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훌륭한 강의입니다. 선생님의 칸트 저술 번역도 기대합니다. 괘씸한 철학번역도 매우 유익하게 보고 있습니다. 계속 좋은 컨텐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codyjeong Жыл бұрын
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김중원-k7i5 ай бұрын
좋은 가르침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codyjeong5 ай бұрын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소요3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코디정 선생님. 너무 쉽게 이해했어요.. 선생님 계신 방향으로 큰절 올립니다. (어딘지 모르지만😅)
@codyjeong3 ай бұрын
부끄럽습니다. 도움이 된 것 같아서 기쁘고요. 감사합니다.
@mebr03097 ай бұрын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도덕형이상학 정초에서도 자유의 '이념'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던 것 같은데요. 여기서도 이념을 이데아로 생각하면 되겠지요? 자유는 이성으로 떠올린 것이지만, 자유(의 이데아?)가 있다는 것은 증명가능하다? 이렇게 보면될까요.
@codyjeong7 ай бұрын
네. 그렇습니다. 한국어 번역의 문제(일본식 번역 수용)일 뿐이지, 같은 말입니다. 그 이데아입니다. 순수이성이 경험의 도움 없이 (즉, 누구나 갖고 있는...) 만들어내는 개념을 뜻합니다. 자유의 이데아가 존재하게 되는 까닭을 칸트는 해명합니다만, 그렇다고 증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유가 정말로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인간이 알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칸트에게 증명이란 경험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경험 세계에서조차 본질의 내용을 속속들이 알 수 없다는 한계를 천명합니다. 자유 같은 이데아는 순수이성이 만들어낸, 경험으로 검증할 수 없는 사유물이기 때문에 증명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해명을 하거나 있을 것으로 상정하거나..에서 멈춥니다.
@yuuou7542 Жыл бұрын
자연계에 존재하는 시공간의 형식으로 생각한다
@codyjeong Жыл бұрын
네. 그게 동일한 것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지식자료(감각자료, 데이터, 경험 등등의 표현이 대체로 같은 의미입니다)를 머릿속 시공간의 형식으로 가져온다는 게 칸트의 생각입니다.
@김태경-e8r8 ай бұрын
순수이성비판에서 왜 비판이라는 말을 쓴건가요? 저의 이해로는 순수이성을 풀어 해쳐본다? 라는 의미 정도 쓴거 같아요. 순수이성이해 라코 해도 더 좋을것 같기도 합니다. 답변 부탁드리고 싶어요. 감사드립니다
@codyjeong8 ай бұрын
네. 제가 이해하는 선에서 말씀드리면요. 칸트는 그 시대 이전의 철학을 종합하고 새로운 철학세계의 문을 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순수이성이해'라고 하면 기존 방식과 차이가 그다지 없어서 칸트가 좋아할 표현은 아닐 것 같아요. 게다가 그 이전의 철학자들도 '이성을 이해했고 이해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순수이성비판은 순수이성을 풀어해치지는 않습니다. 순수이성개념인 이데아로서, 신, 자유, 영혼불멸을 추론해 내지만 그것은 증명할 수 없는, 즉 확실히 알 수 없는 한계임을 선언합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풀어해칠 수는 없고, 솔직히 완전히 이해했다고 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칸트를 이해하는 방식은 이러합니다(다른 견해가 있을 수도 있겠어요). 칸트는 인간 지식에 관해서는 경험주의 입장을 수용합니다. 사실상 경험주의자입니다. 경험주의는 이성을 비판합니다. 그런 점에서 칸트가 이성을 비판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경험주의도 이성 비판이며, 칸트도 이성 비판입니다. 여기에서 비판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성의 한계가 있다, 이성은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이성이 어떻게 알고, 또 그것을 검증할 수 있겠느냐' 같은 뜻입니다. 다만, 그런데 칸트의 통찰에 따르면, 경험주의가 보지 못한 인간의 공통 요소가 있고, 특히 경험과 무관한 뭔가를 인간이 본래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험과 무관하기 때문에 '순수'입니다. 그래서 경험주의자들에게 '순수'는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고, 이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 으로 이해합니다. 은 의 약식 표현입니다.
@phoebuslipton95657 ай бұрын
결국 기독교는 이데아라는 화려한 옷으로 변장해 날카로은 인간의 이성을 비껴갔다는 것. 그래서 기독교는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에 난타를 당했구만.
@빈센트-g6o Жыл бұрын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가 '영적인 능력'이라는 단어를 썼나요?
@codyjeong Жыл бұрын
'영적인 능력'은 제가 영상에서 쉽게 설명하려고 쓴 단어이고요^^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가 그런 표현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영상에서도 그렇게 첨언해 뒀고요. 그러나 spirit 혹은 spiritual이라는 단어는 칸트가 수십 번 사용합니다. God은 백 번 정도 사용하는 것 같고요.... 신은 존재하는가, 내세는 있는가, 등의 형이상학 문제에 대한 답을 '순수이성'이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을 집필하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 '영적인 능력'은 감성과 지성의 역할이 아니라, 결국 순수이성의 본연의 요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진리의 영역, 실제로 이성이 알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칸트는 말합니다. 이성의 한계 바깥의 영역으로서 이데아... 정도 되겠지요.
@빈센트-g6o Жыл бұрын
@@codyjeong 감사합니다.무식한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thegulf3251 Жыл бұрын
코디정 선생님 쉬운 말로 어렵다는 생각을 전딜하는 거야 말로 오직 대가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codyjeong Жыл бұрын
네. 비슷한 말씀을 꽤 들었던 것 같아요. 이 문제는 지식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지식이 내 머릿속에서 체계적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지식을 타인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진심으로 고민하다 보면, 결국 쉬운 말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박양원-y5c Жыл бұрын
잘모르지만 물자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데요
@codyjeong Жыл бұрын
네. 물자체는 칸트철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칸트는 인간 머리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이 절대적으로 알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의 지식은 물자체가 아니라, 물자체가 감각을 통해 인간 머릿속으로 들어온 현상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종전의 진리관을 흔듭니다. 이데아(이념)은 물자체는 아니고 이성이 만들어 낸 사유물입니다. 이런 사유물조차 물자체라고 칭하곤 합니다. 어차피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되기 때문입니다...
@나참-r5j Жыл бұрын
선생님. 도입부를 듣다가 댓글을 남깁니다. 좀 산만합니다. 동어반복을 많이 하십니다. 설명을 친절하게 하시느라 그런듯한테 말씀이 다소 중언부언입니다. 같은 내용을 다른 말로 중복하지 마시고 한 번만 말씀하시고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시는 게 좋을듯합니다. 나머지 영상 다시 들으러 갑니다. 감사합니다.