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라고 말할수 있는 이유 (feat.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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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뚝딱 철학

5분 뚝딱 철학

Күн бұрын

Пікірлер: 202
@안상호-j2h
@안상호-j2h Жыл бұрын
책을 보내준다고 말하지 않았을 때의 나의 댓글과, 책을 보내준다고 하고서 쓰는 나의 댓글은 동일한 댓글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안상호-j2h
@안상호-j2h Жыл бұрын
애초에 책을 보내준다는 말을 듣지 않은 나와 들은 내가 동일한 인물인가?
@urd4270
@urd4270 Жыл бұрын
화재로 전소된후 재건된 남대문을 보며 진짜 남대문이 아니다 라고 느꼈습니다.
@livelovelaughbless
@livelovelaughbless Жыл бұрын
저도요. 상징적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하게되었죠
@5philosophy
@5philosophy Жыл бұрын
많은 분들이 너무나 좋은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하나 하나 댓글을 달아 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합니다. 어떤 분들은 좋은 댓글을 달아 주시고도 책을 양보하신 분도 계십니다.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좋은 댓글을 달아주신 네 분께 책을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cosmoscan@naver.com 으로 받으실 주소를 보내주세요. 세 분은 메일을 주셔서 책을 발송해드렸습니다. @user-qn4zl6yf7c @sfcsfch2 @user-ce3fg5yd9x 그런데 아래 분은 메일이 없으시네요. 댓글을 보시면 메일 부탁드립니다. @woning9900
@kssm1999
@kssm1999 Жыл бұрын
결국은 물질의 "정보"가 중요한것같습니다. 엔트로피에 의해 영향을 받더라도 내정보가 아직 남아있냐?라는것...물질적으로 내 모든것이 어제오늘내일 내가 아니더라도 내정보가 남아있다면 모두가 나인것만은 확실...
@heetop.
@heetop. Жыл бұрын
❤보면서 궁금한 게 생겼어요. [다중인격 이란] 어떤 동일성을 갖게 되는 건가요? 한 사람인데... 🤔 진짜나! 가짜나!는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나 로써 존재해요 그래서 나는 나입니다 생각이 변화하고, 몸이 성장했고, 자연의 변화와 상황에 반응하여 선택된 결과일 뿐 나는 그런 모든 것에 존재해요.
@조정인-k8j
@조정인-k8j Жыл бұрын
시간에 걸처져 있다,가 맞는 듯요^^
@과학통일만세
@과학통일만세 Жыл бұрын
자기 동일성의 문제 올바른 반박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항상 동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박화동-v5g
@박화동-v5g Жыл бұрын
자기 동일성에 대한 세가지 입장 모두 충분한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지만 1심재판부의 판단의 근거가 된 지속성의 문제로는 완벽하게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이 인간의 정체성문제에서 팔을 사고로 다처도 남아있는 나는 나임을 설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사물의 경우에도 역시 그 사물이 어느정도 변화되었을 때까지 지속성을 유지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인식기준을 정하는데 한계가 있어 인정하기 어렵다. 두번째 동일성유지에 따라 동일한 것인지를 분별하는 것 역시 분해했을 때와 파손되어 잔존물이 남았을 때 또는 변화가 생겼을 때 동일성을 지녔다고 판단할 기준 문제에서 애매하게 된다는 점에서 완전하지 못하다. 세번째 아윈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른 확장지속이론에서 시간은 그 속도가 상대적으로 흐르기 때문에 이론적으론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근거로 테세우스 배는 모두 동일성을 지닌다고 주장하지만 3차원의 현실세계에서는 역시 한계가 있는 이론이다는 생각이 든다. 저의 생각으로는 지속성과 동일성 그리고 영원성에 따른 모든 속성들을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존재하는 실체의 자기 동일성을 분별하는 합리성을 지니는 태도가 아직은 주효하리라고 본다. 세 이론 모두 모든 것을 해결하기엔 한계가 보이기 때문이다
@withnotbrain
@withnotbrain Жыл бұрын
정의가 없는 상황에서 관념적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에 둘 다 가짜라고 해도 옳고, 상대성이론으로 정의하면서 둘 다 진짜라고 해도 옳다는 결론이 나오죠. 최종적으로 테세우스가 탔던 배를 진짜라고 해야된다는 정의도 그것에 가치를 둘 필요도 있기 때문에 합당한 정의이고 어느 한쪽만 진짜라고 해도 옳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어떤 목적과 기능의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 정의를 해야되고, 결론이 반대되는건 언어적 표현상에서 그럴뿐이고, 진리의 총체에서 한 부분들일겁니다.
@tricycling5410
@tricycling5410 Жыл бұрын
생각과 감정이 바뀌면 삶이(내가) 바뀌죠~. 5분뚝딱철학을 들으면 내 의식수준이 올라가서 현재의 내 삶을(잘사는 삶) 보여주고요.동일성은 유지되지만 과거나 미래감정에 잡혀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즐겁고, 기쁘게, 진심으로 사는 감정에 나는 현존하면 됩니다~
@이두희-u7v
@이두희-u7v Жыл бұрын
우리는 늘 언제나 현재를 살 수 밖에 없지만.. 우리의 삶은 현재를 위한 삶이 아니죠.. 과거를 반영한 삶이고, 미래를 위한 삶이죠.. 따라서 과거와 미래는 현재라는 우리 삶 안에 녹아 있는 거죠.
@Snowflake_tv
@Snowflake_tv Жыл бұрын
영원주의? 시간이 기준이 아니라 가능성들의 집합, 속성/기능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애초에 없어요. 시간은 환상입니다. 물질의 변화가 시간입니다. 시공간 자체가 애초에 공간과 변화하는 물질의 관계만 있을 뿐입니다.
@woning9900
@woning9900 Жыл бұрын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물리적인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면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존재하겠죠. 하지만 인간의 불완전한 감각 기능과 사유 능력으로는 실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만이 느껴질 뿐이죠. 우리는 언제나 현재만을 느끼고 현재만을 살고 현재만을 향유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현재만을 살기 때문에 인생을 헛되이 보내도 되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다가도 과거의 나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미래의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스스로의 삶을 향상시키려 합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해온 노력과 보고 들어온 견문과 매 순간 생생히 느꼈던 감정과 경험이 현재 나의 성격, 마음, 생각, 정체성까지 형성합니다. 또한 현재 내가 보고 듣고 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또 다시 미래를 구성하게 되겠죠. 그런 측면에서 현재란 내가 인지하는 전부임과 더불어 과거와 미래의 나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나'라는 정체성은 과거, 현재, 미래를 포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삶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것이며 미래가 있음이 확실하기에 현재에 의미가 생기는 것이죠. 이쯤에서 테세우스의 배 문제로 돌아오면, 테세우스의 배라는 것도 나라는 것과 유사한 일종의 정체성입니다. 왜냐하면 테세우스의 배라는 물리적 실체가 없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산소 분자가 하나 있다고 해봅시다. 그 산소 분자에게는 위와 같은 역설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산소 분자라는 명확한 실체가 있기 때문에 그 산소 분자가 어디로 이동하더라도 그건 여전히 산소 분자입니다. 산소 분자를 쪼개어 산소 원자 2개로 만들고 우주 반대편에서 다시 조립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여전히 산소 분자일 것입니다. 왜? 산소 분자는 명확한 물리적 실체가 있기 때문이죠.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산소 분자는 여전히 산소 분자, 혹은 산소 원자 2개로 이 우주에 존재할 것입니다. 반면 테세우스의 배라는 것은 처음부터 물리적 실체가 없었으며 '지혜의 영웅 테세우스가 탔던 배'라는 관념으로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테세우스가 살아 있던 그 당시에는 물리적 실체가 있었지 않느냐 반문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도대체 어디까지가 테세우스의 배인가요?'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 배에 약간이나마 묻어 있던 바닷물은 그 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나요? 만약 그 바닷물이 판자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면요? 사람들의 신발에 묻어 있는 흙이 배에 남아있다면요? 그 배에 있던 코팅이 약간 벗겨지면 테세우스의 배는 그만큼 소실되었다고 할 수 있나요? 도대체 어디까지가 테세우스의 배인가 라는 질문에 이토록 명확히 답하기 어려운 것은 물리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물리적인 실체가 없었고 관념적으로 정의되어 있었죠. 관념적으로 정의된 대상에 물질적인 견해를 갖다대려고 하니 어려움이 생기는 듯 합니다. 저만의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테세우스의 배는 관념적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역설 또한 관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테세우스의 배는 '지혜의 영웅 테세우스가 탔던 배'인데 영상에 나온 배1과 배2 모두 테세우스가 탄 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테세우스의 배는 그 정의에 따라 현 시점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5philosophy
@5philosophy Жыл бұрын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cosmoscan@naver.com 으로 주소를 보내주시면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heyteed7143
@heyteed7143 Жыл бұрын
흠..나란 존재는 결국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기억으로 이뤄진거라 생각되네요.. 비트코인을 예로 들면 시스템의 51%가 현재의 지갑사항을 옳다고 여기면 49%의 가능성은 철저하게 무시되거든요. 물론 내가 저 51%안에 있을 경우 나의 저장된 정보(기억)는 참이 되지만, 49%안에 포함된다면 의미없는 데이터로 인식되어 삭제되어 버리니까요. 나든 테세우스의 배든 그것을 정의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엽합(연결)된 기억이 좌우하는 거라 봅니다. 테세우스의 배는 법원에 판결을 맡기기 보다 많은 사람들의 투표에 의지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선택지가 1)박물관, 2)골동품수집가 로 둔다면 어떻게든 결과는 하나로 나올수 밖에 없게되겠죠. 내가 나로 있고 싶어도 인간이 사회성을 지닌 동물인 이상 세상이 나를 부정한다면, 내가 가질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나로 존재할수도 없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할일은 거의 없겠지만 말입니다만..
