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생 부친이 한의윈 했습니다 그리운 아버님 어머님 지금도 보고 싶네요 참 어릴적이 경제는 어려워도 세상 편하게 맘은 편하게 살았습니다 인정이 많은 저 시대였죠 지금은 국민이 나라 걱정해야 하는 시대 이런 자료 구해주신분들께 많은 감사를 드림니다
@장애란-q3q3 ай бұрын
나 태어나기 10년전 막 6 25후 피난민들이 몰려왔을때겠죠
@pulgacsi2 ай бұрын
한의사엿으면 별로 고생 안햇겟네요 😁
@habukgol Жыл бұрын
누구보다 부산을 잘 알고 계신 운영자님의 노고과 능력을 매번 느낍니다 고향 마산을 떠나와 60여년 가까이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도 접할수 없었던 귀한 자료들을 보니 상전벽해,격세지감이 듭니다~
@불타는제이 Жыл бұрын
저 시대 아버지 어머니 세대 정말 대단하십니다.
@수경-r6v10 ай бұрын
❤부산사랑합니다❤
@erichseo7212 Жыл бұрын
와~ 세병교랑 동래고 자리는 그대로네요. 제가 어릴 때 버스 타고 수영비행장 앞으로 지나가면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고 했음. ㅋㅋㅋ
@bluemountain9374 Жыл бұрын
동남아보다 더 못살던 시절이지요? 저시대를 살아오신 부모님세대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분들 덕에 지금 이렇게나마 행복하게 살수 있는거 같습니다.
@hippie_- Жыл бұрын
어르신들의 노고에 편히 자라왔습니다. 늘 감사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전달해주려 노력하겠습니다.
@Jay-le8xo Жыл бұрын
세상 참 많이 좋아졌네요 지역 역사관에 가야 볼 수 있는 사진을 이렇게 좋은 해설과 함께 집 안에서 볼 수 있다니... 1900 초반대에서 1950년대까지는 아주 크게 변화한거 같지 않은데 1900년 초반 사람이 현재로 시간 여행을 온다면 외계 행성인줄 알겠습니다 100년만에 어마어마한 발전을 했네요
@pulgacsi2 ай бұрын
북한에 태어나지않은걸 천운이라 생각해야합니다😊
@코스모스-m5m Жыл бұрын
부산 반갑습니다😁 영상 잘보겠슴다~
@들림-w7x Жыл бұрын
저는 53년 출생으로 62년에 부산을 떠났는데 고생스레 사시던 윗 세대 분들의 사진들 보니 울컥합니다.
@황화연-h8l Жыл бұрын
저와 53갑장이시네요 서울에서 고 대학을 나와 이제 은퇴하고 쉬고 잇습니다 ㆍ어머니가 30분거리에 계시는데 94세 입니다 ㆍ
@sSs-ob9rr Жыл бұрын
@@황화연-h8l 70나이되도록 엄마가 살아있는건 행복아님? 난 19살떄 돌아가심
@麤驫鑫 Жыл бұрын
62년에 부산 떠나 서울로 갔거나 미국 이민가셨나요
@꽃동네-g6d9 ай бұрын
😢😢😢😢😢😢😢😢😢😢😢
@김정수-j8i3 ай бұрын
@@sSs-ob9rr 새기가 어디서 반말질 이고
@jyj3242 Жыл бұрын
좋은영상이네요 화재만 안났어도 부산역도 서울역처럼 멋진 근대역을 남아있을수도 있을거같다는생각이들어요 또한 625를 겪었어도 서울처럼 전쟁참화에 휩쓸리지않아서 그런지 초토화되지않고 그래도 남아있는 건물들이 있어 보기좋네요
@이상-h3r Жыл бұрын
5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6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눈에익은 사진들도 제법 보이네요...
@yunsikjeong4246 Жыл бұрын
60년쯤 전에, 아버지와 해수욕장을 갔습니다. 광안리와 해운대 해수욕장 말고 수영해수욕장이 있었는데, 그곳이 어딘지 늘 궁금했어요. 오늘 영상을 보니 수영해수욕장이 어딘지 짐작이 가네요. 감사하게 잘 봤습니다.
