 교통정리 해두고 뒤에 성군이 나오는건 역사의 진리인듯. 항상 불도저 군주가 나온 다음엔 그 자식들 중에 똑똑한 애들이 국가를 발전으로 이끌더라. 소수림왕-광개토대왕-장수왕, 광종-성종, 태종-세종
@CurryWurst192 жыл бұрын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더럽혀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이걸 모두 해결해두면 후임이 일하기 편하죠. 혹은 어쩌면 선대가 휘두르던 위압감에 대한 기억이 후대에의 훌륭한 협조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네요
@khkhlee4042 жыл бұрын
ㄹㅇ 나라의 틀을 잡은 후엔 성군이 많이 나오는 듯 백제 고이왕 근초고왕, 신라 법흥왕 진흥왕, 고려 광종 성종, 조선 태종 세종 세조 성종, 고구려 소수림왕 광개토대왕, 발해 문왕 선왕
@HBJR872 жыл бұрын
그런데 이 나라는 왜 이럼? ㅋㅋㅋ 이렇게 강하고 도덕이 넘치던 나라가 왜이리 자기네 나라 것도 아닌데 우기는 나라가 됬고(중국,일본) 정치인들끼리 싸우는 나라가 됬음 경제 빼면 후진국 인 이런 나라를 외국인들이 왜 좋아하는 지 이해가 안감
@로갓-i8w2 жыл бұрын
광개토대왕-장수왕라인은 교통정리후 성군이 아닌거 같아요. 광개토가 일찍 죽는 바람에(이거 말고도 많은 이유가 있지만) 장수왕 초반에 국론 분열되고 내전했던걸 보면
@dlwlrma_solo2 жыл бұрын
@@로갓-i8w 소수림왕-광개토대왕 이죠..
@24해파니스 Жыл бұрын
고려라는 나라는 멸망한지 오래되었지만 외국에선 여전히 우리를 고려라고 부르는게 참 재밌네요
@suninjang2473 ай бұрын
서구 문화에서는 왕조가 바뀐다고해서 국체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카페 발루아 부르봉 바뀌도 프랑스는 프랑스고 잉글랜드도 마찬가지죠 서구에서는 국가가 있고 왕조가 있는것이며 동북아지역은 왕조가 곧 국가인 것이죠
@lenda-3-i2md2 ай бұрын
고려가 극동지역 역사상 가장넓고 많은교류를 하던나라라 그렇습니다 이러한 교류의 영향은 통일신라의 인프라를 이어받아 발전시킨것이고요
@UltimateTruthChannel2 ай бұрын
서양에서 사람들이 아직도 영국 (United Kingdom)을 잉글랜드 (England)라고 부르고 미합중국 (United States)을 아메리카 (America)라고 부르는 것과 똑 같습니다. 정치체제와 집권세력, 공식국가명이 바뀌어도 일반인은 그냥 옛날 쓰던 이름으로 계속 부르는게 사람 습성입니다. 특히나 잘 모르는 먼 나라의 경우. 유럽은 원나라 시대에도 중국을 카타이 (Cathay) (기탄) (거란)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미 거란은 무너지고 몽고가 원을 세운 후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중국 일반인들이 계속해서 조선을 고려 (까올리)라고 불렀기 때문에 서양애들도 조선을 그대로 고려라고 부른겁니다. 심지어는 중국인 상당수는 아직도 한국을 부를때 한꿔 (한국)라고 부르지 않고 까올리 (고려)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욕할때 까올리 빵즈 (고려 새끼)라고 부르죠. 이는 일본애들이 한국을 아직도 조센 (조선)이라고 부르며 욕하는거과 마찬가지이며, 한국인이 중국을 짱꼴라 (진나라 청나라) 라고 욕하는것과 마찬가지인데, 그러니 무식한건 동서고금 전혀 다를게 없습니다.
@suninjang2472 ай бұрын
@@UltimateTruthChannel 너무나도 잘못된 사례
@suninjang2472 ай бұрын
@@UltimateTruthChannel UK=/=잉글랜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과거) 등 정체성이 다른 국가를 동군연합으로 묶어 연합왕국이라 부른겁니다. 미합중국을 영어로 하면 USA(United States of America) 입니다 US라 하든 아메리카라 하든 편의상 부르는 이칭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왕조가 바뀌면 대부분 국호도 바뀌죠 공식 명칭이 바뀝니다 민간에서 편의상 또는 비하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된다고 해서 국호가 안바뀌는게 아니죠 중국이나 일본에게 한국은 그냥 한국입니다 조선이나 고려가 아니라
@최명희-y6s Жыл бұрын
깔끔한 고려역사 정리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user-sunflowerr Жыл бұрын
최고예요 진짜 제가 본 고려 역사 설명 영상 중 단언컨대 최고예요 이런 식의 영상으로 조선을 정리해 놓으신 것도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요!❤ 사랑합니다 초면이지만
@wincup Жыл бұрын
지방 호족들이 세던 시대고 사찰들도 막강한 자체 승군등 (정규군보다 더 센 적도 많음)이 있던 시대라, 사실 진짜 흥미로운 드라마나 영화소재가 많을 수 있는 시대인데 너무 조선시대처럼 묘사해서 아쉬움. 전혀 다른 감성과 마인드로 묘사할 수 있으니 앞으로 그렇게 좀 나와주면 좋겠네요.
@쓰읍-h7s Жыл бұрын
사료가 부족함
@wincup Жыл бұрын
@@쓰읍-h7s 무슨말씀인지 알지만, 적어도 고려사에서는 다룰 수 있다고 봅니다. 문화 미시사는 부족해도 삼국시대도 다루는 마당에 고려시대를 못다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네요.
@kidandLaPuta Жыл бұрын
ㄹㅇ 중세시대 그자체인데 너무 궁 위주로만 나옴
@remido9321 Жыл бұрын
@@쓰읍-h7s 지금 님이 보는 조선 배경 역사도 고작 실록에 적힌 한 줄로 상상의 나래를 편 영화도 많음. 사료 부족이 아니라 그냥 작가 이해도와 수준이 못 미치는거지.
