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이 그당시 혁신적이었던건 위력때문이아니라 농민한테 들려줘도 군인을 사살할수있기 때문에 군인을 대량으로 쉽게 양성할수있는 효율성입니다 고대 칼 활 창등으로 전쟁할때는 숙련된 군인을 일반인이 상대한다는건 상상도할수없는 일이었죠 활로 움직이는 사람을 맞추려면 10년은 걸렸다할정도였으니까요
@user-yo4om3ol6b3 жыл бұрын
오 맞네요.. 활은 숙달하려고 하면.. 어마어마한 숙련이 필요하죠
@속바지입는여자는몰카3 жыл бұрын
지나가는 여자나 어린애들도 쥐여만 주면 대등하게 싸울수있다는거
@Sam-qz4kc3 жыл бұрын
위력도 무시 못합니다.. 활같은 경우는 나무 방패만 쥐어줘도 어느정도 방어가 가능했습니다만, 조총은 사거리 안에서는 일 단 맞기만 하면 방패고 뭐고 뚫어버리죠, 괜히 서양에서 총이 나오자 기사들이 몰락하게된게 아님
@bundeswehr1131 Жыл бұрын
문제는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에 전해준 조총은 초고가 당시 유럽 귀족들의 사냥용이었는데 일본인들은 이를 그저 말단잡병들도 쏘는 조총으로 알고 그 퀄리티를 그대로 복제했기에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일본전토에 굴러다닌 조총이 10만정이라 당시 유럽전역의 8만정보다 많았고 품질도 월등했다죠.
@또또아빠-y4w Жыл бұрын
가격도 활보다 훨씬 저렴했죠
@Dragon-hq3dm3 ай бұрын
구독합니다~ 넘 재밌어요~
@Earth-Ground3 жыл бұрын
조총의 가장 큰 장점은 훈련안된 농민을 바로 전력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거.....
@admiralyisoonshin49953 жыл бұрын
정답입니다!
@북북-z7p3 жыл бұрын
훈련소만 봐도 사격까지 애들 모아놓고 5분도 안가르쳐 줘도 일단 사격까지는 다 돼는거 보면 활은 ㅋㅋ 몆주씩 해도 활시위도 못당기는 사람도 있는 이유
@123-y9x3x3 жыл бұрын
@@북북-z7p 활이 대흉근 광배근 이두 전완근이 부족하면 땡기기가 어려워서 개인의 근력부터 키울 필요가 있죠 사실상 상체충의 무깁니다
@el-it2vm3 жыл бұрын
궁병한명 만드는데 대략 수년이 걸리는 반면 조총은 훈련기간이 훨씬 단축되기에, 국가입장에선 조총이 훨씬 효율적인 무기시스템이죠
@시민을지키는경찰3 жыл бұрын
7:50 오른쪽 사진은 Y책 한국사 버전에 나옵니다
@j86632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세종때 부터 화력에 목말라 있었고 문종때 부터 활이 아닌 총통같은 화약무기를 개발했었습니다. 삼총통.사전총통.세총통이 그예 이죠 이건 개인용 소화기 였었고 이것의 최종버전이 승자총통이었던겁니다. 그외에 소승자총통 같은 저격이 가능한 총통도 만들었었구요 이 총통의 등장으로 활은 주무기에서 보조무기로 자리가 바뀌었다고 볼수있습니다. 해서 말이지만 활에서 조총으로 바뀐것이 아니라 승자총통에서 조총으로 바뀐것이라고 봐야할것입니다.
