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시절 소위 깍새라고 하는 분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싶습니다. 일요일이면 하루종일 무보수로 후임부터 고참들까지 바리깡으로 밀고 이발해주던 고맙던 분들인데 조명받아야죠. 영상과 함께 오래전 그날의 깍새 사병분들 감사했습니다.
@35말짜2 жыл бұрын
수동 바리깡 깍새하다가 말년되니까 전기 바리깡으로 바뀌더라구요ㅠ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머리깎았던 기억 수동바리깡으로 고참머리 잡아 뜯어서 그 자리에서 머리 박았던 기억ㅋㅋ
@임태우-q7v2 жыл бұрын
아버지께서 8사단 수색대 군수장교셨네요 제가 4살5살 무렵 이발병 군인삼촌에게 맡겨져 옛날 바리깡으로 머리깍여봤네요 싹둑싹둑 머리찝는게 어린나이에 얼마나 아프던지요
@janejeong24034 жыл бұрын
저도 85년 5월 군번이죠 대학다니다 3학년에 휴학하고 거의 일년을 기다리다 갔고 제대는 88년도 8월에 했죠 나이가 60이 다되가는데 얼마전까지도 군대꿈을 가끔씩 꿀정도로 트라우마가 생겼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특수부대 그러니까 공수부대가 특공대 그리고 해병대를 제외한 일반 사병의수준은 과히 전세계적으로 최고라고 생각이 됩니다 특히 직업군인도 단기장교도 아니라 월급이나 대우가 하늘과 땅차이가 나고 사병들 사이에 군기까지 심했는데 지금생각하니 대한 남아의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 갔지 다시가라면 장교나 미군에 지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김관진 국방부 장관께서는 장교들 한테는 무섭게 반말을 던지는 반면에 일반 사병들에게 연설을 하실때 존대말로부디 몸조심하시고 계시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회로 돌아가시라는 말씀에 많은 감동과 보상을 느꼈습니다 진정 이름도 군번도 모를 일반 사병들이야 말로 우리 대한민국 국방의 초석이자 힘입니다 From California
@선촌-c2u2 жыл бұрын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저는 86년도 12월 중순에 갔는데 근데 웃기는것은 공휴일이 너무 많았다고 퇴소식 3일 남겨 두고서 국방부에서 특명이 내려와서 일주일 더하고 7주 했던기억이 나네요
@이인-i4w2 жыл бұрын
올림픽 시즌엔 특명이 너무 독하게 내려 왔지요. 휴가나 외출은 전면 금지 였기에 포기하고 지냈지만 제대를 앞둔 고참들은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고... 그 당시엔 일주일 더하면 운이 좋았던 거고 보름이 늦은 특명도 있었습니다. 올림픽 끝나곤 어마어마한 특명이 떨어져 부대 고참들이 한꺼번에 나가는 바람에 신분상승이 갑자기 되었고요.. 올림픽 즈음에 전역하신 분들....맘 고생 심하셨습니다. 행실 안좋은 고참들은 쌤통 이었고요..^^
@이소빈-d8e Жыл бұрын
아버님뻘이네요..존경합니다..고생하셨습니다.
@U2HS1D11 ай бұрын
7~80년대 군대: 신체검사 1급만 현역으로 가던 병사의 질적수준이 최고점이던 시절..
@한종수-l8p6 ай бұрын
전88년8월에 입대했습니다ㅎ 건강하십시요!
@밀면식당공급밀면기술4 жыл бұрын
84년 못먹고 못살던 시절 매일 얻어맞던 그때 그래도 열심히 복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철갑탄_12317 күн бұрын
저도 84 쌧때 부대 임니다 😊
@leonsphinx21715 жыл бұрын
내 동기는 전쟁나면 자기 괴롭히는 고참쏴죽이고 투항한다 하다가 자기가 상병 꺾이니 더 악랄한놈 됨.
@말리부-t8u5 жыл бұрын
그러니까 구타 문화가 안 사라지는 거야
@ssong_jyan5 жыл бұрын
슬프네...
