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심과 자유의지의충돌 그리고 예지예정 출4:21절부분예에서 내가 그의마음을 강팍케한즉이말 자체에서 이미저는 궁금한것이생기는데요 예지예정에 따르면 그의마음을 강팍하게한즉 이말자체만 들여다봐도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간섭하셨다라고 보면 되나요? 그니까 예지예정으로 보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거죠 말로전달히기가쉽지않네요😂
@jven8 ай бұрын
무슨 말씀인지 이해합니다 ㅎㅎ 예지예정에서는 예지 후 간섭을 하셨다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완전한 무간섭은 순복음이나 오순절계통 알미니안주의입니다. 저도 완전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예정론이 정답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최지호-k1w8 ай бұрын
평소 신자면서도 구원론에 항상 관심이있었는데 참 설명을 듣는사람입장에서 잘전달해주시네요~ 구독하였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jven8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이번 영상에는 음질이슈가 있어 죄송합니다
@HJKim-vk4xd6 ай бұрын
예지예정론은 사실상 구원에 대한 선택 주권이 하나님에 있지 않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있다는 알미니안주의를 교묘하게 포장한 것이 불과합니다.
@sreecvdr37243 ай бұрын
그리고 외부강압이 없을 때 자유가 성립되기에 자유로운 예정이 성립됩니다. 반면 자유의지를 능력에서 까지의 자유를 이야기하면 아무도 구원 받을 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중생 없이 거듭나지 못합니다.
@sreecvdr37243 ай бұрын
행위가 있어야 하는것 아닙니다 그럼 행위 구원이죠 모든 이를 부르시되 실제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구원 받는 자가 적다는 것이죠 택함에 어떻게 인간 행위를 넣어 해석합니까 택함자체가 피조물 편에서 수동적인데요
@juyounglee8417Күн бұрын
이중 예정론은 구원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고, 인간은 알 수가 없음. 그래서 전심과 신심으로 나아감. - 칼빈 -
@liiiiilllllll7 ай бұрын
그 요한계시록인가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부분보면 이미 정해진거아닌가요? 전 이런 교리들을 몰랐어서 알고나니 되게 머리가 아프네요 생각이 복잡해지고
@jven7 ай бұрын
생명책에 쓰인 이름이 지워진다고 언급도 많이 됩니다 ㅎㅎ
@sreecvdr37243 ай бұрын
저 모든 사람은 택자를 말한다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호소하시고 명령하시는 것은 중생된 자들이 반응해야 할 것들을 알리시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redlight_bluewater6 ай бұрын
예정론 자체가 성도들에게 결과를 주님께 맡기도 담대히 주님만 신뢰하며 가라는 의미가 있죠. 사실 예정론의 근거가 되는 구절들도 문맥적으로 보면 결코 내 운명이 결정되었다 식으로 여겨서는 안되는데 말입니다.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신학적 토론은 2000년 교회사에서 꾸준히 이루어져 왔고 그것이 많은 경우 형제 자매들에게 유익을 주었으나 때로는 너무 "사변적" 즉 실용적이지 못하고 성경 자체를 떠난 토론을 위한 토론으로만 간 격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개혁주의에서도 웨슬리를 인정하고 웨슬리도 개혁주의와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개혁주의 혹은 전통개혁파 신학에 서있는 신학생이긴 합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는 누구라도 같은 형제 자매라고 생각합니다.
@sreecvdr37243 ай бұрын
예지예정 자체가 인간이 뭘 할 것을 알고 예정 하셨다는게 구원에 인간의 공로가 들어간다는 논리로 이어 질 수 밖에 없어 모순 입니다. 그리고 행위구원 입니다
@sreecvdr37243 ай бұрын
예정론으로 설명할 때 모순이 안생기고 오히려 알미니안적으로 접근할 때 모순이 많이 생깁니다.