@zziksa Жыл бұрын
귀한사진 잘 보고갑니다 ^^
@pdxmarinaje Жыл бұрын
아~ 내고향의 옛모습.....ㅠㅠ 너무 좋네요...구독 좋아요~ !!!
@pulgacsi2 ай бұрын
그래요 내 고향 부산
@sunshinek551 Жыл бұрын
불과 70년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이만큼 잘 살게 고생하신 우리들 아버지 세대에게 감사드립니다.
@user-Griezman Жыл бұрын
미국이 도와준거지 미국 도움 없었으면 현재도 베트남 수준일거예요
@colt7057 Жыл бұрын
@@user-Griezman 미국이 도와준 나라가 지구상 절반은 되는데 성공한 나라는 한국과 이스라엘이 유이함. 저는 미국+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공로로 봄. 거기에 삼성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박정희의 기반을 뛰어 넘었고
@그러하면그러하리 Жыл бұрын
@@user-Griezman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전 세계에 있는 원조를 받는 나라가 우리 나라 만큼 잘 사는 나라가 몇이나 있나요? 원조 한 걸 부정하는 게 아니고 그 만큼 우리 국민성이 부지런하기 때문에 이루어 낸 전 세계에서 전무후무 한 나라가 되었다는 걸 인정을 못하는 못난 인간이 되었나요?
@로니-b6z Жыл бұрын
@@user-Griezman그래따지면 미국이 도와준 국가들 나머지들은 뭐하나요? 도와준것도 맞지만 국민성없이는 열심히 살지도 않습니다 한국인만큼 열심히 사는민족도 많지 않습니다
@이경구이경구 Жыл бұрын
새마을운동 덕분임
@이정희-l3g4g Жыл бұрын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부산진시장서 포목점하셨는데 보고싶어 눈물이 날라하네😢
@pulgacsi2 ай бұрын
부산진시장 포목점 유명하지요😁
@사촌간볼빨기-l1m9 ай бұрын
저시절은 낭만이 있었지 저때로 돌아가고싶다ㅠㅠ
@junsoh8204 Жыл бұрын
피난민들이 영도다리를 만남의 장소로 약속했었군요 어쩐지 어릴 때 어른들이 농담으로 애들한테 너는 너희 엄마가 낳은게 아니고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온거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피난와서 고아가 된 아이들이 영도다리에 많았었겠군요
@jsj0113k Жыл бұрын
여러 나라 군인 여러분들 정말 감사 합니다.!!!
@김씨네큰아들 Жыл бұрын
적기라는 명칭을 오랜만에 이 영상에서 듣네요. 우암동, 감만동 근처에 사셨던 고모할머니가 본가로 오실때면 적기 고모할머니 오셨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셨지요.
@pulgacsi2 ай бұрын
우암동 적기 우리친구 백순남 ㅎㅎ
@덱도이 Жыл бұрын
우리 어머이 어릴 적 영도살때 미군부대 앞 지날 댸 미군들이 사투리로 "자야 어데가노" 그랬다는데...영도 초등학교 자리가 주둔지 였네요
@pulgacsi2 ай бұрын
😊
@정용진-k1h6 күн бұрын
어릴적 추억~ 가슴속에 선명한데 이렇게 옛 사진을 보네요~ 감사합니다
@로반-f6o Жыл бұрын
전 이 시대에 살지 않았는데 왜 요즘 이런 옛 모습을 보면서 아련해지는 걸까요😢
@Junmihwa Жыл бұрын
아마도~ 전생에서 살아서...ㅎ
@DEADSTAR-f9z Жыл бұрын
@@Junmihwa ㅎㅎ 저럴지도 모르겠네요. 저 시대 사람들 수명도 짧고 고생도 엄청했을 겁니다.
@Thomas-dq4cn5 ай бұрын
그건 당신의 영혼이 맑아서일 겁니다
@pulgacsi2 ай бұрын
@@DEADSTAR-f9z우리 어릴때고생햇죠 밥이 없어서 하루 한끼도 못 먹고 고구마로 한끼
@moon6328 Жыл бұрын
마지막 사진에 50년 수영비행장은 지금은 센텀시티로 바뀌었지요. 2020년 마린시티 자리는 매립지 입니다.