@로갓-i8w Жыл бұрын
@@remido9321 조선은 야사가 많이 남아서 야사를 주제로 많이 만든것도 없지않아 있음. 정사만 보면 딱딱해서...
@죠죠-g9l2 жыл бұрын
외워야 한다는 압박 없이 들으니까 왕꿀잼
@ttuii123452 жыл бұрын
고려조 사극 드라마 시청순서 태조왕건 -> 제국의 아침 -> 고려거란전쟁&천추태후 -> 무인시대 -> 무신 -> 신돈 -> 정도전&용의눈물(초반)
???? 이거 16분짜리 영상이였어요? 한 5분 지난거같았는데 ㅋㅋㅋㅋㅋ 정말 혼까지 퓩 빠져서 듣게됐네요 정리도 잘하시고 발성(?)도 좋으시고 나도 이렇게 설명 잘했으믄 좋것당!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사요는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을 치고 들어가 보십시오 원문공부하세여
@집행인-h3t2 жыл бұрын
우리가 아는 고려의 역사는 조그마한 한부분 뿐입니다. 몇분동안 많은 내용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이름-m5v1v2 жыл бұрын
고려땅은 지금의 심양이상입니다.......잘알고 작성합시다?
@kisangsong2 жыл бұрын
@@성이름-m5v1v 뭘 말하고 싶은건지? 어그로인거 뻔히 보이긴하는대 심양이 어딘가 했네 말이나 똑바로해요 말의 주재가 뭔지 모르겠네 뭐 고려가 중국 역사라 말하고 싶은건지 고려가 땅이 심양보다 크다는건지 한국말 쓰려거든 말이나 똑바로 해요 조선족인가?
@양멍멍이-u3u Жыл бұрын
@@kisangsong 중국역사 한국역사가 따로 있나요??민족이란 개념이 들어선건 한참후 같은데 한반도의 역사로 보는게 맞지 않을까요? 한국역사는 1945년 이후~
@user-pt6uf1kx2g Жыл бұрын
@@양멍멍이-u3u 그건 서양사 기준이구요. 서양사도 백년전쟁 이후부터 민족개념이 실체화되기 시작합니다. 한국사로 치면 통일신라시대부터 민족개념이 정립되기 시작되서 이비,패좌-최광수-이언년의 난 이후에는 단일적 민족의식이 완전히 확립된것으로 보입니다
@lenda-3-i2md Жыл бұрын
@@양멍멍이-u3u 서양식 개념으로 하루빨리 중공이 12개로 나눠지길 바랍니다
@이상혁-w4k2 жыл бұрын
이야..재밌다 한국사 준비중인데 정말 알차게 시청했습니다
@Epic_Ssom_History2 жыл бұрын
상혁님 감사합니다:D
@절대복지4 ай бұрын
이거 보고 공부 하셨으면 성종 목종 현종부분은 다 틀리시었겠네요
@박종민-e7z2 ай бұрын
엉터리 역사 보지 말고 시험보려면 수험서로 친일왜곡사관이라도 확실히 공부하시구요. 제대로 공부하려면 원문사서를 읽어보세요.
@이상혁-w4k2 ай бұрын
@@박종민-e7z 원문사게 돈좀줘요
@이상혁-w4k2 ай бұрын
@@박종민-e7z 어디서 어디까지 엉터리역사인지 설명해주세요
@영태손-r4c2 жыл бұрын
긴 고려사를 정말 간단명료하게 정리해주시네요~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잘 보고 있고 응원합니다~~
@김시연-t2k2 жыл бұрын
명분없는사대주의 시작이 나라를 훔친자들이 결국 자기들의 욕망을채우기위해 만든 조선 이라는이름 후손들을 두고두고 괴롭혔네요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안핑 시(Anping City 안평성安平城), 그리고 타이욘 시(Tayoan City 대만성台灣城)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STARGATE_SGC2 жыл бұрын
@@김시연-t2k 고려시대에는 노비가 없었는 줄 아나보네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지배층이 있으면 피지배계층이 있기 마련인데요! 고려 광종의 개혁은 결코 백성들을 위한 개혁만을 한게 아니죠! 광종의 정적이 되는 권세가들을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을 한 거죠! 그 와중에 권세가들에게 불쌍하게 당한 백성들이 개혁의 수혜자가 된 것이고요!
@천리안-u5v Жыл бұрын
한글 만든거 빼고 칭찬할거 없는여자
@offsent3782 Жыл бұрын
고려사가 길게 뭐있나요? 조선보다 짧은데
@강형님-j4k2 жыл бұрын
우리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금이나마 느껴봤습니다. 좋은 내용 잘봤습니다.
@식당장사재밌나요2 жыл бұрын
짧지만, 고려 500년 역사 너무 잘 봤습니다~~ 대단합니다!!
@user-xh8tw9su8f Жыл бұрын
조선의왕은 쿠데타의명분을위해 고려와왕들을 깍아내리는 역사를썼다 하지만 고려는 강한나라였다 세계최강이던 몽골에게 나라를지킨 유일한나라였고 일본은 넘볼수조차없었다. 한편 조선은 쿠데타왕을 왕이라생각하지않았고 간신만 넘쳐나 결국 굶어죽는패망국가가되어 일본의침략이아닌 조선의왕은 이완용이란꼭두각시를 세워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팔아먹은거다.
