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철학의 오온의 무상함은 나라는 껍데기, 생각, 감정, 오감의 일체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생각, 감정, 오감을 쓰며 살 수 밖에 없죠. 생각, 감정, 오감이 무상하나 우리는 그것을 쓰고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무상 고 무아'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합니다. 여기서 일컷는 변하는 무상한 것들이 설명해주신 세 가지 철학에서 말하는 '나' 인 것 같습니다. 반면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에서의 두 나는 다른 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생각하는 내가 있다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나(오온의 '식'과는 다른 개념)를 깨닫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데카르트는 그 넘어를 본 것이 아닐까요. 나는 내가 아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내 곁에서 걷고 있는 자. 이따금 내가 만나지만 대부분은 잊고 지내는 자. 내가 말할 때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자. 내가 미워할 때 용서하는 자. 가끔은 내가 없는 곳으로 산책을 가는 자. 내가 죽었을 때 내 곁에 서 있는 자. 그 자가 바로 나이다. -후안 라몬 히메네스(라틴 아메리카 시인)-
@곧卽즉6 ай бұрын
그자가 바로 나이다 라고 하는 순간 나라는 실체가 나타나는데... 말만 하면 어긋나 버리니... 말 이전의 소식을...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sucovlog60092 жыл бұрын
엄마가.오셨다. 팔순 노인이시다. 매일 밥을 차려드리고 행복하게드신다. 그리고 바로 심심하시고 자식들 때문에 무릎때문에 괴롭다고 하신다. 즐거움은 티비볼때뿐. 사고하지않을 때이다. 행복은 사고하지 않고있을때 뿐인가싶다. 그러고보면 무아사상이 맞는듯도 싶다.
@썬오브더철수9 ай бұрын
근데 불가의 이야기는 현상을 바라보는 지혜일 뿐이지.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되요. 인간이 그렇게 살순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곧卽즉6 ай бұрын
@@썬오브더철수 그렇게 살려고 하니까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이지요
@썬오브더철수6 ай бұрын
@@곧卽즉 출가하면 모를까 속세에선 힘들죠. 불가의 사상을 폄하하는게 아닙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어요. 각자의 등불로 각자의 길을 밝히면 된다고. 방법이 중요한게 아니라 깨치는게 중요한거죠. 하지만 저는 인간은 생존이라는 본성 때문에 이기심을 탑재한 존재기때문에 깨우칠 순 있어도 자신의 목숨과 바꿀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자신의 목숨(생존)과도 바꿀 수 있다면, 결국엔 크리스트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그것을 포괄하는 개념이 되겠지요. 저는 뭐 어떤 방식이나 종교로든 각자의 삶의 방식과 행복 그리고 공동선에 대해 나아가는 방향성을 취한다면 부처님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실거라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살아생전 제자들에게 설파한 법을 보면 그러하니까요.
@anne30252 жыл бұрын
삶에 대한 사유 뿐 아니라 삶의 무게를 살짝 경감시켜 주는 박사님의 유머러스한 인사이트를 사랑합니다 늘 함께 해주셔요 ♡
@honeykris51132 жыл бұрын
다람쥐는 심심하다는 걸 알 수도 없고 지루하다는 걸 알 수는 없지만.. 고통과 두려움은 느끼지요. 개는 지루함을 느끼고 재밌다는 걸 느끼며,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고요. 인간은 지루함도 재미도 느끼지고, 지루하다고 재밌다고 생각도 하지만,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를 인식합니다. 헤겔이었나요. 어느 책에선가 본 것 같은데.. 본질만을 파고들면 현상을 무시하게 된다고.. 물이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물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모든 물이 다 같다고 해서 파도가 바다가 비가 구름이 얼음이 다 같은 것도 아니니... 철학은 정말 관점에 따라 파고들면 들수록 재밌는 학문인 것 같습니다. 일반인인 저는, 너무 현상에만 집착하지도 말고, 너무 본질에만 과몰입하지 않도록.. 유동적이고 찰나적인 나를 위하여 과하지 않은 욕망을 추구하다가 기꺼이 다른 존재가 될 수 있게 놓을 준비도 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늘 재밌게 알차게 보고 있어요.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타핫-m7u2 жыл бұрын
대단한 정리입니다. 이렇게 간단히 설명하시다니 학식이 아주 깊으십니다 고맙습니다
@8stardust2 жыл бұрын
대단히 쉽고 심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해도) 대단하십니다. 영상 너무 고맙게 보고 있습니다.
@jw_p48872 жыл бұрын
5분 뚝딱 철학은 정말 정말 개인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출발할 때는 단편적인 조각 조각들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레고 맞추기 게임하듯 하나 하나 종합해서 맞춰가는 즐거움이 너무 좋습니다. 김필영님은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는데, 정리하고 다시 종합하고 또 정리하고 또 쉽게 종합하는 과정이.. 철학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부럽고 닮아가고 싶은데, ㅎㅎ 능력이..크크 감사합니다.
@jeanpark86382 жыл бұрын
모든 것이 생각의 산물, 나라는 것도 생각, 꿈도 현실도 생각. 인간은 이렇게 생각이 많아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죠. 불교는 나라는 것은 오직 생각임을 깨달고 고통의 근원을 끊는.것입니다.
@Postles_of_Philosophy2 жыл бұрын
흄 별로 안좋아하는데 감각의 다발이론은 좋아합니다. 인생 다 똑같다고 왜사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답변 중 하나니깐요. 고정된 내가 그냥 사는게 아니라 세상에 살면서 마주하며 수없이 느끼고 변화하는 하루 하루의 삶이니깐요. 늘 다른 인생이 되겠죠. 스토아 철학자들은 나라는 관념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 일종의 영혼을 상정하죠. 그 영혼이 진짜 나로서 나의 인생을 조망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무아지경이라면 무아지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stevenk15912 жыл бұрын
많은 철학자들이 범하는 오류 중의 하나가 인간 중심으로 다른 동물의 사고와 행동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다람쥐가 괴로운지 즐거운지를 어떻게 알 수 있죠? 다람쥐한테 '나'라는 개념이 없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 이러한 류의 사고방식은 결국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하다는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선영-x9t Жыл бұрын
다람쥐가 괴로울 땐 모르겠지만 즐거운 순간은 보입니다. 두,세마리 이상이 까불며 놀지요. 즐겁지 않은데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테죠. 물론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비,새들..개,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지요. 어떻게 생각하면 자아의식이 없기 때문에 동물들이 인간에 비해 괴로움보다 즐거움을 더 누릴 것 같기도 합니다.