@노어도-m8y Жыл бұрын
마린시티매립지 운전연습 방파제에 낚시도많니햇죠 그리워라 그시절
@w다경 Жыл бұрын
고맙게 잘보고 갑니다~♡♡♡
@따오기-x7w Жыл бұрын
조방옆에 화랑 염직도 었었지 성남초등 다닐때 진시장 가기전에 닭집들이 많아서 난 그앞에 지날때가 죽기보다 싫었어 내가 어릴때 살던집은 없어지고 지금은 현대백화점 주차장이 되었지 구름다리 건너서 범내골 쥐불놀이 따라간 기억도 나고 요번에 부산가니 다 바꿨데요 아~다시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수영비행장..승당부락.. 아름다웠어요.. 장산에서 흘러오는 냇물이 흘렀고 동네 가운덴 솔밭이 있었고 하이얀 백사장 옆엔 갯바위와 자그마한 돌섬들~ 아름다운 갯마을 백사장 건너엔 맑은 수영강이 흘러내려 어족자원이 풍성했던 풍요로운 내가 자란 이쁜 갯마을~~승당마을, 지금 가보니 흉칙스런 시멘트 요새로~~ㅠㅠ
@박증선-j7m Жыл бұрын
그 때 잘 개발했어야 했는데..ㅠ
@Wolk_Ly5 ай бұрын
진짜 귀한 자료네여...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사진 볼수 있어서...
@jalnaoneunbolpen Жыл бұрын
산은 그대로.... 산에 건물없이 산만 보이는것 보니 세월이 느껴지네요.. 귀한 영상 잘 봤습니다.
@김하진-r3p6 ай бұрын
42년생인데 옛 부산역을 보니 감해가 새롭습 닏
@김채민-n2i3 ай бұрын
대한여지도님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몰랐던 사실도 알고 좋았어요. 귀한 영상 잘 봤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제가 항상 응원할게요 아자아자 화이팅 하세요 ~~~^^ㅎㅎ❤😊
@구름과바다-s6g2 ай бұрын
부산이 엄청 넓어 보인다 눈이 시원하네 물도 깨끗하고 뭔가 모르게 빽빽한거 보단 낫다
@박태억-y5d Жыл бұрын
부산토박이인데 모든설명이 정확 하네요 놀랍습니다 적기뱃머리라고 부르던곳이 감만동 쪽인데 일본인들이 아까사키라고 칭하였던게 적기가 된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자영구-h2z9 ай бұрын
아울러서, 적기뿐만이아니고 거제동 부근인, 양정로타리에서 정묘사 중간지점의 버스정류소가 "하마정"인데 본인이 부산에서 생활할적에 "하마정" 이라는, 지명이 특이하다고생각하였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 정류소 이름도, 일본식 한자어 같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행정구역 이름에는, "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있고 일본사람들은 "쵸"라고 읽고있지요.