@백백-l8n5 жыл бұрын
요새 선임들 구타안하는데
@다가나-t3v5 жыл бұрын
요새 구타하면 영창이아니라 육교갑니다
@김상진-o9u5 жыл бұрын
동물농장 소설이 생각나네요.
@백골용사-k2w11 ай бұрын
1973년 6월 군번입니다. 철원 백골 부대 근무했는데, 당시 구타 참 대단했었지요. 꼬박 35개월 복무했습니다. 요즘 군대 보면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된 느낌이지요.
@조참-h1x7 ай бұрын
백골 반갑습니다 저는 75년 군번입니다 지경리 토성리 와수리 지금도 GOP근무 많이 생각나구요 RCT 훈련때 의정부까지 행군한 추억도 생각 나구요 어느듯 세월이 많이 흘럿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백~골
@정마린콥5 жыл бұрын
우리때 해.공군 36개월 육군33개월 해병대31개월 진짜 세월 안갔어요
@Aaron-tf8bp4 жыл бұрын
기간보고 할말을 잃었습니다....
@다내미리내4 жыл бұрын
1950년대엔 공군은 48개월임 대구공군교육사서 10개월이 훈병이든시절임
@sunnylee47054 жыл бұрын
79년 9월 11일 입대해서 82년6월10일 전역신고 햇으니 만 33개월 근무햇지요
@1000sh4 жыл бұрын
21개월 짬찐데, 다음주가 입대 36개월 상상하니까 소름끼친다 존경합니다
@도깨비-s7y4 жыл бұрын
@@sunnylee4705 60넘으신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강준원-b2s2 жыл бұрын
79년군번!!! 제 인생에 가장 힘있고 좋은시절로 기억됩니다.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네요.
@데미안김6 күн бұрын
79년 군번 이시면 혹시! 군 생활 하실때 10,26사태가 발생 했나요?
@신현식-s7p2 жыл бұрын
80년 강원도양구에서 군생활 산악행군으로광치령 한계령 개골령 넘어 밥먹듯 걷고 뛰엇던 군생활 주간행군 보다는 밤에 산악행군은 힘들고 배고프고 졸립구 졸병 첫행군코스는 넘을수없는 양구 인제 원통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납니다
@폭풍의언덕-j4d8 ай бұрын
눈물의 광치령고개 넘어본사람만이 그 고통을 기억합니다 78-80년 .. 이젠 기억도 희미하네요
@자주국방-v7p4 жыл бұрын
86번인대 너무배고팠던기억 너무맞았던기억 너무추었던기억 너무훈련이 만았던기억 너무 철모가 무거웠던기억
84년 군번인데, 부대가 민통선 안에 있어 전부 작전도로야 금강산 가는길 겨울에 눈만오면 새벽 5시 기상후 점호후에 제설작전 갔다가 cp로 구보후 취사장 식당에서 밥먹으려면 똥국아 이랑 깍두기는 살얼음 끼었고 밥도 찬밥에 눈물삼키고 밥먹었다. 참 탈영하고픈 이등병 시절,
@쿠웨이트박-z7m4 жыл бұрын
알고리즘이 왜 날 데려오지 삼십년이 넘은 일인데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내 청춘의 상처 할말도 많고 가슴에 응어리 지지만 다 묻고 사는것이지.
@jay-1246 жыл бұрын
정말 추억의 사진이네요...감사합니다...아주 리얼리틱한 사진..70년대 중반 월남이 망하자마자 입대...살벌했던 그 시절의 초상화입니다...매일 초탄필살 ... 때김 쳐공 무북 이유...이 네가지 구호를 외쳐가면서 34개월...무사히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수 있을지 아득했던 살벌참혹했던 군시절..자살병이 지천이었고 한밤중의 총소리는 바로 자살병의 마지막 세상에 보내는 통곡소리...그만큼 군대가 살벌끔찍했지요...영상도 참 깨끗하네요...40년은 된듯...
@gunmyungji93345 жыл бұрын
그리운 추억 , 젊음의 추억이네요.... 고맙습니다. 그 때를 회상할수 있게하도록 ... 전역후 그때의 친구들 .... 떠난 연인을 그립든 보고싶었는데,,, 한동안 가슴 앓이를 했죠...
