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랑 아버지가 이영상보더니 두시간을 이야기하시더라.. 저땐 어쨋는데 어쩌고하시면서... 내 부모님이지만 저렇게 해맑게 이야기하시는걸 본적있나싶다.. 많은생각이 드는 밤이네
@ckh1211 Жыл бұрын
네비도 없고 진짜 실시간 정보도 없어서 더 답답한 시절 큰 지도책자보며 코스 고민하던 가족들의 모습이 그립기도 차량은 요즘차들과 달리 옵션도 거의없는 아날로그 감성 추억돋음
@하하하-d4y4u Жыл бұрын
심지어 차들도 거의 수동이라서 오토 차량은 트렁크에 오토매틱이라고 자랑처럼 써있었음..
@pilmoa Жыл бұрын
abs 에어백이 옵션이라서 뒤 창에 써있었음
@생각을하자-t8r9 ай бұрын
ㅎ고속도로도 정해저있어서 남해안 서해안 뻔했ㅇ죠머😊
@maromi-wt6vk7 ай бұрын
우리 부모님 은 늘 티격태격ㅋㅋㅋ
@Lifestyle2Park2 ай бұрын
지도 ㅋㅋㅋ ㄹㅇ 엘란트라 한켠에 대동여지도마냥 책자 놔두고 어딜가든 중간에 차세워서 지도피고 ㅋㅋ
@DHYIM-m4p8 ай бұрын
어째어째 표 구해서 할아버지댁 내려가는 길에 먹던 사이다, 삶은 달걀... 엄마가 까주는 달걀을 받아먹는 날 보던 아버지 눈빛이 아직도 여전히 생각난다. 손주들 한번 품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버리신 아버지.. 옛날 시절이 그리울때엔 늘 내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아버지, 보고싶소. 평생을 털어 감사하다는 말, 죄송하다는 말... 그 말 한마디 못한게 이렇게 살면서 길이길이 후회가 될 줄이야...
@샌드위치나랑먹을래4 ай бұрын
이 씨발년아 진작에 효도했어여지
@전무경-t3c2 ай бұрын
ㅜㅜ
@donguklee1003Ай бұрын
남아계신 어머니라도 잘해드리세요
@PB-jh3gu10 ай бұрын
우리 돌아가신 아버지가 10시간 운전하면서 발목이 너무 아프다하셨는데 그땐 몰랏지 오토도 아닌시절 스틱으로 클러치잡으며 가다서다 반복하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부지 보고싶습니다
@h6o-c3p9 ай бұрын
따흐흑😢
@최인성-h4y9 ай бұрын
ㅠ😢
@user-sd1xu5mv8k8 ай бұрын
프레스토 엑셀자동차를 많이 탔었죠 ㅜㅜ
@mcmin-m7m8 ай бұрын
스틱운전하는데 막히는길 운전할때 뒤지게 피곤함
@agarhee8 ай бұрын
강한자만 살아남았던 90년대시절 ㅠㅠ
@양말흰 Жыл бұрын
이거시 진정한 8-90년대 갬성이지
@김김-h8o5v6 ай бұрын
미개함
@wkdrhsl Жыл бұрын
정말 24시간 이상 운전해서 가시는 분들... 그만큼 기다리고 겨우 표 구매하신분들.... 대단합니다 !!!
@sweetpark44272 ай бұрын
많은 손주들 중 사고를 가장 치고 썩 공부도 잘하지 못했지만 항상 저를 많이 이뻐해주셔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데 이젠 할머니가 계시길 않으셔서 무척이나 보고싶네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할머니. 이번 추석에도 할머니 제사 성묘 때 인사드릴께요
@user-ym6qu8djw88 ай бұрын
초딩때 부산할머니댁 가는데 18시간 걸렸는데ㅋㅋㅋㅋㅋ그래도 아직까지 추억거리 삼을만큼 낭만있었음 아빠가 지도보고 국도로 돌아돌아 갔던것도 다 기억남ㅋㅋ
@abcd-pe7tx Жыл бұрын
처음엔 대문 앞에서 자식 손주들 기다리다가 한걸음 한걸음 나오다보니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 까지 나와버린 할머니한테 삐약거리며 달려가 와락 안기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조경래-c8w9 ай бұрын
요즘에는 역귀성을 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요 ㅋㅋㅋㅋ
@서인규-g7k11 ай бұрын
저리 막혀도 다들 행복해 보이네 다시 돌아가고 싶다 80년대 90년대...사람 냄새 물씬 나는 시절
@jihunkim71732 ай бұрын
지금은 사촌도 남이나 다름없죠…
@에단헌트-4u Жыл бұрын
1996년 추석 서울에서 밤8시 출발 동해 도착 다음날 오후 4시 ㄷㄷ 홀로 운전하신 아버지 존경합니다
아버지 포터에 앞자리 큰누나 엄마 타고 포터 뒤 조그만한 짐칸에 작은누나와 내가 타고 전북에서 서울 가는 명절날 참 행복했었구나 엄마가 꼭 명절에 서울 갈때 닭다리 치킨을 사주셨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행복했당. 아부지 어무니 오래오래 건강하기만 하세요 효도는 제가 하겠슴다
@kcy1524 Жыл бұрын
매번 삼촌 4열짜리 봉고차 타고 가던 시골. 어른들은 2, 3열 마주앉아 담배피며 고스톱 치시고, 아이들은 맨 뒷열에서 멀미해가며 낮부터 밤까지 가다보면 아침 동틀때야 도착하곤 했던 시골인데. 지금은 그 삼촌도 돌아가시고. 나이드신 아버지는 서울에 계시고 추석이면 경기도에 사는 내가 역으로 서울로 올라가니 세월이 무상하다.