@이성범-l2s Жыл бұрын
동감입니다 다람쥐가 자아가 없다는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user-ig1fn8bp4d10 ай бұрын
자아가 없는 게 더 높은 경지일 수도 있어요 ㅎㅎ
@dopho924 ай бұрын
@@이성범-l2s다람쥐는 거울 속의 자신을 인식하지 못해요 ㅠㅠ 오류는 작성자님께서 범하는 게 아닌지 ㅋㅋ
@Best-zd7kh2 жыл бұрын
철학에 대해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어쩌다 이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되어서 정말 좋네요 ^^ 매일매일 챙겨 보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ML-se1do2 жыл бұрын
죄송합니다 교수님 영상 항상 잘 보지만 잠이 안올때 틀어놓으면 잠이 너무 잘와여 항상 감사합니다
@dpi55692 жыл бұрын
마지막 문구가 ... 귀에 쏙 들어오네요... 다람쥐처럼 사는것...^^
@baramillseo56102 жыл бұрын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아주 훌륭한 고찰 입니다. 감사합니다.
@AIArtistNoahC2 жыл бұрын
저도 고양이를 키우며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전부터는 고양이를 열반고양이라 부르고 스승으로 모시고 있지요
@darae23482 жыл бұрын
새해 큰 선물 감사합니다
@RockRock-zm4pq2 жыл бұрын
평소 관심 많았던 주제인데 이렇게 정리되는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채권총론2 жыл бұрын
초기불교철학을 흄의 철학과 빗댄 것은 정말 인상깊네요. 데카르트의 합리론은 흄의 경험론을 거쳐 이 둘의 종합인 칸트의 비판서로 나아가는데, 칸트가 경험론 속에서 이성의 역할을 구원해내는 과정은 서양철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초기불교철학을 생각할때마다 왠지 칸트로 귀결되었는데 이래서 그랬었나봐요! 신기...
( 칸트가 경험론 속에서 이성의 역활을 구원해내는 과정~ ) ---------------------> 칸트 개인적 생각일 뿐입니다. 칸트에 깊게 감동받은 이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경험론 속에서 인간 이성이 구원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아마도 영원히 알 길이 없을 겁니다. ( 초기불교철학을 생각할때마다 왠지 칸트로 귀결~ ) ----------------------------> 그 역시 일부 사람들의 생각일 뿐. 불교는 단순한 철학이 아닙니다. 수행이 동반되는 가운데 체험이 필수적인 영역입니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이성과 논리로만 전개됩니다. 불교는 이성과 논리 아닌 다른 영역도 중요합니다. 불교의 5온, 색수상행식 ------------------------> 무엇을 나타낸 상징인지 머리만 굴려야 알 길이 없습니다. 실제 불교의 영적 수련을 통해서 경험해야만 더 5가지가 무엇을 나타내는 기호인지 비로서 알게 된다고 보아야. 부처의 호흡 수련 흉내라도 내보면 그 즉시 차이점을 느낄 것. 극한의 경지는 커녕 맛보기 수준도 안되는 지극한 첫 단계의 호흡 수련만 경험해도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종교 없고 종교인 될 마음도 전혀 없지만, 불교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특히 호흡 수련에 대해 단순히 책을 구입해 자습하는 형태로 호흡 수련을 조금 해보았습니다. 1회 호흡에 1분 정도로 1시간 정도 호흡에 집중하다 뭔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무아지경은 절대로 아닙니다. 무아지경에 도달하려면 엄청난 수련을 스승에게 지도받으면서 해야할 것. 철학자들이 이성과 논리로만 불교를 이해하려 한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저런 기초적인 경험으로 바로 알게 될 것. 맛보기도 안되는 경험에서 느낀 무엇이, 정말 실제 존재하는 무엇일지 아니면 그 마저도 내 정신작용의 착각일지, 알 길이 없었지만. 냉혹한 경험론은 그런 체험 조차도 수련이라는 체험-경험에 바탕했다고 할 겁니다. 즉 경험론은 종교 수행에도 적응 가능한. 사실 수행 자체가 경험일 겁니다. 우주 >>>>>>>>>>>>>>>>>>>> 소리 >>>>>>>>>>> 언어 >>> 문자+기호+숫자 ... 인간이 수행하는 지적인 모든 작업은 문자기호숫자... 등으로 표현되고 정리됩니다. 소리를 넘어선 우주를, 소리 조차도 다 담지 못하는 언어로, 그 언어 조차도 다 표현할 수 없는 문자기호 체계로 서술합니다. 따라서 저런 방식으로 정리된 인류의 모든 종교경전-과학적-철학적-수학적 작업의 결과물은 오류를 내포합니다. 종교경전에 담을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겁니다. 과학-철학-수학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하는 겁니다. 즉 문자-기호-숫자-논리 체계로만 접근하면 오류 피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에선 수련-체혐의 비논리적 비문자적 비이성적인 영역이 존재하는 겁니다. 문자와 논리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기에. ----------------------------> 말로 아무리 무아지경 설명해도 알 길이 없는, 오직 체험-경험만으로 이를 수 있을 겁니다. 자연과학 조차도 저런 취약점을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운명. 생각해보길 자연과학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시간-공간-질량 ... ------------> 언어 측면에서 명사형. ---------------------> 언어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이미 시간과 공간과 질량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인양 착각하고서 출발합니다. ---------------------> 하지만 인류는 아직 까지 시간과 함께 하지 않은 공간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고. 