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화편이 많은데, 은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인생이 그의 변론속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전을 읽는데 있어서 누구의 번역본을 읽는지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엉터리 번역이 많이 때문입니다. 플라톤의 책은 박종현이나 천병희의 번역은 안심하고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천병희 선생은 아름다운 우리말로 깔끔하게 번역하였고, 박종현 교수는 헷갈리는 말에 대해 그리스 원어를 가지고 설명해주어서 좀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bookwindow3 жыл бұрын
책을 낭독하면서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번역가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어 번역 이전에 모국어로 글 쓰는 능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낭독 과정이 굉장히 어려웠는데요. 그 원인 중 하나가 번역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amygdala083 жыл бұрын
추천 감사합니다. 갖고 있는게 있지만, 다시 한 권 더 사려던 참이었습니다.
@흥렬위2 жыл бұрын
@@bookwindow 번역은 제2의 창작 이라네요 멘부커상을 탄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문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의 상금도 한강과 같았다고 들었네요. 그만큼 번역의 중요성을 말하는것이겠죠. 좋은 낭독,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bookwindow2 жыл бұрын
@@흥렬위 네에~ 정말 공감합니다. 번역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른데 낭독자의 입장에선 더욱 아주 예민하게 느껴지지요.
@충주시장조길형.모든 Жыл бұрын
Q
@무국-o6b9 ай бұрын
선생님, 감사합니다. 끝까지 들어야함니다. 정말 기 내요.
@momomomo-vp4hu2 жыл бұрын
목소리가 참 신기하리 만큼 좋습니다. 읽기 싫고 재미없는 책도 선생님이 읽어주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
@강경복-b7r7 ай бұрын
햐~탄복 탄복했다 마지막 말씀 명언!!! 역시 소크라테스 위인!!!
@왕김-t6f6 ай бұрын
많은 책을 읽었으면서도 이런 명문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도 해본적이 없어요.신 만큼의 지혜로움에는 많이 부족하지만,인간들 가운데 최고의 지혜는 맞습니다.격.논리.서정.꿰뚫는 지혜.모두 최고의 정신입니다.정독해 보겠어요.넘 고맙습니다.꾸벅.😅😅😅
@강경복-b7r7 ай бұрын
명언 좋은 글 내용 감사하게 잘 들었습니다 글 추천 읽어 주신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bookwindow7 ай бұрын
잘 들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창가에서 좋은 독서 여정 되시길요
@kalbee21867 ай бұрын
너무너무 잘 듣고 갑니다.
@안녕하셔요박미현교수 Жыл бұрын
강의 잘들어요. 책으로본지. 40십년전.나이먹어눈. 나쁜데 강의들어서. 감사합니다
@bookwindow Жыл бұрын
오래 전 읽은 책들을 다시 접하는 일은 남다른 감회와 함께 전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듯합니다. 오디오북으로 편안하게 청독하시길~
@이이맹윤3 жыл бұрын
제인에어, 너무좋아 다시 들어왔습니다. 향연에 이어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고전을 다시 접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bookwindow3 жыл бұрын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많은분들이 제인에어를 재독하시더군요. 저도 가끔 다시 듣습니다~~^^
@momomomo-vp4hu2 жыл бұрын
어렸을적 읽었던 책을 다시 또 접했는데 새롭고 더 많은 공감과 감동이 와닿는다. 아뭏튼 명저는 참으로 좋은 선생이고 친구이다.
@dwbhy112 жыл бұрын
잘들었습니다
@이이맹윤3 жыл бұрын
잘들었습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것이 배움의 시작인 것을...
@bookwindow3 жыл бұрын
죽음으로 삶으로 떠나는 두 길 중 어느 쪽이 더 좋을지는 신만이 안다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도 인상적이더군요~^^
@인병선-e3o5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잘들었습니다
@조만식-c3g Жыл бұрын
감사해요
@기마루 Жыл бұрын
소크라테스 멋있다.. 거의 모든 이에게 미움 받았지만 철학을 좋아하고 좋아함을 알았고 본인의 줏대를 꿋꿋하게 드러냈고 그렇게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는 점이 멋있네요..