@온건한햇살 Жыл бұрын
어린시절 고속도로에서 하늘의 헬기보고 손 흔든 기억이 나요...X세대는 추억이 많은거 같아
@흑기사-m1t2 ай бұрын
반갑습니다. 트윈 X
@matrixpds1983 Жыл бұрын
그냥 눈물이 난다
@ll-fq1lj Жыл бұрын
1995년도 추석 경기도 의정부에서 처갓집 전북 군산까지 26시간 운전 후 도착 잊을 수 없네요 ㅎㅎㅎ
@ryhd323 Жыл бұрын
우리가족은 추석때는 아닌데 여름에 해수욕장 일찍 가려고 5시에 일어나 본 적은 있어요 제부도가서 음청 놀다왔죠
@천지수자아수낭 Жыл бұрын
대단하시네요
@이찬주-c9r Жыл бұрын
저도 아빠차 엑셀타고 여수까지28시간 국딩때 ㅋ 그때 아버지들 강했다 진짜ㅋ
@쉴레이만은솔로몬유수 Жыл бұрын
국토 대장정..
@JJG_Jayden Жыл бұрын
존경합니다
@용팔아11 ай бұрын
우리내 부모님들 존경스럽습니다. 건강하세요
@taekikim359 Жыл бұрын
정말 그땐그랬지 그런말이 어울리네요
@aufgeschlossen51108 ай бұрын
다른 나라 같아요 정말
@whdtjsdl046 ай бұрын
라떼는.. 할 수 있는 분들😅
@moonnightbridge5015 Жыл бұрын
저때 초등학생이 아닌 국민학생 이었는데... 시골 내려가면 그 특유의 흙냄새, 도랑 개천에서 꽥꽥 대던 오리떼들의 울음소리, 누렁이의 멍한 표정. 영상속 표정들은 다들 즐거운데 왜 나는 눈물이 나지ㅠ
@ez2dj8110 ай бұрын
진짜 부산, 광주, 목포.. 다녔던분들 진짜 존경.... 리스펙... 천안에 산소에 성묘 왔다갔다한것도 진짜 힘들었었는데.. 참 기억에 아련히 남네요 ㅎㅎ
@akasia81 Жыл бұрын
80년후반에서 90년초 즈음에 그때 국민학교 저학년이었는데... 서울에서 새벽 두세시쯤 출발해서 고속도로에서 해뜨는거 보고 하루 꼬박 도로에 서있다가 다음날 해 뜨는거 보면서 시골집에 도착함.ㅠ 명절 끝나고 학교가서 친구들 하나같이 하는 말... 열몇시간은 기본이었음.
@9단-k6n Жыл бұрын
고속도로에서 후라이팬으로 요리 ㅋㅋㅋ 역시 강한자들임,,,
@injection3139 Жыл бұрын
그당시엔 휴게소 갯수도 적었지요... 먹고 살기위한 몸부림이라고 보면 됩니다
@최예민-q3g Жыл бұрын
저시절 사람들이 강한게 아니라 이시절 니들이 약한거다 원래 조선사람들은 강한거야 니들이 이상한거야
@쥬지스님-d5k10 ай бұрын
@@최예민-q3g왜그래..
@rodi090978 ай бұрын
@@최예민-q3g 틀
@JsK-tz7fr8 ай бұрын
@@최예민-q3g 약하다는말도 맞긴 맞는데 젊은 세대 부모들 교육관이 완전 달라지면서 자립심이 떨어지는거...저 시대 부모님들 교육관은 자식들 어디 내놔도 혼자 살아갈수있게끔 빡시게 교육시켰음..
