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지금 34]_緣起(연기, 相卽상즉 相依상의) 中道(중도, 相入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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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il Seonwon

Samil Seonwon

Күн бұрын

Пікірлер: 14
@holyf98
@holyf98 9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일체지
@일체지 10 ай бұрын
선생님 법문 감사합니다 🙏🙏🙏
@GC8528GC
@GC8528GC 10 ай бұрын
항상 늘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선생님 법문 감사합니다❤🙏
@현정-i5s
@현정-i5s 10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성법행
@성법행 10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선생님🙏🙏🙏
@자비심-r3n
@자비심-r3n 10 ай бұрын
🙏🙏🙏
@송순옥-s7o
@송순옥-s7o 10 ай бұрын
귀한 법문 감사드립니다.
@반야행-n3z
@반야행-n3z 10 ай бұрын
🙏🙏🙏🪷🪻
@윤등현
@윤등현 10 ай бұрын
법사님 법문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무한감사 올립니다_()_
@user-rq9lb4sp2
@user-rq9lb4sp2 10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오기남古月
@오기남古月 10 ай бұрын
2024년 2월 18일 [영원한 지금 34]_‘연기(상즉 상의) 중도(상입)’ 법문 중에서. (2) 서로 의지해서 있어. 相卽 相依(상즉 상의) 한다고 그래. 서로 대립하는 것 같지만 서로 의지해서 있어. 그래서 하나가 무너지면 나머지도 무너질 수밖에 없어. 이것이 와서 닿으면 이제 여래를 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 금강경에서 어떻게 얘기를 해요? 이 세상 시간과 공간도 어젯밤 꿈속과 같이 이미지야. 그러니 若見諸相非相(약견제상비상)이면, 금강경에 그렇게 되어있잖아요. 만약에 네가 이 시간과 공간의 세상이 실체가 없는 이름이고 이미지일 뿐임을 네가 안다면, 여래에 눈을 뜨게 된다 그랬잖아요. 卽見如來(즉견여래)한다. 그런 거예요. 이 세상이 전부 이름일 뿐이다.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은 여래에 눈을 뜬다는 것야. 그 여래를 조사선에서 어떻게 얘기했어요? “뜰 앞의 잣나무다.” 뜰.. 앞..의.. 잣..나..무..다.. 이름 따라가지 않으면 “뜰.. 앞..의.. 잣..나..무..다..” 이게 생명 아닐까? 이게 있는 그대로의 여래 아닐까? 둘이 아닌 자리이잖아요. 이름으로 구성된 이 세상은 만물로 구성되고 이름일 뿐이야. 그런데 이름이 말할 수 있을까? 나도 이름으로 너도 이름이고 전부 다 이름일 뿐이야. 우리가 아는 나는 이름이야. 우리가 아는 너도 이름이야 이미지일 뿐이야. 그런데도 우리는 여태까지 내가 보고 내가 말하고 내가 듣고 내가 걷고 내가 앉는다고 생각을 해왔어요. 그 나를 내세워 가지고. 그 아는 나는, 이름으로서의 나이지. 그런데 그놈이 무슨, 이름일 뿐인 놈이 어떻게 보고 듣고 앉고 서고 말하고 생각하겠어요? 그러면 卽見如來(즉견여래), 아 내가 아는 나는 이미지였구나. 실재하는 것이 아니였구나. 그림자였구나. 이렇게 보면 여래에 눈을 뜬다고 그래. 그러면 누가 말해요? 누가 봐? 그림자가 보고 그림자가 말할까요? 그러니 그전에 “너는 누구냐?” 그러잖아요. “뜰 앞의 잣나무다.” 이거야. 이거 생명이 드러나는 것 아니에요? 여래가 지금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 생명 아니면 자기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지금 10시 40분이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이미지인 네가 “10시 40분이다.” 이렇게 말을 할까? 생명이 드러나는 소식이죠. “지..금..은.. 10..시..40..분..이..다..” 이것은 생명이에요. 말이 아니라. 말을 따라가면 이름이 되어버리는데, 따라가지 않고 기다려봐. 그게 여래거든. 卽見如來(즉견여래)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렇지? 