백린탄 저시절인간이하취급이란 말은 돈을 떠나, 인격체로써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던시절이란말임.
@박지성-e7d5 жыл бұрын
응 형진아 니는 100수를 해도 부사관 못하잖아 ㅋㅋㅋㅋ
@hj08285 жыл бұрын
@@백린탄-g1s 네 그래서 최저시급의 반의 월급이 된다면 그 많은 월급을 누가 주죠? 국민 세금-국방비-월급 입니다. 결론은 못올려요 ^^
@shalom_19985 жыл бұрын
@@백린탄-g1s 마음의 편지가 없었죠 ㅋㅋㅋㅋㅋㅋㅋ
@lotusjang5 жыл бұрын
2002년 한일월드컵시절에 받던 월급이 달러로 환전하면 10달러도 안 됨. 밴드 오브 브라더스 보면 1942년 징병된 미군 이등병이 받던 월급이 50달러임. 모병이 아닌 징병된 미군 이등병의 1942년 월급이 50달러. 징병된 한국군 이등병의 2002년 월급이 10달러가 안 됨. 군복이랑 총 빼고 변한게 없는 군대.
@만수-o9r5 жыл бұрын
만원이안된다구?
@lotusjang5 жыл бұрын
@@만수-o9r 2002년 이등병 월급이 11달러 58센트인데 10달러로 잘못 적었습니다. 죄송합니다. 2002년 이등병 월급 15,300원. 2002년 1~6월 환전시 평균환율은 1321.06원.(하나은행-외환-환율/외화예금 금리-평균환율-기간평균 2002년 1월~6월 조회) 15,300원을 환전환율1321.06원으로 나누어보니 11.5816087081586 달러가 나옵니다.
@hooyapower59525 жыл бұрын
밴드오브브라더스에선 돈 더준다고 해서 자원 하신분도 있었음
@lotusjang5 жыл бұрын
@@hooyapower5952 공수부대가 50달러 더 준다고 했었죠. 어차피 가야하는 거 돈 더 받는 곳으로 간다고 말했죠.
귀한 영상이네요. 33개월 국가에 충성했습니다. 박정희 시해사건, 12.12사태, 광주사태를 겪으면서 격동의 시기를 군대에서 보내고 81년 2월에 제대했네요. 색 바랜 군복을 보니 그때가 생각납니다.
@폭풍의언덕-j4d8 ай бұрын
비슷한 시기에 그곳에 있었네요. 사북사태을 진정시키려 양구에서 원주까지 내려갔었습니다
@mcs-q4q4 ай бұрын
광주사태 무식하면 좀 배우세요. 광주민주화운동입니다
@민윤성-z8i4 күн бұрын
반갑소 ~같은 시기에 군생활 한것같아~ 정말 별의별 일들이 많았지~ 고생 하셨습니다
@우종훈-t4r6 жыл бұрын
99년 군번입니다 선배님들 존경스럽습니다. 충성~!
@imapilotcause83955 жыл бұрын
12군번입니다 존경합니다
@꿀주먹-u7s5 жыл бұрын
븅신들
@imapilotcause83955 жыл бұрын
@@꿀주먹-u7s 군대도 안갔다왔음서 입터누
@멍멍-u6x5 жыл бұрын
19군번입니다 존경합니다
@백승엽-x4p4 жыл бұрын
@@꿀주먹-u7s ㄴㄱㅁ
@정성원-r8m2 жыл бұрын
귀한 젊음을 바쳐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지켜왔고 지키고 있고 영원히 지킬 대한민국 국군 장병(특히 사병)님들께 진정한 경의와 존경을 바칩니다. 대한민국 국군 장병(특히 사병)님들은 진정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계시는 진정한 영웅들이십니다. 80년대 지옥같은 군대생활을 몸 건강하게 무사히 마치고 전역하였음이 지긍. 돌아보면 너무 기적이었음.
@문감빵2 жыл бұрын
83년 5월 군번입니다. 끝없는 훈련과 작업, 구타로 힘들었지만, 전쟁이 나면 이한몸 초개와같이 버릴 애국심 만은 투철했습니다. 그시절 양구 2사단 노도부대 용사들, 추억이 스쳐갑니다!!!