@자영구-h2z9 ай бұрын
그리고, 지금은 부산시청 및 서면일대가, 부산의 중심지이지만 1970년대, 1980년대까지만하더라도 남포동, 광복동 일대가 중심지였지요. 부산시의 골격, 뼈대는 일제시대때 일본사람들이 부산 시가지를만들었죠. 과거, TBC방송이있었던 중앙동에서부터 부산진역까지는 지금의 모습이아니고 바닷물이었습니다. 그 매립공사는 영주동일대의 산을 깎아 그 바닷물을 메꾸어서, 남포동일대와 지금의 부산역을거쳐서 서면까지의 간선도로가 형성될수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산은 일본사람들에의해서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박태억-y5d9 ай бұрын
@@자영구-h2z 아 그건 아닙니다 동래정씨 문중땅인 그곳에 하마비가 있었는데 여기서부터는 말에서 내려서 가라는 표식이었슥니다 임진왜란 때 왜장이 그냥 말타고지나가다 떨어졌다는 얘기가 전해오죠 일본어로 쵸 라고발음되는 한자 정과 하마정의 정은 한자가 다릅니다
@pulgacsi2 ай бұрын
@아 그런가요? 하마정 잇엇지요 양정 하마정 자영구-h2z
@pulgacsi2 ай бұрын
@@자영구-h2z근대화는 거의 일본이 햇죠
@benhurTVnBike Жыл бұрын
귀한 영상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1-o8o Жыл бұрын
국민학교 시절 수영 해수욕장에서 물놀이 하던ㅈ기억.중학교땐 수영 해수욕장 주변에 단체로 체육대회도 했던거 같고. 갓 입사했던 80년대 초중반시절 토목 공사후 잔토를 지금의 해운대 대우 아파트 부지에갖다 붓고는 그 부지에 대우마리나APT 탄생. 고교 재학 시절에도ㅈ수영 비행장이 있었고 센텀 부지의 공군부대는 상당히 최근까지 있다가 옮긴 거 같음.
@혜학-t7d8 күн бұрын
저런나라를 이렇게 잘 살게 한 분이 누굴까요? 위대한 박 정희 대통령입니다.
@영옥김-i1o Жыл бұрын
초량에 살았고 3부두에서 석필 훔쳐서 땅바닥에 그리고 놀았던 시절 부산역 건너는 텍사스촌 한번씩 떼지어 미군과 춤추는 아가씨들 모습 훔쳐 보러 다녔지요 어릴 때 추억 새삼 떠오릅니다 하야리야부대에서 엄마가 트럭 빌려 미군과 장작거래했다 하는 얘길 들었는데 지난 세윌 그립네요 오래된 영상감사합니다
@pulgacsi2 ай бұрын
초량에 아침에 학교간다고 나가면 술집여자들이 부시시하게 하고 담배피는 모습봣지요
@스틱엠 Жыл бұрын
할머니 할아버지들 정말 고맙습니다..
@행복의소리-d2d6 күн бұрын
옛추억이 새록새록하네요
@dandyracer21537 күн бұрын
6.25전란의 피해를 안본 제2의 도시라서 그런지 서울보다도 평화롭고 발전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피난민촌은 제외하고...
@tr2550 Жыл бұрын
81년생인데 어릴적 우암동 집에갈때 택시타면 항상 아버지가 적기 로 가주세요 했는데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적기' 요즘은 아예 안쓰죠 ㅎㅎ
@노어도-m8y Жыл бұрын
51번버스종점이 적기뱃머리엿죠 버스도많앗구요
@pulgacsi2 ай бұрын
@@노어도-m8y51번요? 부산대학 좌석버스
@이찬구-w2t3 күн бұрын
전 지금도 적기라고 합니다 😅
@장우유-i7v Жыл бұрын
영도국민학교 76회 졸업생입니다. 그때가 그립네요
@y2kwar1 Жыл бұрын
와.. 감만동 동항초등학교 관사 사진은 졸업생이라 그런지 더 신기합니다.
@이찬구-w2t3 күн бұрын
귀한자료 입니다 잘 보관 하시길,,,
@사랑은영원히-s1n Жыл бұрын
역사적인 사진들, 감동
@이동철-j9u Жыл бұрын
그리운 부산. 풍광이네요~ 저는 전포동에서 20년 살았습니다
@김영대-s8y Жыл бұрын
78년도 감만동에서 하숙하며 영주동까지 직장생활 하던시절 ... 콩나물시루 버스 예쁜안내양 "오라이" 하며 외치던 생각도 나고 고단했지만 그시절 그립다
@pulgacsi2 ай бұрын
콩나물버스 안내양이 꾹꾹 밀어넣던...
@d.pierce.6820 Жыл бұрын
well done!
@블루-e8g Жыл бұрын
열심히 사셨습니다. 선조어르신들 잊지 않겠습니다.
@록리-w4c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너무 아름다운 나라였네요..
@whisperer1705 Жыл бұрын
간판과 건축 외형이 진짜 세계 최악 디자인임
@MS-kt9ex Жыл бұрын
?