@ywn1999
@ywn1999 Жыл бұрын
불완전한 나도, 완전에 다가가는 나도, 같은 내가 구도자라는 입장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겠죠? 미분에서 미분이 가능하려면 연속이여야 하는데... 연속이 아니면 미분 가능 하지 않은것 처럼. 우리도 우리자신이 연속일때 동일한 나라고 인식하는거 같네요 변화(변화율은 미분의 뜻이기도 하죠)는 어찌보면 당연하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에 연속성(미분 가능하다는것, 결국에는 연속되고 도함수가 왼쪽과 오른쪽이 같다는것)을 이해한다면 같다고 할 수 있을것 같네요 결국에 변화는 필연이고 변화하는 내가 다르다고 하면 나를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이동지속이론 또는 확장지속이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사람인지라 내생각을 같이 할 수 있는 또다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동지속이론이 제일 맞을 것 같습니다.
@타임머신-h1i
@타임머신-h1i Жыл бұрын
태세우스의 배 박물관vs 고물수집가 어떤게 진짜인가! "진짜" 이 말은 무엇으로 정의될까요? 그건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의 차이인데요 1번관점 테세우스가 실제로 탓다 (현실적) 2번관점 그러한 역사와 기품을 상징하고 잇다 (이상적) 1번관점이면 고물수집가가 "진짜" 라 정의할수잇고 2번관점으로보면 박물관도 "진짜"라 정의할수잇겠죠. 테세우스가 실제로 탄지는 중요하지않으니까요 재판관들은 둘다 진짜라고햇으니 모두 2번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앗나 생각이드네요
@maroangel8525
@maroangel8525 Жыл бұрын
테세우스의 배가 존재했던 건지 아니면 테세우스의 배라고 불리는 부품들의 집합이 존재했던 건지를 살펴봐야겠죠 테세우스의 배를 누군가가 케세이스의 배라고 부르고 있었다면 테세우스의 배와 케세이스의 배가 공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둘은 어쨌든 같은 대상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대상은 일단 존재한다고 봐야겠죠 다만 그 존재는 그 이름이 아닐 겁니다 명사라는 것은 보통은 객관적인 것(바위, 꽃, 미어캣 등)을 구분하기 위한 용도였는데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주관적인 것, 또는 창의적인 것(망치, 꽃병, 컴퓨터)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죠 망치가 모두에게 그 망치로 불린다면 그 망치는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 될 수" 있어 보입니다 다만 이때에도 망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죠 망치a, 망치b, 망치c 등은 전부 미세하게 다를 겁니다 이때의 망치는 절대적인 무언가가 아닌 상대적인 무언가가 되는 것이겠죠 다만 암묵적으로 그 상대적인 부분을 생략하고 일반화시키는 것일 겁니다 나a. 나b, 나c 등도 전부 미세하게 다르지만 암묵적으로 그 부분을 생략하고 일반화시키자고 약속한 거라고 생각되네요 언어자체가 약속이기 때문에 과학처럼 딱딱 안떨어지고 태생적으로 오차가 많죠 그 오차를 줄이는 문장일수록 좋은 문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오차를 어떻게 할 거냐가 관건으로 보이는데 나(a, b, c, d, ...) = 나 망치(a, b, c, d, ...) = 망치 보통은 이런 식으로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약속하는 것의 문제라면 마치 그래프가 x0, y0에서 시작해서 x2, y7으로 이동했는데 답을 x2, y7이 아닌 x(0, ..., 2), y(0, 1, ..., 7) 이런 답을 내야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수학적으로(나 = 나)가 아니라 (나 = 나의 변수들의 미적분의 합)이 돼야한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미적분을 모릅니다, 그냥 그래프적으로 그래야 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테세우스의 배가 지닌 변수들을 미적분해보면 둘다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라는 결론이 적합해 보입니다 어찌보면 결정론, 솔로몬의 판결과도 연관되는 문제로 보이는데 두가지의 테세우스의 배는 다른 루트(시간, 과정적으로)를 탔으며 둘중에 뭐가 결정론에 입각한 결론에 가까운지는 이미 검증이 불가능한 상태 같습니다(모순, 판단불가, 공존하기 때문에, 평행우주) 애초에 나무를 잘라서 테세우스의 배라는 것을 엮은 것이기 때문에 관념론적으로는 박물관에 있는 것이 진짜배에 가깝고 실재론적으로는 원래의 재료를 기워붙인 것이 진짜배에 가까워 보입니다 후자를 받아들이면 땅에 대한 소유권도 더이상 주장할 수 없겠죠 누군가가 남의 땅 흙을 자기 땅 흙으로 바꿔놓으면 땅주인이 바뀔 수도 있겠죠 (맨틀까지 물고 늘어질지.. 아니면 gps? gps가 오류나면 땅주인이 바뀌는지)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도 모를 말들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봤는데 우선은 저런 문제들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사용되는 단어들의 엄밀한 개념정의가 약속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적은 것이며 책은 다른 필요한 분들께 나눠주시길)
@신현섭-d5m
@신현섭-d5m Жыл бұрын
이 영상에서의 상대성 이론부분 언급을 통해 매일매일, 순간 순간마다의 나는 다른 매질의 시간속에 살고있는걸 재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으로서 대학과 학과라는 목표를 설정해놓고도 최근 공부를 하며 나만의 생각을 할 여유를 못가진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것이 사회에 널리 퍼져 진위를 감히 판단할수 없는 타성적인 정보에 나의 마인드를 끼워맞추는 인식을 키우게 되는것 같다는 (어쩌면 잘못된 오만일수도 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생각을 하면 도전을 해서 그것을 관철시키려는 성격이 있었는데, 어디가 근원인지 잘 모르겠는 회의감과 허무주의에 휩싸여 도전하는것에 대한 막연한 귀찮음으로 일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중앙엔 어떤 명징한 철학적 인식으로서 그것을 탈피하여 다시 도전할 힘을 얻기를 바라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자꾸 저를 변혁시키려고 하다보니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생기고, 마침 이 영상을 보게되며 아테네 박물관의 고쳐나간 테세우스의 배와 원본 널빤지로 재조립한 테세우스의 배를 둘다 진짜라고 판단한 2,3심 내용에서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의 존재성.고유성은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모든 순간으로서 발현되어 구성되며, 당장에 보이는 모습은 그중의 현재라고 인식하는 부분의 편린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로써 나의 인생에서 후회라는 감정을 거의 말소시키기 위해 '현재만의 연속만 실재해있다'라고 오만하게 규정했기에 고통스러웠던 모습들을 재인식하게 되어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의미있고 신비스럽고 황홀했던, 그외에도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거기에' 존재하는 과거라는 편린들의 나, 이상적인 미래를 생각하여 창조해낸 지나간 미래의 나, 다가올 미래(라고 규정된 거기)에 대해 미래라는 관념을 표상하려는 나 등으로 유기적으로 넓게 생각하게 되어서 당장의 힘듦을 초월할 합리성, 다시 도전할 힘을 생각해내고 얻었습니다. 지금은 덕분에 굉장히 충만합니다. 저는 제대로 깊게 철학 공부를 해본적이 딱히 없고 가끔 고전의 문구를 보거나 그 해석 또는 철학 영상들을 보면서 철학적 지식을 쌓는 편이기에 아직까진 거의 나 자신으로서의 심리작용과 윤리만을 생각하는 철학 입문자로서 생각을 속절없이 끄적거린것일 뿐이라 속없이 난해하고 허식만 가득한 글일수도 있을것 같아 우려됩니다만, 평범한 일상을 바라보는 비범한 철학을 저는 편린의 순간중에서라도 느꼈기에 뭐라도 끄적여보고 싶었습니다. +저번에 평범하지만 비범한 철학 에세이 영상을 보고난 뒤, 굳이 매체로 촉발되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일상에서의 비범한 순간을 경험할 때 마다 그 내용이 떠올라 순간을 재인식 합니다. 그런 비범함을 기록해두는 습관이 그 전후부터 생겼는데, 그로서 저는 제가 함유하는 부분중에 명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비범함을 의식적으로 늘러가고 있는 중인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김필영 작가님이 제게 동기가 많이 되어주신것 같아 정말 감사합니다. 다들 존재의 규정을 당장의 나에게 국한시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 순간의 비범함이 존재할 가능성을 느끼며 그를위해 도전하면서 삶에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비판과 질문은 언제든 받길 원하니 서슴없이 도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chobbaya
@chobbaya Жыл бұрын
매순간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는 자세를 취하여 살아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와 자신의 내면을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사유를 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환희를 맛 보신거 같네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자세도 필요하다 봅니다. 앎이란 그저 앎! 많은것을 배우고, 경험해서 좀 더 많이 안다고 해서, 세상 모든 진리를 알 수는 없기에.. 오히려 모를 때의 자신으로 돌아 가보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고 느껴집니다. 짧게나마 순간 떠오른 생각을 코멘트 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네요.