@hjwwinner Жыл бұрын
엄지척!
@이아스-p6j Жыл бұрын
구라치네
@slee65594 ай бұрын
@@이아스-p6j 넌 뭐하는 놈이냐 구라는 무슨 구라? 확 그냥
@김동철-r6o4 ай бұрын
반갑습니다. 나도 83년 5월 군번입니다. 참 힘든 군대생활이었습니다.
@pantoma5 жыл бұрын
젊은이들이 나라위해 애국하는 모습은 감동입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지만~ 수고들하시게나~ 난 73세, 해병대 출신의 할아버지, 모두가 고맙네~^ 충성~^
@pantoma5 жыл бұрын
@수리 사람들은 나름대로 피치못할 사정이 있지요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은 큰 아픔입니다. 모두가 항상 건강하시길 소원합니다.
@Kimiko11175 жыл бұрын
만수무강 하십시오 필승
@eclipsz285 жыл бұрын
전 젊은 사람들이 애국하는것보다는 자유롭게 자기인생 선택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국가지키며 돈 벌고싶은분들은 본인 선택으로 군인되시면 좋겠구요. 너무 애국 애국 이러면 예전 독재정권이나 공산주의 생각나네요 ㅠ 여태껏 국가에 애국하신분들 후손분들이 폐지줍거나 살림살이 많이 부족하신거보면 안타깝네요. 나라지키면 보상이라도 많이해주세요
@pantoma5 жыл бұрын
@@eclipsz28 나이를 떠나서~ 애국할 기회을 주는것도 보상이라 믿습니다. 충성~^
@zxcv44435 жыл бұрын
초시_맹경수 필승 1162기입니다. 대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ch4n_h5 жыл бұрын
진짜 저시절 군대 다녀온분들 존경한다
@마들렌-n6y Жыл бұрын
침상사이가 한강대교하기 딱 좋았던 시절.. 물론 요즘 친구들을 뭔소린지 모르겠지.. 암튼 새벽까지 한따까리 하느라 내무반 생활이 더 힘들었던 시절~
@jh-uy2mk5 жыл бұрын
병역의 의무를 다한 남성들에게는 나라에서 평생동안 병역의무 수당 줘야 함 !!!!!! 참고로 78년도 군인한달 월급이 2,320원 이었음
@user-sgc5 жыл бұрын
아니 그정도면 길바닥 거닐면서 돈줏어다니는게 돈더잘벌겠네
@user-fn8wi4ss7g5 жыл бұрын
@@user-sgc 78년도라고
@assist7935 жыл бұрын
그 당시 물가를 몰라서 그러는데 월급으로 px가서 1달동안 담배를 사서 피거나 간식을 사먹기에는 충분한 월급이었나요?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jiji48455 жыл бұрын
@@assist793 당시 짜장면이 100원이였음
@naru50855 жыл бұрын
@@assist793 담배는 무료로 장병들에게 지급했었을걸요?? 충분한 양인지는 모르겟지만 화랑담배?
@chinalove53615 жыл бұрын
댓글 1.5천개중에서 다 부정적이네. 그러나 네이버의 부정적 댓글과는 다른 느낌이다. 왜인지는 군대나온 사람만 알뿐.
@35말짜2 жыл бұрын
96년 무장공비 잠수함 침투사건 시절의 95군번입니다. 80년대 군생활하신 선배님들 보면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고참이 깨우면 기상하면서 자동 관등성명대던거 참 신기하죠
@찬곰6 жыл бұрын
울아버지세대시네요 고생많으셨습니다. 33살을 넘어가며...필승!
@yoondrj5 жыл бұрын
02:38 이 분 깜짝쇼 하려고 상사가 이등병 약장 단거 아님?