실험과 검증이라는 칼날을 가진 자연과학의 밑바닥 기반이 저렇게 허무한 판에, 철학과 수학의 밑바닥은 얼마나 탄탄할지 조금만 의문을 가져본다면 바로 알게 될 겁니다. 칸트 철학 조차도 언어의 유희라는 것. 칸트가 언급한 시간, 공간...등의 범주 구분 냉정하게 생각해보길. 그러한 범주 구분에 납득할만한 기준이 존재하는지 부터 지극 의심스럽고, 그 범주 역시 고대 그리스 철학 흉내낸 정도. 설마 칸트가 공간과 독립된 다른 실체들을 증명하고서 그런 개념들을 다루었겠습니까? 칸트 철학은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불교가 칸트 철학으로 귀결된다고 보기엔 자격 미달입니다. 검증 불가한 무정의 성격의 용어들이 잦고 정의를 한다고 한들 제대로 정의되지도 않는 대상에, 멋대로의 범주 구분, 인간 뇌의 작동에 대한 무지 상태에서, ---------------------> 감히 우주의 본질에 다가섰다고 하기엔 너무나 부실, 칸트만이 아닌 모든 철학과 이성의 한계. 칸트, 개인적으로 이렇게 판단합니다. 뉴턴 고전역학-물리학에서 거둔 어마무시한 성과를 흉내내어, 서양철학에 그런 방식을 맛보기로 도입한 정도. 보잘 것 없는 수준의 이성논리 도구로 우주의 본질에 도전했기에 불가능한 과업 -------------------> CAN ' T 칸트에 너무 감동만 하지 말고, 혹시나 칸트가 CAN ' T 아닐지 의문도 가져야. 경험론은 인간이 결코 버릴 수 없는 최후 최소한의 무기이며, 그나마 인간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근거지. 경험 이전의 선험? ------------------------------------------> 선험이라는 개념 조차도 경험에 기생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이런 비유들이 있죠. 컴퓨터 출고될 때 OS 깔리기 전에 미리 탑재되는 BIOS, 갓 태어난 생명체의 유전 정보 등을 선험에 대비시키는.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그 마저 경험에 의존하는 겁니다. 컴퓨터 등장 이전의 오랜 세월 인류의 좌충우돌 경험이 반영된. 인간이 태어날 때 유전자에 선험적으로 입력된 무언가가 존재한다? ------------------> 갓난 아기가 처음 부터 탑재한 그것들, 과연 정말로 선험적인 무엇일까요? 그 입력의 근거인 유전자 어떻게 존재하는지 생각해본다면, 작은 물질 조각들의 엄청난 시간의 시행착오 조합-경험의 산물일 것. 갓난 아기의 유전체와 독립된, 갓난 아기의 뇌 세포 및 신경계와 독립된 비물질적인 선험적 탑재물이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선험에 해당할 것이지만 그런 단계로 접어들면 이미 인간 이성-논리와는 안드로메다급 거리가 있게 됩니다. 즉 현 인류 단계의 과학-철학-수학 으로는 접근 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일 것. 더군다가 그런 선험적 무언가 조차도 현 인류 기준으로 선험이지, 더 높은 차원에선 경험의 산물일 수도 있고.
@scz83332 жыл бұрын
버틀런드 러셀의 1950년대 인터뷰 : 러셀의 할아버지가 엘바섬을 방문해 나폴레옹을 만났다고 합니다. kzbin.info/www/bejne/aoC7pYJvZ91ogaM 러셀의 할아버지는 훗날 영국이 프랑스 혁명에 지나치게 개입 전쟁 수행했던 것을 이렇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국민들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선택할 권리는 존중받아야 하고, 다른 국가들이 전쟁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진압했던 것은 지나쳤던 것이었다고. 20대~30대 무렵 엘바섬의 나폴레옹을 만났고, 19세기 중반 영국 수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수상이 된 후 나폴레옹이 꿈꾸었던 더 나은 민주주의 향한 입법으로 귀족들 소수만 참여하는 입헌군주제를 대중이 참여하는 쪽으로 개선 노력. ---------------> 믿기지 않는 것이 2차대전 전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할아버지가 나폴레옹 전쟁 세대라는 것. ---------------> 1810년대에 영국의 젊은 의원이 적국의 최고 지도자가 유배된 섬을 방문해 대화했다는 것도 놀랍군요. ---------------> 저 당시 오늘날과 같이 직접 선거로 뽑힌 하원의원 아닌 세습직일 수도 있는데 저런 유연함을 갖춘 것도. 개인적으로도 나폴레옹-프랑스는 외국의 지나친 간섭 무력 개입에 의해 진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혁명은 엄청난 유혈을 불러왔지만, 그 유혈의 상당 부분은 외세의 극단적 혁명 진압 개입으로 초래된 측면도. 부패 무능한 왕정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권과 공화정 수립은 정당했었고 프랑스는 그 부분에서 인류에게 큰 기여를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내부의 비인도적인 학살 처형과는 관련 없고, 프랑스 혁명 진압 위한 외세 개입과의 투쟁 과정에서 등장했던.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영국은 국익 때문에 프랑스 민주주의 발전을 짓밟았던 성격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강대국들 특히 패권국들은 기본적으로 깡패입니다. 그나마 인류는 교양있는 깡패가 패권을 장악한 것에 안도해야 할 수도. 자신들의 개입과 전쟁 수행이 국익 때문임을 인정하면서, 패배한 상대를 존중하는 깡패.
@jwoon20002 жыл бұрын
@@scz8333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가 된것은 언급하시지 않는군요. 프랑스 혁명정신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나폴레옹의 대관식으로 변질되었고 영국은 초기엔 대휵의 왕권국가들을 거들어 반혁명에 가담했지만 나중엔 강력한 프랑스 나폴레옹 전제군주에 대항한것으로 보는게 적절한거 같습니다.