@정신교육대-p7u Жыл бұрын
최신순 내글 참조
@떠울-h2r10 күн бұрын
공부 하기전, 하고 난후에 이 영상으로 시대별로 정리하고있어요 목소리도 넘 듣기 좋아요 많이 올려주세요
@하나용이-z9x2 жыл бұрын
핵심 및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대외적인 활동적인 역사를 보니 아이들이 보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정신교육대-p7u Жыл бұрын
최신순 내글 참조
@user-skdkfktnenwh2 жыл бұрын
저도 항상 고려역사는 흐름이 잘 안잡혔는데 이걸로 좀 정리가 됩니다. 잘보고 갑니다
@sjpark497 Жыл бұрын
와 진짜 정리 개 깔끔하게 하셨네요
@네임-n8p Жыл бұрын
고려가 한반도의 전성기였는데 역사자료가 많이 없어 안타깝.. 장신구, 옷 엄청 화려했던 것 같은데.. 제대로 고증해서 드라마 만들면 진짜 국뽕 올라올듯..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한 5달 뒤에 고려거란전쟁 사극 나옴
@user-jc62a7v28 Жыл бұрын
나 처음에 고려 드라마 봤는데 진짜 처음엔 우리역사 개조 빡세게해서 판타지로 만든줄 알았음... 너무 화려하고 예쁘고 사람들도 다 깨끗해서... 신라도 부자나라에 ㅈㄴ 화려했는데 사람들은 조선만 보고 한국역사 보잘것없다고 하는거 진짜 답답해 죽겠음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user-jc62a7v28 그마저도 당대 실제 생활상 반의 반도 제대로 구현 못한 거... 다 불타 없어져서 그렇지 걍 건축 규모부터가 조선이랑은 천지 차이였음. 심지어 조선시대 선비조차도 이렇게 말함. >>> "생각해보면 고려에서 나라를 세운 이래 물력의 풍부함은 우리 조선이 거의 미치지 못할 바이다. 석물을 세운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다[고려]를 보고 나면 다른 물[조선]은 시시하게 보인다더니 정릉의 석물을 보고 나니 길가의 소소한 석물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게 무슨 애들 장난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유만주, 흠영』
@누리곤 Жыл бұрын
갠적으로 고구려 고려시대때의 사극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조선시대 사극은 솔직히 너무 많이나왔구요.... 태조 이성계부터 순종 이척까지 대중매체에서 안다뤄진 왕이 1명도 없을정도로 조선시대 사극은 너무 많이 나왔음
@holidaysummer9256 Жыл бұрын
@@누리곤지겨워요 맨날정도전 당파쌈
@룰루랄라-m7f8x Жыл бұрын
최고입니다. 재밌어어요❤
@공부용-d6d2 жыл бұрын
한국사 공부하면서 고려사 파트가 되게 복잡하고 어려웠었는데 이 영상 보니까 아 삼별초 항쟁이 저때 나왔구나 하고 머릿속에서 그냥 알고만 있던게 흐름 정리가 되네요!! 재밌어요ㅠㅠ 다음편도 보고싶네용 정말 유익했습니다 감사해요
@SanseoTV2 жыл бұрын
....... ㅡㅡㅡㅡㅔ.0 ㅔ
@mimik8846 Жыл бұрын
고려 공부하셨으면 한국인은 고려조선인이 맞음니까? 아니면 초창기부터 한국 따로 고려 조선 따로 있었음니까? 대부분 한국인들은 조선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user-cn7qn8ij3n Жыл бұрын
@@mimik8846 직금의 독일인들이 자기자신을 프로이센인이라고 하지않고 튀르키예인이 자기를 오스만인이라고 말하지않고 러시아인이 소련인이라고 하지않듯이 한국인도 현재의 국호에 따른 명칭을 쓰는것 아닐까요
@k7886 Жыл бұрын
그작은 강화도섬에서 30년동안 몽골군을 막았다고 믿는것인가?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한가? 고려의 영토는 대륙동부해안과 만주에 이어 한반도 였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삼별초는 그후 오키나와까지 점령하여 류큐왕국을 만듭니다 그작은 강화도에선 그게 가능할까요 강화도의 본래땅은 지금의 산동일대입니다 자세한 내용 유튜브 책보고
@lalala5819 Жыл бұрын
@@mimik8846 ㅁ
@로디-m5w11 ай бұрын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앞두고 밥 먹으면서 가볍게 볼려고 켰는데 .. 고려사가 정리되어버림 ㅋ
@h지영2 жыл бұрын
역사 배울때마다 기억에 남는건,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위기때마다 지배층들은 도망가도 민중들이 나라 지키고 살려냈다는얘기....이번 고려편에서도 여지없네요😅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SovietPikachu19452 жыл бұрын
왕이 잡히면 패전이니깐 기회를 노리는 것이고, 충분히 수비나 수성을 할 수 있는데 왕이 떠나서 졌다는 의견은 당시 현장지휘관이 적군과 아군의 형세를 비교해 내린 판단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꼴입니다. 설령 수비가 성공적이래도 왕이 고립되면 명령체계가 단절되는데다 군대 목표는 왕 구출 하나로 모이게 되고 이는 곧 적군에게 전략이 노출됬음을 의미하죠. 시대나 환경에 따라 직접 왕이 야전지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안전한 곳에서 군사적 판단을 지휘관에게 주는 경우도 있는데 때에 따라 장단점이 다르기에 이게 정답이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벤투스-i5p2 жыл бұрын
한국사 시험 직전에 들으면서 내용정리하면 딱 좋을것같아요
@장경환-x6v2 жыл бұрын
싫을거 같음
@KS_Knowlege2 жыл бұрын
역시 믿고 보는 채널입니다~~ 굿굿!
@팔괘장2 жыл бұрын
쏨 작가님의 내레이션 그리고 일러스트 , 역사 풀이 전개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다음 아편 전쟁도 보고 싶어예 ^^ 건강 하세요^^
@usersuperdopa2 жыл бұрын
뒤질날도 얼마 안남으셨는데 뭘 그렇게 아등바등하슈? ㅋ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안핑 시(Anping City 안평성安平城), 그리고 타이욘 시(Tayoan City 대만성台灣城)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정신교육대-p7u Жыл бұрын
최신순 내글 참조
@intros56932 жыл бұрын
고려 철령위가 요동에있었는데 금나라 서쪽으로 이동할때 우리나라 고구려 회복했어요 철령위에서 동쪽 선출령 동북9성이잖아요
@jksmm12 жыл бұрын
한국고전종합에 가시면 있습니다 모든 실록
@cadillacgolden97132 жыл бұрын
너무 좋다 이런거 쉽게 설명해주시고 장황하지도 않고
@shanestory38792 жыл бұрын
씀작가님 최고!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hisjusthis5 ай бұрын
정말 좋은 영상이네요 👍 정리가 너무 좋아요
@명탐정꼼수2 жыл бұрын
예쁜목소리로 국사를 들으니 국사 6년배운것보다 쏙 들어오넹 .. 잘때 또 들어야징
@게임하는감쟈냥 Жыл бұрын
귀에쏙쏙 들어왔어요^^
@원담-u3p2 жыл бұрын
부족했던 고려사 정리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권력자의 리더쉽이 항상 문제가 되는 군요,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user-xh8tw9su8f Жыл бұрын
조선의왕은 쿠데타의명분을위해 고려와왕들을 깍아내리는 역사를썼다 하지만 고려는 강한나라였다 세계최강이던 몽골에게 나라를지킨 유일한나라였고 일본은 넘볼수조차없었다. 한편 조선은 쿠데타왕을 왕이라생각하지않았고 간신만 넘쳐나 결국 굶어죽는패망국가가되어 일본의침략이아닌 조선의왕은 이완용이란꼭두각시를 세워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팔아먹은거다.