@fettyvxgf Жыл бұрын
최고의 아름다운곳 부산
@aotonatsu4045 Жыл бұрын
저게 아름답다고? 눈이 어떻게 된거.. 아..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겠습니다
@여행-s4b Жыл бұрын
@@aotonatsu4045 빨리 가라이~~~~
@busan-j2x4 ай бұрын
저 시대의 주인공은 벌써 떠났고 변화된 부산 지금의 우리가 현재의 주인공이네요
@노어도-m8y4 ай бұрын
@@busan-j2x 우리가 부산을지킵시다..4백만부산문턱까지갓엇는데...아..그이후인구감소급격할때 부산을지키기위해 50년넘게살고잇지만...아..그래도힘을냅시다..좋아질겁니다.
@4ever20248 ай бұрын
80년도에 강동초등학교 다녔는데 지금 벡스코쯤 자리에 아파트 한 동이 있었고 쓰레기가 많았죠 거기서 고동을 잡고 그랬는데....수영강에 백사장이 있었군요 그 당시 수영강이 있었고 그 옆에 83년도에 교황이 온 수영비행기장
@하원태-o8r Жыл бұрын
약 32년전만해도 기찻길 옆으로 시금치밭이 널린 비행장이라 불린 곳이었죠. 운전면허 따고 아버지께서 도로연수 해주시곤했던 기억이 나네요.
@user-mf5xb5sz2y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임용일-r2v Жыл бұрын
보수천에서 물고기잡던 기억 새록새록
@크루세니크 Жыл бұрын
아이러니 한것이 6.25때 낙동강 전선까지 밀렷을때 버티고 인천상륙까지 가능햇던건 미국 보급력이엇음 게다가 일본에서 오는 군수물자 보급률이 장난아니엇다고 함 지금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도 미국이 지원하는 군수 보급력때문에 버틴것이듯 미국은 전시에 물량공세가 스타로 치면 시작하자마자 헤처리가 1:10 비율로 배가 많음
@wjryu5035 Жыл бұрын
아쉽네요 과거 사진 보여주고 난후 현재 시점에서같은 위치 찾아 사진 찍어보여주면 대박일듯 싶네요
@이중권-u4w Жыл бұрын
15육군병원은 밀양에 있었고 미나가이는 5육군병원 망미동 3육군병원 조방은 839부대 4부두 55보급창 용두산공원 해병대사령부 주둔
@mvsvhitc Жыл бұрын
저의 외가가 있던 우암동 적기의 기원을 알게되서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bycgam Жыл бұрын
해방후에도 아까사끼라고 했고 감만동을 가마이라고 하였고 그래서 아까사끼가 적기인줄 김일성의남침전쟁이후에 이북에서 피난민들이 많이 와 살아서 그때 부터 적기라고 많이통용된겄 같음.
@덱도이 Жыл бұрын
왜정때 부터 생긴 일본식 명칭이에요 피란민하고 관계없습니다
@곽종윤-u2v Жыл бұрын
붉을 적 아까는 일본어 아까징끼(옥도징끼)붉은색~소독제(요오드액), 1952년생,😅,
@엘시티-l1l Жыл бұрын
12:36 주점간판이 Duck in and maddle out 무슨뜻일까요 ㅋㅋㅋ
@피터-l9p Жыл бұрын
나도 처음에 maddle out으로 읽었는데 다시 보니 waddle out이군요. Duck in and Waddle out을 chat GPT에 돌려보니 3가지 정도 해석이 나옵니다. 문자 그대로 뒤뚱뒤뚱 오리걸음을 묘사, 은유적 해석으로는 뭔가를 피하기 위해 몸을 숙인 것처럼 뒤뚱뒤뚱, 그리고 관용적 해석으로 어떤 장소나 상황에서 잠깐 들어갔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떠나는 것을 의미, 그러니까 술집상호로는 Duck in and Waddle out'는 장난스럽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상호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여러가지 해석을 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렇거나 나는 내 멋대로 해석한다면 어슬렁거리며 술집에 들어갔다가 뒤뚱거리며 나오는 기분좋은 술집이라는 뜻으로 이걸 다시 비틀어 말한다면, 이 술집 주인 주막집 아낙네는 방방한 엉덩이 씰룩거리는(뒤뚱거리는) 그런 유의 상상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는, 아니면 취객의 입장에서 Duck in and Waddle out! 한번 가보고 싶은 Duck in and Waddle out 입니다. 피난민으로서 나도 육이오와 젊은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답니다.
