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無我)란 뭘까 이걸로 종결합니다 | 강성용(인문학자) | 화요열린강좌 '왜 여전히 불교인가' | 출가 문화 세계관 인도 가족 권위 언어 관점 이해 시야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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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붓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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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종교 #카르마 #집착
안녕하세요 대한불교진흥원 유튜브 채널 헬로붓다TV입니다

Пікірлер: 477
@정하윤-v1y
@정하윤-v1y 2 ай бұрын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 그 순수함과 진실함, 그 정직하고 용감한 마음의 태도 정말정말 아름답습니다!!!!!!!!^^~~🎉🎉🎉❤❤❤🎉🎉🎉~~ 정말 학자로서 참 존경스러운 어른이셔요!!!!!!!!!!👍🏼👍🏼👍🏼💘💘💘👏🏿👏🏿👏🏿🎉🌈🍀🎊🎹🎶🎼🎵🤗😋~~
@shortstrokemix
@shortstrokemix 3 ай бұрын
교수님~ 지적으로 사랑합니다~.
@양규웅
@양규웅 5 ай бұрын
강의를 깊이있게 하면서도 비유를 쉽게해서 이해가 빠릅니다 .명강의 입니다
@이용익-k5z
@이용익-k5z 3 ай бұрын
지혜가 많으셔서 마음속에 쏙쏙 들어옵니다.
@youngseokcho2799
@youngseokcho2799 5 ай бұрын
전 강성용 교수님 강의 재미있습니다. 맥락이 두서없다는 분도 계시지만 사실 그렇기 때문에 사심이 없으시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역사속에서 편승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이 다시 무수하게 갈라지고 각 가지에서 꽃이 피여 있는 현재의 모습을 그나마 재미있게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는 점도 참 배울것도 무지하게 많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 여러 넘치는 미디어 속에서 숨겨진 독이 발라진 비수같은 사심에 찔리때마다 강교수님의 강의는 해독제처럼 느껴집니다.
@양창현-u7v
@양창현-u7v 5 ай бұрын
맞고요 맞읍니다
@양창현-u7v
@양창현-u7v 5 ай бұрын
카르마 업식 업식은 기도로 사라지나요 갓바위에서 할머니가 기도 햇는데 기도 효과는 왜 손자가 가지냐고요
@johnyoo7542
@johnyoo7542 4 ай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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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u5j
@김민-u5j 4 ай бұрын
​@@양창현-u7v아트만이 있다면 '카르마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게 말이 안되는 것이다'를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든것 같습니다
@b612mt7
@b612mt7 4 ай бұрын
맥락없는 인간이 ...교수님을...
@mangotree9187
@mangotree9187 5 ай бұрын
예전에 이자랑 교수가 부파는 법에 의해 갈라진 것이 아니라 계율의 차이로 갈라졌다는 논문을 보고 100%동감을 했었는데 ᆢ강교수님이 재삼 말씀하시고 강조하시니 확신이 섭니다. 인도를 여행했던 구법승들의 기록을 보면 소승과 대승 비구들이 한 사찰안에 같이 생활하고 있다는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생각이 달라도 같이 살 수 있지만 먹고 생활하는게 다르면 절대 같이 살 수 없습니다.
@jenniferpak-hullah2710
@jenniferpak-hullah2710 5 ай бұрын
어묵 아주머니 이야기에 참 많은걸 배웠습니다. 자기견해에 집착하는 것이 왜 해로운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택용정-w7c
@택용정-w7c 5 ай бұрын
00ㆍ
@gaian639
@gaian639 2 ай бұрын
지혜 🙏
@서유진-q4f
@서유진-q4f 3 ай бұрын
교수님에 말씀은 영혼을 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듣는놈없이 듣는다면 내것이요 내식으로 듣는다면 무용지물이라
@단-j3r
@단-j3r 3 ай бұрын
강성용교수님... 강의나 글 많이 읽고 보고있는 불자입니다... 늘 학자적 견지에서 해주시는 말씀이 제겐 들었던 많은 큰스님들 법문들과 함께 사고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bwithu9854
@bwithu9854 5 ай бұрын
강성용 교수는 경전의 원형(original form)을 찾아가려 애쓰되, 종교가 시대적 상황의 요청과 괴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 테다. 종교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콘텍스트 안에서 작동할 때 유의미한 것이지, 사회적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종교적 가르침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행간에 숨긴 듯하다. 특히 철학과 졸업생들을 철학관 도사로 오해한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의 운세풀이 요청에, 자신의 친구가 넉살 좋게 운세풀이하는 것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에피소드는 강성용 교수의 강의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고 본다. 정답과 진실이 때론 오답과 거짓이 되고, 오히려 오답과 거짓이 정답과 진실이 되느냐는 바로 사회적 요청에 대해 적절히 반응했는지로 결정된다는 역설의 미학을 강성용 교수는 담담히 내뱉고 있다. 가끔 강성용 교수의 강연을 듣다 보면, 철학자라기보다는 비교종교학자 내지 종교현상학자다운 풍모를 보인다. 그리스도교에서 다양한 학자들이 비평학 기술을 통해 '역사적 예수' 혹은 '역사적 바울' 찾기에 골몰하고 있으나, 결국 시대적 요청에 부합하는 쪽으로 연구를 진행하듯이, 불교의 '역사적 붓다' 찾기도 비슷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강성용 교수가 불교인의 입맛에 맞는 무아 교리 설명 대신에, 열린 해석으로 남겨둔 것은 그래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강성용 교수의 강의를 유튜브로 얼마 전부터 보고 있지만, 참 건강하고 겸허한 학자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강연 고맙습니다.
@jungdaekang1
@jungdaekang1 2 ай бұрын
크게 공감합니다. ^^
@번빈농축
@번빈농축 25 күн бұрын
맹자曰 惻隱之心 仁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슈슈슈슈-d5y
@슈슈슈슈-d5y 2 ай бұрын
강성용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송영애-k7x
@송영애-k7x 5 ай бұрын
늦었지만 교수님 강의를 들을수있어서.. 내가 문제있는건 아니구나 위로가되고 공부를 더해야할 이유를 보게됐습니다 감사 합니다
@허슬-e2z
@허슬-e2z 4 ай бұрын
🎉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인식 생각하는 폭이 넓어졌어요 ~ 훌륭한 강의 감사합니다 ❤
@jeajoonlee7805
@jeajoonlee7805 3 ай бұрын
참 대단하신 학자님이십니다. 삶의 한 부분을 이리도 넓게 보고 풀어 주시니 조금이나마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가 있었고, 좋은 강의를 듣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선이-t4n
@정선이-t4n 5 ай бұрын
겸손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gracepark5560
@gracepark5560 Ай бұрын
어묵이야기에서 저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소중한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blostman9989
@blostman9989 5 ай бұрын
어려운 이야기네요. 내가 없다라는 무아라는 삼법인 혹은 사법인 중의 핵심 개념이 어려운 철학적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집착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작용한거라는 이야기네요. 나와 나의것이 없으면 집착의 대상이 사러지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있다. 훌륭한 강의 입니다. 내가 아는것 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것은 타인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수있다는 겸손한 태도. 이게 불교도들의 자세라는 말이네오. 강의 감사합니다.