우와 고려왕조 500년 역사다~ 마침 심심했었는데 올려주네 고마워 누나~~ 그리고 나 누나팬이야~~❤️
@Epic_Ssom_History2 жыл бұрын
염라대왕님 땡큐우
@a.marcus79702 жыл бұрын
말투가 586
@진도환-u4h2 жыл бұрын
나레이션 쵝오!!!
@jksmm12 жыл бұрын
한국고전종합에 가시면 있습니다 모든 실록
@정화이-m4h2 жыл бұрын
1차 여요전쟁 때의 성종도 나쁘지 않았지만 제3차 여요전쟁에서 승리한 8대 현종에서 14대 헌종까지는 고려의 최전성기로 영상에서 말한 벽란도가 활성화되고 고려사신이 송에 갑질하던 어떤 분의 말대로 한반도 최전성기죠. 예종과 인종 시기에 외척이 등극하고 서경파가 몰락하면서 망테크 타다가 의종 때, 무신란으로 위기로 가죠.
@geumgwang66622 жыл бұрын
성종은 성군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해요 현종~헌종까지가 최전성기가 맞는듯요~ 특히 8대 현종이 초반에는 기반이 없어 고초를 겪었지만 후반에는 고려 최고의 기반을 닦아 탄탄대로를 여는 초석이 되었지요 ㅎ 당시 거란 금 송 등이 고려에 쩔쩔매는 상황이었지요 ㅎ 송나라 소동파가 고려사신이 횡포를 부리는 것을 비판을요 ㅎ
@장세영-p8w Жыл бұрын
@@geumgwang6662 고려가 거란의 세 차례 침입을 막긴 했으나, 이후에도 군사력으로 거란을 압도한 적은 없습니다. 당장 보주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상황에서도 고려는 거란군에 이기질 못했어요. 요ᆞ금은 고려의 상국으로 있었는데 뭘 쩔쩔맸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johnpark9523 Жыл бұрын
@@장세영-p8w찐따 씨 그 형식적 상국이라는 건 아무 소용 없어요. 고려는 송에 갑질했고 요에게는 당당하게 할 말 했습니다. 조공책봉체제가 실질적인 상하관계인줄아나봐요. 요나라도 형식상 북송을 상국으로 모셨는데 요나라가 북송똘마니국가였던가요?
@johnpark9523 Жыл бұрын
@@장세영-p8w병자호란 후에 조선이 청에 보낸 조공사절하고 귀주 대첩 직후에 고려가 요에 보낸 조공사절이 같은 의미인줄 아나봐요 ㅋㅋ
@네네-s7h2 жыл бұрын
와 진짜 정리 짱이다!👍👍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사요는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을 치고 들어가 보십시오 원문공부하세여
@vovocafe2 жыл бұрын
우리 역사는 재미있네요. 아쉽기도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dhkim4102 жыл бұрын
멸망 직전까지도 영토 확장을 한 고려 멋있다.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황금함대-c8n2 жыл бұрын
심양은 고려땅임 조선이 개국하면서 잃어버린거임 위화도회군하는 이성계가 철령이북 지키려고 나가는데 고려지도가 저리 작은데 그럼 강원도로 진군하지 요동을 뭐하러가나 지금의 한반도를 한참넘어가 고려의 영토임 역사서가 다 타버려서 찾기가 어려울뿐
@송밀리터리2 жыл бұрын
근데 멸망 직전 까지 갔다는건 국력이 쇠약해졌다는 얘기인데.. 국력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영토확장이 가능함??
@로갓-i8w2 жыл бұрын
고종도 간도 침공 😆 😆 😆 😆
@꿀잼영상-s7h2 жыл бұрын
@@송밀리터리 음 당시 명나라 국력 보건데 성공해도 바로 명나라 한태 찢길듯
@최연숙-b6o Жыл бұрын
중3아들역사시험어려워하는데 잘이해가되겠어요^^ 콘텐츠간단요약 넘감사합니다
@홍종수-w7b2 жыл бұрын
정리 지리네..첨 2분 보고 보고 바로 구독
@seamandogman2 жыл бұрын
훌륭한 영상입니다 짝짝짝 짝짝짝짝.
@안녕하세요-1l2 жыл бұрын
오 심심한데 딱 올라왔다!!
@Epic_Ssom_History2 жыл бұрын
타이밍 잘 맞췄군여 ㅋㅋㅋ
@블레어-n6w2 жыл бұрын
쏙쏙 들어와요 최고예요 진짜
@usersuperdopa2 жыл бұрын
뭐야 이 강민경스런 말투는?
@lhj22762 жыл бұрын
우리나란 조선의 정신이 아닌 고려의 정신을 본받았어야했는데... ㄲㅂ
@와우-p4e Жыл бұрын
고려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면 둘중 하나일듯. 지금 우리가 중국인이거나, 아니면 영토도 더 넓고 진취적인 민족이거나.
@taeinyi21238 ай бұрын
팩트 : 고려의 정신이었으면 지금 나라 갈갈이 다 찢어졌다 호족들때문에
@UltimateTruthChannel2 ай бұрын
@@와우-p4e우리나라가 어떻게 중국이 되냐? 그럴거였으면 벌써 옛날에 중국이 됬겠지.