@yngsklee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불교의 무아사상과 삼법인을 불교보다 더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주신 것 같습니다. 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찰나에 존재하는 물거품과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다. 내가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순간 인간은 욕구와 집착에 사로잡힌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곧卽즉6 ай бұрын
임제 스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참으로 중요한 것은 참 되고 바른 견해를 구해서 천하를 마음대로 다니면서 도깨비 귀신에게 홀리지 않는 것이다 *일이 없는 사람이 참으로 귀한 사람이다* 다만 억지로 조작하지 말라 오직평상의 생활 그대로 하라 그대들이 밖을 향하고 옆집을 찾아 헤매면서 방법을 찾아봐야 그르칠 뿐이다 단지 부처를 구하려 하나 부처란 이름이며 글귀 일 뿐이다
@서태희-k6m2 жыл бұрын
선생님 강의를 접할 수 있음이 행운이며 감사합니다...
@XellossKor Жыл бұрын
깨닫는다고 나를 잊을 순 없는것 같아요 다만 나가 있다고 믿으면서 발생되는 번뇌가 빨리 사라질 뿐입니다^^
@경재박-d6w Жыл бұрын
내용 좋습니다 우주는 흘러감만이 있을 뿐 이지요 나라고 인식하는 순간 , 이미 나는 사라지고 없죠 고정된 실체로써 나가 없는 것이죠 일주일만 지나면 60조 개가 넘는 몸의 세포가 다 바뀌어 버린다고 하더군요 만약 인간이 고도의 현미경 같은 눈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아마 전쟁은 사라지겠죠 다 욕망,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이니까요 영상 잘 보고 갑니다 💖👍
@자명0룽따2 жыл бұрын
모든 것은 나타났다 사라질 뿐 ,,, 감사합니다 ^^
@정대화-v9z2 жыл бұрын
멋진 영상이네요. 생각을 덩어리로 묶어 이렇게도 바라볼수나 하고 참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busa11jo112 жыл бұрын
좋아용~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의 다발일뿐이다. 욕망 기쁨 존재하는것 같아서 잡으려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나를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순간 번뇌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보충제에밥말아먹기2 жыл бұрын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 한다.고로 존재 한다.’ 라는 말도 무아사상의 측면에서 보면 틀린 말이다 ‘나’라는 것 자체가 진정한 ‘참 나’가 아닌것이고 그것이 하는 생각 즉 ‘허상의 생각’은 존재 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 라고 인식하는 허상을 관찰하는 관찰자 적 ‘참 나’만 있을 뿐 말 장난 같기도 하지만 나무는 아무런 생각이 없지만 존재한다. 즉, 모든것은 허상이라는 뜻이다
@화배-d2i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삶의 지평이 넓어진 것 같아요
@별명-r2k2 жыл бұрын
진짜 깊고 생각이 많아지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dille-vr3gn8 ай бұрын
스님께서 사는 건 일장춘몽이다 괴로울 필요 없이 한바탕 꿈이다 생각하고 웃고 살다 가면 되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하나-s5z7c2 жыл бұрын
나라고 생각한 육체나 정신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다른 대상들과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연기법에 의해 인과관계를 갖는 하나의 객체일뿐입니다. 결국 세상에 일어나는 것들은 철저한 인과로 일어나니 나(생각의 착각 다발)라는 생각이 끼어들틈이 없습니다.
@잡순-g9b2 жыл бұрын
어려운 내용인데 끝에 마무리 멘트에 느낌이 확 옵니다.
@jwoon20002 жыл бұрын
대륙의 합리론 철학이 거북했었는데 영국 경험론 - 분석철학 관련 책을 읽고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저는 종교 만큼이나 대륙철학을 헛소리라고 항상 생각해왔죠 고딩때부터.. 현대 프랑스철학은 정말이지.. 정확하고 깔끔한 영상 잘봤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곧卽즉6 ай бұрын
너희들의 몸은 마땅히 부처의 성품이 본래 있는 몸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수행자修行者는 본성을 깨달았을 뿐이요 특별한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본래의 성품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성품이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마음과 같다 앞부처와 뒷부처가 오직 이 마음을 전하셨을 뿐 이 마음 외에 따로 부처를 볼 수 없느니라 🤔생각이 뒤바뀐 중생들이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밖으로 구해 달리되 종일토록 왔다갔다하며 부처를 생각하고 부처에게 예배한다니 부처가 어느 곳에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은 생각을 짓지 말라 그대의 마음이 곧 부처라 👍그저 자기의 마음을 알기만 알기만 하면 마음외에 다시 다른 부처가 없다 🧘♂️달마 혈맥론 중에서🧘♀️
@MT-yq7io Жыл бұрын
내가 내가 아니라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시인되는 거네요… 모든 철학들이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것 같네요…
@dongsupark21242 жыл бұрын
의외로 불교철학이 엄청 정확하네요. 교수님 책 2권은 아직 ebook으로 안나왔네요 두권다 주문해서 봐야 겠네요.
