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역사를 알리고 보존하는 이런 다큐가 많이 나왔음 좋겠다. 이런게 지역 방송국의 사명 아니겠는가~
@현철이-y4e2 жыл бұрын
80년대 어렸을적 잠시 살았던 장성 내어렸을적 추억이 숨쉬는그곳 어느 여름날 초등학교앞 예배당 언덕을 올라가며 듣던 매미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그때는 그언덕이 왜그리 올라가기 힘들었는지 내가 힘들고지칠때 생각나는 그곳 못가본지 10년이지난듯 이번주말엔 가봐야겠다 옛추억을 떠올리며 한잔하고 돌아오는 내모습도 좋을거같다
@별빛동네3 жыл бұрын
태백에 업무 찰장 갔을때 봤던 아파트.. 매우 인상 깊었는데.. 건물의 마지막을 장례식을 치뤄주는 모습에서 집에대한 추억과 애정이 깊음을 느낍니다.
@야광-j4q2 жыл бұрын
어릴적 홀아비 자식이던 저를 자신의 딸과 함께 씻겨 주시던 어머님도 계시고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도 어느새 학교 축구선생님이 되다니... 어머님 이제와서 감사했다는 말을 전해드립니다. 건강하세요 장성국민학교 55회 졸업생 한광열 입니다.
@이은수-r5f3 жыл бұрын
우리아버지 광부를 너무나사랑하셨던...석공함백광업소 이목갱!! 막장에서 일할때 너무 좋으셨다던..자식인저는 상상이안됩니다. .그 열악한환경에서...아버지 지금은 하늘의별이되셨지만 항상 존경하고 사랑합니다..편히쉬고계셔요💞 아버지생각에 눈물이.... 석공태백장성ㆍ도계광업소는 폐광하지마시길...
@ordinary36523 жыл бұрын
👍 멋집니다!
@돌산유격대 Жыл бұрын
열량 탄질은 함백광업소 석탄이 제일 좋았어요
@꾜우-p1u3 жыл бұрын
정말 감동적인 영상 잘 봤습니다. 화광아파트 장례식은 정말 놀랍고 찡하네요. 잊지 않겠습니다. 화광아파트.
@kayh1503 жыл бұрын
어느 건설회사인지 모르지만 잘 지어 놓으신듯.. 광부의 거주지… 이처럼 튼실하게 지어준 회사 참 감사하네요. 부실공사 뇌물로 부실하게 지은 건물이 온천지였을때.. 그래도 이처럼 집 답게 지어 좋은 그 건설회사.에게 박수 보냅니다.
@rainmune3 ай бұрын
오, 그렇네! 😮 가장 마음에 드는 댓글입니다. 🙂
@hochulchang16943 жыл бұрын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는 아저씨들에게 나오는 식권으로 새마을 회관가서 생필품 바꿔오고, 광부에게 제공 되는 탄표(연탄교환권)는 거래 되었고 손 큰 엄마가 3장(표1장당 연탄138장)이나 사서 몇 시간을 집으로 연탄 날랐던 어린날의 내가 있었고 격일제 쓰레기는 수거차 오면 직접 올려 줘야 했고 광업소에서 가끔 (포대) 설탕 나눠주는거 보기만 했고 어느집 아저씨가 병반(밤근무)일땐 주번에서 낮에 조용히 해줬고... 저 아파트 옆에 사는 광부의 가족이 아니었던 나에겐 추억의 장소지만 광부와 광부의 가족으로 살았던 사람들에겐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었을 장소일 수 있겠네....
@johnmilton99612 жыл бұрын
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나봅니다
@hochulchang16942 жыл бұрын
@@johnmilton9961 광부의 가족이 아니었다고 썼습니다 만
@johnmilton99612 жыл бұрын
@@hochulchang1694 아님 말구요
@아워-p4x6 ай бұрын
3교대
@johnmilton9961Ай бұрын
@@hochulchang1694 아재 살아있어요?