@박종민-e7z2 ай бұрын
@@와우-p4e 그럼 지금 중국인은 현 중국인이 아니겠지 ㅎㅎ
@123-r5xАй бұрын
@@taeinyi2123 ㅋㅋㅋㅋㅋㅋ지랄하네, 고려였으면 서구문물 빨리 개방해서 오히려 일제강점기 안왔다.
@efefaw45711 ай бұрын
정리 지리네여...요즘 고려 거란전쟁 보는데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믿습니다 최수종!
@jemerytim65072 жыл бұрын
하아 쏨작가님 잘되는 모습에 제가 너무 좋아요!!! 조카 크는거 보는 기분ㅋㅋㅋㅋㅋㅋ
@Epic_Ssom_History2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jemery tim님 너무감사해요>
@이경재-n9m Жыл бұрын
이때 고려는 남녀가 어느정도 평등한사회 여자가 재혼도 가능하고 재산도 남녀 차별없이 분배했으며 재혼한여성이 자식이 있으면 현남편이 동의 하면 같이 살수도 있었다!! 그리고 부모를 여자가 모실수도 있었다!! 지금하고 비슷함
@djdijesjkxkskqpuznd Жыл бұрын
조선 전기까지만해도 아니 17세기까지만해도 그랬음
@arrow-master- Жыл бұрын
그만큼 ... 전쟁으로 많이죽어서 이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바라보면 좋아만보이죠.
@jsgun6170 Жыл бұрын
@@arrow-master- 고려는그래도 유교 공자맹자왈은 안해서 국방력은 조선전체보다 고려전기가 더쌔었슴 조선은 공자맹자가라사대하다 지랄하고자빠진 무능한나라인건 확실함
@치타는웃고있다-k9o Жыл бұрын
@@khbmedia 인류의 보편적이 아니라 현대의 보편적아님?
@김우-s1o Жыл бұрын
성리학, 유교사상 개쓰레기
@Taiwan___No.1 Жыл бұрын
와 고려사 진짜 어려워 했는데 감사합니다!
@ellaatticbar50823 ай бұрын
한국사를 너무 재미있게 설명하셔서 영상 끝나는게 아쉬울 정도에요!!
@smgm12932 жыл бұрын
찬란한 고려 500년의 역사를 잘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송이버섯-k6q2 жыл бұрын
춘식이당
@joyfulkim26532 жыл бұрын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g4df74g1h2 жыл бұрын
찬란하지는 않음. 거란한테 복종했고 차례대로 여진 원 명에 복종함. 충선왕 충혜왕등 굴욕적인 이름을 하사받고 일본한테 원정갔다 학살당함
@1000유토피아2 жыл бұрын
@@g4df74g1h 학살같은 소리한다.ㅋㅋㅋ 태풍으로 조진거지 무슨 학살 정말 웃기다.
@JKJ05092 жыл бұрын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역사학 교수들,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위,촉,오의 분열을 끝낸 나라는 사마염이 건국한 진나라 입니다 [태강]은 진나라 무제였던 사마염의 연호입니다 사마염은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의 지방행정조직을 점검하기 위해 [태강지리지]라는 지리서를 편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태강지리지]는 낙랑군이 현존했을때의 책이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태강지리지]가 당나라때에는 존재했기 때문에 사마정이 그 책을 인용해서 [사기색은]에 기록한 것입니다 갈석산은 하북성에 있는데 아주 유명한 산입니다 고조선의 영토가 거기까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한사군이 북한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석산이 평양에 있습니까?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내려왔나요? 평양에 있었던 것은 낙랑군이 아니라 고조선의 유민들이 건국한 낙랑국입니다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낙랑공주는 낙랑국 왕의 딸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라가 고조선을 식민 통치하기 위해 세운 낙랑군은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지방 행정 기관입니다 따라서 지방 행정 기관인 낙랑군의 수령은 낙랑왕이 아니라 낙랑태수입니다 따라서 낙랑태수의 딸은 낙랑공주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북성에 있었던 낙랑군과 평양에 있었던 낙랑국은 서로 다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갈석산이 있는 하북성이 고조선의 땅이였기 때문에 광개토태왕때 고구려가 옛 땅을 되찾기 위해 거기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가 고대의 요하였고 난하의 동쪽이 요동, 서쪽이 요서였던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 애국심이 생기지도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어떤 의무나 희생을 치를 가치도 전혀 못느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처럼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인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영달만 좇는 것입니다 이게 다 우리 역사의 뿌리가 잘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의도대로 민족정신이 말살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서 제대로된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현재의 코로나 방역, 한류열풍, G8국가로의 진입 가능성이 타진 되는 상황등 우리의 자부심을 높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우리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는 현상이 바로 K방역, 한류열풍, G8국가로의 진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도 제대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lljljljlljll2 жыл бұрын
방장님 일제강점기 영상 만들어 주세요!😆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수둥이-o3n2 жыл бұрын
한능검 준비중인데, 알찬영상 감사합니다 ㅎㅎ 매우 유익해요!!
@빵떡-v2n2 жыл бұрын
2:15 광종 이야기는 이미 다룬적 있어으셔서 떠오르네요
@Epic_Ssom_History2 жыл бұрын
오기억해주시네요!!ㅎㅎ
@ppangjo30139 ай бұрын
고려거란전쟁보고 여기까지 와버렸네요ㅎㅎㅎ
@Ha-uw5do2 жыл бұрын
와~~~ 이언니 요약 짱! 흐름을 이해하기 쉽게 넘 좋다!ㅎㅎ
@정신교육대-p7u Жыл бұрын
최신순 내글 참조
@dustone2 жыл бұрын
역사에서 미래를 배웁니다^^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yongjj93482 жыл бұрын
李: 나무 밑에 자식 王: 하늘 아래 어른
@숲-y8n2 ай бұрын
고려의 모든 내용을 축약해서 이야기해 주니 고마워요. 500년의 고려는 어쩜 조선 500년보다 앞섰다는 생각이 드네요. 거란,여진,몽골 등 이들과 전쟁을 하고도 굳건하게 지켜나간 역사.