@레오만만세 Жыл бұрын
추석연휴 달랑 하루였지만 그때가 더 설레였고 낭만이 있었는데 8090년도가 그립다
@nuts734 Жыл бұрын
추억이라서 그럼.. 실제로 다시 돌아가면 어휴...
@안야-j8y Жыл бұрын
틀
@Wagner_Antichrist Жыл бұрын
@@안야-j8y창문틀
@Tuss223311 ай бұрын
며느리 개고생시키는게 그립노??
@레오만만세11 ай бұрын
@@Tuss2233 고생하는게 싫은데 결혼은 왜 했을까?
@새롭고재밌네10 ай бұрын
제가 87년생인데 외가가 전라남도 해남이였음 정말 저때는 네비도없어 고속도로도 덜 뚫려있어서 한번 내려갈때마다 16시간은 기본 더 막히면 하루 날리는거임 길막히는게 어느정도냐면 밥은 먹어야겠으니깐 아버지는 차에 냅두고 어머니가 저랑 누나 손잡고 휴계소까지 걸어갔음 가서 밥 먹는데 먹을 자리도 없어서 그냥 휴계소 근처 길가에 앉아서 먹음 아버지 먹을 음식 사와서 다시 차 있는곳으로 걸어가면 차가 그자리 그대로 서있었음 ㅋㅋㅋㅋ
@박현준-b8f9i9 ай бұрын
와 저와 동갑이시네요^^ 저도 외가가 전라남도 고흥(녹동)인데 휴게소 에피소드도 저와 같아요. 고흥에서 인천까지 22시간 걸렸어요ㅠ.ㅠ
몇 년도인지 기억 안 나지만 아버지 차 3도어 프라이드를 타고 서울부터 대구까지 21시간 걸렸던 때가 기억납니다. 새벽에 경찰 분들이 운전석 문 노크하면서 차들 깨우고 다녔는데 ㅋㅋㅋ 포근한 문도 없는 뒷자석 프라이드에서 장난감 하나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ㅋㅋㅋㅋ 근데 지금 42살이 되고 그 때를 생각하니 30세 쯤의 젊으셨던 아버지가 왜 그렇게 운전을 피곤해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수동이라 그러셨나...
@아워-p4x Жыл бұрын
아마 80년대 후반일 거로 추정되는데, 그 땐 자동이 드물었으니 수동일 거고 대구까지면 15시간 이상 운전하면 그로기 상태죠.
@Centrybono9 ай бұрын
그 당시면 수동에 핸들도 파워 안들어가지않나요 ㅎㅎ. 어우 ㅠㅠ
@다빠다까8 ай бұрын
그땐 자동미션과 파워스티어링이 고급옵션으로 인식되던 때였고 자동미션 성능이 별로여서 기름 많이 먹고 비싸다고 잘 안사던 시절임
@수성천사 Жыл бұрын
80년대 초에 태어난 사람인데 9살 10살 되던때에 기차로 고작 대전에서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입석으로 한번 타보고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기차를 단 한번도 타본적이 없네요 물론 그 이후로 자가용이 생겨서 기차 탈 일도 없긴 했지만요. 어렸을때 2시간 이상 가는것도 너무 힘이 들었나봅니다. 서있다가 통로 틈새에 쪼그려 앉았다가.... 그리 반갑지는 않은 기억이었던듯.... 지금은 교통편도 잘 되어있고, 고속도로도 많이 뚫려 있으니 예전처럼 열몇시간씩 도로에 서있고 그런 일이 잘 없다는게..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coismois11 ай бұрын
햐 저 때는 진짜 명절이 설렜었지..
@shibaWTD Жыл бұрын
저 떄랑 지금에 한 시간은 차이가 어느정도 일까 스마트폰도 없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이 내 부모를 보는거 같아 마음이 찡해지네
@jun-lw5te7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선플달기 챌린지를 하고있는 중학생입니다. 요즘은 볼수없는 명절의 모습들이 정말 신기하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KSH-cf6ld Жыл бұрын
참 힘들었지만 저때는 진짜 명절이 명절같았지.....그립다..
@jupiter5331 Жыл бұрын
어렸을때 시골가면 친척들 다모이고 큰할아바지네 작은할아버지네 전부 인사드리러 다니고 했었는데..이젠 그런게 점점 없어지는거같아요
@Tuss223311 ай бұрын
남자죠? 여자엿으면 그런말안나오는데 ㅋㅋ 명절이 지옥이지
@heartkanal805611 ай бұрын
@@Tuss2233아줌마..:
@가이지11 ай бұрын
@@Tuss2233진짜 아줌마 왜 그럼?
