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가지인데 하나는 성씨는 있었는데 유명한 성씨(김씨,이씨,박씨)로 갈아탄 사례이며, 두번째는 성씨가 없었으나 자신 주인댁에서 성씨없는 머슴들에게 자신들의 성씨를 주어 자신 집안으로 흡수하거나, 마지막으로 6.25 전쟁으로 본성와 본성가 합치거나 자신들의 가문 인원 늘리기 위해 다른 성씨와 동화하였지요
@품위있는녀석7 ай бұрын
머슴은 돈받고 일하는 양민으로 성씨가 원래 있었고 실제로 가계가 무너진 양반도 머슴살이 했던 기록도 있음. 말씀하시려는 건 내거노비. 노비들도 실제로 성씨를 갖고 있긴 했는데 이게 행정기록이나 족보가 있지 않으니 성씨의 가계가 불분명했고 크게 의미가 없던 것 뿐. 실제로 근래에 노비의 성씨까지 기록된 고문서가 발견되기도 했음.
@신신-b3q7 ай бұрын
@@품위있는녀석 이래서 국뽕 역사왜곡 세계 2위가 한국임... 조선은 그냥 유교 탈레반 그 자체였음 , 머슴 ,노비 미화 ㅋㅋㅋ 복지국가 조선 ㅋㅋㅋㅋㅋㅋ
@cielogrey7 ай бұрын
앗 박광일선생님 보다서 보니 넘 반갑네요❤
@나무야-u5l7 ай бұрын
우와 보다에서 박광일샘을 보다니요🎉🎉 잡지사에서망 보다가 보다에 나오셔서 눈을 의심했쟈나요 ㅎㅎㅎ 오늘도 잘 배우고 가욤!
@일렉트로시티맨7 ай бұрын
요즘 세상에 양반 출신이니 상놈 출신이니 하등 상관없는 얘기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강의네요😊
@채종철-g9y7 ай бұрын
요즘에는 돈 많은 게 최고, 상 양반이지요. ㅎㅎㅎ
@bbhyda7 ай бұрын
우아 반남 박!!
@베이비샤크18호7 ай бұрын
우리도 족보를 샀나 보다!!! 큰아버지께서 어느날 부터 족보 이야기 안하심!!! ♥♥♥씨 ★★★파 몇 대손 이랬는데 나중에 조용해지심!!! 😂😂😂😂
@oneyoutube64287 ай бұрын
90퍼 이상이 족보를 샀는데요 순종을 찾기가 더 힘들죠
@오세완-k3y7 ай бұрын
@@oneyoutube6428 희귀 성씨는 족보매매 안합니다. 거의 한다리 걸치면 다 알아서 ㅎㅎ
@doomh_607 ай бұрын
@@oneyoutube6428우리집은 희귀 성씨여서 진짜인듯 전국에 17000명 밖에 없어요 ㅋㅋ
@intelamd30767 ай бұрын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양반이 얼마 안되고, 족보도 별로 없었는데 임진왜란 이후로 족보가 엄청 늘어났고, 일제강점기 거치면서 신분제가 사라져서 족보 없는 집이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죠...거의 다 신분세탁을 열심히도 했다는 뜻임...
@어여와-e5z7 ай бұрын
1등~~~ 족보 이야기 잼있네요 어릴때 할아버지가 족보 보여주면서 이야기 많이 해주셨는데
@boksumojung7 ай бұрын
응 ㅋㅋㅋ 노비 출신 족보
@어여와-e5z7 ай бұрын
내가 노비면 넌 백정인가?ㅋㅋㅋ
@엘시드-c8n7 ай бұрын
@@boksumojung 그 모든걸 다삐딱하게 보고 모든사람에게 시비걸고 싶어하는 욕망이 생긴다는건 정신적으로 어딘가 문제가 있기때문입니다. 놀리려는게아니라 정말로 건강에 안좋으니 꼭 병원가보시길바래요.
@wawa37457 ай бұрын
@@boksumojung 생각하는게 노비답네요
@j34597 ай бұрын
조선시대 노비나 하층민이 고려시대 귀족 왕족 양반 지식계층이 많아요 이씨조선의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이 노.비.제
@didddd71356 ай бұрын
집성촌, 종가집 등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은 계속 갖고 살면 됨. 하지만 풍속에 전통이 거의 없는 현재 사회에서 양반 가문이니 하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고 전통업에 대한 존중이 우선인 것 같다. 일단 전통문화가 살아야 전통적 개념이 존중받을 수 있음.
@hirahira0o07 ай бұрын
박광일 선생님 강의는 언제나 재밌어요!
@밝고희망찬아이7 ай бұрын
오 기계유씨 캬~~!!
@열국지팩트체크7 ай бұрын
재미있게 듣고갑니다. 감사합니다.
@manlee26857 ай бұрын
5천 년 동안 토종 애들이랑 섞인 거지요 일본도 일본 원주민이랑 한반도 사람이랑 섞였듯이 네안데르탈인처럼 침략 이주 등등으로 아무래도 섞였겠죠...
@안녕나야-q8s7 ай бұрын
아... 그래서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 우리나라 노비, 평민들은 대부분 김, 이, 박씨에 있을 거라 하셨지...