@느와르매니아-f2g Жыл бұрын
저 우리 공부방 아이들과 여기 화광아파트 상여나가는 장례식에 갔었습니다. 2019년 이었는데요 그때가 선하네요. 아이들도 상여를 처음 봐서 엄청 사진 많이 찍었습니다. 어르신들의 한과 애환이 서려있는 장례식이었구요. 한편으로는 잔치였습니다. 태백의 많은 시민분들이 아쉬워하고요 우시기도 하더라구요 아이들과 저는 그저 신기했습니다. 아파트는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사시던 분들의 노고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전에 할머니를 오랜만에 뵙고 근황차 한번 가봤는데 그냥 싹다 밀어버렸더군요............. 뭔가가 허무하네요
@사랑초-x2i3 жыл бұрын
가슴시린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jleesteven3 жыл бұрын
의식주가 절대 부족하던시절 어데 들어가 일할곳도 없던시절 가족 먹여살리려 목숨을 담보로 일해야만 삶이되었던 눈물나던시절 그러기에 저분들은 한이 맺혔을거다 감동의 다큐 잘보았읍니다
@otter_11203 жыл бұрын
먹먹하네요.,... 세월의 흐름을 막을수는 없지만...참,... 아쉽고 맘이 허전하네요ㅠ
@튜브3 жыл бұрын
화광아파트, 오래오래 기억되길...
@dykim33323 жыл бұрын
태어난집주소…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7통3반 새마을사택 18동1호 4학년때 함태초등학교밑에 함태아파트 사택으로 이사했을때 참 좋았는데ㅎㅎ 함태아파트 나동 209호…지금은 한솔아파트…부산으로 이사가기전 참 순진했던시절 ㅠㅠ 지금도 그리운 가슴에 머리에 남아있는 고향ㅠㅠ
@코리아본후추3 жыл бұрын
나레이션 너무 좋습니다!
@도영민-w4c3 жыл бұрын
우와 박광덕스럽다
@ryankim5173 жыл бұрын
아니 저도 라이언인데 미국이신가요 ㅋㅋㅋ
@코리아본후추3 жыл бұрын
@@ryankim517 호주입니다 ㅋㅋ 성도이름도 같군요 인연이네요 ㅋㅋㅋ
@트리-r4rАй бұрын
나레이션 최종원님 태백출신이십니다.
@kimsimjang3 жыл бұрын
마음이 짠 하네요. 사시던 분들과 후손들께 밝은 미래가 가득하기를 기원해봅니다.
@MOONINNY3 жыл бұрын
너무 잘 보고 갑니다!
@육고기좋아3 жыл бұрын
출연하신 모든 어르신 분들 건강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어밀지마라-x8g3 жыл бұрын
말씀 참 이쁘게 하시네요
@이은수-r5f3 жыл бұрын
진폐증없이...건강하게행복하게오래사세요🙏🙏🙏
@송하나라3 жыл бұрын
이거 보니까 함부로 쓸 말이 아니네요...참 슬프고 애잔한 단어 '막장'
@zzuzzuzzizzi Жыл бұрын
엊그제 여름휴가 겸 태백지역 갔다가 태백석탄박물관 둘러보고 왔습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연료의 형태도 바뀌고.. 그래서 그곳에서 삶을 꾸려오신 광부였던 분들도 역사속 일부가 되어가는게 마음 한켠이 짠하네요. 어르신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lg81403 жыл бұрын
나의 살던 고향 태백 그리워 짐니다 장성은 아니지만 전 돌구지에 15년 살았어요 고향 친구들 지금은 46살 보고 싶습니다
@김현정-t2j6q5 ай бұрын
오래전 댓글이네요. 저도 돌구지 살았었고 45살입니다. 오래전 사라진 어릴적 고향동네가 가끔 그립습니다. 저 화광아파트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곳이 되겠지요.
@윤지혜-s5r4 ай бұрын
내친구 김경록도 돌구지에 살았었는데 ...
@제임스본드-k4b Жыл бұрын
계획대로 2개동을 모두 남겼으면 좋았을텐데 안전진단 D등급을 받아서 리모델링을 해도 건물 구조가 더는 버텨낼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쉽지만 안전을 위해 2개동 남기는 계획은 없던일로 하고 철거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저곳에서 살았던 사람으로서 너무 그립기도 합니다.
@freebeta68053 жыл бұрын
화광아파트의 재개발이 태백시도시재생지원센터 성과네요. 멋집니다.
@아름구슬2 жыл бұрын
눈물나요 울아부지 저기서 30년을 일하셧으니 세월이 무심하네요
@araonjung45733 жыл бұрын
아파트 장례식 가슴뭉클합니다. 광부들을 위한 사명을 다하고 새롭게 탄생해서 아름다운 사람을 또 품어주겠네요
@jety9549 Жыл бұрын
재밋는 프로그램이네요....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에.. 아쉽기도 하고.. 아련한 느낌에 기분이 이상해요.. 산업화를 이끈 광산산업에 대한 좋은 기록물이네요
@prc01153 жыл бұрын
어릴 때 황지에서 자랐는데 참... 애뜻하네요. 착찹하기도 하고...