@삼수목
@삼수목 Ай бұрын
선생의 통찰이 탁월하십니다!용수의 대지도론에 그런 설명이 나오지요. 삼법인 제행무상은 항상하다는 중생의 집착을 깨기위한 시설물. 일체개고는 즐겁다는 집착을 깨기위한 시설물. 제법무아는 유아라는 고집을 깨기위한 시설물. 이것을 불교용어로 방편설법이라고 합니다. 집착을 깬 마음을 성스러운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이 마음에 있다는 맥락과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slowslow4363
@slowslow4363 5 ай бұрын
최고강의
@user-bs5ry5mv6r
@user-bs5ry5mv6r 4 ай бұрын
지금 시대에 몇 안되는 존경할 만한 분
@hopetopeople
@hopetopeople 4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튜울립-Heaven-u4r
@튜울립-Heaven-u4r Ай бұрын
🌸🍀이 시대에 함께하는 시간안에 지성좌✨️강 성 용✨️ 교수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음이 행복입니다😊💐
@TheHjjin
@TheHjjin 5 ай бұрын
현실 불교를 명쾌히 말씀해 주심. 다들 형이상학적 얘기에만 치우치는데 어차피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 말이죠, 이게 더 어렵고 이해와 연구가 훨 더되야 가능한 말씀.
@sunyata4812
@sunyata4812 5 ай бұрын
무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백에 양심 있는 학자를 봅니다. 제 생각에 무아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것은 나라는 착각에 깊고 강하게 휘감겨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moksalaw108
@moksalaw108 Ай бұрын
무아를 건드리면... 기형적인 한국불교 풍토에서 외톨이가 될 각오를 해야 하기에...
@명행-l5g
@명행-l5g 3 ай бұрын
요즘 찾아보는 명강 의 제대로 법공부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tooth3648
@tooth3648 5 ай бұрын
명강의 잘 들었습니다.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유투브에 나온 강의 찾아가며 듣고 있습니다.
@진공묘유K
@진공묘유K 2 ай бұрын
이미 없는 것을 붙잡고 집착한다는 걸 알아차리면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거나 할 필요도 없지요.^^ 허상에 대한 환상은 환상인줄 알면 일시제거.. 강의 감사합니다.🙏
@하울-z5j
@하울-z5j 4 ай бұрын
진짜 깊은 지식을 연구하신 대 학자이신것 같네요
@구리맘-k5m
@구리맘-k5m 3 ай бұрын
많은것을알고있지만 정말 겸손하신분같습니다.
@박도길-j6q
@박도길-j6q Ай бұрын
가장이해하기쉅게강의하심에 감사감사합니다
@jongdokim535
@jongdokim535 4 ай бұрын
역시 강성용 석학님!
@수레국화-b7n
@수레국화-b7n 5 ай бұрын
감동적인 강의입니다. 비로서 불교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몸마발몸마음발전소
@몸마발몸마음발전소 5 ай бұрын
모르는 것을 모른다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 열린 사고는 이런게 아닐까요? 진정 존경스런 분이시네요 요즘 *낮은 인문학 읽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정표김-q2w
@정표김-q2w 4 ай бұрын
교수님께 감히 한마디 합니다! 이 양반 물건이네!!😅😅 감사합니다 😊😊
@freeview21
@freeview21 5 ай бұрын
강성용 교수의 무아론 주장의 장점과 한계를 언급하자면, 일단 장점은, 붓다의 무아 주장은 철학적 의미 부여나 장식들 없이 단지 '자기'와 '자기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로 본 점은 아주 단순하고 깔끔한 해석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강성용 자신의 주장에 대한 집착마저 내려놓고 있다는 점도 함께 엿볼 수 있다. 불교를 소개하는 많은 사람들이나 불교 사이트들은 대체로 라고 내세우지만 사실 자신의 주장도 틀릴 수 있음을 열어놓지 않는다면 그 또한 자기 것에 대한 어떤 집착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고, 그럴 경우 이것은 일종의 이율배반이 된다. 또한 강성용 선생도 대승불교 경전에 나오는 불성 사상이 오히려 우파니샤드 힌두 전통에 굉장히 가깝다고 본 점0(1:10:36)도 나 역시 동의하는 바다. 실제로 인도 유학을 갔던 어느 한 스님도 이미 힌두교 학자들 역시 불성 여래장 불교에 가깝다는 점을 전하기도 했었다. 말미에 인도의 출가 문화가 중국과 한국의 동아시아 출가 문화와 상당히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원래 인도의 출가 문화는 동아사이에 만연한 가부장적 가족/조직 집단/공동체 사회의 가부장제 권력 고리를 끊는 기능도 있음을 암시한 점도 특기할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중국과 우리나라는 인도 출가 문화가 아니어서 유가 전통 사회와 어느 정도 타협된 출가 문화라는 점을 암시하는듯 했다. 강성용 교수의 무아론 주장에 대한 한계는(이는 장점과 맞물려 있는 것이지만), 붓다 이후의 2천5백년 불교철학사를 초기 붓다의 통찰에서 보면 매우 부차적인 것으로 보거나 이를 거의 무효화한다는 점에 있다. 물론 강성용 선생도 그것이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붓다 이후로 왜 많은 부파불교들이 생겨난 것인지 붓다의 가르침이 왜 자꾸만 여러 철학적 고찰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지점으로 남게된다는 것이다. 강성용 선생은 기존 불교 전통에서 중요한 것으로 가르치는 연기설도 후대의 것으로 보고 있다(33:34). 이런 점에서 강성용 교수의 인식에는 붓다와 불교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언젠가 다른 곳에서 표현하길 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아시아를 이미 점유하고 있는 대승불교 전통에서 보면 아무래도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긴 힘들 것으로 본다. 즉 단 하나의 불교가 있는 게 아니라< 천개의 불교>, 가 있는 셈이기에 결국 기존 불자들한테는 아예 거부되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혼동스럽게도 다가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miraclevictory
@miraclevictory 3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삼수목
@삼수목 Ай бұрын
용수의 대지도론에 무아는 중생의 유아에 대한 해독제, 무상은 항상에 대한 해독제, 괴로움은 즐거움에 대한 해독제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즉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삼법인 이라는 원리는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는 고갱이 입니다. 천개 만개 불교라도 삼법인이 없다면 엉터리 가짜 불교인 셈이지요. 통찰력있는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이승준-z3p
@이승준-z3p 5 ай бұрын
김성철교수님 이후 최고로 좋아하는 강연이 강성용교수님 강연입니다 *^^* 중립적이고 이론적 명쾌함으로 설명을 정말 잘 해주십니다. 어려운 이슈를 애두르지않고 정면돌파해 주셔서 정말 큰 지식을 얻었습니다. 😊
@0k879
@0k879 3 ай бұрын
내려놓음. 집착을 버리는 방법 한마디로 정리 됐습니다. 몇년을 고생했는데... 내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핵심적으로 한마디로 정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미국 5-6,000만원 주고 교육 참여 할 만하겠네요.
@fritzerichvonmanstein1363
@fritzerichvonmanstein1363 5 ай бұрын
강의 유인물이라도 받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selfsacrifice1726
@selfsacrifice1726 5 ай бұрын
Professor. K 최고! 명강의 최고!!