@user-iw9jm5bz8u2 ай бұрын
진지빨면 고려는 진짜 조선보다 답도 없이 미개했습니다. 행정체제도 잘 잡히지 않았고 농업기술은 미비했으며 대부분이 움집수준에 거주했죠.
@il40332 ай бұрын
@@user-iw9jm5bz8u일반인들의 생활 수준은 조선보단 당연히 떨어질수 밖에 없죠. 다만 자력 통일, 여요전쟁 승리로 인한 높은 국제적 위상, 유교원툴이었던 조선보단 개방되고 더 다양한 문화가 꽃피웠다는 점에서 고려가 고평가 받는거죠
@송밀리터리2 ай бұрын
@@user-iw9jm5bz8u 그거는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임..고구려는 진짜 움집에서 생활하고 고대부족사회에서 이제막 벗어난 상태였음...
@붕붕이-c4nАй бұрын
@@user-iw9jm5bz8u그냥 개 소 리
@윤광호-t7e Жыл бұрын
보내주신 스벅쿠폰 좋았고 책도 잘 읽고 있습니다. 쏨 화이팅!!
@Epic_Ssom_History Жыл бұрын
광호님 후기 남겨주시니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TV-jm7fd2 жыл бұрын
와우! 고려편!! 정말 감사합니다!!
@monsuwoo82512 жыл бұрын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패망이후 중국의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나라~ 그런데 끝까지 자주국방과 멸망 직전까지도 옛고토 찾으려한 고려 이게 현시대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 고려는 코리아 우리는 이걸 잊고 살았는지 모르겟네요~~ 진짜 고려 최고~
@---8372 жыл бұрын
중국영향력 없었습니다 명나라 초기는 이성계가 쳐들어올까봐 벌벌 떨었고 청나라는 중국 역사가 아닙니다
@로갓-i8w2 жыл бұрын
대부분에서 조선>고려인건 사실인죠. 근데 세금 뜯어내는 능력과 동원능력 이두개만은 고려가 위긴하죠.
@초코퍄이2 жыл бұрын
@@로갓-i8w 개소리하네
@guarantee97732 жыл бұрын
@@---837 이성계한테 벌벌 떨어서 조선 역사가 명ㆍ청의 제후국이었군요 🤣🤣🤣🤣
@로갓-i8w2 жыл бұрын
@@guarantee9773 청의 제후국인건 거의 팩튼데 명의 제후국인건 반쯤 틀린 말임.
@매월2일빵은2 жыл бұрын
외교적, 대외적 유연성은 고려가 훨씬 앞섰지
@박성준-y3s7 ай бұрын
목소리 너무 좋아요!
@lllklkkkk Жыл бұрын
작년에 합격한 현직 7급 공무원입니다. 솔직히 한국사 공부하면서 조선보다 고려가 훨좋은 나라라 생각했습니다. 고려는 이혼한 여자 재가 자유. 남녀차별 없고 유산도 균등 분배. 조선은 후반갈수록 더 발전하긴 커녕 더 이상해짐. 아들만 재산주고 양자입양 친영제도 동족마을.. 등
@lllklkkkk Жыл бұрын
젤 이해 안되는게 서얼 차별. 애비가 딴여자랑 바람펴서 낳은건데 자식이 왜 직업의 자유 없어야하지? 아무명분도 없는 차별임 도저히 이해안감 . 사회적으로 시선나빴다 수준이면 모를까 법적으로 과거응시불가. 대체 왜 과거 못보게하는지 이해자체가 안감
@maple4801 Жыл бұрын
조선도 우리가 아는 모습은 후기 때나 나온 모습입니다. 조선도 초 중기에는 성차별이 별로 없었어요. 실제로 여자인 신사임당이 상속자로 기록된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어요
@langsam29314 ай бұрын
@@lllklkkkk윗분말씀처럼 임진왜란때 쳐망했어야하는 조선이 살아남은 부작용이 성리학 강화임. 왜란,호란 이후 나라개판에 지배명분이 약해지자 들고나온게 성리학주의로의 회귀임. 이거의 선두주자가 정조. 왜 최근 미디어에서 정조를 개혁군주로 묘사하는지 몰겠음. 성리학강화시키고 한글못쓰게하고 천주교잡아죽인 원리주의자 틀딱 딸피가 정조인데 말이여.. 이때부터 조선은 이미 돌이킬수없는 망국으로 들어섬. 일본은 개항하고 유럽돌면서 벤치마킹하고있었는데.. 넘나아쉽
@Jerry-e7p2 жыл бұрын
꿀잼입니다!!
@김재박-l7o2 жыл бұрын
역사는 늘 되풀이된다.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사요는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을 치고 들어가 보십시오 원문공부하세여
@장세영-p8w2 жыл бұрын
아니요. 비슷하게 보일 뿐, 전혀 다른 개개의 사건들일 뿐입니다.
@il40332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 고려역사가 조선보다 재밌음 ㅋㅋㅋㅋ
@쿤보라고다괴물은아니2 жыл бұрын
재밋긴해도 개고생했지..유목민들 전성기라..
@UltimateTruthChannel2 ай бұрын
조선이 뭐 한게 있나? 어떻게 조선을 고려량 비교를 하냐 애초당시에.
@송밀리터리2 ай бұрын
@@UltimateTruthChannel 조선이랑 고려랑 비교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죠 비교를 할꺼면 조서전성기 vs고려 전성기 이렇게 비교를 해야하는게 맞죠
@il40332 ай бұрын
@@송밀리터리전성기도 고려가 더 좋았다고 생각함. 고려는 자력으로 통일 + 거란과 혼자 싸워서 승리하고 150년동안 문화가 꽃피우는 전성기를 누렸는데, 조선은 태종 세종 50년 제외하곤 전성기라고 볼 시기가 영 없음 초기 이후로 쭉 하향세타고 외세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털리기만 해서
@송밀리터리2 ай бұрын
@@il4033 조선은 태종,세종,문종,성종때 전성기였음 그냥 15세기전체가 조선의 전성기라고 생각하면됨 50년은 더 됨.. 그리고 고려도 거란전쟁하고 100년정도 전성기를 맞긴한데 이후에 원나라 간섭을 100년정도 받아서 외세에 영향을 받은건 마찬가지라.... 물론 조선처럼 국가를 완전하게 빼앗긴간 아니긴한데 간섭받은 시간이 100년으로 긴걸 감안하면 조선이나 고려나 전성기 이후에 쇠락하고 국가가 망한건 똑갘은듯......