@Vaultbo22 жыл бұрын
나가시노 전투는 신겐이 죽은 이후였습니다. 다케다 카츠요리가 맞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rebuildingham29343 жыл бұрын
조총만큼의 위력은 아니지만 우리 나름에 개인화기 총이 있었다고 합니다 포르투갈의 소총역시 유럽의 전장에서 개량을 거쳐나온 물건이듯 여말선초와 그뒤 4군6진때 까지는 실전으로 거치면서 최무선의 화약무기들이 계속해서 개량을 거듭했으니까요
@Sam-qz4kc3 жыл бұрын
조선에서 기존에 쓰던 소형화기는 총이 아니라 소형 화포로 분류됩니다. 총의 개념은 방아쇠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발포가 가능하냐 아니냐로 갈립니다
@wkqsha18653 жыл бұрын
사실 임란 초기에 조선군이 연전연패를 한 것은, 조총의 위력보다는 조선 전기 200년 평화 동안, 조선군이 완전히 형해화 수준으로 몰락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싸움을 하기 전에 조선군은 이미 패잔병 수준이었으니까요. 그것에 비해 일본군은 풍신수길이 전국을 천하통일한 당시 최강의 군사력이었음. 즉, 조총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임. 애시당초 전쟁 시작 전에 진 게임이었음. 조선은 대포의 나라였음. 대포가 조총에 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임. 그러나 대포를 가졌다한들, 이미 패잔병 수준의 조선군으로서는 당시 무엇을 해도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함. 사실 조선의 조정도 이미 조총의 존재를 알았음. 명을 통해 들어온 것도 있고, 임란 이전에 이미 대마도주가 조총을 조선의 조정에 바치면서, 일본의 침략을 알렸었음. 그러나 조선 조정은 조총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것임. 습한 날씨와 장전해서 발사하기까지의 시간 등을 고려해 볼 때, 조선활의 위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고, 게다가 대포의 위력을 감안하면, 조총의 위력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오판이라고 할 수는 없음. 물론 그것은 잘 훈련된 조선군이 준비돼 있을 때만 적합한 이야기임. 조선 초기에 조선군이 연전연패한 것은 조선전기 200년 평화 시기 동안 조선군이 완전 몰락한 것에 비추면 매우 당연한 것이고, 그것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선이 전쟁에 대응하여 점차 일본군과의 전쟁에서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조선의 힘이라고 봐야 함. 전국 시대를 통일한 일본의 군사력은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 중 하나였음. 그리고 한반도에 출전한 일본군대 외에도, 총군사력의 1/3 정도가 일본에 잔류해 있었음. 이런 강력한 일본군과의 전쟁에서 결국 정복되지 않았던 것은 당시 조선의 잠재력이 결코 만만치 않았던 거임. 이것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함.
@admiralyisoonshin49953 жыл бұрын
역사에 대한 분석력이 대단하십니다! 퍼 갑니다. 감사합니다.
@김경수-z4q3 жыл бұрын
사실 조선이라는나라가 명나라에 그치지않고 해외로 나가 대외무역로를 여는데 주력했더라면 최소한 지금 보다는 나았을거에요 당시 행정제도로보나 정책적으로보나 시대에 비해 상당히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한게 조선이었는데 참 안타까워요
@밀덕훈련소3 жыл бұрын
조선군이 오랜 평화로 패잔병 수준이었다는 분석은 동의하기 힘드네요. 북방의 국경지대에는 여진과의 잦은 국지전으로 잘 훈련된 군대가 있었죠. 신립이 북방의 맹장으로 이름을 날린 것도 여진과의 전투에서였고요. 말씀하신것처럼 당시 왜군이 넘사벽급이었기 때문이지, 조선군이 패잔병 수준이었기 때문에 초기에 밀렸다라는 것은 다소 과도한 분석이라고 봅니다.
@jungmin34323 жыл бұрын
@@밀덕훈련소 그 신립의 군대 숫자가...?
@easeafe4re581 Жыл бұрын
임란 초기 4개월까지 밀렸죠 이후 대부분 조선군들이 전투에서 승리했고 웅치,이치, 행주전투에서 보듯이 10배의 적에 맞서 싸워 이겼죠
@dlwhdska13493 жыл бұрын
잘 봐서요 일본 사극 드라마 중에서 기린이 온다 여기서도 조총 대하여 나오네요
@core_meltdown2 жыл бұрын
서양 배는 아니고, 표착한 중국 해적선에 탔던 포르투갈인 두 명이고, 와카사는 나사 기술 제공 댓가로 팔려갔다는 설도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그 포르투갈인도 나사 만드는 기술은 몰랐고, 결국 둘이 같이 타네가시마를 떠나 싱가폴로 추정되는 곳에 갔다가 1년인가 정도 뒤에 혼자 집에 돌아왔다던가 그래요. ^^ 근데 어차피 이것도 썰이라... 나사 기술은 와카사와는 관계 없이 좀 더 후에 도입되었고요. 영상 재밌게 잘 봤습니다~.