@리치스태커김기사2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산업화의 최전선을 담당했던 분들.. 감사합니다..
@전립선강화3 жыл бұрын
화광아파트라고 쓰인 명판은 기념으로 계속 남겨 두시기 바랍니다.
@잇-x9p3 жыл бұрын
인쇄소가시면 남겨 두실 수 있습니다
@서해원-i3q4 ай бұрын
누구를 탓 할 문제가 아니라 시대 흐름을 타는게 중요한 듯. 이런 문제는 어느 시대든 반복 될거임. 각자 눈치껏 행동하고 변화하는게 중요하지 영원한 안위는 없음. 순간의 영광에 도취되는 것도 각자의 몫이지..
@win30853 жыл бұрын
23:10 자식들 위해서는 내일이 검든 말든 괜찮아.... 어머님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저런분들의 노고와 목숨건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산은 나무 한그루 남아 있지 않았을겁니다. 기억하고 고마와 해야합니다.
@thn25932 жыл бұрын
내 고향...ㅠ - 서울에서 91년생이..
@영희임-m3dАй бұрын
좋은일하시네요 역사에남을 살아지는역사속 후손들 잘지켜지길!!! 새로운 집이되겟죠ㅡ
@binlu79693 жыл бұрын
몇년전 태백 여행갔을때 저 아파트 봤었어요 엄청 오래된 아파트에 탄광촌의 처량한모습도 보였는데 이렇게 애환이 묻어있는곳이었군요
@내인생-u2p2 жыл бұрын
어머님들 유일한 낙이 아닐런지요 우리 어머님들 늘 건강하시고 친구분들 매일 재미지게 사세요
@행운유수-g8q3 жыл бұрын
저때만해도 저런작은것에 너무감사하고 행복했는데 지금은 그런모습을 볼수없다
@jungneo55333 жыл бұрын
그쵸 주7일 밤낮으로 일해도 밥먹고살 돈만 주면 감사해하고 얼마나 좋아요 사업주하기🙂 , 나라가 발전하니 다른선진국들처럼 더 많이 줘야 행복해하고 주5일만일한다하고 워라벨도 생기니 에휴
@면정학-d8x Жыл бұрын
이영상보면 먼가가슴이따뜻해집니다..
@주식천재-t4l2 жыл бұрын
저의 어릴적 화광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화광 아파트에서는 살지 않았지만 놀이터가 있는곳이 저 아파트여서 갔던 기억이 있네요...지금 생각하니 먹먹합니다
@유봉춘-t7w4 ай бұрын
어릴 때 고한에 고모네 놀러 가면 동네 또래 꼬마들 보면 정말 착했는데 집에 전축 텔레비전 하나씩 다 있던
@윤경자-e9h4 ай бұрын
사택도 보여지네요. 난 거기 살면서 장성초 다녔답니다. 추억이 새롭네요~~^^
@ChichyKacik3 жыл бұрын
잘 봤습니다
@승경현3 ай бұрын
장성 천주교 성당에 다시 한번 가보고싶다. 78년도 갈때는 주님을 모르고 갔다가 2012년도 나올 때는 주님을 알게 해준 고마운 나에게는 소중한 성당입니다.
@사채업자-v6g Жыл бұрын
화광아파트 초중고 시절에 추억이 많던곳인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에 추억이 그립네요 비록광부에 아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들
@윤인하-k1k2 жыл бұрын
무한도전에서 탄광 갔었는데 유재석이 막장이란말 함부러 사용해선 안되는거라고 말하더라 차승원 촬영 후 혼자 소주 마시고 갔다는
@맛좋은자갈치 Жыл бұрын
차승원씨 장성 투다리에서 술드시고 간거 맞습니다 ㅎㅎ
@컵라면님3 жыл бұрын
영상에서는 2개동을 존치한다고하던데 지금 지도를보니 존치없이 모조리밀어버린걸로보이네요 ㅜ
@딲어Ай бұрын
이번에 태백 으로 가는데 오늘 이방송을 보고 티맵에 장성 화광아파트 치니까 안나오네요. 재개발 되었나보네요.