@비둘기-n9f
@비둘기-n9f 2 ай бұрын
무상 인과응보 윤회 물질문명 지구 종교와 과학 아전인수 욕망 우상화 몸 건너!!!!!!!!X? 무아 업장소멸 해탈 정신문명 시공 우주와 자연 진공묘유 자신 이뭣고 맘 발견!!!!!!!!X? 열반 천지일월 부모 착하고 바르고 깨끗한 삶 즐거운 행복 오색찬란한 빛 빵상+0-.......
@godking2710
@godking2710 4 ай бұрын
역시 명강의 이십니다. 우리의 사고라는것이 바로 업력의 작용뿐입니다. 실재의 나의 사고는 아닙니다 무아는 그대로의 보살도입니다
@헬로우-q2j
@헬로우-q2j 2 ай бұрын
석가모니가 설파했다는 원형의 불교 모습을 바라보면 지금과 다른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가지 이해관계도 작용을 했을 것이고, 혹은 더 나은 진리를 위함도 있었겠죠. 그럼에도 지금의 것들이 무의미하지 않음과 지금의 것들과의 불일치함에 대해 마음 씀이 불필요함을 아주 완곡하게 돌려 돌려 풀어서 재미있게 설명하시는 그 노련함과 배려심에서 엄청난 내공이 느껴집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러기 위한 가장 기본이 무아이지 않나 싶습니다. 나라는 형식에 얽메이기 보다 변화의 방향성을 인정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슬기로운 삶의 자세이자 교훈인 것 같습니다.
@김구성
@김구성 5 ай бұрын
듣다 보니 에 대한 선생님의 조심스런 태도가 이해가 됩니다. 아마도 에 대한 오해가 극단적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로 빠지는 위험성에 대한 고민이 있으신 게 아닌가 싶어요. 만약 극단적 허무주의로 빠지면 사실 '자이나교도'가 되는 게 가장 현명한 길일 테니까요. 불교가 고행주의가 아니고, 고통의 소멸을 통해 행복을 지향하는 종교라는 점에서, 를 어떻게 설명해 낼 것인지가 선생님의 숙제처럼 보여집니다. 선생님의 통찰처럼, 니까야에 나타나는 내용은 대부분 갈망과 집착을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인식틀이지만, 그렇다고 '나'라는 것을 아예 부정해버리면, 숙고하고 고찰하며 정진하게 만드는 마음작용은 그럼 무엇인가라는 고민. 즉 '사띠'를 가능하게 만드는 마음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생님께 있는 것 같습니다. 인도의 우파니샤드 전통처럼 그것을 '아트만'이라고 규정하고, 이 '아트만'이 끝없이 윤회한다고 한다고 해 버리면 설명이 간단한데, 불교는 '무아'를 말하면서 윤회를 얘기하니까 설명이 복잡해지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선생님은 '무아'를 인정하고, '윤회'를 부정해버리든지, '무아' 대신 '아트만'을 인정하고 '윤회'를 받아들이든지의 양자택일을 고민했던 불교의 많은 이론가들과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만약 시원한 답이 있었다면, 진작에 나오고도 남았겠지요. 설명하기가 불가능한 영역이기에 수많은 집단지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저는 이론으로는 결코 진실과 만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론은 수행과 만날 때 비로소 그 신비한 비밀을 드러낸다고 믿습니다. 정직하고 겸손하신 선생님께서 수행을 통해 이론의 깊이가 더 깊어지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user-mm1zy3bs7k
@user-mm1zy3bs7k 5 ай бұрын
수행은 답이 아니라 현상태를 더욱 어렵게 한다고 믿음
@김구성
@김구성 5 ай бұрын
@@user-mm1zy3bs7k 무슨 뜻인지 이해합니다. 어리석은 상태에서 하는 수행은 겉보기엔 훌륭해 보여도, 열매 없는 방황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가 가장 강조한 것이 지혜이고, 제대로 깨닫는 것, 즉 정견(바른 견해)을 팔정도의 첫단추로 놓은 것이겠지요. 저는 일반인에게 수행을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강성용 교수애게 권유한 것입니다. 정견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고,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팔정도의 나머지 수행이니까요. 지혜와 자비와 수행은 서로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제가 수행을 통해 세 가지가 상호작용하는 걸 경험했거든요. 물론 제 사견일 수 있습니다. 뜻깊은 하루하루 되시길.
@user-sogu73jdnv
@user-sogu73jdnv 5 ай бұрын
@@김구성 무아와 아트만의 논쟁이 끊임없는 이유가 있었군요. 저는 열반을 등한시 하고 무상 고 무아만 주장하는 자는 반드시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강성용 교수님도 문헌학적 근거를 제시하기가 힘든 모양입니다. 학문이 아닌 종교적인 체험으로 스스로 찾는 수 밖에요.
@자르하트
@자르하트 5 ай бұрын
무아에 집착하고 불교가 다른 종교보다 특별하다는 분별 상을 지니는 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봅니다. 무아는 아트만(참나)을 부정하는 의미가 아니라 오온은 아트만이 아니라고 아트만의 개념을 바로 세우는 과정에 나온 말이죠. 오온에 대한 집착을 놓아야 열반을 체험할 수 있는데 이것은 범아일여와 다를 게 없습니다. 우파니샤드는 불교를 통해 베단타 철학이 완성되었기에 힌두교 설립의 공적은 브라만교보다 불교가 더 크다고 봅니다.
@lelelele7103
@lelelele7103 4 ай бұрын
교수님은 학자이시니 수행보다는 학자의 본분이자 직업인 연구를 더 하시는게 한국불교계와 대중들에게는 더 좋은 일일거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저런 역사적, 문헌적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결과물들은 오직 학자들만이 오랜 연구와 공부를 통해 밝혀내고 발굴해낼수 있는 것들일테니까요. 이 강의도 교수의 본분으로서 학술적인 내용을 신도들에게 맞춰서 강연해주시는 것이지, 수행자나 승려의 입장에서 하시는건 아니기도 하고요. 학자는 이론을 정립, 재정립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게 본분에 맞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 이상의 활동도 하신다면야 좋겠지만, 대중과 신도들을 향해 이런 좋은 강연 해주시는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역할을 하고 계시가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드네요.
@여기는어디-i7d
@여기는어디-i7d 5 ай бұрын
감탄 나와서 여러번 숨이 멎었네요 알게되어서 영광입니다 쭉 틀어놓고 경청해야겠네요
@JamesPark-bz7dm
@JamesPark-bz7dm 4 ай бұрын
자런 석학이 대한민국에 있어 참 다행입니다.