경주이씨 하지만 할아버지 큰할아버지는 까막눈 대학들어갔을때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Ahshshiaiagwi7 ай бұрын
덕수궁 공연할때 함께했던 배우입니다~친절하고 자세한 설명 해주시던 박광일선생님~ 보다에서 뵙네요
@user-to6pg9vl4s7 ай бұрын
품격이 느껴져야 진정한 노블레스가 아닐까요
@kimbruno-y5m7 ай бұрын
족보를 매매했다는데 많이 공감합니다. 저희 집안은 족보를 팔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700년대중반~1800년대 초반에 있었던거 같고 작고하신 오촌당숙께서 돌아가시기 15여년전 족보를 되찾으려고 뿌리를 찾아다니셨어요. 전남 완도 신지도가 제 증조부 고향이고 거기서부터 발품팔아 전북 익산으로 찾아올라갔고 최종적으로 전북 김제에서 어떤 이유로 인해 한밤중에 전남 완도 신지로 떠나야 했고 전북 서해안 일부는 아직 김해김씨 삼현파 집성촌이 있다고 압니다. 백제가 멸망했을때 김해김씨를 그쪽으로 보냈다고 그 집성촌 분들은 이야기하더군요. 아무튼 집안에서 내려온 조상들의 기일장을 어릴때 저도 여러번 봤고 어머님이 이 기일장을 장롱 깊이 삼베포에 말아서 소중히 간직하셨습니다. 제사도 1년에 12번을 치러야 했는데 꺼낼때마다 호기심에 계속 봤는데 오촌당숙께서 그 기일장을 모두 적어가셔서 그걸로 족보를 결국 찾았어요.
@kimbruno-y5m7 ай бұрын
아 족보문서를 되찾은게 아니라 몇대 누가 직계인지를 찾은거고 하는수없이 큰 비용을 치르고 해당 대에 끼워넣어 33권인가 전권을 다시 찍어 삼현파 종중에서 발급받아야 했는데 지금와서는 당숙이 당시에 뭐하러 그러셨나 싶죠.
@kimbruno-y5m7 ай бұрын
족보를 판건 1800년대 중반쯤인듯 싶네요. 신지도에 살때 집에 큰 불이 났었고 현지주민분중 최고령이신분의 증언중에 자신이 그 불타는 대문을 봤다고 하신걸로 봐서 그때 가세가 망해 족보를 판거 아닌가 싶네요. 아무튼 족보매매의 현장에 저희 선조가 계셨다고 확신합니다~ 김해김씨 삼현파가 전남 해안가에 많은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kimbruno-y5m7 ай бұрын
제 4~5대 위 조상중에 김제에서 왜 갑자기 전남 완도에서도 또 배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신지라는 섬으로 들어갔을까 저도 궁금해서 그시기 사건사고들을 찾아본적 있는데 어쩌면 그시기 천주교인들에 대한 처형과 관련있는거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순교하신 분들도 많지만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잠적한 사람들도 있겠죠. 그런게 아니라면 그렇게 섬중의 섬으로 갑자기 옮길 이유가 딱히 생각이 안나네요. 근데 제 부친 포함 모든 친척들은 모두 무종교였습니다. 제 어머님만 불교신자셨어요.
@hgpkkw6 ай бұрын
본관이 김해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라도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ruvoluble7 ай бұрын
1910년 전체가구 중 양반 가구는 1.9%
@심영-m1w7 ай бұрын
양반 집안인지 여부 확인하는 방법 1. 본인 혹은 가족이 묘사(시제)에 참석하거나 초대 받는다. 2. 오래된 집안 제당이 있다. 이거 둘 다 해당 없으면 양반 후손 아닐 확률 매우 높습니다.
@심영-m1w7 ай бұрын
+ 북한 지역 제외
@후아아후아아7 ай бұрын
북한에 살던 김해김씨임
@Rucas11037 ай бұрын
오래된 선산 가지고 있는 집도 있죠
@vierwuenscheansuniversum7 ай бұрын
+보기 힘든 한자를 쓰는 희귀성씨거나
@성이름-x9r7 ай бұрын
+ 할아버지나 아버지 고향이 집성촌이다.