@이정미-o6w3 жыл бұрын
강남아파트들도 언젠가 저리 되겠죠? 저출산이 계속되면.. 참.. 슬프네요
@최윤미-r4j3 жыл бұрын
육신과 정신이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ilchulkim53433 жыл бұрын
우리 아버지도 광부셨다...내 부랄친구 아버지도 갱도에서 돌아가셨다..
@yoonseunglee16873 жыл бұрын
78년도면 상당히 오래전 일이네요 당시에는 광부가 매우 알아 주는 직종이었나 봅니다.
@tvozilap56723 жыл бұрын
아뇨. 매우 기피 직종 이였지만. 월급이나 혜택이 좋았기에 ( 자녀 학자금 초중고 학비 무상 제공 대학 입학금 무이자 기업 업체 대출등) 폐에 좋지않은 영향이 있음을 알았어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어차피 가장인데 나 하나 희생하면 가족이 살기좋다면 선택하겠다 그런거죠. 60~70년대~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탄광 사고 정말 수시로 있었던 일 이고요. 구사일생 살아나온 사람도 있었지만 살아 나오지 못한 사람도 엄청 많았어요. 도시의 공장도 있었지만 취직이 어려운 사람들.... 위험해서 대다수 사람들이 기피했지만 연탄의 수요가 많아 탄광을 계속 운영해야 하니 광부들 임금과 가족혜택을 많이 주어서 필요한 광부의 수를 업체는 유지했던거죠. 탄광이 기피직이 아니었던 시절은 없어요
우리아버지도 장성광업소 근무하시다 37에 돌아가셧죠. 그때 당시 저는 하장성 평화사택에서 살았는데 그후 윗장성 화광아파트 맞은편인 목련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이 영상보는네네 옛추억이 떠올라 먹먹해지더군요. 그리고 화광아파트에 살던 내친구 최인규 잘살고있니? 보고싶다 친구야
@Ileona21820 Жыл бұрын
전 장성여고 졸 ㅎ반갑습니다
@Adsfgryh12311 ай бұрын
목련아파트에서 형이랑 뒤지게 싸우다가 머리 터진 게 기억나네요 작은 아버지가 결혼 전에 거기서 혼자사셨는데 우리 가족이 명절 때 태백 내려가면 집 비워주시곤 하셨죠
@hsk69952 жыл бұрын
막장이라는 의미를 의식과 마음에서 다시 새겨야 할것 같습니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해야 했던 아버지들의 숭고한 마음을 대신해야할 단어로..
@원주민-d6i Жыл бұрын
나 태어난 곳..... 저 아파트에서 찍은 어린 시절의 사진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혼자뜨는달-j5b3 ай бұрын
29:26 85년식 아이와 워크맨이 있네요... 제가 소장하고 있는거랑 똑같아요..
@yjcho32213 жыл бұрын
70년대 인천 석바위에 주공 아파트 현관밖. 복도에서 연탄갈고 부엌에서 세수 하고 목욕도 할수있는 물부엌이라. 해야되나... 방두개 화장실은. 볼일만 보게 되어있고,. 추억이..
@Adsfgryh12311 ай бұрын
14:02 에 우리 할머니도 나오네요 ㅋㅋㅋㅋㅋㅋㅋ
@블랙카프3 жыл бұрын
여기는 광산이 늦게까지 운영되어 사택처럼 살던 아파트가 보존되어있군요. 석탄 호황일때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안고 모여들었는데요. 제가 살던 문경 대성탄좌 단층 사택은 오래전 철거되어 흔적이 없어져 서운합니다. 지금도 강원도 여행시 광산촌이 있으면 들려서 우리 아버지 세대 삶을 추억합니다.
@rainmune3 жыл бұрын
1:48 왜 내가 다 괜시리 눈물이 나지? 😢 뭔가 느껴지는 향수가 있다. 날아라 슈퍼보드 시절의 분위기나 그 어떤 것이. 그냥 잠이 들고프게 포근하다. 뭐지?
@내이름은이봄비Ай бұрын
어린시절 화광 아파트 1동에서 46동 까지 있어는데 그중에서 4동 44동 만 없어던 기억 합니다
@우리동네김씨4 ай бұрын
4:10초 할머니가 뭐라고 말씀 하시는 건가요? PD가 알아듣고 "아 그래요?" 하는데 전 무슨 말씀 하시는지 못알아 듣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