네가 일체 만물이 실체가 없는 그림자임을 볼 수만 있다면 여래에 눈을 뜬다 그랬어. 그러니까 나도 없고 너도 없어. 그런데 보잖아요.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런데 듣고 앉고 서잖아. 나도 없고 너도 없어. 그림자가 어떻게 보고 듣고 앉고 서고 해? 그때 문득 여래에 눈을 뜨는 거지. “아! 내 본래 얼굴이 여래였구나!” 하고. 그렇게 보면은 영원한 윤회에서 벗어나는 일 아닐까? 이 시간과 공간의 세상이 실재인 줄 알고 나도 거기에 실재이고 너도 거기에 실재인 줄 알았어. 그 영원히 윤회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득 여래에 눈을 떴어. 그러면 윤회에서 벗어나는 일 아닐까? 그렇지? 여래로 거듭나는 것이지. 그런데 세간하고 출세간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어때요? 그렇지만 우리는 이렇게 분별을 하면서 살잖아요. 지금은 2024년이고 작년은 2023년이고 내년은 2025년이다. 이렇게 분별하면서 살잖아요. 그런데 여래에 눈을 떴어. 그 분별하되 분별한 바가 없죠. 거기에 지금 안 잡혀 사니까. 놓여났으니까, 아는 것으로부터 놓여났으니까, 분별하되 분별한 바가 없이 사는 것이지. 그게 이제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지. 그러니까 “너는 누구야?” 조주한테 물었잖아요. “나는 누구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그거예요. 생명을 보여준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이 와 닿으려면, 한 물건도 없다는 것이 와 닿아야 돼. 우리가 아는 것은 이름일 뿐이다. 이름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은 한 물건도 없어.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한 물건도 없는데, “한.. 물..건..도.. 없..다..” 이렇게 말하는 놈이 있잖아요. 그것이 여래라. 如來(여래). 그러니까 이것이 “뜰.. 앞..의.. 잣..나..무..다..” 하는 것이 전 존재가 아닐까? 전 존재이지. 나머지가 없는 전 존재라요. 우리가 우주가 이렇게 광활하고 무한하고 넓은 줄 아는데, “뜰.. 앞..의.. 잣..나..무..다..” 여기에 다 들어있지 않아요? “뜰.. 앞..의.. 잣..나..무..다..” 봐. 여기에는 생명이 거기 있잖아요. 잣나무는 연기하는 모든 개념을 다 품고 있잖아요. 우리가 1에서 1억까지의 숫자를 나열해 놓고, 1 없는 나머지 숫자가 있을 수 없어. 어떤 숫자도 거기에서 빠지면 이 세계는 무너져. 그 서로 의지해서 있는 거라요. 그게 緣起(연기)한다고 그래. 1이 있으려면 2라는 숫자가 거기 있어야 되고 나머지도 다 그렇게 연기하거든. 1 속에는 만까지의 숫자가 들어있지. 동쪽 속에는 동서남북이 들어있듯이. 그러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는 世間(세간)과 出世間(출세간)을 통틀어 몽땅 드러낸 소식이라요. 이 세상은 생각할 때만 나타나는 세상이에요. 생각이 없는데 이 세상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분별을 안 하는데. 본래 동서남북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동서남북이 본래 있을까? 우리가 동서남북이 다 다른데. 그렇죠? 자기가 앉은 위치에 따라서 동서남북이 다르잖아요. 다르다면은 내가 만들어낸 동서남북이야.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공통된 공간 속에서 산다고 여태까지 착각을 해왔는데 보니까 동서남북은 서로 다 달라. 내가 만들어낸 동서남북이지. 그러니까 동서남북은 생각할 때만 나타나는 거예요. 내가 동서남북을 생각하지 않는데 동서남북이 어떻게 생겨나? 그게 내 생각하고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동서남북이라면, 그거야 물론 생각하고 관계없이 존재하지. 그런데 알고 보니까 동서남북이라는 게 우리가 서로 다 달라. 내가 생각할 때만 동서남북이 생기는 거예요. 그렇지 않을까? 그 시간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내가 일흔살이다 스무살이다 하는 것 생각할 때만 일어나는 것 아니에요? 생각할 때만 내가 스무살이 되고 서른살이 되고 그러는 거라요. 생각할 때만 그래. 생각할 때만 나는 스무살 너는 서른살 너는 또 마흔살 이렇게 나누어지지, 생각하지 않으면 시간을 있을 수가 없어. 