@treepark17838 күн бұрын
조총이라는게 수많은 화포를 만들어오던 조선 입장에서는 만드는법만 알면 아주 찍어내기엔 좋은 무기였음..
@endang_e2e2 жыл бұрын
개꿀잼 ㅋ
@나그네-d1q2 жыл бұрын
나가시노 전투는 다케다 신겐의 군대가 아니라 그의 아들 다케다 카츠요리입니다.
@조한엽-h8k3 жыл бұрын
1:36 헐 조총이 일본께 아니고 포르투갈에서 시작된거구만
@core_meltdown2 жыл бұрын
아케부스 두 자루 사 온 것을 대량 복제해, 아주 많이 마구마구 복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총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고, 1600년대에는 당시 세계 화승총의 70~80%가 일본에 있었다고 할 정도로, 많이 만들었습니다.
@조한엽-h8k2 жыл бұрын
@@core_meltdown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ㄱㅅ합니다
@신흥역랜더스씨티5 ай бұрын
@@core_meltdown한국인과 일본인 차이 ㅡㆍ포르투갈 상인에게 조총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숨기지 않고 공개ㅡㅡㅡ군사강국 ㅡㆍ오다노부나가가 . 일본을 통일해 조선을 침략해 도자기공을 납치해 도자기 개발해 네델란등 수출. ㅡㅡㅡㅡ무역강국 거기에 조선에서 도입된 은산분비리법으로 은생산증가 그러니 명(중국)으로 부터 물건을 무한정수입하는 금융강국 /명ㆍ청이 세금을 은으로 받음) ㅡㆍ조선이 중국명나라에 조공무서워 개발금지한 금은 일제시대1920년대 세계금생산 4위국
@스나이퍼-q8w Жыл бұрын
미국 남북전쟁때도 비슷했지요 ㅜㅜ
@bundeswehr1131 Жыл бұрын
엄밀히는 다케다 신겐이 능력부족을 이유로 정식으로 가독승계자로 지명하지도 않은 아들의 군대가 나가시노에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과 맞붙었죠.
@coreanovida92373 жыл бұрын
딸은 재산이다라는 말이 저기서 유래한거군요.
@1-YYY-13 жыл бұрын
남이 쓰면 쎈데 내가쓰면 허접한 조선의슬픔
@대상-p7h Жыл бұрын
0:11 임진전쟁시 일본이 조총없었어면 안털렸을까
@생생역사 Жыл бұрын
뒤에 두 편도 이어봐주세요
@easeafe4re581 Жыл бұрын
일본은 조총에 혈안이 되어 있을때도 비용때문에 전체 병력의 10% 안되었는데 조선은 순식간에 대부분 병과를 조총병으로 바꿔버렸죠. 조선은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부유한 나라엿습니다
점화 방법이 화승이라서, 어차피 장전하려면 그때그때 종이 뜯고 안의 화약과 총알을 총열 속과 점화용 화약 접시에 부어 넣어야 하거든요. 화약통에서 붓는 것과 큰 의미가 없었죠. 퍼커션 뇌관 점화 방법이 나오면서 비로서 말씀하신 대로 흘러가죠.
@user-rax1463 жыл бұрын
그니까 총을 조선후기에 그렇게 썼으면 뭘해. 스프링하나 못만들고 격발장치, 장전장치, 화약일체형 총알를 못만들어서 서구가 400년전에 쓰던걸 갑오개혁때까지 쓰고 있었잖수. 조선에 온 서양인들이 놀래요. 아니 아케부스를 이렇게 잘 다루는 사람들이 있다니. 진작 박물관으로 간 총을 아직도 쓰고 있다니.
