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는 대명동 캠퍼스였을떄가 좋았던거 같아요~..대명동 캠퍼스가 상당히 번화가여서, 동성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부러 친구들과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에서 고기도 먹고, 볼링도 쳤던 기억이 나네요~
@봄봄-j7m2 ай бұрын
마이하욱스~
@승락이-f4r5 ай бұрын
전설의 대학거리 풍경🎉🎉
@waterbird-p4r5 ай бұрын
1985년. 1986년 시대에 이승환 노래 없었는데. 86년이면 구창모 희나리나 85년이면 바위섬. 인생은미완성 같은 노래로 브금해야죠.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던건데 화면은 1980년대인데. 노래는 1990년대가 너무 많음.
@행운의사나이-e9s2 ай бұрын
어렸을때 경북대 정문 밑에 신암 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저때 국민학교 2학년때 학교 담벼락에서 최루탄땜에 물안경끼고 입막고 빼꼼히 이 장면을 친구와 직접 보았지요 그 당시 학교 운동장에는 그 당시 경찰버스 소위 말하는 닭장차라고 했죠 경찰버스가 학교에 주둔하고 있던게 비일비재했죠 학교 운동장에서 식사도하시고 전의경아저씨들 운동장에서 조용할땐 공으로 휴식도 즐기기도 거의 몇년동안 학교다니면서 이런일이 많았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새롬새롬 하네요
@CB-nq7xm5 ай бұрын
80년대 배경인데 흘러나오는 노래는 1992년도 노래
@이용수-z4v5 ай бұрын
그 시대에 저기 있었는데... 젊었던 그때가 아련하게 느껴지네요. 체류탄과 사과탄으로 자욱한 북문... 민주화를 간절히 외쳤는데, 이 나라는 아직도 이 모양이네요.
@jamesdean88522 ай бұрын
최루탄
@눈큰어피치5 ай бұрын
80년대 중반 부터 90년 초반까지 체루탄 막 터졌지..대학교 앞에 시위 하던 풍경 눈이 선하네..당시 난 초딩이었지만 너무 대학생들이 시위가 심해서 매번 엄마한테 물어만 보고..무섭기만 했음 ..그때 참 대학생들이 격렬했지..😅😮체루탄 냄새가 자욱 했던 그때였음..노태우 전두환 정부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시대가 흘러서 강경진압이 마니 사라졌지..그땐 다들 살벌했음..😂😅
@jamesdean88522 ай бұрын
최루탄(O)
@배꼽아래미더덕5 ай бұрын
90년 경북공고 밤에 계명대에서 술마시고 놀다가....
@광야에서-l9r5 ай бұрын
경북대 정문에서 담장 하나 넘으면 대구공고였습니다. 1986년 고3때 취업준비로 바쁜데 데모하는 경북대생들 때문에 최루탄 가스에 공부도 중단하고 일찍 하교하는일도 가끔 있었지요. 창원공단의 대기업에 취직하니 1987년 6.29선언과 함께 봇물처럼 터져나온 민주화 요구와 노조 설립으로 이번에는 창원공단이 전쟁터로 변한적도 있었고 그렇게 또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 이제는 정년을 바라보는 60가까운 나이에 고향인 대구를 바라보면 나라팔아먹어도 보수정당만 찍어주는 암울한 현실이 어쩌면 당시의 대학생 시위는 맞아 대구도 그런적이 있었는데라는 아련한 기억과 함께 안타까움마저 들게 하네요. 가끔 대구에 들르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수도권과 달리 발전이 멈춘 도시. 보이는건 온통 아파트와 또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들. 변변한 대기업 하나 없는데 마치 아파트에 환장한 도시 같습니다. 대구시민 여러분. 경제도 민생도 복지도 정치가 좌우합니다. 제발 좀 투표좀 잘 합시다. 여러분이 찍은 시장. 국회의원,시의원, 구의원들 대구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이대로 10년만 지나면 대구는 노인들만 바글대는 망한 도시가 됩니다. 제발 정신 차립시다.
@westbrook25594 ай бұрын
선배님 투표이야기좀 그만 하십시요. 지금이 군부 독재시절 입니까? 언제까지 그런 얘기로 갈라치기 하실껍니까? 경대북문에서 하숙하던 시절이라 저도 잘 압니다만.... 보수나 민주나 대구가 발전하기엔 이미 시국이 많이 기울었습니다. 경기도에 기업규제 빡시게 들어가지 않는이상 지방소멸은 단군할배도 못 막습니다. 공고 졸업해가 대기업 다닌 586이면 그만 욕심부리고 조용히 인생 2막이나 준비 하이소. 80년대 대충 대기업 다니가 돈 마이 벌었다 아입니까? 예금만해도 이자가 17프로씩 나왔는데 90년대 IMF이후부터 지금까지 고생한 후배들 보기 안부끄럽단 말인교? 정치병좀 버리고 조용히 즐기며 살다 가이소 쫌이따 따라갈테니~
@심연의끝4 ай бұрын
이미 대한민국 자체가 노인들만 바글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님말씀대로 서울 경기권에만 살려하니 진보정권의 부동산 실책 탓에 저출산도 더 심해졌고요. 전 06년생 19살인데 이렇게 나라를 만든 과거 대학생•진보 정치인 분들이 너무나 싫습니다. 진절머리나요.