@bookwindow Жыл бұрын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거리에 서서 사색에 잠긴 채 하루 종일 서 있기도 하죠. 에서 그의 다양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답니다^^
@최수진-q5l Жыл бұрын
형편없어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현명하게 보였던 소크라테스~ 역시 테스형 멋지다. ♡♡♡
@bookwindow Жыл бұрын
소크라테스의 멋짐은 창가에서 낭독한 여러 책에서 증명되고 있어요. 향연에서 특히 구체적인 그의 언행이 나타나있죠. 신기했습니다. 하루종일 그 자리에 서서 명상하듯 사색에 몰두하는 모습이요. 인간의 역사라는 책에서도 그의 행보가 잘 나타나있죠
@mirashin84008 ай бұрын
Thank you ❤😊
@임창재-x3v3 жыл бұрын
어떻게 이런 기록들이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 그 시대에는 문자가 보편적인 지식 전달의 수단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 당시 사람들은 구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능숙했습니다. 그 당시에 소크라테스가 자필로 기록을 남기지 않은 이유가 문자의 기능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는데 자기 머리속에서 자기가 이해해서 기억하는 내용이 아닌 문자로 적어서 지식이 전달되는 것은 진정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내용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것 같군요. 즉 구전으로 무엇을 전달할때는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이해가 필수적으로 필요하고 이해가 없다면 그래도 수 많은 반복숙달이 요구되는 것이죠. 그런데 문자를 읽어서 정보를 전달할 경우 그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요구하면 전달자는 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종종 나타나고 이것은 그 자체로 정보의 왜곡을 가져온다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구전으로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은 문자를 사용하는 것보다 엉청나게 많은 기술을 필요로 하죠. 일단 상대의 말을 정확하게 듣고 이해하는 기술이 필요하고 그것을 반복해서 해석하고 소화하는 과정도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현대의 비슷한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면 바둑기사들이 수많은 기보를 기억하고 그것들을 완벽하게 복기해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둑을 수없이 두면서 하나의 흐름과 규칙을 내면화하고 그 규칙을 통해서 수많은 정보들을 기억하고 다시 복기해내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정보를 구두로 전달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대화 속에 있는 논리를 일정한 체계로 정립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가 전달하는 내용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재배열하는 능력이 없으면 수많은 정보를 구두로 전달한다는 상황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죠. 문자는 확실하게 더 많은 정보에 접근을 인간에게 허용했지만, 그 만큼 깊은 사고를 하는 능력은 거두어 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이용하면서 정보의 바다에 접근하는 길이 열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디지털 치매에 시달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죠. 인간은 수 많은 것을 이미지화 하고 패턴화하여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계 기억력 챔피언쉽 같은 것을 보면 인간의 기억력이 얼마나 넓게 확장될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주죠. 하지만 기억력의 확장이 무조건 더 넓고 깊은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머리에 넣는 정보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게 되게 때문에 기억은 잘 해도 그 속에서 창조성이 크게 발휘되지는 않는 역효과도 또한 같이 일어나는 것이죠. 어떤 분야를 깊이 아는 만큼 그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는 바보가 되는 상황, 넓게 많이는 아는데 깊이가 없는 지식이 이런 맥락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죠. 우리는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이고, 시간을 하나에 투자하면 나머지 부분에서는 퇴화가 동시에 발현되면서 일정한 패턴 안에서 에너지 소비가 일어나는 동물이죠.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많이 알게 되면 될 수록 최종적으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바보일 뿐이라는 것, 즉 우리가 아무리해도 진리의 파편만을 맛 볼 뿐이므로 진리에 접근할 때는 자신의 본질적인 무지를 깨닫고 겸손하고 열린마음으로 상대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겠죠.