@음음-i3e
@음음-i3e Жыл бұрын
과거와 현재 미래는 분명히 중첩되어 있습니다. 밥을 먹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심지어 지금도 전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꼬르륵…
@richbitman
@richbitman Жыл бұрын
3차원 공간에 살고있는 인간을 이차원 세계 살고 있는 어떤 생명체가 인식한다고 했을 때, 발바닥 부근에 살고있는 생명체는 인간은 발모양으로 생겼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얼굴 부근의 평면에서 살고 있는 이차원 생명체는 얼굴의 단면 모양으로 인간을 정의를 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둘 다 정답이 아니다. 정말 인간의 3차원에서의 모습을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테🎉세우스의 배역시 4차원의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3차원의 공간으로 잘라서 판단하기 때문에 이것이 진짜다, 저것이 진짜다라고 다툰것이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존재는 모든 시공간의 합으로 정의해야하고, 박물관의 배는 [현재의 배], 골동품점의 배는 [과거의 배]로 분리 인식하여야 한다. 앞서 말한 인간을 2차원에거 정의할때, 얼굴이 진짜냐 발아 진짜냐 다투지 말고 이건 인간의 얼굴이요 저것은 인간의 발이라고 말해야 하는것과 같다. 부분을 전체로 동일시 해서 생긴 모순으로 보인다. 둘다 온전한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다.이미 그것은 잘려나간 조각이다
@jeff865
@jeff865 Жыл бұрын
새로 만들어진 테세우스의 배를 박물관에서 보게된다면 그 감동이 처음 만들어졌을때의 상태를 최대한 보존하고 있는 골동품 수집가의 배보다는 덜 할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골동품 수집가의 배를 박물관에 전시하는게 더 의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enjoylife1544
@enjoylife1544 Жыл бұрын
저라는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저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니라 밖에서 주어지는 개념들이 저라는 동일성을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 하는 것 처럼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주변사람들에 의해 다시 정의되는것 처럼요. 결국 동일성은 내 안에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바깥에서 나를 어떻게 정의 내리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왓따-e7i
@왓따-e7i Жыл бұрын
저도 같게 생각합니다 타인에의해서 정해지는 나라는 관념이 존재하기때문에 동일성을 유지할수있다고. 만약 타인이 내가 아닌 무언가를 ‘나’라고 인식한다면, 그들에게 ‘나’는 그 무언가가 되겠지요. 동일성이 적용되는 물질은 인식자의 관념에 따라바뀔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비슷한 말을 했던것같은데 기억이나질않는군요..
@fpv10
@fpv10 Жыл бұрын
언어의 모호함에서 비롯된 한계가 아닐까요
@Snowflake_tv
@Snowflake_tv Жыл бұрын
1:16 기억도 변하고, 현재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기억도 재구성됩니다. 사실입니다.
@hjkim8994
@hjkim8994 Жыл бұрын
영상 잘 봤습니다~선생님! 영상을 보고 진짜 테세우스의 배에서 "진짜"라는 단어의 정의를 어떻게 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상이였습니다.
@Snowflake_tv
@Snowflake_tv Жыл бұрын
4:32 그래서 개체를 개체가 속하고 상호작용하는 환경과 더불어서 개체의 존재를 인정해야합니다. 그래서 개체를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기능체로 생각해야합니다. 따라서, 5:37에 해당하는 답은, 박물관측이나 골동품수집가측의 주장 모두 틀렸습니다. 테세우스의 배는, 출항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죽은 겁니다. 저 둘의 것은 그냥 이전 테세우스배의 잔재일 뿐입니다.
@Snowflake_tv
@Snowflake_tv Жыл бұрын
금강무를 아마존 열대우림으로부터 잡아와 집에서 가둬 키우기 시작하면 그 또한 열대우림에서 살던 그 앵무새와 다른 존재가 되는 겁니다. 개체의 환경과의 기능관계가 달라졌으니까요.
@김시원-y3i
@김시원-y3i Жыл бұрын
거기있는 것은 그저 나무판자들일 뿐이고, 인간이 그것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gndgolf
@gndgolf Жыл бұрын
오늘의 나도 나도, 내일의 나도 나며, 어제의 나도 나이다. 다만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것은 "나"가 판단하는것이 아닌 "남"이 판단해야한다. 인간 생활 자체가 언제나 타인과 함께이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나는 나라는 생각을 하고있지만 나는 나이다 라는 생각을 타인이 바꿔놓는다. 즉 혼자 있을땐 어제오늘내일도 나이고 남과 있을땐 어제오늘내일도 내가 아니다. 그냥 제 짧은 소견입니다 ㅎㅎ 내가 나다 라는것은 내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없다는게 개인소견이고, "쟤는 항사우저러더라?" 라는 식의 타인의 말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게해줄수도 있고 정체성을 잃게 할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나인가?" 라는 질문은 환경도 함께 포함되어야 할것 같아요😁
@my1ife
@my1ife Жыл бұрын
미래는 이미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것이다라니 아주 흥미롭네요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내모습이지 않을까요? 모습은 바뀐채로 나는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byung-gohnchoo5733
@byung-gohnchoo5733 Жыл бұрын
추천합니다 🎉
@spxvix9004
@spxvix9004 Жыл бұрын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과 같네요. 사실 동일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동일하다는 인식만이 있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테세우스의 배는 그냥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싶어요. 배는 현상이고 의미는 관념인데 이 관념을 부여해 줄 타자가 없을 때 까지만(과거 또는 미래 같은 시간적인인 의미도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테세우스의 배'로 존재 하지 않을까요?
@walkingholiday498
@walkingholiday498 Жыл бұрын
얼마전 넷플릭스에서 본 Living with yourself 란 영화에서 주인공이 클론이랑 같이 생활하게 되는 설정인데, 둘 중 누가 진짜 본인인지 오리지날과 클론 둘 다 감정이입이 되더라구요. 어렵네요
@yjj2897
@yjj2897 Жыл бұрын
니체의 영원회귀에 따르면 순간은 영원과 같으니 찰나지속이론과 확장지속이론은 같은게 아닐까요?
@별바라기-t6e
@별바라기-t6e Жыл бұрын
진짜 신박한 논쟁이네요.웃기면서도 진지하고 재밌네요.
@appa.doctor
@appa.doctor Жыл бұрын
재밌고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sbobkim
@sbobkim Жыл бұрын
제 생각에는 제목과 영상에서 다루신 내용이 약간 서로 다른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라는 개념은 첫째로는, (자아)의식이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둘째로는 연속성을 스스로 찾는 경우이지, 제 3자가 보는 연속성 (다시 말해 아래 어떤 분이 이야기하신 사회적인 동일성) 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나라고 말할수 있는 이유는 그래서 제 생각에는 기억과 그 기억을 나의 기억으로 의식할 수 있는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느날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그 상태의 나는 현재의 내가 보기에는 내가 아닐것 같기 때문이죠. 아무튼 흥미로운 영상 감사 하며 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
@dong-beomgim1908
@dong-beomgim1908 Жыл бұрын
진화하는 것은 거짓이고 진화하지 않는 것이 참 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영상 감사합니다 🙏🌸
@Ultrastory
@Ultrastory Жыл бұрын
낡은 철학이지만 힐링은 된다... 우린 그래픽이고 본질은 볼수없다. 끝.