@엘시티-l1l Жыл бұрын
@@피터-l9p 아하 Waddle out 이었군요.
@COMUSE Жыл бұрын
진짜 대박 자료네요
@vQQv초심 Жыл бұрын
저시대에 어른들 다돌아가시고 없을꺼 같은데 어른들이 어려운 생활속에서 경제 활동을 하여 이나라가 발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user-mf2pm5sl6z Sorry, I don't understand Japanese. So, please speak English and Korean. Ok?
@user-mf2pm5sl6z Жыл бұрын
@@조성현-v6k 韓国語に変換出来ませんか?
@조성현-v6k Жыл бұрын
@@user-mf2pm5sl6z yes
@조성현-v6k Жыл бұрын
@@user-mf2pm5sl6z But, Ican translate your mention by using papago. So, you don't have to write English.
@김정옥-f2j Жыл бұрын
"영도다리에서 만나자" " 초량동 화재" ""하야리아 부대 화재 " 재첩을 채취하던 모습 감사합니다
@Junmihwa Жыл бұрын
버스에 적기라고 적혀있었는데 지금은 적기란 명칭이 없나봐요 구포의 옛 경치가 나오면 정말 좋겠다
@덱도이 Жыл бұрын
아직 우암 감만동 일대 적기(아카사키)라 부르는 분 있습니다
@곽종윤-u2v Жыл бұрын
부산공고아래길경 유 마을버스에는 지금도적기뱃머리 행선지가표기되어 있습니다 ㅎ,😅,
@poksunyoon2342 Жыл бұрын
저도 부산출생 58녀도 태어나서 17까지 살다 미국 왔네요 적기 어려서 오빠랑 많이 갔엇는데 지금 적기라 하지 않더라구요 자성대도 바로 학교 앞이라 자주가고 조방앞도 올라가서 놀았는데
@행복의소리-d2d6 күн бұрын
요즘은 저기보다는감만우암동
@storyarchive33 Жыл бұрын
0:41 고향가는 장면이네
@BUSAN_SOOYA5 ай бұрын
와~~~~~~~~~~😮👍
@HKPark-kr5ud Жыл бұрын
예전엔 부산이 사람도 많고 살기 좋았지요.
@fettyvxgf Жыл бұрын
지금도 전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이다🎉
@노어도-m8y Жыл бұрын
진짜바글바글햇죠.80년대가 부산전성기엿죠
@노어도-m8y Жыл бұрын
@@fettyvxgf그렇죠 인프라만좋으면 1등도시가될텐데
@butterfly324810 ай бұрын
지금도 살기좋아요
@이찬구-w2t3 күн бұрын
제가 알기로는 450만 찍었죠
@ddiyoyong Жыл бұрын
우암동에서 태어나 감만동에서 유년시절 보냈는데..적기뱃머리의 뜻을 이제 알았네요
@pulgacsi Жыл бұрын
저는 55년생 부산초량 ㅎ 62년도 국민학교 1학년
@신성일-u6g5 ай бұрын
어느 국민학교 인지요 초량 아니면 중앙?
@장애란-q3q3 ай бұрын
@@신성일-u6g동일도 있었어요
@신성일-u6g2 ай бұрын
@@pulgacsi 하하 같은 년도에 학교를 다니셨네요
@신성일-u6g2 ай бұрын
저는 중앙국민학교입니다
@신성일-u6g2 ай бұрын
@@장애란-q3q 동일은 젛
@이성희-p9j Жыл бұрын
요즘 택시 기사님들은 수비삼거리라고 하면 거의다 모르시던구요.