@냄비속고등어11 ай бұрын
아줌마 정말 낭만이 없구만 @@Tuss2233
@jinwookim5825 Жыл бұрын
사람들이 순수하고 낭만이 있어 보인다!!!
@kimsundo9134 Жыл бұрын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편리한 세상이 왔건만 그때 그 시절 감성은 잊지 못합니다. 고향에 대한 의미가 그만큼 바뀌기도 했지만.. 당시엔 무조건 가야만 했었기에 물론 당시 철없는 어린 나이에 간다는 것만으로 설레었던 시기였기에 ㅎㅎ 추억이긴 하지만 그때가 그립습니다.
@KSY08137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저는 도덕 수업 과제로 선플달기를 하고 있는 봉은중학교 2학년입니다. 수행평가로 댓글을 달려 이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태어나기 이전의 현실을 재밌게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8090년대의 재밌는 명절 풍경을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지금의 상황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또 비슷하여 놀랐습니다.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명절 분위기는 저때가 최고였음. 비록 시골에 아무도 안계셔서 서울에 있는 큰집이나 가고 그랬지만. 그때의 명절 분위기는 지금과는 다르게 막 설레고 어디론가 가고 싶고 설령 시골을 가더라도 오래 걸려도 재밌고 그럴때임. 지금은 그냥 연휴 중에 하나일뿐 이생각밖에 안듬.
@mbaek88 Жыл бұрын
요즘애들은 저 기다림이 얼마나 지루한지 모를듯 ㅋㅋ 저때는 스마트폰도 없고 더 과거 세대인 아이팟, mp3없고, cd플레이어 없고, 마이마이마저 비쌀시기...
@user-sayok11 ай бұрын
아.. 80년대 후반부터 힘들어졌죠. 차가 점점 폭팔적으로 많아지는데 도로가 못따라오니 90년대 초중반이 절정이어었죠. 아버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모롤쓰-v4i10 ай бұрын
저 시대때 할부도 없었을 것 같은데 부모님들이 차는 어떻게 사셨는지 갑자기 궁금하네요
@코알라-g7s9 ай бұрын
@@모롤쓰-v4iㅋㅋ 저시대는 대출이없죠 집도그냥사야지
@utrewaf Жыл бұрын
앵커 인트로 멘트 쩌네요 ㅎㅎ
@KenziKim Жыл бұрын
96년도에 수원에서 대천가는데 9시간 반 걸린거 기억나네 지금은 2시간도 안걸리는데 ㅋㅋㅋㅋ 그때 신창휴게소에서 가락국수먹는게 국룰이였는데 그립다 그때그시절 ㅋ
@찍해버렸다11 ай бұрын
80. 90년도 추석이 레전드이긴하지 저때는 네비도없어고 지도만 보고가는 클라스...
@정병주-c7l11 ай бұрын
조수석쪽 아래 지도 꼭있었죠ㅋㅋ
@정은미-x8w2 ай бұрын
자가용 있는 집은 지도가 꼭 있었음
@송현종-f6m Жыл бұрын
나도 어릴 때 안양에서 김제 금구면 낙성리까지 17시간 차를 탔었는데 그때 오바이트 많이 했었어요
@자덕헬창 Жыл бұрын
선곡 미쳤네ㅋㅋㅋ
@frchopin111 ай бұрын
낭만이 있던 시절ㅎㅎ 그립당 ㅠㅠ
@Billie77777 Жыл бұрын
7시간 운전도 죽을꺼같은데 20시간씩 어케 운전하셨는지 대단합니다.
@SuperStar-wd3ud2 ай бұрын
왜 더행복해보일까😢
@hoya1715 Жыл бұрын
캬~ 추억의 시절이다! 진짜 매표 전쟁! 근데 사실 명절에 표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보다 꼼짝없이 좁은 곳에 갇혀있었던 매표원이 더 불쌍하지ㅜ
@주먹펴고일어서-p5h5 ай бұрын
현재가 되어보니 저때 감성이 너무 좋았네요
@mbaek88 Жыл бұрын
8:59 찾아가는 셀프 악수 ㅋㅋㅋ
@catlover43572 ай бұрын
폭설때 안산-청주 12시간 걸렸던거 기억나요. 원래 1시간 반거리였는데요.