@user-sogu73jdnv
@user-sogu73jdnv 5 ай бұрын
43:30 아트만과 무아 1:08:20 무아에 대한 불교 학자의 입장 1:10:00 대승불교의 힌두교적 관점의 근거 1:17:37 인과의 원리가 작동하는 현상계에서는 '나'라는 것이 없지만 '나'라고 인식한다면 그것은 현상계에서 만들어낸 상에 불과하고 그러므로 '고'와 다름 아니다라는 말이 아닐까요? 현상계와 다른 차원인 절대계에 존재하는 참'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나'는 불생불멸의 자리이자, 인과가 끊어진 자리이자, 진공묘유로서 글자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당연히 집착도 있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것은 오직 체험으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상계와 절대계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나 아주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5장 불교의 출발 - 누가 듣고자 했는가'에서 언급을 하셨더군요. 우빠니샫 텍스트들에서 보이는 자아(atman)가 브라흐만(brahman)과 일치되는 경지는 외견상으로 보기에 사라진다거나 물리적으로 이 세상에서 분리된다는 함의가 강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세상의 근본적인 틀, 즉 시간과 변화의 틀에서 벗어나는 경지로 제시된다. 이 경지가 무엇인지 혹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따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경지가 실제로 구현된다고 했을 때에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근본적인 존재 방식, 즉 시간과 변화의 틀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 Music ] ★반야심경 (Heart Sutra, KOR)★ by Gomdan kzbin.info/www/bejne/nWXbmWyDd7lrlZosi=DN0Yh-8BFz2GlJ_v 1:18:51 자신의 옳음과 타인의 바람에 대한 고찰 1:28:56 아트만의 존재에 대한 문헌학적 근거 1:34:35 인도 출가의 의미와 불교ㆍ유교의 이데올로기 갈등
@jamesprize
@jamesprize 5 ай бұрын
그 어떤 스님 말씀보다 더 명쾌하십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theknifemartialarts.9053
@theknifemartialarts.9053 5 ай бұрын
대승불교는 힌두교 베딕의 우파니샤드에 더 가깝다고 봐야할것입니다. 깊이있는 내용 감사합니다.
@mireajoe5915
@mireajoe5915 5 ай бұрын
훌륭한 강의입니다~~~
@강나루터-r8b
@강나루터-r8b 5 ай бұрын
비교 종교학 잘시청하고 정치 경제등 모든 문화의 심층 해설 감사 드립니다
@cyohan3698
@cyohan3698 2 ай бұрын
수고 하셨습니다
@bwithu9854
@bwithu9854 5 ай бұрын
옮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불확실할 수도 있다는 핵폭탄급 강연.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 건가. 여기서부터 '실전'이라는 것. 종교틀을 넘어선 새로운 차원의 수행.
@술빤傀儡굥石劣
@술빤傀儡굥石劣 4 ай бұрын
오늘 하나 건져 가네요 불교 무아론(아트만은 없다)은 집착을 없애는 목적으로 얘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혼의 유무에 대한 얘기인 경우는 극히 적었다 아트만 = 자아 = 의식 환생할 때 가지고 가는 기억은 핵심적인 것들이라 전생의 기억이 없다? 그 말은 본능이나 성품에 반영 된다는 걸로 보이네요 제1집착 : 자신 → 무아론 제2집착 : 소유 → 무소유 소유자가 없는데 소유가 있을 수 없는 것 헌데 이건 삶에 대한 포기와도 비슷해서 자살 비슷한데요? 또한 동양의 기독교와 불교는 오리지날과 다르기 때문에 시비 따지느라 똥고집 부릴 필요가 없다 동양인은 좀 더 현세적이고 집단적이다 사람들이 갈라서는 이유는 이념/철학/종교/세계관 때문이 아니라 현실 세계 속의 삶의 스타일/방식/취향 때문이다 기독교의 이단 논쟁이 권력 다툼인 것처럼... 이슬람의 종파(수니/시아) 대결이 권력 다툼인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건 죽어 가는 천국이 아니라 현실 세계 속의 행복이거나 고통이라도 줄여 주는 마취제 그래서 기복 종교가 근본인 것이다 (여기서 종교는 마약이라는 표현이 나오죠)
@수수해-t5s
@수수해-t5s 5 ай бұрын
강성용 교수님의 이번 강연에선 단답으로 맺음될 수 있는 정답보다, 오히려 그 답없는 의문을 가지게 된 여정 그 자체가 핵심 아니었나 싶다. 오히려 '진리가 이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면, 5분만에 강연도 끝났을테고 설령 그 내용이 수십여년간 진리로 받아들여진들 이후 풍화되어 사라질 것이다. 허나 그 의문을 갖게된 과정 그 자체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다양한 방식대로 해석되고 소비되어질 절대반지 같은것이라 본다. 붓다라는 초인은 게임으로 치면 끝판까지 다 깬 능력자이다. 그 게임을 깨고싶은 다른사람들이 붓다를 숭상하면서 배워야 할건, 붓다가 보이는 프로게이머의 현란한 플레이 그 자체가 아니라 미니맵이 어떤지 보스몹이 어떤지 속성이 어떤지를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붓다의 플레이에 탐닉하면 개인에게 답이 나올리 없다. 플레이가 아니라 맵을, 아이템을, 보스를 어떤지를 알아야지 똑같이 플레이한다고 깰수있는게 아니다. 제3자로 시청자라면 페이커라면 메시라면 이렇게 플레이 해야지 라는 그들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제3자가 아니라 스스로 게임에 뛰어든 플레이어가 된다면 자신은 페이커처럼 메시처럼 바라볼 순 있어도 그렇게 플레이 할 수 없다. 내가 플레이어가 되었을때 중요한건 페이커나 메시의 플레이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위기를 판단하는 방법... 옳바른 의문을 갖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옳바른 의문... 저 보스몹을 나는 어떻게 깨야하지... 가 되어야지, 어떻게해야 메시처럼(붓다처럼) 플레이하지...가 아닐것이다.
@joyofsinging3135
@joyofsinging3135 4 ай бұрын
따뜻한 마음을 철학적으로 재미있게 푸시네요. 참 훌륭한 인문학강의입니다.
@universalhealthcommunityTV
@universalhealthcommunityTV 4 ай бұрын
덕분입니다감사합니다😊
@김기업-e4c
@김기업-e4c 5 ай бұрын
강교수님, 정말 똑똑하시다,,,,, 아는건 안다, 모르는건 모른다,,,, 정말 많이 배운사람이 저렇게하기 힘든데 대단하십니다,,,, 강교수님 진짜 실력은 삼프로 헌대인도얘기가 아니라 인도고전에서 나오네요,,,
@찐아-q3z
@찐아-q3z 5 ай бұрын
깨닫지 못하면 모르는건 당연하죠
@김재석-u8i
@김재석-u8i Ай бұрын
저는 지금까지 깨달았다고 하는 분도 '무아'를 이 정도 쉽게 설명하시는 분 못 봤습니다. 누구보다 강교수님은 대중이 궁굼해 하는 것을 이해하시고, 그것을 쉬운 말로 전달할 수 있는 분입니다.
@유훈탁
@유훈탁 4 ай бұрын
집착은 분별심에서 나오죠, 분별이 쌓이면 사물을 보는 관념이 고정되구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사실 이건 아기였을 때에도 마찬가지죠. 그렇기에 전 윤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체가 처음부터 아무런 집착이 없는 상태에서 태어난다면, 그 생명은 삶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나라는 아트만을 태우는 등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게 집착이죠. 자아가 없다 =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자아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아트만이 있다라는 것을 알고 인지하는 것은 다른 상황이죠. 삶은 흘러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고정된 시공간입니다. 이 고정된 시공간에서 살아가고 경험하고 나라고 느끼는게 집착이 결국 내것을 만들고 나라는 아트만이 형성되죠. 사람은 "나"라고 하는 존재가 실제 느끼고 생활하는 거주 반경의 공간만을 인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서는 사고를 하지 않으면 분별심이 깨지지 않고 집착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내 것이라 여기는 모든 것은 감정이 있습니다. 내 것을 빼앗기면 감정이 일어나죠. 특히 소중한 것이라면 말이죠. 소중한 것을 빼앗기거나 잃는 상황에는 육신의 아픔도 있죠. 나의 부모, 자녀의 이별도 마찬가지. 내가 태어나고 병들고 아프고 고통을 느끼는 것 모두 내가 조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반응하는 감정도 말이죠. 그 감정의 과정인 생각도 마찬가지. 내가 태어난 이상, 받아들여야 하는 나라는 존재의 시공간 이라는 거죠. 하지만. 내가 내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더 이상 분별하지 않으며 지혜라는 사고를 통해 집착이 사라져 나라는 아트만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요? 나라는 아트만을 태우는 등불, 집착이 꺼진 무아의 상태, 이것을 알게 될 때, 깨달음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번외로 태어났다면 아트만은 존재 할 수 밖에 없으니, 자신의 아트만을 사랑하고 받아 들이고 달래야 합니다. 이는 타인도 마찬가지 그 사람은 모르지만, 그 사람의 자아는 동시에 다르게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그 자아를 인지하고 달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애와 연민, 올바르게 보는 것을 행하는 것.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라 봅니다.