@김민욱-j8z
@김민욱-j8z Жыл бұрын
지난번 영상에서 정리해주신 러셀의 기술이론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요? "테세우스의 배"라는 단어는 과거에 존재했던 불완전한 사태를 기술하는 관념 아닌가요? 과거에 존재했던 사건을 서술하는 관념을 마치 현재에도 존재하는 것처럼 끌어오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것은 아닐까요?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널빤지를 하나씩 교체한 새로운 테세우스의 배"와 "널빤지를 하나씩 모아서 만든 또다른 테세우스의 배" 이렇게 서로 다른 배 2척 뿐이며, 저는 둘 다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진짜 테세우스의 배"는 과거(테세우스가 타고있던 시절)에 있었던 사태를 서술하는 단어일뿐인건 아닐까요? 러셀의 주장처럼, 이 모든 역설이 언어의 모호함에서 비롯된 오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철강팬티-x8x
@철강팬티-x8x Жыл бұрын
그래서 영상에 사람을 예로 든건데요, 사람은 매일 세포가 태어나고 죽습니다. 이런식으로 인간의 모든 세포가 전부 교체되는데는 7년이 걸린다고 하네요. 마치 테세우스의 널빤지가 교체되는것과 비슷합니다. 님 말대로라면 7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모든 부품(세포)이 교체된 상태입니다. 7년전과 나는 겉모습만 비슷할 뿐 물질적으론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성장기를 예로들면 더욱 뚜렷하게 보이죠. 10살 아이와 17살 청년은 겉모습도, 성격도, 지식수준도 확연히 달라집니다. 그럼 이 존재는 서로 같은 걸까요, 다른 존재일까요? 😅
@5philosophy
@5philosophy Жыл бұрын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cosmoscan@naver.com 으로 주소를 보내주시면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Universe_of_Mobius
@Universe_of_Mobius 11 ай бұрын
러셀의 관점에서 박물관의 배와 골동품 수집가의 배 둘 다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라는 주장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면 한발 더 나아가서 재판이 이뤄지는 시점에서의 쟁점은 '과거의 사태를 서술하는 기능을 하기에 박물관의 배와 골동품 수집가의 배 중 어떤 것이 사회적으로 더 정통성이 있는가'로 바뀌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tridish7383
@tridish7383 Жыл бұрын
겁나 먼 옛날 테세우스는 자기 배에서 떨어진 톱밥쯤은 얼마든지 지중해 밑바닥에 흩뿌리고 다녔겠죠. 그렇다고 지중해가 다 테세우스의 배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널판지는 그저 테세우스의 배를 구성하는 질료일 뿐 진짜는 그것을 올바른 순서로 조립하는 방법에 있겠죠. 박물관측은 당연히 되도록 올바른 순서로 복원을 했겠지만, 골동품 수집가의 경우는 그때그때 생기는 널판지를 이어붙였을 뿐이니 지중해에 떨어진 톱밥보다야 가치가 있겠지만 여전히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bryanss716
@bryanss716 Жыл бұрын
내가 여전히 나인 이유~~~뱃살이 여전히 그 특정 위치에 수십년동안 자리에 있어요! 세포가 매일 계속해서 복제 체인지 되어도 다른 사람이 되기는 커녕 어김없이 내 뱃살은 줄지 않아요. 과거 현재 미래가 똑같아여 ㅋㅋ 역시 나는 확실히 나입니다 ㅜㅜ 쓸데없는 말 죄송합니다 😂😂
@skais5384
@skais5384 Жыл бұрын
항상 영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 최종적으로 부속품이 다 옮겨진 뒤에는 '골동품 수집가의 배가 테세우스의 배다'라고 결론 내릴 것 같습니다. 테세우스의 배에 대해서는 '태세우스의 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로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수많은 배(혹은 인간) 중에서 저것이 '테세우수의 배(혹은 마이클 잭슨)'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된 이유는 '테세우스가 탔었던 배'라는 '실체/기억/역사' 떄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어느 것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고 이것들이 모두 모여서 테세우스의 배를 정의한다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배가 테세우스의 배가 되려면 '테세우스가 실제로 탔던 실체와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역사/기억'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속품이 나눠져 있을 때가 중요한데, 이때는 기억/역사가 보존된 쪽이 진짜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배에서는 그게 어느 장소인지 정의하기 쉽지 않겠습니다만, 굳이 따지자면 테세우스가 실제로 가장 오래 머문 부분-선장실-일까요?) 하지만 부속품이 완전히 옮겨진 뒤에는 박물관의 배에는 더는 테세우스가 탄 배의 실체가 하나도 남지 않았으니 테세우스의 배라고 정의 내릴 수 없을 것 같아요. 굳이 정의를 내린다면 '테세우스의 배의 기억을 한때 가졌었던 복제품' 혹은 그런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반대로 골동품 수집가의 배는 한 때 양쪽의 배로 나뉘어 존재했던 기억까지 하나로 합쳐진 '진짜 테세우스'의 배라고 봐야 하지 않나 합니다. - 마찬가지로 마이클 잭슨도 그의 외모가 변했다고 해도 그가 가진 경험, 기억, 역사는 그의 몸과 함께 한 곳에 모여있으니 마이클 잭슨의 동일성이 유지된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다보니 이것과 관련 되서 재미있는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네이버 웹툰 '덴마'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아이코(AICO)'인데요. 덴마에서는 사람의 뇌를 다른 신체로 옮기면 그 뇌가 새 신체에 맞춰서 자기의 정체성을 바꾸므로 더는 자기가 자기자신이 아니게 되는데, 그것에 끝까지 저항하여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자기자신을 정의 내릴 수 있는 기억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아이코 애니메이션에서는 복제 인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애니메이션 역시 복제된 인간은 원본의 기억을 가졌더라도 그것은 본인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영화 아일랜드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현-k2r
@현-k2r Жыл бұрын
요즘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전생도 없고 내생도 없는 영원한 지금이 무한반복 될 것 같습니다~^^ 책 샀어요~ㅋㅋ
@nobodysir77823
@nobodysir77823 Жыл бұрын
어제의 나 그리고 내가 한 선택 그리고 오늘의 나 그리고 내가 한 선택, 이에 따라 생겨나는 수만가지의 경우의 수에 의해 생겨날 수 있는 미래 그곳의 있는 나 그리고 우리 가족, 수만 가지 모습으로 잘 살고 있을 상상을 하니까 행복해지는 밤이네요, 오늘도 잘 들었습니다😊
@홍성현-x8j
@홍성현-x8j Жыл бұрын
우선 인상깊은 영상을 만들어 주신것에 매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5분철학을 통해 좋은 영상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많은 주제들을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영상을 보고 나서 제가 이전에 했던 고민이 떠올랐습니다. 옛날에 저는 어떤 영상(혹은 서적이였을지도 모릅니다)에서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은 몇개월이 지나면 완전히 새것으로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의 마지막에는 이러한 질문이 나왔었습니다. [몇개월 전의 나와, 몸의 단백질이 모두 바뀐 몇개월 뒤의 나는 동일한 인물인가?] 이 영상을 보고나니 그때 했었던 질문들이 다시금 떠오르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떄 제가 생각했었던 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의견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 그때 당시 제가 여러 생각을 거치고 내렸던 결론은 [물리적인 동일성과 사회적인 동일성은 다르다]였습니다. 물리적인 동일성은 말 그대로 그 물체의 물리적인 상태나 구조가 동일한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우에는 몇개월마다 구조가 달라지니 물리적으로 동일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영상에 예시로 나왔던 커피의 경우에는 분자 구조와 구성비는 달라지지 않지만 분자들의 열에너지 상태는 달라지기에 물리적으로 동일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회적인 동일성은 그 대상을 둘러싼 인식이나 관계와 같이, 사회적으로 부여받는 의미나 역할이 동일한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우에는 몇개월 전이든 몇개월 후든 여전히 동일한 사회적 지휘, 의무, 그리과 주변 관계들을 가지고 있기에 비록 물리적으로는 다른 존재일지언정 사회적으로 동일할것입니다. 하지만 한때는 소중하게 여기던것이 이제는 더이상 소중하지 않거나 무의미한 것이 된다면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동일한 존재일지언정 사회적으로는 더이상 같은것이 아닐것입니다. 게다가 만약 그 물건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소실되어서 이전에는 어떤 물건이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사회적인 의미의 동일성이 소실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제 다시 테세우스의 배와 인간의 관점으로 돌아가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영상의 말미에 제기되었던 [과연 누구의 배가 테세우스의 배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제 생각은 [둘 다 테세우스의 배이다.]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물리적으로는 '고물상 주인의 배'가, 사회적으로는 '박물관 주인의 배'가 테세우스의 배다]입니다. 즉, 물리적으로 동일하다고 여겨지는것과 사회적으로 동일하다고 여겨지는것이 꼭 같은 개체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것은 당대 사람들이 붙인 하나의 이름표에 불과합니다. 나무와 못과 천을 조합하여 만든 물질 중 테세우스라는 사람이 타고 다녔던것을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르자고 했기에 테세우스의 배가 된것입니다. 무슨 과학적 법칙이나 불가역적인 원리에 의해 정해전것이 아닙니다. 그저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자고 정했고, 그것을 후대 사람들이 계속해서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짤을 본 적 있습니다. 언어의 사회성을 비유하는 만화였습니다. 