@노어도-m8y Жыл бұрын
아그래요 올림픽교차로로바꼇죠
@독도사랑-d4m Жыл бұрын
센텀시티가 들어서며 벡스코전시장이 예전에 비행장동남쪽지역에 위치한 대한선주CY 앞자리가 수비삼거리였고 수영옛구교를 지나 국보수영CY남쪽편은 바다를 매립하고 난뒤 요트경기장으로 길이 난겁니다. 그러니 대충 90년초반에 택시종사자격증을 취득한분들은 알겁니다.
@dhkim1106 Жыл бұрын
수영비행장.. 울집 바로 뒤였는데 그땐 허허벌판이었음
@다니에루4 ай бұрын
3:50 완월동 이라는 동네는 행정상 명칭이 아닌데 완월동이라고 해서 깜놀 했어요 ㅎ
@이수덕-j7j3 ай бұрын
충무동
@이수일-z1m2 ай бұрын
원래 완월동이 행정명칭이었는데 그 유흥거리만을 떠올리는 상황이 되어서 동네사람들이 민원넣어서 충무동 2가가 되었다고~~~~
@kor22-24 Жыл бұрын
💜
@koreangeographic3860 Жыл бұрын
부산에 관한 영상 더 보기 부산역 120년의 변화 kzbin.info/www/bejne/i3mxanWLpJaqjtk 120년전 부산 동래읍성과 온천 kzbin.info/www/bejne/hZ2skpyQZp2NsLs 1910년대 부산 원도심 kzbin.info/www/bejne/n5yvi56Df8eisM0 1946년 부산 kzbin.info/www/bejne/iKDYmHmlidOaj7c 1952년 부산 시장 구경 kzbin.info/www/bejne/ooK5aJupeLiSptk 1977년 여름 부산 kzbin.info/www/bejne/l4q0Z4mlodeGl9E
@독도사랑-d4m Жыл бұрын
하나 확인부탁드립니다. 저는 부산토박이로 중구 대청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35년을 살았읍니다. 질문: 영선고개를 지도로 얘기하는데 동광동에서 영주동가는 길이 40계단위에서 봉래국민학교로 가는길로 설명하는데 그곳이 아니고 국제시장에서 남일국민학교 뒤쪽으로 복병산(옛.부산기상대)으로 올라가는 고개길을 넘어 영주동 판자촌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영선고개라 불리어졌읍니다. 택시를 타서 메리놀병원가자고 하면 영선고개에 있었읍니다. 확인부탁드립니다. 😊😊
@김동욱-g4p Жыл бұрын
딩동댕 ㅎㅎ
@노어도-m8y Жыл бұрын
대청동이면 찐부산사람이시네요 저는2살때부산에온사람이라 원도심출신의부산사람신기라네요
@jmhirayama4 ай бұрын
@@노어도-m8y글세요.. 외가집이 대청동이였는데 이북출신이였고 내가 아는 통계에 부산원주민비률이 8프로가 안됩니다 전쟁전엔 30만이 안됐던걸로 기억합니다
@장애란-q3q3 ай бұрын
저는 62년생이에여 거기 영주동고개 아닌가요 옛날에 점집이 많았어여
@독도사랑-d4m3 ай бұрын
@@장애란-q3q 반갑습니다! 말씀하신곳은 지금의 코모도호텔앞에서 중구청으로 길을 얘기하시는것 같읍니다.
@Jeong-eun Жыл бұрын
이거 개인이 운영하는 채널인가요. 아님 박물관에서 운영하나요.
@yoyokore6989 Жыл бұрын
남치가 지금같이 변할줄은...그시절 그립네요
@이해연-m3x Жыл бұрын
😊
@잔혹사-i4y8 күн бұрын
없이 살아도 이때가 그립네
@user-kor1970 Жыл бұрын
적기뜻 소름 ㅠ 적기 적기 해서 깃발이름인줄. 감사합니다.
@이수덕-j7j3 ай бұрын
아까사끼 라고도했어요.홍등가.
@user-kor19703 ай бұрын
@@이수덕-j7j 감사합니다
@리떡-b7s3 ай бұрын
내가어릴때 삐대던동네 참그립구나 내나이 어언 팔십이 다됐네.!