@sldoal1247 ай бұрын
매년 조상 선산가서 몇대조인지도 모를 무덤 온가족이모여서 심지어 증조 고조때부터 갈라진 이름모를 가족들 다 모여서 벌초하고 밥묵는데 ㅈㄹ피곤해 죽것더 조상 무덤 치우면 뭐하나 걍 잘먹고 잘사는게 효도 아닐까 그놈의 후손 가문 뭐가 중요하노 양반이 맞는지도 모르는데ㅋ 의미없는듯
@위스키버본7 ай бұрын
김이박씨가 많은 이유와 씨족단위 집성촌이 있는 이유는 그 동네 유력가 집안이 김이박씨였고 그의 소유인 노비가 많았기 때문임, 몇대에 걸친 선산이나 종가집에 초대받아 가문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집안은 그냥 그집 노비였을뿐임 왕족이 아니라... 실재로 1900년 초에 양반은 전체인구의 2%가량밖에 되지않았고, 갑오개혁때 성씨 배급될때 어떤성씨를 정해야될지 못한 노비들의 대부분이 주인집 성씨로 성을 정했던게 사실임. 그러니까 실재로 종가집이나 그와 교류가 없고, 몇십대에 이어서내려오는 선산도없는 말로만 우리집안은 ~~후손이라더라 하는 집안은 그냥 우리 조상 주인님이 김이박씨였구나~~ 하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음, 그리고 잃어버린 가문찾기 이런식으로 족보 껴넣기하는 경우가 과거에 있었는데 그건 그냥 돈주고 말그대로 족보에 껴넣는 일종의 사기상술이었으니 의미두지말자구
@deutschland3667 ай бұрын
일제시대때도 성씨개명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성씨를 바꾸거나 새로 생겼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ksk8607 ай бұрын
집성촌이 있다, 제사를 지낼때 수십명이 온다, 선산에 몇대조의 성묘를 한다면 산 족보는 아닐가능성이 높으니 자부심을 가지세요~
@동그리-w9d7 ай бұрын
집성촌이랑 족보랑 무슨 상관 ? ㅋ그냥 장가가서도 형제들이 같은 마을에서 살다보니 집성촌이 형성된건데
@ashhole-b4c7 ай бұрын
집성촌도 집성촌 나름이지 조선중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명한 곳은 몇안되고 대부분 6.25 이후 생긴곳임
@homa1003c7 ай бұрын
꼭 그렇지도 않음ㅋㅋ
@동그리-w9d7 ай бұрын
@@homa1003c 동네 사람들이 회의해서 성씨를 정한 경우도 있었음 ㅋㅋ .. 자기들한테 소작농지 빌려준 양반 지주의 성을 따른다든지 ... 양반집에 종살이 하던 사람들이 그 집 양반의 성을 가진다던지
@agm11447 ай бұрын
고대한국의 기록에 등장하는 성씨는 씨명일 가능성이 큽니다. 흑치상지나 귀실복신의 사례처럼 부여씨인데 성씨를 흑치, 귀실로 바꿨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흑치상지의 경우 그의 일족이 사비의 부여씨에서 갈라져나와 독자적인 씨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민수-x5o7 ай бұрын
살면서 딱 한 번 해씨를 봤는데 그런 희귀 성씨들은 양반 가문이었겠네요
@vampire-x8w7 ай бұрын
갑오경장때 노비제 폐지 안되었으면 인도 카스트제도처럼 지금도 양반, 노비 타령하면서 살고 있을 것임..
@고구려-h3r7 ай бұрын
지금은 양반 노비가 없음?
@셩이름7 ай бұрын
상노무자식들 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양반 상놈 구분지을 일이 없기 때문에 떳떳하게 살으라는 것이지 돈이 곧 왕이라서
@backd73267 ай бұрын
아 이거보고 갑자기 생각나서 내 본관+성씨 검색했는데 전국에 1000명이 안되넼ㅋㅋㅋㅋㅋㅋ..ㅠㅠ 광주노(魯)씨 찾습니다...
@학쥬7 ай бұрын
희귀 성씨 신기방기
@학쥬7 ай бұрын
어디서 검색하나요?
@모로리-k9h7 ай бұрын
노시환 홈런⚾️
@빅풋-s8o7 ай бұрын
노? 노무현 있다 2기ya!
@호야-j2m6m6 күн бұрын
중국가면 널림. 조상이 귀화중국인
@구리시유니7 ай бұрын
추정으로 알 수 있는 한가지 방법 알려드립니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공부를 잘 못했다거나 IQ가 높지 않다면 조상이 양반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음
@Cute_Joyuri7 ай бұрын
신평 호씨 전국에 2000명 조금 넘게 있음. 찾아보니 지금 사는 동네에서 500년넘게 살아왔음. 시조 할아버지는 918년 철원에서 왕건의 쿠데타를 돕고 개국공신 됐다가 927년 팔공산 전투에서 평산 신씨의 시조인 신숭겸 장군과 함께 전사... 증조할머니가 평산 신씨..
@Hyunziczopok7 ай бұрын
삼음절로 끊어지는 우리나라 이름 특성상, 외국놈들이 부를 때 힘들어하는거는 둘째 치고 중국놈이냐고 할 때 많음.
@jeanger87337 ай бұрын
그럴 수 밖에 없죠. 🙂. 한 때는 티비 뉴스에 여기 저기 한문만 보여서 외국은 우리도 중국으로 봤을 듯.
@online-store7 ай бұрын
오히려 중국이 발음하기 쉬운 경우가 더 많은듯 우리나라는 "성", "경", "환" 등이 이름에 들어가면 로마자로 변환해도 발음이 부적합하고 한글로밖에 제대로 표기할 수 없었음
@고냉이-v8w7 ай бұрын
서양도 기독교 영향으로 싹다 성인들 이름으로 똑같음.
@buenobeo8607 ай бұрын
@@고냉이-v8w 이름은 비슷해도 서양의 성은 엄청 다양해요
@art-jo-history7 ай бұрын
난 조선놈이요,라고 하시지 ㅋㅋ
@지잡대대코더7 ай бұрын
집성촌에서 나고 자라서 아직도 살고 있지만 본관갈이 하신 집안이 있긴했죠
@djWjfkrhwkdsksclsi7 ай бұрын
그러려니 하고 대충 살면 됨. 식민 지배를 거쳐 온 나라에서 족보 타령 하는 것도 웃기고, 나라도 못 지키고 도망갔던 기득권들이 이제 와서 왕족이니, 양반 세도 가문 타령 하는 것들은 그냥 돌 던져야 됨.
@123carth7 ай бұрын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임.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총계 현대의 46개국이 고대엔 로마 식민지였음.
@donbu-ahn7 ай бұрын
일본탓은 안하네요. 일본이 말뚝을 밖어..
@VELVE-i2l7 ай бұрын
@@donbu-ahn 정치병입니다.
@cheeseqwerty7 ай бұрын
우리집 직계조상 일제독립운동 의병대장 일본군에 체포되어 재판 받고 교수형당하심. 울집 양반족보타령하고 다들 자랑스러워함.