@donghomyungsong
@donghomyungsong 5 ай бұрын
멋지고 깊은 의미를 전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bwithu9854
@bwithu9854 5 ай бұрын
당연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여긴 명제를 의심해보는 것.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 이것이 우리를 대자유로 이끌 수 있다.
@바다가좋다123
@바다가좋다123 4 ай бұрын
수준에 맞게 말씀해주시는것 같은ㄷ0
@시리우스대왕고래
@시리우스대왕고래 5 ай бұрын
교수님, 교수님의 어떤 강의를 찾아 들어도 너무 좋습니다. 강의 들을 수 있어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sk21kim
@sk21kim 5 ай бұрын
쉽지 않은 내용을 예를 들어가며 비교적 쉽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교수님 덕분에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 점에도 감사드립니다.🎉🎉🎉
@zartman7512
@zartman7512 5 ай бұрын
무아는 무아 한 단어로만 해석하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상고무아'로 연결지어 해석하면 바로 이해됩니다. 무상 (내가 늙고 병들기 때문에 무상하다는걸 알았다), 고(그래서 그걸 보고 느끼는 내가 너무 고통스럽다), 무아(결국 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라는걸 알았다.) "나에게 그런 앎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나' 라는 표현을 썼지만 나 라고 하는 존재도 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므로 있는것도 없는것도 아닌것입니다. 사실 언어로 완벽히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함) 아무튼 윤회에서 이것을 반복하는데 무상고무아를 알게 되었으니 이 의미없는 윤회를 이제 끝내야겠다. 여기까지 가게 되는것이 이제 수행의 시작입니다... 단순히 '나 라는게 사실 없다' 이런것 보다는 '나' 라고 하는 물질적 존재는 분명 여기 있지만 그것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내가 맛을 보는게 아니라 그 달고 쓴 맛이 혀에서 반응한다. 이걸 '내것' 이라고 착각한다. 내가 보는게 아니라 눈의 기능이 대상의 형색을 받아들인다. 이걸 '내것' 이라고 착각한다. 내가 듣는게 아니라 소리의 파동이 귀의 고막을 진동시킨다. 이걸 '내것' 이라고 착각한다. 이것이 무아의 정의 입니다. 만약 반대로 '유아'나 '자아' 라면 눈을 뜨고 있어도 내가 보고 싶은것만 보고 보기 싫은것은 안볼 수 있어야하고 음악을 듣고 있어도 내가 듣고 싶은것만 듣고 듣기 싫은것은 안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감기에 걸려도 "지금 감기가 다 나아라!" 라고 몸의 주인으로써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그런게 불가능하죠. 이렇게 내 뜻대로 할 수 없기에 나다, 내것이다, 주인이다, 참나, 진아 이런건 없다는거죠. 그렇기에 매번 삶이 고통이고, 그 고통을 윤회를 하며 반복하지 말고 해탈해서 벗어나라는 가르침 입니다. (몸과 마음을 맘대로 다루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본인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 라고 하는것을 '무아'라고 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무아인데 누가 윤회 합니까? 이것에 대한 답변은 부처님의 지옥에 대한 가르침으로 대신합니다. 사리뿟따여, 나는 마음으로 마음을 대하여 어떤 사람이 " 이 사람은 그 길을 그렇게 가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에 들어서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라고 이와 같이 안다. 그 다음에 나는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그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서 고통스럽고 살을 에는 듯하고 쓰라린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zartman7512
@zartman7512 4 ай бұрын
@user-sc6wh6fy8l 부처님 제자중에 사리불 존자 라는 분이 있는데 사리뿟따 라고 쓰기도 합니다. 상수제자 중에 한분이세요.
@banu-uy1yr
@banu-uy1yr 3 ай бұрын
몸과 마음을 맘대로 못 다룬다면 본인것이 아니다 라고 누가 정했나요? 내 뜻대로 못한다고 해서 내가 아니다라고 누가 정했나요? 왜 내 맘대로 못한다고 나가 아닌가요? 저런 명제를 정해놓고 나가 없다 라고 하는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지요 저 명제부터 증명해야 그 다음 명제가 참인지 아닌지가 나올겁니다 저 명제를 참이라고 확정하려면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가 확정을 해야되는데 나가 무엇인지 확정하려면 저런 명제가 다시 필요하지요 자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나란게 무엇인가요? 나라는 것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럼 왜 나는 내맘대로 할수 있어야한다는 명제를 내놓은 건가요?
@zartman7512
@zartman7512 3 ай бұрын
@@banu-uy1yr 부처님이 말씀하신겁니다^^ 설마 이런 가르침을 제가 지어냈겠습니까. 그리고 '나'라고 할만한 물질적 존재는 있습니다. 단지 그 주인이 온전히 내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마치 내 인형이나 자동차 장난감을 분해했다가 원할때 다시 조립할 수 있듯이 내 몸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함에도 할 수 없기때문입니다. 그 이상의 설명은 저의 한계라 미리 죄송하다 말씀드리겠습니다.
@zartman7512
@zartman7512 3 ай бұрын
@user-sc6wh6fy8l 그 당시에도 난다긴다 하는 현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부처님과 논쟁해서 이득을 얻지 못했다죠. 부처님이 그당시 마치 신흥종교 교주같은 느낌이었으니...(갑자기 나타나 깨달았다고 하니까) 기존 종교 장로들이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사실 부처님 당시에 물어보지 않는 이상 우리가 뭐 정답을 알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어져 내려오는 경전을 보고 배울뿐이죠. 소크라테스와 논쟁은 저도 궁금해지네요. 근데 그 비슷한 밀린다왕문경 이라는게 있습니다. 밀린다왕은 그리스 사람이고 나가세나존자는 인도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zartman7512
@zartman7512 3 ай бұрын
@user-sc6wh6fy8l 여담이지만 밀린다왕이 진짜 너무 현명하고 똑똑해서 기존 아라한들의 논리를 무너뜨렸다고 합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소크라테스가 부처님 제자들을 말싸움으로 이겨버린거죠.
@llllliiiiilllll
@llllliiiiilllll 5 ай бұрын
강성용 교수님은 일을 여쭤보면 진법 속에서 일의 위치를 알려주십니다. 교수님 강의는 지식을 아는 재미가 너무 커요!!! 한국에 이런 학자가 계시다는게 전 너무 자랑스러워요!