어떤 아이가 수박을 몽미라고 부르기로 하였고, 시장 아주머니에게 몽미를 달라고 하자 아주머니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정의는 그 아이만이 이해하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수많은 사람들이 수박을 몽미라고 부르기로 합의하고, 기존의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로 한다면 이제부터 그 열매는 앞으로 몽미라고 불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떤 물질에 대한 정의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원자는 [절대로 쪼개지지 않는 가장 작은 물질 단위]라고 정의내려졌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정의가 변해왔습니다. 만약 어떤것의 정의와 의미가 절대적으로 그 본질 안에 내제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변화과정이 생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테세우스의 배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정의와 관념은 당대 사람들이, 그리고 후손들이 그렇게 정의내린 것입니다. 누군가는 물질적인 기준이 가장 중요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사회적인 관계와 합의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진짜'의 기준이 다르기에, 각자가 생각하는 진짜 테세우스의 배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것은 과학이나 합리의 측면을 넘은, 신념과 합의의 단계에서 이야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사실 이러한 주장을 쓰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되돌아보며 저 또한 이런 주장에 의문점이 들지 않았던것은 아닙니다. 한때 스스로에게 [물질적인 정의와 사회적인 정의가 동급 취급 받는것이 맞는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착각을 한다면 그러한 취급이 되는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 물질의 물리적인 본질을 바꾸는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본질과 사회적인 합의중에 무엇이 더 우선되어야 하는지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세상 모든 사람들이 돌맹이를 보고 사과라고 말하고 믿고 정의내린다면, 돌맹이는 사과가 되는걸까요? 모든 사람들이 돌맹이를 보고 [너무 딱딱해서 아직 먹지 못하는 회색의 단단한 무기질로 구성된 과일]이라고 한다면 결국 돌맹이는 사과가 되는걸까요? 물질이 가지는 의미는 본질에서 기인하는것인지, 아니면 사회나 개인이 내리는 정의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댓글이 가지는 모호한 점이나 이해가지 않는 부분들은 그 부분에 대한 제 무지에서 나온 것일 겁니다. ========================== 이렇게 글로써 제가 생각했던것을 써보니 색다른 기분이 듭니다. 제 머릿속에서 어느정도 정립되었다고 생각했던 주장도 막상 이번 기회에 글로 적으니 모순되거나 깔끔하지 못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댓글을 쓰는것은 저에게 있어서 이벤트 참여를 넘어서 스스로 행동하고 소통하기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되뇌이는 과정의 즐거움을 다시금 새기게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이상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5philosophy
@5philosophy Жыл бұрын
너무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cosmoscan@naver.com 으로 아이디/주소를 보내주시면 를 보내드리겠습니다.
@nollbo
@nollbo Жыл бұрын
4번째 입장 불교적 시각으로 보면 애초에 '테세우스의 배'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개별자들은 이데아, 자아, 영혼 따위는 없으며 그저 부분들이 모여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것을 '공'이라 하고 서로 연결된 만물은 부분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계속 변하는데 이것을 '연기'라 한다 따라서 두 '테세우스의 배'는 그저 널판지의 조합일 뿐 '테세우스의 배'라는 성질을 갖는 게 아니므로 처음부터 '테세우스의 배'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상 잘 봤습니다~~
@isanghan_land
@isanghan_land Жыл бұрын
테세우스의 배를 라고 인식하는 기준과 동일하다 라고 생각하는 정의 의 문제일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동일해야 한다면 모두가 테세우스의 배는 아닐것 같습니다. (1심 재판처럼) 그렇게 된다면 모든 사물은 변화하기 때문에 동일성은 있을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일하다 라는 것을 조금더 넓은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조금 변화 하였어도 그 사물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으면 동일하다고 허용 하는거죠 - 똑같은 브랜드에서 만든 볼펜이 2개 있다면 우리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볼펜의 미세한 물리적 차이(생산,유통 등) 가 있더라도 볼펜의 기능, 브랜드, 디자인 등이 동일하면 동일한 볼펜으로 인식하는거죠 - 하지만 뜨거운 커피를 시켰는데 미지근한 커피를 준다고 한다면 우리는 동일한 커피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뜨거운 커피를 주문할때 내가(사회가) 가지고 있는 동일의 기준에 뜨거운 이라는 기능성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문제는 완벽하게 동일할 수는 없어도 어느정도 까지 우리가 허용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일것 같습니다. 1. 테세우스의 배의 본질을 실제 테우스가 타고 다녔던 배(물리적) 라고 한다면 후손들의 배가 조금더 배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조립과정에서 완전하게 동일할 수는 없어도 테세우스가 타고 다녔던 배에 가장 근접하니까요 2. 테세우스의 배를 상징성 으로 정의 한다면 박물관의 배가 테세우스의 배 일것 같습니다. 물리적으로는 그때 당시와 완전히 다른 배가 되었으나 박물관에서 오랜시간 대중에게 공개 되어 모두가 박물관의 배를 테세우스의 배로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동일한 테세우스의 배를 정의 하는 이유가 그 배를 물리적으로 타고 다니기 위해서는 아니기 때문에 대중에게 오랜시간 인정받고 상징성이 있는 박물관의 배가 더 적합하지 않나 싶네요 ㅎㅎ 그렇기 때문에 각 항목마다 동일하다 라고 하는 기준을 조금씩 다르게 설정해야 될것 같습니다. 사물의 동일성을 정의하려고 하는 목적에 따라 그 기준을 다르게 설정해야 되고 그리고 그것을 정의 하는 사회의 인식에 따라 그 기준 또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겠네요 댓글을 작성하다 보니 점점 어려워지네요 ㅎ 재미 있습니다.
@5philosophy
@5philosophy Жыл бұрын
좋은 글 너무 감사드립니다. cosmoscan@naver.com 으로 주소를 보내주시면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전병도-q5y
@전병도-q5y Жыл бұрын
재료만 가지고 따지는 어리석음 때문에 문제의 해결이 보이지 않는 다고 생각됩니다 남대문에 불이나서 부시고 새로 지은 남대문과 불이난 상태의 건물을 다른 곳에 옮겨 남대문을 만든 것과 어떤것이 진짜 남대문 일끼요?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작용 합니다 첫번째 장소 두번째 역사성 세번째 전문성 네번째 대중의 반응 등 입니다 남대문이 그위치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면 남대문이라 부르기 어색하겠죠 또한 두가지 남대문 중에 어떤 남대문에 역사적인 전통성을 부여 할것인가 하는 겁니다 여기에는 전문성도 들어가는 데 정부나 지자체가 그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동원해 짓는 건물에 전통성과 전문성이 있다고 보여 집니다 골동품 중개인이 만든 건물에 전통성을 주기는 어렵겠죠 이에 따른 대중에 반응 입니다 이게 가장 큽니다 결국 대중의 반응이 두가지 남대문중에 한쪽으로 기울어 진다면 그쪽이 남대문으로 인정 받겠죠 그러나 대중은 장소 전문성 전통성을 따질 겁니다 철학이니 재료 한가지 만으로 국한해서 논리를 펼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가지 요소를 따져봐야 합니다 그리고 존재가 논리보다 우선한다 가 제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
@Kingisback919
@Kingisback919 Жыл бұрын
이와 비슷한 갈등으로는 미술계에 있었던 문제와 비슷하네요. “조영남 대작 사건” 이 있었죠. 과연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는 그림이 내 그림인지. 아니면 그 작가가 그리지는 않았지만 조수들이 작업한 그림을. 직접 인정해주고 인증한 작품도 내 그림인지. 하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는데 오늘 영상에서 “조영남 대작” 사건이 떠올랐네요 . 좋은 인사이트 감사합니다
@inoi9311
@inoi9311 Жыл бұрын
조영남 대작사건은 경우가 다릅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거장 화가들의 그림(특히 중세)실제로 그 화가가 그린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영감이나 스케치,디렉션만 제시하고 대개는 조수들이 수행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명품을 사면서 그 아이템이 브랜드 ceo에 의해 직접 만들어졌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지않습니까? 예술사에서 화가의 이름이 오늘날의 브랜드적인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인상주의와 같은 여러 기파를 기점으로 화가의 내면세계가 중요해지고 영감의 제시자와 표현자가 일치하게 된건 예술사에 있어선 매우 최근의 일입니다. 조영남 대작사건은 예술이라는 역사를 알지 못했던 대중과 사법부에 의한 해프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현승-p6i
@이현승-p6i Жыл бұрын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에 사유하는 주제이자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에 의미없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오직 우리가 스스로의 존재를 실감하는 순간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세계를 이해하고 인정하더라도 우리의 사유와 철학과 과학은 영원을 실감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즉, 여전히, 우리의 삶에 있어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고로 여전히 우리는 과거를 딛고 존재하는, 현재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존재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건 영원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과 오늘 눈을 감으며 생각하는 내일, 그러니까 하루하루 아닐까요.. 어쩌면 이게 실존을 담은 철학과 문학들이 아직까지 유의미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유일지도... 그래서 결론은! 알바 가기 싫다는 거....