@박태형-o9k3 жыл бұрын
ㄹㅇ
@jay-1246 жыл бұрын
11사단 악마사단....무사히 살아서 돌아오셨군요....76군번 11사단 9연대 ....부대뒤 매화산을 눈물바람으로 넘었던 시절...그 좋은 길 다 놔두고 험산준령으로만 행군하는 부대...어떤 부대가 11사단앞에서 큰소리 하랴...제대하는 날 눈이 펑펑 내리는데 60타고 원주로 가면서 다들 엉엉 울었어요...영광이 아니라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고...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산과들-d2x2 жыл бұрын
가슴 아픕니다.남의집 귀한자식들 데려다 왜 그렇게 힘들게했는지..
@kkddjj19945 жыл бұрын
술자리에서 지금 갓20대들이 군대이빨 까는거보면 어른들이 같잖게 쳐다보던데 다 이유가 있었구나. 진짜 저시절 군대 갔다온 어른들은 그저 존경스럽다
지금보니까 추억이지 다시 돌아가고싶지 않은 기억이네요 지금도 근무했던 사단 근처 지나가면 머리가 어지럽더라구요
@이몽블랑-y8x6 жыл бұрын
군장위에 18키로 짜리 포다리 올려 멜 행군하던 81미리 박격포 중화기중대에 근무했던 모든 대한민국육군의 장병 예비역들에게 진심으로 고생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 때 그시절 100키로 행군 뒤 잠을 안재우던 똥싸게 상사새키 총알이 있었으면 쏘았을지도 모르른 절대 절명의 순간을 무사히 잘 넘기신 이 땅의 군인들이여 참으로 위로의 말을 드립니다 그 시절 그 그고생 눈물이 나네
@마이콜-z5j5 жыл бұрын
중화기중대 81미리 박격포 메고 다녔던 때가 벌써 37년 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윤길영-u5z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방랑시인-c7x5 жыл бұрын
저도 81 똥포에 104 까지. 88 올림픽때..ㅡㅡ
@김사랑-g3x5 жыл бұрын
저도 81미리 박격포병 이어습니다. 쫄병땐 정말 힘들었던 조포훈련 훈련나가면 포판 포다리 메고 행군 소총중대 동기들이 왜 이리 부럽던지.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무사히 전역 김포 2사단 청룡부대 필씅 올해로 전역한지 20년 되었내요
@구희이-h3m Жыл бұрын
6사단 2연대 3대대 중화기중대 포판지고 행군 훈련도중 포다리지고가던 위선임 쓰러져 사단후송 국군통합병원 끝으로 끋내 자대복귀못하고 재대했네요 개고생 그래도 그립다~~~~
@choco83485 жыл бұрын
그리운게 저시절의 나이와 시대가 그리운거지. 저 생활은 안그리울텐데요.
@김산골6 жыл бұрын
82군번 강원도 홍천 11사단 눈만 뜨면 행군 ㆍ 야간행군 졸려서 눈감고도 행군 나의군생활은 피와 땀과 눈물이었다ㆍ 조국을지킨다는 자부심 에 나의고생으로 후방에서 우리가족형제들이 발뻗고 잘수 있다는 믿음에 난 모진 훈련도기꺼히 참았다 ㆍ군가산점따위는 필요없다 ㆍ여성분들이여 너희남자들 군에서 고생했다 이한마디만이라도 해다오 ㆍ니들이 사람이라면
@홀로서기-z9o6 жыл бұрын
고생하셨습니다. 요즘 꼬매미들은 그걸 몰라요.ㅠ
@구름에걸린달6 жыл бұрын
수고 하시었오. 저는 85군번 9연대 4중대90m 소대였읍니다^^
@osr47666 жыл бұрын
전 88군번 양덕원 20포병대대입니다.찰리포대
@구름에걸린달6 жыл бұрын
87년에 제대했읍니다. 반갑네요.
@김영섭-v3s6 жыл бұрын
79년 9연대 9중대... 눈만뜨면 양덕원을 반환점 으로 10km 완전군장구보로 하루시작...주말 24km행군은 소풍으로 지내던시절...군화도없이 통일화신고 걷고또걷고시절... 생각하고 쳐다보기도 싫은곳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뭐지? 아무튼 그시절도 그립습니다.