@bookwindow3 жыл бұрын
와우~ 이렇게 체계적이고 논리적이고 성실한 댓글을 읽게 되다니요. 정말 감사합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게되니 '어떻게 기록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됐나봐요. 디지털 치매... 정말 공감합니다. 한때 저는 스스로를 인간 네비게이션이라 칭했지만 이젠 간단하고 몇 번 갔던 길도 네비가 없으면 불안해요. 그리고 이름을 수없이 까먹어서 언어학 전문가인 친구에게 물었더니(동사는 안까먹는데 명사만 까먹는 거 같아) 고유명사만 망각하게 되는 것이라더군요. 그건 지식에 속하는 것이라... 무엇가 메모해두지 않으면 순식간에 잊어버립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싶어했는지조차도... 고대와 지금은 인간의 능력 자체가 많이 다른 것 같네요. 최근 구술문화가 또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구전이 또 그렇게 많은 능력이 필요한 줄 몰랐어요. 그랬군요... 당시엔 문자가 오히려 오해의 근원일 수 있었다니... 구전은 반드시 왜곡 굴절될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이 댓글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커뮤니티 방에 저장해 둘게요^^
@임창재-x3v3 жыл бұрын
@@bookwindow 고대와 지금은 인간의 능력 자체가 많이 다른 것 같네요. -- 아니요. 인간 자체는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유전적 변이를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고대나 지금이나 종 자체의 발전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시는게 맞을 겁니다. 단지 능력이 달랐던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방식이 달랐다는 겁니다. 고대와 지금은 삶 자체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는 현재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그 모든 정보를 머리에 담아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고대에는 사건, 사고가 거의 없는 일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지는 정보, 아버지가 가지는 정보, 아들이 가지는 정보가 모두 동일한 세상에 살았다는 것이죠. 아버지가 학자면 아들도 학자, 아버지가 노예면 아들도 노예식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가져야 하는 정보의 양과 내용의 변화는 큰 차이가 없는 사회라는 것이죠. 이런 사회에서는 아주 조그만 정보조차 권력이 됩니다. 최초의 문자는 거의 신의 의지를 알아보는 신탁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문자는 아주 소수에 의해 독점적으로 다루어질 수 밖에 없는 정보였죠. 그래서 대부분의 사회는 구전에 의해 정보를 전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역시 대단히 엄격하게 전승이 이루어졌습니다. 고전을 많이 읽으시니 아시겠지만 지금은 수학의 공식으로 다루어지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초기에는 세상의 섭리, 진리였고 그래서 신의 영역의 정보였으며 그것을 다루는 것은 아주 엄격하게 제한되어 자신들 속에서만 전승되었습니다. 이렇게 전승되어질 때 중요한 것이 맥락입니다. 그래서 고전은 많은 경우 이야기형태로 전승되고 운율과 소리 하나까지 원형에서는 그 시대의 규칙이 있었을 것입니다. 동양에서도 과거의 시들을 보면 정형시가 많았고 그 이후에는 조금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지식이 권력이었던 시절에는 음 하나, 하나의 변경이 신성모독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사람들은 그런 틀안에서 기억을 구전으로 전달하는 훈련을 혹독하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능력이 그들의 사회적 지위에서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수단이었을테니 말입니다. 지금도 바둑에서 나오는 신동, 그리고 모짜르트 같은 신동을 보면 어느 분야에서의 두각을 나타내는 신동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고 과거에는 무언인가를 쉽게 암기하는 능력을 가졌던 사람들이 권력층으로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었던 것이죠. 