@아르마딜로-w8z3 жыл бұрын
조선건국 후 선조시대 까지 냉정히 봐서 그냥..왕권과 신권과의 기싸움..이후 신하들간 파벌싸움에 정신이 없었고 공직이 해이해졌고 국제정세에 무능력했고기술을 천시해서 그런거임.... 임진왜란이나..일제강점기 때나 당한건 똑같은 순서임..
@전도사-j6x3 жыл бұрын
유비전략이노. 자식은 또 낳으면 돼!
@youngwookkang4643 жыл бұрын
조총화력에 압도? 웃기는 소리다. 애시당초 대포 쏘던 사람들이 총에 압도?ㅋㅋㅋ
@김쭈꾸-g5x3 жыл бұрын
총이 휴대성이 좋져 대포는 무거워서 ㄷㄷ
@정창훈-k5i3 жыл бұрын
취미로 사냥하고 싶어서
@새우는깡-n2i3 жыл бұрын
대포을 사용하는 조선이 조총을사용하는 일본한테 놀라다?
@권학수-w2n3 жыл бұрын
대포 몇대나 있다고 그리고 그 대포는 성이나 배한테 쏘는거지 사람한테 쏴봐야 효과 없음
@김동욱-i5b3 жыл бұрын
@@권학수-w2n 효과 커요..작열탄이 아니라 해도 진형 한가운데 떨어지면 진형이 깨지는데;; 볼링공만한 쇳덩이가 님한테 날아온다 생각 해보세요..기겁하지
@권학수-w2n3 жыл бұрын
@@김동욱-i5b 옛날에 화약이 엄청 비쌌는데 조총 납탄이 30그램이고 대포알이 6키로 라고 하면 대포 1번 쏠 화약으로 조총 200번 쏠수 있으니 상대가 안되죠 게다가 조총은 수평으로 놓고 눈붙여서 조준하니까 잘맞는데 대포는 30도나 45도로 놓고 감으로 쏘는 곡사화기라 잘 안맞음
@123-y9x3x3 жыл бұрын
@@김동욱-i5b 실질적인 살상효과가 떨어지잖습니까
@김동욱-i5b3 жыл бұрын
@@123-y9x3x 옛날 전쟁에서 사상자가 가장 많이 생길때는 진형이 무너지고 뿔뿔히 흩어져서 도망칠때라고 임용한 박사님이 그러셨죠..
@_REBORN_OF_GANG_GAM_CHAN3 жыл бұрын
조선 VS 일본 => 🇰🇷 VS 🇷🇺
@콩사탕이싫어요-w5f3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 이전에 조총이 들어와서 무장할 기회가 두번이나 있었죠. 명종때와 임진왜란 전 선조때. 스스로 발전의 길을 틀어막았으니 맨날 당했지
@BlackSkyUploadTube3 жыл бұрын
조선이 3단전술을 안하고 5+1(조총 4열/활 1열)전술을 쓴 걸 보면 3단 효율이 그닥일 수도 있죠. 만일 조선이 총통 개발이 느렸어도 네슬러탄 개발을 했더라면...
@voyagetoyou2 жыл бұрын
3단사격으로 다케다군 무적 기병대 쓸었는데요..?? 후금기병한테 털린 조선이랑 다르게
@닥치통조림2 жыл бұрын
@@voyagetoyou 그거 소설입니다
@BaehrChaney Жыл бұрын
@@voyagetoyou 일단 그런적이 없는것은 물론이고, 일뽕들은 3단철포사격이 무슨 대단한 전략인거 마냥 말하는데 교대사격은 천년전 석궁이 있던 시절에서도 쓰던 흔한 구닥다리 전략임 ㅋㅋㅋㅋ
@tskk6143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이후 조선은 조총을 계속 개량햐왔고, 반면 일본, 청나라는 내란을 우려해 조총생산 및 사용을 제약하여 기술이 퇴보하였다. 따라서 1600년대후반부터는 조선이 두나라에 파는 주요 수출품중에 조총이 있었다. 따라서 조총은 조선의 총이란 단축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