@버스커케이2 жыл бұрын
대단하십니다...동서양의 철학을 아우르시다니...^^
@jk-lj3qp2 жыл бұрын
훌륭합니다. ^^ 사과는, 물/영양분/온도/기압/농부/공기/지구/달/습도/우주/땅/거름 등 수많은 원인들과 조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 이것을 머라고 불러야 될까요?? 사과가 아닌것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사과라고 부를수도 없고, 또한 사과를 이루는 저 무수한 원인들도 조건들도 또다른 원인과 조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색즉시공/실체가없다/사과라고 할만한게 없다/사과 그대로가 공하다/연기법) 붓다는 , 이렇게 일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일체가 공하니, 나또한 공하다=이것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나만볼꺼야-e7n2 жыл бұрын
너무너무 좋은 영상이네요ㅠㅠㅠ정말 감사합니다
@땀쟁이아빠2 жыл бұрын
존재한다라는 정의에 혼돈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실체를 존재로 본다는 기준과 기호나 정보로 구성된다고 하는 것도 실체라고 보는 관점에 혼돈이 있습니다. 제로나 없음이 사념에서 기호로 사용되면서 실체로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물리과학에서 해석을 위해 허수를 사용할 수 있게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반물질을 추출할 수 있게 된 것도 실체에대한 우리의 인식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말하고 헛소리가 아닌 결과로 나타나게 되면 인정받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지속성이라는 과제가 있지만 일단은 인정을 받으면서 지속성을 추궁받는데, 이를 극복하면 신앙이 되곤하죠. 인류의 인식의 형태는 아주 괴물같기 때문에 잘 알고 처신해야 성공을 계속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장순민-y9j Жыл бұрын
과거미래는 없다는것을 누구나 알죠. (현재) 의심하고있구나 걷고 있구나 앉는구나 눕는다. 눈을 깜박거린다. 호흡한다. 현재는 어디일까요? 현재는 과연 있는걸까요? 나는 무엇일까요? 나는 이거다...하는순간(반짝지나는순간) 이것은 나가 아닙니다. 반짝~ 이것이 나일까요?ㅎ 나라고 할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했다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실제는 내가 없는데ㅡ"내가했다"는 생각이 강할 수록 인식의 오류가 심각한것이라서 정신병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내가 했어도 겸손한 마음을 가질때, 실제에 가깝기 때문에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조선-m1f2 жыл бұрын
대단히 감사합니다.ㅎ
@SEO-d9o Жыл бұрын
인간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때는, 발생하는 사태 속에서 그 사태를 엮어서 인식 가능한 의미를 이룰 때이다. 사태 안에 있으면서도 그 사태 속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으로 부터 떨어져 사태를 보는 것이다. 다람쥐는 사태에 매몰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사태에 매몰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그 사태와 일치된 상태가 무아라고 생각한다. 자유의 의미는 이러한 무아이다. 자유에 대한 인식이 없는데 어떻게 자유를 느낄 수 있겠는가.
@lionroar2 жыл бұрын
“나”라는 것은 수많은 신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방일 뿐입니다.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나쁜 신이 앉아 있을 땐 얼른 쫓아 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좋은 신이 앉아 있을 땐 좀 더 오래 앉아 계시도록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망고시로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smokemirror15832 жыл бұрын
러셀도 불교 철학을 긍정적으로 보았었군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dongsupark21242 жыл бұрын
사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 하려면 육체와 정신 물질과 정신의 관계에 대해서 좀더 연구를 해야죠 ^^ 흄에 대해서는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영상 즐겁게 봤습니다.
@소금인형-k5j Жыл бұрын
강의 정말 좋습니다. 다른 강의들도 탁월하지만 특히 이번 강의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불교의 정수에 대해 이렇게 쉽고 좋은 예를 들어 설명한 글이나 영상은 처음입니다. 강의를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멋집니다.
@wook83612 жыл бұрын
이 영상이 저와 연관되었다는 생각을 하는것만으로도 무언가 저를 잠식하는듯한 느낌이고 마음한쪽 구석이 아프며 제가 얼굴에 변화가 오는듯한 느낌입니다. 더는 영상에 주인공이 되고싶지 않습니다. 더 하고 싶은말도 있고 해야하는 말도 있지만 그냥 과거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hihun08292 жыл бұрын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이대호-j3s2 жыл бұрын
이 채널 평소에도 즐겨 보는데 이번 영상은 더욱 유익하네요..
@hwa812 жыл бұрын
종교가 되기전 초기 불교 철학 니까야 등에는 정신분석 측면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유식학파의 말나식 , 야뢰야식 분석도 흥미롭죠. 초기 석가의 무아 는 생각 포함 모든게 조건에 의해 생겼다 사라지는 연기 작용의 오온작용으로 존재하므로 고정된 형태의 '나' 라고 불릴게 없다는건데, 몸을 관찰하면 먹는 물과 음식에 의해 성분이 변화되며 태어나 변하고 죽으므로, 퉁쳐서 '나'라고 부르는 이미지는 편의상 사용되는 개념적 허상이라고 받아들여지더군요. 로고스 , 언어의 분절성, 산업화 이후 빠른 세상 변화의 영향 등으로 인간 단위는 예전보다 더욱 자연상태에서 분절되어 자연 노화 흐름과 개념화된 이미지 존재인 '나'의 중요성이 더 커진듯 합니다. 라마나 마하르쉬는 깨어있을 때, 잠잘 때, 꿈꿀 때 3가지 의식 상태 경험을 말하며 그 뒤에 모든것을 아우르는 침묵과 같은 의식이 있다고 했죠. 언어의 한계 때문에 쪼개져 개념화된 인식인 '나' 는 주체이거나 진짜 실체 일 수가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러셀의 의견에 공감이 되네요. 허상에 대한 허구적 토론이죠.
@Bak-Do-Min2 жыл бұрын
🙏🙏🙏🙏🙏🙏🙏🙏🙏
@Proximity_Bondage2 жыл бұрын
좋은영상 너무 감사드립니다
@7080fusionArt2 жыл бұрын
시즌2는 각각의 영상이 단편이라기보다 에피소드 처럼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시리즈라고 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ㅎㅎ 다들 즐거운 연휴 보내시기바랍니다~
@곧卽즉6 ай бұрын
부처님 말씀에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있는 것이 있는 곳에 부처가 있다' 하셨으니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인지라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예배하지말지니라. 만일에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홀연히 나타나더라도 절대로 예경 하지 말지어다 내 마음이 공적空寂하여 본래 부처니 보살이니 하는 이러한 모습이 없나니 만일 형상을 취한다면 곧 魔마에 포섭 되어 모두가 삿된 도에 떨어지리라 만일 허깨비가 마음에서 일어난 줄 알면 예경 할 필요가 없나니 절하는 이는 알지 못하고 아는 이는 예배하지 않느니라 예경 하면 곧 마에 포섭 되리니 마음 공부를 배우는 사람이 (學人이) 행여나 알지 못 할까 걱정 되어 이와 같이 밝혀 두노라. ~ 달마 혈맥론에서~
@강혜경-i2b2 жыл бұрын
거의 다람쥐처럼 살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김승구-x4o2 жыл бұрын
월요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오분뚝딱철학~
@K고운2 жыл бұрын
영상이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동해시-c1d2 жыл бұрын
내가 네 그 마음의고통을 고쳐줄터이니 네 마음이란놈을 꺼내보아라 고통에 지배받고있는위치의나 고통을 꺼내보이기위해 고통보다 위에선나 그리고 고통이란 마음을 분리한나 마음먹기 달렸다 마음에 지배받고있다
@1000억부자-y5u Жыл бұрын
5분 뚝딱 철학 책 두 권 주문했어요. 유튜브으로 너무 공부가 되어서 내용 전부 보고 싶었어요. 유튜브 내용 항상 감사드려요. 많은 사람들이 5분 뚝딱 철학으로 공부가 많이 되길 바래요. 앞으로도 좋은 영상 많이 만들어주세요^^
@SungHoonChoi4U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드려요
@JHS-gu4lw2 жыл бұрын
어떻게 보면 동물이 인간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무아지경에 이른 생물일지도..... 그런데 이러면 무아지경이 본능의 충실히 살라는 느낌인데....음....