@mijeonKim-u2g
@mijeonKim-u2g Ай бұрын
참~강의멋집니다
@k라라-z6y
@k라라-z6y 5 ай бұрын
또박 또박 얘기하시는데 간식 먹다 뿜었습니다. 교수님 "출가 근데 몸종이 5이야. 그절은 아무도 못건드려" 저도 학생들 가르치는데 별로 웃긴거 못듣다 교수님 강의는 하나도 안웃긴데 들으면 웃다 뿜어요. 강성용 교수님 천재십니다. 고맙습니다.
@용화-y6g
@용화-y6g 5 ай бұрын
무상을 직접 체험하여 알지 못하고, 무아를 논하는것은 그어떤 논설이라도 소설과 같습니다. 무상을 아주 또렷하고 분명하고 명료하게 관찰하는 자신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 입니다. 무아는 무상을 넘어 합일 한 상태이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만법일여 등등으로 표현 하는것으로 인지되고 있습니다.
@Simonhwang2828
@Simonhwang2828 5 ай бұрын
’나‘가 생각하는게 아니라, 생각을 하니 ’나‘가 생긴다. 원래 없는 것을 있는 것이라고 믿는건 상상이고, 원래 없는 것이 반응하고 판단하는 대상(세상)에 대한 믿음은 모두 환상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는 상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 환상을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집착.
@sandgold2288
@sandgold2288 5 ай бұрын
지식적인 세계관보다 몸의 습관이 더 생존, 삶에,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군요 유전자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단단한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 수행 수련 단기출가 출가..
@gcg3208
@gcg3208 5 ай бұрын
강성용 교수는 최고입니다.
@사자77
@사자77 4 ай бұрын
무아란 순수한 의식입니다.. 눈으로 보이는건 동일하나.. 나라는 느낌과 생각이 떨어져나간 의식의 상태입니다.. 세상이 빛이나며.. 육체적인 감각은 걷돕니다..
@두둠칫둔두루누
@두둠칫둔두루누 4 ай бұрын
나는 존재하면서 변화하고 있다를 그냥 깊게 이해하고 있는거에요 무슨 순수한 의식도 뭐도 아니고 나라는것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나는 존재하면서 계속 변화한다를 이해하는건데 무슨 순수의식이니 뭐니..
@사자77
@사자77 Ай бұрын
수백 수천생의 윤회속에서 무아의 상태를 경험하는건 찰나일 뿐입니다..생각이 , 내가 주인행세 하면서 사기를 친걸 그때야 비로서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가짜인 내가 나를 부정하고 진짜를 찾는 다는게 찾는 주체인 내가 가짜인데 어떻게 진실을 찾겠는가? 그러니 부처가 없는 것이다.. 석가모니 이래로 진실을 찾은 부처는 백명도 않될 것이다
@두둠칫둔두루누
@두둠칫둔두루누 Ай бұрын
@@사자77 부처님이 부정하신걸 하고 계시네요. 가짜,진짜 이런게 상이라는거고 나라는 집착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무아를 설하신건데 다시 나에 대해서 집착하네요. 집착에서 자유로워질려면 고정 불변하는 실체는 없다. 자아도 그렇다는거쥬
@사자77
@사자77 Ай бұрын
머리로 생각으로 부처님 말씀을 인용하시다니 부처님도 몸으로 채득하신 것인데.. 산입구도 올라가보지 못하고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는걸 말하면 어쩌라는 . .. 언덕이라도 올라가봐서 내려봐야 아 이게 그뜻이구나..유추라도 가능한건데..나는 포기 했지만.. 인연되시는 분들은 들이시길 생각이 생각을 가짜라고 스스로 알고 소멸하는 것인데 가짜가 스스로 어떻게 가짜인걸 안단 말인가? 그러니 부처가 그렇게 없는 것이요, 사기꾼들만 득실하고
@사자77
@사자77 Ай бұрын
어째서 말로 설명 못하느냐.. 침묵만이 알수 있기 때문인데,. 맛집 블로그 댓글에 백마디 맛 표현보다.. 줄서서 한번 먹어보는게 직감적인거니까...그 맛이 생각으로 나오면 그때부터 끝..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만년은 더 윤회하려 합니다..외롭지 않으니까요 인연들이 한꺼번에 동시에 다른 모습으로 또 다시 모입니다..모습만 다를뿐 관계는 똑같아요..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댓글보고 비웃고 계시나? ㅎㅎ 당신도 똑같소 기억만 못할뿐이지..혹시 아는가 나와같이 석기를 같던 이웃집 사람인지 만년전부터 5백년 전까지..수많은 생이 보인다면..믿으 실란가..? 그러나 나라 할것은 없기 때문에 전생도 없고 나도 없는 것이오 그러니 부처님이 전생을 얘기하면서 전생이 없다고 말씀하시늗 것이요
@Zechikyou
@Zechikyou 5 ай бұрын
아~ 강성용교수님! 물에 빠진 자에게 하늘의 도를 말한들 뭣하나? 그저 손을 내밀어라~ 백이면 백의 인생의 길이 있는데, 그게 다 하늘의 도~ 그래 이 '도'로 저 '도'를 무시하거나 멸시치 말라~ 참 진리의 말씀입니다. 무아! 이제야 전후좌우가 이해됩니다. 늘 그 진지함과 학구적임과 겸손한 모습에 믿음이 가는, 시대적 학자이십니다.~ 또 기대 만발!!
@경주심심
@경주심심 5 ай бұрын
34:04 34:04 34:08 34:13 34:35 34:36 34:40 34:41 35:04 35:08 35:11 😊,
@incheolkim4171
@incheolkim4171 5 ай бұрын
헛똑똑이 보이네. 좀 안다는 놈들은 전부 헛소리나 하고 있으니.
@나홀로할베
@나홀로할베 5 ай бұрын
이바구가 나누기 더하기가 기본이네. 자네 생각은 자네한테 딱맞다고 다른사람에게도 먹힐거라는건 모자라는생각이다. 간단한 예로 자네가 예시로 든 지성드린 할머니 공덕을 손주가 왜 받어 라는말은 죽을 고행으로 진리를 깨우친건 부처인데 아무 고행도 않는 자네가 선지식을 왜 주워 담어 라는소리와 같다.그냥 아닥 허고 지네시게.
@selfsacrifice1726
@selfsacrifice1726 5 ай бұрын
​@@나홀로할베 할매랑 손주랑 같다면 할매가 손주를 위해 기도를 왜하냐 ㅋㅋㅋㅋ 둘이 같다면 뭘 할까? 뭘 하겠어?
@user-mm1zy3bs7k
@user-mm1zy3bs7k 5 ай бұрын
​@@incheolkim4171ㅁ
@sangaihahn8756
@sangaihahn8756 5 ай бұрын
강교수님, 진정코 존경스럽습니다. 불자로 70평생을 살면서 배우려 애 썻던 설법공부중... 가장 정확한, 가장 알아 듣기 쉬운, 가장 정직한, 그래서 가장 아룸다운 강의이십니다. 진정코 업이 깨끗하신 분이십니다. 감사드립니다.