@hackchorry9 ай бұрын
캬..한국사 공부중인데 이게 더 집중되는 이유는 뭘까요😂
@동네병원간호사2 жыл бұрын
넘재밌고 유익해요
@right-J-2020 Жыл бұрын
오 이영상 보니깐 고려역사가 머리의 쏙쏙 들어오네요! 감사합니다!
@user-fn9fc1hi1p2 жыл бұрын
한반도에서 자주적이던 시절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인듯
@인생은단한번의여행2 жыл бұрын
고맙습니다
@북두칠성-i2f Жыл бұрын
돌대가리도 알아듣기쉽게 설명을 아주잘하네요
@Harry_Mione Жыл бұрын
사실 세계사에 한 국가가 영토와 국민을 보전하면서 같은 왕조로 500년씩 존속하는 일은 꽤 드문 일인데 고려나 조선이 그게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로 건국 초기 광종이나 태종 같은 강력한 왕이 최고권력자인 왕이라는 자리의 정치적 기반을 안정시키고 중앙집권을 공고히 한 데에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음.
@무제-b7z Жыл бұрын
그냥 영상만 봐도 다 이해되는것들이 학창시절엔 어찌나 안외워지던지~~ 재밌게 보고 가요
@절에사는개 Жыл бұрын
선생이라고 다 잘가르치는건 아니지요 ㅋㅋㅋㅋㅋ
@user-ee1kp3zh4n4 ай бұрын
그땐 흥미가 없으셨어서 그래요 특히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보통 별 관심없는 문화와 정치제도 유물 등의 비중이 커서
@youngpyokim34412 жыл бұрын
그림을 직접 그리신건가.....?? 귀엽다~
@mahadeva5632 жыл бұрын
고려가 한반도가 제일 빛났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하고 교과서에서 봤던 고려청자를 처음본 순간 느꼈었습니다
@LL-br7jm2 жыл бұрын
개소리 오지네ㄷㄷㄷ
@송밀리터리2 жыл бұрын
고려청자가 멋있긴 하죠 ㅎㅎ
@장경환-x6v2 жыл бұрын
@@송밀리터리 얼마임?
@송밀리터리2 жыл бұрын
@@장경환-x6v 그건 청자 상태마다 다르겠죠
@squidward_tentacles922 жыл бұрын
@@LL-br7jm 조선이 저 시기있었으면 거란에 합병됐음
@박광석-f9g2 жыл бұрын
쉽게 역사를 설명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남성모-q7d2 жыл бұрын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nabull78262 жыл бұрын
우왕 씀작가님 대단 하시당....ㅎ
@ynhnk82592 жыл бұрын
역시 한국사는 들어야 재밌어
@sooahtz Жыл бұрын
알고보면 모두 정치가 날려먹은걸 지금도 우리나라는 저때의 정치태세를 가지고 있다는게 참 마음이 아픕니다
@띠라람2 жыл бұрын
5도 양계 부분은 현종이 아닐까요~? 성종이 지방통치에 기여한건 12목 설치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영상 너무 잘 봤습니다👍
@김판종-s6n8 күн бұрын
기도합니다 🙏 🙏 🙏
@송성룡-f6r Жыл бұрын
1:20 훈요십조는 왕건이 작성한건 손실되었고 후대에 조작된걸로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박종민-e7z2 ай бұрын
아님. 저게 한반도를 의미하는게 아님
@늘상-f6i Жыл бұрын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은 ‘고려 독립’이 자신의 꿈이라 적은 적 있죠 ㅇㅇ 조선왕조가 개국했을때 백성들은 꽤 오랜기간동안 자신들 나라 이름이 고려라고 생각했다고 하구요.
@maple4801 Жыл бұрын
독립운동가들 중 좌익 급진계열은 조선이란 말을 즐겨썼고 좌익 온건 계열은 고려라는 말을 즐겨썼고 우익은 대한 이란말을 주로 썼습니다.
@taeinyi21238 ай бұрын
대한이 맞지 예맥이나
@keke-bv2tz Жыл бұрын
고려가 참 복잡하기도 하지만 현재 외국이 코리아라고 부르는게 우연인게 아닌게 강대국이 였음..나름...원 이전엔 칭제하여 황제국이였고(물론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약한 송나라 시대 영향도 있지만 거란 물리친게 결정적), 그 원한테도 어느정도 국권을 유지하는 등 현재 코리아도 강대국이 된거 처럼 ㅎㅎ
@vivivi3865 Жыл бұрын
현재 한국은 솔직히 아직 강대국이라 부르기는 부끄럽죠.. 국력이나 국제위상이나 영향력이나 고려 문종 시기에 비하면 한참 멀었습니다. 최소 통일은 하고 안정이 좀 되어야..
@XiJinping_anus_loves_democracy Жыл бұрын
@@vivivi3865 무지성 고려빠 검거
@homeworkout127 Жыл бұрын
@@vivivi3865통을을 왜해 그 비용 니가 다 낼래?
@maple4801 Жыл бұрын
@@vivivi3865대한민국 정도면 국제적으로 위상이나 영향력이 엄청난 국가입니다. 우리가 몸으로 잘 못느낄 뿐인거죠. 왜 미국과 중국이 대한민국을 서로 자신의 영향력에 두고 싶어 하겠습니까? 한국이란 나라의 영향력이 자신들의 이익에 매우 상충하기 때문이죠. 아시아의 단 둘뿐인 선진국이라는 것도 상당히 메리트가 있고요.