@유리두리2 жыл бұрын
85년 입대해서 훼바생활부터 시작해서 GOP에 투입되고 86아시안게임때문에 1년넘게 철책근무했던게 아직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g.o.d35837 жыл бұрын
선배 전우님들은 힘든환경에서도 극복하시면서 잘지내셨네요
@user-mengcon5 жыл бұрын
저때의 군대에 비해서 시설들이 많이 좋아졌구나...실제로는 잘 모르겠지만,다행이에요 조금이라도 나아져서ㅠㅠ 우리나라 남자분들 군대 힘드실텐데.. 다들 힘내세요 !!
@븓-n3j6 жыл бұрын
전선을 간다 이 군가는 진짜 언제 들어도 숨 막힌다
@남자이병석-z8x5 жыл бұрын
.
@초이-f8e5 жыл бұрын
개띵곡
@rong72024 жыл бұрын
70년도 초반 아침10k 구보때 부르던 군가 아닌가!? 중량천변을 뛸때 고통 스럽기도 신선감을 느끼기도 하고.... 벌써 50여년전의 추억이 됐구나!
개조뺑이 치던 시절이라 20대인데도 다들 노안이시네.ㅋㅋㅋ 30개월 시절이네..무려2년6개월 시절
@이시우-t8c1p5 жыл бұрын
참으로 열악한 환경과 인권유린이 있었던 시절의 군생활이었지요. 88올림픽때문에 특명 잘 안떨어져서 30개월11일 하고 전역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저에게는 많은 단련의 시절이었습니다. 젊음이 그립군요.
@박제임스-k1y7 ай бұрын
논산군번 이셧군요 저는 5사단 사단군번 엿는데 30개윌 14일 했답니다 ㅋㅋㅋ
@unfor103 жыл бұрын
군가가 생각납니다. "잠깐 쉴 때 담배피며 구름을 본 후 배낭 메고" "한 가치 담배도 나눠 피우고" 담배일발 장전!!! 어떻게 정부가 매달 지급한 담배피며 나라지켰던 국군장병들을 오늘날 흡연충으로 매도할까요. 30년전 군복무 30개월 이상했던 분들은 담뱃값인하해줘야합니다. 진정한 군생활했다고 자부하는 저같은 유형은 담배를 피는게 자랑스럽습니다. 그어떤 복지혜택 상상조차 하지않았고 다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가서 나도 빡세게 충성하고 오는거야. 늘 담배와 함께하며 그 혹독한 시절을 보냈고 흡연은 추억이었는데 말이죠
@대한소금5 жыл бұрын
저 때가 진짜 군대지
@user-ce3ww5vn1u Жыл бұрын
저 때가 진짜군대인 이유는 신체건강한 사람만 현역가고 조금이라도 문제있으면 방위나 면제받던시절
@웃는솜5 жыл бұрын
2:13 저기요! 오타인데요.. "고참들의 한따까리는 내무반을 피냄새로 물들이던 그 시절" 이 아닌가요?
@TV-ls8ns4 жыл бұрын
M16보니까 참 옛추억이 새록새록 84.7월논산군번 우리땐 30개월 ㅎㅎㅎ
@sidk36384 жыл бұрын
솔직히 딴건 몰라도 존나 멋있는게 초반에 이불 약간 안 덮히고 있으니까 존나 스윗하게 툭 하고 덮어주네
@dnjsdntjs8984 жыл бұрын
어떻게든 좋은것에 비교하면 부족해보인다 우리보다 안좋은것에 비하면 우리는 좋은것이다
@happyvirus8555 жыл бұрын
101여단이네 추억의 임진강결사대 98군번인 나에겐 조상같은 선배님들이시군 지금은 모부대로 편입되어 추억속의 부대가 됐지만 그때 그시절 전우들이 참 그립구나
@박지현-n1k2g5 жыл бұрын
무슨 이등병이 중대장, 대대장 얼굴이야 ㅋㅋㅋ
@武田信玄-y2v7 жыл бұрын
선배님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flytothelord5 жыл бұрын
ㅠㅜ
@김현수-d6b9u5 жыл бұрын
선배님이아니라 아버지나이때같은데...