@김조이-k6s
@김조이-k6s 3 ай бұрын
부분 부분이 마차가 아니라고 마차가 없는 건 아니고, 마차는 마차다. 나무관세음보살 🙏🙏🙏
@banyajeong9576
@banyajeong9576 2 ай бұрын
단순히 집착하는 것이 괴로움이라면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괴로움이 아니고 윤회가 있어 영원히 윤회 해도 집착하지만 않으면 어떤 문제도 없다는 뜻? 그렇다면 붓다가 깨닫고 불사를 얻었다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고 한것은 뭘까요? 무상도 무상하기에 괴롭다는 것인데 그 의미는 좋아하는것이 영원하기를 집착하는데 무상하기에 괴로운것 무상하지만 집착하지만 않으면 그것도 어떤 문제도 없다는 것이고 삼법인은 일체개고 제행무상 제법무아인데 일체는 12입처라고 경에서 말하고 있으니 6내입처 6외입처를 가진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말이다 모든 형성된것은 무상하다는 것은 대부분 받아 들일수 있는 내용이고 제법무아라 하였는데 제법이란 6근6경 6식의 삼사 화합으로 생한 촉 그로인한 괴롭거나 즐거운 느낌이라고 경에서 말하고 있다 결국 인간이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제법)들은 나도 나의 것도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태어난 존재(오온)들은 괴로움 덩어리 라는 말인데 단순히 집착을 안하면 해탈이고 열반이다라고 해석하는것은 불교를 너무 가볍게 해석한것 아닐까요? 아라한은 누진통을 얻은자들을 말합니다 누진통이 쉽게 얻을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존재가 괴로움이라면 다시 태어남을 해결하지 않으면 모든 괴로움을 소멸했다고 말할수 없을것이다 누진통은 천안통 숙명통과 함게 삼명으로 불리는 신통이다 당시 해탈하여 아라한이 된 제자들은 대부분 신통을 같이 획득한것으로 경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아라한이 모든 신통을 얻어야 해탈하는것은 아니고 혜해탈로 누진통만 얻어 아라한이 된 제자들도 언급하고 있다 심해탈까지 이루어야 나머지 다른 신통이 발생하는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심해탈 혜해탈을 모두 이룬자들은 양면해탈자라 한다 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해탈은 선정에 들어 제법을 여실지견하지 않으면 얻을수 없는 것들입니다 즉 수행없이 얻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불교에 초선에라도 든 수행자 분이 몇분이나 있을까? 강교수님의 구차제정 신통 심해탈 혜해탈에 대한 연구가 있으면 듣고 싶습니다
@이준형-l4r
@이준형-l4r 5 ай бұрын
학자로써 불교에 대한 맥락과 현실적 사안들을 있는그대로 솔찍 담백하게 강의하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해석과 판단은 이역시 각자의 길이 됩니다
@Kims_castaway
@Kims_castaway 5 ай бұрын
저는 어릴때부터 할머니 어머니 손에 이끌려 심인당에서 불교를 접하고 친구들과 놀고 설법을 자연스레 많이 들었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들어왔는데 중간 중간에 어려운 말이 많네요 ㅋㅋㅋㅋㅋㅋ😂 하지만 그걸 짐작하시듯 구체적이고 현시대적인 비유들이 많아서 너무 재밌고 어렴풋이 나마 맥락과 의도는 전해집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카르마와 상속세, 100일기도하는 할머니와 수능생의 이야기와 전생의 카르마를 내가 이어받는것 이런 생각은 아마 제가 스스로는 생각을 발전시키기는 어려울거같은데 교수님의 생각의 깊이에 놀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꿀
@언제나꿀 5 ай бұрын
상속세는 폐지되야 중소기업 유지가 되고 직원들 일자리 유지가 되고 사회경제가 돌아갑니다.50프로 현금세금부과 하루빨리 폐지되서 건물들 흉하지않고 재투자되서 이쁘게 단장해서 북적거리는 길가모습 보고싶어요
@qkdwhtknam8293
@qkdwhtknam8293 5 ай бұрын
감동적이다. 마음에 와닿는다.
@hansoo-
@hansoo- Ай бұрын
교수님 늘 감사합니다 🙏🏻🙏🏻🙏🏻
@병철나-y8f
@병철나-y8f Ай бұрын
참으로 대단한 강의십니다. 야! 드릴 말씀이 없어요
@fxss8051
@fxss8051 2 ай бұрын
내가 없다가 아니라 이 생에 형성된 몸과 마음은 내가 아니다 즉 비아가 맞는 번역이며 의미임
@henalove75
@henalove75 5 ай бұрын
내가 아는 것만 맞다고 생각하지말것. 불교에 대해서나 인간관계에서나 명강의 감사합니다.
@uchaeim4217
@uchaeim4217 4 ай бұрын
0:30 😊
@번빈농축
@번빈농축 5 ай бұрын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내것이 아니다.
@philsoolee1703
@philsoolee1703 4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yayaya1963
@yayaya1963 2 ай бұрын
무아란 변하지도 않는 영원한 나가 없다는 말입니다 힌두교가 주장하는 영원하 지배계급로만 존재한다는 그런 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지금의 나는 주위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그런 나에요 그래서 오늘의 나는 과거의 행동으로 먼들어진 나이고 오늘의 행동으로 미래의 나가 만들어진 다는 의미예요 오늘의 나가 만들어져 과정을 설명하는것이 연기법이예요
@incheolkim4171
@incheolkim4171 5 ай бұрын
공부가 깊어지면 나 라는 존재가 영혼에서 몸으로 점점 내려오게 된다. 영혼은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을 잘 쓰야 되는 것인데 이게 통제가 어렵다. 그런데 내 마음이 평온하려면 내 몸이 평온하고 배가 고프지 않아야 맘이 평온해진다. 아픈곳도 없어야 한다. 그러니까 내 맘이 편하려면 내 몸을 편하게 해야 되는데 이게 바로 수양이다. 마약을 하면 내 맘은 평온해지고 해탈을 경험할수도 있겠지만 몸과 뇌 회로가 완전히 망가져서 몇 달도 지나지 않아서 보통 사람보다 못한 영혼으로 살게 된다. 자 그렇다면 나의 주인은 영혼인가 몸인가? 그래도 영혼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 영혼을 다루어서는 방법이 없어. 그런데 몸을 다루면 해결책이 보인다. 내 맘이 우울했는데 사람들이 나에게 칭찬을 한다면 나는 바로 기분이 좋아한다. 사람들이 내 영혼에게 칭찬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보통 내 몸에게 칭찬을 하지 않는가? 나도 내 몸을 나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그러니 이 몸에 더 신경을 쓰고 더 집착을 해야 된다. 맘의 집착을 끊으려면 당신 몸에 집착해야 된다. 좋게 꾸미고 화장을 해서 대중들이 좋아하도록 애를 써라. 그럼 뭇사람들이 좋아할 것이고 그게 당신에게도 좋은 것이다.