@박병준-m5z2 жыл бұрын
러셀이 저런 탁월한 분석가일줄이야... 설명 감사합니다.
@scz83332 жыл бұрын
버틀런드 러셀의 1950년대 인터뷰 : 러셀의 할아버지가 엘바섬을 방문해 나폴레옹을 만났다고 합니다. kzbin.info/www/bejne/aoC7pYJvZ91ogaM 러셀의 할아버지는 훗날 영국이 프랑스 혁명에 지나치게 개입 전쟁 수행했던 것을 이렇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국민들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선택할 권리는 존중받아야 하고, 다른 국가들이 전쟁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진압했던 것은 지나쳤던 것이었다고. 20대~30대 무렵 엘바섬의 나폴레옹을 만났고, 19세기 중반 영국 수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수상이 된 후 나폴레옹이 꿈꾸었던 더 나은 민주주의 향한 입법으로 귀족들 소수만 참여하는 입헌군주제를 대중이 참여하는 쪽으로 개선 노력. ---------------> 믿기지 않는 것이 2차대전 전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할아버지가 나폴레옹 전쟁 세대라는 것. ---------------> 1810년대에 영국의 젊은 의원이 적국의 최고 지도자가 유배된 섬을 방문해 대화했다는 것도 놀랍군요. ---------------> 저 당시 오늘날과 같이 직접 선거로 뽑힌 하원의원 아닌 세습직일 수도 있는데 저런 유연함을 갖춘 것도. 개인적으로도 나폴레옹-프랑스는 외국의 지나친 간섭 무력 개입에 의해 진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혁명은 엄청난 유혈을 불러왔지만, 그 유혈의 상당 부분은 외세의 극단적 혁명 진압 개입으로 초래된 측면도. 부패 무능한 왕정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권과 공화정 수립은 정당했었고 프랑스는 그 부분에서 인류에게 큰 기여를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내부의 비인도적인 학살 처형과는 관련 없고, 프랑스 혁명 진압 위한 외세 개입과의 투쟁 과정에서 등장했던.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영국은 국익 때문에 프랑스 민주주의 발전을 짓밟았던 성격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강대국들 특히 패권국들은 기본적으로 깡패입니다. 그나마 인류는 교양있는 깡패가 패권을 장악한 것에 안도해야 할 수도. 자신들의 개입과 전쟁 수행이 국익 때문임을 인정하면서, 패배한 상대를 존중하는 깡패.
@정모-t3x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하늘노래-u2o6 ай бұрын
일상에서 무엇인가 사려고 할때 딱 지금아니어도 후에사도 되지..하면서 넘기고 또 넘기고 하다보면 어느순간 내가 그게 반드시 필요했었나? 이런생각이 듭니다..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억이 소멸되었나? 아니면 원래 필요치 않았나? 두가지 궁금증이 자주 생깁니다. 결국 그 기억이 애초부터 없었던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아니면 자연속에는 필요한것들이 없었나..이미 그자리에 있기때문에..강의 잘 들었습니다 ❤❤
@혼자놀기-g5c2 жыл бұрын
내용너무좋다
@까산이2 жыл бұрын
법륜스님이 산 속에 토끼나 다람쥐를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나네요. 어떻게 보면 그들보다 인간은 못 한 존재인 것 같아요ㅎ
@googlekorea_2 жыл бұрын
너무 좋은데요! 평소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정보의 묶음로만 정의할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콘텐츠가 저의 이런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된것같아요.
@viewtheviewers48042 жыл бұрын
짱 👍
@kiminseattle34762 жыл бұрын
와~~~ 무아에 대해 어렴푸시 알것도 같다가 아닌것도 같았는데 와오~~~ 감사합니다.
@전자공학의악마2 жыл бұрын
논리학자의 미신에 관해서, 나는 이러한 미신론자들이 기꺼이 인정하려고 하지 않은 사소하고 간단한 사실을 지치지 않고 매번 반복해서 강조하고자 한다. - 즉 하나의 사상은 '그 사상'이 원할 때 오는 것이지 '내'가 원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 '나'는 술어 '생각한다'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그 무엇이 생각한다.(Es denkt) 그러나 이러한 '그 무엇'이 바로 저 오래되고 유명한 '나'라고 한다면, 부드럽게 말한다고 해도, 단지 하나의 가정일 뿐이고, 주장일 뿐, 특히 '직접적인 확실성'은 아닌 것이다. 결국 이미 이러한 "그 무엇이 생각한다"는 것으로 너무나 충분하다 : 이미 이러한 '그 무엇'에는 사유 과정에 개한 하나의 해석이 함축되어 있으며, 그 과정 자체에 속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문법적인 습관에 따라 "사고라는 것은 하나의 활동이며, 모든 활동에는 활동하는 하나의 주체가 있다. 그러므로 -"라고 추론한다. 대략 이와 같은 방식에 따라 옛 원자론은 작용하는 힘에 대해, 그 안에 힘이 존재하고 그로부터 힘이 작용해 나오는 저 물질 덩어리, 즉 원자를 찾았다. 엄격한 두뇌의 소유자는 결국 이러한 '지상의 잔여물' 없이도 꾸려나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아마 어느 날 사람들은 또한 논리학자들의 입장에서 저 작은 '그 무엇' (존경할 만한 오래된 나(자아)는 그 무엇으로 도피했던 것이다.) 없이 꾸려나가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UCJqIUBcL-2ZeJ2FsrUwT9Ag2 жыл бұрын
와........ 네번째 보는 중 데카르트의 존재론은 망상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들을 과학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였다.