@sreecvdr37243 ай бұрын
그리고 지옥가는 것은 인간의 본인의 죄책으로 가는거지 거기에 하나님의 책임은 없습니다. 택하시고 은혜주시는게 하나님께 의무가 아닐 뿐더러 그 죄의 책임은 하나님께 없죠 예를 들어 선생님이 학생을 혼내는데 학생이 잘 못해서 혼나는거지 선생님이 혼내기때문에 혼나는 것이다 혼나는 것의 책임은 선생에게 있다 하지 않죠
@liiiiilllllll7 ай бұрын
전 드는 생각이 저런 4가지로 단순한 논리로 담을 수 없는 인간이 이해하지못할 하나님만의 깊은 뜻이 있지않나는 생각이 드네요 표면적으로보면 저중에 이거구나 싶은게 있겠지만 그 속은 훨씬 깊은? 그런 뜻이 있지않나 생각해봅니다 단지 인간의 논리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정의하는 것이 쉽진않은거같아요
@jven7 ай бұрын
단순하지 않아서 2000년동안 인간이 발전시켜온 이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sreecvdr37243 ай бұрын
예지예정론은 행위가 끼쳐져서 행위구원의 논리로 구원취소의 논리로 이어집니다 그냥 그렇게 보이는 성경구절이 있는거지 예정론으로 성경 다 해석되고 모순점 없습니다
@cheolgoo6 ай бұрын
다른것은 모르겠지만 예정론을 지지하면서 이중예정을 반대하는것은 논리적으로 거짓입니다. ...또한가지...예지예정이라는 단어자체도 모순입니다. 인간이 선행을 할만한 것이 남아있어서 믿는 것이라면 구지 예정할이유는 없죠...스스로 믿을수 있는데 왜 예정을 합니까... 암튼 영상 잼있게 봤고 구독했습니다.
@PugsyTheDogs7 ай бұрын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내가 죄인임을 완전히 인정하고 바닥까지 자신을 부인하며 다시 태어나야만, 성령으로 인해 끝까지 구원,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만이 하나님께 올수 있다는 성경의 말씀을 토대로 봤을때 하나님의 선택 기준? 구약의 의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모든것을 버릴수 있는자룰 선택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을 예정론이라 부를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 사람은 빵으로만 살수 없듯이 나의 자유 의지로 영혼의 음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먹지 않는자는 굶어 죽고 마는.. 진정한 자유의지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닮은 자들을 창조하시며 선물해 주셨습니다…
예정은 엡 1-3장에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엡 1:5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뜻은 엡 1:4의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예정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으로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엡 1: 9-11에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한 예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때가 찬 경륜에 의합니다. 그 뜻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시는 것입니다. 이 뜻의 결정에는 계획이 있고 이 계획에 의하여 우리가 예정을 입어 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우리는 엡 1:4에 택함 받은 우리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니의 영광을 찬송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기업의 보증은 너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업이 된 것은 너희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아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곧 너희에게 복음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너희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택함을 받은 우리와 복음을 믿는 너희가 다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의 통일은 우리와 너희가 하나로 통일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이며 너희는 누구인가? 엡 2;11-12에는 너희는 이방인이요 이스라엘 밖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의 통일은 이스라엘과 이방의 통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 이방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하나 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비밀로 곧 사명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믿을 대상이 하나 하나 창세 전에 예정 되었고 유기자도 예정된 것일까? 엡 2:12에서 이방인은 그 때 곧 이스라엘이 택함을 받을 때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하나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택함은 엡 1;4에 의거 그리스도 안에서인데 그리스도 밖에서 하나님도 없는데 누가 택하여 주었는가? 택함은 언약에 의하여 믿음은 복음에 의하는데 이중 예정론자들은 이 관계를 파괴한 것입니다. 곧 복음으로 언약을 폐하여 이스라엘을 폐하여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에 속한 택함을 복음에 갔다 붙인 것입니다. 곧 택함의 법과 믿음의 법을 혼합시킨 것입니다. 그리고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믿음의 법을 택함으로 구원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택함은 이스라엘에게 믿음은 이방인에게 적용하여 구원하시는 것이 예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택함을 받은 자들도 범죄할 때 복음에 의하여 구원됩니다. 이는 복음은 언약을 굳게 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복음은 언약을 얻는 법이지 언약이 아닙니다. 곧 새 언약이 아닙니다. 그러니 복음을 새 언약이라 하고 복음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을 폐하는 자들은 사탄에게 속은 것입니다. 새 언약은 첫 언약에 대한 새 언약으로 첫 언약은 범하면 저주를 받는 저주가 있는 언약이요 새 언약은 저주가 없는 언약입니다. 그리고 새 언약은 첫 언약을 법한 죄에서 속량하는 것이니 첫 언약이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지 이방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은 복음에 의하여 모든 언약에 참여합니다.