@pippi0906
@pippi0906 Жыл бұрын
이모든것은 선택의 문제이고 내가 선택한 것이 정답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함에 있어서 내의지가 반영된듯하지만 내의지는 없는것(결정론)이므로 나는 이문제를 해결및 선택할 권한이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내삶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내삶의 주체가되지못한 삶을 영원히 반복되는것을 원하지않기에 나자신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넘어선자 뛰어넘은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니체 만세 !!
@hyrusk
@hyrusk Жыл бұрын
세상은 아날로그인데 디지털로 해석하려는 인간의 한계 때문이 아닌가..
@hayeonkim7838
@hayeonkim7838 Жыл бұрын
이번에도 정말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ㅎㅎ
@무딜링호흡머신
@무딜링호흡머신 Жыл бұрын
처음에는 확장지속이론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박물관측의 배도 테세우스의 배라고 한다면 그 박물관측의 배의 널판지를 모두 교체한 배도 테세우스의 배일 것이고, 그 널판지를 가져다가 다시 테세우스의 배를 만든 배도 테세우스의 배가 되고 그렇게 되면 테세우스의 배는 무한히 많아지니까요. 그런데 테세우스의 배에 '나'를 대입해서 생각해보니 나의 뇌와 기억까지 복제한 나도 나이고 평행우주에 살고 있는 아주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가진 나도 나이고 나라는 게 하나만 존재하지는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제가 지금까지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했던 것이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답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무슨 짓을 해도 저는 그냥 저인걸요.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나의 존재만으로 나는 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영아채영아놀자신나
@하영아채영아놀자신나 Жыл бұрын
형질이 변해도 처음부터 존재했던 실체가 진짜다. 골동품 수집가는 재창조한것이다.
@HS_Yi
@HS_Yi Жыл бұрын
먼 미래에 기술이 엄청 발전해서 눈 깜빡 할 순간에 인간을 복제할 수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복제한 나는 원래의 나와 같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자아도 각각 갖고 있다고 말입니다. 과거엔 내가 한명인데, 이젠 원래의 나와 복제의 나, 이렇게 둘이 되었습니다. 짜잔~! 둘 다 나 이겠지만, 둘 다 진짜 일까요? 원래의 나 입장에서 복제된 나를 진짜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복제된 나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가짜라고 여길까요? 둘 다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원래의 나 입장에서는 둘다 나인거는 인정할것 같지만, 나만 진짜라고 할 것 같아요. 복제된 나는 나긴 하지만 가짜라고 여길것 같아요. 복제된 나 입장에선 복제합니다 하더니 눈 깜빡 하고 나니까 내가 복제된 나라고 하는거죠. 그리고 반대편의 있는 내가 원래의 나라고 하면서 나를 가짜취급하면 인정할 수 없을것 같거든요.
@Dubumental
@Dubumental Жыл бұрын
얼마 전에 읽은 미키7 논픽션이 떠오릅니다 영화화 될걸로 기대 되고 있어서 가볍게 접근 하였는데요 아주 뛰어난 철학적 네러티브를 느꼈습니다 그걸 테세우스의 배라고 한다는 것을 박사님 덕분에 알았네요 복제된 나의 동일성을 언제 부터 의심하는지, 타인의 유한성과 어떻게 충돌 하는지를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필력이 매우 좋았습니다 배가 아닌 존재가 동일한 욕망과 의지를 가지고 동시간에 실존 한다면 누가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미키7은 내가 진본이라고 하고 미키8은 4주 전의 의식을 다운 받았기에 너보다 먼저라고 주장합니다 (부지런히 백업 하지 않은건 미키7의 탓인거죠) 작품에서는 인간도 자원도 분자로 쪼개서 다시 재구성 할수 있는 사이클론이란 장치가 있기에 더욱 설득력 있었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테라포밍을 한다는 조건에서는 인간도 총자원의 일부고 재활용 되야 할 대상이란건 정말 다가올 미래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samma-sati
@samma-sati Жыл бұрын
어제 오늘 내일은 실제하지 않고 관념 속에서 존쟈하는 허상이고 테세우스의 배도 인간의 몸도 계속해서 변화해 나간다면 물질로서 무언가를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은 허상이고 물질도 계속 변화해서 특정할 수 없다면 근본이 되는 시간과 물질이 허상이면 동일성이라고 생각하는 마음도 허상 아닌가요 좋은 동영상 감사합니다
@군침이싹도노-b7e
@군침이싹도노-b7e Жыл бұрын
너무 웃기고 너무 재밌어요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항상 감사합니다
@springsprout406
@springsprout406 10 ай бұрын
간단한 문제인듯하지만 생각할 수록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byoroo
@byoroo Жыл бұрын
시간과 공간의 스케일을 아주 키워서 본다면 테세우스의 배라는 개념이 존재했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 저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지지하겠습니다 역동적인 우주에서 영원한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lovemyself_now
@lovemyself_now Жыл бұрын
시간이 지나도 동일하게 행동하는사람과 그 행동이 시간이 지나며 성장하는 사람이든 퇴화하는 사람이든 같은 사람이라 생각이 듭니다.
@khema9891
@khema9891 Жыл бұрын
동일성은 없이 조건의 변화만이 이어진다고 생각됩니다.
@TigersFromHell
@TigersFromHell Жыл бұрын
배를 규정하고 나를 규정하고 시간을 규정하는 건 인간의 편의이다 자연세계엔 그딴 거 없다 물질도 우주요 과정도 우주요 인간의 편의조차 우주요 편의를 위해 규정한 걸 왜 굳이 불편하게 따지려는가 라고 무식한 생각이 듭니다
@름구-x9g
@름구-x9g Жыл бұрын
너무 재밌다…
@선-o2m
@선-o2m Жыл бұрын
유튜브 초반의 님과 현재의 님은 같은 사람? 미래의 님은? 사람이 변한 것인가. 본래 이런^^ 사람인가. 시간 ,자유의지 영상을 보면 결정론자같으시니. 본래 이런? 사람^^ 팬입니다^^
@짱이-x8q
@짱이-x8q Жыл бұрын
뇌사자가 기증한 심장을 이식받았다고 그 뇌사자가 될 수는 없으니 이동지속론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널판지를 갈았다해도 배의 핵심이 되는 용골은 남아있을테니까요. 사람으로 치면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의식'이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되는 육체와 영혼이 바뀐 사례에서 보면 영혼(곧 의식)으로 그 사람인지를 판단하게 되니까요. (영화 아바타에서 주인공 제이크가 나비족 아바타의 육체로 생활한다 해도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를 제이크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영화 아바타처럼 이 '의식'까지 이식이 가능하다고 하면 (혹은 윤회개념으로 같은 영혼이 반복적으로 탄생한다면) 그건 결국은 4차원 확장지속론으로 넘어가는 거 같습니다. 의식이 같다면 과거, 현재, 미래의 나 모두 나이고 나는 곧 그것들을 적분한 총합이니까 다른 시대 다른 육체로 살아도 지속되는 나일테니까요. 결론적으로, 3차원 세계만을 인식하는 우리는 이동지속론이 직관적으로 더 자연스럽다고 느껴지지만 더 고차원을 볼 수 있는 세계에서는 확장지속론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재박-d6w
@경재박-d6w Жыл бұрын
과거 현재 미래를 같이 살지요 운전하고 가던 중 수십년 전 홍콩 영화 ost를 들으니 갑자기 수십년 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용감했던 과거의 나가 소환되더니 눈빛이 변해버리고 마음과 행동이 바뀌어린 경험.. 수십년 연습중인 기타.. 하루라도 연습을 안 하면 손가락 움직임이 둔탁해져버리고 오늘의 연습은 내일의 결과가 미리 예정되어 있는 많은 경험.. 인생, 삶도 마찬가지..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가 있고 현재가 있기에 미래가 존재하듯.. 우리는 모두에 걸쳐 존재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영상 잘 봤습니다
@YSLee-qy6zq
@YSLee-qy6zq Жыл бұрын
늘재미와생각거리를던져주어서..감사히듣구있어요.. 감사히현존합시닸~~~
@user-k87
@user-k87 Жыл бұрын
세가지모두 틀린듯합니다. 중요한것 물질 즉대상이아니라 그것을 관찰하는 주체의 인식에따라 달라지는것인듯합니다. 객관적관점에서 논리는 어느관점으로도 성립될수있지만 정작 특정 주장을하는 사람들은 주관적인식의 차이에따라 그것을 그렇게만 보려합니다.