우리는 지금 어떤 책을 반복적으로 읽어서 그 내용을 통으로 머리속에 넣는 일을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렇게 자기들 머리속에 특정 정보를 집어넣어 그것을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것이 특권층의 허영이자 권위였기에 그 정보의 한자, 한자의 변형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상대를 배척하는 빌미가 되었던 것이죠. 구전은 반드시 왜곡, 굴절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맞습니다. 그런데 구전만 그런것은 아니죠. 소리와 뜻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계속 변화합니다. 엄격한 구전은 오히려 원형을 지키면서 과거의 정보를 그대로 우리에게 가져올 수 있지만 글은 쓰인 글쓴이에 의해 아주 쉽게 편집되고 왜곡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글을 보고 그 글을 쓴 화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실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이 아닌 다음에야 객관적인 글은 처음부터 만들어질 수 없고, 글로 된 기록들은 왕조나 지도체계가 바뀌면서 아주 쉽게 파괴되고 새롭게 쓰여질 수 있는 반면 민간에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구전은 사실은 원형 그대로의 정보를 담고 있을 가능성도 또한 농후합니다. 단지 시대가 변하면서 뜻이 변한 소리의 원뜻을 우리가 찾아내지 못할 뿐일지도 모르죠. 판소리 같은 것을 보시면 조선시대 후기의 소리인데도 우리는 그 소리를 바로바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소리가 그 시대의 원형의 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판소리처럼 윗대와 후대가 아주 엄격하게 도제식으로 전승을 하는 경우에는 글보다도 오히려 왜곡의 소지가 적은 것이 구전이죠. 우리가 고전을 볼때는 지금 우리의 상황으로 그 시대를 판단하면 안되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해가 없이 고전을 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식으로 정보를 짜집기하여 결론을 내는 컨텐츠들이 범람하여 요즘 인문학이 묘하게 왜곡되고 있는 것 같아 좀 씁쓸한데 좋은 콘텐츠를 꾸준히 많이 만들어 주시면 좋겠네요.
@bookwindow3 жыл бұрын
@@임창재-x3v 그래서 고전 자체를 그대로 낭송하는 이 콘텐츠가 저는 참 좋습니다. 고전 그 자체를 잘 읽지 않고 사람들은 고전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해석들을 즐겨 읽죠. 특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그렇습니다. 군주론을 묘하게 해석해서 처세술이나 성공힉으로 변형시키기도 하는데 울론 군주론에는 그러한 요소가 많긴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원전 자체를 충실하게 읽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어 고맙습니다~ 생떽쥐베리가 언어는 오해의 근원이라고 했는데요. 댓글을 읽어 보니 더욱 더 수긍하게 됩니다. 근데 저는 말이 오해를 양산한다고 생각했는데 문자 또한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구전이 가진 힘이 놀랍네요! 판소리가 재미있고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판소리를 낭독할 계획이 있답니다. 시대에 따라 인간의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참 재미있네요.
@강경복-b7r7 ай бұрын
소크라테스 마지막 명언 "나는 죽으러간다" 상대는 살아라 명 명대사 홀딱 반하다
@백인흠-k9n3 жыл бұрын
낭독해주신 책은 누가 번역한 책인가요? 출판사도 궁금합니다 의역을 너무 근사하게 했네요^^
@bookwindow3 жыл бұрын
제가 지금 외부에 있어서.... 책을 찾기 힘드네요. 실은 낭독할 때 번역이 그리 편하지 않았답니다. 초기에 낭독한 책인데 굉장히 힘들었어요^^ 댓글 보면 추천하는 번역가가 있습니다. 맨 위에 고정시킬게요. 박종현이나 천병희의 번역을 누구나 추천합니다. 참고하세요.