@sjahn91873 ай бұрын
지방재정도 도시개발로 충당하다 보니 온통 아파트 뿐입니다.
@릭도루3 ай бұрын
창원에서 꿀빠는 공고출신 빡대가리 좌빨이 노도의 가치로 배불러서 하품하는 소리 잘들었습니다. 할배요 마창진에서 노조활동이나 열심히 하면서 기업가들 빨대꼽는 좌빨 인새사소 .. 무식해서 그당시 노동계층간거 이제사 빛보네 대구있었음 성서공단 연봉2600 인생인데 감사하게 생각하고 좌빤짓 적당히 하소
@vanechkapark3 ай бұрын
대구공고 담벼락하고 붙어있던 집에서 하숙했던 경북대 졸업생입니다. 점심 시간이면 대구공고생들이 담을 넘어서 저희 하숙집에서 담배를 피우고 갔었는데 꽁초가 수북했던게 기억납니다. 그 껄렁껄렁한 녀석들 한번은 담배 피우지마라고 뭐라고 했었는데 휴일 지나고 오니 하숙방 살림이 다 털리고 없었던 일도 기억나네요. 아마 저한테 한소리 들었던 녀석들이 보복성으로 한게 아닐까 당시에 추측했었습니다.
@김은정-x6m8s4 ай бұрын
영상에서 전한길선생님 비슷한분 본듯 ㅎㅎㅎ 딱 전한길선생님 학교다닐때네요 경북대 지리학과
@kyoonhwangbo51653 ай бұрын
86년에 계명대 다녔는데.. 귀한 영상입니다.^^
@수지미라클3 ай бұрын
3:10 대구 159는 어느 서 소속인가요~? 저때 1중대와 함께 상황 나가셨군요.
@wowfng29 күн бұрын
북부서
@안명의2 ай бұрын
80년대는 전의경 하구 대학생이랑 체육대회 막걸리 존재하였내요 우리는 박터지게 싸웠는대요 98년10월27입대 01년1월5일전역 서울청2기동대 작전2145 임니다 너가죽던 내가죽던 싸우는 현실 저기 보이는 간이진압복 집에 있음니다
@gtxktx21535 ай бұрын
어릴 때 집이 경대치대 쪽이어서 데모 구경 심심치 않게 했는데 어떤 놈이 코 밑에 치약 바르면 최류탄 쏴도 눈물 콧물 안난다고 해서 한가득 바르고 구경 나갔다가 최류탄 쏘기도 전에 눈물 콧물 났었지
@장부식-g6r5 ай бұрын
와.. 저도 삼덕동! 건강하시고 잘지내세요!!
@소시키권5 ай бұрын
ㅋㅋㅋ
@빈-o6h5o5 ай бұрын
저도 삼덕3가 86부터04년 까지 살았네요
@jamesdean88522 ай бұрын
ㅋㅋㅋㅋ 최루탄 맞고 멋모르고 화장실 가서 세수 했더니 얼굴이 얼마나 따갑던지 ㅋㅋㅋㅋ
@romi47645 ай бұрын
저 당시 대학생들은 다들 어른스럽게 생겼다는거.
@장정화-g9v5 ай бұрын
중학교 집으로가는 버스 안 최루탄 냄새와 더워 길을 차단했어 버스가 빙빙돌아갔어 한시간 넘게 지나 집에 도착한날이 수두룩했다.. 경대북문 55-1번버스
@Eunjungization4 ай бұрын
하…화면에 내가 나오나오는줄 알앗네
@dongwoolee89045 ай бұрын
데모 장면에서 청바지에 무릅보호대 청자캣 입은 백골단 오랜만이네. 지금은 50~60대 아저씨겟네 세월 많이 흘렀네
@박하꽃5 ай бұрын
광주 서울만 운동한줄 안 국민들 전국이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근데 정작 그 혜택은 광주서울에서 운동한 사람만 광주는 그렇다 치고 이해.찬은 왜 민주유공자혜택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네 그때 싸웠던 모든사랑들에게 혜택을줘라 진심궁금함
@Aurora-bm1pv2 ай бұрын
나는 지금도 전경이 서 있는 길거리에서 도망가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 시절 데모를 안 했지만 그걸 지켜본 것만으로도 그 두려움에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