@kimseokwon6147
@kimseokwon6147 Жыл бұрын
박물관측 배가 테세우스 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테세우스의 배는 그 재료와 기능을 함께할 때 동일하다고 봅니다. 수집상 배는 껍데기만 같은 재료를 쓸 뿐 그 배일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코어 재료는 쓰지 못했을 겁니다. 또한 버려저야 할 재료로 배를 만들었으니 그 배의 기능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반면 박물관 배는 테세우스 배의 용골 프레임같은 핵심 재료를 그대로 혹은 수리해서 쓰는 것으로 보이며 계속적으로 수선을 했기 때문에 배의 기능도 가능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테세우스 배 100% 재료로 만들고 그대로 배의 기능도 가능하다면 수집상의 배가 테세우스 배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역시 어제와 오늘의 핵심 재료( 신체,두뇌)가 같아야 하고 나이게 끔 하는 기능(기억,가치관,영혼)도 같아야 한다고 봅니다.
@Macrocosmnouveauriche
@Macrocosmnouveauriche Жыл бұрын
❤굿모닝 감사합니다
@freeman4823
@freeman4823 4 ай бұрын
진정한 나는 없는 것입니다..과거와 미래는 현재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그런데 현재는 없습니다..현재라고 정하는 순간 바로 지나가니까요..고로 진정한 나는 없는 것입니다..
@이재영-b7o
@이재영-b7o Жыл бұрын
다들 '테세우스의 배'를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것. 정답이랄 게 있을 리 없다. 그것은 믿음의 영역. 신을 증명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으로 수천 년을 지내오지 않았는가.
@SEO-d9o
@SEO-d9o Жыл бұрын
항상 현재만 존재하죠. 현재가 없다면 과거도 미래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따라서 과거, 미래는 현재를 말하기 위해 설정된 개념이죠.현재가 있다면 그 현재는 과거와 미래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죠. 즉 현재는 과거,현재,미래의 묶음과 같은 것이죠. 그것이 현재가 같는 속성이죠. 시간, 공간, 인간, 태세우스의 배... 이것들은 모두 속성에 속해요. 속성은 러셀의 말처럼 고정된 주어가 아니에요. 따라서 그것은 다양한 술어를 갖을 수 있어요. 태세우스의 배는 속성이므로 무수히 많은 태세우스의 배를 만들어 내죠. 마이클잭슨 처럼요. 멋진 강의 감사합니다.
@pianist.ohdonghan
@pianist.ohdonghan Жыл бұрын
흥미롭네요 관점의 차이 ~^^
@양지홍-g7d
@양지홍-g7d Жыл бұрын
결국 판결에 의해 동일성이 정의 된다는 것 자체가 가치주의적 판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 사람들의 인정, 이것이 가치가 되는 것처럼 동일성이라는 것 자체도 대다수가 인정해서 받아드리는 것으로 동일성이 확정된다고 봅니다. 가게주인과 내가 이 커피가 동일하다고 인정 하기 때문에 커피가 동일한 것이고, 판결에서 판사와 아인슈타인 기타 여러 사람들이 동일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페르세우스 배가 동일성을 인정 받는 것처럼 사람들의 가치에 대한 인정이 동일성에 대한 판단기준이라고 봅니다. 그럼 나에대한 인정 또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가치를 부여받는가 라는 부분이 생기는데 이때는사람들의 인정과 본인의 인정(자아성찰)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레마녀
@이레마녀 Жыл бұрын
궃이 나눠야 할까요?과거의 나도 나, 현재의 나도 나, 미래의 나도 나인 복합적인 존재의 나라고 생각합니다. 우얗든 인지된 지금의 나는 지금을 성실히 살아갈뿐입니다!
@hoonkim3011
@hoonkim3011 Жыл бұрын
과거의 나는 과거에 현재의 나는 현재에 미래의 나는 미래에... 과거의 내가 변해 현재의 내가 되었고 현재의 내가 변해 미래의 내가 될것이고... 과거의 내가 정이 되고 현재의 나는 반이되어 미래의 내가 합이 되기위해 그냥 오늘을 열심히...아모르 파티....
@dparkactor
@dparkactor Жыл бұрын
테세우스의 배는 마치 인간복제와 비슷해 보이네요 복제된 인간과 복제하기전 인간중 무엇이 본인인가 사실 둘다 본인이지만 그걸 판단하는 타인들의 입장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테세우스의 배도 배로 이득을 취할려는 박물관과 수집가의 문제만 존재하듯이 말이죠 다시 한번 느끼는 대단한 부처님의 연기법
@훈규-r1j
@훈규-r1j Жыл бұрын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모두 '나'이지만 굳이 진짜 '나'를 고르라고 하시면 저는 오늘의 '나'라고 답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느끼기에 어제, 오늘, 내일의 '나'중에 오늘(지금)의 '나'가 제일 '나'이기 때문입니다.😮
@이용준-i9r
@이용준-i9r Жыл бұрын
과거, 현재, 미래는 인간이 겪는 현상일 뿐이다, 동일성도 마찬가지다.
@즌아키
@즌아키 Жыл бұрын
내가 그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적당할듯 합니다. 태산도 하늘아래 뫼인디~~ 사회에서도 복작복작 서로 이름부르고 바삐사네요.ㅎㅎ 언제나 춘추전국처럼 활기찹니다.
@김상진-h2i
@김상진-h2i Жыл бұрын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라고 봅니다. 따라서 주관적으로만 판단할 뿐이지 판사가 객관적으로는 어느 배가 테세우스의 배라고 판정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테세우스의 배라고 인식하는 배가 그들에게 테세우스의 배일 뿐. 똑같은 물건도 누군가 의미를 부여하면 특별해 지는 것처럼.
@Proximity_Bondage
@Proximity_Bondage Жыл бұрын
저는 박물관측의 배는 기념비적인 성격을 갖고, 골동품수집가 측의 배는 물질적인 성격을 가져서 둘다 테세우스의 배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생각할수도 있군요
@woogun
@woogun Жыл бұрын
좋은아침입니다
@YoungsooStellaKim9001
@YoungsooStellaKim9001 Жыл бұрын
씨앗(과거)ㅡ 나무(현재) ㅡ흙또는 숯(미래) 이 과정에서 여전히 탄소는 유지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지요 현상학적으로 지금 여기에는 우리가 볼수있는 전 과정인 씨앗도 있고 나무도 있고 흙도 있습니다
@jeckey472
@jeckey472 Жыл бұрын
과거와 미래가 다 존재한다면 죽어도 죽는게 아니고 살아고 살아있는게 아닐 수도 있겠네요.😳😳😳 시간은 은근히 신비한 것 같습니다.