@백인흠-k9n3 жыл бұрын
전 문예출판사 황문수님이 번역한 책을 앍었는데 이 책을 읽었을 때 보다 책들려주는 창가 님이 읽어주신 책을 들을때가 훨씬 깊고 편안하게 책의 내용이 이해됩니다^^ 고맙습니다^^~
@이선비-ljg8 ай бұрын
변명이 아니라 변론이라고 지었어야합니다😂 감사합니다
@화타-m2i5 ай бұрын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저 양반 말은 맞기는 한데, 듣는 사람을 더럽게 기분 나쁘게 하는 '말투'로 말해. 두 세번 듣다보면 '소리 안 나는 총'이라도 있으면 쏘아 죽이고 싶단 말이야!~"~ 이랬던 성 싶네요. 소크라테스의 죄라면, "말투의 힘"을 간과한 거랄까요? 외람되오나, 제가 그 자리 배심원이었더라도 '그 어투, 그 기분 상하게 하는, 재판받는 태도' 등으로 보아 '소리 안 나는 총'인 유죄평결에 손을 들었을 듯요. 소크라테스는 의욕이 넘쳐 설득의 기술 중 '말투의 힘'을 좀 간과한 측면이 있어 보이네요. 1차 유무죄 평결에선 표차가 별로 안 나는 정도였는데, 2차 형량 평결 직전에 소크라테스의 계속적인 거만한 태도에서 사형선고 쪽에 압도적 숫자가 나왔다는 후문을 들었거든요. 이 영상을 청독하다 보니, '말은 다 맞긴 한데, (듣는 사람들이) 기분상하게 만드는 말투들만 골라 쓰시네' 싶은 느낌이 쏴~ 드네요^😥^
@더힐-m2n28 күн бұрын
죽음까지 합리화하는 자아도취, 모르는 것이 아는것이라고 자기외에 모든것을 부정하는 오만함,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천인적 화법,
@user-jinsu808 ай бұрын
1시간 42분짜리 철학책이 짧은건 아님.
@KOREA_DAEGU틀딱 Жыл бұрын
에우튀프론도 해주세요 ㅎ 소크라테스 마지막말 오 그립톤 내가 아쓰 클레피오쓰에게 닭 한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생각나거든 기억해주게 ㆍ 소크라테스가 친구인 크립톤이 도망가라고 해도 안 간 이유는 악법도 법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일것이다 ㅡ 일본의 법 철학자 오다카 도오모의 말
@bookwindow Жыл бұрын
네에~ 책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kalbee21867 ай бұрын
선생님 톤.
@zhimingli99482 жыл бұрын
플라톤 국가 읽어 줄수 있어요?
@bookwindow2 жыл бұрын
네~ 읽을게요! 본문을 다 읽기 위해서는 절판 도서를 구해야 되는데 책을 찾아 볼게요.
@zhimingli99482 жыл бұрын
@@bookwindow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bookwindow2 жыл бұрын
@@zhimingli9948 플라톤의 국가 절판 도서를 찾고 있는데 찾을 수가 없네요. 만일 절판 도서가 없으면 출판사에 문의해서 책 전체를 읽을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시일은 좀 걸릴 것 같아요, 올해 내로는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해석이 잘못되어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더 적절한 해석이라고 전공자이신 성균관대 박종현 교수님의 책에서 그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거죠! 소크라테스가 잘못한게 없는데 왜 '변명'이라는 딱지를 붙이죠? 내용을 보더라도 결코 '변명'이라는 제목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자신의 철학의 순교자라고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입장을 '변론'하는 것이죠!
@bookwindow9 ай бұрын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다수의 책들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 제목을 붙여서 별다른 생각 없이 이렇게 굳어진 것 같네요
@user-jinsu808 ай бұрын
3. 궤변론자는 맞지만, 소피스트 반대론자였음.
@무국-o6b9 ай бұрын
선생님, 저는 잘 몰라요. 처음듣습니다 왜 이렇게 긴지요? 애기해주세요, 너무이상해요 무엇인지요?.. 질문이 늦었지만요,
@bookwindow9 ай бұрын
전편을 읽어 길게 느껴지시나 봅니다. 이 영상보다 긴 작품들도 많아요~^^
@박재영-d7z8 ай бұрын
변명,인샬라!
@momomomo-vp4hu2 жыл бұрын
고대사회 유럽에서 벌어진 일들이 오늘날 최첨단 현대사회에서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을 보며 얼마나 그동안 대한민국을 오판하고 있었는지 전국민들은 뼈저리게 깊이 반성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