@samma-sati2 жыл бұрын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talentdoesnotexist.34782 жыл бұрын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가 컴퓨터프로그램이라는 세상속에서 cpu가 어떤 정보를 처리할때 생기는 전기스파크같은 존재라는건가. 근데 전기스파크 일어날때의 그 순간에는 어쨋든 '나'라는게 있는거니까 무아든 유아든 그냥 찰나찰나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가면 그만 아닌가 그리고 무아라면 그 전기스파크 일어나는 그 순간에만 내가 존재하게되는거니까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하다 생각되는데. 무아를 깨달으면 번뇌와 집착이 사라진다는데 오히려 무아를 깨달으니 순간순간이 너무소중해져서 삶에 더욱 집착이. 되는듯? ㅎ
@dancingintherain75472 жыл бұрын
자아가 존재해야 뭐든 이를 기반으로 생각을 시작할수 있으니 그동안 당연히 받아들여왔었을겁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체가 없다고하면 양자역학을 처음 대할때처럼 아주 혼란스러울거에요. 생각이 벽에 부딪힐때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의심해보는 건 당연한 과정입니다.
@무슨의미가있겠2 жыл бұрын
헉 Feat.불 .. 못참지 빨리 운덩 다녀와서 봐야겟다
@sejunelee51062 жыл бұрын
좋은영상 감사합니다람쥐.
@luki79542 жыл бұрын
오늘 영상의 주제와 관련해서 불교, 흄, 러셀의 대표적인 책도 함께 추천 부탁드립니다.^^
@mrben63102 жыл бұрын
무아라는 경지는 서양철학의 단편적인 표현의 비슷함으로 동일시하기엔 모자른면이 많죠
@vezitamax2 жыл бұрын
오늘 철학은 동의하기가 좀 어렵군요
@정진우-n8u2 жыл бұрын
어렵다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 또 봐야할 영상
@차원혁-r3m2 жыл бұрын
이것은 유투브가 아니다. 그저 화소들의 RGB값이 정해지는 전자기파의 주파수가 일정한 패턴으로 바뀌고, 다양한 크기의 진동이 일정한 패턴으로 있는 것일 뿐이다.
@unlysiss2 жыл бұрын
그것들조차도 허상이 될수 있지 않을까요
@withnotbrain2 жыл бұрын
나는 생각할수도 있고, 걸을수도 있고, 유튜브를 볼수도 있는데... 그런것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완전히 정지해서 가만히 있는것도 가만히 있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하지 않아야 됩니다.... 결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라는건 없습니다... 말그대로 없는겁니다... 존재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가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보편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태현-s1v2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매일 나는 왜 돈을 버는가에대해 고민중인데, 어느정도 답이 나온것 같습니다
@곧卽즉6 ай бұрын
🎊마음은 본디 생겨 난 것이 아니라 본래로 구족具足되어 있기에... 사라 질 수가 없는 것... 이 도리는 자신이 직접 경험 해 봐야 아는 것. 밥을 먹어야 밥 맛을 경험하는 이치처럼... 그 본래부터 있었던 마음 자리를 수 많은 사람들이 사람 몸 받아 놓고 그 본래 자리를 모르고 살다 손님으로 간다 주인행세 한 번 못해보고 ... 이 어찌 사람으로서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으로 태어 난 것은 그 각자 주인공을 드러내라고 사람 몸 받은 것인데 감각기관에 끌려 다니면서 이리 저리 방황과좌절 도전과 성취감에 휘청거리며 중심 잡지 못하고... 본래, 그윽하니, 가만히, 아무런 흔적이 없는 마음자리, 한 물건(一物) 에서 한 생각 일으켜 천차만별千差萬別로 벌어지는 현상이 바로 윤회輪廻인 것... 모든 것은 생겨 났기에 사라 질 수 밖에 없다 생겨 났다 사라지기를 반복... 돌고도는 세상사= 윤회 輪廻😊🙏 🌴🧘♀️🌴🧘♂️
@꾸오빠이2 жыл бұрын
얼마 전 말기암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 지인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극한의 고통을 어찌 환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나요? 비록 찰나에 존재하는 '나'라고 할지라고 분명히 고통을 겪고 있는 '나'가 아닌가요? 수없이 많은 '나'들이 수만겁의 기간동안 우주에 쌓이고 쌓인 고통과 괴로움의 무게는 실로 무한에 가까울 것이며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블랙홀보다도 무겁게 온 우주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질문요정-n7w2 жыл бұрын
니체의 낙타 사자 아이와도 같은 과정을 겪는다 햇는데. 아이의 상태가 모든걸 받아들인다? 라고 알고 있는데 무아 사상이나 다발 이론과 같은 맥락인가요??
@김형태-s5k2 жыл бұрын
상당히 수준 높은 내용입니다. 무아라는 생각조차 없는 그 자리, 생각이 없다라는 생각조차 없는 그자리가 바로 원래의 자리 "무아" 입니다. 내가 없으면 하나가되고, 만상이 하나임을 알게됩니다.