@selfsacrifice1726
@selfsacrifice1726 5 ай бұрын
음~ 율곡~
@권세우-w8i
@권세우-w8i 5 ай бұрын
어떤 진리 강의를 들어도 개체적 관점에서 듣게되면 자신의 의식 수준과 지식 정도에 따라 모두 다르게 들리고 이해하게 됩니다..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얘기를 하면 그건 개체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얘기하는 것이되고 깨달은 자가 얘기를 하면 그건 진리가 됩니다..왜 진리가 되는가? 깨달은 자는 전체,절대적 관점인 근원에서 있는 그대로를 얘기 하는 것이므로 있는 그대로 그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깨달은 자는 현상 세계에는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자아란 없다 라는 것을 체득한 자 이기 때문에 그자체로 무아이고 무아이므로 절대라고 합니다.그것도 깨달으나 못 깨달으나 본래 무아이고 본래 절대라고 합니다. 무아를 굳이 다른 말로 표현 하자면 나는 모든 것이 되었고 모든 것은 내가 되었다로 표현 될 수 있겠는데 이상태가 또한 절대인 거죠. (여기서 말하는 나는 개체적 나가 아니라 절대를 의미)그러므로 모든 현상을 절대적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 보게되니 진리라고 하는 거지요..그래서 성자들의 말씀은 전부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헷갈리지 않으려면 진리에 대한 용어부터 정립이 되어야 하는데 현대의 성자님들 가르침을 듣는 것이 중요 합니다.. 불교와는 관계없이 깨달으신 분들이 많은데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과 같은 무아연기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9월이오면
@9월이오면 5 ай бұрын
무슨 공부를 이리 살벌하게 하셨나요 😮 와...
@sungchulpark9830
@sungchulpark9830 3 ай бұрын
깨달음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 하지요 아무리 연구해 봐야 알수 없읍니다 .. 다 깨달으시길,,,,,,
@0k879
@0k879 3 ай бұрын
다 깨달으셨는데 말씀을 아끼시는듯요
@Luffy-ku7xp
@Luffy-ku7xp 5 ай бұрын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성이름-z5z9t
@성이름-z5z9t 5 ай бұрын
🙏
@ulim1214
@ulim1214 Ай бұрын
불제자로서 저는 불교란 다른 어느 종교보다 겸손하고, 다른 어떤 철학보다 겸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자를 자처하고, 불교의 교리나 철학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자처하는 댓글들의 내용을 보니 같은 불제자로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개념과 정의가 옳고 유일한 진리라는 태도의 댓글들, 자신이 이해한 개념이 붓다의 진의에 가깝다는 주장들, 나아가 ‘당신의 말은 엉터리다. 내가 가르쳐주겠다’라고 강의자에게 훈계조로 화를 내고 막말을 하는 댓글을 보면 겸손과 겸허는 다른 나라 이야기 같습니다. 탐진치 삼독, 집착에 빠진 것은 강사가 아니라 본인들 자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도대체 누가 누굴 가르친다는 것입니까? 강사의 가르침도 자신이 공부한 범주 안의 것이고 여러분의 댓글 또한 그러합니다. 특히 학자란 자기 지식 범주 안에서 자신의 주장과 학설을 펼치는 사람이고, 이 자리 또한 여러 불교사상사를 고루 소개하는 입문교양시간이 아니라 그간 한국불교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학문적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전파하는 의도로 마련된 자리입니다. 당연히 기존과 다른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기존의 내 지식과 다르다 하여, 듣기 불편하다하여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모욕하는 언사를 하는 것은 불자의 입장에서 악업을 일으키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시비를 가리는 분별심을 앞세우기보다는, 한국 대승불교 전통이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은 없었는지 새로운 내용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해탈 열반에 더욱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더구나 강사는 최대한 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상 속 일화에 빗대어 쉬운 언어로 설명하고자 노력하고, 다른 학설과 해석도 있다는 걸 알려줄 만큼 균형감각을 가졌으며, 모르는 건 모른다 할 만큼 학자로서 냉정함과 철저함도 있어 보입니다. 내용의 옳고 그름, 충분함과 미진함을 떠나 어떤 태도가 더 불교적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귀한 시간 내어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채널 관계자와 단체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Siddhartha_Buddha
@Siddhartha_Buddha Ай бұрын
어느 종교보다 겸손하다는 그 관념을 깨는게 불교 입니다. 불교는 그 어떤 상도 견해도 쥐도 있지 않습니다. '불교는 이래야 한다', '불자는 이래야 한다,,,' 한국 대승불교 전통이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은 없었는지 새로운 내용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은 좋은 말씀 입니다.
@incheolkim4171
@incheolkim4171 5 ай бұрын
'티끌이 없고 닦을 것이 없고 빛나고' '한계가 없이 무한히 밝은' 이게 자성이 아니다. 이건 불교가 아니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나눠서 밝은 것만 취하려 하는 건 불교가 아니다.
@k라라-z6y
@k라라-z6y 5 ай бұрын
교수님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태어나면서 기독교였고 살아오면서 불교 그런데 절에가면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불교라도 교회에 안가고 절 행사에 안갑니다. 아마 저와 같은 심정일 겁니다. 가끔 절에 혼자가서 기도하고 옵니다. 신과 나와의 문제입니다. 그사이 스님도 절의 규범도 그무엇도 없고 오직 불경을 읽고 강의를 듣습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지나치게 많이 교육받은 1인이며 치열하게 공부한 1인입니다.
@charleyh5501
@charleyh5501 2 ай бұрын
교수님께서는 카르마에 대한 물상대체에서는 아직 이해를 못하신듯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에너지의 전위가 대체되는 방식인데 나에게 주어진 에너지 즉 돈이나 물질이나 나의 행동들이 그쪽으로 전위시키는 행위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감옥에 갈거나 벌금으로(돈)으로 대체할거냐 2가지를 선택해서 할 수 있는데 그걸을 바꾸는 에너지 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나 할머니의 기도의 행위 에너지가 아들에게 전위를 시키는 겁니다. 즉 뭔가를 할려면 에너지 소비가 일어나야 하고 본인의 뭔가가 소비되어야 합니다. 즉 그 소비를 행운의 에너지로 대체시키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생활속에서 물상대체 행위를 생활속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질과 규정은 의미가 없습니다. 진리를 설명하면서 규정을 연관시키면 안됩니다. 인간의 규정은 인간이 만든 그냥 행위입니다.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보살들이 시주하는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진 에너지 돈이나 다른 물질으로 보시 함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다른 악의 에너지를 대체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수행하는 스님은 보시를 받아도 카르마를 소멸시킬수 있기에 문제가 없지만 일반인들이 보시를 받으면 그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무료를 좋아 하는 사람은 그 에너지를 본인이 뒤집어 쓰게 됩니다. 무료 공짜를 좋아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그에너지를 받는 사람이 그 에너지를 가져 가는 방식으로 질량보존의 법칙입니다. 설명하기기 좀 어렵네요.
@바다늑대-w3f
@바다늑대-w3f 5 ай бұрын
강성용 교수님 강의 너무 감사합니다.
@명상센터밝은몸
@명상센터밝은몸 5 ай бұрын
행동은 자신이 스스로의 자율적인 의식의 작용이지만, 그렇다고 무의식적인 저절로의 작용을 자신이 아니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세로축의 방향으로 작용하는 저절로의 축과 가로축의 방향으로 작용하는 스스로의 축으로 2개의 축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卍 이나 + 의 형태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월장-d1j
@만월장-d1j 5 ай бұрын
백만불짜리 강의 감사합니다 ()
@빛물-f7o
@빛물-f7o 5 ай бұрын
추천부터 하고 보는 학자님 볼 때마다 고맙습니다.
@jungdaekang1
@jungdaekang1 2 ай бұрын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눈이 밝아지는 말씀이었습니다.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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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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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orks #beatbox #tik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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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boxJC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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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ndo A Diferença De Altura É Muito Gran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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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 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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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self! Why non-self? How come there is no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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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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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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