왜 그래? 시간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과거라는 것이 어디 실재해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실재하는 것은 지금도 아니지. 그렇죠? 내가 만들어내는 시간이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1년이라면 그때부터 1년 2년 3년 4년... 이렇게 했잖아요. 그런 것이 우리가 정해놓으니까 그렇지. 1년이 어디 따로 있어요? 내가 여기가 기원 1년이다 하니까 그 후에 계속 2년 3년이 생기지. 우리가 생각할 때만 이 세상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그거 존재하지 않지. 왜 그래요? 본래 없는 세상이니까. 본래 동서남북도 없고 본래 과거현재미래도 없었어. 그런데 내가 생각하니까 동서남북이 펼쳐지고, 내가 생각하니까 과거현재미래가 열리는 거야. 그 마치 그래요. 꿈꿀 때만 꿈속에 동서남북이 생기잖아요. 꿈을 꾸지 않는데 어떻게 꿈속의 동서남북이 생겨? 그렇죠? 똑같아요. 이 세상도 동서남북이 생기고 과거현재미래가 생기는 것은 내가 생각할 때만 나타나는 세상이라요. 마치 꿈을 꿀 때만 꿈속에 동서남북이 생기듯이. 그 생각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아. 동쪽을 생각하지 않는데 어떻게 동서남북이 생겨? 어제를 생각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일이 생겨? 생각할 때만 어제와 내일이 생기는 거라요. 그런데 그것은 緣起(연기)해. 어제라는 것은 내일 하고 같이 일어나. 우측 하면 좌측이 같이 있듯이, 있다 하면 없다가 같이 있듯이, 혼자서는 있을 수가 없어. 있다라는 말이 혼자서는 있을 수가 없어. 반드시 없다라는 말을 동반하고 있지. 동쪽이다 하는 것은 혼자는 있을 수가 없어 서쪽이라는 것이 동반하고 있지.
@오기남古月
@오기남古月 10 ай бұрын
2024년 2월 18일 [영원한 지금 34]_‘연기(상즉 상의) 중도(상입)’ 법문 중에서 (1) 우리가 아는, 우리가 아는 것은 있는 그대로가 아닌 이름을 아는 것뿐이지. 그것은 동의하시죠? 있는 그대로의 실재는 알 수가 없지. 그런데 이름을 아는 것이지. (죽비를 드시고) 이 실재는 모르잖아요. 그렇지만 죽비라는 이름을 알지. 제 이름이 선재라면, 선재라는 이름을 알지, 이름 넘어는 모르잖아요. 우리가 아는 것은 전부 이름이고 개념이야. 이렇게만 보면 이 공부는 참 쉬워요. 이름. 본래 이름이 없다면 어떨까요? 있는 그대로의 실재는 만약에 이름이 없다면, 그 둘이 아니죠. 나눠질 수가 없지. 이름으로 인해서 나눠지는 거니까. 이름으로 인해서 있다 없다가 나눠지고 동쪽이다 서쪽이다 나눠지고 과거다 미래다 이렇게 나눠지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의 실재는 둘이 아니라고 그래. 석가 가르침의 핵심 아니에요? 둘이 아니다. 둘이 아닌 것은 알 수가 없어. 이름이 없으니까. 그런데 둘이 아닌 것이 이름으로 인해서 쪼개져 버렸어. 그 조각된 만물은 이름일 뿐이지. 있는 그대로의 실재는 둘이 아닌데, 조각이 나버렸으니까, 그 조각난 만물은 실체가 없지. 萬法無自性(만법무자성)이다. 이것만 와서 동의가 된다면 우리 공부는 쉽지.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것은 조각난 이름을 알 뿐이야.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를 뭐라고 그래요? 그것은 言語道斷(언어도단)이라고 그러죠. 말이 닿을 수가 없어. 不可思議(불가사의)라고 그러고. 開口卽錯(개구즉착)이라고 그러지. 입을 열자마자 틀렸다 하잖아요. 그러니까 보조국사도 모를 수만 있으면, 네가 모른다는 것만 깨달으면, 있는 그대로의 실재는 모른다는 것을 네가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견성한 것이다 그러잖아요. 몰라. 있는 그대로는 몰라.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은 이름이고 개념이고 이미지야. 그렇다면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까? 우리가 아는 것이 진실하다고 실재다고 그렇게 믿어왔으니까 아는 것에 늘 당해왔는데, 정말로 있는 그대로는 몰라 진리는 몰라.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은 이름일 뿐이야. 이게 와서 닿으면은 이름으로부터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까? 그게 해탈이라요. 