@user-vw4xs2xp9v2 жыл бұрын
만상을 알았음 이곳 어디에있든 알게되는거임 나는 없음 무아에서는 나라는게없음 실체가없음 근데 미래를 봄 어느곳에있든 어느 세계에 있든 그쪽 세계든 이쪽 세계든 우주를보든 다른 세상을 보든 근데 그곳이 어디에있는지 모르는거임 ㅋㅋㅋㅋ 실체는 이곳일수도 아님 다른세계일수도 찾으면 있을거임 ㅋㅋㅋㅋㅋㅋ 가짜는 아님 기억된 환영은 아니니깐
@woj528ify2 жыл бұрын
무아의 경지 최종형태는 기계임. 인간도 결국 일종의기계임
@무지암무도2 жыл бұрын
러셀의 기술 이론은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씀과 일맥 상통하는 것인가요?
@장찐찐2 жыл бұрын
12:16 어렵네여;....여태까지 개인의 합리적 , 이성적 판단 이라는 것에 엄청반했는데 그 반대? 의 무언가가
@행복한인생-z8y Жыл бұрын
를 추천합니다. 성불한 미국의 재가불자가 뇌과학, 양자철학 등 현대과학의 언어로 깨달음의 세계를 전합니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Common_Teacher__325 күн бұрын
알면 알수록 두려워지네요…
@비밀비밀임-p4d2 жыл бұрын
불교철학을 연결하여 설명하여 주시어 감사드려요. 일체개공의 논리가 다른 서양철학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연기에 근거한 ‘자타불이’사상이 대승불교의 육바라밀-‘보시’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논리를 제가 잘 연결할 수 없어 문의드려요. (유교사상에서는 그래서 불교는 ‘무’를 강조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일심’을 스피노자(?)적으로 해석하면 ‘자타불이’는 이해되는데요. 달관하는 삶의 근거로 타당하며 적극적 ‘보살행’의 실천 근거로는 부족한 듯하여서요. 반면 ‘일심’을 맹자적 ‘양심’(직각적 도덕 능력)으로 이해할 때에 적극적인 ‘자비’의 실천이 이해되고요. 어떤 학자의 입장에 근거하여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을까요? 각각에 해당하는 불교 이론이 모두 있을 듯한데요… 무엇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의(?)일까요? 부처님이라면 ‘둘 다 맞다’라고하시고 구분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노자도 맞고 공자고 맞고 맹자도 맞고 장자도 맞고… 모두 맞는 말이면서 맞지 않는 말이니(?) 구분하지 말렴~. 이러실까요?
@mindisnoting2 жыл бұрын
자연계에서 코끼리 사자 쥐 중 어느것이 자연계에 합당한것일까요? 당신의 사고는 인간의 논리에 갇힌 편견일뿐입니다
@권영일-y4q2 жыл бұрын
부처님자비를 동체대비라고 하죠 우리는 원래 일심, 한마음이라고도 합니다 현재는 분명 너가있고 내가 있어 다른거 같지만 근본으로 돌아가보면 본래 하나라는 거죠 그래서 동체대비의 중생의 아픔을 내가 아픈거처럼 자비행을 실천해야한다고 합니다
@귀여운아희2 жыл бұрын
대승불교를 이해하시려면 무상의 개념이 초기불교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min-cheolpark31513 ай бұрын
러셀의 기슬이론 설명중에 “시간은 흐른다” 라는 문장이 잘못된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네요. 시간은 실체가 아니라서 주어에 들어간 경우 술어의 참 거짓을 판명할 수 없다 정도로 이해했는데 영상에서는 흐르지 않는 것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해가 가질 않네요ㅠ 혹시 설명해주실 분이 있을까요?😢
@안세혁-s4e2 жыл бұрын
다랑쥐처럼? 다람쥐가 인간처럼 되었다가 붓다가 되어야죠 아나빠나사띠 혹은 자기객관의 여러 방편으로 경험적으로 무아를 체득하고 다시 개체로 돌아오지 않을 결심이 섰을 때 깨달음의 첫 발을 떼는 것인데... 음~~~
@중용-y3f2 жыл бұрын
감사
@부정어2 жыл бұрын
효과음때문에 우리집 강아지들 뒤집어짐. 띵~~~ 이런 소리에 공포감을 느끼는거 같아요. 이것을 5분철학으로 설명 할 수 있을까요? ㅋㅋㅋ
@junhochoi24422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질문이 있는데요 1.‘나’라는 실체가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가진 특징들이 먼저 존재하고 그걸 불완전하지만 간편히 지시하는 말이 ‘나’라는 거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2. 질문은 아니고 제 생각이에요. 제 생각에도 사실 모든 건 자연현상이며 따로 본질이라는 게 우선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건 자연히 일어나는 것이고 사람의 생각도 우주가 생기고나서 어쩌다보니 생겨난 것이겠죠. 그렇게 우연히 생겨난 것들이 우선하고, 본질/가치 이런 것은 사람이 사람을 특별하게 여기고 싶어서 따로 프레임을 만들기 때문에 생기는 거 같습니다. 다른 것보다 우월한 가치관이나 우월한 존재??나 복잡한 구조같은 그런 건 세상에 따로없다 생각합니다. 각자의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차피 주관적이지 않을까요?다만 모든 생각이 주관적이니 다른 이의 주관만 파괴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모두가 최소한의 괴로움으로 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것만이 인간이 다른 자연물과 다르게 추구할만 한 것 아닐까요
@노준혁-h1k2 жыл бұрын
마지막 말은 세네카의 철학도 생각나게 해주셨습니다.
@broadykim23122 жыл бұрын
만약에 나라는 존재가 찰라적인 감각과 감정의 다발이거나 아지랑이 라면 기억과 트라우마가 계속 남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뭘까요 ? 그리고 그렇다면 나와 타인의 개체가 구별 가능 할까요? 아님 아예 구별 이 없는 건가요? 실재에선 끊임없이 차이를 경험하고 식하게 되는데요 흥미로운 얘기라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듭니다
@aigoiaoidoi22152 жыл бұрын
아마도 과거에 나와 지금에 내가 같다고 생각하는 것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속성은 있을지 몰라도 같진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