@belie6541
@belie6541 Жыл бұрын
재밌게 봤습니다. 미래에 3d 프린터가 생겨 나를 정확히 복사해 낸다면 이루어진 원자는 다르지만 정확히 같은 기억을 공유한 나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clone의 인권도 동등하게 보장하여 주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개인 재산이나 권리 측면에서 본다면 당연히 original이 권리를 계승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테세우스의 배도 법적인 측면에서는 3가지 관점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인간의 의식이라는 관점에서는 또 다른 의식이 생겨난 현재가 중요하고 현재 2개의 의식이 있는 것이고 나의 동질성이라는 게 불교의 논리와 같이 허상으로 보입니다. identity라는 것은 과거의 지속성이 아니라 의식차원에서는 현재에 존재하는 2가지가 있는 것이고 다른 경로를 통해 그 2가지 모두 original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의 연속성과 점진적 변화 하나는 다른 원자의 관찰에 의한 복사... 나의 의식의 동질성을 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 보입니다. 신과 같은 능력이 존재하여 나를 복사했다 삭제했다 여러 개를 만들고 했다면 의식은 시간 축상에서 여러 개가 생겨났다 없어졌다 할 수 있으므로 동일한 시간(이것도 관찰자에 따라 동시성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에 의식이 없다 있다이지 과거와 동일성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jaeminlee-c8o
@jaeminlee-c8o Жыл бұрын
항상 잘보고있어요
@areumdaum5805
@areumdaum5805 Жыл бұрын
위 영상을 통해 우리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문제는 사실 지속성에 관한 것이라기 보단 '봐주는 자' 가 우선이냐 '봐주기 바라는 자'가 우선이냐는 것이죠 딱 봐도 일단 답은 봐주는 자(예시로 판사)가 우선인거죠 그렇지 않다면 저 배 주인(봐주길 바라는 자) 두 곳이 판사한테 물어 볼 이유도 없는 것이죠 또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한 때의 실수로 전과자가 되었고 지금은 죄값치르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합시다 물론 당사자는 현재의 자신에 남들이 포커스를 맞춰 주길 바라지만 누군가 봐주는 자가 ' 저인간 전과자고 걸러 먹었네' 라고 판단해버린다면 봐주는 자가 사유한 인간성과 봐주길 바라는 본인의 인간성은 완전히 다를 수 있는거죠 이것이 바로 세상살이가 어려운 이유잖아요 이해와 오해의 혼돈의 역사... 암튼 세상에 신의 역할(봐주는 자)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인간 각자마다 스스로 신이라는 이름하에 봐주는 자를 상정해놓고 그 신앞에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서 살아갈 자세로 항상 예의주시할 때, 그나마 세상 속 다른 남과 사이에 이해와 오해의 폭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겠죠 지속성 개나 줘버리고 관점 전환 합시다 우리가 시공에 놀아나면 안돼요 시공은 우리가 건설할 때 그냥 활용하는 정도로 하죠
@클리블랜드3
@클리블랜드3 Жыл бұрын
개체의 본질은 무엇인가? 개개인의 본질이라고 할 수있는건 기억인가 영혼이라는 존재인가? 정말 어려운 질문인거같습니다 공각기동대를 비롯하여 이런 질문에 답을 제시하려 해본작품들이 정말많은데 이를 철학적으로 다시 돌아볼수 있는 좋은 영상이었습니다.
@푸들닮은헤이더
@푸들닮은헤이더 Жыл бұрын
골동품 수집가의 배를 다시 하나씩 분해해서 새 널판지로 교체하고 분해해서 나온 널판지로 또 조립한다면? 자..이제 어떤게 진짜 테세우스의 배지?
@yujinchoi5036
@yujinchoi5036 Жыл бұрын
나는 어제의 나도 아니고 지금의 나도 아니고 내일의 나도 아니다. 나는 어제의 나일수도 있고 오늘의 나일수도 있고 내일의 나일수도 있다. 또한 나는 내가 나일수도 있고 내가 나일수도 없다. 고로 나는 나이고 내가 아니고 나일것이고 내가 아닐것이다.....이런 생각을 계속 하면 미친 사람이 되나봐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도 자신만 의 생각과 철학으로 인류의 획을 그으신 선구자님들을 존경합니다.❤
@gaze1004
@gaze1004 Жыл бұрын
영상 잘 봤습니다. 동일성 = yuji = 전도몽상 = 괴로움(苦) 아닐까요? ㅎㅎㅎ
@gumasweet
@gumasweet Жыл бұрын
저는 찰나지속 이론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 같네요. 처음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을 때 대부분의 물질은 수소였고 수소는 모두 identical 하기 때문에 미시적으로는 구분할 수 없습니다. 수소1혹은 수소2이라고 이름붙일 수가 없지요. 물질 상호작용으로 인해서 거시적으로 우리는 이제 사물을 구분할 수 있고 이 사물 사이에 identical한 경우는 거시적인 경우로는 불가능하며 우리가 이름붙일 수는 있지만 저는 이름은 그냥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축과 공간축에 놓여있는 커피는 그 시간에 그 곳에 놓여있는 커피와 이후에 차가워진 커피를 생각해볼때 그 차가워진 커피는 예전에 이시간에 따듯했던 과거를 가진 지금은 차가운 커피이지 동일한 그 커피가 아니라는 거죠. 테세우스의 배의 경우 박물관배와 골동품 배 둘다 한때는 테세우스의 배 였던 다른 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때 둘 다 태세우스의 배였다고 할 수 있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박물관배는 태세우스의 배를 수리해서 리노베이션한 태세우스의 배이고 골동품배는 태세우스의 배를 이루고 있었던 나무들로 이루어진 배라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건 순간순간 절대로 완벽하게 동일할 수 없지만 시간축으로 보자면 가까울수록 비슷할 순 있죠. 저는 어제의 나와 굉장히 비슷하지만 4살이였을 때 저는 저와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봅니다. 생각하는 방식도 아예 다르고 기억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죠. 그치만 한 때 제가 그 아이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아이와 동일한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인슈타인의 주장의 경우에는 그가 '동일함' 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의견을 같이 할 수도 다르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현-z6c
@김대현-z6c Жыл бұрын
저도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저도 찰나지속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테세우스의 배" 라는 것은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테세우스의 배"는 찰나의 시간만 지나도 물리적 상태가 변할 것이고(아주 작은 조각이 떨어진다거나, 색이 변한다거나 등의 변화) 그렇게 된다면 테세우스의 배 라고 지칭한 물건도 0.000001초만 지나도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게 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테세우스의 배가 갖는 물리적 면모가 아니라, 상징적 면모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징적 면에서의 테세우스의 배는 둘 다 맞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이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의견차가 있겠지만, 결국 "테세우스의 배"자체는 물리적 면모보다 상징적이고 개념적인 면모가 더 중요하지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질문이 있는데요. 처음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을 때 수소들은 모두 동일하기에 미시적으러 구분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각 수소는 다른 위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따라서 구분 가능할 것이다 라고 생각해왔었어서요.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 알고싶습니다!
@gumasweet
@gumasweet Жыл бұрын
@@김대현-z6c 양자역학에 등장하는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우리는 물질의 정확한 위치나 속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미시세계에선 수소 하나가 가지고 있는 파동함수를 통해 확률밀도함수에 따른 확률적 위치만이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수소가 서로 가까이 있을 경우에는 두 수소를 구분하는게 불가능하게 됩니다. 물론 위치가 충분히 떨어져 있을 경우 수소 1과 수소 2로 구분 할 수 있으나 우주공간에 놓여있는 수소 1과 수소 2는 동일한 구조에 정확히 identical 하기 때문에 가까이서 자세히 본다고 구분할 순 없죠 인간이 구분지어 놓은다 한들 어떤걸 어떻게 이름붙였는지 잊는 경우 적어놓은 문서가 없다면 또 알 수 없는 거구요. 이런 것들을 생각해도 대현님이 말씀하신 대로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nquire2
@nquire2 Жыл бұрын
테세우스의 배 논쟁은 비교적 덜 논쟁적으로 보입니다. 박물관의 배는 정통성이 유지(동일시)되는 배이고 후손들의 배는 그 재료가 유지(동일시)되는 배입니다. 각각 다른 특성을 이어받았습니다. 영상을 보고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미래 언젠가(최근에도 논쟁중인) A의 뇌를 B(뇌사자)의 신체에 이식하는 경우 이 사람을 A라고 해야 하는가 B라고 해야 하는가? 아마 사르트르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말할때, 이런 미래 상황까지 고려해서 말했을것 같지는 않은데,, 아마 조만간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한 시기가 올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테세우스의 배는 배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아서 어떻게 정의한다 한들 논쟁에 그치겠지만, 사람의 경우는 B(뇌사자)의 몸에 이식된 A라는 인격체(기억)의 법적 영향력도 고려해야만할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인류의 과학 발전이 철학적 선택을 강요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니면 과거 중세시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철학적으로 감내할수 없는 사안에 대해 과학의 발전을 방해하거나,,
@현이립
@현이립 Жыл бұрын
불교에서 모든것은 변한다는 무상 그리고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로지 현재만 존재한다는 무아사상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livelovelaughbless
@livelovelaughbless Жыл бұрын
내가 태어나는 순간 나는 엄마뱃속의 나와 순간연속으로의 미래의나까지 이미 모두 연결되어진 유일무이의 나.
@글사랑임광해-b9q
@글사랑임광해-b9q Жыл бұрын
현재,과거,미래 동일성 모순합리성 의 진실은 참인가 거짓인가의 정의는 현재 존재하는 사고의 주체가 미래,과거,현재의 중심적 사고 행위자가 현존하는 시점이 동일성의 참이다. 참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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