@sweetfan32508 ай бұрын
적어도 영국면적이 되야 될건데 통일시 휴전선 막고 북발전후 개방 그럼 니 세금 안내도 된다
@jaeyunseo7255 Жыл бұрын
이해가 쉽도록 잘 구성되어 있네요.
@민들레-v2z Жыл бұрын
와ᆢ 고려사 간결하게 정리해서 말하네요 감사합니다
@김광종-t4s2 жыл бұрын
혜종이 침실에 잠입한 자객을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무력은 대단했음 왕을 노릴 정도의 자객이라면 무력이 엄청났을텐데 최정예 호위병들을 상대해야 됐으니
@배호윤-y7y2 жыл бұрын
전쟁터에서는 아버지인 왕건보다도 더 용맹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네요 무력만큼은 최고의 왕이라고
@Tripleaxelyang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현종부터 숙종까지가 진짜 전성기
@uunvoid2 жыл бұрын
세종이 고려왕들 관련 유물들 없애버린건 아쉽네요. 초상화도 모르니 그리고 gdp 보니까 고구려, 고려가 평균8위•최고 5위 하던 나라 였습니다.
@vivivi38652 жыл бұрын
아쉬운 게 아니라 울화통이 치미는 일이죠. 세종이 고려의 문화재를 파괴함으로 인해 우리는 고려 최고의 성군이라는 현종대왕의 얼굴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송밀리터리2 жыл бұрын
조선도 초기 한정이긴한데 경제력이 10위권정도 했을꺼임
@송밀리터리2 жыл бұрын
@@vivivi3865 그건좀..아쉽긴함..
@로갓-i8w2 жыл бұрын
@@vivivi3865 그건 ㅇㅈ
@homeworkout127 Жыл бұрын
내가 세종을 진짜 않좋아함. 왜 이렇게 미화됐는지 의문일 정도로 조선 백성들을 버러지처럼 생각하던 왕이었음. 물론 공식적으론 다 너네를 사랑해서 하는거라고 이쁘게 말했지만 ㅋ
@The3adam-143 ай бұрын
흥미롭네요
@vipluvgd6 ай бұрын
최고네요
@영등포총사령관8 ай бұрын
조선같은 신석기시대보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고려가 훨씬 더 값지고 의미있지.
@xzxzxzxz98928 ай бұрын
당연함 일본에서 따라한 한반도 특유의 금박문화 , 자체적인 도자기 기술, 군사력,경제력,민속문화등 화려함과 웅장했는데 중국 뒤에 숨어서 성리학만 부르짖던 조선때 전부 없어지고 씨가 마름 조선왕조와 그밑의 신하들은 진짜 욕만 나온다
@Lookhischiu3752 жыл бұрын
제대로된 역사라면 고려는 몽고이전까지 강국이고 영토또한 조선보다 훨씬 넓었으며 무엇보다 무역강국이었다. 책보고영상 참고 지명을 통해서 알기쉽게 파악 할수 있을 것 . 삼국사기와 고려사 복원에 힘을 기울이는 채널. 지금 우리가 배우는 고려사는 고려사를 분석조차 하지않고 내피셜에 가깝고 왜곡 누락이 많음. 무엇보다 우리역사 고려사가 국보로 지정되지 못한 실정.그 이유는 여러분이 찾아보면 알것.누가존재하는지.
@maple4801 Жыл бұрын
그리고 고려사는 보물로 지정 되어있다.
@dustone2 жыл бұрын
역사 속에서 삶을 배우고 익힙니다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안핑 시(Anping City 안평성安平城), 그리고 타이욘 시(Tayoan City 대만성台灣城)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착한남-v3i2 жыл бұрын
한심하네
@jksmm12 жыл бұрын
@@착한남-v3i 한국고전종합 이라고 치고 들어가 보세여 거기 다 있어여
@kml4213 Жыл бұрын
우왕 잼있게 보고가용 !!!
@현철김-i4j2 жыл бұрын
구독 ❤했습니당 ^^♡
@티마르포포카2 жыл бұрын
위화도 회군은 아무래도 지원이 안와서 따지러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어쨌거나 결과는 역으로 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나왔던거 같네요.
@jksmm12 жыл бұрын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안핑 시(Anping City 안평성安平城), 그리고 타이욘 시(Tayoan City 대만성台灣城)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티마르포포카2 жыл бұрын
@@derbyace1225 더 자세한 사항을 확인 못한다는거죠. 그런데 상상이 없으면, 진짜 왜 그랬는지 더 확실한, 막타를 치는 조건이 되는 이유를 모릅니다. 그건 그래요. 잘한것도 같이 봐야하는데, 그건 또 못하죠. 그러니 그것들이 어쨌거나 확실한건 우리가 확인할 자료가 많이 없다는건 확실하네요.
@freesia45972 жыл бұрын
그때 압록강 건넜으면 그냥 다 죽었을거임.. 말도 안되는 원정이었음.. 가서 싸우기도 전에 가다가 지쳐죽고 병들어죽고.. -_-;; 최영이 말년에 노망나서 말도 안되는 어거지로 떠밀어서 ..
@티마르포포카2 жыл бұрын
@@freesia4597 우선 지원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제때 안오는거 같으니 돌아간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정확한 기록이 남은게 없으니.. 애초에 전쟁은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죠. 군사 인원 지원은 그렇다 쳐도, 먹을거, 무기등은 지원해 줘야지.. 아무래도 이쪽이 없으니 돌아온게 아닌가 싶어요.
@장세영-p8w Жыл бұрын
아니요. 애초부터 요동 공격은 우왕과 최영의 독단일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신료들은 부정적이었어요. 그래서 최영이 신료 중 하나를 처형하기까지 했고요. 고려사 기록을 보면 최영이 원정을 떠난 장수들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두려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출정한 장수들부터 다른 마음을 품을까 우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원이 있든, 없든 간에 애초부터 고려는 그럴 상황도 아니었고, 그렇게 해줬다 한들 이미 만주를 평정한 명의 대군에 금방 박살났을 겁니다. 게다가 명은 철령 이북의 영토가 고려땅임을 인정한 상태인지라 명분마저 없어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