해탈(解脫), 아는 것으로부터 놓여나는 것. 이게 해탈이야.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를 등지고 우리가 아는 것을 진실하다 진리다 이렇게 생각하면, 진리를 등진 것이지. 그렇지? 있는 그대로는 모르면서 참으로 알 수가 없는데, 아는 것으로 진리를 삼으면, 진리를 등지고 사는 것이지. 그러니까 비교하고. 우리가 아는 것 가지고 비교하잖아요. 善惡(선악) 美醜(미추) 잘나고 못난 것 귀하고 천한 것 높고 낮은 것 그것 가지고 비교하잖아요. 이름이고 그림자인데 그것을 실재한다고 보면 비교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것 비교가 갈등을 가져오고 우리 삶을 苦海(고해)를 만든다는 것이지. 우리 공부는 이렇게 간단해. 내가 모를 수만 있으면 그것이 바로 견성이고 그렇다면 아는 것으로부터 놓여나서 아는 것을 이제 쓰면서 살게 돼. 이것을 모를 때는 아는 것에 늘 부림을 당했는데, 이제는 쓸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한 구조라요. 그러면 어때요? 우리가 윤회하고 열반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시작도 없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또 끝도 없는 먼 후일까지 윤회하면서 살 거야. 이것을 모르면, 이 세계가 꿈이 아니라 실재라고 믿으면은, 내가 아는 것이 진실하다고 믿으면 윤회하는 삶을 실재라고 믿으며 살겠지. 그렇지 않을까? 그렇죠? 우리가 아는 세상은 이름일 뿐이거든. 그러니까 어젯밤 꿈꾼 그 세계가 이름이고 개념인 세상이듯이, 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도 아는 세상이라요. 그러니까 꿈하고 똑같지 구조가. 그러니까 윤회는 어떨 때 생길까? 이 세상 시간과 공간이 실재한다고 믿으면 윤회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이 현실에서 꿈으로 들어갔다가 꿈에서 다시 이 현실로 돌아오고 이게 윤회거든. 다 꿈인데. 이 현실도 아는 세상인데. 우리가 아는 세상인데.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는 세상 아니에요? 그러니까 꿈도 우리가 아는 세상 아니야? 그러니까 그 아는 세상을 실재로 아니까 이 세상 저 세상 윤회하면서 여태까지 살아왔지. 끝없는 윤회였을 거야. 그렇지만 이 세상 시간과 공간이 어젯밤의 꿈속같이 이름이고 이미지임을 깨달았어. 이 현실도 우리가 아는 세상일 뿐이야. 이름으로 구성된 세상이라요. 아는 세상이라고 할 때는 이름으로 구성된 세상이지. 이쪽은 동쪽이고 이쪽은 서쪽이고 그 이름으로 구성된 세상 아니에요? 남쪽 북쪽 과거다 미래다 이거 이름으로 구성된 세상이지. 이 동쪽을 생각 안 하는데 동서남북이 생길까? 어떻게 생각해? 동서남북은 이미 있는 것이고 우리는 거기에 따라서 이쪽이 동쪽이다 서쪽이다 하면서 살까? 그렇지 않잖아요. 이쪽이 동쪽이다 하니까 동서남북이 생긴 것 아니야? 본래 없던 것이. 그렇죠? 그 동서남북이 이미지잖아요. 그런데 과거를 생각하니 어젯밤을 생각하니까 내일이 생각이 나오지 않을까? 어제가 없는 내일이 어디 있을까? 과거가 없는 미래가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과거 하니까 미래하고 동시에 일어나지. 생각할 때만 일어나는 세계 아닐까? 동쪽 하니까 동서남북이 일어나듯이, 과거 하니까 미래하고 동반되지. 금년이 2024년 그러니까 작년은 2023년이 되는 것이지. 이름뿐이잖아요. 내년은 2025년이 되고. 만약에 거기서 2024년이 빠진 해가 있을 수 있을까? 다 무너지지 않을까? 서기 1년부터 2024년까지 왔는데, 그중에 하나를 빼버리면 나머지 시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존재할 수가 없을 거예요. 작년 없는 금년이 어디 있어? 금년 없는 내년이 어디 있겠어요? 그 하나가 빠지면은 없어져. 다 나머지가 전부 무너지는 세상이라요. 동쪽이 빠지면 동서남북이 다 동시에 무너지지. 동쪽 없는 동서남북이 어디 있어? 그렇죠? 오늘 없는 내일이 어디 있고 오늘 없는 미래가 어디 있어? 하나가 빠지면 다 무너지는 세상이야. 이 세상은. 그 왜 그래요? 서로 의지해서 있기 때문에. 동쪽은 서쪽에 의지해서 있고 있다는 없다에 의지해서 있고 금년은 작년에 의지해서 있는 거라요.
@보월-c9k
@보월-c9k 10 ай бұры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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