@홍준표-b8k5 жыл бұрын
다케다 신겐
@아-p7g5e5 жыл бұрын
@@김현수-d6b9u 아버지나이때분들은 선배아니냐
@김오노-p4q5 жыл бұрын
김현수 나이가 아버지뻘이면 선배가 아님? ㅋ
@joecho63125 жыл бұрын
수고들 했어요 모두들,,,화이팅,,, 82년 11월 입대
@hj77845 жыл бұрын
88년 6월 입대 . 콘센트 막사에 나무 관물대 막사 하나에 80 여명이 잠을 잤다 .. 막사엔 선풍기 두대 . 고생들 많았지요 .. 죽어라 고생 했건만 또 그 시절이 그립고 전우들이 그립고 .." 옛 생각 하면 눈물만 납니다 .. 다시 못올 내청춘 ..""
@송이민-b7c7 жыл бұрын
지금은 없어진 101여단인거 같은데 지금은 9사단이 그지역을 맡고있고
@Sgw-h5f6 жыл бұрын
아 저 군복. 그리고 저 군가. 나 군생활할때 진짜 많이불렀는데.......고생은했지만 그립다. 젊은피끓던시절.
@배상환-h8k5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얻어터지고?ㅋㅋㅋ
@아몰랑-b1q5 жыл бұрын
재 입대 ㄱ
@dykwak35315 жыл бұрын
그립다고?
@ratatela94337 жыл бұрын
여자들은 국민 아닌가? 국방의의무를 왜 남성이 다 지고 있지? 현역도 안해. 예비군도 안해. 민방위도 안해. 도데체 얘네 뭐하는 애들이지? 그렇다고 애를 낳기를 하나?
저때는 고등학교때부터 엉덩이 에 빳다질 선후배 갑질 그리고 군에와서 또 선후배 갑질이 당연시 되던시절.... 그래도 마냥 드들겨 패지만은 않았고 전우애 라는게 있었고 피가 끓었었는데.. 조국에 대한 애국심 비슷한 것도 있었고 지금과는 장비면에서 열악했지만 군기 만큼은 최강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에버그린에버그린7 жыл бұрын
캬~생각난다 전우들이여 잘 살고 계신고~~ 전통 대통되고 창설부대~2개 했씀~ 청춘이 그립따~~~~총검술에 예비동작이 조금 남아있따~ 알았나~~~
시설이 저렇게 안좋음에도 불구하고 참아낸 어르신들 아버님들 참 대단합니다. 어른들 세대때는 군복무기간이 2~3년이었으니....
@pujamsoren2 жыл бұрын
@@scott-v8x 무기 장비 말고 시설요..
@kanny63175 жыл бұрын
어우... 저때가 그 죽고싶어도 죽을 겨를이 없던 시대인가요
@납득이-z7p6 жыл бұрын
이시대의 아버지들 젊은시절 고생 정말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정명-v5n6 жыл бұрын
그래도 저때는 젊은이가 너무 많아서 50%가 방위였다지..
@야생마-x1j5 жыл бұрын
ㅎㅎㅎ 어디서 그런 소릴....... 당시엔 우리나라가 100만이 넘는 대군보유국이었어요. 신검 받으면 10에 1~2명 정도가 등급이하로 보충병으로 빠져었지요. 비율로 따지면 지금이 그 때보다 면제, 공익요원 등으로 빠지는 확율이 더 높을 걸요. 당시엔 진빠 빽이 좋거나, 돈이 많았거나, 신체상 심각한 결함이 있지않고서는 어지간하면 죄다 현역으로 복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teacherdjkim5 жыл бұрын
베이비붐 세대들 현역 입대 못한 경우 많습니다. 집으로 가라고 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잘 침상이 모자라서요. 지금 상근예비역처럼 부대로 출퇴근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특공방위라는 말이 있죠. (수색대 같은 전투부대 방위) 동방위도 많아서 동방위끼리도 구타폭언 군기잡는일이 많았다네요.
1980년대가 한국군 병력 수로는 군사 대국이던 시절이었음. 웬만한 유럽 국가들보다 많아... 방위도 많긴 많았지만
@이삼공-m6q5 жыл бұрын
총과군복이 선배님들 우리는 깨구리전투복 캐이투 보급 받으니 좋은시절 만난거네요
@천안문탱크맨-y9u5 жыл бұрын
지금은 폰사용이랑 동기생활관씀
@세상지식6 жыл бұрын
저.영상보니.눈물이난다. 35년지나.그때.전우들. 전부.어디로.가나요...