@sreecvdr37243 ай бұрын
애초에 구원이 전적인 은혜인데 아무 피조물도 공로를 끼쳐 구원 받을 수 없는데 당연히 예정이고 택함 받는자가 있고 비택자가 있는 것이죠 이걸 부정하면 예정 안되어 있고 우리 스스로의 공로를 끼쳐 구원받는다는 건데 전적은혜를 부정할 뿐 아니라 인간이 영적 사망한 죄인이라는 전적부패도 부정하는 논리로 이어지고 이어서 행위구원 또 행위로 구원을 받고 버리고 할 수 있는 구원 취소로 이어지죠 그리고 보편속죄도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 죽으심을 목적도, 효력도 없는 것, 그저 방법인 것으로 격하시키고 막상 비택자가 나아갔을 때 효력없는 구원을 만난다는 논리이죠 방법은 열려있지만 실제 구원은 받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한 속죄가 맞을 수 밖에 없고 알미니안이 왜 그렇게 주장한지는 알겠으나.. 너무 본인 고정관념에 본인 사랑 관념에 하나님을 끼워맞춰서 사랑없어보이는 모습을 없애려고 하는 시도 하닌가 싶습니다. 솔직히 감리회 신자였어서 최대한 웨슬리도 좋게보려고 했는데 또한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선행은총도 성경에 없고요..
@바람-w4f5 ай бұрын
성경은 범죄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찾고 선을 행할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사람의 자유의지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의 선택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 심각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분리 곧 영적인 죽음과 육적인 죽음 그리고 사망 곧 지옥멸망입니다 둘째, 본성의 부패입니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가복음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셋째, 저주와 죄책입니다 창3:17,18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예레미야 2:19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넷째,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죄의 종이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로마서 7장 14절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로마서617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롬 7:18-19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다섰째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마귀의 종이 된 자들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엡 2:1~3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에베소서 2:2에서 사탄은 또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 불립니다. 요한복음 12:31 에서 사탄은 “이 세상의 임금”입니다. 사람들은 흑암의 권세아래 있습니다 골로새서 1:13 여섯째 부패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선을 행할 능력이 없고 도리어 악을 행합니다 롬 7:18-19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일곱째 부패하여 하나님을 찾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12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결국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이처럼 죄로 인해 영이 죽고, 부패한 마음과, 선을 행할 능력도 없고, 죄와 마귀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죄짓는 자유는 있어도 하나님을 찾고 선을 행할 능력이 없음을 성경은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말씀처럼 구원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은혜로 말미암아 주시는 믿음으로 된다고 말씀합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므로 구원은 사람의 자유의지 의한 선택적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은혜안에서 하나님의 예정을 입는 자들이 그의 긍휼하심을 입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롬9:21-24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에베소서 1:3-14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bebe028458 ай бұрын
저도 예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해 꽤나 깊은 고민을 가졌던 때가 있었는데요, 제 이야기를 간단히 나누자면 저는 결국 칼빈의 예정론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칼빈주의는 논리적으로 허점도 많고, 토론하면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이론이라는 걸요. 저도 한 때 칼빈주의자들을 찍어 누르는 탄탄한 논리들을 모으고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까.. 믿어지더라구요. 논리적으로 완벽하고 뛰어난 이론이라서 믿는 게 아니라 그냥 믿어지더라구요. 인간은 절대 스스로 '선'을 택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더라구요. 예수님의 부활이 과학적, 이성적, 논리적으로 전혀 입증이 안되는데 그냥 믿어지는 것처럼, 선물로 주신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엡 2:8) 수많은 반박 이론이 나와도, 반지성주의자 취급을 당해도 여전히 칼빈주의자들이 많은 이유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봅니다.
@jven8 ай бұрын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이 지식에서가 아닌 필연적/우연한 경험에서 나오는것 동의합니다 :) 저는 아무리 성경을 읽어봐도 칼빈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아직 저도 부족하여 더욱 충분한 묵상과 연구를 더해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arang7756 ай бұрын
예정론이 맞다면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십니까????
@bebe028456 ай бұрын
@@sarang775 논리적이어서 믿는 게 아니라 믿음을 주셔서 믿는 거예요. 위에도 써놨지만 저도 님처럼 예정론자들이 이해가 안 가서 그들에게 수많은 반박논리들을 펼쳤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토론으로는 제 생각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제가 님에게 어떤 답변을 해도 님은 아마 그것을 반박할 새로운 논리를 가져오면 가져왔지, 생각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 보다는 서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것이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