@dltnstls2497 ай бұрын
맞긴함 결국 다 망한나라들인데 왕의 후손이니 이런게 웃긴거지ㅋㅋ
@후아아후아아7 ай бұрын
울할아버지 북한에서 왔는데 나 김해 김씨 경파인데 돌림이 달라 ㅠㅠ 어릴때 할아버지가 조상님이라고 김유신묘도 데려가고 했는데 자부심 많으셨는데 ㅠㅠ
@user-cj3bm6he4m7 ай бұрын
기계 유라고 어릴 때 친구들이 놀리곤 했는데 진성 양반 성씨였군요
@sgp65187 ай бұрын
신분제 폐지되고 족보 사서 그런거 아닌가요? 전국민이 양반인게 참..ㅎㅎ
@문카7 ай бұрын
신분제 폐지로 인한 성씨는 주인의 성씨를 따른겁니다 족보를 산거와 신분제 폐지로 인한 성씨창설은 틀립니다 우리나라에 김이박이 많은 이유 중 하나도 신분제 폐지로 인한 주인집성씨 사사로 김이박이 많은겁니다
@sgp65187 ай бұрын
@@문카 신분제 폐지 후 성씨창설 주장 한적 없습니다....
@skyfotress57827 ай бұрын
김해 김씨, 안동 김씨, 밀양 박씨, 전주 이씨 이 네 개의 성은 대부분 족보를 산 성씨일 가능성이 높음
@갑숑이7 ай бұрын
언제적 얘기냐ㅋㅋㅋㅋ
@hjn00007 ай бұрын
인간은 100년 안에 죽을 가능성이 높음 이런말하고 뭐가 다르냐..
@호호호-j1q7 ай бұрын
위에 김이박씨 등장 ㅋㅋㅋ
@드문-p6t7 ай бұрын
이강민의 잡지사에서 보다 채널로 진출하셨네요.축하드려요🎉
@ebonytears67147 ай бұрын
8:30 진린.
@하남자-n3y7 ай бұрын
지금 보면 왕족들이 다 공장에서 일하고 알바하고 배달함 ㅎㅎ
@Patgie7 ай бұрын
서양인 바이킹과 아이리쉬의 성씨도 흥미롭습니다. 바이킹 영화서 보니 아버지의 이름이 에릭이면 자녀 성씨는 다 에릭슨. 사망율이 높고 척박한 환경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자녀 성씨에 붙여주면 부족사회에서 아버지를 기억해주고 돌봐줄 가능성이 많았을까요? 성씨 가문 단위로 대가족이 형성되지 않아서 여성의 재혼도 가능했던 거 같구요. 아일랜드의 O' Aaaa , McAaaaa 성씨도 알고 싶네요.
@j34597 ай бұрын
바이킹이 우리민족입니다. 유럽으로 진출한 우리민족 선조계열 아이리쉬 이름만봐도 어디계열인지 알겠는데요. 공부를 해야 까막눈을 면합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왜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한국에 방문했는지 이유도 알구요
@rimo84197 ай бұрын
성을 바꾸기 전에는 희귀 성씨로 나름 양반 가문이긴 한데 희귀성씨기도 하고 작고 하다보니 꽉막히기도 했음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 성씨로 바꿨는데 후회없음 양반가문의 사람보다는 나는 엄마 아들이고 싶음
@드래곤타이거JR6 ай бұрын
조금 아는 척을 하면 .. 옛날에 양반 가문이였다면 .. 산소가 10대조 이상 보존하고 관리(문과 무관석등) /1900년 초반생이였던 증조부 조부가 마을에서 도련님 소리를 들었다면 대대로 양반 가문입니다 85년생인데 본인도 어릴쩍 동네 사람들이 다 똑같이 했던 말 이 집만 양반집이다 ...
@kun-wonpark67567 ай бұрын
박씨는 혁거세의 알이 밝았다고 "밝다" 라는 뜻에서 "밝"에서 차후에 차음해서 한자로 만들어 옮기는 과적에서 박으로 변했을 경우가 다분하다 봅니다.
@Tqt2457 ай бұрын
친구한테 우리 집안은 노비집안이 아니엇다고 햇는데 그친구가 다 상놈집안이라면서 노발대발 하드라구요 전좀 특이한 성씨고 그친구는 김씨 ㅋㅋ
@2024jinseo7 ай бұрын
달성 서씨와 이천 서씨 조상들은 북방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던 것이 정리가 되네요. 좋은 강의 고맙습니다.
@ebonytears67147 ай бұрын
이천 서씨가 서씨 대종인데 백제계 성씨임.
@user-pl5pu6it5x7 ай бұрын
서씨가 부여씨에서 갈라져 나온거로 알고있습니다
@라임-z5t7 ай бұрын
얘는 방송 뭘로 들은거냐
@2024jinseo7 ай бұрын
@@라임-z5t 말조심해라 어디서 반말이야
@2024jinseo7 ай бұрын
@@라임-z5t 말조심해라
@안양아빠7 ай бұрын
반남박씨 뿐 아니라 죽산박씨도 고려때부터 명문집안이었고 조선시대에는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양반가문이었습니다
@잉여닝겐7 ай бұрын
남부지역이 신라의 동경 지역이었던 김해김씨 땅이었으니 당연히 많은거지.. 또한 김해김씨지역이 한반도 한군데만 있는것도 아니고.. 각 김해지역이 있는 곳에는 김씨가 당연히 많이산다... 청도지역 가봐라.. 그쪽에도 김해가있고.. 김해김씨 삼현파가 있지.. 조상중에 공을 세워서 세로운 분파를 받은 지역이고.. 그대로 쭉 따라 월남쪽 지역까지가면 각 번화지역마다 김해또는 金門지역이 있고 각분파 김씨들이 있지.. 그게다 6가야 지역임. 가야라는게 발음 그대로 가에 있는 땅인것.. 金은 원래 왕족을 말하는것과 같은거라... 월남쪽으로가면 金씨 발음이.. '왕'씨.. 하기사 왜곡된 역사교육만 그대로 배운사람들은 제대로 알아보려고하지도 않으니..