@장애란-q3q3 ай бұрын
건강하세요
@user-tp2sx5it3i Жыл бұрын
대마도에서조차 매일같이 포격 소리가 들리던 시절이었으니...
@hhducho88185 ай бұрын
50년 생이고 3살때 대역전 화재로 중앙동 집도 불 탔고, 66년 서울로, 동광국민 학교는 없어져도
@장애란-q3q3 ай бұрын
저희어머니 동광국민학교 선생님이셨어요 1962년 저 낳았을때
@Your_Face00 Жыл бұрын
그와중 첫번째 음악 뭐였더라..
@이경오-k2v Жыл бұрын
감사 합니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북한 이나 종공 군에게는 절대 넘겨줄 수가 없습니다,,
@박건희-z5d3 ай бұрын
이런 어르신들의 고생과 발전시킴을 외면한채 노인 때문에 지하철 적자래요. 노인때문에 전철이 한번더 오는것도 아니고 어차피 시간때에 지나는것 타는데말이죠. 젊은이들 한것있으면 내놔봐요. 배불리먹고 공부하고 컴퓨터나 만지작 거리고 산업전선에는 대학교 나왔네하고 부모님 등파먹을줄은 알아도 산업전선에도 안나가고 산업일꾼들은 외국노동자 사다쓰고 말이됩니까
@박복순-i9h11 күн бұрын
전설의고향이 아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 친구들은 까만 고무신한짝 흰고무신 짝짝이를 신고왔던 현실! 배가 고파 학교옆 도랑물을 마시는 친구들! 지금은 대궐같은 Apt에 외제 벤즈에..; 젊은이들아! 부모들은 굶어 허리띠 졸라매고 너희들을 박사학위까지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까지 보내어 지금의 기적을 만들어 낸것 현실은 그런 부모들을 쫒아내고 본척 만척 너희들만 호화로운 생활! 벌 받을거야 에라이 ^-^
@김하진-r3p8 ай бұрын
참어려운 시절에 그림 임니다 역전대화제 6,25전장이터저 판자촌으로 가득했던 시절 역전 대화제 미나가이 백화점 옆에 부산시청
@mingeon81 Жыл бұрын
대부분 집에 구조가 일본 집들이네요 저때의 푸른하늘이 참보기좋네요
@TV-pg6gc Жыл бұрын
산에 나무가 없다는게 이채롭지요...산림녹화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장려하면서 지금처럼 조성되었고요 북한 산이 지금 저러합니다
@박건희-z5d3 ай бұрын
맞아요. 우리 초등학교때 민둥산 없애기위해 박정희 대통령 나무심기에 동참했어지요.
@nitroglycerin-d2g Жыл бұрын
전쟁 때 태어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이가 적은 건 아니다. 다만, 가끔......전후의 시대에 살아가는 꿈을 꾼다. 아주 암울했던 시대를...... 가로등도 없고, 건물도 별로 없고, 길은 험하고...... 그냥 꿈이려니 한다. 개꿈은 아니겠지......
@ceosealemon Жыл бұрын
이 당시 중졸 면서기들 고급문서 이해율이 현재의 대졸 보다 높았다. 한자를 알고 모르고 차이일까?
@pittasdfasdf Жыл бұрын
그걸 니가 어떻게암?
@Bowden309 Жыл бұрын
한자그딴거 내가 외알아야대? 난 영어 fluent하게하고 프랑스어도 할줄일기떼문애 한자그딴 짜앙게언어 안배운다 꼬부랑꼬부랑거려서 쓰잘데기업는거 오ㅔ베움?
@Bowden309 Жыл бұрын
꼬우먼 맞짱뜨던가
@dawnb99 Жыл бұрын
@@Bowden309 왜^^
@grant70000 Жыл бұрын
@@Bowden309 한국말의 상당수가 한자어로 되어있어서 한자를 모르면 어휘력의 부족이 심각해진다. 한국말에서 한자어로 된 단어들 다 빼고 한국말 한번 구사해봐라. 얼마나 어색해지는지 알게 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