@황의순-v8d4 жыл бұрын
내가나온 101여단이네요?지금은 없어졌답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추억이 새록새록 저기 철책은 박살선이라구 내가 근무시절에 북과도 교전사격 했었지요
@st61615 жыл бұрын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도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어찌보면 지금 고생은 저때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 참 어떻게 참았나 싶다.. 지금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국군장병들 힘내십시오. 시간은 어차피 흐르는 법이고 때가 오면 무사히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제대할 날도 오더군요. 군대라는 곳 어찌보면 인생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 위기와 위기 극복 안정.. 또다른 위기 위기 위기극복 안정.. 또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 저는 개인적으로 먹는 낙과 격오지부대에서 생활한 탓인지 몰래 무언가를 했던 것에 낙이 있었더군요..
@굿맨토리5 жыл бұрын
2002년 1월 강원도의 그 추운 겨울에 동기와 함께 둘이 막사 앞에서 전역환영식을 받고 위병소를 나가던 그때가 생각나네요 지금 돌이켜 보면 전역하고 나가면 뭐든 다 할 수 있을것 같은 자신감이 넘쳤는데 그건 그저 젊음이 주는 자신감 넘치는 패기였나봅니다 현재의 20대들은 모릅니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황금기에 있는지를 말이죠 참 아름답습니다 20대여
저도 85년 12월 23일 논산군번 1365**** 논산서 4주 훈련후 의정부306보충대 거쳐 5사단 보충대(2주간교육)거쳐 36연대 4대대 13중대 배치 받아 신서면 도신리 방아다리 건너 민통선 이북에서 훼바생활(당시 대학생들 데모를 많이 하여 심심하면 비상결려 완전군장 꾸려 바람터 고개 넘어 행군하여 거점에 투입하는 생활이 반복되었읍니다) 87년 9월 철원평야 역곡천 GOP 근무하다 88년 3월 제대하였읍니다
@2mb10006 жыл бұрын
나보다 한참 선배님들인데 소초 막사는 96 군번인 내가 생활하던 소초 막사보다 시설이 더 좋네. 그리고 저땐 수류탄 한발만 지급해줬구나. 우린 탄통에 넣어서 두발씩 가지고 댕겼는데... 아 그립다 군시절.잠도 한번 안자고 야간 근무내내 야투경 쓰고 빨갱이 한마리 잡아서 휴가가기를 바랬는데 한마리도 안오더라.
@해보자-u3g6 жыл бұрын
이명박 원래수류탄 컨테이너 보관함에넣어서착용하는데저렇게 알짜로 착용한건 저도 처음보네요
@메리스포레스트하남감6 жыл бұрын
저 당시 군인들은 뭔가 쎄보임
@이형근-b8u5 жыл бұрын
규꺼비 쌔요
@jmx_0615 жыл бұрын
군복으로 쌘걸 정하네;;
@user-nh1qy1su1v5 жыл бұрын
@@jmx_061 ㅋ..쿨렄
@선비씹-r7t5 жыл бұрын
@@user-nh1qy1su1v 군복색깔이 왜나옴 갑자기
@RlarjsEor5 жыл бұрын
@@jmx_061 그말이 아닐텐데...
@K_UNE7 жыл бұрын
저땐 진짜 힘들었겠다..
@玄田牛一-b3r5 жыл бұрын
저때는 하사관 서로 안하려고 했다죠 주로 꼬투리 잡힌 사람들이 하사관으로 임관 했다고 하네요 야 너 영창갈래 말뚝박을래?
@내사람-x8s4 жыл бұрын
20년 뒤에는 지금 군대도 이렇게 영상으로 보며 추억을 되새기겠지ㅠㅠ
@Sgw-h5f6 жыл бұрын
80년대 군생활했던나. 이영상보니 추억이소록소록난다..M60이 10.5키로나간다 그놈메고 10키로 완전군장구보도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