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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애욱 [50] - 황성 옛터 (1928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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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욱 애창곡

박애욱 애창곡

Жыл бұрын

한국 최초의 가요 황성옛터
이응호 작사, 전수린 작곡, 이애리수 노래 황성의 적
느린 3박자의 리듬에 단음계로 작곡된 한국 최초의 가요곡입니다.
희망가(1921년), 윤심덕의 사의찬미(1926) 등 초창기 대중가요는 대부분 일본곡이나 유럽곡을 개사한 것이지만 황성옛터는 한국인이 작사 작곡한 첫 대중가요입니다.
1932년 최초의 취입레코드 라벨에 인쇄되었던 곡명은 황성의 적(跡)이었습니다. 경북 영천출신의 시인 왕평(王平)이 노랫말을 짓고,개성출신의 작곡가 전수린(全壽麟)이 곡을 붙이고, 배우가수 이애리수(李愛利秀)가 애잔하게 부른
황성옛터’는 지금도 사랑받는 민족가요입니다.
전수린(全壽麟) 작곡, 왕평(王平) 작사. 1928년 작.
이 곡은 당시 이들이 있던 순회극단 연극사(硏劇舍)가 개성공연을 하고 있을 때 작곡된 것으로 폐허가 된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滿月臺)를 찾아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작곡하였습니다.
서울 단성사에서 이애리수가 이 노래를 부르자 관중들은 열광했고, 노래는 순식간에 장안에 퍼져나갔습니다. 당시 18세였던 이씨는 단성사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나라 잃은 설움에 복받쳐 울음을 참지 못했고,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일제 순사들은 공연을 중단시켰고, 공연 관계자들은 경찰서로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일경(日警)은 중지하라! 악을 썼지만, 32년도 ‘황성옛터’는 레코드에 담겨 전국적으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못 이루어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나는 가리로다 끝이없이 이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이도
아 괴로운 이 심사를 가슴속 깊이 안고
이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작사자 왕평은 본명이 이응호이며,예명은 왕평청해 그리고 편월 이렇게 세개의 예명으로 활동을 해왔으며, 그 중에서 왕평이란 예명을 많이 사용했습니다.그리고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천이며, 영천에 그가 작사한 황성옛터의 노래비가 있습니다. 왕 평은 당시에 22세의 나이로 연극각본도 쓰고 연기도 잘하며 또한 연출도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인데 그런 그가 30대에 요절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중가요로는 제1호로 일제에 저항한 가사를 쓴 그 작가가 금초해 줄 후손도 없이 묻혀 있으며, 또한 그의 무덤에 잡초가 무성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인생이 무상하단 말인가요. 참으로 가슴이 저려옴을 느낍니다.
온 국민의 가슴을 촉촉히 적신 이 노래는 또 다른 사연도 있습니다. 바로 작곡가 전수린의 삶입니다. 본명이 수남인 그는 어려서부터 개성 호수돈여학교 교장이었던 선교사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12살 때부터는 작곡을 연습하기 시작했으며 송도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와서 작곡가 홍난파가 경영했던 음악학원 연악회에 들어가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웠습니다. 특히 그는 1925년에는 한국 최초로 코리안 재즈 밴드를 만들었고, 1927년 방송이 시작되면서부터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반주를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황성옛터를 작곡한 이후, 50여 년 동안 2000여 곡의 가요를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생활이 어려워 임종 직전까지도 동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피아노 레슨을 하며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수 이애리수는 본명이 이보전이며,
그녀도 전수린과 같이 개성출신입니다.
그는 9세의 어린나이로 극단에 혜성처럼 나타났다고 합니다.이애리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배우로서 연기력이 뛰어나며, 총명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단성사에서 공연을 하던 중 막간가수로 무대에 나선 이애리수가 이 노래를 불렀는데, 이애리수는 망국의 설움을 이 노래에 담아 부르다가 솟구치는 오열을 참지 못해 결국 노래를 중단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관객들은 재청을 외치며 박수를 쳤고, 이 애리수는 다시 울며 노래를 마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녀는인기를 한몸에 차지하며, 당시에 레코드판을 5만여 장이 팔리는 조선가요사 최고의 판매실적을 올리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가수가 됩니다.
아무튼 황성옛터는 우리나라 가요사에 제1호로 인기를 얻은 국민 가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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