@TV-pk1gh7 ай бұрын
갑오개혁 이후 계속적으로 성씨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나중에 해당 마을에 가장 많이 있는 성씨로 모조리 바꿈. 기존에도 수가 많았던 성씨가 대한민국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 이유이기도 함. 현재에 와서야 대한민국에서 신분제라는게 크게 의미는 없으니 뭐 크게 상관은 없겠으나 한국전쟁때까지만 해도 거주지의 이동이 자유롭지가 않아서 씨족 마을에서는 너도나도 성씨를 가지고 있었어도 누가 양반인지는 다 알고 있었음. 한국전쟁때 민간인이 가장 많이 죽은 곳이 전라도인데 이쪽이 농경중심이라 인구 전체에서 양반이 아닌 사람이 비중이 높았었기 때문임. 해당 민간인 학살때 가장 많이 죽은계층이 지주와 지식인들인데 이걸 주동하고 동조한게 당시 노비나 마름들 또는 그 후손들이었음. 지리산에서 빨치산이 활발했던 이유이기도 함.
@NaturalHwaN7 ай бұрын
나이키 짭퉁은 있지만 프로월드컵 짭퉁은 없는것과 같으니 잡성씨 부심 부릴필요도 없음ㅋㅋ 좋은유전자 물려준 조상이 최고의 조상임ㅋㅋ
@intelamd30767 ай бұрын
지금과는 다르게 과거에는 유아사망률도 높았고, 남자아이 없는 집들도 많아서 보이게 안보이게 엄청난 양자문화가 있었습니다. 즉, 모든 집안이 끊임없이 아들로 이어져 내려온다는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즉, 우리가 보고 있는 족보는 사실 그 중간 중간에 양자들이 끼어있다고 보는게 맞는 것입니다. 즉, 생물학적으로 족보는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죠...
@agm11447 ай бұрын
신라는 7세기 들어서야 성씨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신라의 금석문에 인명이 성씨없이 이름만 표기된 것에서 확인되는 바입니다. 진흥뫙때 비로서 왕족의 성명으로 김 이 지정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가야계 김씨는 가야왕족들이 신라에 투항하고 하사받은 걸로 보입니다. 정작 김씨 시조라는 알지와 수로왕은 김씨 성을 써본적이 없습니다. 후손들이 김씨 성을 정하면서 김알지, 김수로로 기록이 된거죠.
@ruvoluble7 ай бұрын
맞음!
@hgpkkw6 ай бұрын
무덤 양식은 무시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식한 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gm11446 ай бұрын
@@hgpkkw 책 한권만 읽은 놈이 제일 위험하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거야. 신라 무덤에서 金라는 명문이라도 하나 나왔나? 신라의 적석목곽분 양식의 기원을 두고도 다양한 설이 있다. 그런데도 오직 "흉노가 이주한건데 그들이 김씨다." 라는 소설 수준의 썰이 확증된 사실인양 믿으며, 사료와 금석문을 통해 확인되는 사실들은 '무식한 소리'란다.
@parksh69117 ай бұрын
한 동네, 지역에서 700여년을 지냈으면 그 성명이 맞다는 얘기인 것이죠.
@Winter_snow..7 ай бұрын
반남 박씨 드루와 😊
@이도형-x9x7 ай бұрын
그리고 왕건도 성이 왕 이름이 건이 아니라 그냥 이름이 왕건이었다가 왕이 성처럼 분리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면 그냥 이름이 건이었거나요 성씨 없이 이게 고려 말부터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인데 왕을 세운다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지고 어떻게 의심 덩어리 궁예의 숙청을 피할 수 있었냐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김보성-b3l7 ай бұрын
경주김씨인 저의 족보나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오래된책 문헌에는 최초의 김씨는 김해김씨라 나오게됩니다. 대한민국 모든김씨의 조상들은 김해김씨인 셈인거죠.
@후아아후아아7 ай бұрын
김해김씨요
@노네임-f6o6 ай бұрын
공명첩 ㅋㅋㅋ 노예들도 김이박으로 다바꿈 우리나라애서 대기업만 살아남을 이유도 성씨에서 찾아볼 수 있음
@센쥬하시라마-g8m7 ай бұрын
아니 진선규씨가 무슨 일로 여길..?