@m550d72 ай бұрын
심지어 저때는 대체휴일 이런것도 없어서 ㅋㅋㅋㅋㅋ 명절때 눈치싸움 살벌했쥬 ㅎㅎ 인천에서 청주가는데 5 ~ 6 시간 ㄷ ㄷ ㄷ 90년대요~
@파자마아저씨9 ай бұрын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모두 서울 토박이시라....명절에 저런 고생을 해보지 못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제 부모님은 서울에 계시고 저는 지방에 살아서 이제 고속도로 전쟁을 하고 있네요 ㅎㅎㅎㅎㅎ
@김종욱-l7v4 ай бұрын
1995년. 당시 방송에서는 서울-부산은 20시간, 서울-목포는 23시간, 서울-강릉 12시간 등등 이해못할 소요시간을 방송했었어. 그 즈음에 목포사는 회사 동생이 말하길 28시간 걸렸다했고 마산사는 동생은 21시간 걸렸다며 힘들다 하소연들 했었지. 지금과는 다르게 무궁화호 특실전용 열차도 운행했었고, 침대칸도 운행했으며 영상 도입의 통일호도 운행되었는데 객차안에서 홍익회 아저씨가 간식카트 끌고 1호차에서 8호차 또는 10호차까지 한번 다녀오면 빈카트로 영업종료도 되었었고 맥주도 판매하던 시절이기도 했었어. 객차안에서 사먹던 마른오징어에 고추장도 밀봉되어 찍어먹던 그 맛은 너무 좋았던 기억이기도 했어. 모두 힘들고 못먹고 어렵게 살아갔어도 눈물나게 그리웠던 시절이었다. 어른이되어 저 시절을 떠올리면 잘 살아왔음에 무한 감사한 시간이었어.
@droBo127 ай бұрын
큰집이라 저런걸 경험해본적은 없지만 옛날에는 그냥 가족친척을 만나는 일이 너무 즐거웠고 신났습니다. 요즘은 코로나로 명절때 안만나는게 주류가되고 취업이나 결혼이야기로 만나기도 꺼려하니 다 추억이 되가네요. ㅠㅠ
@랠리루남편9 ай бұрын
6:02 설마 여기 나오는 판교요금소가 지금 그 서울요금소인가요..? 지금은 서울요금소 양옆이 큰 회사들 천지인데 옛날에는 양옆이 죄다 밭이었네요 ㄷㄷ
@도이-l6k7 ай бұрын
진짜 90년대는 저런 낭만이 있었지 어릴 때라도 그 낭만을 기억하고 있다 가끔 앞만 보고 달리다가도 그 시절의 낭만이 문득 그리워진다
@mhjang4305 Жыл бұрын
저게 다 추억이었음 물론 힘들었지만 그고생 이제 언제 해보겠어요 ㅋㅋ추석표 끊을려고 영등포까지 가서 예매하던날 새벽부터 줄섰던기억이나네 ㅋㅋ
@daehyeon1104 Жыл бұрын
나도 어릴때 의왕에서 대구까지 15시간씩 걸려서 갔었는데 옛날이 더 재밌긴했음 ㅋㅋㅋ
@David-nu8gx Жыл бұрын
고향이 대구에요? 지금은 어디살아요?
@위대한박정희각하8 ай бұрын
아버지가 한라중공업 다니셨는데 그땐 직원복지가 ㅆㅅㅌㅊ라 그랬는지 회사에서 버스 대절해서 직원가족들 고향까지 데려다줌 버스에 먹을거 천지였고~ 옛날이 그립다~~
@tycoonthemaestroАй бұрын
도대체 아부지께선 네비도 없던 시절에 어케 길만 외워서 고속도로 귀향길을 와리가리 하셨던걸까... 경의를 표합니다 ㄹㅇ
@뚜따181-r1g2 ай бұрын
진짜 저 당시에는 차에서 정말 오래 있어야 해서 출발전에 먹을 물이랑 음식 잔뜩 싸서 차에서 먹었었는데... 그리고 차에 전국 종이지도 한장씩은 다 있었음 그래서 저당시 아버지들은 네비 없이 머리속에 길 다 외우고 계셨음..
@이동희-u8b6 ай бұрын
강한자만이 살아남았던 그 시절. 그립네요.
@니꾸-r3r2 ай бұрын
저때가 생각나고 가끔은 그립지만 난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
@ysj1258 Жыл бұрын
6:16 저 시절 판교톨게이트 주위에 논밭밖에 없는거보소
@얍얍-u7f4 ай бұрын
경기도에서 전남 친할아버지댁 가는길 나랑동생은 아빠차 뒷자리에서 놀고 있으면 엄마가 새벽부터싼 김밥 하나씩 먹여줬는데 그맛이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