@김성태-c6u1c7 ай бұрын
1894년(고종31년) 갑오경장(甲午更張)이후로 노비제도가 완전 폐지되기전까지 조선시대때 찐양반의 비중은 진짜 1% 남짓이였고 나머지 99%는 도축업을 하던 백정과 상놈과 그리고 성씨가 따로 없던 노비라고 했을때... 갑오경장 이후에 돈을 주고 신분을 세탁한 개족보들이 조선사회에 꽤 많았을꺼고... 근데... 먹고 살기도 힘든 21세기 현대에 들어와서 그런 지엽적인 내용을 들고 논의하는게 살아가는데 있어 큰의미가 있나 싶네요
@user-ig5y0t9lcg7 ай бұрын
진짜 김해김씨인 사람들 보면 인도인과 어딘가 비슷해 보인다고함
@switch56927 ай бұрын
족보 팔이 때문에 소수만 점유하던 성씨를 모두가 갖게 되었다니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기록을 보면 천한 일을 하던 사람들도 다들 자연스레 성이 있던데(농민, 성벽 수리 노동자 등의 이름 석자가 기록되었다던가, 농사나 짓던 철종이나) 몰락양반이나 머나먼 방계, 통혼 등으로 의외로 성씨 보유 자체는 보편적이었을 거 같아요
@crimsonrose99927 ай бұрын
유하게 돌려 말씀하셨지, 사실상 희귀성씨 안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민 내지는 노비출신이 많단얘기네요ㅋㅋ 사실 맞긴 하죠
@ebonytears67147 ай бұрын
10:26 氏를 쓰지 않고 많을 多를 쓰셨네요. 씨라는 표현을 쓴 경우가 많다고 多라고 하신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buenobeo8607 ай бұрын
우리나라 이름만큼은 참 창의성이 결여되어 있어요. 딱 삼음절에 성도 몇개 없고. 이제 좀 중국식 이름에서 벗어 날때도 됐는데
@agm11447 ай бұрын
성씨는 원래 성명과 씨명을 의미합니다. 성명은 부계혈통에 부여되는 이름입니다. 입양으로 아버지가 바뀌지 않는한 변할 일이 없죠. 씨명은 자신이 소속된 씨족, 가문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소속된 씨족에 따라 바뀌곤 합니다. 일본이 성이 사실 씨명으로 소속된 가족을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혼인을 해서 가족을 이루면 가족 구성원들은 동일한 가족명을 써야합니다. 괸습적으로 가장인 아버지의 씨명을 가족명으로 정하며 그래서 혼인하면 부인이 남편의 씨명을 사용합니다. 같은 씨명을 쓰는건 한 가족이란 의미인거죠.
@juluart27 ай бұрын
이영상과 더불어 이익주 교수님의 족보이야기도 보시면 좋습니다.
@agm11447 ай бұрын
金의 고대 음가가 "김"입니다. 그러던 것이 중세이후 음가가 금으로 바뀐거죠. 그러나 성명이나 지명같은 고유명사에서는 옛 음가를 그대로 사용하는 겁니다. 金海를 김해라고 하지 금해라고 읽지는 않지요.
@rockugotcha7 ай бұрын
선생이 언급한 이른바 "떳떳한 양반"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양반이니 천민이니 하는 봉건적 질서가 옳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격차를 신화의 파괴가 아닌 신화의 보급으로 풀어낸다는 점이 한국 사회의 특징이다. 상민, 천민이란 무엇인지, 철학적인 용어를 빌려오자면 '벌거벗은 몸뚱이'가 무엇인지,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 즉 이 체제의 틈을 직시할 기회를 내버리고 그냥 만민 모두 신분 상승했으니 그만인 사회. 다시 말해, 담론을 페티시가 대체한 사회다. 이런 사회의 특징이 뭐냐. 무슨 말이든 번지르르한 것은 매우 빨리 널리 보급되어 금방 인플레이션이 생기고 그 말이 원래 지시하던 바는 별로 의미 없게 된다.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는 자들도 드물다. 그냥 남들이 쓰니까 다 쓴다. 당신이란 말은 높임말이었지만 도시화를 거치며 상말이 되었고 의존 명사 씨 역시 같은 운명을 겪고 있다. 요새 누구 이름 뒤에 씨가 붙으면 모욕으로 느낀다. 대신 들어선 말이 사장님, 사모님, 님인데 이 말도 멋대로 쓰여 곧 마모될 것이다. 예컨대 여성 청소부는 곧잘 사모님으로 불리고 택배 기사는 사장님으로 불린다. 요새 미디어에 많이 나오는 작가 역시 인플레가 가속화되는 페티시 중 하나다. 작가든 의사든 사장이든 그게 그 사람의 일면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고정된 역할이 그 사람을 온전히 대신한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일단 신화로 도금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칠이 벗겨진다. 장애자라는 멀쩡한 말을 장애인으로 바꾼 일도 페티시에 경도돼 실속이 없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실제로 장애자의 격이 높아지진 않았지만 말만 이리저리 바꾸면 격이 실재를 대신한다고 여긴다. 너도 나도 양반이라고 했을 때 나쁜 점이 뭐냐면, 천민 됨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닥에 있는 사람들에 이입하는 것이 싫다. 그냥 뒈져라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적나라한 마음이 표출되는 곳이 일베나 디씨다. 일베나 디씨를 하지 않을 뿐이지 한국인은 대체로 그런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어느 선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 가령 장애자 같은 경우 설국열차 꼬리칸 같은 데 처박혀 '정상적인 우리'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김훈은 한국어의 조사가 낱말이 직접 붙었을 때 튀는 스파크를 막는다며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조사보다도 이런 온갖 격들이야말로 한국인이 스스로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막는 데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4-5년 전만 해도 배우님이라는 격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제 모든 배우는 OOO 배우님으로 불린다. 아마도 감독에 그런 직함이 붙어 있어서 그와 격을 맞추려고 한 것 같다. 이게 바로 한국인의 해결법이다. 너도 직함 있어? 그럼 나도! 글쎄 감독이라는 격을 그냥 빼버리면 안 되나? 한국 사회는 유사 군대고, 그 조건에 반하는 언어 생활은 만민이 양반 된 것처럼 얄팍하게 평등하다. 나는 웬만하면 이름만 쓰고 예의상 존칭을 붙여야 할 때는 씨를 쓰며, 위의 경우처럼 많이 공부해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의 경우엔 선생을 붙인다.
@드키무티7 ай бұрын
이름만 바꾸면 다 되는 줄 아는 사회라는 거죠? 껍데기만 갈아치우면 속알머리도 바뀌는 줄 착각하니까 실제로 달라지는 게 없죠.
@cry_st.46047 ай бұрын
동의합니다 글 잘쓰시네요 그냥 서로 존중하고자 사장님 사모님으로 부르고 사장님사모님은 남들 다듣는 사장님사모님소리 싫으니까 대표님으로 소개하고 ㅋㅋ 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걸 어찌합니까 예전에 신분제 사회가 확실할때는 호칭이 명확했겠지만 자본주의사회는 그게 명확하진 않으니까요 호칭이야 어떤들 어떻습니까 다들 그냥 그렇게 섞여사는거죠뭐ㅎㅎ
@에라이-t9r7 ай бұрын
알겠어 형씨
@tmshkj47647 ай бұрын
동의합니다
@한인환-f7w7 ай бұрын
내가 전달 하려는 말을 어느 순간에 유심히 생각해 보니 글쓴이 분과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말이 점점 본 뜻과 다르게 변질이 되어 가는 것과 평소에 쓰는 말들이 이제는 한정적인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글쓴이 분에게 공감합니다.
@수성못장산범7 ай бұрын
어차피 적장자 직계 아니면 다 쌍것임.
@마타하리-h1y7 ай бұрын
김이박 90퍼는 노비
@긋긋긋-s6y7 ай бұрын
본인이 진짜 양반가문인지 아는 방법 (족보는 당연히 있어야함. 그러나 족보는 개나소나 다있고 족보를 구매한 경우도 많아서 논외로 함) 1. 선산이 있다. 시골이나 본인 조상고향에 선산이 있을 경우 2. 집성촌이 있다. 본인이 시골같은곳 가면 같은 성씨가 모여사는 집성촌이 있다 3. 본인 이름이 성씨 돌림자를 쓴다 + 종중이 있다 . 종중에서 장학금을 준다. 참고로 본인은 3개다 포함됨. 이거 3개 없으면 걍 천민이라 보면됨.
@@iedcarr 1번은 거의 없지 않나요? 저희 집은 조선시대 선산 있고 장군석도 있고 당시 벼슬도 써있는데 주변에 그런 집안은 거의 없더라고요. 외가집만해도 그렇고요
@jinkim-f1n7 ай бұрын
임구풍씨도 알려주세요
@안달마7 ай бұрын
김, 이, 박씨 성은 양반 3할에 노비 7할 정도 쯤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양반집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은 그 양반들의 허드렛일을 대신하는 역할로 상전들 보다 두 세배 정도 인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해당 귀족들의 소유권을 인증하는 의미로 그 가문의 성씨가 딱지처럼 붙어서 김개똥, 박말똥 등등 불렸다가 왜정시대 때 서류를 꾸밀 때 이들 노비들이 성씨로 기재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rszanger7 ай бұрын
예전부터 왜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김, 이, 박, 최 4개의 성들이 50% 넘거나 압도적으로 많을까 생각했는데 이제야 의문점이 풀리네요.
@박시온-d7y7 ай бұрын
우리 집안은 명문가 출신 양반은 아니지만 왕족 출신 양반가문임 할머니 집 근처에 조상 묘도 있고 족보도 있고 문중 제각도 있고 여러가지 서책들이 많음
@user-pl5pu6it5x7 ай бұрын
집에 문화재가 있으신거네요 ㄷㄷㄷ
@joshuakim13177 ай бұрын
조선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농부였는데 족보에는 농부는 하나도 안 나오고 전부 서울에서 벼슬하는 양반으로 나옴.
@김종현-l5m7 ай бұрын
냅둬유 ~ !!!
@스위트홈-e9u7 ай бұрын
요즘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의 가족 대부분이 무슨 육해공사출신 행시 사시 외시출신 국회의원집안임ㅋㅋㅋ
@김옵션공자17 ай бұрын
ㅋㅋㅋ 무슨 김씨 족보 양반다 의미없음ㅋ
@품위있는녀석7 ай бұрын
조상 중에 1명만 벼슬을 해도 4대가 양반인데. 이들 후손은 평민이 되더라도 그 후손이 우린 과거에 양반이었다 라는 논리가 틀린 건 아니지. 더 정확히는 문과 초시, 즉 생원 진사만 합격해도 양반신분 유지가 가능했기에. 생각보다 대부분의 집안에서 1번정도는 양반이 배출됐을 가능성이 높음.
@damiankim7 ай бұрын
😊
@rud2427 ай бұрын
맞음 그래서 본관이 바뀌게된 성씨는 어디 가문에서 나온건지도 같이 배움
@이이이-r7z7 ай бұрын
할아버님한테 증조 고조할아버지 무슨일 하셨는지 물어봐라 그게 증거다 또 예의없고 무례한것들은 대부분 상놈이였을 확률이 높은게 우생학적으로 오랫동안 각인된 그dna가 나타난 결과로 보면된다
@jeanger87337 ай бұрын
500 여년 전에 시작된 족보 있어도 후손을 제대로 키우지 않았으면/못 했으면 완전 그냥 종이 뭉침임.
@j34597 ай бұрын
500년전 족보는 영토축소되니까 다시 족보를 만든것 비슷한이유로 영토가 축소되어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것
@kimjunkyukimdanmi7 ай бұрын
본관에 더불어 파까지 설명해 주셨으면 더 좋았을듯 합니다~
@텍사스자택에서검거7 ай бұрын
15:11 이때부터 시작된 평균올려치기문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휴;
@무명03577 ай бұрын
06:14 와 나 기계유씨인데 소름돋네요
@deneb45667 ай бұрын
ㅋㅋ 저도 기계 유씨인데 갑자기 언급돼서 흠칫함
@15xx998FA7 ай бұрын
초등학생 때 금씨 친구있었는데🤔 인씨 친구도 있었음
@뮬란-x5i3 ай бұрын
저의 조상은 김씨지만 족보를 절대 안팔아서 희귀김씨 입니다 김씨도 종류가 굉장히 많커든요 김씨라고 무조건 족보를 팔진 않앗담니다
@야차-h3i7 ай бұрын
경주최씨 충렬공파 38대손이요
@쇠돌이-p5h7 ай бұрын
쓰읍~내 이랄줄 알았다. 딱 보이까네 이 대굴빡이, 어?
@ksoosung58767 ай бұрын
김녕김씨 계십니까~~
@joshuakim13177 ай бұрын
원래 김녕김씨였는데 일제시대때 김해김씨로 바뀌었습니다. 김녕이 김해의 옛 지명이라 일제시대 공무원들이 헷갈려서 그 두개가 같은 동본인줄 알아서 그랬답니다. 원래 저희 집 같은 경우가 많은지 김영삼 대통령 때 김해김씨로 바뀐 원래 감녕김씨 사람들이 재판을 거쳐 다시 김녕김씨로 바꾼 사람들이 수천명입니다. 우리는 귀찮아서 아직도 김해김씨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김녕김씨 출신 인물은 김영삼 김재규 등이 있습니다
@김진명-s2l7 ай бұрын
저요 김녕김씨입니다
@막동이-t9u7 ай бұрын
김녕김씨와 전주김씨가 아주 가깝다고 들었습니다만
@김진명-s2l7 ай бұрын
@@막동이-t9u 그래요? 전 처음듣네요
@쇠돌이-p5h7 ай бұрын
@@막동이-t9u김해김씨 빼고는 대부분 김씨는 경주김씨에서 갈라져 나왔을 겁니다. 크게는 전부 한집안.
@Michaelcoffee7 ай бұрын
밝다의 뜻을 가진 박씨 ㅋㅋ 광일 선생은 이집사에서 봤는데
@김성태-i8e7 ай бұрын
고조선에서 왔어요
@나다미-w5w7 ай бұрын
우리 주인님은 박씨였군.
@원원-t7i7 ай бұрын
10:00 이렇게 부정확한 정보가 판을 치다니… 중국만 해도 항렬자 있습니다… 역대 왕조도 사용했고, 근현대를 봐도 장제스 형제도 다 항렬자 있고 마오쩌둥 아들도 다 마오안~으로 다 항렬자인데 전세계 유례 없다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임? 역사 작가..?
@hinds_feet6 ай бұрын
대부분은 그렇겠지만 꼭 김이박만 그런건 아니에요. 제가 알고있는 경우는 자세한 내용은 제가 알고있지만 그사람은 김이박씨 아님 그 사람만 그런건 아니겠죠. 그렇게보면 다른성씨들도 그럴수있을거예요.
@NightWalkooer7 ай бұрын
영상 내용이랑 다소 무관한 것일 수도 있는데, 청나라 황족 성씨가 애신각라(愛新覺羅)씨인데 이 성씨가 신라의 후손의 성씨다 라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크게 관련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humanplusscience44497 ай бұрын
그냥 우연의 일치입니다. "애신"은 만주어로 "아이신"이고 금(金)을 뜻한다고 합니다. 청나라가 원래 후금(後金)인 것을 생각해보면, 나라 이름이 왕족 성씨가 된 것입니다.
@NightWalkooer7 ай бұрын
@@humanplusscience4449 오우 감사합니다
@ruvoluble7 ай бұрын
근거없
@제임스홍-h2l7 ай бұрын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라라는 뜻입니다. 애신과 각라에 부여된 의미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왜 애신이 골드라는 의미고 각라가 씨족이란 의미가 밝혀지기 전까진 말이죠!
@NightWalkooer7 ай бұрын
@@제임스홍-h2l 감사합니다 ;)
@goblin-no17 ай бұрын
통합을 시켰구나
@kevinkevinkevin19096 ай бұрын
Koreans ruled the land called China in ancient times.
@타강-w5f6 ай бұрын
현재의 성씨는 그냥 양반이라 생각하고 살면 마음이 편한겁니다
@김춘호-t1v7 ай бұрын
저도 김씨입니다 김수로 김알지 전부 이주민 김유신 김춘추등은 자신들이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김알제의 후손이 작금의 김씨면 흉노계열이라고 보면될듯합니다
@supervisor717 ай бұрын
내 성이 김이박인데 집안에 족보가 없다. 그럼 나의 조상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유추가 가능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